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관련해 사고가 났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으면 누구나 내 아이가 얼마나 다쳤나, 하고 염려부터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꿈에라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면 내 아이와 내 인생은?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짚어보고 자책도 해보아도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침묵을 삼킨 소년>은 읽었고 나머지 두 책은 모임에서 소개받은 책들이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 책을 한동안 읽다보니 으스스했고, 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무겁고 힘들게만 여겨졌다.

 

미야베 미유키도 그렇고 다른 일본 작가들도 그렇고 결국 끔찍한 범죄 뒤에 (엄마) 양육의 부재와 학교 폭력, 소년 범죄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 인생은 아이 기질+양육+학교, 사회 환경이 아닐까? 하는 결론으로 모아졌다.

 

엄마에게만 양육의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건 너무 간편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그리고 특히 청소년기에 친구나 환경의 영향이 크고 충동적이기 쉬울 때 아이의 근간에 자리잡은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게 아닐까, 하는 다소 교과서적인 정리를 했다.

 

요즘 아들이 사춘기라 고민이 많은데 어느 정도는 내 손을 떠나간 일이고 이제 아이가 책임질 부분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이 성적표가 내 인생 성적표도 아니고 아이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으니 큰 기대도 실망도 금물.

 

미취학 초등 초중학년기 지나 고학년에 이르니 어느 정도 아이 현재 위치가 보인다.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지표들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켜봐야지.

 

하지만 꼬꼬마 영유아기부터 하다못해 머리둘레, 키, 몸무게나 걷고 기저귀 떼고? 말하는 개월 수 따위에 집착하던 중생이라 뭐 온전히 마음을 비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ㅋ

 

 

 

 

 

 

 

 

 

 

 

 

 

 

 

 

한동안 아니 요즘도 '자존감' 영업은 꾸준하다.

 

그나마 수많은 '자존감' 관련 서적 중에서 나은 책들.

 

오랫동안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에 대해 연구해왔다. 지금까지 내려진 큰 결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자존감만을 상승시키려는 시도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듯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자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것(자기 자비)이나 자신을 판단해 버릇하지 않는 것(마음 챙김)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7쪽>  

 

즉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강한 자존감의 소유자들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삶이 괜찮은 게 아니라, 삶이 이미 어느 정도 괜찮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거라는 얘기다. 높은 자존감 덕분에 연봉이 높고 인간 관계가 좋은 게 아니라, 이미 그럭저럭 성공해왔고 인간관계도 잘 되어왔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자존감이 높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30쪽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너그러움이야말로 높거나 낮은 자존감이 갖는 단점은 없으면서 장점은 가지고 있는 높거나 낮지만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의 아주 좋은 대안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자존감에 상처가 났을 경우 너그러움이 좋은 해결책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진정한 자존감 또는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 84쪽

 

만약 시험 준비 중이라거나 큰일을 앞둔 경우 거울을 보며 난 괜찮은 사람이야, 하고 주문을 걸고 무리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매일 할 수 있는 분량의 목표를 정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자기 마음을 챙겨가며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 기준에 부합할 때만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게 여겨지는 상태에서도 자신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의 감정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비교가 아니라 기준이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199쪽>

 

자존감을 정상화시키는 첫걸음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207쪽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라서 나 혼자 이 정도면 괜찮다고 정신 승리하는 게 있을 수 없다. 지금같이 사회, 공동체 대다수가 외모나 연봉, 사회적 위치 등으로 끝없이 개인의 자존을 깎아내리려는 세태 속에서는 아이들이나 우리나 제대로 성장하고 나아갈 수 없다.

 

아이들이 유아 초등을 거치면서 계속 외모나 성취에 대한 발언을 듣고 하는 요즘,

그래서 고민이 많다.

 

나 혼자 아무리 우리 왕자님, 공주님 우쭈쭈하면서 키워놓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역시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닌 립서비스나 빈말 정도는 구분하게 되면서 칭찬의 기술이 부족해 늘 어렵다.

 

특히 외모에 대한 칭찬은 고만해야겠다.

생각보다 냉철한 두 아이들, 엄마 진짜 엄마 눈에만 그래.

 

 

 

 

 

 

 

 

 

 

 

 

 

 

 

 

 

 

생각보다 자존감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

 

<베를린 일기>에 이어 꽈배기 시리즈는 한동안 애들이랑 나다니면서도 잘 읽었다.

<고민과 소설가>는 살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다.

 

<꽈배기의 맛> 홍상수 얘기에 공감하며 크게 웃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는' 이야기들에 예술적 미학적 가치를 입히고 그렇게 추어올려줘야 했나 싶다.

과거에 씨네 21 정기구독하며 혼자 열내던 일들이 그냥 다 뭔가 싶다.

 

김기덕 사단도 마찬가지.

그 아까운 시간들에 뭐하러 힘든 영화 보며 고뇌하며 살았던가.

 

<꽈배기의 멋>에 나오는 릭 애슬리 이야기도 대공감.

 

역시 거의 동시대를 거쳐오며 아재력, 이모력 충만한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어갈 것이고 그 이상이나 이하라면 이게 책이 되나 싶을 것이다.

 

꽈배기나 도너츠는 다른 베이커리 류에 비하면 하급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래도 허기를 채우고 간단한 요기하는 데는 그만이다. 뭔가 책은 보고 싶은데 무거워지는 건 싫을 때 추천.

 

 

아래 책들도 놀이터용

 

 

 

 

 

 

 

 

 

 

 

 

 

 

 

 

 

 

 

<거의 정반대의 행복>은 거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계속 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인데 결국 봤다.

 

미취학 영유아 꼬꼬마 시기를 한참 넘기고 나서 육아 이야기 듣는 건 민방위도 졸업한 아저씨가 군대 이야기 듣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힘든 건 아는데 아 뭐 다 그럴 때야 하고 웃으며 등두드려주게 되거나 아 나 때는 말도 말아 더 힘들었어, 난 왜건도 없이 두 아이를 다 길렀다고. ㅋ

 

난다 님 이야기 중에 자신은 육아를 2인3각 경기라 여기고 남편은 계주, 즉 바통을 터치하는 걸로 생각한다는 데 공감이 갔다. 아내들은 힘든 상황에서 조금은 효율이 떨어져도 함께 겪기를 원하고 남편들은 번갈아 순번을 정해 하기를 원한다. 물론 남편, 아내 성향이 반대인 경우도 있다.

 

시호 자랑, 전지적 고슴도치 시점이 거의 책의 3분의 2이긴 하지만 육아하는 젊은 엄마에 대한 사회의 관대하지 않은 시선,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만했다.

 

아직 '맘충' 소리 나오기 이전에 아이들 꼬꼬마 시기가 지나갔고 특히 그 시기를 시골에서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요새 마구마구 든다. 광주나 근교도 요새 조금 갈 만한 식당이나 카페는 다 노키즈존이다.

 

우리 애들은 초등 고학년인데도 그런 카페에 못 간다. 진짜 딴건 몰라도 같이 조용히 책볼 수 있는데 ㅜ.ㅠ 같이 근교에서 경치 보며 책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유병재 책은 익히 보았던 SNS 모음.

아들이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유병재 유규선 토마토 랩을 보고 뒤로 넘어가며 웃어서 같이 보다가 역시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뺏었다.

 

'딸 같아서 딸 치려고' 이게 무슨 뜻이야. 진짜 몰라서 묻는 거겠지

어리숙한 5학년이라 그런지 아직은 성에 무지하다.

 

아니면 내가 어리숙한 걸 수도 있을까.

요즘 하도 방문을 잠가서 단도직입적으로 영상 보냐고 묻기도 했는데 알 수가 없으니.

 

이런 책이라도 차차 봐주어야 하나 싶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딸 같아서 추행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하는 행태가 사라질 수 있을까.

 

다 쓰고 나니 전형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른 페이퍼네.

 

잔걱정 많고 자존감 낮은 엄마는 *'짜잔한' (저자들에게는 죄송스러운 표현이지만 상황이 그렇다고요. 공원에서 애들 수발들며, 혹은 밥하며 혹은 수업 가며 이동 중이거나 틈새에 읽기 편하다는)  책들에  기대 무더위와 미세먼지 가득한 이 시기를 나고 있다는 것일뿐.

 

 

*'짜잔하다'도 내가 이런 상황에서 쓰니 뭔가 전라도 스웩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 '짜잔하다=못나다'라고는 나오지만 막 정겹게 못난 그런 느낌이다.

자매품으로 '귄있다' 역시 못생긴 건데 진짜 매력있고 끌리고 그런 상황이라 한다.

 

귄있다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귀인있다로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 했었다.

 

참, 스웩 뜻을 찾아보니 셰익스피어가 <한여름밤의 꿈>에서 먼저 썼다고 한다.

 

오늘은 빌려온 이 책도 좀 보고

1권이 겨우 들어온 <안나 카레니나>도 보련다.

 

 

 

 

 

 

 

 

 

 

 

 

 

 

 

그나저나 도서관 미스터리

 

고전 시리즈는 1권만 늘 대출중인 게 진짜 미스터리.

 

그래도 언젠가는 고전들도 차차 읽어나갈 수 있다는 큰 꿈을 품고

신새벽의 페이퍼를 마감하고 아침을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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