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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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 뜨거웠던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막혔다. 외출이라도 하려면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의 심정만큼 비장한 결심을 해야 했다. 이런 답답함은 에어컨 밑에 있는 그 순간만 제외하면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이야기의 각 부분들이 잘 연결되지 않았고 꼬부랑 이름의 등장인물은 날 계속 헛갈리게 했다. 이는 카뮈의 책이 어렵고 난해할 거라는 내 선입견과 맞물려 더욱 읽는 속도를 더디게 했다. 그렇다고 페스트가 퍼진 오랑 시의 암울함마저 뒤덮는 것은 아니었다.

 

  페스트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균이 옮겨져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으로 흑사병이라고도 하며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다고 한다(물론 지금은 많이 기술이 발달해 많이 안전해졌지만). 그래서 옛날에는 이 병이 한번 돌면 도시는 물론 국가 기능까지 마비될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이런 페스트가 오랑 시에서 발병해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모든 출입구가 통제되면서 사람들의 이동도 제한되었다. 개인의 사생활은 없어지고 사회활동마저 제한되었다. 의사인 리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치료하며 치료제 개발에 노력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점 고립되어 갔고 페스트는 물론이고 단절된 현실과 고립된 자신과도 싸워야했다.

  <페스트>에서 급속하게 퍼지는 전염병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의 이별을 가져왔고, 죽음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페스트가 장기화되고 불안과 통제가 오래될수록 개인감정과 건강상의 문제 넘어 인간에 대한 존재가치까지 흔들어놓았다.

  개인의 삶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극도로 통제된 상황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역경이 닥쳤을 때 흔히 좀 더 노력해 현실을 극복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이나 단체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버린 상황이라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외부의 환경과 끝까지 맞서 싸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이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새로운 질서 속에 자신을 적응시켜 나갈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나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고자 도망치는 경우도 있겠다.

  지나간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듯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 또한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불행을 위안 삼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무시해버릴 수도 있으리라. 이런 단절은 고통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는 외적인 고립보다 더 무서운 이 아닐까 싶다.


  페스트가 뒤흔든 오랑시의 모습은 온갖 거대한 난관에 가로막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나약한데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 현실에 타협하거나 순응한다고 해서 함부로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벽 앞에 근시안적인 대처법으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안쓰러웠다. <페스트>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전염병이었다.

 

  숨을 틀어막는 무더운 날씨에 갇혀버린 나는 페스트가 뒤덮은 답답한 도시 속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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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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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콩쿠르상과 더불어 세계3대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방송에서는 대서특필했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그녀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독서는 물론 문화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그녀의 인터뷰와 책 소개가 이어졌다. 정말이지 '한강의 범람'이라할 만큼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수상소식 이전부터 한강의 글은 제법 알려져 있었다. 서평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에 걸린 그녀의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방송 인터뷰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두 손바닥을 맞잡은 채 등장인물을 이야기하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전에 부산에서 한승원 작가의 <잠수 거미>를 가지고 독서토론회를 했었는데 그때 한승원 작가의 딸도 소설을 쓴다고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다가 서점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한 씨 성의 여류작가를 보고는 그녀가 바로 한승원 작가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여류작가의 글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지만 한승원 작가를 통해 연결된 고리가 있었기에 조금은 더 애착을 가지고 바라본 것 같다. 특히 부녀가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이 신기했고 둘 다 나름의 스타일로 나름의 인지도를 얻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남일 같지 않게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동명의 단편과 함께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 연작으로 엮어져 있다. <채식주의자>는 어떤 꿈을 꾼 후로 갑자기 채식을 시작한 영혜를 남편의 시선으로, <몽고반점>은 영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에 집착하는 형부의 시선으로, 마지막 <나무 불꽃>은 채식이라는 일련의 사건 이후 점점 현실의 끈을 놓아버리는 영혜를 그녀 언니의 시선에서 이야기한다.

  영혜의 채식은 어두운 숲에서 핏방울이 채 가시지 않은 날고기를 씹어 먹던 꿈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곧 가족과 사회의 폭력에 내버려진 과거와 연결되어 영혜를 더욱 더 깊은 채식으로 밀어 넣는다. 특히 자신의 몽고반점을 통해 자연의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형부의 예술행위마저 자의든 타의든 폭력으로 마무리되어 버림으로써 세상과는 더 높은 담장을 쌓아버린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거부한 채 나무가 되고자 한다. 일채의 인위적인 구속과 시선, 인정과 형식, 억압과 폭력, 세상과 삶을 태워버리려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치밀한 삶 곁으로 가는 솔바람이 스쳐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지만 아련하게 떠오르는 푸른 기억을 막을 순 없다. 아무런 이유나  미련 없이 옅은 바람결에도 하늘하늘 떠다닐 수 있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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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클래식 스토리북 : 정글북 디즈니 클래식 스토리북
디즈니 스토리 북 아트 팀 그림,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대원키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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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 원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이야기 순서가 바꿔 있고 새로운 내용도 들어가 있죠. 디즈니에서 영화에 맞도록 편집한 것을 책으로 출판한 것 같네요.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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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북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손향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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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디즈니사에서 만든 <정글북>이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한국에서도 개봉해 많은 가족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중이다.
  "그렇지,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면 좋겠어!"


  하지만 <정글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그 스토리는 생소했다. 원작은 물론 동화책도 읽어본 적이 없고, 옛날에 만들어진 만화도 본 기억이 없으니 당연할 수밖에...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는 영화 <정글북>에 대한 글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실사 영화라고는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들은 그래픽으로 구현했으며 놀랄 만큼 사실적이라거나, 밀림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 볼만하며 무조건 3D로 봐야 한다는 둥 계속해서 내 흥미를 자극했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정글북의 원작을 한번 읽어보는 거야!"


  내가 구입한 책은 깔끔한 디자인으로 느낌이 좋았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판이었는데 저자(레디어드 커플링)가 최연소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읽고, 수상 이력이 없다고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싸한 타이틀이 하나라도 더 붙어 있으면 왠지 가치 있고 깊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 ^^ 
  "<정글북>이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이란 거 알고 있냐?"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된 <정글북> 중 앞 세 편('모글리의 형제들', '카의 사냥', '호랑이다! 호랑이야!')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늑대소년(모글리) 이야기다. 늑대에 의해 길러진 모글리는 발루(곰)와 바기라(흑표범)의 도움으로 밀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그를 못잡아 먹아 안달인 시어칸(호랑이)을 발루(곰)와 아켈라(늑대)의 도움으로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많지 않은 분량인데다 시간의 흐름도 빨라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모글리가 소 때를 몰아 방심한 시어칸을 물리치는 장면은 <늑대와의 춤을>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버팔로 때를 보는 것처럼 장관이었다. 물론 시어칸의 최후가 너무 허무하고 간략하게 서술돼 허무하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되는데~"


  '하얀 물개' 편은 모글리와는 별개의 내용으로 인간에게 언제 가죽이 벗겨져 몰살당할지 모르는 동료들을 이끌고 안전한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코딕(하얀 물개)의 이야기다. 마치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려는 조나단(<갈매기의 꿈>)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코브라와 사투를 벌이는 몽구스의 이야기('리키티키타비')와 두 편의 단편('코끼리들의 투마이',  '여왕 폐하의 신하들')이 더 실려 있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이나 세밀화를 들여다보는 듯 표정이나 행동이 섬세하다는 점에서 시튼의 <동물기>와 닮았다. 또한 동물을 사람 주변의 배경이나 소품 정도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행동의 주체로서 담아낸다는 점에서도 인상 깊었다.
  "동물 한 마리도 엄연한 생명체인 것을... 동물을 사랑할지어다~"


  다음 주말 쯤 아이들과 영화관에 가야겠다. 그 전에 어린이용 <정글북>을 한 권 주문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모글리의 모험담을 들려줘야겠다. 시각적으로 표현된 영화를 수동적으로 보기에 앞서, 텍스트로 된 책을 읽으며 그 장면 하나하나를 그려볼 수 있도록.
  "책은 가슴으로 그리는 최고의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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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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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p259)

  '존속 살해'라는 충격적인 소재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살인자의 손에 쥐어진 면도날만 섬뜩하게 번들일 뿐 뇌리 속에 남는 것은 없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사이코패스의 강렬함이 모두 가져가 버린 듯하다. 책을 덮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잔혹함과 매스꺼움이 가시질 않는다. 내 귀라도 잘라버려야 끝이 날는지...


  표지에 그려진 수영장이 검붉은 핏물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뜩하고 잔인했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책을 놓지는 않았다. 피 튀기는 광기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당히 자극적인데다 끊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남의 집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이야기처럼 자기와 상관없음을 확인한 타인의 눈에는 그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밋거리일 뿐이었다.

  혹시 내 안에 숨어있는 광기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얌전하고 온순한 척 내숭을 떨고 있지만 속으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겨버린 상대방의 약점을 마음 속 깊이 세기며 유용하게 써먹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지 반문해본다.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은 소설 속 사이코패스의 시작이 아닐까.


  책은 읽자마자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저렴하게 팔아버렸다. 더 이상 우리 집에, 내 방에 놓아두기가 싫었다. 나의 머리 속에 남은 핏자국을 어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의 책이 누구의 손에서 읽혀질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살인 속에 감춰진 이면을 간파할 수 있는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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