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목차에 친절하게도 영화의 제목이 나와있어,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이면 아마도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본 영화는 몇 편이나 있나 세어보았다. 자전거를 탄 소년을 내가 보았나 안보았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본문으로 읽어보니 전혀 기억이 안나는 걸로 보아 안보았구나. 가만있자, 그렇다면 내가 본 소년이 나오는 영화, 대필해주는 여자가 나오는 영화가 뭐더라...하고 머리 싸매고 끙끙대다가 그제서야 내가 본 영화는 《중앙역》이라는 게 떠올랐다. 어찌됐든 내가 '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영화는 이 책에 실린 51편의 영화중에 21편 이더라. 언젠가부터 영화를 많이 보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겹친다 싶다. 어쨌든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가다가, 아, 이렇게 읽으면 안돼, 그러지 말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부분을 보자, 해서는, 내가 본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같은 영화이지만 내가 본 영화와 이 책의 저자가 본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됐다. 특히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 《Take this waltz》에 대해 '틈'을 얘기하다니, 그 영화 그렇게나 좋아해놓고서 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나여...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내가 본 영화와 그녀가 본 영화가 같은 게 맞나 싶다. 그렇게 읽어가다가, 내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중에, 그러니까 보고 싶었지만 놓쳤던 영화중에 '아 진짜 놓친 게 아쉽구나' 하는 영화를 만났다.



















'최상의 파트너', '완벽한 파트너'의 이야기라는 게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앞에 놓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거. 결국 현실적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 라는 답을 내린다는 것에서 이 영화를 강렬하게 보고싶어졌는데, 후다닥, 네이버 굿다운로더 검색해보니 이 영화는 굿다운로더 목록에 없어 ㅠㅠ 슬픔 ㅠㅠ 슬픔의 새드니스.


또, 이 영화를 이런 내용이라니 보고 싶다는 것과는 별개로, 밑줄 그은 부분에서 다른 것들을 소환해냈다. 비포 시리즈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어웨이 위 고》에서 남자와 여자가 길을 떠나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고민에 답을 얻는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비포 시리즈가 생각난건데,


시작되는 모든 연인들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에서 남자와 여자는 상대만 쳐다본다. 상대의 얘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상대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내 모든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면서 상대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거다. 다른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고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중요한 건 상대를 향한 최선의 노력과 집중이니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도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은 서로에게만 향한다. 서로의 일과와 감정 연애 그리고 각자가 서로의 메일을 기다리는 시간에 집중한다. 그 둘 사이에서 대화의 촛점은 오직 둘을 향해서만 맞춰져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사회에 대해 딱히 얘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 입고 자요?' 같은 것들인 것이다.



자, 다시.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가 진행되고 그들이 공식적 커플이 되고나서는, 이제 둘 이외의 것들을 봐야한다. 내가 비포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건, 영화가 이걸 드러내준다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그걸 표현해줬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제 훌쩍 나이들어 버렸고, 함께 살며, 아이도 있다. 이들의 삶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녹아들었는데, 이제 커플로 굳어져버린 그들에게는 '오롯이 상대만'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에 갔고,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섞인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에서는 없었던 장면. 그들은 그들 커플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도 섞여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보기도 하는 거다. 그들이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점을 넘어갔기 때문에 서운한 게 아니라,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단단한 커플이 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서로를 봤고 그렇게 서로에게 섞여들었다면,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섞여내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일이고 과정일 테니까. 그들은 둘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호텔에 갔다가 싸우고 돌아서고 말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지냈음에도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단단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이 그들이 개인이 아닌 그들로서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이 사람의 옆자리에 있고, 이 사람의 내 옆자리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내보일 수 있는 건 굉장한 특권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인데, 《고마워 영화》에서 만난 《어웨이 위 고》에서, 이 커플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다른 곳에 가는 이 장면에서 바로 비포 미드나잇의 '다른 사람들과도 섞이는 장면'이 떠올랐던 거다. 



새벽 세시의 에미와 레오는 어떤가. 그들이 그렇게 서로에게 집중해 연인이 되었다면, 그 후에 그들은 이제 서로가 아닌 다른 것들이 보이고 얘기를 나누게 될것이다. 이봐,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 어떻게 생각해? 라든가, 한국의 한끼줍쇼 프로그램 너무 엿같지 않아? 라든가, 개그프로그램에서 여자의 외모를 비하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거 진짜 구리지? 라든가. 기타 등등. 우리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아 너무 좋지 않은가. 

나와 너였다가 우리가 되고, 그렇게 우리로서 다른 사람들과 섞이는 것. 그것이 반드시 친구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여행지에서 만나 스쳐지나는 사람들일 수 있고, 자주 가는 카페 직원일 수도 있다. 응, 우리는 우리야, 할 수 있는 거. 그리고 그런 우리로서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거.


어웨이 위 고 너무 보고싶은데 ㅠㅠ 굿다운로더에 없어서 ㅠㅠ 진짜 슬픔의 새드니스.




나는 우울해지면 이상하게 아름다운 요리책이 보고싶어지는데 그래서 킨포크 테이블 사고싶다. ㅠㅠ

사진 보면 막 힐링힐링 될 것 같아.

살까... ㅠㅠ
















토요일에 친구들 만나서 여러 좋은 이야기들 함께 나누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건 한 친구가 나한테 '잘생겼다'고 말한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잘생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화장실 갔다오면서 거울 들여다봤다. 내가 뭘 그렇게 잘생겼다고, 거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정도면 그냥 평범한거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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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2-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이 아름다운 책 <고마워 영화> 시작해야겠어요. 사실 저는 안 본 영화가 41편일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ㅠㅠ
비포 시리즈도 저를 기다리고 있지만서도, 이 책 읽으면 더 많은 영화들이 나도! 나도! 할 것 같아요.
얘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다락방 2017-12-11 12:10   좋아요 0 | URL
비포시리즈는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님. 1편부터 3편까지 정말 다 좋아요! >.<
이 책 읽다 보니 [어웨이 위 고] 너무 보고싶은데 지금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하. 지금 저한테 너무나 필요한 영화인것 같은데 말이죠.

2017-12-1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12-1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겼...^^;;;;;; 비포 시리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ㅎ

다락방 2017-12-11 14:57   좋아요 0 | URL
비포 시리즈는 진짜 명작인것 같아요. 저도 다시 보고싶네요. DVD 도 셋트로 다 사고 싶고요! >.<

transient-guest 2017-12-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영화광이었던 적이 있어요. 20상영관을 가진 극장의 영화를 모두 보고, 다른 인디나 아트무비까지 다 보던 시기였는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몇 번 중 하나에 속하는, 꿈과 시간은 많고 현실은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갑자기 이 책을 보니 그때가 생각이 나서 저도 보관함에 담았어요. 프레이야님이 쓰신 두 번째 책이라니, 저는 첫 번째 책도 모르는데 말이죠. 궁금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 중 제가 아는 건 몇 개나 될지...

다락방 2017-12-12 09:08   좋아요 1 | URL
현재까지는 제가 가장 많이 겹치는 것 같은데(이상한 경쟁심 ㅋㅋ) 아마도 이 책을 받고 목차를 펼쳐드신다면, 게스트님은.. 저보다 더 많은 영화가 겹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중학생때 비디오 플레이어를 아빠가 사셨거든요. 너무 신나서 매일매일 미친듯이 비디오샵에 가서 테이프 빌려다 봤어요. 방학때면 삼남매가 난리가 나서, 비디오샵 사장님이 나중엔 하나 빌리면 하나 서비스로 더 빌려주시고 그러셨어요. 그때는 그런데 미성년자여서... 더 많은 영화를 다양하게 보진 못했던 것 같아요. 대신에, 이름도 알지 못하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영화들을 싹 다 봤었죠. 다 지난 일이네요.
불과 몇해전만 해도 보고싶은 영화 있으면 평일에 극장 달려가서 보고 그랬는데 이젠 늙어서(응?) 평일 극장은 힘들어요. 주말이면 내리 두 편을 보기도 했는데, 그역시도 힘들어졌고요. 체력이 될 때 독서든 영화든 여행이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죄다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잘 지냅시다, 게스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