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아메리카노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서 읽는 족족 알라딘이나 회원에게 중고로 팔기로 등록해 팔고 있는데, 이 책은 팔지말까, 하고 망설이게 만든 부분.
"언니, 마리 소식을 물어보지 않네?"
"그렇네 ……. 마리 얘기를 해봐 …….."
안은 다시 적대적인, 경계하는 태도가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안은 자기 어머니와 똑같은 어조로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언니를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언니는 아프잖아요. 하지만 마리에 대한 무관심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엄마라니, 무슨 변명을 해도 역겹게만 느껴져요."
테레즈는 이 어린 아가씨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안은 내가 먼저 마리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고 반감을 느끼는구나.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걸 안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안은 가문의 다른 여자들처럼, 그리고 그 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자신을 헌신하려 하고 있지.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진정한 나와 만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안은 저 난쟁이와의 사이에서 생긴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에 우리의 사춘기나 장 아제베도의 손길을 깡그리 잊어버릴 거야. 가문의 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전부 버리려 하지. 한 생명에게 자신을 전부 주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그 사라짐, 헌신이란 아름다워.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p.172)
나에게는 로망이 있다. 이것을 로망이라고 불러도 되고 소망이라도 불러도 되고 뭐랄까,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라고 불러도 될텐데. 동남아 어디 한적한 곳에서 자그마한 책방을 여는, 그런 꿈이다. 책방이라고 해서 책을 파는 곳은 아니고, 책을 대여해주고 또 책을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북까페 정도가 아마 적당하겠다. 그곳이 어디든(사실 베트남이었으면 좋겠지만 거기는 이민을 안받고, 그래서 영주권이 안나오고, 그래서 내가 내 이름으로 가게를 차릴 수가 없단다... 베트남 남자랑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을 전부 들고 가서 책방을 차리는 거다. 그러니 한국어로 된 책들만 있겠지. 나는 내가 책방을 차리는 곳, 그 동남아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는 혹은 여행중에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북까페를 운영하는 거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 혹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된 책을 읽기 위해서도 들를 수 있을테고.
물론 나는 이 책방으로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돈은 안될 것이다. 이 책방을 차리기 위해서 나는 이미 먹고살만한 돈이 있어야 되고, 지금 이게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건데, 어쨌든 책방은 나를 조금이나마 먹게 살게 해준다면 너무 땡큐겠지만, 그게 안된다 해도, 나에게는 어떤 일거리가 필요하니까. 하루종일 콧노래만 부르며 흥얼대는 것보다는, 나는 뭔가 계속 하고 싶고 또 사람들도 만나고 싶으니까, 그런데 가진 능력은 없고..대신 책은 가졌으니까!! 할 수 있는게 뭘까 하다가 나온 생각인 거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동남아 어느 한적한 곳에 손님이 잘 들지 않는(ㅠㅠ) 북까페를 차려두고 싶은데, 이 책, 테레즈 데케루를 읽다가, 책장 한 칸을 테마별로 꾸며도 좋겠다는 생각이, 위에 인용문을 보면서 똭- 든거다. 어라? 이 책의 이 구절, 아이디어 터져나오게 했는데? 팔지 말아야 겠는데?
그러니까 그 책장의 테마는 '나 자신을 찾는 것이 필요할 때'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거기에 대표적으로 이 책을 표지가 보이게 놓는거지. 그리고 책 등이 보이게 이 책과 함께 그 책장에 꽂아넣을 책은 이런 책들이 있겠다. (지금 당장은 이 책들밖에 생각이 안나네)
「사실」 하고 그는 엠마 곁으로 되돌아와서는 커다란 사라사 손수건을 이빨로 물어 펴면서 말했다. 「농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들 말고도 또 있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의 노동자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실례지만 말입니다, 내가 아는 불쌍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정숙한 여성들은, 정말이지 거의 성녀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인데 빵 한 조각 없이 헐벗고……」
「하지만 저어……」 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양쪽 끝이 일그러졌다). 「신부님, 빵은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겨울에 불이 없는 여자들」하고 신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요?」
「뭐라고요! 아무려면 어떠냐고요? 내가 보기엔 사람이란 몸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만 하면……왜냐하면……결국……」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스타브 폴로베르, 마담 보바리, 민음사, p.167
다른 한 칸의 테마는 '결국 당신에게 닿는다' 정도로 하면 좋겠다. 내가 꼭 그런 이야기만 읽으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책장을 덮을 즈음, 결국엔 당신에게 닿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책장엔 이런 책들이 놓일 수 있겠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아마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내 평생 당신만큼 사랑한 남자는 없어. 그래서 그 사랑을 찾으려고 당신을 찾아온 거야. 내가 빼앗아 두었던 당신 딸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늘 사랑한 남자 옆에서 죽고 싶었어. 내가 당신만큼 증오한 사람도 없어. 하지만 증오는 아프게 해. 난 그렇지 않아도 통증을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는데 말이야. 사랑은 생기와 평안함을 주고, 죽음과의 만남을 너무 끔찍하지 않게 만드는 안락함까지 선사하지. 내가 지금 한 말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은 하지마. 그냥 믿어." -헤닝 만켈, 이탈리아 구두, 뮤진트리, p.330
테마는 정하기 나름이고 정하고나면 거기에 어떤 책이든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아직 여기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다......인생.............현실........................
내가 머릿속에 이렇게 테마 정하는 것도 그렇고, 한국어가 서투른 외국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으로 함께 책 읽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고, 페미니즘 책 내가 가지고 있는게 50권도 넘으니까, 그걸로 한 달에 두번쯤 페미니즘 모임도 만들고 싶고 ... 그렇게 되면 함께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도 사귀고....다 좋을 것 같은데...............내가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인생........................현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머릿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생각이 폭발하고 있는데.........
그나저나 저녁은 뭘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