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거의 백만 년 만에 읽은 책이다. 이런 저런 핑계와 게으름으로 한번 멀어져버린 책은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음 속 한구석에는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막상 시간이 나면 손은 언제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다시 접하기에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디지털 매체들이 넘쳐났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최근 서울로 출장갈 일이 생겨 들고 간 책이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다. 올 초에 읽다가 덮어둔 단편집이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그 첫 페이지를 넘겼다. 다시 김영하를 만났다.

 

   <오직 두 사람>은 생로병사의 인생사처럼 오르내렸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의 죽음을 계기로 되돌아보는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아버지를 많이 따르고 친했던 현주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 아버지의 애정 속에 가려진 집착을 느끼게 되고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아이를 찾습니다>11년 전 유괴 되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갑자기 되돌아오면서 겪는 이야기다. 아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했던 윤석에게서는 아이를 찾았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을 뿐더러 어디서부터 바로잡아 나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1년 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기다려온 날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면서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두 단편은 모두 혈육이라는 관계 속에 안주하지 못하고 겉도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버지의 절대적인 존재감은 딸의 성장과 독립 앞에서 무력해지고 불안해졌다. 그리고 아들만 찾는다면 모든 행복했던 지난날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가족 내의 존중과 배려 속에 이를 지키고 리드하는 중심이 되었지만, 가족이 소형화되고 외부활동이 많아지고 사회조직이 복잡해짐에 따라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나버린 존재가 되었다. 절대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신의 모습에서 금전출납기처럼 생활비를 토해내야 하는 외부 용역업체 직원처럼 말이다. 미약하게 남아있는 존재감이라도 붙잡아보려는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이런 모습이지 싶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작 그 변화에는 제일 늦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느려터진 무감성의 존재가 된... 아버지.

 

   “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죽겠습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세,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옥수수와 나>는 자신을 옥수수라 여겼던 한 남자의 콩트부터 시작한다. 이 옥수수와 대비되는 박작가는 한때 베스트셀러도 썼지만 지금은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이미 다 써버렸지만 소설은 한 줄도 써내려가질 못했다. 그러던 그가 뉴욕에서 만난 자신이 계약된 출판사 사장의 처와 동거를 시작하면 엄청난 문학적 집중도를 보인다. 한창 자존감이 업 되어 자신을 대견해하고 있을 무렵, 권총을 들고 찾아온 출판사 사장의 게임 같은 협박에 허둥지둥 최근 상황을 설명한다. 문학가로서 최고의 희열을 맞본 그에게 갑자기 죽음이 직면해왔다.

   존재감의 무게에 방황하다 엉뚱하고 이상한 방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깊이에의 강요>(파트라크 쥐스킨트)<변신>(카프카)이 생각난다. 옥수수 같은 하찮은 존재였지만 막상 이를 벗어던지려는 찰나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현실, 혹은 존재의 가벼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내 속의 생각과 주변의 조건에 따라 옥수수가 되기도 했다가 닭이 되기도 하는 모순되고 혼란스런 현실을 에로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 놓았다. 결국 옥수수로 살 것인가, 닭으로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

 

   이밖에도 <인생의 원점>, <슈터>,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이 실려 있다. 재밌게 읽히는 글도 있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문학적 무지와 미흡한 독서에서 오는 이해력 부족이리라. 단편 자체가 열려있는 스토리인데다 특정 부분만 집중해서 부각하다보니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이런 모호함 때문에 더 빛을 발하는 것이 단편소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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