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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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겠지만, 정말 열심히 다녔다. 국민학교 6학년 때는 교회에서 반주를 했고 예배 시작 전에는 일찍 가서 주보를 나누어주며 전도를 하기도 했다. 어른 예배에 초대되어 반주를 한 적도 있고 그래서 동네를 걷다보면 나를 아는 척 해주시는 어른 분들도 계셨다. 중등부에 올라가서는 예배 반주가 아닌 성가대 반주를 했는데, 합창 연습 때문에 평일에도 간혹 시간을 빼야 했고, 그즈음 반주 하는게 너무 싫고 또 못한다는 생각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나도 일반 예배석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예배 보고 싶어요, 하고.

그보다 더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 라고 연극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 주어진 역할은 동방박사 3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마리아 역을 하고 있었다. 배에 커다란 바가지를 넣고 나는 예수를 낳았다. 


이렇게나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지만, 아니 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교회가 너무 싫었다. 너무 싫어서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더이상 다니기를 거부했다. 교회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는데, 한 번은 내가 아닌 척 받아 걘 이제 안다닐 거예요, 했지만 쉽게 들통났다. 어쨌든 나는 안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새로운 신도가 오면 격한 환영을 하는 것도 싫고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는 것도 싫었고(나는 정말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성희롱이나 추행 때문에도 싫었다. 착한 사람들인척 좋은 사람들인척 해놓고 해선 안될 짓을 그 안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았고 경험했고 그래서 알았다. 이런게 너무 싫어서 그만뒀다. 나에게 교회는 그 뒤로 너무나 끔찍한 곳이 되어 있었고, 신앙생활을 하는 엄마가 부흥회나 전도주간이라며 같이 가길 권하시면 마지못해 따라 나서는 아빠와 남동생과는 달리, 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싫었다.



그러나 십년도 더 전에, 시사인에서 '임영신'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에게 끔찍한 교회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임영신은 인터뷰에서 교회 때문에 자기가 살 수 있었다고, 그곳은 외롭고 힘든 자신에게 손을 뻗어준 곳이라고 말했다. 그 후에는 한 친구가 자신은 교회가 싫지만 동네에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유일하게 교회에서만 받아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엄마에게 구원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지만, 그런 사례들을 듣고나서야 나에게 끔찍한 곳이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그게 현실적으로 인지가 된거다. 



교회라는 장소에 대해서는 오랜 경험치로 인해 깨닫게 되었다면, 여행지라는 낯선 곳에서는 짧은 시간의 경험만으로도 그 다름을 깨닫는 것이 가능했다. 타국에서의 오랜 유학이나 이민 생활에서 오는 인종차별과 고단함에 대해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듣노라면, 그곳에 내가 여행지로 갔을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낯선 여행객에게 사람들은 친절했고 그래서 내가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생각한 곳이, 그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


누군가의 낙원은 다른 누군가의 지옥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줌파 라히리의 《로마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로마 라는 도시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은 인종 때문에, 종교 때문에, 어쨌든 오래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배척당한다. 식당의 종업원들은 친절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욕을 하며 이곳에서 나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저 평온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어떻게든 섞여서 어떻게든 참아가면서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어디 쉬운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있다는 자각은 삶을 고단하게 한다. 



줌파 라히리의 작가 소개를 보면 벵골 출신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 작가' 라고 쓰여있다. 줌파 라히리의 글에서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 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일은 그전에도 있어왔다. 장편소설 《저지대》에서도, 《이름 뒤에 숨은 사랑》에서도, 이곳에 있지만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나, 이곳에 적응하고자 하는데 힘든-가끔은 물론 행복하기도 한- 내가 등장하곤 했다. 한 곳에서 살며 늙어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줌파 라히리가 쓰지 않고, 미국에서 나고 자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저지대를 쓰지 않는 것은 아마도 당연하고, 물론 독자에겐 다행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방인의 정서를 쓰는 것이 줌파 라히리에게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로마 이야기에서는 그게 더 강하고 섬세하게 펼쳐진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대체 로마로 가서 어떤 시간들을 보낸걸까 싶어지는 거다. 이미 저명한 작가인만큼 줌파 라히리의 로마에서의 삶이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지만, 그건 여기에 있는 내가 멀리에서 본 것일테다. 줌파 라히리는 자기에게 직접 닥친 일들 뿐만 아니라, 자신처럼 이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낯선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수시로 목격했으리라. 사소하게는 식당에서 좀 더 깊게는 직장에서, 그리고 이웃들로부터. 거기에는 미국에서 거주하다 로마로 옮겨갔다는 장소의 이동성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새로 공부하며 알게 된 외국어로 쓴 소설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어른이 되어 새로 배운 나른 나라의 언어, 이탈리아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쓴 것은 영어로 썼던 것과는 다르게 풀어나가게 만든 것 같다. 나는 이번 로마 이야기에서 분명 누군가에겐 낙원인 곳에서 그러나 다른 이에게 펼쳐지는 지옥을 자꾸 본다. 그 지옥은 물론 '로마여서', '로마이기 때문에'가 아니다. 그 지옥은 로마일 수도 있고 퍼스일 수도 있고 뉴욕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다. 나만 해도 일전에 지하철에 탔다가 경로석에 앉은 (아마도)인도계 외국인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을 하는 한국 남자 노인을 목격한 적이 있다. 거기에 앉은 게 백인 남자였다면, 그 때도 그 할아버지는 경로석에서 비키라고 똑같이 소리 질렀을까? 서울이야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낙원이 될 수 없는 곳 아닐까.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장소는, 이방인에겐 어쩔 수 없이 지옥이 되어야만 하는걸까?



줌파 라히리에게 외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쓴 탓인지 혹은 번역가의 번역 탓인지, 읽는 내내 문장들이 어색했다. 그렇게 이방인의 감각과 어색한 문장들로 소설집 자체가 약간 낯설게 느껴졌는데, 맨 마지막 단편인 <단테 알레기에리>를 읽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친구의 남자로부터 받은 사랑고백에 느끼는 죄책감, 낯선 나라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삶, 결혼하고 육아를 하다 뒤늦게 다시 공부해 직장을 얻고 동년배의 여성 친구들을 사귀어 우정을 쌓아가는 일.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았는데, 이건 줌파 라히리가 오래전에 쓴 적 있는 <헤마와 코쉭> 을 -전혀 다른 줄거리임에도- 생각나게 했다. 외국어와 낯선 장소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다른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지만, 어쩌면 작가 자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을, <단테 알레기에리>를 읽으면서 했다. 오십이 넘어 여성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자기 직업 가진 여성의 이야기가 왜이렇게 좋은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헤마가 자꾸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던 헤마는, 잘 살고 있을까?



줌파 라히리에게, 그러니까 적어도 줌파 라히리에게 삶은 한 곳에서의 정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저기로 훌쩍 떠날 수도 있고 혹은 여기와 저기를 오갈 수도 있다. 내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간혹 쓸쓸하게 여겨지지만, 그러나 모두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므로 받아들인다. 


나는 여전히 프라납 삼촌을 좋아했던 엄마를 보는 이야기, <지옥 천국>이 제일 좋고, 예쁜 속옷을 준비했지만 차마 그걸 입어볼 수도 없게끔 그저 왔다 떠나는 유부남 애인을 다룬 <섹시>가 좋지만, 그런데  당신의 낙원이 다른이에겐 지옥일 수 있다는 당연한 얘기를,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삶을 살면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사람들은 잊고 사니까. 내가 사는 이곳은 지금 다른 이에게 지옥일 수도, 그리고 낙원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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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2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나도 <소네치카> 리뷰 방금 올렸는데 일단 찌찌뽕(?!)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25 13:25   좋아요 1 | URL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사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25 1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다락방이 예수를 낳은 동방박사3이었다니.........
예수를 낳은 자, 어쩐지 대인배....

이 책에 대한 다락방 님의 아쉬움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읽고 싶어지는 리뷰.

다락방 2023-10-25 13:26   좋아요 4 | URL
원래 예수한테 선물주러 찾아온 동방박사 3 이었는데 마리아 역 맡은 언니가 안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졸지에 제가 마리아를 하게 됐고 그래서 요셉 역을 맡은 오빠와 핑크빛 로맨스가 싹터버렸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남자들 있는 곳에 가면 그렇게 루머를 만들고 다녔어요.. 하하하하하

독서괭 2023-10-25 13:52   좋아요 1 | URL
엄머나…!!😳

잠자냥 2023-10-25 14:09   좋아요 0 | URL
요셉 오빠 ♡

다락방 2023-10-25 14:14   좋아요 1 | URL
요셉 오빠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어휴 피곤해요. 저는 그 때부터 남자들 좀 울리고 다녔어요.
때려서 울리거나 애태워서 울리거나... (먼 산)

잠자냥 2023-10-25 14:27   좋아요 2 | URL
때려서 울림 100번 애태워서 울림 10번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깨물어서 울린 적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25 14:37   좋아요 3 | URL
노노 때려서 울림 100번 애태워서 울림 1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0-2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라히리 신간 소식 보고 어 다락방님 좋아하시겠는데! 하고 보니 이미 주문하셨더라고요? ㅋㅋ 받자마자 빠르게 읽으셨군요!
이방인 이야기는 외국인이 점점 많아지는 우리 현실에도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국 가서 살아본 분들은 거기 가면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들 하시더군요.

다락방 2023-10-25 14:39   좋아요 2 | URL
네네 너무 읽고 싶었어요. 아쉬운 마음과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거 읽느라고 코스모스 내팽개쳤답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방인이 되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줌파 라히리의 이런 글이 더 좋았어요. 물론, 제가 이방인이 될 생각이 없다해도 이런 이야기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로 소설 쓰는 줌파도 이탈리아어로 소설 쓰는 줌파도 좋아합니다. 만세!!

다락방 2023-10-25 16: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배에 커다란 바가지를 넣고 나는 예수를 낳았다. ‘

이거 명문인데 왜 아무도 언급을 안해주지? 세상에 누가 이런 문장 쓰냐. 내가 예수를 낳았다, 고. 최고다.

잠자냥 2023-10-25 17:25   좋아요 0 | URL
그때부터 배가 남산만 했구나!?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25 17:35   좋아요 0 | URL
아, 이 배가 그래서였구나!!!

꼬마요정 2023-10-25 21:23   좋아요 0 | URL
제가 언급하려고 했어요 ㅋㅋㅋ 저 문장 뭔가 멋져요 ㅋㅋㅋ 저는 엄마가 불자인데 강제로 교회 보내서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로 끌려갔… 흑흑 만화영화도 못 보고ㅠㅠ

다락방 2023-10-26 09:44   좋아요 1 | URL
아.. 강제로 교회를 ㅠㅠ 그런데 어린 시절 교회는 대부분 강제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성인이 되어 내 의지로 가보고 은혜 충만함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교육만 주입식이었던게 아니라 종교도 주입식이었던 것 같아요. ㅠㅠ

꼬마요정 2023-10-26 22:51   좋아요 0 | URL
전 엄마 아빠의 일요일 아침 시간을 위해 희생된 거였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3-10-26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에 커다란 바가지를 넣고 나는 예수를 낳았다. ‘

그냥 명문 아니고 올해의 문장이죠. 난 교회 그렇게 다녔어도 성극에서 지나가는 사람 한 번 못해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가지 넣고 예수님 낳으신 분, 제가 한없이 흠모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평생 이런 문장 쓸 일이 없겠네요. 아쉬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26 11:06   좋아요 1 | URL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요셉 오빠는 6학년이었고 중등부로 가는 바람에 우리의 핑크빛 로맨스는 금세 끝나버렸어요. 요셉, 잘 지내나요? ㅋㅋㅋㅋㅋ
이 교회는 매우 작은 교회에서 연극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들 수도 얼마 안됐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후에 저는 큰 교회로 옮겨가게 됩니다...라고 말하면 뭔가 다음에 거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저런 명문을 쓰는 저는 계속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하마노 지히로 지음, 최재혁 옮김, 정희진 해제, 강상중 추천 / 연립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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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내 친구는 이 책의 존재 즉, 동물과 섹스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놀라고 불쾌해했다. 동물을 인간보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동물에 대한 강간으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과 인간의 대등함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함에도, 그 대등함이 과연 정말 대등함인지, 그리고 대등하다고 해서 꼭 동물과 섹스까지 해야 하는지 재차 물어왔다. 친구의 의심과 물음은 그리고 불쾌함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감정과 의심도 모두 이와 같으리라.


게다가 나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성폭력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동물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식의 트라우마를 가진 건 아닌지, 그러니까 인간으로부터 크게 상처 입어 동물로 돌아선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동물을 나 좋을대로 이용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마도 '대등성' 이리라. 

이 책의 제목 성스러운 '동물성애' 자에서 바로 느껴지듯,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물과의 섹스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안해도 좋은 것이었고 했다해도 그 횟수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동물에 대한 강간과는 완전히 다른 식의 관계가 그들에게 있었다. 동물에 대한 강간은 강간 가해가의 욕망과 폭력성에서 비롯되지만, 이 책에서 '주파일'로 불리는 동물성애자들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동물과의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었다. 즉, 나와 대등한 나의 파트너-어떤 이에게는 개(dog)가 '아내' 였다-이기에 함께 살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 주요한 삶의 형태이며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혹여라도 찾아오는 섹스에 대한 욕망이 느껴진다면, 그 때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들처럼 삽입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오랄이기도 했고 그저 자위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인 '하마노 지히로' 가 만난 주파일 중의 많은 사람들은 동물의 섹스를 받아들이는 남자 인간이었다. 이들에게 섹스는 동물과의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었고, 그 누구보다 '서로가 원할 때',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섹스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잘 갖춰져 있엇다. 이들은 동물을 단지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동물 강간 가해자들을 혐오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대등성'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동물이 '원한다'고 할 때 정말 그것이 동물이 원하는 것일지, 저자처럼 나도 의심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주파일들의 인터뷰를 통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등성 만큼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동물과의 '관계성' 이었다. 인간이 한 인간과 시간을 함께 오래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동물과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야말로 동물이 원한다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인간중에 동물과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물이라고 그렇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중심적인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문득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보았던 '어질리티' 가 생각났다. 인간과 개가 함께 달리는 경기. 도나 해러웨이는 그 때의 개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어울릴 지 모르겠지만, 개와 하나가 되어 달리고 또 그 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면, 그보다 더 확장되고 더 깊은 개념이 주파일이 되는게 아닐까.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이 비인간과 얽혀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주파일은 그것을 바로 몸소 실천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물론, 그렇다해도 나 역시 내 친구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굳이 섹스까지 나눠야 할까' 라는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는 못하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주파일들에게 섹스는 부차적인 것임에도 주파일을 대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섹스가 되어버리는 거다. 정희진의 해제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된 걸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주파일은 인간의 사랑 행위 중 일부일 뿐, '동물과 섹스하는 사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동물의 삶을 성의 측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p.278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의 주파일들이 등장한다. 주파일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파일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다. 주파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며 주파일로서의 자신을 커밍아웃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 남자 애인의 주파일이라는 커밍 아웃에, 그와 대화하고 그를 이해하며 자신 역시 주파일이 되기로 선택하며 남자의 파트너를 포함한 개와 함께 섹스를 나누는 여자도 있다. 이 여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파일임을 커밍아웃한다면 그 후의 나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그러니 내가 읽지 않은 사람들보다 동물 성애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고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 남자 애인이 주파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여자처럼 너를 이해하며 나 역시 주파일이 되는 걸로 해볼게, 를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의 부제는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이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었음에도 종도 편견도 넘어설 수는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하마노 지히로는 이 책을 맺으며 '주파일을 통해 섹스나 사랑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음을 밝힌다. 주파일들과 만나며 대화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하마노 지히로는 그들과 새로운 관계성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진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상처란 무릇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온전히 지워낼 수는 없는 것. 그러나 그 상처를 가지고 우리는 다른 것들을 경험하며 그 상처를 점차 잊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그 상처가 머릿 속에 먼저 떠올랐다면, 지히로가 그랬듯 다른 관계들을 맺고 다른 이야기들을 겪고 경험하면서 이제는 들여다봐야 야 여기에 내 상처가 있었지, 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신을 연구하기 위해 그들을 만났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한 지히로지만, 그러나 나는 지히로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연구한다는 목적을 불손하게 품은 듯 말했지만, 그러나 그녀의 연구는 결국 그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고 새로운 관계성을 가져다 주었으며, 나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대등성과 관계성에 대해 끊임없이 묻게 해주지 않았는가. '정말 대등한가' 에 대해 아마도 가장 많이 물어가며 읽은 책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진정한 사랑을 비인간으로부터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인간들과의 어떤 관계보다 대등할 수도 있다.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뜬금없지만, 자신을 위해 연구를 하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 내보낸 저자를 위해, 나는 콜린 후버의 [어글리 러브] 에서의 문장을 리뷰의 마지막에 가져오고 싶다.


"The pain will never go away, Miles. Ever. But if you let yourself love her, you'll only feel it sometimes, instead of allowing it to consume your entire life." - <ugly love>, Colleen hoover, p.302






성폭력의 본질이 페니스 자체에 있을 리는 없다. 지극히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페니스에서 폭력성을 찾아낸 후 섹스에서 폭력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남성, 엄밀히는 페니스를 ‘악‘으로 만드는 식으로는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항 대립을 손쉽게, 끊임없이 만들어낼 뿐이다. 성폭력의 본질은 다른 지점에 있으며, 성별이나 성기의 형상과는 근본적으로 관계가 없다. - P159

인간은 동물의 종 혹은 종이 속한 집단에게 당연한 존재 양상을 바란다. 말하자면, 식용 가축은 인간의 식량이라는 목적을, 펫은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같은 인간이라는 종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존재 양상을 다양한 금지 사항으로 규정한다. 동물과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종교 규범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규칙 중 하나다. 그리고 섹스라는 행위는 인간의 탄생과 종의 존속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므로 법률이나 규범, 상식이 항상 개입되게 마련이다.
인간은 동물과의 사이에 경계를 긋고 난 후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섹스는 그 경계를 교란한다. 그러므로 주파일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 P188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있어요. 나에게 섹스는 관계성의 문제이지만, 많은 남성에게는 생리 현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 P201

론야, 휠체어, 아누크의 관계는 이종 혼교적으로 뒤얽혀 있다. 그녀가 걸을 때 아누크도 걷는다. 아누크가 걸을 때 그녀도 걷는다. 그리고 둘을 보조하고 이어주는 도구가 휠체어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의 시선은 덩치 큰 아누크의 시선과 거의 같은 위치다. 일체가 된 둘은 항상 같은 속도로 걸어간다. - P204

‘병‘이나 ‘변태‘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배타성은 위험하다. 저들은 나와는 다르다며 선을 그으면, 사고는 거기서 멈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나름대로 파악해가는 것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상을 보고 싶었다. - P243

래디컬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삽입 섹스 자체가 강간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딜도를 이용한 자위를 포함하여 인간의 성애에서 삽입섹스(inter/course), 즉 무엇인가를 몸에 넣는다는 행위는 몸을 공간화한다는 의미에서 폭력성을 함의하고 있다.
주파일을 상대방(동물)의 동의 없는 수간으로만 인식하는 편견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해제 중 - P274

이 책은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에로틱의 의미는 언제나 재정의되어야 한다. 사랑이나 성애의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동등함과 관계성, 인격적 관계가 에로틱한 것이며 이러한 상태(사랑)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파일은 인간이 사랑 행위 중 일부일 뿐, ‘동물과 섹스하는 사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동물의 삶을 성의 측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레즈비언이 되기로 ‘선택‘한 여성들, 아니, 모든 인간들처럼 주파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선택한다는 것은 성적 지향에 머무는 일이 아니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부다. -해제 중 - P278

현재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지 않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그렇다. 그런데도, 인간 간의 성애는 생물학적 본질로 오식되어 관계성과 동등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파일처럼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관계와 보살핌, 평등에 대해 훨씬 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 젠더 관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남성보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기 사회를 더 폭넓게, 더 깊이, 더 많이 공부하는 이유와 같다.
주류의 언어와 삶의 경험은 일치하지만, 주변인의 삶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성애자와 주파일 중 누가 더 성과 사회에 고민이 많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성 노동의 성애화,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 만연한 젠더 폭력, 구조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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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0-01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도 이 책을 읽으셨군요! 왠지 저도 읽으면 딱 다락방님처럼 느낄 것 같습니다. 설득된다.. 그러나 진짜 섹스까지? 하는.. 종도 편견도 넘어서진 못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23-10-01 22:35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었어도 제 애인이 주파일이라고 제게 커밍아웃 하지 않아주기를 바랍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3-10-0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저도 독서괭님과 비슷한 생각이요. 저도 이 책 읽으면 조금 설득될 거 같기도 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이 지금은 동물에게로 향하지만 곧 AI가 우리에게 묻겠죠.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일까요… 인간중심성에 매달리는 저는 궁금합니다. 뭘까요, 당최… 🤔

다락방 2023-10-04 07:51   좋아요 0 | URL
네, 무엇보다 그들에게 섹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매우 좋았습니다만, 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뭔가 확 달라진 건 아니고요. 단지 앎에 있어서만 달라졌다고 해야할까요. 좀 그렇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3-10-02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은…(이른) 시간에 잘 읽었습니다. 별 다섯이라니 일단 뿌듯…(내가 왜?!)

다락방 2023-10-04 07:51   좋아요 0 | URL
넷을 주고 싶었는데 넷을 줄 이유도 딱히 없었어요. ㅎㅎ

은오 2023-10-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읽으섰군요!! 고생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설득돼 있는 마법..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죠 ㅋㅋㅋㅋ
읽은지 반년 지나니까 저도 아니 그래도 굳이 섹스까진.. 하는 생각이 다시 올라와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진정 동등한 수평적 관계란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충격적이면서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23-10-05 20:36   좋아요 0 | URL
어휴 읽을 때 장면이 생각되어서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자꾸 읽다보니 대등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긴 했고, 그래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음.. 네, 좀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아무튼, 읽었습니다!! >.<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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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 P24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시골로 내려가 버섯을 재배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버섯이 자랄 거라고 기대했던 나무들에서는 버섯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남자와 그의 파트너는 절망했었다. 그 때 그 장면을 보면서 버섯은 나무에서 자라지만 재배가 쉽지는 않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애나 칭은 이 책을 통해 송이버섯을 인간이 재배할 수 없으나, 인간의 참견으로 자랄 수 있다고는 얘기한다. 숲을 교란시켜 소나무에 버섯이 열리는 환경을 만들 수는 있다는 것. 인간의 의지로 재배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인간이 조금 관여하면 송이버섯이 자라게 도울 수는 있다는 것이다. 송이 버섯은 폐허에서도 피어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폐허에 소나무가 있어야 한다. 생명력과 전달력이 강한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야 비로소 송이 버섯은 열리는 것이고, 활엽수의 방해를 받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놓아두지 않기 위해 인간은 숲을 교란하는 것이다. '교란'이라는 단어가 폭력과 부정을 뜻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 애나 칭이 언급하는 교란이란 숲의 생을 돕는 걸 뜻한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숲에서 그저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숲을 만든다. 송이버섯 숲은 풍경을 만들고 변형하는 모임gatherings이다. 이 책의 3부는 교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교란을 시작점, 즉 행동을 위한 첫 단추로 만든다. 교란은 변형적인 마주침을 위한 가능성을 재배치한다. 풍경의 패치들은 교란에서 등장한다. 그리하여 불안정성은 인간을 넘어서는 사회성에서 일어난다. - P271



송이버섯의 쓰임을 얘기하기 전, 애나 칭은 송이 버섯을 채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정규직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난민이거나 전쟁을 겪었거나 징집을 피해 옮겨왔고, 그렇게 송이버섯을 만났으며, 송이버섯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송이버섯을 취식함으로써가 아니라 판매함으로써.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는듯 옆으로 비켜나서, 또 자본주의랑 결코 가깝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은 그들이, 송이버섯을 채집한 뒤에는 자본주의와 만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버섯 채집인 대부분은 삶의 터전에서쫓겨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등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생계를 이어갈 다른 방도가 없는 이들에게 상업적 채집은 근근이 살아가는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어떤 종류의 경제인가? 송이버섯 채집은 자영업이며, 채집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없다.

임금이나 혜택도 없으며, 채집인은 그저 자기가 찾은 버섯을 팔 뿐이다. 버섯이 나지 않는 해도 있는데, 그런 시기에 채집인은 경비손해에 더해 수입도 없다. 상업적 야생 버섯 채집은 사회보장이 제공되지 않는 불안정한 생계의 한 예다. - P27



자,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소나무도 송이버섯도 그리고 인간까지도.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서로의 삶에 관여한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생각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나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인간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삶이 더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했던 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참이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참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끼어듦이 필요하듯이, 인간에게 비인간과의 얽힘도 필요하다. 단순히 송이버섯과 소나무 그리고 인간사이의 일만이 아니다. 수많은 박테리아가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데,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온전히 나라는 인간만으로 탄생과 존재가 가능한가 하면,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몸 속에 있던 수많은 미생물들과 마주친다는 것, 그렇게 밖으로 나온다고 얘기하는 거다.



내가 애나 칭을 만난 건 도나 해러웨의 책이었다.

애나 칭이 우리가 태어나고 또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수많은 비인간 존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결국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과 함께 살아가기'와 닿는다. 단순히 반려견이나 반려묘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생물들. 게다가 이 비인간에는 살아 숨쉬는 존재까지 포함해 그렇지 못한 것들까지 다 소환된다.



직접 성형수술을 해보고 그에 대한 책을 써낸 '임소연'은 자신의 책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에서, 성형수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한 사람이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수술실이 필요하고 수많은 수술도구들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 도구들은 결국 의사의 몸을 확장해서 수술을 돕는다는 것. 게다가 간호사들은 그 수술실과 도구들을 관리한다. 인간인 의사와 성형수술을 하는 당사자와 또 간호사가 필요하지만 수많은 비인간이 그 수술의 도중과 전과 후에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임소연이 보여준 것은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과 이어진다.



이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의 인본주의, 결국 인간 중심주의였다면, 포스트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현재의 문화인류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만이 주체가 아니라 비인간-생물과 도구를 포함한-들과의 연결이 문화를 형성해간다, 공동 행위자라고 보는 것이다.


아, 이 앎이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나는 버섯이 나무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알았으나 송이버섯이 소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연인들이 숲으로 깊이 들어가 버섯을 채집할 때 그것을 재배할 수 없어서임은 알지 못했다. 애나 칭은 핀란드와 일본, 중국, 미국 을 돌며 버섯 채집인들을 만나는데, 핀란드의 버섯 채집장소에 가서 러시아의 국경과 가깝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러시아가 아주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비행기 두시간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갔던 걸 떠올려보고 또 핀란드에서도 러시아 국경도 가깝다니, 여기에서 핀란드는 비행기로 열시간 이상을 가야하는데 도대체 러시아란 얼마나 넓은 것인가 갑자기 아득해졌다. 난민들과 전쟁으로부터 피한 사람들이 버섯을 채집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사실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언제나 벗어나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나는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포스트 휴머니즘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내가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도나 해러웨이, 임소연, 애나 칭을 읽은 경험이 영향을 줬다.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과 사이보그 언급에서는 당황하고 어려웠지만, 그 후에 임소연을 성형수술로 만나고, 애나 칭까지 버섯으로 만나니,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글 한 번 읽는 것으로 금세 이론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 모두를 읽어야 비로소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사실, 도나 해러웨이를 집어들었을 때만해도 내가 마주치게 될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도나 해러웨이, 임소연, 애나 칭을. 그리고 거기에 포스트 휴머니즘이 있었다.


갑자기, 애나 칭의 책속에서 본 이 문구가 떠오른다.



카오가 물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버섯을 따러 가자며 내게 손짓했다. 근처에 버섯이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캠프에서 멀지 않은 바위 언덕을 기어올랐다. 내 눈에는 흙과 가지만 앙상한 소나무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양동이와 막대기를 든 카오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깊이 찌르더니 두툼한 버섯갓을 꺼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 - P41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포스트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제 어렴풋하게 감을 잡은 나는 다음 도나 해러웨이를 조금 더 가뿐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도나 해러웨이에 더 다가가려고 애나 칭을 읽은 게 아닌데, 순수하게 버섯으로 인류를 얘기하는 애나 칭이 궁금했던 것뿐인데, 애나 칭을 만났더니 도나 해러웨이에게 다가갈 자신이 조금 더 생겨났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자신감이 있었다.


짜릿해.





모든 사람이 자본주의에 의존하고있지만 거의 어느 누구도 이전에 ‘정규직‘이라 불리던 직업을 갖고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 P25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럼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정치경제의 균열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30년간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의 숲에서 채집되어 신선한 상태로 일본에 배송되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 P26

나는 경제와 생태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다고 보는 방식을 거부하지만, 경제와 환경을 잇는 한 가지 중요한 연결 고리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바로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투자 자원으로 삼아 부를 축적한 인간의 역사다. 이 역사를 통해 고무된 투자가들은 사람과 사물 모두를 소외시켰는데, 여기서 소외란 마치 생명의 얽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독립할 수 있는능력을 말한다. 사람과 사물은 소외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동하는자산이 되었다. 운송을 통해 거리라는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사람과 사물은 자신의 삶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삶의 세계에서교환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 P29

소나무는 곰팡이를 파트너로 삼아, 인간이 만든 화전에서 번창한다. 소나무와 곰팡이는 환한 빈터와 노출된 무기질 토양을 이용하고자 힘을 합친다. 인간과 소나무와 곰팡이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생명체를 위해 동시적으로 주거 환경을 만들어나간다. 그것이 다종의 세계다. - P56

존재 방식이란 마주침에서 창발하는 결과다. 인간을 떠올려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버섯 채집은 삶의 방식이지만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특성은 아니다. 다른 생물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나무는 인간이 만들어낸 빈터를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버섯을 찾는다. 배치는 삶의 방식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을 만들어낸다. 배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모임은 때때로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happenings‘이 되는가? 만약 진보를 뺀 역사가불확정적이고 다각적이라면, 배치가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줄수 있는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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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9-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자신감이 있었다.

우아.... 이 페이퍼 너무 좋아요! 저도 송이버섯 소나무 옆에서 자라는 거 몰랐어요. 제게 익숙한 버섯은 새송이 버섯인데, 그건 거의 하우스에서 재배되겠죠.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셨다니 너무 대단하십니다. 한다면한다의 다선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나 해러웨이도 임소연도, 우리의 앎이 뻗어져나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라 더 좋고요.

다락방 2023-10-01 22:22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정말이지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회사 동료도 결국 하루를 몽땅 투자해서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하네요. 어렵지만 좋았다고요. 인간과 비인간, 자본주의와 그 주변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참 좋았어요. 뭐랄까 신랄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과 관계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자는 것 같았어요.

단발머리 님이야말로 앎이 뻗어나가도록 다양한 독서를 하시는 분 아니신가요.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님의 앎의 확장에 대한 글을!! 빠샤!!
 
Who Was Harriet Tubman? (Paperback, DGS, Reprint) Who Was (Book) 117
Yona Zeldis McDonough / Penguin Workshop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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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가들도 이렇게 쉬운 단어들로 쉬운 문장들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쉽게 읽혀서 좋고 해리엇 터브만의 일생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해리엇이 첫남편에게 우리 도망치자 했는데 이미 자유의 몸이었던 남편은 이를 거절하고 도망치면 우리 뭐 먹고 살아? 걱정하며 오히려,  너 도망치면 신고할거야,  했다. 그 때부터 해리엇은 남편을 두려워했는데, 나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나서 남편 데리러 갔던 거 너무 충격이다. 가족들 다 데리고 탈출하고 이제 남편도 데려오자, 했던건데, 그렇게 남편 데리러 갔더니 이미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던 부분 …


삶에 있어서 어떤 시간들은 daring 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노예의 땅으로부터 탈출 시키는 것이 그녀가 한 일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시간들에는 earn 해야 했다. 내가 이 얇은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찾아보고 외우게 된 단어가 whipping 이라는 것이 마음이 좀 아프다.


  • 명사 (벌로 가하는) 채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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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9-1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지난번에 해리엇 터브먼 관련 책으로 읽은 번역본의 원서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쉬운 영어책 좋아요.

다락방 2023-09-11 15:09   좋아요 1 | URL
쉬운 영어책은 사랑입니다. 이 얇은 책을 읽고도 성취감을 느꼈어요. 흑흑. 30권 얼른 채워 영어 박사 되겠습니다. 빠샤!!

망고 2023-09-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whip 단어를 인디아나 존스 게임하면서 알게 되었던거 같습니다ㅋㅋㅋㅋㅋ어릴때라 한글화가 안 되어 있어서 사전 찾아가며 게임을 했었어요ㅋㅋㅋ

다락방 2023-09-11 15:11   좋아요 0 | URL
인디아나 존스 게임이란 것도 있나요? 저는 게임쪽은 정말이지 전혀 모릅니다. ㅎㅎ
마침 저는 어제 최근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엄마 아빠와 함께 보았습니다.

해리엇 어릴 때에도 채찍질 당했는데, 아니 어떻게 아이들에게도 채찍질을 하나요. 진짜 인간들도 아니야 ㅠㅠ

망고 2023-09-11 15:37   좋아요 0 | URL
90년대 하던 고전 게임인데ㅋㅋㅋㅋ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졌어요 그 당시 어렸던 저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사전을 옆에 끼고 열심히열심히 게임을 하다가 엄마한테 혼났다는 새드 엔딩ㅜㅜ
그나저나 역시 다락방님은 효녀^^ 부모님과 함께 영화도 보시고 다정하신 분인 듯 합니다ㅎㅎㅎ

사람한테 채찍질은... 너무 끔찍해요ㅠㅠ 하필 비극적인 상황인데 다락방님은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게 되어서 기억엔 오래 남는 효과겠지만 암튼 슬프네요ㅠㅠ

다락방 2023-09-12 13:52   좋아요 0 | URL
사전 끼고 게임하던 어린 망고는 이제 원서를 막 읽을 수 있는 어른 망고가 된 것이로군요! 사전 찾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저도 사전 좋아해요. 지금은 꽂아두기만 하고 보진 않지만 말예요. 하하.

채찍은 사람한테든 동물한테든 끔찍한데, 애초에 그 끔찍한 걸 누가 만들 생각을 한걸까요? ㅠㅠ
 
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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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모든 단편들은 '너'를 관찰하며 쓰여진다. 


나와 처음 만난 너, 길고양이에게 신경을 쓰는 너, 나를 또 만나길 원하는 너,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너, 오지랖 넓은 너,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너, 혹은 언제나 할 말을 하는 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너, 하고자 하는 바를 하려는 너 등등. '나'는 그런 너와 함께 살며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할 때도 있고 불만을 대신 드러내줄 때도 있으며 얹혀사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배려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호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내'가 있고, 싫지만 알겠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너를 만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너를 견뎌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너를 참아내야 하는 내가 드러나는 건, 모두가 '너'를 보며 말한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너'를 말하는 순간 드러나는 건, '너가 그런 사람이다'가 될 수도 있겠으나, 더불어 '그런 너'를 말하는 '이런 나'이기 때문이다.


왜 그걸 견디느냐고 진작에 헤어졌어야 하는데, 그걸 왜 헤어지지 못하냐고, 왜 그런 취급을 당하고도 그 사람 옆에 있냐고, 독자의 입장에 있던 내가 끼어들어 말을 얹으려다가, 그때야 알았다. 아, 책속 화자는 '너'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책속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있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선명해진다. '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것.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처럼,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어떤 것을 욕으로 쓰느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었던 나의 성별을 가지고 욕으로 쓰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그걸 흠으로 보고 있다는 깊은 여성혐오가 내재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상대를 비하하는 그 모든 지점에는 그렇게 보는 '내가' 있는 거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고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자신의 소설을 빌어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당신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해준다고 말이다. 


“당신이 그런 쓰레기한테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당신에 관해 뭔가를 말해준다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시 올리브》, p.265


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해 말해주지만 그러나 이것들만이 나에 대해 말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너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너를 어떻게 보고 너를 좋아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도 나에 대한 것은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로 내 결핍이 드러나는 것처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부터 그리고 결국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와 헤어지고 누구의 옆에 머무르느냐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것.



너에 대해 말하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나를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데, 만약,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 지금과 달랐다면 그때도 '그런 너'를 보는 '이런 내'가 있을까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그들이 만난 곳이 재개발을 앞둔 곳이 아니었다면? 광장이 생긴다고 해놓고서 개인 소유지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면? 언덕을 올라야만 비로소 나오는 집이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청담동에서 만났다면, 대치동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그래도 '그런 너'를 견디는 '이런 내'가 있을까? 애초에 '그런 너'가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런 나'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너를 좋아하는 것 혹은 지금의 너와 헤어지는 것, 이 모든 것에도 나의 공간적 배경은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나의 사회적 계급은 결코 나랑은 그리고 너랑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사무실이 오픈했을 때 냉장고를 사달라는 말에 당황하고 그리고 그것을 할부로 결제하면서,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친구가 아니라 네 친구잖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건 '그런 사람하고 왜 함께인거야, 헤어져'이지만, 그런데 애초에 냉장고쯤은 아무렇지 않게 사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때도 그 상황에 불만과 갈등이 또 쌓이게 될까? 너를 말하는 내가 보이는 이 소설은 결국 너라는 계급을 가진 나라는 계급의 사람을 드러냄에 다름 아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돈이 없어 점점 더 외곽의 집을 구해야만 하는, 좋은 집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사는 이런 계급 속의 너와 나, 그런 우리. 내가 너를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 지극히 내 주관적이고 내 기준이고 내 감정인듯한 이 행위가 그런데 정녕, 내 고유의 나만의 온전한 선택이랄 수 있을까? 


이 모든 '내' 감정은 결국 내 계급이 끼어들어 하는 일이다.

계급이 달랐다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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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에 대해 말하는 것
확 와닿는 구절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건 언제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거 많이 생각해요.그 마음을 딱 짚어주시네요. 그러면서 냉장고를 쉽게 결제할 수 있는 경제력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아주 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아침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좋아요. ^^

다락방 2023-08-11 13:43   좋아요 0 | URL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기가 더 유리하잖아요. 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한데 그와중에 너가 조금 더 가난할 때 혹은 내가 조금 더 가난할 때 여러가지 불만이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리는 것 같아요. 애정으로 시작한 관계도 자주 마주치는 빈곤함앞에 무너지기 일쑤이고요. 더 많이 가졌다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죠.

맞습니다, 바람돌이 님.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분노하거나 존경하거나 등등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할 때는 바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드러나는 것이지요.

미미 2023-08-11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너무 좋네요!
저는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무겁고 복잡하게 다가와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또 한 편의 에세이를 써주셨군요.

다락방 2023-08-11 13:44   좋아요 1 | URL
백자평 쓰려다가 백자평 안에 담기엔 조금 길 것 같아 썼는데 길어져버렸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 님. 이게 제가 8월에 완독한 첫 책이네요 ㅠㅠ

단발머리 2023-08-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늘 리뷰 좋아요, 다락방님....
저는 딱 설명할 수는 없는데, ‘확률적 운명론‘도 생각나고요. 뭐든지 다 정해진 것 아닌데, 무언가는 정해져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것 같고요.
역시나!!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3-08-11 13:46   좋아요 0 | URL
무언가 정해져있는 게 만약 달랐다면,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정해졌다면 또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생겨나겠죠. 제가 지금보다 더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제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나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회사를 다니는게 아니라 경영자라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골프를 치러 다닌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생활방식 같은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만나는 사람들도 달랐을 것이고 그 때 피어나는 애정이나 혹은 불만 역시도 또 다른 형태이겠죠. 그렇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이렇게 태어나는 걸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모습이고, 지금 이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일테고 … 쓸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하하하하하.

책읽는나무 2023-08-11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다른 때보다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이 와 닿네요.
전 아직 이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다락방 님의 관점을 기억하며 읽게 될 것 같아요. 안그랬음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맞어 맞어! 하며 읽었을 것 같아요. 궁금해서 더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다락방 2023-08-11 13:47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 읽어보세요. 짧은 이야기들이라 금세 읽을 수 있는데 제가 너무 피곤에 쩔어 있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네요. 읽으면서 저는 저에 대한 반성도 했습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을 내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나, 같은 거 말이지요.

달자 2023-08-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을 소개할 때 하신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리뷰인 것 같아요! 다락방님의 8월의 첫 책 첫 리뷰 잘 읽었습니다 희희

다락방 2023-08-14 08:36   좋아요 1 | URL
정희진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언급 때문에 이 책을 읽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좋진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선생님은 나랑 다르시구나 싶었고요. 물론, 다름은 너무나 당연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