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는 남편의 직장이 파리가 되면서 덩달아 파리로 오게 된다. 남편이 직장에 간 사이 자신은 무엇을 할까 고민해서 모자만들기라든가 하는 일거리에 도전해보지만 영 재미가 없다. 그러다 요리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달걀 삶는 것 같은 걸 가르치는 게 아닌가. 이에 줄리아는 교장선생님께 '그보다 더 고급진 수업을 듣고싶다'고 말한다. 교장은 더 어려운 수업이 있긴 하지만 학생이 전체 다 남자라며, 그런데 들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줄리아는 듣겠다고 한다.


줄리아가 그 수업에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죄다 남자이고, 게다가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느껴진다. 양파를 썰어야 하는데 줄리아가 잘 썰지 못하고, 그때 자신이 느낀 기분이 싫었던 줄리아는, 집에 가서 온종일 양파 써는 연습을 한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남편 역시도 오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양파가 매워서. 줄리아는 '남자들이 나를 무시하는 그 눈빛이 싫다'면서 열심히 양파를 썰고, 그 후의 수업에서 줄리아는 다른 어떤 남자들보다 양파를 잘 썰게 된다. 이 성격은 물론 양파썰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무얼 해도 줄리아는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줄리아의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 양파냄새가 자신을 반겨도 신경질을 내지 않는 남자였다. 이들 사이엔 아이가 없고, 아이가 없는 현실에 줄리아는 가끔 마음 아파하지만, 그런 그녀를 남편은 안고 토닥토닥 '알아 알아' 하면서 다독여준다. 그녀가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되고 열심히 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리고 그 요리를 책으로 출판하는 그 긴긴 시간동안, 남편은 충실한 지원자가 되어준다. 줄리아가 절망할 때 다독여주고, 줄리아의 책이 8년여의 노력 끝에 드디어 출판된다고 했을 때는 함께 환호성을 질러준다. 진심으로 '함께' 기뻐한다. 그가 온화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줄리아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간에 사람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남편은 아내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를 얘기한다. 이전부터 알아온 친구였는데, 어느날 '내가 결혼할 사람은 이 여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때 줄리아의 나이는 마흔이었다고 한다. 마흔의 줄리아는 폴을 만나 결혼하고 그 뒤로 아주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서 그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사랑하고 위한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는 순간, 아내 줄리아는 자신의 가슴에 달았던 하트를 남편을 향해 움직인다.






'줄리'는 그런 줄리아 차일드를 무척 존경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며 그녀의 모든 요리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녀의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매일 포스팅을 한다. 줄리아에게 그랬듯, 줄리에게도 요리는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현재의 줄리가 오래전의 줄리아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줄리는 요리를 실패했을 때 절망한다는 것. 닭 요리를 하려고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준비하다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그녀는 숫제 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고 만다. 난 안돼, 난 안될거야, 이런 제기랄... 그녀의 절망은, 나에게까지도 전해져서, 아아 이것은 스트레스가 크다...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줄리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자신이 요리를 만든 과정을 올릴 때, 그녀에게는 독자가 아무도 없었다. 남편과 친구들만이 응원을 보탤 뿐, 줄리의 엄마조차도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게다가 아무도 내 블로그를 보지 않는다는 절망하에, 혹시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나요? 물었을 때, 마침 그때 기쁘게 딩동- 하고 달린 댓글이 엄마였어....'너 아직도 글 쓰고 있니?'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요리에 계속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그녀에게는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감상을 얘기하고, 그녀가 절망할 때 달래주는 좋은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녀가 퇴근 후에 요리를 만들고 블로그를 하느라 결혼 생활에는 충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섹스가 줄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느 한 날엔 남편도 폭발하고 만다. '나는 천사가 아니야!' 그렇게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리는데, 줄리는 하룻밤을 그 없이 보내고난 후, 남편이 그리워진다. 자신은 이기적이고,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좋은 남편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에 대해서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남편 직장의 자동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긴다.



당신 없이 자려니까 이상해, 당신이 그리워.



그 날, 자신이 이기적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남편을 그리워 한 날,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녁을 요거트로 먹었다고 쓴다. 


yogurt for dinner.




잠이 오지 않았던 줄리는 벌떡 일어나 마트로 가 다시 요리할 재료를 산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워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을 만난다. 그들은 다투었고 그렇게 남편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갔지만, 그렇게 다시 돌아왔고, 서로를 웃으며 반겨준다. 


싸우고 화해하고,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이게 오래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수순 아닐까. 싸우고 어색하지기 보다는 자연스레 화해할 수 있는 바로 이것.




줄리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블로그는 인기가 많아졌고, 그녀에게 음식의 재료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책을 내자는 제안도 여러차례 들어왔고(실제로 책을 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에는 그녀와 그녀의 블로그에 대한 글도 실렸다. 이 모든 과정들이 내게는 낯설지 않았는데, 그녀가 요리로 블로그 활동을 유지했다면, 나는 책읽는 것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줄리와 줄리아는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열심히 해서 그것에 대한 성과를 냈다. 그것으로 기쁨을 찾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가장 훌륭한 것이여..


줄리아는 책을 내기까지 8년이 걸렸다. 그녀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기도 했는데, 또다른 출판사의 여자 편집자는 직접 그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그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자신이 직접 검증을 거친 것. 그때 만들었던 대표 요리가 소고기찜이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요리! 줄리는 한 번 실패했던 그 요리!




이때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면서 맛있다고 감탄하는 장면은 정말 좋은데, 나는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실제로 감탄하고 맛있어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그 반응들, 리액션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면 너무나 좋은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제대로 맛있어 하는 사람들, 진짜 너무 소중해... 맛있는 표정과 신음소리, 정말 좋지 않은가!



그리고 요리 바보인 나도, 계속계속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성스레 만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내놓고 싶어졌어...

(안돼, 그러지마, 그러지마...)






영화 너무 좋다. 펜팔친구 얘기도 나오고, 블로그 얘기 나오는 것도 좋다. 너무나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위축됐던 줄리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낸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고. 기쁨도 슬픔도 우울함도 성공도 함께 나눌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참된 축복인 것 같다. 



에이미 아담스 나온 영화 많이 봤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원서가 있던데(이게 줄리가 쓴 책인듯), 사고 싶은 마음 따위, 눌러버렸!!

포기햇!!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08-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하신 요리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한 번 해 봅니다. 아마도 메뉴는 ˝눈물없인 똠양꿍˝이랄지 ˝지옥에서 건져온 불닭발˝이랄지 ˝쫄면 돼지시든지˝랄지, 뭐 그런 게 나올 것 같아요.

다락방 2017-08-21 11:52   좋아요 2 | URL
아니 이 분이 지금 뭐라시는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쫄면 돼지시든지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서 큰일이에요. 요리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포기해야 한다면 요리를 포기해야 할듯. 요리를 못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거 저런거 다 해보고 싶지만 현실은 구몬 밀리고!! 시사인 밀리고!! 다 밀린다 밀린다 밀려!!!

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 다락방이!! 제가!! 근사한 음식을 준비하고 쇼님을 초대하는 날이요. 있겠지요. 있기를 바라봅니다.

심술 2017-08-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숨어서 읽기만 하다 첨 댓글 달아봅니다.

저도 이 영화 좋아해요. 두 번 봤는데 첨 봤을 땐 언제였는지 잊었고,
다만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TV로 본 것만은 기억나네요,
둘째로 본 게 바로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EBS였나 OBS에서 주말밤영화로 해 주는 걸 봤죠.

영화에서 줄리아 차일드 남편 연기한 배우가 스탠리 투치였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줄리아 차일드 아니 미란다 프리쓸리에게 시달리는
앤 해써웨이에게 패션잡지사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던 게이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선 아내 브리짓 폰다를 못살게 굴던 찌질한 남편으로 기억해요.
이 영화에선 맥카시즘에 시달리고 극우꼴통스런 장인에게 시달리는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더군요.

메릴 스트립이랑 에이미 아담스는 워낙 유명해서 더 할 말이 없고요.

구몬이랑 시사IN이랑 요리랑 다 잘 하시기를.

다락방 2017-08-21 13:1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줄리아 차일드의 남편은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었죠. 아내를 위로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내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파트너의 자세란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줄리의 남편 ‘크리스 메시나‘도 좋았어요. 역시나 다정한 남편이었고요. 영화속 여자들이 똑똑하고 멋져서 좋았는데, 그녀들의 남편들 모두 다정한 사람들이어서 또 좋았어요.

저는 굿다운로드로 이 영화 다운 받아놓았는데, 참 잘했다 싶어요. 친구가 이 영화 좋다고 엄청 얘기해서 진작 다운 받아놓고 이제야 보았는데, 보면서 아 이래서 보라 그랬구나 싶더라고요. 참 재미있게 봤고 좋은 영화였어요. 에이미 아담스는 이 영화에서 제일 예뻤어요. 흣.

구몬이랑 시사인은... 아,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Orz

지나 2017-08-2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줄리앤 줄리아 책으로 보고 있는데 잘 읽어져요ㅠㅠ 벌써 며칠째 잡고 있는건지

다락방 2017-08-21 15:41   좋아요 0 | URL
앗. 원서를 읽고 계신건가요? 책은 잘 안넘어가나 보군요. 세상에 읽을 책이 아주아주아주아주 많으니, 다른 책 읽으세요, 쥴리님. 그리고 이건 그냥 영화로 보시는 게 어떠세요? 영화 무척 좋아요!

지나 2017-08-2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원서라니요 지금은 절판 됬지만 한글판이 있답니다.먹는거 좋아해서 술술 읽힐줄 알았는데ㅠㅠ

다락방 2017-08-21 15:56   좋아요 0 | URL
아 한글판이 있었군요! 검색했을 때 원서만 나오길래 원서 읽으시는 건줄 알았어요.
먹는 거 좋아해서 저도 이 영화 보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소고기찜 만든 거 보니까 막 먹고싶고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7-08-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괜찮지요. 사실 이거 보고서 저 옛날 파리에서 지독한 편견을 이겨낸 아주머니의 책을 구했나 구하려다 말았나..아무튼 좋았습니다.ㅎㅎ 근데 메일 스트립 남편으로 나온 배우의 러브-러브 연기가 좀 질척했던 기억이..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분이 게이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키스가 너무 연기스럽게 질척하더라구요..ㅎㅎ

다락방 2017-08-22 11:3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남편분이 너무 다정해서 좋았거든요. 다정하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고 늘 옆에 있어주고 이러는 거 너무 좋아가지고 질척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메릴 스트립의 억양이 좀 어색했지만, 그건 역할을 위해서 그런 것 같고요.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 둘 다 너무 다정하고 애정뿜뿜해서 이영화가 더 좋더라고요! 긍정적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몇 안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