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열린책들 세계문학 163
다니엘 디포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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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빈슨 크루소를 모티브로 한 책이나 드라마가 계속 유행 중이다. 사람의 발자취가 없는 원시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외국 프로그램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오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과 팁을 만화로 풀어쓴 만화 시리즈도 유행했고, 김병만이 주축이 되어 무인도와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해나가는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마치 지구 문명이 멸망하고, 돈으로 해결되는 경제구조가 무너진 영화 속의 상황들이 곧 현실에 닥칠 것처럼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목적 없이 1등만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해서 그런가? 아니면 거품처럼 부풀어진 경제적 환상에 염증을 느껴서인지 모르겠지만, 돈벌이 기계가 되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자연에서 자급하며 살아가는 법을 찾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이런 생존기를 볼 때마다 로빈슨 크루소가 대체 누구냐 하는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의 이름이야 여기저기서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가 어느 책에서 등장했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지했다. 소인국과 대인국을 여행했던 걸리버와 혼동하기도 했고, 급기야 실존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라는 책이 <로빈슨 크루소>(1998)의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소설이라는 소개글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로빈슨의 모험 이야기를 언급하며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풍자한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을 보고, 로빈슨의 삶도 정확히 알아보고, 어떤 게 내용이 바뀌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어 두 권 모두 구입했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부모님을 떠나 더 넓은 사회로 여행을 떠난다. 아니 갑갑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영국행 배에 오른다. 하지만 첫 항해에서 배가 난파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두 번째 항해에서는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지만 탈출에 성공해 브라질에 정착한다. 그는 농장을 꾸리며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방랑벽에 충동적으로 기니로 출발했고, 이 때 만난 폭풍으로 배가 난파되어 홀로 무인도에 버려졌다. 망망대해의 무인도에는 숲과 바다, 하늘뿐이었고, 낮과 밤이 전부였다. 하지만 해안에 밀려온 난파선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면서 자급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그의 무인도 생존기를 보고 있으니 이런 무인도에 홀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푸른 바다와 하얀 해변에서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면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물론 몇 달, 몇 년을 이렇게 '여유롭게'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 며칠만이라도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목적 없이 살아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무인도라는 공간적 낭만보다는 한국, 아니 가족과 직장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719년 출판된 소설답지 않게 로빈슨의 심리상태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놀라웠다.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행동한다지만 늘 충동이 앞서고, 그에 따른 자부심과 후회, 갈등이 혼재한 모습이나, 하나의 결정 뒤에 숨어있는 복잡한 감정 변화가 다채로웠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전 세계에 방영한다는 <투르먼 쇼>에서 짐 캐리가 보여준 것처럼 만족, 분노, 사랑, 질투, 각성 등의 감정변화를 실시간으로 드러난다. 로빈슨의 여행은 감정변화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 앞에선 자신을 책망하며 신을 찾다가도 그 고비를 넘기면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오만함을 반복하는 모습은 이성적이라만 다중적고도 모순적인 우리들의 심리상황을 보는 것 같다. 하루에도 열 천 번도 더 변하는 사람의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변화가 없어 보인다.

 

   특히 신과 야만인에 대한 로빈슨의 태도 변화가 인상적이다. 평소에는 하느님의 존재나 의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폭풍우로 인해 배가 좌초되어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는 그간의 행동을 반성하며 주님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평온함이 익숙해지자 이런 절대자에 대한 믿음도 약해졌다.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마음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을 신께 의지하는 오랜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주변의 위기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의존적인 생명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로빈슨이 표류하고 있는 섬에 찾아와 식인을 하는 야만인들 보고 처음에는 죽여 없애야 할 인류의 적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이 어떤 권리로 그들을 판단하고 처단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면서 자신과 그들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없어져야할 존재들이 아니라 다른 문화 속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들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로빈슨은 목숨만 남은 동물이 되었다가,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되기도, 생각하고 갈등하는 인간이 되기도, 넓은 아량으로 야만인을 용서하는 신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로빈슨의 모험은 육체적 생존을 위한 모험기가 아니라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거쳐 정신적 깨달음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디포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이야기와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섬세한 심리묘사까지 1719년에 출판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롭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오감과 희로애락은 무인도에 갇힌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1)의 확장판을 본 것 같았다.

   이 여세를 몰아 이 책의 리메이크 작인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를 펼친다. 원작과는 이야기가 어떻게 다르고,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다시금 로빈슨과 함께 긴 항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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