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에 우리 아파트 앞동에서 불이 났다.

새벽 2시경인가 남자 고함치는 소리와 여자 우는 소리가 들려서 어인 일인가 봤더니 소방차가 네다섯 댄가 오고 앞동 10층 창문에 불길과 연기가 보였다.

 

우리 베란다에도 탄 냄새 가득하고 나가보니 월드컵 열기 때와 같이 다들 진짜 불구경 중

 

강건너 불구경이라는 속담을 몸소 체험했다.

누군가에게 큰 사고이지만 멀리 떨어져서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소방관 아저씨가 위험하고 작업에 방해가 된다 방송해도 계속 동마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보고 애들이 깰까보니 딸이 창문 밖으로 번쩍거리는 경광등 불빛에 깨서 다독여 다시 재웠다.

 

오가며 얼굴만 보는 젊은 아빠가 말갛게 잠든 아이를 안고 나와 왜 불이 났는지 설명해 주는 아줌마의 말을 경청하고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돌아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이십몇 개월의 아가로 추정되는데 저런 아이를 안아재우는 아빠라면 평소에도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게 분명하다.

 

남자는 잠시만 시간을 쪼개 육아에 참여해도 훌륭한 아빠라 칭송받지만 엄마는 잠시라도 육아에 소홀해 보이면 비난받는다.

 

부부가 함께 리조트에 놀러가 아이가 사고를 당해도 엄마는 아이 안 보고 뭐했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비난 전에 사고를 당한 데에 대한 위로가 앞서야 하는데도 리조트에서 지 애를 안 보고 리조트에 소송거는 민폐 부부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비난하기 바쁘다)

 

중년에서 젊은 층이 이용하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최근에 눈팅하면서 한숨 나오고 화나는 것도 많았는데 별 도리가 없었다.

 

현실세계에서 바삐 일하고 애들 건사하며 사는데 일일이 싸울 수도 없었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육아에 에너지를 더 쓰다보니 맘충이란 용어와 싸우는 걸 점차 포기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 정도 되어서야 겨우 책 제대로 볼 여가가 생긴 듯하다.

요즘은 평일에도 각자 놀고, 주말에 같이 도서관에 가기도 하니 특히 각자의 서가로 향할 수 있어 큰 축복이다.

 

최승범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와 <며느라기>를 주말에 보았다.

 

최승범 책은 큰 기대는 없었는데 대중서로 잘 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남자이기 때문에 가부장제 하에서는 더 누릴 수 있는 위치인데도 엄마나 부인의 위치를 살피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부분이 없는지 고민하는 모습에 일단 안심이 된다. 남자들의 페미니즘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IMF를 전후해서 태어나 저성장-양극화 사회에서 줄곧 살아왔다. 신자유주의 경향을 고스란히 받아 일찍부터 경쟁을 내면화했다. 불투명한 미래와 곳곳에 도사린 위험은 실용주의자를 양산했다. 청소년기에 일베 문화를 접했고, 혐오코드가 점령한 채팅창과 댓글밭에서 놀았다. '코알라' '슨상님' 같은 일베 용어에 친숙하고 전라도 비하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조롱은 또래 사회의 친목 활동이었다. 10년 전보다 10년 늙었다. (중략)

 미디어는 '알파걸' 열풍을 다뤘고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치인다'고 했다. 한창 게임할 나이에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여성가족부는 없어져야 한다는 원초적 소명 의식을 정착했다. (중략) 성장 과정 내내 눈에 담아온 세상에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 없다. 남동생 공부시키려고 누나가 공장에 간 서사는 신분제도만큼 낯설고 조선시대만큼 먼 이야기이다.

  이십대의 보수성은 이념이나 지향보다는 생존전략에 가깝다. 잃은 것이 없으면 변혁적인 사고를 할 것 같지만, 현실이 조금만 달라져도 생존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140-142쪽

 

10대를 가르치는 저자는 남학생들의 싸늘한 눈초리와 비웃음을 감수하면서  꿋꿋하게 양성평등 교육을 실천하고 계신다. 이미 머리가 굳은 20대 남성보다는 유연한 사고를 할 가능성이 더 보이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려 하신다.

 

온라인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유한 일부 세력들(직업, 가사노동에서 자유롭고 커뮤니티에 대한 충성도가 강함)이 온라인 여론을 이끈다. 끝없이 새로운 용어 김치녀, 맘충, 개념녀 등을 생산하며 다른 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종합해보면 '개념녀'는 모든 방면에서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태도를 지녔지만 경제관념만은 현대적이고 평등을 지향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념녀'는 남성이 유리한 지점은 그대로 유지하고 불리한 부분까지 유리하게 바꾸겠다는, 남성들의 무지한 욕망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치적인 용어다. 127쪽

 

예를 들면 <며느라기>의 민사린같이 외국 출장을 수시로 갈 정도로 능력 있는 여성이지만 시부모 생일이면 손수 상을 차리고 하다못해 시부모님 그들끼리 챙겨야 하는 시부모의 결혼기념일도 챙기고 각종 대소사에 참여해 다소 무뚝뚝한 자신을 대신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이런 개념녀에 부합하는 것이다.

 

연애시절에는 내 호주머니 사정을 걱정해 더치페이하기를 원하면서도(기계적으로 절반이 아닌 서로의 형편에 따른 합의에 맞게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 여자가 먼저 취직해 더 많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가끔은 떡 벌어지게 피크닉 도시락 정도는 뚝딱 만들어내야 개념녀이자 자랑스런 여자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동안 나도 페미니즘 공부하는 걸 멈추었는데

이제 다시 출산, 경력단절, 양육, 저임금이라는 현실 위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보아야겠다.

 

결정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느낀 것이 성당을 아이들과 다시 다니면서이다.

 

성당 첫영성체 부모 교리반에는 직장 다니는 엄마, 그렇지 않은 엄마들(다양한 사정이 있음)이 섞여 있고 선생님은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분이다. 늘 선생님은 직장 나가면 할 수 없지만 집에만 있는 엄마들은 평일미사도 자주 나오고 평소에도 이런 말씀을 하셔서 가끔 불편하기는 했었다. 평일에 전업 엄마라고 해도 어느때고 시간이 날 수 있는 게 아니고, 평일 미사 참여 문제는 각자의 신앙, 모종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간단한 다과 준비를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에게 부탁하셨는데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동의해서 하다가 어느 순간 기쁘지 않았다.

 

8-9시라는 늦은 저녁시간에 이루어지는데 모임에서 나온 식기류를 설거지하고 자리 정돈하다보면 9시 반이 넘어가버린다. 아이들이 초등고학년이지만 남편이 집에 없을 때가 많아 늘 마음이 불편했다.

 

컵이 인원 수만큼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몇 개가 되든 치우고는 가야 한다. 대개 남이 설거지할 것이 불편해 안 드시는 분이 상당수 있어 나온 현상이다.

 

이런 문제가 마음에 걸려 선생님께 각자 개인컵을 가져와 마시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는데 엄마들(특히 직장다니는 엄마들)은 동의하셨는데 졸지에 나만 공동체의 나눔 정신을 모르는 사람으로 선생님께 말씀 좀 들었다.  

 

이렇게 한순간 눈총은 받았지만 그래도 일단 말하고 나니 내가 덜 불편하다. 

 

학교 녹색어머니 봉사 문제와도 비슷하다.

이건 언제 따로 써봐야겠다.

 

직장 다니는 엄마는 워킹맘이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는?

 

겉으로는 전업이어도 속내는 다양하다.

 

프리랜서도 있고 계약직도 있고 시댁 가업을 돕는 분도 있고 미취학아이, 아픈 아이나 노인을 돌보아야는 분도 있어 온전하게 쉬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전업'이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집에서 놀고 쉬는 부류로 낙인 찍는다.

 

요새는 주부만 많이 모인 사이트에서도 전업 엄마들은 전업인데 어린이집 보내도 될까요? 전업인데 가사도우미 써도 되나요? 같은 질문을 자꾸 올린다.

 

자신과 가정이 결정할 문제를 자꾸 사회의 용인을 받으려 든다.

 

결정적으로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를 남에게 맡기려 든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이제는 자아 실현?이라는 걸 해보려 하지만

이미 실현할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다.

 

아니,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아 실현이 아니라 생계 혹은 가족의 더 나은 삶?(치솟는 물가와 가중한 사교육비)을 위해 저임금  단순노동에 내몰려야 하는 것이  전업주부의 현실이다.

 

(경력 단절 없이 쭉 일해온 여성이나 남편은 그간 자아 실현이 아니라 단지 생계를 위해 쭉 일해왔다고 엄살 떨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여성들의 결혼 전후 취업 현실과 출산과 보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경력 단절이 잦아지는 것에 대해 논의할 문제이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따로 남편이나, 직장 다니는 이웃엄마에게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개인적인 불편함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져서) 

 

또한 인스타에 보이는 브런치를 즐기며 문화센터나 전전하는 팔자 좋아 ? 보이는 부류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함부로 말할 문제는 아니다.

 

뭐라뭐라고들 하는데 사실 부러워서이다. 그런데 또 속내를 알고 보면 크게 부러워할 것도 없다.

 

카스 프로필에 남편 병원 전경을 올리는 분들을 몇 분 아는데 하루 지내는 거 보니 별다를 것도 없더라. 미취학 아이 육아, 노부모 간병 등

 

물론 가는 여행지, 식당 정도가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계급 차이, 훗. 이게 크다.

팔자 좋은 부류? 이건 계급에 여성 문제가 얽힌 사례이다.

공부를 더 해서 정제된 말로 풀어보고 싶다.

 

 

이렇게 정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20년도 전에 배운 모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실감나는 요즘이다.

 

내가 덜 불편해지는 지점

여기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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