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7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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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힘이 세고 어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기도 하며 한 사람의 자존감을 바닥에서 끌어올려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또 그렇게 믿는다. 휘청거리는 약한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 역시 사랑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고서점에서 고서를 다루는 일을 하는 여자가, 책을 읽지 못하는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면서, 어쩌면 스르륵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사랑을 단단하게 붙잡는 것이, 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의 핵심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난 시리즈를 다 읽어왔다면 알겠지만, 고서점 주인인 '시오리코' 씨는 엄마인 '지에코' 씨와 사이가 안좋다. 지에코가 시오리코의 어린 시절에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갔고, 그 일로 인해 시오리코는 엄마를 원망하는데, 엄마가 고서적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듯이, 어쩌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다 내버려두고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그녀에게는 있다. 그래서 혹여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것이 그녀의 두려움인데, 시오리코의 애인인 '다이스케'는 이에 '니가 떠나고 싶다면 나 역시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고 이 시리즈의 5권에서 얘기한 바 있다. 이미 그 때 나는 한차례 이 사랑의 용감함에 대해서 감탄한 바 있다. 혼자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그 때 배웠던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고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에 관한 것인데, 아주 오래전에 발행된 책에 대해 추적하고 또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짐작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오리코 씨는 예의 책에 대한 지식을 뽐낸다. 아니,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책의 발행 년도와 역사, 작가의 출생과 사망까지,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대사까지 모두 달달달 외우는 건 좀..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아무리 고서를 좋아해도 그럴 수가 있나... 천재라면 가능한 것인가... 내가 못하니까 남도 못한다고 생각하는건가.... 이래서 사람이 남의 입장이 되어봐야 해. 자, 천재의 집장이 되어보자.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의 출판년도와, 작가의 출생과 사망 시기와, 작품목록과, 각 작품속에서의 대사를 나는 외울 수 있는가? 두구두구둥- 있다! 나는 천재니까!


음..천재가 잠깐 되어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각설하고,

이번 셰익스피어의 전작품이 실린 고서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경매에 나오게 되고 이에 시오리코씨는 자신과 별로 사이가 좋지는 않은 엄마 '지에코'와 경쟁하게 생겼다. 서점을 담보로 삼아 대출을 받아서까지 이 책의 경매에 나서게 되는데, 이 굵직한 축을 놓고 틈틈이 셰익스피의 작품 속의 대사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등장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서점에 대한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이 과정에서 지에코는 시오리코에게 고서에 대한 사연과 이야기들을 짐작하고 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고서를 감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과 함께 고서를 찾아 전세계를 다니는 것이 어떤가를 생각하게되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착한것 같긴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는 다이스케 가 별로 마음에 들질 않는다. 지에코는 시오리코도 모르게 다이스케를 찾아가서는 '너란 남자는 능력있는 나의 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돼, 니가 아무리 내 딸을 사랑한다지만 너가 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지?'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에 다이스케 는 휘청인다. 지에코의 말이 틀린 게 없으니까. 시오리코는 고서에 대해 전문가이고 앞으로 그 능력을 더 키울 수도 있고 그렇게 쭉 뻗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텐데, 책도 읽지 못하는 스스로가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녀의 옆에 있는 게 그녀에게 도움이 될것인가.... 다이스케는 조만간 시오리코에게 청혼할 생각이었지만, 고민하게 된다. 


휘청휘청.

흔들흔들.



나는 그 순간 다이스케가 되었다. 사랑은 나를 가득 채워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러다가 이렇게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다지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상대에게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럴 때 누구나 휘청거리가 되지 않나. '이런 부족한 내가 그의 옆에서 괜찮을까' 라는 마음 같은 거, 생기게 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내가 가진 어떤 약점들로 인해 혹여라도 상대의 앞길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상대를 더 고생시키고 상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 나는 다이스케가 되어서 같이 휘청였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야 하는가...그게 진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길은 아닌가...



다이스케는 여기서 실수를 한다. 이 때, 혼자 고민하고 결론 내리기 보다는 시오리코와 상의를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5권에서 시오리코의 고민을 듣고 다이스케가 '같이 가면 되죠!'라고 말했을 때처럼, 다이스케가 고민을 시오리코에게 얘기했다면 시오리코가 어떤 대답을 들려주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다이스케는 말하지 않았고, 시오리코는 다음날 엄마로부터 이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녀는 다이스케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걱정돼 후다닥 다이스케에게 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날 봐요."

거친 숨소리 사이로, 시오리코 씨가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그저께 카페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죠?"

그래. 오늘 그녀는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왔던 이야기도 본인에게 직접 들었으리라.

"네. 어제……."

"잊어버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서로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을 거예요. 다른 어떤 남자도 나에겐 아무 가치가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나예요."

순간 안개가 걷히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p.268-269)



그렇다. 그런 것이다. 사랑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상대와 고민을 나누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의외로 간단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내가 떠나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상대는 더 단단한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다. 이 사랑을 지켜내고 있다.



1권부터 7권 완결에 이르기까지 매 권마다 고서당 이란 제목에 걸맞게 고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오리코 씨가 고서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는 것은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렇듯 시오리코 씨와 다이스케 의 사랑이 점점 더 단단해지는 걸 지켜보는 건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결국 7권 완결에 이르렀을 때, 이거봐, 결국은 사랑 이야기네, 했다. 그리고 그게 무척 좋았다. 점점 더 단단해지는 연인을 본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니까. 


시리즈는 7권으로 끝나지만 고서를 탐험하는 건 아마도 끝이 없을테고, 그렇다면 시오리코는 계속 고서당에서 고서를 매입하고 또 팔면서 일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더 오래된 고서를 찾아 나서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이 그녀 삶의 중요한 기둥일 것이다. (노동 is very important!) 그렇지만 사랑만으로 살 수 없듯이 노동만으로도 살 수 없다. 고서를 다루는 것이 그녀의 노동이기에 앞서 그녀가 사랑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다이스케와 함께한다면 그 삶은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결국은 사랑이야기이다.






"우리 집……너무 엉망이죠?"
"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도통 가믄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알지만……어머니는 그 모양이고, 외할아버지라는 사람도 멀쩡하다고는……. 다이스케 구능ㄴ 이런 복잡한 집안에서 자란 내가 싫어지지는 않았을까 해서……."
"그럴 일 없어요."
의도했던 것보다 어조가 강해졌다. 시오리코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싫어질 일 없습니다.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일은 시오리코 씨와 전혀 상관없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 집안도 멀쩡하지는 않고요."
내 외할머니는 불륜을 저질러 아이까지 낳았다. 사정은 다르지만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인 건 마찬가지였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어느 집이나 나름대로 사정은 있을 거싱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우리 집안 일 때문에 내가 싫어졌어요?"
시오리코 씨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요. 모두 옛날 일이고, 현재 진행되는 일도 아니니까. 앞으로 우리가 잘하면 돼요." (p.61-62)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지만, 일단 희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이에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에는 법칙이 있어서, 비극이나 역사극 같은 내용이 심각한 작품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썼죠. 이 「베니스의 상인」도 그 법칙을 따랐지만 다른 희극은 해당되지 않아요." (p.72)

"자네는 평범한 사람이야. 살다 보면 언젠가 그 아가씨는 자네를 떠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
부담을 주려는 것도, 조롱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다는 편안하게 서서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아가씨가 선택한 건 자네야. 그걸로 충분하잖아. 내가 보기에 자네는 번듯한 청년이고, 그 아가씨는 좀 많이 이상해. 자네라는 번듯한 청년이 그 괴짜 아가씨를 선택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거야. 자신을 가져.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야. 남은 인생이 어떻게 굴러 갈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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