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21 | 4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단편소설을 썼다. 한 여자가 나오고 한 남자가 나오는 글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고 오해를 풀어내고 있었다. 볕이 좋았고,빛이 좋았고, 빨래가 말라 남자는 개고 있었다. 그들은 오해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도, 남자도 그랬다. 제목을 정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내려오다가, 마지막 말을 썼고, 마지막 말을 쓰면서, 제목은 <좋은 나라>로 해야지, 생각했다. 글을 다 썼고 제목을 쓰고 저장을 누르기 전에,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꿈이었다. 꿈에서 쓴 것이었다. 눈을 뜨고 너무 아쉬웠다. 현실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떤 이야기인지 잘은 기억안나지만, 내 소설이 그려내는 분위기는 눈에 선했다. 그 얘기를 내가 진짜로 쓴 거였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쉬웠다. 잘 쓴 소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하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아쉬웠다.


내가 이런 꿈을 꾼 건, 토요일에 영화 [패터슨]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틈틈이 노트에다가 시를 쓴다. 자신의 아내가 시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성냥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그는 운전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를 쓰고, 집에서도 시를 쓰고, 점심을 먹고 나서도 시를 쓴다. 늘 노트와 펜을 가지고다니며 계속 시를 쓴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당신의 시는 매우 아름다우니 제발 부탁인데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들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일은 없다며 계속 미룬다. 그는 출판도 하지 않고 복사본도 만들지 않고, 단조로운 일상들 속에 틈틈이 계속 시를 쓴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눈을 뜨고,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의 벗은 어깨에 입을 맞추고-때로는 입에, 때로는 등에- 씨리얼을 먹고 출근을 하고 운전 시작전 시를 쓰고, 운전을 하고, 아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퇴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아내가 만든 저녁을 먹고, 함께 사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늘 가는 펍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그리고 또 비슷한 시간에 깨고... 


그런 시간 틈틈이 아내는 집에서 자신의 옷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고, 커텐의 모양을 그리고,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남편에게 줄 저녁을 만들고, 컨트리 뮤직을 배우고 싶어서 기타를 주문하고, 주말 장터에 내다 팔 컵케익을 만들고, 배송온 기타로 연주와 노래를 연습하고, 남편의 시를 응원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입을 맞춘다.






이 일상들은 매일 반복되고 그래서 단조롭게 느껴진다. 영화가 처음에는 좀 졸립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특별할 것도 없어서 지루하다. 그러나 월요일이 화요일이 되고 수요일이 되고 그 일상이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그 일상은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지 않은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예술을 곳곳에서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빨래방에서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데도 랩을 연습하는 것처럼, 엄마랑 외출한 소녀가 시를 쓰는 것처럼, 아내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예술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에게 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랩이 되고, 누군가에겐 기타가 되는 것들.


패터슨은 일터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조용히 퇴근한다.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을 화면상으로 보던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잘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내가 너무 내가 되어서 일상을 살아서, 일터에서도 나는 너무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 그래서 내가 그토록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또다른 나와 분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 거다. 패터슨이 일을 할 때 그러하고 퇴근할 때 그러하는 것처럼, 내가 일터에서 조금 더 무심해져도 좋지 않을까. 내가 무심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무심해진다면, 그렇다면 나도 지금보다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패터슨은 아내와 사이가 좋다.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는 남편이 쓰는 시를 응원한다. 그를 격려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였다. 패터슨은 아내의 부탁에 '주말에 시를 복사하겠다' 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복사하지 않았고, 그의 시가 가득 적힌 노트를 개가 다 찢어놓는다. 이 일에 아내는 안타까워하고 패터슨을 위로한다. 그녀는 그동안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말했었지만, 이렇게 그가 그의 정성과 영혼이 들어간 시노트를 잃었음에도 '거봐, 내가 뭐랬어, 복사본을 만들어 두라고 했잖아!'라는 식의 원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한 그의 앞에 다정하게 앉아서 혼자 있고 싶은지 물어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준다. 그들의 일상이 이렇게 서로가 하는 행위나 순간의 기분에 서로 소중히 대해줘서, 그래서 내가 꿈에서 단편 소설을 썼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패터슨이 노트를 복사하기 전에 잃은 것처럼, 나 역시 등록전에 잠에서 깨버린 걸지도. 내가 진짜 쓰지 않은 소설에 대해 등록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데, 노트를 가득 채운 패터슨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책을 읽었다.
















베켓 형사는 파트너인 엘리자베스를 소중히 생각하지만, 아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에겐 너무나 소중한 아내다. 



"괜찮은 거야?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물이 뜨거워서 그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샤워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에 캐롤이 멈칫했다. 베켓은 바로 사과했다. "너무 힘들었던 하루여서 그래. 미안해. 화낼 생각은 아니었어.

"괜찮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침 식사를 준비해줄까?"

"10분 있다 먹을게."

"난 주방에 가 있을게."

베켓은 샤워를 끝냈다. 면도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거울로 얼굴 표정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런 뒤에 주방으로 가서 아내를 찾았다. 캐롤은 아름다웠다. 지난달보다 살이 약간 찌고, 주름이 조금 더 생겼으며, 지쳐 보였지만 말이다. 베켓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나한테 왔을까?" (p.402)



베켓이 얼마나 아내 캐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에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왔는지 감사하는 부분. 그러나, 나에게 어떻게 이런 사람이 왔을까 감탄하는 베켓은 어떤 사람이었나. 순간순간 어떤 결정들을 내렸나.


사랑은 뭘까. 일상을 함께 하는데서 서로 위로를 받고 또 격려를 해줄 수 있다는 것, 함께 침대에 눕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고 말을 하는 것들은 그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한가. 내가 일을 하러 가고 또 그 일터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면, 그래서 해서는 안될짓을 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걸까. 


어디에서 본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그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우리는 상대로 인해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좋은 면들이 상대로 인해 발현되어야 하고,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당신 역시 그렇게 되는 것.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내게 왔을까'를 온전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아, 구원의 길을 읽었더니 너무 힘들다.

지루할지도 모를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무리없이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구원의 길 때문에 너무 우울해 ㅠㅠ

책장 앞에서 뭔가 웃을 수 있는 다음 책을 골라봐야 하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8-01-0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우울한 거 맞아요. 산뜻하고 샤방한 책은 아니라는... 좀 힘든... 웃을 수 있는 다음 책 기대요!

다락방 2018-01-07 20:57   좋아요 1 | URL
비연님이 이 책에 대해 쓰신 페이퍼를 이 책을 읽는 중에 읽었어요.
어휴..
기분이 너무 바닥이 돼요.

그나저나 우리 새해 읽는 책이 자꾸 겹쳐요. 리베카 솔닛, 존 하트!

비연 2018-01-07 22:03   좋아요 0 | URL
새해 읽은 책이 락방님과 겹친다니 .. 넘 좋아요 우힛.

hellas 2018-01-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우울한가요? 다음책으로 선정해뒀는데...

다락방 2018-01-08 08:32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이에요, 헬라스님. 여자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약한자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고,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십니다. 결말을 읽기전까지 너무 우울하고 한없이 다운돼요. 그렇지만 읽는게 더 좋을 책입니다.

비공개 2018-01-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단편소설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저도 패터슨 봤는데.. 보다가 졸았는데.. ㅎ 나중에 트위터에서 패터슨에 관한 내용을 읽어보다가 패터슨이 파병군인이었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책상위에 해병이었을 때 사진이랑 훈장같은거 올려져있던 컷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PTSD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뉴저지는 미국에서도 폭력으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중 하나라고 해요. 그래서 이 단조롭다 못해 지루한 일상과 시를 쓰는 행위가 더욱 의미를 갖는 것 같다는 리뷰를 읽었는데 인상적이었네요.

다락방 2018-01-08 13: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그래도 영화에서 계속 사진 보여주길래, 저 사진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뭘까, 뭘까 했거든요.
그게 해병이었을 때의 사진과 훈장이군요.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그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야말로 일상을 유지해나가는 가장 단단한 받침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월요일을, 화요일을, 수요일을 맞을 수 있는 게아닌가 싶더라고요. 일상이 무너지는거야말로 너무 큰일이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그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좋더라고요.

다만, 그 부부의 삶이 다 좋긴한데, 약간 제 취향과 벗어난 것은...술을 안마시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녁 메뉴도 너무 간소해... 좀 .. 과식과 과음을 한다면 더 좋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하하하핫

clavis 2018-01-1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동네책방에 다녀와서 헬페미가 되기 위한 첫째 책을 샀는데 오늘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인용하라고 이 문장을 만난 것 같아요 ˝우리에게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ㅡ카프카˝

다락방 2018-01-11 16:41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일상에 대해 그 중요성을 다시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클래비스님.
우리, 우리가 가진 일상을 견고하게 유지합시다.
틈틈이 좋은 친구들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면서 이렇듯 일상을 유지해요.
클래비스님, 일상에 알라딘이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clavis 2018-01-1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히히. 아직 이거 못읽고 있는데, 자꾸 다른 책 읽고 싶어져서 큰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상을 내리기로 했다. 만약 이 책을 완독한다면, 나는 내게 상을 줄것이야. 어떤 걸로? 이 책으로!!

















작년에도 이 책 좋다고 친구 f 에게도 들었고 y 에게도 들었는데, 며칠전 ㅅ 님 서재에서 또 본거다. 그래서 으음, 이걸 읽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레베카 솔닛 책에서 이 책이 또 나오는 거다!! 맙소사! 이건 읽어야 해!! 하는수없이, 이것을 읽겠다!! 라고 결심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응?) 읽고 싶은 거 다 읽고 사나. 게다가 나는 사두고 안읽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어요. 홍홍. 형돈이가 랩을 한다 홍홍홍~


그래서 2018년에는 책을 안사기로 결심한 바, 있는 책만 읽기로 결심한 바, 사지 않겠어!! 다만, 제2의성 2권을 완독하는 날이면, 이 나폴리 시리즈를 내가 나한테 사주겠다!!! 내가 나한테 잘했다고 쓰담쓰담하며 선물하겠어!! 움화화핫. 기다려라, 나폴리, 보부아르 다 읽고 나가신다!! 언제?



알 수 음슴.


(시무룩)



Orz


2018년 되고나서 지금까지 아직 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하고 있어!!




댓글(2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8-01-03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을 먼저 가불로 받아서 읽어버려요....ㅋㅋㅋ

근데 난 벌써 이틀 동안 네 권, 그것도 두 권씩 나눠서 샀어요!

다락방 2018-01-03 14:52   좋아요 0 | URL
안돼욧!!!
이미 신용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사버렸는데 가불로 책까지 사라뇨!! 안됩니닷!! ㅋㅋㅋㅋㅋ
이를 악물고 버텨보겠어욧. 뽜샤-

psyche 2018-01-03 16:11   좋아요 0 | URL
저 위 유부만두님의 조언이 너무 좋은데요? 상을 가불로 먼저 받아서 읽는거요 ㅎㅎ

다락방 2018-01-04 09:44   좋아요 0 | URL
아 글쎄 안된다고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분들이 왜 자꾸 나를 흔들흔들 유혹하신담? ㅋㅋㅋㅋㅋ

moonnight 2018-01-0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서 나폴리 4부작 얘기 들리는데 귀막고 있어요ㅜㅜ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ㅠㅠ 조만간 음주 후 주문할 것 같아요-_-

다락방 2018-01-03 14:55   좋아요 0 | URL
저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어요. 2018년 첫구매를 최대한 뒤로, 그래서 2019년으로 미뤄버리겠어욧! 아하하하하.

비공개 2018-01-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락방님도 저와 같은 결심을 하셨군요!! 하지만 저도 나폴리 4부작과 오정희 컬렉션을 장바구니에 단단히 매어두었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8-01-03 15:17   좋아요 0 | URL
우리 누가누가 더 늦게사나 내기내기 해보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1-0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년에는 책을 안사기로 결심한 .... 이 대목에서 으악. 락방님. 저를 버리고 이런 결심을. ㅜ
전.. 안 사기는 힘들것 같아서 (이미 어제 샀...;;;;) 한달에 2회로 제한 두던 걸 1회로 제한 걸까 하고 있슴다...
그나저나 저 나폴리 4부작. 보관함에 담아두고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평들이 좋아서... 팔랑귀 팔락팔락...

다락방 2018-01-04 08:50   좋아요 0 | URL
비연님은 이미 사셨군요. 음화화홧. 아직 안산 저는 승리자! (응?)
나폴리 4부작은 너무 다들 좋다고들 하셔가지고 제가 미쳐버리겠네요. 아하하하하.
팔랑귀 팔락팔락 저도 그러고 있어요.
아마도.. 올해... 사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제2의성을 완독하지 않는다면, 제게 그런 상을 내리지 않겠어욧! (단호)

잠자냥 2018-01-0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까지 새해 들어서 책 안 사기 프로젝트; 성공하고 있습니다만..............
다락방 님 이 포스팅 보고 저 책을 보관함에 담아버렸.......
근데 저는 오늘 그만..... 현대문학 단편선 <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을 장바구니에 담아버렸군요.... -_-;

그래도 굿즈에 낚여서 책을 사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작심 삼일 성공 중;)

다락방 2018-01-04 08:51   좋아요 0 | URL
1월4일 오전 08:50 현재...
2018년 책 안사기 프로젝트 저도 성공중입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장바구니에 넣고 있긴한데 아직 결제는 안했습니다. 결제할 날이 오긴 오겠죠. 안오진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미루겠습니다.
다 읽지도 못하면서 왜이렇게 사제끼는걸까요? ㅠㅠ 훌쩍 ㅠㅠ

책읽는나무 2018-01-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3일이고 내일은 4일이니 내일 바로 결재하시면 되시겠네요ㅋㅋ
저 책 저도 예전 하이드님 서재에선가? 책 재밌었단 페이퍼를 본 듯합니다^^

무튼,
2018년에도 화목한 가정 두루 평안하시고,
늘 다락방님의 행복한 독서생활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다락방 2018-01-04 09:45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 책에 대해서라면 누구든 다 좋다고 칭찬을 해서, 게다가 밑에 시이소오님처럼 ‘니가 너무 좋아할거다‘ 이렇게들 말씀해주셔서 제가 진짜 피할 수 없을 것 같네요. ㅎㅎ 그렇지만 미루고 또 미루어 결국은 2019년으로(!!) 미뤄보겠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설득력 없죠...)

2018년에도 알라딘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책나무님!

시이소오 2018-01-03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리뷰를 꼭 써주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다락방님이 너무너무 좋아하실거라 장담합니다. 아니면 장지질께요^^

다락방 2018-01-04 09:46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친구도 이 책 읽고 꼭 읽으라고 저한테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도대체 왜들 그러시는거에욧!! 뽐뿌질 하지 마시라구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1-0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2부까지 읽었는데 재밌어요!! 3,4부도 어서 읽고 싶어요~~ 상을 가불로 라니 유부만두님 말씀에 무릎을 쳤네요 ㅋㅋㅋ

다락방 2018-01-04 09:47   좋아요 0 | URL
안된다고요, 글쎄!! 안돼요, 안돼!! ㅋㅋㅋㅋ 상을 가불로라니, 안돼욧. 저는 정말 굳건하게 결심합니다. 제2의성 을 완독하면, 그때, 바로 그때 제게 저 책을 허락하겠어욧!!!!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1-0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제2의 성>을 그렇게 놔두고는 오늘 나폴리 시리즈 1권을 턱하니~~ ㅋㅋㅋㅋ
그나저나 나도 레베카 솔닛 책 읽었는데, 이책 이야기가 나온단 말이예요?
난 뭐를 읽은....건가요?

다락방 2018-01-04 09:59   좋아요 0 | URL
두 번 언급됐다고 기억하는데 한 번 밖에 못찾았어요. 236페이지에서 잠깐 작가 이름 나오고요, 그 전에도 한 번 본 것 같거든요. 지금 휘리릭 넘기는데 그건 못찾겠네요. 어쨌든 ‘걸작‘을 쓴다고 되어있어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작가의 이름을 요즘에 자꾸 언급되어 봐서 아니까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 읽었다면 저도 몰랐을겁니다. 단발님은 저보다 훨씬 일찍 읽으셨잖아요. ㅎㅎㅎ

벌써 나폴리 시리즈 시작하셨다니. 아아, 역시 언제나 저보다 빠르신 분 ㅠㅠ
화이팅!!

2018-01-04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하하책이좋아 2018-01-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좋아요 ㅠㅠㅠㅠㅠ 2019년에 읽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ㅠㅠㅠ

다락방 2018-01-05 10:12   좋아요 0 | URL
그..그...그래요? (동공지진)

chaeg 2018-01-0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나폴리 4부작을 결제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8-01-05 10:13   좋아요 1 | URL
미룰겁니다.
미룰거예요.
그러나..곧......... 아아, 지고말았다, 지르고 말았다...라는 글을.... 올리게.......될것같죠? 으하하하핫

sinhye2 2018-01-1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4부작 리뷰 보다가 우연히 다락방님 글 보고 너무 잼있으셔서 글남겨요 저도 사고 안읽은 책 많은데^^ 결심하신 거 꼭 이루 시길 바래요~ 그 때 나폴리 책 보셔서 리뷰 써주세요~^^

다락방 2018-01-12 13:52   좋아요 0 | URL
에헤헤헷 저 제2의성 안읽었는데 나폴리 1부는 벌써 사버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머그컵 받느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란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게요















내가 읽은 건 이 책의 구판이다. 

이 새로운 표지가 더 예쁘네..


어쨌든.



'앤 타일러'는 이 책에서 중년 부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좋았던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이 그들을 부부로 만들었으며, 그리고 지금도 마찬자기로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서로를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가족을 꾸려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망가져버렸다는 걸 깨닫는 장면도 나온다.


아내인 '매기'는 내가 너무 싫어하는 캐릭터다. 실제 주변에서도 너무나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일단 그녀는 착하다. 착하고,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한다. 혹여라도 타인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고, 어떻게든 나서서 도와주고자 한다. 그러니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타인에게는 그녀가 친절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 '좋은' 해결책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자주,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말들을 전하곤 한다. 이를테면,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에게 찾아가서, '그는 너를 그리워하고 있고 너의 냄새라도 맡으려고 니가 두고간 비눗갑을 책상 서랍에 보관해두고 있다'고 하는 거다. 며느리는 그 말에 감동해서 어떤 가능성을 품고 그 얘기를 들은 그 날, 시댁에 저녁을 먹기 위해 가는데, 헤어진 전남편은 비눗갑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맙소사, 피오나. 그렇다면 지금쯤 버렸겠지. 그렇지만 그게 당신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면, 내가 기꺼이 하나……."

"하지만 당신은 그걸 간직하고 있댔어. 그 비누 냄새가 내 냄새랑 비슷하다구! 날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는 코에다 그 비눗갑을 갖다 대고는 했다고 그랬단 말이야!" (p.453)



그러니까 매사가 이런 식이다. 매기는 자신의 아들 '제시'가 '피오나'와 죽고 못사는 사이이며 지금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헤어진 후에 집에 그냥 끊긴 전화가 왔었는데, 그건 당연히 피오나가 한거라 생각하고 제시에게 말한다. '피오나가 전화했다'고. 그 말에 제시는 피오나에게 다시 전화했서 어쩐 일로 전화했냐 묻지만, 피오나는 자기는 전화한 적이 없다 말한다. 애초에 비눗갑 얘기를 하러 간 날, 그 날도 충동적으로 피오나를 찾아간건데, 자신이 차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방송에서 한 여자가 전화를 걸어, '예전엔 사랑때문에 결혼했지만 이젠 생활의 안정을 위해 재혼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 여자가 당연히 피오나일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피오나와 제시를 다시 연결해주고 싶어하는 거다. 막상 피오나는 그 라디오방송을 듣지도 않는다는데도, 자꾸만 '네가 그랬잖니' 라고 말하면서 그걸 자꾸만 사실로 만들려는 거다. 아니라는데도... 매기의 이런 성향을 알기 때문에 피오나는 매기에게 '그가 정말 그렇게, 그런 식으로 말했냐'고 재차 확인하는데, 그때마다 매기는 '꼭 그런식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런 뜻임에 틀림없다'고 자꾸만... 어휴.. 



그녀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불편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꾸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너무 자기만의 기준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끼어들지 않아도 제 앞가림 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그녀는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건 얼핏 보면 도움을 주는 것 같고 선한 것 같지만, 상대가 자기 스스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참.. 내가 오지라퍼여서 딱히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매기는 세상 제일 가는 오지라퍼인거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다른 이의 삶에 끼어드는 모습이... 어휴..... 어찌나 피곤하던지..... 도움은, 내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주는 게 도움이지,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도움이 아닌데... 읽으면서 오지라퍼가 되지는 말자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어 더 좋은 방향을 내가 가리키지는 말자고 새삼 결심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에게 좋은 걸 자기가 판단할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으니까. 



물론 피오나와 제시가 순전히 매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십대 시절,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임신을 했고 그걸 지우겠다고 하는데, '여자친구가 아이를 지우지 못하게 엄마가 좀 말려줘요'라고 말한 제시는, 그 우유부단함과 철없음이 본인의 것이었다. 그는 한 직장에 일년 이상 다니지도 못해 생활력도 없었는데, 그런 사람이 무슨 남편과 아빠로 살아가려고 했단 말인가. 그런 제시와 함께 사는 게 피곤한 일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닌가. 피오나와 제시가 만약 서로를 정말로 원했다면, 매기의 도움 없이도 그들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매기가 자꾸 끼어든 건 사실이지만, 매기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갈라서게된 건 아니다. 그들이 갈라선 건, 제시와 매기, 순전히 둘 만의 일인 것이다. 



매기의 남편 아이러는 아이고야...부양의 의무를 너무나 지고 있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픈 누나들과 아버지를 부양해야 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등록금을 내놓은 상태였는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해서 등록을 반 년 미루고 일 년 미루고...하다가 하는수없이 아버지가 하던 사진액자 상점을 물려받고 말았다. 그 가게를 맡아서 하는 것도 아이러의 일이지만, 가족들을 대신해 세상을 대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지 못할거라는 것,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아버지 생각이었지만, 아이러는 '나는 매기랑 결혼할거야' 하고는, 결혼을 한다. 매기는 특유의 오지랖과 불행한 사람들을 세상에 섞여들게 하기 위해 시누이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아, 삶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졌다. 매기의 삶도, 아이러의 삶도. 어쨌든 그들에게도 분명 설레는 시절이 있었고, 매기는 당시에 사귀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아이러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살다보니 매기는 아이러가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인데도 사랑스럽게 보아주지 못하고 자꾸만 비난을 한다. 아이러 역시 매기의 단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다른 점들 때문에 그들은 함께산지 28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다툰다. 다투고 토라지고 실망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또 금세 자연스레 화해가 된다. 아마도 이게 함께 오래 살아온 힘이 아닐까 싶다.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서도 함께 오래 산 부부의 어떤 힘 같은 게 느껴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이 모든 일들을 겪어낸 그들 부부가, 침대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장면이, 결국 함께산다는 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아이러, 우리는 나머지 여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가죠?"

그녀가 카드 더미 하나를 무너뜨렸지만, 그는 이해심 많게도 그 카드들을 똑바로 놓지 않았다. 그 대신 한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자, 이리 와, 여보."

그는 매기를 자기 옆에다 앉혔다. 그녀를 꼭 안은 채 스페이드 네 개짜리를 다섯 개짜리 쪽으로 옮겼다. 매기는 머리를 남편의 가슴에 기대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러가 게임 중 재미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카드를 이리저리 옮겨도 무방한 처음의 간단한 단계를 지나 지금은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져 이제야말로 정말 기술다운 기술과 판단력을 보여주어야 할 대였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일러이다 다시 서서히 평온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아이러의 광대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침대 위의 자기 자리로 갔다. 내일 그들은 긴 자동차 여행을 해야 하고,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잠을 푹 자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478-479)




그들은 서로 익숙해졌고, 남편이 혼자 즐기는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아내가 알고 있다. 남편은 혼자 즐기는 와중에도 아내를 안고, 아내는 이제 자러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러 간다. 이런 일상속에 녹아드는 자연스러움이 결국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떤 일들이 그들에게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겠지만, 그래도 밤에 이렇게 침대에서 서로 안아줄 수 있다면, 산다는 게 자못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산다는 게 자못 만족스럽게 느껴진다는 문구만 생각하노라면, 나는 《밀레니엄》의 이 구절이 생각난다.





한밤중에 잠이 깬 그녀는 침대 위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그가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한동안 바라다보았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그녀에게도 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산다는 것이 자못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구판, 1권, p.290)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한 칠드런 액트도 한 번 짚고 넘어가자.



몸을 뒤척이자 축축하고 차가운 베개가 얼굴에 닿았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피오나는 베개를 옆으로 치우고 다른 베개 쪽으로 손을 뻗다가, 등 뒤 옆자리에 길게 누운 따뜻한 몸이 손에 닿자 흠칫 놀랐다. 피오나는 돌아누웠다. 남편이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모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에 그의 얼굴이 간신히 보였다.

잭이 말했다. "당신 자는 거 보고 있었어."

얼마 뒤, 한참이 지난 뒤, 그녀가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잭은 아직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고 그가 자신을 타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물론 그럴 거야."

그들은 어둑한 방에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침실 밖에서 빗물에 씻긴 거대한 도시가 부드러운 밤의 리듬 속으로 가라앉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불안하게 제자리를 찾아갈 때, 피오나는 남편에게 조용하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다정한 그 소년이 지녔던 삶의 열정과 그의 죽음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 (p.289)





어젯밤 《종이시계》를 다 읽고나서, 그 다음책은 뭐로 할까 하다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꺼내 두었었다. 그런데 출근길에 가져오자니 진짜 세상 두꺼워... 아, 다른 거 읽자, 하고 내 방 책장을 둘러보다가, 퍼뜩, 시이소오님이 새해 시작하셨다는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지하철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 너무 좋은 거다. 너무 좋아서, 읽어주고 싶었다. 이거, 당신한테 읽어주면 너무 좋을텐데....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어쨌든 너무 좋다. 나중에 조용히 다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쓰게 되겠지.


















여러가지로 우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또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순간 그 책이 참 좋아서, 아,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구나, 생각했다. 지금 힘들고 우울한 것도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좋으네' 생각하고 있는 것도 나이다. 힘들고 우울한 감정과 좋구나 감탄하는 감정이 함께 찾아든다. 그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 있다. 




자, 새해 첫번째 책나눔.


제가 가진 《종이시계》는 구판입니다. 그렇지만 새 책이지요. 제가 읽었던 책인데 읽고 싶으신 분 댓글 달아주시면, 가장 먼저 댓글 달아주시는 분께 보내드리겠습니다. 택배비 안받고 선물로 드려요. ㅎㅎ



그럼 여러분 안녕.




"밤이었어, 수요일 밤. 나는 누군가 내 가슴에서 무거운 짐을 번쩍 들고 간 느낌이 들었어. 집에 가서 열두 시간 동안 줄곧 잠을 잤어. 목요일에 린다가 뉴저지에서 왔는데, 그래도 딸 구실을 한 거지. 사위하고 아이들도 왔어. 그런데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 무엇인가 잊은 것이 있었어.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었어. 아주 초조했지.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하곤 했던 장난 같은 것이었는데, 너 기억 나니? 우리가 문간에 서서 손들을 문틀에 대고 밀며 앞으로 나아가면 손이 위로 붕 떴잖아. 마치 모든 압력이 나중에 반동적으로 작용하도록 축적 되었던 것처럼. 게다가 린다의 아이들은 고양이를 짓궂게 괴롭히기 시작했어. 그애들이 고양이에게 장난감 곰의 옷을 입혔는데도 린다는 알은체도 안 하더라구. 린다는 애들 버릇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 맥스와 나는 그것을 보고도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지. 그 아이들이 올 때마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안했지만 방을 가로질러서 서로 눈을 찡긋해 보이곤 했어. 아무 말없이 그냥 어떤 표정만 교환하는 게 어떤 건지 너도 알지? 그런데 갑자기 눈을 찡긋해 보일 사람이 없는 거야.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정말 그이를 잃었음을 깨달았지." (p.82)




매기는 아이러와 결혼했을 때 그가 첫날밤 그녀를 바라보던 그 눈길로 항상 자신을 바라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는 레이스 달린 신부용 잠옷을 입고 아이러 앞에 서 있었고, 방 안에 빛이라고는 침대 옆에 있는, 얇은 갓을 씌운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뿐이었다. 그녀는 제일 윗 단추를 풀고, 그리고 두 번째 단추를 풀어서 잠옷이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발목 주위로 떨어지도록 했다. 아이러는 그녀의 눈 속을 깊이 응시했는데, 그는 마치 숨도 쉴 수 없는 듯했다. 매기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p.54-55)

"내가 첫 번째 임신을 했을 때는 이런 걸 배우는 과정이 없어서 죽도록 겁이 났단다. 이런 교습이 있었다면 난 정말 신바람이 나서 받았을 거야. 그리고 후에 제시를 낳아 안고 병원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 ‘가만있자, 병원 사람들이 제시와 나를 그냥 이렇게 내보내는 건가? 난 아기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는데! 이런 일에는 면허도 없나? 아이러와 난 초보자에 불과한데 어쩌나‘라고 말이야. 내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온갖 일에는 다 교습이라는 게 있잖니. 피아노 연주나 타이핑 같은 거 말이야. 오랫동안수학 공식을 푸는 법을 배우지만, 아마 하느님도 아실 거다. 일상 생활에서 그런 건 전혀 필요 없다는 걸.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떻니? 아니면 걸혼 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차를 몰기 전에는 주 정부가 인가하는 도로 연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운전 같은 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남편과 함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새로 태어난 한 명의 인간을 키우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p.266)

매기는 거의 숨막힐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토록 완벽하게 포장되어 있을까! 하루 종일 앉아 연구해도 모를 사람들이었다(어쩌면 다른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어느 부부에게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처음으로 정사를 했던 때라든지, 아니면 그들 중 한 사람이 한밤중에 괜히 놀라 깨어났을 때 서로 나눈 대화라든지. (p.426)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큐리 2018-01-0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해에도 페미니즘과 함께 하는 즐거운 생활 기원드려요~~ㅎㅎ
왜 댓글이 없는지 모르겠으나 선물 주세요..^^;;

다락방 2018-01-02 1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머큐리님, 반가워요.
네, 새해에도 페미니즘과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 활기찬 생활!
선물은 머큐리님께 드리겠습니다.
주소3종셋트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2018-01-0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1-02 16:28   좋아요 0 | URL
오케바리!!

시이소오 2018-01-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다락방님이 좋으셨다니 저도 너무 좋네요. 제 대화명을 언급해주신것도 너무 신나구요. 새해부터 좋으네요^^

다락방 2018-01-02 13:44   좋아요 0 | URL
ㅎㅎ 새해부터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그래서 책과 내가 만나는 것은 다 때가 있나 봅니다. 진작에 사두어도 읽지 못한 채로 있다가, 마침 언급된 김에 읽게 되었거든요. 언급됐다고 바로 다 읽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었어요.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고 그렇게 그 책과 내가 만나는 운명이 되고....

말이 길었습니다. 자주 뵈어요!

단발머리 2018-01-02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을 읽고 나니까 유시민 작가님 이야기가 또 연결되서 생각나네요.


˝기쁜 일이 있을 때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기쁠 때는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느라 아예 책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나 슬플 때, 분할 때, 억울할 때,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책을 펼칩니다. 그런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 그것과 공존하는 방법, 그 무게를 견디는 방법을 책에서 찾습니다. (<표현의 기술>, 168쪽)


시이소오님과 다락방님 첫 책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는 거죠? ㅎㅎㅎㅎㅎㅎ
좋으시겠다^^

다락방 2018-01-02 13:46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안그래도 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글을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무언가 똭- 생각났으면 좋겠는데 생각도 안나서, 친구에게 ‘외로움에 대해 내가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골라줘‘ 라고 문자를 넣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답이 왔어요.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문태준, 빈집의 약속 중>


여러차례 읽었는데, 단발님이 인용해주신 유시민의 문장도 참 좋으네요. 속 시끄러울 때 책이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물론 책조차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고마워요. 좋은 문장이예요.


솔닛 책도 좋아요, 단발님 :)

비연 2018-01-0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저 페이퍼 쓰고 락방님 페이퍼 들어왔다가 깜놀요.
저도 이 책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를... 골랐는데. 꺄오.

다락방 2018-01-02 13:46   좋아요 1 | URL
아아, 비연님. 이 책 정말 좋습니다. 몇 장 안읽었는데 참 좋아요. 아, 현명한 선택이었다, 스스로 쓰담쓰담 하고 있어요. 비연님도 얼른 읽으시고 우리 감상 나누어요! >.<

2018-01-05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5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으로 행복한 12시, 김현주입니다] 바로가기 


해가 바뀌기 전에 많은 것들을 정리했는데, 또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위에 링크한 것 같은 소식들. EBS 에서 정오에 하는 라디오라는데, 저걸 들은 친구가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나온다며 보내준거다. 들어보면 12월 29일 2부 초반에 독서공감에서 한 부분을 읽어준다. 디제이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낭독에 힘이 실린다. 라디오에 소개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저걸 듣고 친구가 내게 바로 알려준 것도 너무나 고마웠다. 내 친구니까 가능한 게 아닌가. 저걸 들은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닐텐데 '이걸 알려줘야지'라는 생각은 내 친구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 듣게 되어 너무 좋았다. 좋은 소식이었고,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내가 쓴 글 누가 읽어주니까...좀... 오글 거리긴 했어.... ㅋㅋㅋㅋㅋㅋ


















해가 바뀌기 전에는 나의 여행친구 D를 만나 영화를 보았고 술을 마셨다. 너무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어서 좀 짜증났지만 ㅋㅋㅋ 그래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한 해동안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같이 강의 들으러 간 것도 너무 좋았고, 강의 들으러 가지 않을래? 물을 때 기꺼이 가겠다고 해준 것도 고맙다고. 무엇보다 나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 친구이다. 이 친구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동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마도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에 대해 얘기하다 나온 것 같은데, 친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니 좋았다. 또한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때, 우리가 프라하에 갔을 때, 일정은 짧았고 나는 속이 좀 안좋아서 한식을 먹고 싶어했다. 오후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프라하성을 가고 한식을 먹는 일정 두 개를 넣었는데, 초행길인 우리가 낯선 길을 걷다보니, 시간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걸리는 거다. 프라하성과 한식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 나는 밥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프라하에 또 언제 온다고 프라하성을 안보나, 하며 두 가지 중에 뭘 선택하지 고민했는데, 사실 밥이 더 끌리긴 했다. 프라하에 갔다고 프라하성을 보란 법은 없지 않나.. 하면서. 내 여행이라는 것은 관광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러나 프라하에 처음 와보고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내 친구의 입장도 나랑 같으리란 법은 없었다. 아마도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라하성을 가자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친구는 프라하성을 가는 대신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세상 누가 프라하까지 가서 프라하성과 김치찌개중에 김치찌개 손을 들어줄까.... 백 명중에 한 명 있을까말까 한 그 경우가 바로 내 친구였다. 그때, 프라하성을 보자고 안하고 김치찌개를 선택해준 거 고마웠다고, 나 그때 한식이 절실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자기도 먹고 싶었다고, 가는 길이 몹시 좋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프라하성을 보지 못했지만, 유명하지 않은 곳의 한식집을 찾아가는 길, 그 골목골목이 너무 예뻐서 자꾸만 감탄했던 거다. 게다가 거긴 사람들도 없어서 걷기에도 좋았고. 그 길을 걷는동안에는 너무 좋아서, 나 여기에 와서 살까, 막 이렇게도 얘기했던 거다.


그래서 친구랑 그런 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일정대로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뀐 상황에 대해서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여행은 그런 사람들에게 적절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여행지에서라면 달라진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대신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즐거워 하는 거다. 친구와 내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도, 그런데 이런 게 좋잖아? 하며 좋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고마웠다. 그리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 친구에게 고마웠다고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연말엔 회사에서도 일이 많았고 그와중에 사고를 치고 수습을 했다... 이때 멘탈이 잠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것에 대해 트윗을 하니 내 트윗을 본 소중한 친구 한 명이 따뜻한 핫초코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사고 친거 수습하느라 고생했다고 따뜻하게 마시라고. 내 주변에 왜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많지? 고마워라.



토요일에 영화 [두개의 사랑]을 보러 갔는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른 영화들의 예고편을 보게됐다. 그 중 하나가 [원더풀 라이프]의 예고였는데, 그 예고편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묻고 거기에 대해 답을 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나는 내 어린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을 하더라.


그 예고편을 보면서 자연스레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지? 하고. 그런데 별 고민없이 '지금'이라는 답이 나오는 거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30대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내 삶에서 20대는 들어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그 시절의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러나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때는 내 선택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들로 가득했던 것 같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책읽기는 계속 해오고 있는데, 책 읽기가 좀 더 깊어지고 글 쓰는 걸로 연결되는 것도 30대 부터 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글은 꾸준히 썼었지만, 뭐랄까, 본격 글쓰기는 30대부터 라고 해야할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랬다.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사람들은 30대에 만난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나의 의지로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게 된 사람들. 나는 30대를 보내면서 더 나은 관계를 가졌고,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됐고, 더 나은 삶을 살게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은 거다. 30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나에겐 가장 좋네, 라고 말할 수 있다니, 이런 자신이 또 너무 좋은 거다. 앞으로도 계속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 그래서 또다시 '너의 삶에 있어서 언제가 좋았어?'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30대부터 지금까지, 라는 답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017년에 [제2의 성]을 완독하지 못한 나는, 2018년의 시작을 역시 [제2의 성]과 함께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만 하지 읽지는 않고 있어. 독서 뭘까? 자꾸 다른 책이 읽고싶어지는 나를 어쩌면 좋지?


그렇다면 일단 떡라면을 끓여먹어야겠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이소오 2018-01-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18년의 시작을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로 했답니다.
작년 한 해 격조했네요. 다락방님도 올 한해 이상한 질문은 무시하시고,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고 건승하시고,
언제나 아름다우시기를 ^^

다락방 2018-01-02 08:16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게 뽐뿌받아 저 오늘 출근길부터 리베카 솔닛 책 시작했는데, 참 좋으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상한 질문은 무시하시고‘가 초반에 똭- 나오더라고요.
좋은 책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댓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새해에도 독서 뽐뿌 엄청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이소오 2018-01-02 08:53   좋아요 0 | URL
리베카 솔닛 뽐뿌질에 가담했다니 신명나는 답글입니다. 새해 첫 출근이시네요. 추운 날씨지만 상쾌하게 시작하시길^^

2018-01-0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8-01-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17년의 마지막과 2018년의 시작을 <오로지 먹는 생각>과 함께 합니다. 행복해요ㅎㅎ 이제는 너무 유명하신 다락방님. 알라딘에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해피 뉴 이어^^

다락방 2018-01-02 08:18   좋아요 0 | URL
저는 완전 더 유명해져도 계속 다정하겠습니다. (응?) ㅋㅋㅋㅋㅋ

고마워요, 문나잇님.
계속 읽고 계속 맛있는 것 드세요.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렇게 다정하게 만나요!
:)

독서괭 2018-01-01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라면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글 뭘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의 사적인 얘기가 어째서 재미있는 거지? 자꾸 다른 글도 읽고 싶어지는 나를 어쩌면 좋지?
합니다ㅋㅋ

다락방 2018-01-02 08:19   좋아요 0 | URL
떡라면 끓여 먹었어요. 물을 조금 더 많이 넣었어야 했는데 싱거울까봐 쫄았더니 짜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먹었어야 됐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좋긴요, 독서괭님. 자주 오시면 되지요. 자주 오셔서 열심히 읽고 이렇게 열심히 댓글 달아주세요. 우리 열심히 지내봅시다. 아하하핫.

스윗듀 2018-01-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다락방님의 원더풀 라이프를 조용히 응원하고 2018년에는 그 일부가 될 거에요 히히힛

다락방 2018-01-02 08:20   좋아요 1 | URL
스윗듀님은 어쩜 말도 이렇게 이쁘게 해요? 히히히히히.
그래요, 일부가 됩시다.
박정현의 [그 다음해] 노래 생각나네요. 일부가 되고 싶었다는. 후훗.
그러다 일부 아닌 하나가 되는..... (응?)

새해엔 더 자주 봐요, 스윗듀님!

카스피 2018-01-0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8-01-02 08:20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딩 2018-01-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쿨한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다락방 2018-01-02 09:35   좋아요 1 | URL
쿨하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저인데요.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ㅎㅎ

초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에는 자주 뵈어요!

프레이야 2018-01-06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걸 이제 봐요. 축하해요. 저 영광의 책을 저도 읽었다는 거 영광이죠 ㅎㅎ 낭독녹음했지요 점자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도 귀로 읽으실 거에요.

다락방 2018-01-09 08:24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 낭독녹음하셨던 거 기억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헤헷.
저는 오늘 [고마워 영화]에서 읽었던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요.그 영화는 본 지 오래되어 내용은 잘 생각안나는데, 프레이야님이 그들에게 사랑 말고 다른 게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러니까 서로이면 너무나 충분한 것에 대해 글을 쓰셨잖아요. 그거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언젠가 글로도 정리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는 모르겠어요.
 

뭐 먹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아무거나' 라는 대답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혹은 '난 다 좋아'라는 것도.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그럼 낙지볶음 먹을까?' 이러면 '그건 너무 맵잖아' 이러고, '그러면 회 먹으러 갈까?' 이러면 '난 날 건 싫더라' 이러고 '그러면 삼겹살 먹을까?' 이러면 '고기 먹으면 냄새 너무 나지 않냐?' 이러고. ㅋㅋㅋㅋ 어딜가나 이런 사람 있고, 나는 뭔가 '이게 좋다' 똭 말하지 않으면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거래서 싫고...하는 사람들이 넘나 '왜저러나' 싶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서 책 읽다가, 이 부분 보고 빵터졌다.


그러니까 상황은, '세레나'의 남편이 죽었고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 후에 이웃들이 요리를 했다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모두 세레나의 집으로 초대하는 거다. 그런데 세레나의 딸인 '린다'와 사위 '제프'가 세레나에게 외식을 하자고 한다. 맛있는 것을 사먹자며. '세레나'는 집에 이렇게나 음식이 많은데 왜 굳이 나가서 먹자는 거냐고 안내켜 하는데, 그래도 굳이 맛있는 걸 대접하겠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의 대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짜증나고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데로 선택하고는 거긴 별로라는 엄마에게 '가시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한다. 어쩔 ㅋㅋㅋㅋㅋ









물어보질 말든가 이것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당신은 나를 잃은걸까.
    from 마지막 키스 2018-01-02 09:30 
    내가 읽은 건 이 책의 구판이다. 이 새로운 표지가 더 예쁘네..어쨌든.'앤 타일러'는 이 책에서 중년 부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좋았던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이 그들을 부부로 만들었으며, 그리고 지금도 마찬자기로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서로를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가족을 꾸려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망가져버렸다는 걸 깨닫는 장면도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21 | 4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