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평점 :
SF 작가로만 알고 있던 어슐러 르 귄이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글쓰기 관련 책을 출간했다고 해서 궁금해서 픽! 잠깐잠깐, 책 날개 작가 소개를 보니 세상에 1929년생! 2018년에 88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고 한다. 이 책은 1998년에 낸 책의 개정판. 80세가 넘어서도 글쓰기 워크샵을 진행했다고 하니 대단하심. 사실 이 책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작가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관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은 '이미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서사 산문 작가'를 위한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미있고 짧은 서평만이 유일한 글쓰기인 나에게도 작가들의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살짝 엿볼 기회가 되었다. 특히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여기서 기본이란 문법, 시제,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5장에서 지적한 과도한 형용사와 부사 사용에 대한 부분은 모든 글쓰기에도 적용될만한 조언인데, 너무 마음에 와닿아 인용해본다.
우리는 자라면서 공격적인 대화가 좋지 않다고 배웠기 때문에 단어를 부드럽거나 약하게 만들어주는 '좀', '약간' 같은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대화에서는 그래도 좋다. 그러나 산문에서 그런 수식어는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와 같다. 보는 즉시 잡아내야 한다. 또 내가 성가셔하는 수식어로는 '어느 정도', 다소', '그냥'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가 있다.
본문 p82-83
위에서 언급한 진드기 같은 수식어는 아마도 서평 쓸 때마다 하나 이상씩 사용했던 것 같은데..바로 잡아내어 없애야 하는 진드기라니.. 헐..앞으로 이런 '진드기' 같은 수식어를 쓸 때마다 잠깐 멈춤! 하게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이야기를 하는 화자, 그러니까 '시점'에 관한 부분도 독자의 입장에서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가끔 비일관적인 시점이나 시점이 자연스럽지 않게 변화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어 시점을 선택하거나 시점을 변경할 때 작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끄덕끄덕.
이 책의 볼거리 중 가장 최고는 저자가 인용한 작품들이다. 각 장에서 언급하는 주제에 맞는 잘 쓰인 예문을 기존 책에서 가져온 것인데, 대부분이 고전작품들이다. 이미 읽은 책들이라고 해도 인용된 대목에서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는데, 다시 한 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저자의 글들이 작품들의 원래 언어를 두고 이야기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번역본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 작품들의 훌륭한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있다. 어떤 부분은 영어를 그대로 옮겨 이해하기가 수월했지만 대부분이 원어가 없이 번역글로만 되어있어 쉽지 않았다. 예문이 원어와 번역어 두가지 모두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