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지만 전혀 새해답지 않게 해묵은 감정들로 고생한 며칠이었다.

왜 나의 원가정과 새로 이룬 가족들 다 나를 힘들게 하는지.

 

사실 그들은 그냥 저희대로, 그대로 있는데 내가 과민한 경향도 있다. 요즘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눈물이 갑자기 터질 것 같기도 하고 한숨을 쉬고 있기도 해서 딸이 많이 걱정한다.

 

매일

"엄마, 오늘 기분은 어때? 1부터 10까지 중에서" 이렇게 묻는다.

 

어릴 때 어디가 아프면 내가 물어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딸아이가 되물어온다.

8 정도는 되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해준다.  

 

사실은 요 며칠 4나 3인 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근심에 짓눌려 있다. 

 

계속 가라앉아 있다가 도서관에 읽고 싶었던 새 책이 들어와 잔뜩 빌려서 차분히 보기 시작하니 좀 낫다. 이제야 8 정도로 회복했다.

 

<보통의 존재>는 정말 좋아서 몇 번 봤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고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중반에 너무 읽기 힘들어 포기했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얼핏 검색하니 젊은층에서는 <보통의 존재>보다 별로라고 하지만 난 작가님과 비슷한 속도로 나이들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잘 보았다.

 

작가님이 뮤지션일 때 청춘이어서 같이 음악을 듣고 이제는 같이 중년에 접어들어서 가족 걱정, 건강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어서 어쩐지 뿌듯하다.

 

엄청나게 많은 서표를 붙여가며 읽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늘어가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노력하고 씩씩해지지 않으면 그 무게에 언제고 잠식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일임을.

89쪽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 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123쪽

 

우울하고 어두운 것을 즐기려 해도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암에 걸렸다가 완치된 친구가 혹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이제는 뒤가 궁금한 드라마나 내용이 센 영화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프면서도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었는데 이제는 나도 알겠다. 감정과 자극을 즐긴다는 것도 이렇게 체력이 필요하고 그게 안 되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는 걸. 249쪽

 

나도 그렇다, 이제는 카모메 식당 류의 잔잔한 일본영화나 아이들 애니 정도, 흘러간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살짝 웃는 게 편하다. 몇년 전에 <응답하라 1988> 보면서 감정을 너무 소모했고 최근에 미스터 션샤인도 어떨 때는 버거웠다. 석원 님이 노희경 작가의 라이브 볼 때 힘들었다는 지점에도 공감한다. 형사물이라 사회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고 등장 인물들이 날것의 감정을 분출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이전 작과 비교해서 한층 더 짙은 우울, 출구 없음, 나만 편히 지낸다는 죄책감 등으로 스트레스 받다 드라마 시청 본연의 목적(시간을 편히 잘 흘려보내기)에 어긋나는 듯해서 중도 포기했다.  

 

결국 행복이란 가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작은 게 아니더라. 일상은, 일상의 평화라는 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 만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259쪽

 

아픈 발을 이끌고 산책을 하고 노모에게 살림을 맡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쇠잔한 육체에 큰 부담이 될 듯하다.

 

*

궁금하지만 어쩐지 연락은 하게 되지 않는 친구같은 석원님

 

집안에도 일이 많고 많이 편찮으셨군요.

애쓰셨어요.

너무 노력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세요.

 

 

 

 

 

 

 

 

 

 

 

 

 

 

 

 

 

 

 

 

 

오전에 심각한 얼굴로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를 읽어서 딸을 또 걱정하게 만들었다.

 

역시 아무리 내가 힘들어도 이런 증언은 꼭 들어야 한다.

 

오랜 세월 고통받으신 분의 언어를 이렇게나 잘 번역해내다니.

 

말은 자주 끊기고 맥락이 없지만 그 세월이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인용을 하기 힘들고 다 줄을 쳐야 할 정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아직 다 읽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재기발랄한 아재 감각은 돋보이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내가 책 보는 동안 딸아이는 이 책에 멋진 작품들을 남겼다. 찍어서 올리려다 전송이 귀찮아 그냥 둔다. 확실히 나에게만 의미 있는 예술작품일 테니.

 

 

 

 

 

 

 

 

 

 

 

 

 

 

 

 

 

 

 

스스로 호를 지은 와식(늘 누워 있음) 김선생은 이런 책을 본다. 초등학생이니 나이에 맞는 것을 보면 좋겠고 그래도 줄글로 된 책을 보면 좋겠지만 이제 내 소관이 아니어서 그냥 둔다.

 

*

 

딸아이는 어린이 미사 가고 아들은 쇼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고

저녁 먹을 건 있으니

 

이만 하면 오늘은 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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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19-01-1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이면 정말 괜찮은 거네요. 저도 그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할게요. 잘 지내시죠?

2019-01-12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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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0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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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0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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