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기 전날밤, 짐을 챙기다가 마침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라는 게 생각나 부랴부랴 분리수거할 것들을 챙겼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는 것이니 핸드폰은 두고 갔다. 엄마, 분리수거 하고 올게, 말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 뒤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얼마 안내려가 덜컹, 멈춰버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의 숫자는 1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시꺼먼 벽이었다. 아마도 층과 층 사이에 걸려 멈춘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도 없는데..

일단 엘리베이터의 비상벨을 눌렀는데 경비아저씨가 응답하셨다. 제가 지금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 핸드폰도 없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경비아저씨는 급히 119에 연락하겠다 하시며 응답을 끊으셨다. 그리고는 또다른 사람에게 연결이 되었는데 엘리베이터 업체인지 어디인지 모르겠더라. 보이는 일련번호를 일러달라 얘기하길래 이게 맞냐며 보이는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갇혀있다고 이 사람에게도 알렸다. 잠시후 경비아저씨로부터 비상벨로 연락이 왔다. 119 불렀으니 곧 올거에요, 당황하지 마세요 곧 올거에요, 라고 말씀하셨다. 알겠다고 답한 뒤에 '엄마한테 말해달라 할까' 하다가, 그건 좀 더 기다려보자 생각했다. 엄마가 발 동동구르고 걱정할 게 눈여 보여서.

119에 신고를 했고 올거라 했으니 나는 그분들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또 내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걸 의심하진 않았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를 몰라, 그건 좀 답답했다. 금세 오겠지, 내가 살아나가는 건 너무 자명한 사실이야, 그치만 언제? 오는 건 금세라 해도 만약 이 문을 여는 게 시간이 걸린다면...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오기 전에 화장실 갔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 만약 하염없이 지체되는데 내가 화장실이 급하다면... 아아 너무 끔찍한 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바깥이 웅성웅성했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서 왔으니 걱정말라고 안에 몇 명 있느냐고 물었다. 한 명이요, 저 혼자에요! 말했다. 잠시후 어렴풋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가 맞나? 나는 크게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응, 엄마 여기있어!"

하는데, 그 때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여기있다고 말하는 순간 찡- 하는 게.. 야, 내가 나이가 몇인데, 다 큰 여자는 울지 않아. 곧 119 구급대원 분들이 나를 꺼내줄텐데 다 큰 여자가 거기서 울고 있으면 안된다, 눈물을 삼켰다. 엘리베이터 회사가 어떻게 돼요? 바깥에서 누군가 물었는데 쉽게 눈에 띄질 않더라. 그러다가 긴 영어를 보고 이건가 싶었을 때 바깥에서 혹시 ***** 에요?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을 웅성웅성 부스럭부스럭 문을 여는 조치가 취해지는 것 같더니 드디어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는데,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게끔 엘리베이터와 바닥 사이에는 거리가 좀 있었다. 좀 아찔했어. 이걸 그냥 걸어나갈 수도 없고, 내가 신고 있는 건 쪼리인데.. 폴짝 뛰어야 하나..망설이면서 이 재활용 쓰레기들을 들고 뛰어야 하나 갈팡질팡 하는데, 구급대원 분들이 '사람 먼저 나와야 돼요, 사람 먼저' 이러면서 양쪽에 서시더니 자신들의 손을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두 분의 손을 양쪽에 잡고 폴짝 뛰어내려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나와서는 연신 감사하다며 그 분들에게 인사했고, 엄마도 옆에서 덩달아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셨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임무를 마치기 위해 재활용을 하려 가려는데, 밖에서 이 과정을 기다리고 계시던 주민분들이 놀랐을텐데 청심환이라도 먹으라고 하더라. 나는 괜찮아요, 엄마 분리수거 하고 올게~ 하고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분리수거를 했는데, 집에 돌아와 침대에 앉으니 손이 덜덜덜 떨렸다.

여름 휴가로 지난 8월에 뉴욕에 갔을 때에는 시카고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었다. 시카고와 뉴욕의 거리를 알지 못하는 엄마는 아아 미국이라는데, 미국가 있는 딸을 걱정하셨다. 뉴욕과 시카고가 거리가 있다한들 나였어도 그곳에 있을 누군가를 걱정했을 터.

이번에 엘리베이터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위험들이 어떻게 나를 빗겨가고 또 어떤 위험들이 나를 찾아드는걸까, 에 대해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사고처럼 나는 다른 어떤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한편 내 삶은 언제 어디서 끝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생각을 했고. 내가 금세 나갈것 같으니 걱정하지 않게끔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말자고 생각한 건 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와서 나를 꺼내줄 거라는 걸 확신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의 운명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위험들이 이 순간에도 나를 빗겨가고 있지만 또 어떤 것들이 나를 찾아들지도 몰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즐겁게, 신나게 사는 것 말고도 무언가 더 해야하지 않을까. 살아있는 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향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들도 필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더 마음껏 표현해야지, 라는 생각.

한 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답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힘껏.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게끔 사랑해야지.





















뉴욕에 머무르던 그 때, 같이 갔던 동행과 총기 사고에 대해 얘기했었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 총기사고의 용의자들 뿐만이 아닐텐데, 차별과 억압을 더 크게 느끼는 건 여자들이 강할텐데, 그런데 왜 총기사고를 저질렀다는 여자는 좀처럼 없을까? 총기 소유가 허가된 나라에서 사는 건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인데, 이민자나 히스패닉으로부터 자신들이 무언가 뺏긴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도 남자만 하는 건 아닐텐데. 남자로부터 억압당한다는 생각을 여자도 하고 있는데 왜 여자로부터 무시당한다고 남자들은 여자를 죽일까? 왜 같은 나라에서 살면서 총기사고를 저지르는 건 다 남자인걸까, 에 대해 동행과 의문을 가졌던거다. 시카고에 총기사고 있었다고 우리 가족들이 나 걱정했네, 라고 동행과 얘기하면서, 그런데 왜 총기사고는 항상 남자들이 일으키는걸까,하니 동행 역시 '그러게, 항상 남자들이었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사인을 읽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






빗겨가는 것들이 있고 닥쳐오는 것들이 있다지만, 변화가 온다면 막을 수 있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변화를 가져오는 건 묻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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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9-1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는데 마음이 콩닥콩닥했어요.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지만 실제로 닥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것 같아요. 무사하시니 정말정말 다행이에요.
휴우~~~~~~~~~~~~~~~~~~~~

다락방 2019-09-16 14:00   좋아요 0 | URL
네 언제 올지에 대해서만 모르고 있었지 누군가 와서 꺼내줄거라는 확신은 있었어요. 그래도 그 짧은 순간 엄마 생각 참 많이 났고요,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 목소리 들으니 눈물이..

그런 한편, 나는 어른이어서 괜찮은데 만약 아이 혼자였다면 이 상황을 어떡하나, 싶어서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세상 도처에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니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하게 살아야겠어요, 단발머리님.

2019-09-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6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9-09-17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놀라셨겠어요....와중에 분리수거까지 ㅠㅠ 현재에 충실! 그럴게요.

다락방 2019-09-17 07:35   좋아요 0 | URL
여러가지 생각들이 뒤죽박죽 오갔지만 어쨌든 그 일은 지나갔네요, 그렇게혜윰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감은빛 2019-09-1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놀라셨을텐데, 침착하게 잘 계셨네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갇힐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아, 정전이 나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람을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혹은 정전이라 고층에 사는 사람들이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나저나 역시 다락방님은 저런 순간들을 잘 살려서 멋진 글을 선사해주시네요.
늘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9-17 11:29   좋아요 0 | URL
저는 다 큰 어른이고 게다가 평소에 휴대폰도 가지고 다니니까 크게 위험하지 않고 상황에 대처도 할 수 있는데요, 아이들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너무 아찔한거에요. 휴..
아이들은 무서워서 트라우마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죠.
엘리베이터를 고장나지 않게 만들 수는 없는걸까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하루 사는 게 위험과 맞서 싸우는 일 같다 여겨집니다.

아니, 저는 별 거 아닌 글을 썼는데 저기 비밀글님도 그렇고 글 칭찬 해주시네요. 좋으다 ㅋㅋㅋㅋㅋ
 

여행을 반복하다보니 나만의 취향이 생겼다. 그 안에서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코스가 있고, 그 코스를 위해 여행을 한다고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관광지를 둘러보았고 유명하다는 맛집엘 갔었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 해보지도 않고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 그 곳의 거리를 무작정 걷는 편을 선호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는 편을 더 좋아했고. 그러다 최근에 생긴 취향은 낯선 도시의 미술관에 가는 것이었다. 그림을 잘 볼 줄 모르는 나의 눈을 그림 좀 볼 줄 아는 눈으로 키워보자, 는 생각으로 미술관에 가기 시작했는데, 웬걸, 그림을 보는 눈이 길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확고한 취향만 확인하게 되더라. 좋은 그림은 더 좋아지고 그렇지 않은 그림에 대해서라면 여전히 무심해지는 것. 그렇다해도 낯선 도시의 미술관에 들러 그 곳에 전시된 그림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미술관 내의 까페에 앉아 그 후의 시간을 즐기는 것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코스중 하나가 되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기대할만큼 내가 여행에서 참 좋아하는 시간. 그 시간은 혼자여도 좋았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았다. 나는 그 시간을 매우 사랑한다. 이번 방콕에서도 그런 시간을 가졌다.


자, 미술관에 가보자, 그렇다면 어느 미술관에 가보면 좋을까, 해서 친구와 나는 호텔에 앉아 방콕 미술관을 넣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 선택하게 된 것이 <Museum of Contemporary Art> 현대미술관 이었다. 방콕에서도 외곽에 있는지라 BTS 도 닿지 않고, 기차나 차를 타고 가야했다. 친구와 나는 그랩을 불러 그 곳에 닿았다. 도착하니 가방은 매표소에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친구와 나는 핸드폰만 챙겨서는 표를 끊고 입장했다.



1층에는 까페와 기념품 가게가 있고 2층부터 전시가 시작됐다. 2층에 가니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작품은 <Father's Path> 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그림이 참 좋아서 친구와 이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좋다, 좋으네, 하면서 '이 그림 엽서로 있으면 잔뜩 사야지' 했는데, 관람을 마치고 기념품샵에 도착하니 이 그림의 엽서는 없었다. 서운해..





2층의 그림중에 좋은 것들이 있어서 와 여기 오길 잘했어, 이 미술관 크고 작품도 많아, 이러면서 친구랑 한껏 신나하고 있었는데, 4층과 5층에 걸쳐 내 취향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작품들이 등장해서 아아 이게 뭐야... 하게 됐다. 아주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태국 고유의 종교나 신화와 관계있는 작품들인 것 같았다. 그런 그림들이니만큼 그곳의 종교와 상관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그래서인지 사실 좀 무섭게 느껴져서... 이런 그림을 그리는 마음과, 영감과 그리고 전시하는 마음, 이 그림을 그린 예술가에게 상을 주는 마음, 그리고 이 그림들을 소장하고자 하는 마음들은 어떤 마음일까.. 여러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여러번 생각한다고 그 답을 알 수는 없었다.



3층의 한 구석에는 집이 마련되어 있었다. 좀 민속촌의 느낌이어서 그냥 둘러나보자, 하고 들어갔는데 그 집 안에는 같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그림들이 시리즈로 집안 전체를 꾸미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모두다 'Sukee Som-Ngoen'이란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둘러보다보니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거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어어, 이것봐, 이거 태국 전통의 이야기인가봐, 하면서 우리는 그림들만으로 그 안의 이야기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잘생긴 놈과 부자인 놈이 한 아름다운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는구나, 이들이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구나, 여자는 잘생긴 놈을 선택했는데 부자가 그녀의 방에 침입했구나, 그래서 잘생긴 놈이 빡쳤구나, 그런데 잘생긴 놈은 영웅이구나, 아이도 낳았구나, 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우리가 이야기를 짐작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현대미술관에 따로 전시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면 이것은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것은 혹시 태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신화인걸까.




(실제처럼 만든 모형이었는데 힘줄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그림을 다 보고 바깥으로 나오니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 시리즈의 여자주인공인듯한 'Phimphilalai'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이 집은 <House Of Pimpilalai>였다. 아, 여주인공의 이름은 핌피랄라이 이구나, 이곳에 전시된 그림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구나, 우리는 미술관내의 벤치에 앉아 미술관에서 나눠준 브로셔와 구글 검색을 통해 이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쿤팬 과 쿤창'이라는 두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태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고전문학인듯 했다. 오, 그리고 검색해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잘생남자와 못생긴부자 남자가 핌피랄라이를 사랑하는데 잘생긴 남자는 역적으로 몰렸다가 영웅이 되고 무슨 신적인 존재가 되고, 그 남자가 전쟁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핌피랄라이는 못생긴 부자랑 결혼하는데 사실 잘생긴 남자는 죽지 않았고, 전쟁에서 돌아온 후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못생긴 남자랑 결혼했다는 사실에 잘생긴 남자는 분노하고... 그러는 이야기인 것이다. 오, 이야기를 알고 보니 더 재미있네. 친구랑 나는 재밌다 재밋다 하면서 그래서 질투란 그림이 있었나봐, 그래서 복수란 제목을 가진 그림이 있었나봐, 그림 속의 아이는 그렇다면 잘생긴 놈의 아이인가봐,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한 번 들어가서 볼까?' 내가 물었고 친구는 '그러자' 고 했다. 이야기를 모르고 봐도 재미있었는데,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들어가서 다시 한 번 관람했고, 그 뒤로 숙소에 돌아와 와인을 마시면서 그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 순 없는지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오, 있었다. 만세!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궁금한 이야기, 아는 이야기였구나. 그러니 이렇게 책으로 나와있지!


맨 왼쪽의 책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라 읽으려고 했더니, 206쪽의 책인거다. 이거 완전 무슨 일리아스 같은 대서사시 같았는데, 게다가 운문 이야기라고 했는데, 206쪽 밖에 안돼? 너무 적은데? 하고 책 설명을 읽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발췌본' 이었다. 이 책은 태국에서 세상에, 42권짜리의 이야기라는 거다. 사람들이 보통 이 책을 우리나라의 춘향전과 비교하는 모양인데, 누군가 읽고 쓴 리뷰를 읽어보니 춘향전에 빗댈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막장 중에도 막장 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위에 쓴 검색으로 파악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었던 것. 태국의 종교도 아마 관련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잘생긴 놈이 신처럼 되기 위해서, 자기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자기의 어린 아이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오고, 게다가 핌피랄라이를 사랑하면서도 바람을 피우는 것. 핌피랄라이 역시 자신의 마음을 양쪽 모두에게 나눠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막장 중의 막장이라니! 게다가 전시된 그림을 보면 작가는 무슨 여자 가슴에 한 맺힌양 엄청 그려놨던데, 그 그림이란 것이, 아마도 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잘 살리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여자 몸에 완벽을 때려 박은 거다. 친구와 보면서 '여자 몸에 대한 판타지가 있네...' 라고 했는데, 짧은 검색만으로는 화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수키'란 화가의 이름을 보면 여자사람일듯한데, 여자 가슴 그려둔 거 보면 남자사람일것 같고..



어쨌든 이 발췌본 206쪽 짜리를 너무 읽어보고 싶다. 사실 여혐 범벅일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태국의 현대미술관의 그림을 보면서도 여성을 성녀화 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내가 태국의 종교에 얽힌 사연을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그 미술관에서도 친구와 나는 그런 얘기를 한거다. '미국의 미술관에 가면 여성 누드 모델이 많은데 여성 화가의 그림은 20프로도 안된대' 같은 이야기들. 어느 미술관을 가나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어떤 영화가 하는가 살펴보니, 오오, <쿤팬의 이야기 2> 가 있더라. 너무 졸려서 금세 잠들 것 같았지만, 어디 좀 볼까, 하고 재생했는데, 하하하하,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좀 오래전이긴 하지만 와... 심한 뻥이 그 안에 있었다. 쿤팬이 전쟁중에 적들에게 둘러싸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무슨 ㅋㅋㅋㅋㅋㅋ 두 손을 모아 기도하니까 쿤팬을 겨냥하던 적군의 총이 그냥 다 부러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적군들이 에워싸는 가운데도 쿤팬 혼자서 적을 다 죽이고 나올 수 있는 거다. 이게 뭐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하다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쿤팬과 쿤창의 이야기에서 핌피랄라이는 '완통'으로 개명한다고 하는데, 마지막에는 국가로부터 처형을 당한다고 한다. 처형당하는 이유는 그녀가 '음란해서' 라고...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혐범벅일것 같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여혐이 그 안에 있을것 같은데, 그것이 태국에서 오래된 클래식한 문학이라고 하니, 미술관에 가 그 그림들을 보기도 한 터, 읽어서 그 그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고 싶다. 그 책을 읽고나면 아마 할 말이 많아지지 않을까. 이 책 읽어야겠어, 라고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도 너무 읽어보고 싶다면서, 그러나 여혐 가득한 막장일 것 같아 내가 다 읽어본 후의 감상을 듣고 읽기를 선택하겠다 한다. 그래, 친구여....





어처구니가 없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쿤팬)가 전쟁에서 돌아와보니 완통이 쿤창과 결혼해서 빡이 쳐서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데, 말리는 게 쿤팬의 두번째 여자... 이에 완통이 빡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하자는 건지 도대체 원. 어떻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했다고 사랑하는 여자를 죽일 생각을 해?? 하아-

오늘 출근하면서 읽기 시작한 《미친 사랑의 서》가 생각나는데, 이 이야기는 따로 풀기로 하자. 아무튼 친구랑 한참이나 재미있어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는데, 돌아올 때는 쿤팬과 쿤창, 완통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어. 하하하하.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그림을 보고 기념품 샵에 들르고, 사고 싶은 엽서가 없어서 실망하고, 까페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각자 가져온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걸 했다. 그러다보니 미술관 문닫을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는 그랩을 불렀다. 그러나 그랩은 응답하지 않았다. 다시 불렀다. 다시 응답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미술관 직원에게 우리를 위해 혹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느냐 물어보니 그럴 순 없다면서 우리에게 어디에 갈건지를 물었다. 우리는 시내의 대형 쇼핑몰을 얘기했고, 미술관 직원은 여기에서 택시를 불러서 거기에 가기는 매우 힘들거라며, 버스와 BTS 를 타고 가라고 알려줬다. 그러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친절하게 메모지에 가는 방법을 적어주었다. 일단 나가서 왼쪽으로 쭉 가서 건너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모칫 역까지 가. 거기에서 BTS 를 타고 씨암 역에서 내리면 돼. 요금은 한사람당 20바트가 안될거야. 이걸 다 적어주었어..





매우 친절한 직원이었다. 나는 외워간 태국인사 컵쿤카를 몇 번이나 양손을 모아 외친 뒤에 메모지를 받아들었고, 그렇게 버스정류장에 가서,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버스를 탔고,


(이것이 버스티켓)


BTS 도 탔다.






쇼핑몰에 들러 밥을 먹고 서점에 들렀는데, 어디서든 서점은 참 좋다. 꽉꽉 책이 채워진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피케티의 자본도 보았고 소피 킨셀라의 책이 대세인가 보았다. 그러다가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귀신나방> 이 있는 게 아닌가. 제목이 한글로 써져있어서 확 눈에 들어온다.




오오, 제목이 한글로 되어있다니, 그렇다면 본문은? 하고 들어서 펼쳐보니 이렇게............ 네??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아무것도,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대한민국 소설이 반가워서 남동생에게 찍어 보냈다. 나와 내 남동생 모두 이 책을 읽었단 말이야? 남동생은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그 책 별로인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이 책을 읽은 내가 좋아하는 두 남자 모두가 이 책을 별로라 말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용민은 이 책 말고도 《궁극의 아이》, 《불로의 인형》 란 책도 썼죠.. 궁극... 궁극에 대해서라면 제가 참 할 말이 많지만 그냥 넘어갈게요.
















미술관의 그림을 보고 까페에 가는 것 못지않게 사랑하는 시간은, 호텔에서의 밤이다. 블루트스 스피커로 오래된 노래를 틀어두고서 친구와 나는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밤은 깊어갔고, 우리는 그 날 걸었던 거리와 그 날 보았던 그림에 대해 얘기했다. 그 날 먹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느 밤에는 갑자기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을 보냈다. 더티댄싱 정말 좋았잖아? 프리티우먼도 좋았지! 유콜 잇 러브는 어떻고! 같은 나이대라 같은 영화를 같은 시기에 보고 비슷한 감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이렇게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한 밤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담담하게> 를 들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얽매이는 기분이 들면 안되니까요, 를 간절하게 따라부르면서, 얽매이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하려고 내가 너무 노력한걸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걸까, 지난 시간을 한참이나 후회하며 돌이켜보았다.



잘 지내는지 몇 번이나 묻고 싶은 낮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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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미술관 MOC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에서 인증하는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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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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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9-1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이번 연휴를 방콕에서 보내시는군요 한국도 오늘은 방콕만큼이나 날씨가 좋네요
연휴 잘보내고 오세요- :D

다락방 2019-09-16 09:45   좋아요 1 | URL
연휴는 끝났고 월요일이 되었고 저는 변함없이 사무실에 있습니다.................... ㅜㅜ
 

주말에 있던 약속은 태풍 때문에 취소되었다. 오전에 잠깐 이비인후과와 요가를 다녀오는데 바람이 너무 심한터라 도무지 오후의 일정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 오늘 만남은 취소하는 게 좋겠다, 라고 친구에게 말을 거니 친구 역시 그게 좋겠다고 했다. 덕분에 토요일 오후가 내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 읽으며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내야지, 그렇게 나는 시몬 베유의 책을 잡았다.

















그러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사는 집에서 가사노동이 뻔히 일어나고 있는 걸 알면서 과연 주말의 여유로운 독서는 가능할까? 만약 내가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모든 일들을 뒤로 미룬 채로 책 읽기에 집중하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려고 폼을 잡고 있는데, 엄마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엄마도 그저 누워있기만 하면 좋을텐데, 그러나 엄마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오전에 엄마 개인적인 약속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시장에 가 명절에 만들 음식의 재료들을 사오셨고, 이내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들기에 분주하시다. 아아..차라리 모를걸, 차라리 집에 없을 걸, 그 편이 내가 편했을텐데...라며 책에 집중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엄마가 나를 부른다. 오이지를 만들건데 오이를 좀 짜달라는 거였다. 나는 내가 원했던 독서의 시간이 깨져버렸다는 아쉬움에 조금 화가 났지만, 그러나 가사노동을 엄마에게만 짐지울 순 없었다. 나가서 오이를 힘껏, 힘껏 짰다. 


눈 앞에 일거리가 뻔히 보이는데 오이를 다 짰으니 이제 방해 말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나는 빨래를 가지고 나가 세탁기를 돌렸고 다 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다. 그 사이 엄마는 내가 먹을 저녁 반찬으로 소불고기를 만들고 동태찌기를 끓이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젼 앞에 큰 상을 펴두고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고 소주잔과 수저를 준비했다. 앞접시도 있어야겠지. 그렇게 엄마랑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설거지를 했다. 배가 부르다며 소파에서 쉬는 엄마에게 따끈한 차를 우려주었다. 토요일밤은 그렇게 책을 읽을 겨를도 없이 후딱 지나가고 있었다.



나랑 같은 상황에 놓인 남자들은 어떨까, 를 잠깐 생각했다.

그들도 집에 있는 주말이면 본인이 예정한 대로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대신 가사노동을 함께 할까? 부엌에서 뚝딱이는 엄마(혹은 아내)의 소리들을 넘기지 못하고 나와 무언가 도울까? 엄마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세탁기를 돌릴까? 엄마가 저녁을 차려주면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할까? 고단한 엄마에게 따끈한 차를 내어드릴까? 아니면, 그들은, 계획했던 그대로, 자기 방에 콕 틀어박혀 책을 읽을까? 그리고서는 이번 주말은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했어, 라고 주말이 지난 뒤 출근해서는 동료들에게 말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속 남자가 생각났다. 밖에 나가 정의를 부르짖고 혁명을 외치지만, 집에서는 식탁 앞에 앉아 가만히 엄마나 여자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받아먹는 남자. 그들은 자기 안의 모순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줄 알까?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식사 시간에 그가 하는 거라곤 자리에 앉아서 가우리나 어머니가 그 앞에 접시를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줌파 라히리, 저지대, 203쪽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p.30)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웠다. 각자 자기 몫의 외출을 하고, 나도 일찌감치 오후에 영화 <벌새>를 예매해둔 터다. 일전에 알라디너로부터 받은 커피와 케익 쿠폰도 사용할 겸, 나는 책을 들고 까페로 나갔다. 이번 여성주의책 같이읽기 도서는 <시몬베유의 나의 투쟁>이지만, 나는 시몬 베유의 다른 책도 사둔 터라, 일단 얇은 책을 꺼내 들고 나왔다. 시몬 베유의 책을 읽다보면 프랑스에 대해 궁금할 터, 몇 개월전에 읽었던 <유럽 낙태 여행>도 함께 가지고 갔다. 시몬 베유의 책을 읽다가 무언가 궁금해진다면, 그럴 때 유럽 낙태 여행도 읽어야지. 나는 그렇게 까페에 두 권의 책을 가지고 나갔고, 나란히 꺼내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해전에 남동생이 회사에 다니는 게 전망이 밝은 것 같지 않아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며 이것저것 생각해 '이건 어떨까' 하고 내게 의견을 구할 때면, 나는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답들을 동생에게 들려주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생각하기에 전혀 도덕적이지 못한 일들, 설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어디 가서 '나 이렇게해서 돈 벌었어' 라고 말하기에 껄끄러운 일에 대해서도 '이건 어때?' 하고 묻길래, 정색을 하고 '그건 안돼' 라고 말했었다. 돈 버는 거 너무 중요하고 나 역시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러나 어디가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얼버무려야 한다면, 그 일을 하지마. 어디가서 누가 물었을 때 전혀 거리낌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해. 일에 있어서 도덕을 잃지 마. 돈을 설사 조금 덜 벌더라도, 윤리를 놓아서는 안돼. 돈을 벌 때 모럴을 꼭 가져가야 해, 그걸 염두에 두어야 해. 


내가 하는 말이 동생의 귀에 닿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동생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 조언 '탓'일까. 돈을 크게 벌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이것이 윤리적으로 한 점 부끄러운 게 없으니,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에 1950년대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낙태수술의 80퍼센트 이상이 의사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행하여졌다는 것. 그러나 물론, 의사들도 낙태수술을 하기도 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수술 금지라는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산파, 간호사, 일반의나 산부인과의들이 은밀하게 수술을 했습니다. 대체로 인간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종교계에서 지은 의료 시설에서도 곤경에 빠진 여성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의나 병원 경비들은 병원으로 긴급히 실려 오는 여성들을 속속 보곤 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위생 상태가 끔찍하고 어떤 의료 교육도 받은 적 없이 가장 초보적인 방식으로 산파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은밀히 찾아가 임신중단 수술을 받고 나서 만신창이가 된 채였죠. 이 산파들은 때로는 인간적인 호의로, 대체로는 돈 때문에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무척 고급스럽고 수술 비용이 비싼 병원에서도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중에는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음성적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죠. (p.72-73)




나는 이 부분에서 도덕을, 윤리를, 모럴을 떠올렸다.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성적으로 수술하는 상황을 바라는 의사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않는 사람들. 나는 만약 내가 이런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었다면, 그것이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어떤 형태로든, 남동생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거에 취해서 도덕을 잊지 말라고, 윤리를 잃지 말라고. 어디가서 니가 하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상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랑 인연을 끊고 하던 일을 마저 하면서 임신 중단이 합법화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겠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윤리보다 돈이 더 앞서는 사람들이. 나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어디가서 부끄럽고 싶지 않다. 내가 버는 돈에 대해서는 출처를 분명히 밝힐 수 있기를 원한다. 어디 회사에 다니냐, 무슨 일을 하냐, 라고 상대가 물었을 때, 속이거나 거짓말을 해서 그 상황을 비켜가고 싶지는 않다. 말하기에 조금 꺼려지는 일 같은 걸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의사들과 대조되는 자리에, 바로 '343 선언' 속의 여자들이 있었다. 이 선언은 343인의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을 공개한 걸 말한다. 여기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즈 사강, 카트린 드뇌브등이 포함된다.



이 선언은 무척이나 대담한 행동이었어요. 이 여성들은 임신중단을 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덧씌우는 오욕을 짊어짐으로써 사회에 맞섰습니다. 이들이 형법상으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해도,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결과란 무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이 선언은 아주 강력한 투쟁이자 도발적인 행위였습니다. 결국 이 행동은 소송을 진척시키고 정부로 하여금 1920년 악법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게끔 했지요. (p.74-75) 



낙태가 불법인 국가적 상황에서 '나도 낙태했다'고 밝히는 일은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대한민국에서도 낙태가 불법이지만 그러나 많은 여자들이 낙태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 위선적인 상황에서, 그래서 낙태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그걸 여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1971년의 프랑스에서 여자들은 오욕을 감수하고 낙태했다고 선언을 한다. 


일전에 메갈리아가 한창 욕을 먹을 때, 많은 여성들이 '내가 메갈이다', '나도 메갈이다' 선언했더랬다. 메갈을 후려치려는 것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함으로써 여성 구분짓기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여자를 구분 짓지마, 후려치지마, 편가르지마. 분명 거기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여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의 낙인찍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메갈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이 343 선언의 343명 모두가 '정말' 다 낙태를 했을까? 여기에는 분명 낙태를 한 사실은 없지만, 이 선언에 함께하고자, 임신중단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오욕을 뒤집어쓰는 여자들과 함께 하고자 기꺼이 나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랬다.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343명의 지식인 여성이 자신의 낙태 경험을 잇달아 밝히며 투쟁에 힘을 실었다. 이 여성들의 선언은 1971년 [누벨 옵세르바퇴르]라는 진보 잡지의 표지를 차지하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제2의 성]의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이 선언에 함께했는데, 프랑스가 낙태권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은 사실 낙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343선언에 동참한 여성들이 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창녀 343'으로 불리던 때였으므로, 경험이 없더라도 그 멸시를 나누어 갖겠다는 뜻에서 동참한 것이었다. (유럽 낙태 여행, p.32)









여성들간의 연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에서 시몬 베유는 여성 연대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물론 믿습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주요한 문제들 앞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연대를 만들어 냅니다. 직장 생활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서로 돕는 정신이란 무엇보다도 자연적으로 발휘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늘 좋아합니다. 유럽 의회에는 여성 의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이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정무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여성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위원회가 내놓는 법안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차별과 전통 때문일까요? 여성에게 남성과 다른 가치체계, 다른 우선순위, 다른 행동, 다른 관심시가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함께 어울려 살기에 여성들은 훨씬 더 용이합니다. (p.118-119)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시몬 베유는 멋지다.



시몬 베유는 90세가 되기 2주 전인 2017년 6월 30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아들 장은 7월 5일 공식 행사에서 "어머니께서 제 머리에 물을 끼얹은 것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했다. 베유가 아들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넌더리를 내며 그의 머리에 물병에 들어 있던 물을 부어버린 것이다. (p.139)



하하하하. 여성 혐오적 발언이라면 아들이라고 넘어갈 수 있으랴. 물을 끼얹어 버린 어머니 시몬 베유라니. 너무나 근사하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9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준비 운동 차원에서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를 읽었다. 자, 다음 주에는 본격적으로 미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빠샤!!

















그런데 주말이 다 가버린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나는 이제 자야한단 말인가...



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성에게 낙태는 비극이고,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P26

저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하곤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길러지던 방식과 다르게 그들을 길러냈습니다.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와 같이 용감하고, 열정과 헌신을 다할 줄 압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디 신뢰합시다.- P53

여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협을 감수하며 문제를 해결할 때, 이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거나 다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늘 그랬습니다. 여성들은 임신 중단을 하는 다른 여성을 도왔습니다. 때로는 도움에 금전적인 보답이 따르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가 순전히 연대에서 우러난 행동이었습니다. - P59

법조계에 여성들이 진입한 덕분에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쟁이 발전할 수 있었어요. 피임에 대한 논쟁도 떼어놓을 수 없지요. 1920년 피임 관련 법조항을 보면 정말 믿을 숙 없을 정도로 말이 안됩니다. 의사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여성에게 피임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어요. 월경주기를 계산하는 오기노 법이나 기초 체온 피임법 같은 것도요. - P65

오랫동안 이 문제를 교회와 전통의 영향이라 설명해 왔지만 저는 임신중단보다도 피임약의 발명이 남성들을 더 불안케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섦명하면 좋을까요? 모성의 역사에서 피임이란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할 때 아이를 낳는다‘ 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발상 이었던 겁니다. 피임약 덕분에 여성은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재생산을 결정하고, 심지어는 남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있어 역사상 큰 전회라 할 만 했어요. 오랜 과거부터 재생산을 주도하는 쪽은 남성이었는데 피임약의 등장으로 이 문제에서 단절된 거니까요. 많은 남성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했습니다. 박탈감을 느꼈고, 불안에 휩싸였어요. 피임약이 남성에게서 남성성을 앗아갔기 때문이죠! 이는 남성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 P66

당시 무척이나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했던 제 부처에서 두 명의 탁월한 여성 법률가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한 명은 최초의 여성 파리고등법원장인 미리암 에즈라티였고, 다른 한 명은 유능한 국가 고문이었던 콜레트 멤이었습니다. 우리 셋은 무척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셋의 입장은 같은 선상에서 만났습니다. 그건 바로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이 오로지 여성 자신에게 돌아가야 하며, 임신중단 수술이 반드시 의사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기준을 충족하고, 실질적인 적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적합한 전략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처 간 긴밀한 협업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죠.- P84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이 안도한다고 하더라도 임신중단 수술은 본디 심리적 외상을 유발합니다. - P89

임신중단 수술을 유대인 학살에 비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습니다. 남성으로 가득했던 회의장에는 위선이 넘쳐났습니다. 회의장에 있는 일부 남성들은 은밀하게 자신의 애인이나 지인이 임신중단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술소의 주소를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P93

베르나르 퐁은 농촌에서 의사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외젠 클로디우스-프티는 기독교적 인도주의 정신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덕에 다른 의원들은 이 법안이 방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위선에 종지부를 찍고 실질적인 고통을 경감하는 조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P95

이렇게 부적절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역할극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당사자라고 해도 수치스럽게 여기리라고 생각합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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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9-09-1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석 같은 페이퍼다. 역시 내 친구! ♡

다락방 2019-09-11 14:14   좋아요 1 | URL
히히 고마워 ♡

단발머리 2019-09-1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석 같은 페이퍼에요 2.
전 이제야 봐서요.
숨겨져 있다가 이제서야 발견한 보석 같은 페이퍼에요!!

다락방 2019-09-16 09:45   좋아요 0 | URL
어릴적에 한 동네 사는 친구가 오래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거든요. 하루는 저의 엄마랑도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제 친구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잠깐 놀러오셨더랬어요. 그 때 그 아이가 세 살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아이는 눈이 보석이야, 참 보석같아.˝

단발머리님 댓글 읽으니 그 날이 생각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