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신년 목표는 '운전하기'인데 지키기 참 어렵다.

 

운전을 처음부터 즐겁게 배우지 못했다는 건 핑계이자 사실이기도 하다.

처음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더디고 저항감이 큰 성격 탓이기도 하다.

 

택시에서 모유수유를 하는데 뒷자리를 흘끔거리며 역시 엄마 젖 운운하는 기사, 담배냄새 쩌든 차 안,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운전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딸아이가 7개월 정도일 때 어린이집에 운전학원 가는 시간 동안 맡기고 힘들게 운전면허를 준비했다.

 

필기를 끝내고 운전석에 처음 앉은 순간부터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평소에 속도 나는 고속 앞자리에만 앉아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기에

범퍼카조차도 운전을 안 하는 나이기에.

낮은 경사의 눈썰매도 아이들 때문에 간신히 타는 처지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장내 연습을 마치고 원주의 어느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는데 라디오를 들으며 건성건성 봐주던 강사분이 눈길을 떼고 나도 라디오 사연에 한귀 판 사이 살짝 가드레일을 받았다. 그때부터 강사가 어찌나 위협적으로 죽을 뻔했다고 화를 내는지 돌아오는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학원에 차량 피해 손해배상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미한 일이었는데 그 강사는 이후 연수에서 내내 그런 태도였다.

 

육아를 시작하며 경력 단절 후 낮아진 자존감 탓으로 그때는 강사가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중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강사를 바꾸어 제대로 수업을 받았더라면 '지갑면허'로 남지는 않았을 텐데.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결혼하기 전에 한참 즐겨보던 작가 작품이라 반가웠다. 더불어 나도 언젠가는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운전을 해야겠다고 또 절실하게 느꼈던 건 아이 친구 엄마와 뒤틀린 관계를 겪고 나서이다.

 

양쪽 다 아빠들이 바쁘고 주말에 쉬지 않는 직업을 가졌고 아들, 딸 구성에 그 아들 딸의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한 3년간은 꽤 자주 주말에 어딘가를 같이 다녔다.

 

나는 나들이에 적당한 장소나 체험활동을 검색하고 간식거리를 종류별로 준비하고, 저녁을 먹을 일이 생기면 비용을 냈다. 그리고 그 엄마는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같이 계곡이며 산으로 다녀서 그 점은 매우 고맙다.

 

평소에도 퇴근이 늦은 아이 친구 엄마를 대신해 가끔은 밥도 차려주고 평일에는 우리집에서 노는 날이 꽤 되었다.

 

그러다 재작년 즈음에 집에 오다가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다.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지만 차량 동승은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제는 내 선에서 거의 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분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상대방이 먼저 태워주겠다고 하는 경우와 동네 5-10분 거리 정도의 차량 동승만 하는 편이다. 당연히 그에 걸맞게 비용도 대는 편이다. 내가 운전을 못하고 안 하기에 태워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감사. 

 

차량 동승 문제말고도 뭔가 내가 마음을 쏟아 해준 것들이 나중에 무성의하게 돌아오는 게 점점 마음이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가의 특성인지 성격 탓인지 그 분은 약속을 모호하게 잡아 우리아이들을 기다리게 하기도 하고, 점점 뜸하게 만나게 된 지금도 갑자기 약속을 잡아 나에게 커피를 사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려고 한다.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사이의 공허를 알면서도 너무 거절하는 건 아닌듯해 내 스케줄을 무시하고 상대 스케줄에 맞추어 주말 오후를 불편하게 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 역시 그집 아이 스케줄에 끌려다니거나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답답했나보다.

 

그분은 친정엄마에게 육아 일정 부분을 의존하고 오래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 자수성가한 분이고 배울 점도 많다. 하지만 점차 뭔가 우리 관계가 또다른 부부 관계같이 되어버려서 어색해졌다. 그분은 유형의 뭔가 큰일(주로 운전)을 하고 나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소소하게 신경이 가는 일? (아니 돈도 꽤 들었다. 간식비, 놀이재료비 등)을 담당하면서 내가 많이 피곤해졌다.  

 

중간중간 학원 시간 비는 사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거나 저녁을 먹고도 좀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대차게 내몰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구도가 오래 나를 불편하게 했다.

 

*

 

60-70년대에는 대다수 주부와 소수의 일하는 여성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 크게 위화감이 없었다. 응팔의 엄마들같이.

 

그런데 이젠 전업맘, 워킹맘이라는 용어로 굳어져서 정서적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

 

특히 전업맘이라는 용어는 정말 생경하고 기형적이다. 

 

그냥 주부는 '전업맘'보다 전적으로 일하지 않나?

 

그리고 주변만 봐도 애들이 고학년이 되면 순수하게 가사만  담당하는 분은 소수이다. 다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집안 간병을 하거나 육아를 한다. 단지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을 뿐이다.

 

 

*

쓰고 나니 엄청 길게 운전을 못 하고 안하는 것에 대한 변이 되어 민망하다.

 

그래도 아이 친구엄마에게 끌려다니거나   

호이가 반복되어 둘리되지 않기(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를 바라며 쓴다.

 

이제는 '초보' 스티커나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도 붙일 시기가 다 지나버렸으니

자꾸 운전할 시기가 늦추어지면

'어르신이 운전하고 있어요'를 붙이게 될 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병원에 혼자 다녀야 할일이 있을 테니

꼭 운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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