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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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중년이라 칭하는 지금의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내 주변 가까운 어른들 중에는 딱히 배움이 깊다거나 넉넉한 재산을 가진 어른이 없었고, 막연하게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친구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아 학창시절이 괴로웠던 건 아니었지만 공부하기는 싫었던 여느 학생들과 같았고, 그 시절 가장 나를 재미있게 했던 건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팝송을 듣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여놓았는데 그 후로 엄청나게 비디오테입을 빌려다 영화를 봐서 하루에 여러편을 본 적도 있고 나중엔 로보캅 1을 빌리면 사장님이 2,3 편은 그냥 빌려주시곤 했더랬다. 시험기간에도 소설책을 읽어서 여동생은 그런 나를 답답해했다. 내게 가장 재미있는 건 영화 보기와 소설 읽기 그리고 팝송 듣고 가사 해석하기 등이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지금에 와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고, 그런 한편 내 배경을 원망하기도 자주였다. 나에게도 나를 이끌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내 재능을 발견해주고 내 진로를 함께 고민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자애가 배워 무얼 하냐는 아버지와 치열하게 싸워 가까스로 대학을 보낸 엄마에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그러다가도 불쑥 불쑥 막연하게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지'가 아니라, '너에겐 이런 재능이 있으니 이런 학교에 가서 이런 과에 가 공부하면 어떻겠니' 라고 잡아줄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최근에 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3> 에서 네가 생각하는 그 대학 말고 이 대학에도 가능성을 열어봐, 라고 언니가 라라 진에게 얘기했을 때, 그게 그렇게나 부러웠다. 내게 주어진 환경은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 돕지 못했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한다.



학창 시절 딱히 흥미로운 공부는 없었다. 국어는 그냥 잘했지만 사실 국어를 못한다는 건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국어를 '못'할수가 있지? 그렇다고 맨날 국어 백점 받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국어는 내게 어려운 과목이 아니었다. 영어는 좋아해서 열심히 했다. 사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팝송을 미친듯이 따라 부르고 해석해보고 외우고 그랬더니 영어 점수는 그냥 따라서 좋아졌다. 문제는 그 외의 다른 과목들이었다. 특히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들은 내게 쥐약이었다. 암기는, 모두가 알겠지만, 시간을 들여 외워야 했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외워지는데 나는 달달 외우는 것에는 영 흥미가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암기 과목 만큼은 시험 보면 높은 점수를 받곤 했는데, 나는 암기 과목에선 완전 고꾸라졌다. 나는 암기력이 겁나 떨어진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그랫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전화번호 외우는 건 너무 식은죽 먹기라서, 내가 암기력이 떨어졌던 건 암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으므로 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어, 그러니까 대략 2015-2016년부터 여성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번 언급햇지만 '최명희' 의 《혼불》을 읽다가 아니 세상이 왜이렇게 똥같지? 왜이렇게 여자들 살기가 엿같았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이걸 알게 되나? 그렇게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을수록 더 알고 싶어져서 관련 강의도 찾아다녔다. 회사 업무가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마포로, 대학로로 그 외 다른 곳으로 이동해가며 강연을 들으러 다녔다. 페미니즘 철학 강의를 들으러 주말에 창원에 가기도 했다. 내가 알고 싶고 재미를 느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내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는 것에 공부의 재미가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식이 부족하면 상처 주는 말도 더 하게 되는 거였어. 나는 점점 더 과거의 나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페미니즘 책 읽기를 계속했고, 알게될수록 여성학이 그저 여성학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어학, 사회학, 인문학, 신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철학등의 학문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뒤늦게 알고 깨닫게 되니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의욕만큼 잘 되지 않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 내가 어릴 때 공부를 했다면. 암기과목을 열심히 암기했다면. 국사와 세계사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윤리까지, 내가 암기과목을 제대로 다 외우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다면, 이렇게 지금에 와서야 맨땅에 헤딩해가며 책을 읽지 않아도 됐을텐데. 책 읽다가 이게 무슨 말이야 찾아보는 일 없이 내 배경지식을 끌어오면 됐을텐데. 나는 과거에 내가 공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지만 그러나 내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의 젊은 학생들에게 지금 열심히 공부해두라고, 그것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걸 말하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내게 그러했던것처럼, 한낱 잔소리로 들리겠지. 아마 귀에 닿기도 전에 튕겨져 나가는 잔소리겠지.



나는 헤르만 헤세가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만들어낸 인물, 그러나 자기 자신을 반영한 인물 '한스'를 보는데 부러웠다. 작은 마을의 반짝거리는 학생, 집이 부유하지도 않고 대도시도 아니지만, 그러나 자기 스스로 빛이 나는 한스를, 마을 사람 모두가 알아보고 도우려고 하는 것이 부러웠다. 이 작은 마을에서 출세하는 길이라고는 좀 더 큰 곳으로 가 신학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의 규율을 잘 따라 종교인이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 마을에서 최고 잘난 학생이긴 하지만 과연 그 시험에 합격을 할 지를 두고 마을 사람 모두가 긴장과 기대를 한다. 시험을 치르고 합격을 하고 입학을 앞둔 짧은 기간에는, 그런데 네가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더 잘 따라가려면 그리스어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수학을 좀 더 예습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교장선생님과 신부님이 앞다투어 개인 과외를 자처하는데 나는 그것도 부러웠다. 물론 여기에는 한스가 뛰어난 학생임이 전제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알아봐주고 예습을 하게 해주다니, 앞으로 쭉쭉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 잘 갖추어진 게 아닌가 싶은 거다.


그러나 기숙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따라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와 함께 하는 일, 우정을 키워가는 일은 한스에게 바라는 일이었고, 그런데 자신이 사귄 친구와 우정을 이어나가려면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덜하고 성적이 떨어지니 학교에서는 '너 그 친구랑 놀지마!' 라고 윽박지르고, 설상가상으로 기숙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혹은 사고로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자 한스는 우울함을 겪는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한스는 그렇게 방황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결국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아이들과 같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보다 경력은 뒤쳐진 채로. 한스는 새로운 일을 배우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아주 아이었을 때 친구들과 노는 일은 얼마나 즐거웠는지, 자연은 또 얼마나 자신에게 주는게 많았었는지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 모든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할 정도로 그는 고통 속에 놓인다.



한스는 공부를 잘하는 뛰어난 학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 못했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그걸 충실히 따라가려다보니 어느 순간 에너지가 소진되어져버린 거다. 그러니까 내가 그토록이나 가지고 싶었던 과거가 한스에게 있었는데, 그런데 한스에게 그 현재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거다. 지금의 중년인 내가 '너 그거 좋은 기회를 가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재를 사는 한스가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예전처럼 낚시도 하고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 라고 말하는데.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동네 아주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 행복한 어린 시절이 지나가버렸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지식을 채우던 어린 시절이 한스에게 있었는데 한스는 그것이 괴롭다.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 놓친 수많은 것들을 갈망한다. 그리고 한스는, 그 괴로움과 고통을 이겨내기가 벅차다.



아마 한스 또래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한스의 괴로움과 고통에 더 무게를 둘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될 것이다. 중년의 나는 내 입장으로 보게 돼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결코 무용한 독서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놓지 말아야 할 것, 어린 시절에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책은 한스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읽어야 하지만, 그러나 나처럼 한스 또래의 자식을 두었을법한 어른들도 이맘때쯤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중년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른의 눈으로 한스를 보았는데, 도대체 헤르만 헤세는 이 괴로운 어린 한스를 만들어냈을 때 몇 살이었을까. 검색해보니 1906년에 쓴 작품이더라. 헤르만 헤세는 1877년에 태어나 1962년에 죽었다. 그의 나이 서른에 한스를 통하여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고통이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이 서른이 되어도 그 때의 괴로운 기억은 그에게 온전히 남아있었던 탓이리라.



일전에 유명한 북튜버가 자신의 뛰어난 영어 실력은 초등학교 때부터의 엄청난 교육과 훈련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따로 유학을 간게 아니어도 영어 실력이 뛰어난 거라고. 그러나,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걸 또 겪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시절이 괴로웠다는 거였다. 한스를 읽는데 그 북튜버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뛰어난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은, 이렇게나 '괴로웠던 때'를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일까. 좋은 대학을 가고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과거의 그 고통을 보상 받는 게 되는 건 아니라고, 헤르만 헤세가 말해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이미 절망하고 무릎 꿇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배경지식을 많이 다져두면 어른이 되어서도 지식을 쌓는 일이 더 유리해질텐데, 그런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기쁨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니, 이 나이가 되어도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스는 인생이란 수레 바퀴 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나는 인생이란 수레 바퀴를 가까스로 피해가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수레바퀴라는 건 변함없는 것이라면, 역시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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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5-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 못한 길은 후회가 남아도 가지 않은 길은 아쉬움이 남겠죠. 그 후회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그 길을 대신 가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팔구십년대의 암기 과목 중에 스키마로 남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시험이 끝나면 달려가던 슈퍼에서 과자를 집기 전에 공부한 내용이 망각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을 보면 다락방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하셨다면 그 시간에 볼 수 있었던 영화나 책을 못봤다고 후회하시고 계실지도 모르죠. ㅋㅋㅋㅋㅋㅋ
잘 사는 것은 각자 생긴 것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다르겠죠. 지금 충만하고 행복하다면 그 감정에 소비될 돈을 벌며 가급적 그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보기에는 다락방님은 지금 충분히 잘 살고 계세요. ^^

다락방 2023-05-16 08:3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고 더 좋은 직장에 가고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됐다면, 내가 놓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하거든요. 그게 만약의 지금처럼 책 읽고 글 쓰는 삶이라면, 저는 지금의 이삶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삶에 큰 만족을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어요. 그러니 어쩌면 저는 이렇게 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핫.

은하수 2023-05-1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구해 읽었던 헤르만 헤세네요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요. 저도 한스 보면서 사실 이해가 안됐거든요. 젊을 때 읽었으니까... 저렇게 지원해주는데 자꾸 어긋나고 힘들어해서... 저도 지원 없는 대학공부하느라 힘들때였거든요. 전 정신적 고뇌를 겪을 새도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있을 때라 함... 배가 불렀네 배가 불렀어... 저런 고뇌의 시간도 보낼수 있고... 이랬었죠! 시간이 지나고서는 이해하게 됐지만요. 그래서 제목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더라구요

다락방 2023-05-16 08:41   좋아요 0 | URL
저 어릴 때 데미안이며 싯다르타며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나서 데미안도 다시 읽어보려고 사뒀어요. 지금 읽으면 데미안도 완전히 또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수레바퀴 아래서는 읽다보니 제가 읽은 것 같지 않고요. 그렇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헤르만 헤세 잘 쓰네!! 막 이러면서 읽었어요. 후훗.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닌가 봐요.

한스의 타고난 능력과 주변 어른들의 도움은 부러웠는데, 그것은 또 오지랖과 강압이기도 할것이기에 한스 입장에서는 괴로웠던 거로구나 하면 역시 어른의 역할은 어려운 것 같아요. 놔둘 수도 없고 참견할 수도 없는 적정선은 어디일까요. 좋은 어른이 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3-05-15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3개 눌렀습니다.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고 이런 글을 쓰시는 다락방 님 사......는 아니고,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인생과 수레바퀴 문장 명문이네요.
십대 시절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를 좋아했던 잠자냥이라서 더 이 글이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다락방 2023-05-16 08:43   좋아요 2 | URL
좋아요 세개 접수합니다. 보답으로 주기적으로, 자주 땡투 드리고 있습니다.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땡투 들어오면 아 다락방이로구나, 하시면 됩니다. ㅎㅎ

그리고 사.... 까지 하고 망설이시다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리뷰나 페이퍼 읽다 보면 잠자냥 님은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자냥 님은 공부 잘했지만 겸손한 분이시고 저는 공부 못했지만 자뻑 충만한 … 흠흠.

잠자냥 2023-05-16 09:01   좋아요 2 | URL
음… 저 수능 수학 6점 받았습니다만…. *먼산*

다락방 2023-05-16 09:03   좋아요 2 | URL
음… (같이 먼 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05-16 10:03   좋아요 0 | URL
거기 뭐 재미있는 거 있나요? (같이 먼 산)

새파랑 2023-05-15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이런 리뷰를 남기시는 다락방님은 천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전화번호도 좋아하는(?) 사람것만 외우신거 아닌가요? ㅎㅎ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게 인생인거 같습니다~!!

다락방 2023-05-16 08:45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이야말로 천재십니다! 맞습니다, 전화번호도 좋아하는 사람만 외워요. 그래서 전화 걸어본 적 별로 없어도 외우는 번호가 있고 자주 걸어도 못외우는 번호가 있습니다. 구남친들 중 여러명은 외우지도 못했고 지금 기억 안나지만, 열렬히 짝사랑 했던 남자의 번호는 아직도 기억 한답니다. 심지어 구남친 이름도 기억을 못합니다. 얼마전에 이메일이었나 어떤 이름 보고, 이 사람이 누구지????????? 하다가 구남친이라는 걸 늦게 깨달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란 인간, 이렇게나 감정과 뇌과 분리되지 않는 인간인 것입니다. 이런 정확한 새파랑 님 같으니라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5-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르치스와 수레바퀴의 내용이 비슷한 것 같고 잘 기억나지 않네요~
그나마 데미안은 워낙 다른 책에서 많이 언급되어서 대략 기억나지만^^
10대 키우는 중년으로 다시 읽기 좋네요!
그리고 학창시절 암기과목은 시험용 아닌가요? 시험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다락방 2023-05-16 08:46   좋아요 1 | URL
나르치스와 수레바퀴 비슷해요, 햇살과 함께 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재미있었는데 수레바퀴도 재미있네요. 크- 데미안 재독 들어가야겠어요. 헤르만 헤세 재미있네요, 햇살과 함께 님.
저는 너무 건방지고 저잘난맛에 살아서 시험을 위해 암기하지 않겠어! 이러면서 암기를 안하는 그런 아이였고 그래서 성적이 엉망진창 … 저는 왜 그러고 살았을까요? 대체 왜? (절레절레)

독서괭 2023-05-15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래전에 이 책 읽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요 ㅋㅋ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어떻게 살았든 안 가 본 길에 대한 미련은 남을 듯요.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 너무 소진되어서 나중에 어떻게 자랄지 걱정인데.. 정답 말고, 진짜 나에게 맞춤형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행운일 것 같습니다. 한스에게도 그런 어른은 없었던듯요.
학창시절에 공부 열심히 했던 1인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수능 끝나고 모든 걸 잊었기 때문에 역사 지식 세계지리 등등 하나도 남은 게 없습니다 ㅋㅋ 물론 서른 넘어서도 수능공부 하느라 외웠던 시시콜콜한 지식을 그대로 외우고 있는 분들도 있긴 하더라만요;; 제 경우엔 주입식 교육으로 남은 게 없어요.. 휘발....(욕아님..) 지금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하시는 공부가 남는 공부입니다!

다락방 2023-05-16 08:49   좋아요 1 | URL
저는 데미안이 기억 안나서 이제 데미안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니 사둔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읽었던 책 다시 읽어야 하는 이 인생, 뭐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정말 방향치이기도 하면서 그림을 못외우는 사람이고 그래서 지리 과목이 전혀 흥미도 생기지 않고 기억나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훌쩍 어른이 되어 여행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지구본 사두고 여기에서 여기까지 가는거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저란 인간은 관심이 생겨야만 비로소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인가봐요.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죠. 다 관심이 없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그나마 주입식 교육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나마 주입식이어서 했던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런건 주입식 아니어도 했을 것 같고 … 어쨌든 다 지난 일이니 지금은 지금에 충실하겠습니다. 필승!!

책읽는나무 2023-05-1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이란 수레바퀴를 가까스로 피해가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다락방 님이 살아오신 인생이 또 살아갈 인생이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읽을 시기에 놓인 사랑하는 조카에게 ‘이 책 읽을래?‘라고 포스트 잇을 붙여 놓고 집을 비운 이모의 행동은 수레바퀴를 잘 피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단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중학시절 국어 선생님의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의 의무 때문에 중학교 들어가서 사춘기가 시작되어서였는지? 책 읽는 게 너무 싫었었어요. 첫 3월 첫 책이 <백범일지>였었는데 첫 달부터 안 읽었거든요ㅋㅋㅋ 책이 제게 좀 따분하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백범일지는 제게 늘 양심의 가책으로 다가오는 책이어 읽어야지! 생각은 늘 하고 있는 책이긴 합니다. 그래도 많이 안 읽은 와중에 수레바퀴는 완독했었던 것 같네요. 수이 님처럼 엉엉 울진 않았고 마음이 좀 슬펐던 기억만 어렴풋하게 남았던....근데 제겐 책이 좀 어려웠어요. 그리고 헤세의 작품이 좋아 그 유명한 <데미안>을 읽었었는데 그 후로 제겐 수레바퀴의 주인공이 싱클레어가 될 정도로 혼동을 하고 있었더군요.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몇 년 전 수레바퀴를 다시 읽었었거든요. 그리고 데미안을 또 읽었더니 아직도 싱클레어로 혼동ㅋㅋㅋ
암튼 수레바퀴를 읽고서 헤세가 더 좋아졌고, 왜 학생들에게 권하는 건지 알 것 같았어요.
전 학창 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닥 많이 없었던 건지? 한스에게 막 공감을 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슬펐던 느낌은 진하게 남았어서 그게 뭘까? 하고 재독하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읽혀졌어요. 제게도 누구처럼 육아서였어요ㅋㅋ
그래도 슬픔은 남더군요.
저도 이번에 투비 적립금으로 딸들을 위해 수레바퀴 책 사주기로 약속을 했어요.
땡투 미리 예약 걸어놓고 갑니다^^

다락방 2023-05-16 08:52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 저는 책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한글을 알고부터 바로 책읽기및 신문 읽기를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읽으라고 한 책들은 읽기 싫더라고요? 대학에서는 ‘이 책에서 시험 문제 날거니 읽어보세요‘ 라고 소설 한 권을 선택해주었는데, 원래 읽으려던 소설이었지만 그 순간 똭 읽기 싫어져서 안읽고 시험보러 갔어요. 대체 이런 똥베짱은 왜 튀어나오는 걸까요? 절레절레.
저는 책나무 님이 백범일지 언급하시니 <옥중서신> 생각나네요. 오래전에 친구가 선물로 주었는데 오래 안읽혀두고 묵혀두다가 팔았 … 저에겐 그 책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어요.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안읽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양심의 가책인 책 한 권쯤은 있는 건가 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참 좋고 재미있더라고요, 책나무 님. 저는 그래서 데미안 재독 들어갈 예정입니다. 데미안 다시읽어봐야지 기억 하나도 안나, 하고 진작에 사두었거든요. 헤르만 헤세 읽기 좋습니다, 책나무 님. 만세!!

물감 2023-05-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공부랑은 거리가 멀고 먼 학생1이었고, 학교다닐때 공부좀 할걸 후회하는 성인1입니다만 그냥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시간을 돌리지도 못하는데 계속 후회하면 뭐하나 싶어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고 있습죠. 한스나 북튜버처럼 살아도 후회하고, 저처럼 살아도 후회하는 게 인생이라면 누굴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다 싶고요ㅋㅋㅋ 헤세 작품의 특징이 그거 같아요. 너는 틀린게 아니야 라고 느끼게 해주는거.

다락방 2023-05-19 13:4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물감 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쨌든 지금의 내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답이겠지요. 헤르만 헤세 너무 재미있어요, 물감 님! 저는 지난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헤세 꿀잼인데? 이러면서 다 뿌숴버리겠다 싶더라고요.

저 한 이십년전쯤에 데미안 읽었었는데 지금 기억이 안나거든요. 이제 다음 차례는 데미안으로 할까 합니다!!

물감 2023-05-19 13:51   좋아요 0 | URL
저는 나르치스 그거 안읽었는데 다음에는 그걸 읽어야겠습니다ㅎㅎㅎ

다락방 2023-05-19 14:01   좋아요 1 | URL
나르치스도 엄청 재미있어요, 물감 님!! ㅎㅎ
 
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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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성공했다. 이 리뷰는 여러분 미래의 퍼핏 쇼 독서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친절해 … 샤라라랑~)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환상열석에서 불에 탄 시신들이 연달아 발견된다. 그 시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심한 고문을 당했을 것이고 불에 탔을 것이다. 피부를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 고문을 했던 것도 그렇고 육체를 불에 더 잘타게 촉진제를 부은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서, 소설의 초반 이 시신과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보고는 으, 이렇게 잔혹한 고문과 화형이라니, 어떤 미친놈이 또라이처럼… 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간 읽어왔던 많은 형사, 프로파일러들이 등장했던 책처럼, 추리와 미스터리 책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 속 등장하는 범죄자이며 가해자인 인물도 소시오패스에 싸이코패스이겠거니 생각했다. 범인은 언제나 그런 보잘것 없는 놈이고, 이제 어떻게 그(들)를 잡느냐가 관건일 것이었다.


액션/추리/스릴러/미스테리로 분류되는 장르들의 소설을 내가 즐겨 읽는 까닭은,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 때문이다. 크게는 범죄가 나오지만, 그 범죄를 추적해 범죄자를 잡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를 쫓는 경찰들과 프로파일러,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의 사람들까지, 그들이 살아온 삶과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인간을 잘 보여주고 캐릭터도 생생하게 드러난다면, 그야말로 잘 쓰여진 추리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는 '범인은 바로 너지!'를 추적하는 과정에 있는게 아니라, 그 범죄가 일어나고 벌을 받게 되기까지 참여한 모든 인간과 그들로 구성된 구조, 삶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환상열석의 시신들중 하나에는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그 지역의 경사 '포'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포로 말하자면 이전 수사 과정에서 엄청난 실수를 해 정직중이었다. 그런 포가 이 사건에 소환되는데, 과연 가해자는 그를 '왜' 불러낸것일까. 이 연쇄살인에 포는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다음 피해자를 가리킨 것일까, 아니면 포가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는 살인이라는 것일까. 알지 못한 채로 이 수사에 포가 참여하게 된다. 


소설의 처음부터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상당히 높은 아이큐의 소유자, 열여섯에 대학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두 개나 딴 여자, 그러나 친구가 하나도 없는 괴짜. 통계와 데이터로 모든 걸 다 추측해낼 수 있는 '틸리'가 '감'으로 증거를 따라 다니는 '포'와 파트너가 된다. 성별도 성격도 경험도 당연히 그동안의 삶의 과정도 모두 상반된 이 둘이 파트너가 되지만, 그러나 그들은 좋은 호흡을 자랑하며 이 수사에 함께 임한다.



액션/추리 소설이 아니라도,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왜'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를 왜 하느냐가 바로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사고일 것이다.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사상이 들어가고, 독자인 나는 그걸 읽으면서 그에게 동의하느냐 설득하느냐 혹은 반목하느냐로 작품의 재미가 결정될 것이다. 좋은 문장은 당연히 소설에 있었으면 좋겠고 나는 확실히 좋은 문장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매혹당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완전히 매력적이라면, 좋은 문장쯤은 건너뛰고 갈 수도 있다. 《퍼핏 쇼》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만약 이 책이 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별을 넷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별점이 뭣이 중한디… 그러나, 다섯을 줄 수 밖에 없었으니, 그건 'M. W. 크레이븐'이 하고자 하는 《퍼핏 쇼》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속에 담긴 사상이, 내가 가진 사상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말에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한다면 아마 폭력은 절대 끊어지지 않겠지. 그런데 자, 이 책을 읽다 드러나는 폭력을 만나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왜 안돼?' 가 되어버리는 거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이건 이래야 하는거 아니야? 가 되어버리는거다. 분명 잘못된 건데, 그리고 그러지 않는 쪽이 낫다는 걸 아는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걸 이해하게 되는거다. 우리는 또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고 말한다. 나 역시 당연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말에도 모든 가해자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가해자에게는 서사를 주고 어떤 가해자에게는 주지 않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일일까? 그건 아마도 그 사건을 맞닥뜨린 제삼자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피해자가 결정하는 일일까?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정의가 불의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일은, 사람이 사는 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면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라서,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고 하게 되는 말과 그러나 그 이야기의 다른 면까지 알게된 후에 하게 될 말이 다를 수 있는 거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가해자를 응원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미친 또라이 가해자를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이제 그쯤에서 멈추라는 말 대신, 내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마저 다 읽지 못하고 범인을 쫓는 과정의 포와 틸리를 보고난 후 잠들었는데, 새벽에 벌떡 일어나서 나는 가해자가 누군지 갑자기 알았다. 아니, 정확히 가해자를 맞혔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이 사람이어야 해, 그래야 맞아!' 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범인을 맞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이야기이고 결국 삶이며 그 안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의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고통 받은 사람은 누구일지를 깨달은 까닭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작가도 안다. 그래서 등장 인물의 입을 통해서도 여러번 얘기한다. 포가 괴로운 까닭은 잘못임을 알기 때문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돌린다면 자신은 같은 '실수 아닌 실수'를 다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반복해 얘기해주고 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야, 그렇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라고. 독자인 내가 가해자의 편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과연, 정의는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인가. 정의는 선이며 언제나 나는 정의와 선의 편에 서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정의와 불의로 감춰진 인간을 맞닥뜨리면 그러나 정의가 선인가를 고심하게 되고, 불의는 정말 불의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불의는 불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퍼핏 쇼는 보여준다.



최근 내가 읽은 추리/스릴러/형사물 중에 가장 좋은 책이었다. 처음 인물들이 등장할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들이 사건을 쫓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 그들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들과 그리고 이 잔혹한 사건이 가진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내가 잘못하는 거라는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를 묻는 것도 그렇다. 응징이 어느 틈에 나에게 정의가 되었다. 나는 포가 마지막 버튼을 누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하지 않겠지만)어떤이의 간절한 '생'을 바라면서 소설의 마지막장까지 내처 읽었다. 


다음 시리즈가 얼른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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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5-04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른 분들 리뷰 슬쩍 눈 감고 봤는데(응?) 이 시리즈 기대된다, 파트너 캐릭터 조합이 재미나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읽어보려고 합니다.....
시리즈라는 것에서 일단 놀람. ㅋㅋㅋㅋ

다락방 2023-05-04 11:51   좋아요 4 | URL
정말 오랜만에 불쾌함없이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에요. 작가가 캐릭터에도 애쓴것 같아요. 전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라서 좋았어요. 막판에 계속 울었네요 ㅠㅠ 시리즈 죄다 챙겨볼 참입니다!! 으하하하.

리뷰대회 하려면 그러니까, 이렇게 재미있는 책으로 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래야 리뷰 쓰는 사람 마음이 평온하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3-05-23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장님 혹시 이거 현금 10만원 받음? (문득 궁금해서 지금 찾아봄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5-23 16:17   좋아요 3 | URL
22프로 세금 떼고 준대요. 아직 못받았고 5월달 내로… 내 돈 22,000 원 ㅠㅠ

잠자냥 2023-05-23 16:21   좋아요 2 | URL
와우 만천하에 자랑해야죠! ㅋㅋㅋㅋㅋㅋㅋ
돈 받는 날 자랑하시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거운 세상 속 부서진 나를 위한 책 -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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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 데비 텅은 자신에게 찾아왔던 우울증과 불안, 자책, 그로 인해 괴로웠던 경험과 상담을 받으며 서서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고, 세상에 자신의 경험을 알렸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같은 사람이 또 있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이란 부제가 붙었으니 아마도 우울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데비텅이 언제나 내세우는 MBTI 인 INFJ 인 사람들은 더 공감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그간 데비텅 읽고 좋았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 책은 그중 제일 별로였다. 내가 우울하지 않아서 그런건지 성격이 너무 달라서 그런건지 읽는 내내 친구라면 관계 끊고 싶어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가 됐든 살을 붙이지 않고 뼈대만 말하자면, 그러니까 인정사정 없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아픈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싫다.



자기가 가진 부정적 감정들 혹은 고통스러운 감정들, 그것이 크던 작던 표현하지 못하고 차곡차곡 감추고 쌓다가 우울증으로 터져나온 걸로 데비 텅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데비 텅이 자기 자신을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몫의 행동들을 해내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혹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행동들이 분명 사소하게 나타나는데-그래서 내가 친구하기 싫은거임- 자기가 표현을 안한다고 혹은 감춘다고 생각하는 게 나로서는 영 수긍이 되질 않는 거다. 중간까지는 읽다가 그냥 팔아버릴까 생각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사랑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이 1인분의 몫을 살아가는게 제일 좋고, 그게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가끔 이렇게 우울증이든 뭐든 어떤 연유로 채 1인분을 못해낼 때, 0.7인분 정도의 몫만 해내고 있을 때, 그럴 때에 짜증내거나 돌아서는 게 아니라 부족한 0.3인분을 채워갈 수 있도록 옆에서 머물고 들어주고 감싸 안아주는 것. 데비 텅이 서서히 세상 속에 다시 섞여들어가고 자기를 돌볼 수 있게 된 건, 너 상담 선생님 찾아가면 어때? 너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오늘은 기분이 어때? 라고 물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은 거다.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사람, 0.7인분이 되어도 떠나지 않는 사람.


데비 텅은 전작에서도 INFJ 인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건 자신의 애인이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연결해줘야만 세상과 이어지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때에도 그 연결을 내가 해주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번 책에서 데비 텅 보면서 데비 텅 옆에 나는 못있겠다 싶은거다. 


역시 나는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군,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자신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옆을 지켜주는 애인이 데비 텅 옆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데비 텅이 보냈던 시간을 마찬가지로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성향이 데비 텅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맞춤한 연인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나 말고. 나는 그런 사람 아님. 



아무튼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저마다 다른 사람들과 친구하고 사랑도 하고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0.7인분 한다고 떠나버리는 나같이 싸가지 없는 사람만 있으면 세상 각박해서 어찌 사누.. 온정없는 월드가 되겠지. 데비 텅 같은 사람이 더 많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데비 텅의 작품이 한국에 번역도 되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겠지. 



조카가 데비 텅 좋아해서 신간 나왔다길래 주려고 산거였는데 나는 여태 읽은 데비 텅 중에 제일 별로였다. ㅎㅎ

그래도 조카는 내가 아니고 내가 조카도 아니고, 조카 엠비티아이 뭔지 모르겠지만(다른 사람꺼 들어도 까먹고 내꺼 외우는 것도 3년 걸림), 조카는 또 좋아할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임을 존중하며 조카에게 역시 계획대로 주도록 하겠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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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6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위에서 하도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종종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서 해봤는데 (결과 INT*) 해설을 보면 꼭 다 맞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리고 살아가면서 성격은 변하기 마련이니 재미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

다락방 2023-04-07 15:12   좋아요 2 | URL
저는 하긴 했지만 딱히 관심도 없었고 그리고 해봤자 ‘이걸로 나를 어떻게 알아, 나는 나다!!‘ 이런 마인드여 가지고 ㅋㅋㅋ 아무튼 데비 텅은 제 타입이 아닙니다. 흠흠.

책읽는나무 2023-04-07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고 있는데요. 뭔가 죄다 내 얘기인 것 같아 급 우울하다가, 우울증 예방법? 치료법 같은 얘기들이 뒤에 나올 것 같아 귀 쫑긋입니다.
다락방 님은 긍정적인 뇌 회로가 발전되어 있는 사람이시군요? 뇌 회로쪽이 발달되어 있는 구조가 긍정적, 부정적으로 발달된 부분이 다르다는군요. 부정적인 편향이 심한 사람들이 당연히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크구요. 예방하는 방법은 낮에 햇볕 보고 밤에 잘 자야 한다던데 다락방 님은 매일 예방하고 계시기에 우울증을 앓지 않으시는 건가?싶습니다ㅋㅋㅋ
그런 영향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우울하려다가도 우울증이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23-04-10 09:37   좋아요 1 | URL
저는 부정적인 사람들하고 얘기하면 피로해집니다.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기보다 안될 가능성을 품고 얘기하는 건 정말 기빨리고요, 그렇게 안된다는 생각만 하는데 될게 뭐람 싶어서요. 말씀하신 대로 긍정적인 뇌 회로와 부정적이 뇌 회로가 있는거라면 저는 긍정적인 쪽만 발달한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낮에 부지런히 햇빛도 보고 밤에도 잘 자네요.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지는... ㅋㅋㅋㅋㅋ

책나무님 해 좋을 때 부지런히 걸읍시다. 걷는게 최고인 것 같아요! >.<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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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는 마술사다. 마술사였던 아버지가 쓴 책을 교본으로 삼아 언제나 몸에 지니면서 마술의 기술을 터득하고 연습하고 그리고 쇼를 한다. 아직 관객이 많지도 않고 무대라고 해봐야 시장에서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게 전부이지만, 마술을 사랑한다. 그런 제니에게 탐정 '로버트'가 찾아와 자신의 일을 도와주기를 바란다. 종교로 자리잡은 심령학에 대한 비밀을 함께 파헤치자는 것. 폭스 자매들이 이끄는 강력한 심령학회 회원이 되어 영매를 만나 상담도 받고 그렇게 죽은 남편을 불러내달라고 하면서 그들의 사기 행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사해달라는 거다. 게다가 그렇게 이 탐정회사의 직원이 되면 수당도 크게 받는 터라, 그 돈이라면 생활비는 물론 마술 쇼도 더 해볼수 있고 게다가 심령이라니 호기심도 생겨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제니가 도대체 어떤 사기가 벌어지는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어쩌면 심령을 정말 만날 수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이 심령을 본다는 세 자매에게 이끌린다. 가짜 신분을 만들어 죽은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찾았건만, 엉뚱한 병사가 찾아와 말을 거는거다. 제니는 그 병사가 자신이 본 적 없던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고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걸까 궁금해한다. 자매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비밀을 알아보고자 하지만 결국 정체가 탄로나고, 이에 그녀는 세자매의 대장인 언니 리아를 찾아가 '나도 영매가 될게' 라고 한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심령과 만날 수 있었는지를 듣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처음 제니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했던 탐정 로버트와 그리고 자매들에 얽힌 사연들이 차차 드러나면서 책은 결말을 향해 간다. 죽은 영혼을 불러내 대화를 한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틈에 나도 제니처럼 '아니 잠깐만,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되어버린다.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되고 게다가 영화 <사랑과 영혼GHOST>를 몇번이나 보았으므로 영혼과 대화하고 빙의되는 것도 머릿속에 너무 잘 그려졌다. 대수롭지 않았던 하나의 작은 일이 그러나 큰 일로 닥쳐오고 그 일들이 여기와 저기에서 얽혀있고 어릴 적의 죄책감이 시간이 오래 지난후에도 여전히 남아있고 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펼쳐진다. 읽으면서 영화화 되어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이야기로도 재미있고 캐릭터로도 아주 매력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읽는 내내, 그들이 정말로 죽은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 넓은 지구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좀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거다. 



얼마전에 '유키 하루오'의 《방주》라는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불쾌하고 짜증이 났더랬다. 1993년의 남자 작가가 쓰는 글은 이런거란 말인가. 나는 젊은 남자 작가들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다.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팔리는 책을 쓸 순 있겠지만 그 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렇게 윤리도 없고 철학도 없는 책을 써내다니. 필립 로스가 그리워지는 거다. 필립 로스는 안타깝게도 책 속에서 페미니스트를 비아냥 댈지언정, 글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썼거등? 그리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다고! 그런데 젊은 남자 작가들은 늙은 남자 작가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거야? 막 이렇게 되었단 말이다. 화딱지가 났다. 그런데,


《심령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의 '조나탕 베르베르'는 달랐다. 이 1994년의 남자 작가는 무엇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캐릭터도 생생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그러나 역사도 공부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줄 분명히 알고 하는 이야기를 나는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젊은 남자 작가들이 다 그런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아닌' 쪽에 있는 그런 작가였다. 그래서 기분이가 좋아졌다. 


일전에 '김영하'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느꼈지만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조나탕 베르베르의 책에서 그걸 느꼈다. 음, 정확히는 그것과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표현하고 있었던 문장이기 때문에. 내가 바로 이거지! 했던 구절은 이거였다.



「내가 탐정 일을 시작하기전에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뭔가를 당신에게 알려 줘도 되겠소? 핑커턴 지침서」에서 읽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자비로 배워야만 했던 교훈이지. 모든말은 그 말을 믿는 사람만을 얽어맨다.」 - P228



나는 사람들이 각자가 믿는 것이 있고, 믿는다면 거기에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꿔 말하면, 그걸 믿는 사람들을 얽어매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좋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건 정말 읽는 독자인 내 몫의 만족감이었는데, 음, 그러니까 그런 거다. 내가 물잔에 새로운 물을 받고 싶다면 내 물잔을 비워야만 가능해진다는 것.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삶의 진리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이야기로 다시 만나야 하는 때가 온다. 새로운 물을 받아야 하는데 물잔이 가득 차서 받고 있지 못했고 나는 그러나 이미 가득찬 물잔에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물을 받을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이제 내 물잔을 비워내야 한다고, 그리고 새로운 물을 받아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자정을 넘겨있었고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가, 그 물잔을 비워내는 일을 미룰게 뭐람, 하고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침대 헤드에 오래 머물렀던 어떤 사진을 치웠다. 



「가장 힘든 일, 그건 놓아 버리는 거예요.」 마거릿이 말했다. -P.603


「가장 힘든 일, 그건 놓아 버리는 거예요.」 마거릿이말했다.
제니는 불길 위로 책을 갖다 댔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될 선택을 다그치는 열기가 곧 팔뚝을 휘감아옴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떨렸고, 제니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이 책을불길에 던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에 매달려 보려고 애를 썼다. 제니는 자기 자신만의길을 개척하는 유일한 방법이 남들이 다 갔던 길을 따라가기를 그만두는 것임을 깨닫고,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 P603

제니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응시했고, 그 손을, 벽난로의 오렌지 빛에 물든 장밋빛 손가락을, 처음으로발견한 듯했다. 그녀의 등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무게가 마침내 그녀의 어깨에서부터 떨어져 나간것 같았다.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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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3-27 1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식 사진을 치웠군요.

다락방 2023-03-27 10:56   좋아요 1 | URL
그건.. 아닙니다. 음식 사진은 결코 치울 수 없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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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재수해서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와 어울렸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언니는 키도 크고 예뻤다. 이미 과내에서도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언니였지만 언니는 방학이 지나자 쌍커풀 수술을 하고 왔다. 저렇게 예쁜데 왜 또 수술을 할까, 라고 친구들과 얘기를 한 적도 있는데 어느날 그 언니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야, 내가 너로 태어났으면 안살아."


언니는 농담으로 한 얘기였고 친구들도 다 웃었고 그자리에서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어 웃었지만 굉장히 충격이었다. 저렇게 예쁘고 키도 크고 날씬한 언니니 아마 신체적 그 모든 면에서 정 반대에 위치한 나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을테다. 


이 말이 너무 충격이어서 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고 불쑥불쑥 생각나는데,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 누군가 나를 보고 '너로 태어나면 안살아' 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얼굴이라고 해서 내가 성형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 눈은 심한 짝짝이라 한 쪽은 진한 쌍커풀이 있고 한쪽은 쌍커풀이 아예 없는데, 이에 대해서도 가끔 엄마가 '돈 줄테니까 한 쪽 눈 쌍커풀 할래?'라고 종종 말씀하시지만(딱히 진심은 아니시다), 진짜 할 생각이 없다. 사진 찍으면 짝짝이눈 너무 티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수술을 해서 이 눈을 예쁘게 만들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다. 


외모평가를 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를 차치하고,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면 누구나 충격을 받고 절망하거나 혹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성형수술은 그 때 굉장히 좋은 대안이 되어줄 것이고. 그러나 나는 이렇게 지적을 받아도 쌍커풀 수술을 할 생각도 안하는 걸 보면, 자존감 갑이다, 멘탈 장난 아니야, 지 잘난 맛에 산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내 외모가 컴플렉스가 아닌데 누가 지적을 하든 그걸 고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하면, 성형 수술을 하는 데에는 자존감 부족도 있다고 생각해왔다는 거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그래서 누가 내 외모에 무슨 지적을 하든 그게 알 바야? 라는 마인드라면 굳이 성형외과에 가서 돈을 주고 마취를 하고 내 얼굴에 칼을 대는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왔던 거다. 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은 하는거지, 나는 아니야 정도의 마인드가 내가 성형수술에 대해 가진 것이었다.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더 예뻐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틀리지 않다. 처음 성형수술이 치료를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언제부턴가 미용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어져, 몇해전 화상을 입은 사람이 그걸 치료하기 위해 성형외과 몇 군데를 돌아다녀야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미용을 위해, 그러니까 더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 위해 왜 굳이 수술까지 해야할까. 이에 대해서는 2004년 일본과 중국 한국이 옴니버스로 만든 영화 <쓰리, 몬스터>를 보고 이미 결론 내린바 있었다(젊고 예뻐지기 위해 낙태한 아이로 만든 만두를 먹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건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것을. 물론 이것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예뻐지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받고 이것은 '자기 만족'이나 '살아가기 위함' 으로 변명되어지기도 하지만 압구정역에 가기만 해도 보여지는 숱한 성형외과 광고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조장하기 때문에 사회적 세뇌이기도 하다. 예뻐야 대접받는 사회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틀리지 않고 내 신체의 컴플렉스를 고쳐버림으로써 자기만족을 한다는 것도 틀리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형수술은 이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러나 못생기든 예쁘든 알 바야, 라는 자기 확신은 좀 부족한 상태. 나는 성형수술을 이렇게 생각해왔다. 


이 책의 저자 임소연은 성형수술을 '연구하기 위해' 실제로 (가칭)청담성형외과에 취업해 참여관찰을 하고 직접 쌍커풀 수술과 양악 수술을 받기도 했다. '과학기술학 연구자'라는 저자의 타이틀과 예뻐지기 위한 성형수술은 어떤 식으로 만나는걸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소연은 그동안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성형수술에 대해 접근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성형수술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성형수술을 구성하는 것은 예뻐지고자 하는 환자와 그렇게 해줄 의사가 있겠지만, 임소연은 그 사이에 매개된 사물들을 관찰한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침대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수많은 도구들이 있다. 그 '사물들'이 아니라면 아무리 의사가 환자의 얼굴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안다'고 해도 실행할 수는 없다. 



이 기구들은 의사의 몸을 기능적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술 기구들은 더욱 미세한 수준에서 의사의 신체기능을 확장해줄 뿐만 아니라, 수술 대상인 환자의 몸과 의사의 몸을 매개한다. 예를 들어, 드레싱용 거즈나 조직을 집는 '겸자'forceps만 해도 미세한 형태적 차이에 따라 수십 가지 다른 종류가 있다. -p.58


기구들의 섬세함을 보고 있노라면 이 기구들의 의사를 보조한다기보다 의사의 몸을 확장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p.59


또한 이 수술의 어느 과정에는 세균들이 존재한다. 그건 기구들을 덜 소독한데에서 오는 세균이기도 하고 주사액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균은 환자의 바람과 의사의 능력외의 것으로 성형수술 속으로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거나 부작용을 일으켜서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노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성형수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간호사들의 노동이 엄청나다. 참여관찰로 직접 몇년간 그곳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아마도 이 부분을 우리는 가사노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역시 간호사들의 노동도 보이지 않는다.



간호사의 업무 중 시간적, 체력적 소모가 가장 큰 일은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들을 세척, 소독, 관리하는 일이다. 수술실을 비롯해 수술 준비실과 회복실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술에 사용하거나 공기 중에 노출되었던 기구들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일, 수술복과 환자복을 포함하여 트레이와 수술대, 환자의 몸 위에 겹겹이 덮었던 녹색포를 세탁해서 건조시키는 일, 다음 수술을 위해 수량이 부족하거나 교체해야 하는 물품을 외부 업체에 주문하는 일, 수술 시에 발생한 적출물만을 따로 모아서 전문 수거업체를 통해 반출하는 일 등 수술이 끝난 당일부터 그 다음 수술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p.60



환자의 욕망도 결코 단순한게 아니고 수없이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진 것일텐데, 그 욕망은 돈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가 의사의 능력 외의 다른 것들과 결합하여야만 성형수술이 이루어진다. 


임소연은 퍼포먼스로써의 성형수술도 가져온다. 프랑스의 행위 예술가 오를랑의 아홉번의 성형의 사례를 들며 '몸은 뉴욕의 수술대 위에 있지만 그러한 몸의 이미지는 시차와 지역을 초월해 어디에나 존재한다(p101)'며 메세지를 가져오지만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하며 때로는 성형중독, 성형괴물로 불리기도 하는 성형수술을 한 여성들은 더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거다. 



성형괴물 퍼포먼스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나아가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할까 봐 성형수술을 망설이는 여성보다 괴물이 될까 봐 성형수술을 주저하는 여성들이 더 많은 한, 성형괴물의 존재는 성형수술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있다. -p.112



이 퍼포먼스에 대한 부분을 읽노라니 인스타그램에서 무작위로 보여지는 영상들이 떠올랐다. 화장하기 전의 얼굴이 화장을 하고나면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영상들. 처음 그 영상들을 보았을 때는 도대체 왜 자기가 화장하기 전에 얼마나 다른 얼굴이었는지를 굳이 보여주는걸까 궁금했고 어느 순간 얼마나 화장을 잘하는지를 보여주는건가 했다, 그러다가 자, 이 화장이라는 행동은 나를 어떻게 얼마만큼 변화시키는지 보여줄게, 라는 퍼포몬스로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어지는 거다. 사회가 아름다움을 강요한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어. 내 본모습은 너희 기준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거봐 금세 맞출 수 있지. 내가 이렇게 변화하고 너희들 사이로 끼어든다면 너희들은 그 때의 내 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겠지.



임소연은 쌍커풀 수술과 양악수술을 받는다. 양악 수술을 한 뒤로 얼마간은 액체만 마시면서 버텨내야 한다. 게다가 얼굴도 심하게 붓고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 쉬면서 매일 거울을 보고 임소연은 고통스러워 한다. 내가 원하는 얼굴이 될까, 그리고 아프다. 이 붓기는 언제쯤 사라질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붓기도 가라앉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혹여 예쁘다는 말을 듣게 된다고 해도 양악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본인에게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임소연은 양악 수술 3,250일이 지난 후에도 턱이 떨어져나가고 제대로 맞지 않는 악몽을 꾼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꾸는 악몽이 과연 임소연 혼자만의 경험일까? 어쩌면 아주 많은 성형수술 경험자들은 이런 시간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게다가 수술을 했다고 해서 그 수술이 만족스러우리란 보장은 없다. 수술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환호하며 너 겁나 예뻐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어색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달라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거울을 봤을 때 그전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과거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보면 달라졌지만, 내가 거울을 봤을 때는 그걸 확신할 수가 없는 것. 이에 임소연은 생각한다. 내 몸은 내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나아가 임소연은 몸이 물질이라는 것, 그리고 살로써의 몸에 대해서도 접근한다. 포스트 휴먼 그리고 사이보그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도나 해러웨이가 등장하는 건 빠질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보다 읽고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페미니즘적 관점이 아닌 다른 식의 접근을 보는게 참신했고 그것에서 오는 수많은 생각들은 확실히 이 책을 읽고난 후에 얻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수술실을 구성하는 사물들에 대해, 수술 도구들을 관리하는 노동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살과 물질로써의 몸, 포스트 휴먼에 대한 부분은 가끔 꺼내보며 더 잘 이해해야겠다 싶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놀랐던 건, 수술을 했다고 해서 그 전에 내가 가진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수술을 하고나서 3,250일이 지나도 그에 대한 악몽을 꾼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임소연도 이책에서 재차 언급하지만, 그래서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쁘지고 싶다는 욕망은 정말 예뻐졌다로 끝이 아니라는 것. 그 사이에 육체적 고통과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음에 대한 절망과 그리고 결과 자체도 내 뜻과 다를 수 있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거기에서 오는 악몽 혹은 견뎌내야 할 외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걸 덧붙이는데, 이렇게 예뻐진 외모로 남자들에게 칭송받고 클럽에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불려다니는 젠더 수행 역할에 충실하게 됐고 또 거기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남자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남자들과 '동등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예뻐서 저기 저 남자도 그리고 저기 저 남자도 나랑 같이 놀고 싶어한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가? 내 임금이 그들과 같아지는가? 내 지위가 그들과 같아지는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나를 모두가 칭송한다는 것이 남성과의 경쟁사회에서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는가?



흔히 여자는 외모로 평가된다고 하지만, 예쁜 여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클럽의 예쁜 누나가 성형외과의 임 코디보다 더 우월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명 중 가장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남아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세 명 중 가장 먼저 테이블을 떠나게 된다고 해서 그곳의 남자들보다 우월하거나 그들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찾에 헤매던 여자로서의 나의 집, 나의 안식처는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세계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성형수술의 세계에 얽혀 마침내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온전히 수행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p.182


임소연의 책은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데, 나는 이 책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가 훨씬 좋았다. 여러가지 의미로 읽으면 좋을 책이지만, 무엇보다 성형수술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성형수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미리 읽어두면 좋을 책이고, 이미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도 역시 읽으면 도움을 받을 책이다. 모두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어쩌면 성형수술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악몽을 꾸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여전히 변화된 내 신체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도 읽어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담인데,

저자가 일한 청담성형외과에 내가 성형수술을 하고 싶어 찾아간다면, 상담 후에 원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될것 같다.


"당신의 얼굴은 미인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으니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서 나올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호사의 업무 중 시간적, 체력적 소모가 가장 큰 일은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들을 세척, 소독, 관리하는 일이다. 수술실을 비롯해 수술 준비실과 회복실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술에 사용하거나 공기 중에 노출되었던 기구들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일, 수술복과 환자복을 포함하여 트레이와 수술대, 환자의 몸 위에 겹겹이 덮었던 녹색포를 세탁해서 건조시키는 일, 다음 수술을 위해 수량이 부족하거나 교체해야 하는 물품을 외부 업체에 주문하는 일, 수술 시에 발생한 적출물만을 따로 모아서 전문 수거업체를 통해 반출하는 일 등 수술이 끝난 당일부터 그 다음 수술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 P60

숫자도 가늠할 수 없느 엄청난 양의 사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술실이지만, 매 수술마다 자기 이름을 거는 자는 바로 의사다. 의사는 단연코 수술의 저자著者다. 그러나 일단 수술이 시작되면 의사도 환자와 같이 사라진다. 환자가 몸에 주렁주렁 튜브를 달고 녹색 수술포를 뒤집어 쓰고 있듯이, 의사 역시 녹색 수술복에 수술모를 쓰고 손, 머리, 발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양악수술을 하는 박 원장의 손에는 전기 드릴이 들려 있고, 그의 머리에는 헤드라이트 밴드가 둘러져 있으며, 그의 발은 혈액을 빨아들여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는 석션기의 페달 위에 놓여 있다.
이 기구들은 의사의 몸을 기능적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술 기구들은 더욱 미세한 수준에서 의사의 신체기능을 확장해줄 뿐만 아니라, 수술 대상인 환자의 몸과 의사의 몸을 매개한다. 예를 들어, 드레싱용 거즈나 조직을 집는 ‘겸자‘forceps만 해도 미세한 형태적 차이에 따라 수십 가지 다른 종류가 있다.
- P58

기구들의 섬세함을 보고 있노라면 이 기구들의 의사를 보조한다기보다 의사의 몸을 확장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 P59

그리고 나는 곧 수술실에서 내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바로 세균이다. 2009년 9월 부산 모 성형외과에서 수술 부작용으로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MBC TV의 《PD 수첩》보도에 따르면 사망의 원인은 세균이었다. 그것이 청결하지 않은 수술실의 문제인지 제약 업체로부터 구매한 주사액의 문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 P61

프랑스의 행위예술가 오를랑은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다. 오를랑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총 9회의 성형수술을 하고 그 과정을 행위예술과 미수작품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오를랑은 <성녀 오를랑의 환생>La Reincarnation de Sainte Orlan(1990~1993)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서양 미술가의 옛 거장들이 그린 명화 속 여성 인물들의 신체를 모방한 얼굴을 만들고자 했다.
(중략)
오를랑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각각의 부위를 합성해서 서구 미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 얼굴 모델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자신의 얼굴에 적용했다. 1993년 11월 21일 뉴욕에서 이루어진 일곱 번째 수술은 미국 CBS TV쇼인 《20/20》이 제작을 담당하고 위성을 통해 뉴욕, 파리, 토롤토의 미술관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몸은 뉴욕의 수술대 위에 있지만 그러한 몸의 이미지는 시차와 지역을 초월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해서 <편재>Omnipresence(1993)라는 - P101

제목이 붙었다. 오를랑은 국소마취만 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중에도 관람객이나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거나 텍스트를 낭독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었다. 이 퍼포먼스 당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했던 표현을 패러디해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소프트웨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오를랑의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여성성, 외모, 주체성과 연관된 몸, 테크놀로지 등에 대해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신책, 2002;이수안, 2017;조윤경, 2011;전혜숙, 2016)
- P102

흔히 여자는 외모로 평가된다고 하지만, 예쁜 여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클럽의 예쁜 누나가 성형외과의 임 코디보다 더 우월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명 중 가장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남아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세 명 중 가장 먼저 테이블을 떠나게 된다고 해서 그곳의 남자들보다 우월하거나 그들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찾에 헤매던 여자로서의 나의 집, 나의 안식처는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세계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성형수술의 세계에 얽혀 마침내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온전히 수행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 P182

몸은 여러 차원에서 존재하지만 보여지는 몸인 외모는 ‘단순히 예뻐지려는 것‘정도로 취급될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몸은 오로지 나와만 연결된 존재이기에, 몸의 문제만큼 나를 외롭게 하는 문제도 없다. - P195

내 몸은 내 것이면서 또 내 것이 아니다. 성형수술의 과정 내내 내 몸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것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모든 감각과 고통, 불안, 그리고 책임이 나만의 것이라서 외로웠다. 그러나 내 몸을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거나 나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 P210

성형수술은 내가 수십 년 동안 내 몸과 맺어온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나는 내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수많은 협상을 해야 했다. 그 협상의 과정에서 내 몸은 내 뜻에 저항하기도 하고 내 뜻에 순순히 따라주기도 했다. 어떤 몸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어떤 몸은 아무리 노력해도 꿈쩍하지 않다가 어느새 슬며시 사라지기도 했다.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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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2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괴‘라는 단어가 자꾸 거슬려 생각해보니 요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형을 하는 시대인데도 성형을 한 여성에게만 쓰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질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임에도 남성들은 성형을 한 여성에 대해 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 같아요. 이중적인 남성의 잣대를 드러내는 단어의 내면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합니다.

다락방 2023-03-24 11:20   좋아요 0 | URL
못생기면 못생긴걸 놀리잖아요. 사랑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어놓고 그래서 성형수술을 하면 또 성형수술로 예뻐졌다고 손가락질을 하죠. 세상에서 제일 쉬운게 남 욕하는 일인것 같아요. 못생기면 못생겼다고 수술하면 수술했다고.. 자기자신에게 충실하면 다른 사람 험담할 일도 줄어들텐데 다들 영혼이 어딘가 비어있는 것 같아요.

DYDADDY 2023-03-24 12:28   좋아요 1 | URL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생득적인 신체 조건을 조롱이나 비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열등감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다락방님의 그 ‘한 살 많은 언니‘는 다락방님에게 어떤 부분에 있어 열등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 열등감을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추기 위해 굳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가능성 높은 심증이 있어요. 최소한 다락방님은 아름다운 독해력과 유머를 가지고 있죠. ^^

잠자냥 2023-03-24 1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언니 아직도 잘 살아요?
귀싸대기 한 대 쳐주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어제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자가 정말 말 그대로 전형적 성형얼굴이던데, 그 얼굴을 보면서
저렇게 똑같이 생겨지는 게 마음에 드는걸까...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도 남자도 다들 외모에 미친 사회.... 한국은 참 여러 가지로 답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23-03-24 11:24   좋아요 3 | URL
저 언니는 원하던 직업을 갖고 부자 남자 만나서 결혼했어요. ㅎㅎ 그 다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 말이 되게 강력했어서 당시엔 농담이라고 언니가 했다 해도 그 농담 속에 진담이 있는 거잖아요. 평소에 나를 보고 생각했던 게 농담이 되어 나온거겠죠. 언니랑 저랑 사이가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 평소에 언니는 저의 외모를 보고 와 저렇게 태어나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너로 태어나면 안살아‘ 라는 말이 되게 충격이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누구를 보면 나도 ‘너로 태어나면 안살아‘라는 말을 하게 될까 언젠가는 생각해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케이스가 없더라고요. 저는 누구로 태어났든 어쨌든 살 것 같아요. 졸라 열심히 잘 살 것 같아요. ㅎㅎ

저자 임소연은 성형 수술을 아주 많이 해서 얼굴이 이상해진 친구를 만나는데요, 그런데 그 친구에게 차마 예쁘다고 말을 할 순 없는.. 정말 이상한 얼굴이 된 경우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대해 묘사를 해요. 성형수술은 결국 자기 육체의 고통과 절망이며 외로움 그러다 자기 만족 등등을 가져오지만, 성형했음을 아는 지인들에게도 편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상황을 주는 것 같아요.


외모에 미친 사회에서 혼자 외모에 미치지 않고 꿋꿋한 다락방 입니다. 엣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3-24 13:00   좋아요 3 | URL
언니분 발언에 쒸익쒸익하며 댓글 달러 내려왔다가 한술 더뜨시는 잠자냥님 덕에 진정합니다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3-24 13:48   좋아요 2 | URL
어휴 이 다정한 분들 ♡ 아무튼 저는 저로 태어났어도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샤라라랑~~

공쟝쟝 2023-03-24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형인은 되어도 성형‘미‘인이 되기는 힘들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리다가 - 참여 관찰법이나 해러웨이 포스트휴먼 비인간사물 ㅋㅋㅋ 뭐 이런 말들 나오니까 또!! ㅋㅋㅋㅋㅋ 아는 척 하고 싶네요 ㅋㅋㅋ 동물 성애도 그렇고 ㅋㅋ (뭐 그 저자가 직접 동물 성애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ㅋㅋ) 이 시대의 연구자들은 정말 훌륭...해야하는 거고 정말 페미니즘은 꼭 공부해서라도 장착해야할 필요한 관점이구나 하게 됩니다.
저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쉽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외모적 컴플렉스를 돈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다고 보는 데요. 사회의 시선과 기준은 높고 언제나 욕망은 그 끝을 모르니까 나 자신이 컴플렉스처럼 느껴지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쉬운 해결책인 돈을 많이 벌기 전(버는 게 쉬운건 아니닼ㅋㅋ)에 역시 자기 기준을 잘 세워야 하는 데 자기 기준 그것도 걍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ㅜㅜ 아 현대사회 답답합니다. 책 읽고 공부하는 것만이 답인 것 같네요!

다락방 2023-03-24 11:27   좋아요 5 | URL
쟝님이 쓴 것처럼 성형수술을 했다고 해도 기대했던 미인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기대했던 만큼의 미인이 되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고요 실제로는 사실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나 하는 느낌을 더 받는 것 같고요. 그중에 일부는 그래도 만족하는게 컴플렉스가 워낙 컸어서 그게 해소된 것만으로도 성형이 제 할일을 다 해줬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자가 페미니즘적 관점과 시선을 가졌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성형수술을 관찰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성형수술에 대해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고정관념 같은 것들 외에 이렇게 다른 접근을 했다는 게 저는 참 좋더라고요. 성형 수술 얘기하다 도나 해러웨이 나온다니. 저는 너무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자의 이 책에 대한 인터뷰는 김혜리 기자의 팟빵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혹시 관심있다면 들어보세요! 저도 거기서 듣고 알게 되어 읽었어요.

치니 2023-03-2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관련 업계에서 일할 때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성형을 결심하는 분들이 최소한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 영상을 본다거나 가능하다면 수술 전반적 과정을 모두 미리 볼 수 있다면 다른 결정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대부분의 성형 시술은 뭐가 됐든 부작용 위험이 몹시 큰 수술이기 때문에 양악 이후 한참 지나도 저런 꿈을 꾼다는 부분, 완전 이해되고요. 스스로 저 정도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늘 그런 맘이 들었어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사회적 객관적 평가와는 완전 별개라는 점도 동의합니다. 누가 봐도 엄청 예쁜데 만족 못하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근데 성형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주로 그런 사람들이 만족을 위해 선택하지만 성형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만족을 못한다는 것. 조금만 더 조금만 더......마약과 비슷한 메카니즘을 지닌 것 같아서;; 저는 오히려 거기서 일한 경험상 절대 성형이나 시술 안 할래 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생긴대로 살고 맘이나 편하게 살자...주의. ㅎㅎ

다락방 2023-03-24 14:45   좋아요 0 | URL
치니님은 관련 업계에서 일한 후 성형하지 않겠다 생각하셨다 했잖아요. 안그래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굳이 성형까지 했어야 했을까도 생각했거든요. 참여관찰과 인터뷰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왜 성형을 직접 하기까지 했을까도 생각해보았는데, 분명 당사자성을 갖고 난 뒤에야 더 얻어지는 통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구의 결과를 얻기 위한 직접 참여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형은 못생긴 사람들이 할거라 짐작되지만 아주 많은 경우 이미 예쁜 사람들이 좀 더 예뻐지기 위해 선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난 후에는 그러나 크게 만족을 얻지는 못하고요. 할수록 어딘가 좀 더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저는 성형에 대해서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좀 달라졌어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건 아니고 아주 많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쪽으로 바뀐거죠.
그리고.. 정말 저도 안하고 싶어졌어요. 3천일이 지난 후에도 부작용이 생기는 악몽을 꾼다니. 그건 정말 겪고 싶지 않아요 ㅠㅠ

책읽는나무 2023-03-2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언니라는 분!
다락방님께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되려,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고 있는 본인의 초조한 심정을 단박에 드러낸 것이네요. 아마도 지금도 외모 컴플렉스를 달고 살지 않을까?싶어요.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쌍수를 적극 권장하고 있을지도?ㅋㅋㅋ
주변에도 보면요~ 컴플렉스가 있어서 젊었을 때, 쌍수를 했었던 사람은 딸도 쌍수를 시켜서 깜놀했습니다. 전 얼굴에 칼을 댄다는 건 넘 무섭거든요. 제 딸들이 한동안 무쌍인 것에 한탄을 했었는데, 지네 아빠는 기다려봐라! 아빠 돈 많이 벌어서 쌍수 시켜줄게! 그러면 저는 정말 짜증이 나서 어디 칼을 대냐고!! 버럭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봐도 쟤들은 왜 아빠를 닮아 무쌍일까? 좀 예쁘게 태어나지? 뭐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만, 그렇다고 성형은 시키고 싶지 않아요. 무섭잖아요?ㅋㅋㅋ
근데 내가 성형에 넘 관대한 자였다면 그래, 방학 때 엄마 손 잡고 가자! 그랬을 것 같아요.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없애주는 게 주변 말들에 현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딸들한테 늘 니네들이 제일 예쁘네? 무쌍인데 이리 예쁘다니????? 김고은인데???ㅋㅋㅋ...그래서 요즘은 무쌍도 가장 큰 매력일 수도 있겠다며 애들이 생각을 많이 바꿨어요. ㅋㅋㅋ
그리고 성형 부작용! 그거 정말 심각하던 걸요?
제 지인은 노안으로 눈꺼풀이 심하게 처져서 쌍수를 한 케이스인데요. 후유증이 심각해서 일 년동안 눈이 가라앉질 않아ㅜㅜ
암튼 수술직후 거울 보고 넘 놀라 안나을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며칠을 울었다고~ㅜㅜ
지인은 항생제 부작용이라던데, 다락방님 글 읽으니 세균 감염이었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에혀....성형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은 참 슬픈 이야깁니다ㅜㅜ

다락방 2023-03-27 09:20   좋아요 1 | URL
그 언니는 외모가 아주 중요한 직업을 갖고 싶어했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거든요. 그 직업을 갖는데 사실 저의 외모는 보자마자 탈락이었을 겁니다. 그 직업을 갖는게 그 언니한테 중요했던만큼 제 외모로는 그게 불가능했다는 것도 그 언니가 알고 그랬겠지요. 그 언니가 농담으로 했다한들 그 안에 일단 저처럼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정말 주변에 엄청 많아요. 많이 하거나 티 나게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에 아 저사람 했구나 싶지만, 그러나 그렇게 어색한 사람 말고 자연스럽게 된 사람은 훨씬 많다는거죠. 쌍커풀 수술은 가장 기본적인 수술인 것 같아요. 그정도는 그냥 대부분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임소연도 거울 볼 때마다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되게 초조해 하더라고요.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저는 수술하고난 후 낫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하는 것도 그랬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에 관련된 악몽을 꾼다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식의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인지하고 해야할 것 같아요.

이 책을 읽는 건 확실히 유익햇어요. 저는 책장에 꽂아둘 생각입니다. 훗.

감은빛 2023-03-2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군요. 흥미롭네요.
그리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다락방님의 이 글이구요.

저 교통사고 이후로 코 성형수술을 고민했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지속되는 후유증 때문에 수술을 포기했지만,
포기하기 전까지 정말 긴 시간 수술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저는 물론 코 하나 수술한다고 당장 외모가 확 나아져 보일 정도의 얼굴도 아니지만,
사고 때문에 자꾸 거슬리는 내 얼굴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은 포기하기 힘들더라구요.

그런데 결국 포기한 건, 이 얼굴 조금 손 대봐야 어차피 티도 안 날거야 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23-03-28 09:24   좋아요 0 | URL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더‘ 하는 이유가 한 번 한 걸로 딱히 티나 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흐음, 예뻐지려고 했는데 딱히 달라진 것 같지 않고, 그렇다면 여기를 더 해볼까, 여기를 더 해볼까.. 하게 되는거 아닐까요. 그래서 성형 중독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고요.

회복하는 동안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하는 것 같아요. 다른 수술도 마찬가지잖아요. 회복하는 게 힘들잖아요. 언제 낫나, 언제 좋아지나 자꾸 걱정되고요. 그런데 그게 얼굴이라면 더 힘들것 같아요.

감은빛 님도 저도, 뭐, 안해도 여태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그냥 잘 살도록 합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