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는 유난히 마음이 상하고 몸이 지치는 그런 연휴였다. 

 

명절 직후에 육아커뮤니티 들어가면 다들 시,시,시와 무심한 남편, 짜증내고 아픈 아이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에게도 명절 직후면 펑 사연(답답해서 말할 곳이 없어 적었다가 부끄러워 나중에는 폭파하는 글) 가득이다. 특별히 막장이거나 나쁜? 시가와 식구들은 아니지만 명절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일단 명절 스트레스는 물리적으로는 먼거리 이동과 좁은 공간에서 여러 세대가 갑자기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 필요 이상의 무의미한 가사노동(무한 음식 공급)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상당수가 감정 노동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시가와 시가 친척들이 밀집해 살고 나의 본가는 멀다는 이유로 항상 안 가게 된다. 이건 내가 배우자와 아이들 고생하는 게 싫어 내 스스로 명절에는 나만 가는 걸로 해두어 큰 불만은 없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미묘한 분위기 조성으로 일정 마치고도 다른 친척집 방문 코스가 하나 있어서 짜증이 났다. 나만 모르는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고 시가 쪽 어른이 뭔가를 준비하고 내가 도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친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 어색한 대화가 이어진다. 몇 년만에 만나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함부로 묻고 재단하면 그게 반가울까. 맥락없이 결혼은, 취직은?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갑자기 본인 차만 따라오면 된다고 먼저 출발해버리는 데 어버버하다가 가게 되었는데 이게 나의 결정적 실수였다.

 

같은 지역인데 얼굴 비추는 게 뭐가 어렵냐고는 하지만 아이도 짜증이 나서 툴툴거리고 나도 화가 난 상태로 그쪽 분위기 맞추느라 결국 저녁에는 터졌다.

 

오래 대화를 나누어보니 결국 모두가 바라는 건 온전한 '쉼'이었다.

 

구습은 자꾸 폐지되어 김영란 법도 생긴 마당에 왜 명절은 없애지 않는 걸까.

 

대규모 이동으로 인한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명절이나 여름휴가 집중을 없애고 연중 개인이 휴가를 자유로이 선택하게끔 바꾸면 명절 스트레스는 한결 덜할 텐데. 명절로 쉬는 날보다 두세 배쯤은 많은 개인 휴가를 자유로이 쓰게끔 하면 더 좋고.

 

내 얘기를 듣고 누군가는 노년층이 크게 반대할 것이라 한다.  

그나마 '명절'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어야 오지 명절을 없애면 아예 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자녀들이 찾아오고 싶지 않게 만든 역사가 있지 않을까.

의무만이 남은 관계.

할많하않

 

얘기하다보면

 

너도 늙어보라는 이야기만 들을듯

 

**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보면 양가 부모 도움으로 결혼한 경우 최대주주인 부모들이 여전히 결혼생활에 대해 지분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부분이 있다.

 

나의 경우는 어머님은 크게 지분을 행사하지 않는데 늘 지분을 행사하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가족, 친족의 의미가 핵가족과 양가 부모로 한정된 지 꽤 되었는데도 명절이면 여기저기 인사 가고 선물 돌리고 자신과 집안이 잘 되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내가 불편해지는 지점에서 싸워야 하는데 오래도록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건 남이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게 아니었다.

 

우리집의 경우는 경제적 지분보다는 심리적인 죄책감을 자극하는 식으로 내 일상을 파고든다는 게 큰 문제다.

 

사회정의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나 좀 더 이기적이어도 된다.

 

그리고 내 아이는 누구의 아들, '장손'의 짐을 지고 무겁게 살지 말고 한 개인으로 시민으로 가볍고 행복하게 잘 커가면 좋겠다.

 

 

*

 

추석 전 주말에는 나의 본가인 경기도에 다녀오려고 기차를 타고 혼자 갔다. 가면서 <파과>를 읽었다. 노년에 이른 여성 청부살인업자 이야기라니 무슨 사연일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의지가지 없는 '조각'의 황폐한 삶,

조각은 나이와 성별로 인한 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다 읽어낼 이동시간인데 이번에는 자리 운이 꽝이어서 다 못 봤다. 

옆에서는 어떤 여자애가 계속 통화하고 뒤에서는 아이가 패드를 보며 발로 차대는 통에 책도 못보고 잠도 못 잤다.

 

<파과> 진짜 집중해서 봐야 하는데 ㅜ.ㅠ

 

낯선 단어도 꽤 보인다.

 

내가 모르는 건지 단어 하나하나 고르고 골라서 공들여 쓰신 것인지.

후훗.

후자쪽이라고 우기고 싶다.  

 

'조각'의 일상,

 

뭉그러질 대로 뭉그러진 조각의 삶은 냉장고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과육과도 닮아 있다. 언제 둔지도 모르고 방치했다가 못 쓰게 되어버린.

 

나도 내 자신을 방치하고 아무 데나 놓아두면 결국에 으스러질 것이다.

 

항상 내가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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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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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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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1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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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0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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