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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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의 백만 년 만에 읽은 책이다. 이런 저런 핑계와 게으름으로 한번 멀어져버린 책은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음 속 한구석에는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막상 시간이 나면 손은 언제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다시 접하기에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디지털 매체들이 넘쳐났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최근 서울로 출장갈 일이 생겨 들고 간 책이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다. 올 초에 읽다가 덮어둔 단편집이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그 첫 페이지를 넘겼다. 다시 김영하를 만났다.

 

   <오직 두 사람>은 생로병사의 인생사처럼 오르내렸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의 죽음을 계기로 되돌아보는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아버지를 많이 따르고 친했던 현주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 아버지의 애정 속에 가려진 집착을 느끼게 되고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아이를 찾습니다>11년 전 유괴 되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갑자기 되돌아오면서 겪는 이야기다. 아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했던 윤석에게서는 아이를 찾았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을 뿐더러 어디서부터 바로잡아 나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1년 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기다려온 날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면서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두 단편은 모두 혈육이라는 관계 속에 안주하지 못하고 겉도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버지의 절대적인 존재감은 딸의 성장과 독립 앞에서 무력해지고 불안해졌다. 그리고 아들만 찾는다면 모든 행복했던 지난날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가족 내의 존중과 배려 속에 이를 지키고 리드하는 중심이 되었지만, 가족이 소형화되고 외부활동이 많아지고 사회조직이 복잡해짐에 따라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나버린 존재가 되었다. 절대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신의 모습에서 금전출납기처럼 생활비를 토해내야 하는 외부 용역업체 직원처럼 말이다. 미약하게 남아있는 존재감이라도 붙잡아보려는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이런 모습이지 싶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작 그 변화에는 제일 늦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느려터진 무감성의 존재가 된... 아버지.

 

   “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죽겠습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세,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옥수수와 나>는 자신을 옥수수라 여겼던 한 남자의 콩트부터 시작한다. 이 옥수수와 대비되는 박작가는 한때 베스트셀러도 썼지만 지금은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이미 다 써버렸지만 소설은 한 줄도 써내려가질 못했다. 그러던 그가 뉴욕에서 만난 자신이 계약된 출판사 사장의 처와 동거를 시작하면 엄청난 문학적 집중도를 보인다. 한창 자존감이 업 되어 자신을 대견해하고 있을 무렵, 권총을 들고 찾아온 출판사 사장의 게임 같은 협박에 허둥지둥 최근 상황을 설명한다. 문학가로서 최고의 희열을 맞본 그에게 갑자기 죽음이 직면해왔다.

   존재감의 무게에 방황하다 엉뚱하고 이상한 방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깊이에의 강요>(파트라크 쥐스킨트)<변신>(카프카)이 생각난다. 옥수수 같은 하찮은 존재였지만 막상 이를 벗어던지려는 찰나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현실, 혹은 존재의 가벼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내 속의 생각과 주변의 조건에 따라 옥수수가 되기도 했다가 닭이 되기도 하는 모순되고 혼란스런 현실을 에로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 놓았다. 결국 옥수수로 살 것인가, 닭으로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

 

   이밖에도 <인생의 원점>, <슈터>,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이 실려 있다. 재밌게 읽히는 글도 있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문학적 무지와 미흡한 독서에서 오는 이해력 부족이리라. 단편 자체가 열려있는 스토리인데다 특정 부분만 집중해서 부각하다보니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이런 모호함 때문에 더 빛을 발하는 것이 단편소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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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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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커피를 갈아 마시는 루왁 커피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야생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커피를 채취했지만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사향고양이 농장을 만들고 거기서 강제로 커피를 먹여 수확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양이 똥에 들어있는 열매를 이용해 커피를 만든다는 것만큼이나 좁은 우리에 갇혀 커피 열매만을 강제로 주입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또한 충격이었다.

  이십년 전 쯤, 고등학생 때 봤던 동물보호단체의 영상도 기억난다. 순백의 무대 위를 은회색의 모피코트를 걸친 모델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도도하게 걷고 있었다. 주변의 감탄과 후레쉬 세례 속에서 중앙 무대로 들어선 모델은 모피를 돋보이려고 한 바퀴 회전을 했다. 그런데 이때 모피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더니 하얀 무대와 주변의 관객들에게 튀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강렬함은 쉽게 잊히지 않았고, 결혼 후에 우리 와이프가 시부모님께 물려받아 생전 처음 입게 된 모피코트를 봤을 때도 그녀의 환한 웃음보다는 핏물로 가득했던 그 무대가 먼저 떠올랐었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인간이 먹거나 입기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 모든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향고양이 뿐만 아니라, 사냥이나 전시를 위해 길러지는 사자나 호랑이, 뿔이나 지느러미를 위해 살해되는 코뿔소나 상어, 몸속으로 삽입된 호스를 통해 쓸개즙을 적출당하는 곰은 물론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라쿤 등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으로 희생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먹어왔던 것들 뒤에는 동물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세삼 확인할 수 있었다. 여고생의 가방에 복스럽게 매달린 털 장식은 살아있는 체로 벗겨진 토끼의 생가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와 당신은 부지불실 간에 동물들을 살해해온 가해자였던 것이다. 아무렇게나 입고, 즐기던 것들 속에 수많은 동물들의 눈물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랍고도 미안했다. 정말 '내가 이러려고 살아 왔나 하는 자괴감 들고 괴로운 심정' 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럼 가죽 옷을 입지 않고 채식을 하는 것으로 동물들의
눈물이 줄어들까?" 

  가죽옷 대신 합성수지로 만든 옷을 입을 때도 석유와 공장이 필요하다. 시추를 위해 자연은 훼손될 될 것이며, 공장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산림파괴와 공해로 동식물이 고통 받을 것이다. 채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논밭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자연은 훼손될 것이고, 시장성을 위해 뿌려진 농약으로 많은 곤충과 벌레들이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수확한 야채를 씻기 위해 사용하는 물도 따지고 보면 여러 동물의 생활터전을 빼앗아 만든 산물이 아니던가...

 
  결국 우리는 두발로 걷고 불을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자연과 동물을 학대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살아가는 한 이 가혹행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원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동물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가져야겠다. 오늘 당장 가죽 지갑을 버리고 닭고기를 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삶이 수많은 생명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겠다. 

  "여보, 모피코트 입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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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 스물넷에 장애인이 된 한 남자와 그가 사랑한 노들야학의 뜨거운 희망 메시지
박경석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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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을 지도하면서 매월 나가는 곳이 있다. 반여동(부산)에 위치한 사랑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돕고 지원하는 단체이다. 그곳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장애인식개선거리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여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안내하고 홍보하는 활동으로 인도의 턱을 없애고 건물 입구에 경사로를 만들자는 내용으로 거리의 행인과 점포의 주인들에게 설명도 하고 전단지도 나눠주며 활동한다.

  처음에는 장애인들과의 활동이 어색하거나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먹고, 웃고, 땀 흘리고, 소리치다보니 이웃이나 친구들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활동이 불편하고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늘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전동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을 만나도, 장애인을 보는 주변의 시선에도 거리낌 없이 웃음이 가득했다. 자신의 환경을 불행으로만 여기고 현실을 포기해버리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사회에 대항하며, 살아가며, 싸워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싸움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싸움의 중심에서 노들야학을 운영하고 있는 박경석 님이 쓴 책이 바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이다. 해병대를 제대한 혈기왕성한 젊음의 시절에 행글라이딩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무감각 속에서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자살여행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성경을 통해 세상에 나갈 용기를 얻게 되었고, 노들야학에서 장애인을 가르치고, 생활하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조직을 운영하는 내용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장애인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장애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육받은 내용을 활용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 남는다. 그래서 박경석 님은 거리로, 관공서, 법원으로 뛰쳐 나갔다. 

  집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장애인의 현실과 여러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안전이 안타까웠고 여러 가지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렇게나 장애인에게 관심이 없었나 자책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인 내게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봉사관련 동아리와 단체에 속해 남들보다는 많은 관심과 이해를 하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책을 읽다보니 나 역시도 겉으로만 장애인과 이들의 사회활동을 고민하는 척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럴싸한 구호나 명함에 적힌 가입단체만으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속 좁은  행동인지, 사회가 아직 장애인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력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장애인과 장애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매달 나가는 활동에서도 좀 더 밝고 열린 마음으로 장애인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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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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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부산 송도해수욕장을 자주 갔었다. 같은 부산이라지만 우리 집과는 정 반대 방향인 남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을 타고가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하지만 당시 건설 붐을 타고 잘나가셨던 이모부님의 그라나다 자가용을 타고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시내에서 한참을 들어가 언덕 하나를 넘으면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해안도로가 작은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곳이었다. 그 길 곁으로 많은 횟집들이 성업 중이었고 그 앞 도로가에 아무렇게나 마련된 테이블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명개며 해삼을 먹었다.

  어떤 날에는 송도 앞바다에 위치한 거북섬으로 가기위해 나무로 엮어진 구름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발아래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가 투명했지만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그런 경치를 볼 여유는 없었다. 몸을 움직이며 다리를 더욱 출렁거리게 만드는 사촌 형들의 장난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런 다리를 지나서 도착한 거북섬은 안락한 낙원처럼 포근했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회를 먹고 산책을 하고...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송도에서는 조그만 횟배도 탔었다. 네다섯 명이 간신히 탈 수 있는 작은 배에 천막을 올리고 방석을 깔아 횟배로 개조한 놈인데 관광객들로 분비는 해변에서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에서 회를 먹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출렁이는 송도 앞다에 배를 띄워놓고 혈청소를 바라보며 먹는 아나고(붕장어)의 고소함이 아직도 선하다.

 

  바로 그 곳, 송도해수욕장(부산)이 주무대가 되었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80년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물론 내 어린 시절이 <뜨거운 피>처럼 힘겹거나 폭력적인 삶은 아니었지만, 이것 또한 어떠하리! 시간에 윤색된 기억은 언제나 푸르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을. 

  이렇듯 정겹게 남아있는 송도해수욕장이었지만 <뜨거운 피>에서는 그리 평온하게 그려놓지 않았다. 구암이라는고 소개된 이곳은 돈과 여자, 각종 이권을 찾아 모여든 건달로 넘쳐났다. 말이 좋아 건달이지 실은 조직폭력배, 전과자, 마약중독자, 사채업자, 도박꾼, 밀수꾼, 포주 등 사회의 어두운 면에 기생하는 깡패들이라 보면 되겠다. 그래서인지 폭력이나 욕설은 애교 수준으로 등장하고 살인은 물론 시체처리를 위한 분쇄기도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살벌했다. 

  무식함과 잔인함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면이 오히려 나의 관심을 끌었다. 살인청부업을 그린 김언수 님의 전작, <설계자들>을 통해 그의 글 빨에 푹 빠져버린 것도 원인이었지만 폭력이 갖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멜로영화보다는 액션영화가 흥행에 더 유리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내 안에 숨겨진 강한남자 콤플렉스-남자는 울어도 안 되고 힘도 쌔야 한다는- 때문인가?  

 

  구암의 터줏대감이자 실세로 만리장 호텔을 운영하는 손영감과 그의 밑에서 조직을 관리하고 각종 사업을 총괄하는 호텔 지배인 희수의 이야기로 80년대 우리 시대를 관통했던 조직폭력배의 생성과 번영, 암투와 잇권 다툼, 그리고 몰락과 부활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전개된다.

  손영감은 다른 조폭들처럼 세를 확장한다거나 밀수 등 큰 돈벌이에는 신경이 없고 구암을 관리하면서 받는 세금이나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과 섞어 파는 등 몸을 사리며 안전하게 조직을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외부세력과의 큰 마찰 없이 오랜 시간 구암을 지배했다.

  희수는 손영감의 오른팔로 구암의 질서를 잡거나 자잘한 싸움의 중재하는 등 바쁘게 살아가지만,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소모품 같은 자신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손영감 밑에서 나와 양동의 오락기 사업에 동참한다. 희수와 양동의 오락기 사업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급성장하지만 주류사업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양아들(아미)을 통해 자신과 구암을 둘러싼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평온하던 구암을 세력다툼의 중앙으로 내몰았고 푸른 바다는 핏빛으로 변해갔다.

 

  김언수 작가의 화려한 글 솜씨와 치밀한 전개로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기존의 조폭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봐온 의리와 배신이 뻔~하게 등장하지만 독특하고 미스터리한 손영감의 행보를 통해 이야기는 더욱 치밀해지고 인물은 더 따뜻해졌다. 손영감의 평범한 노파 모습 뒤에는 조직을 이끄는 보스의 잔인함이 숨겨져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과 자신과 구암을 위해 노력한 희수에 대한 애틋함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희수를 통해 우리의 삶과 급변했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7~8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그 여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화려한 외적성장을 감당할 의식수준도 부족했다. 경제가 살아나면서 돈의 가치는 올라갔지만 가족의 응집력은 약해졌고 이탈도 심해졌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소외감은 커졌고 하나 둘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회는 국가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전제주의적인 군사문화를 확대해 나갔고 개인의 희생은 당연시 되었다.  법과 양심 보다는 편법과 돈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가진 자는 더 많은 배팅으로 이득을 챙겼을 뿐 이윤은 고르게 분배되지 못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져갔다. 

  희수는 자신의 시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돈과 조직, 의리와 배신 사이를 오가며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다 못해 안쓰럽게까지 보였다. 어쩌면 희수는 몸뚱아리 빼놓고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우리들의 옛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책 이면에 깔려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암울하게 살아왔던 세월이 더 갑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현실을 타파해줄 무언가를 찾게 되고, 그 돌파구로 액션을 가장한 '폭력'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 역시 폭력적이다. 정치는 어지럽고 교육은 근시안적이다. 산하는 더욱 오염되어 가고 예술마저 돈벌이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어딜 가든 한 밑천 잡아보려는 깡패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끝나지 않은 폭력의 시대를 종식시킬 진정한 히어로는 없는 것일까. 희수가 간직했던 소박한 꿈을 이뤄줄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크고 작은 폭력 속에 살아가는 '희수'는 여전히 고달프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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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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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소설보다는 고전 중심으로 책을 보려고 노력 중이다. 요즘 책들은 재밌기는 하지만 반짝하고 지나가버리는 유행처럼 허무한 감도 있어 조금은 오래 남을만한, 여기저기서 꼭 읽어봐야 한다는 고전을 많이 보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민음사나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전집의 책들도 유심히 살펴보는데 그 때 눈에 띈 책이 바로 안다아시의 <해부학자>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의학이나 인체에 대한 미스터리 소설처럼 보였으나 소개글을 보니 조금은 다른 분야였다. 뭐랄까... 은밀하면서도 기발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야할 것 같은! 그래서 고전이라면 갖게 되는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식상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은밀한, 음모에 가려진 성기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자극적인 성감대인, 음핵(클리토리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인데,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여튼 이런 은밀하고도 기발한, 신비로우면서도 야사시~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믿음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기대에 못 미쳤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실존했던 해부학자인 마테오 콜롬보는 그의 저서(<해부학에 관해>)를 통해 클리토리스에 대해 적으면서 이를 '비너스의 사랑'이라 이름 붙였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안다아시(저자)는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이 책이 썼다고 한다.

  소설이지만 이런 역사적 펙트까지 더해졌기에 좀 더 치밀하고 사실적일 거라 기대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비교적 근래(1977년)에 쓰인 소설이었지만 등장인물이 단편적이고 동기나 목적이 모호했다.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사건 전개가 너무 빨랐다. 좀더 긴 호흡으로 여성의 마음을, 육체를, 성감대를 기술하고 묘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 섹스의 허무함처럼, 자극적은 부분 이외에는 별로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파트라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향기 하나로 이만큼의 매혹적인 글을 섰는데, 하물며 이런 어마어마한 소재(?)로 이정도 밖에 안 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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