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친척 집에 방문했다. 시골이었고 마당에 개 몇 마리를 풀어 놓았었는데,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나로서는 개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었고, 그래서 그 개를 돌보는 건 상대적으로 나보다 낮 시간에 집에 더 오래 있는 아빠와 엄마 몫이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처음부터 개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개는 어딘가 아파 보였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이 아픈 증상에 대해 얘기를 하고 약을 받아 먹이고 치료를 해야 하는데, 아빠 엄마는 원치 않는 일이었고, 나는 당장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아빠 엉마는 두 분이서 '이 개를 버리자' 고 하셨다. '한강 근처에 가서 풀어놓자'고. 나는 그것이 너무 잔인하다 생각했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개를 버리지 말자고 얘기하기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출근준비를 하며 고통스러웠다. 저 개를 어쩌지, 버리면 안되는데, 저 개를 데려온이상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함께 가야 하는데, 아프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산책도 시키고, 똥도 치우고, 밥도 먹여야 하는데, 내가 그걸 하지도 못하면서 데려와서, 가뜩이나 동물과 함께 살기 싫어하는 부모님께 맡겨두고, 이제와 버리면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면, 내가 그게 할 짓인가..내가 도대체 저 개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아아, 버릴 순 없어, 유기견을 만들 순 없어, 그렇지만 나는 낮동안에 저 개와 함께 있지 않고, 저 개를 아빠 엄마가 낮에 버리면 나는 ...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데려다놓고.....아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그냥 혼자 나가서 저 개랑 둘이 살까, 그러면 낮에는 외롭지만 그래도 버려지진 않을텐데..아아 괴롭다, 고통스럽다, 부모님이 더 저 개랑 오래 있어본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텐데, 아아, 책임지지도 못할 상황을 나는 왜 만들었던가, 책임지지도 못할 생명을 왜 멋대로 데려다놓고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려는건가, 아아, 어쩌지, 답이 안나온다, 어쩌지...고통스럽다, 어쩌지....
하다가 알람이 울려서 깼고, 그래서 꿈인 줄 알았다. 아, 진짜 눈물나게 다행한 일이었다. 저게 현실이 아니라서, 진짜로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생명을 가져다놓고 곧 버릴 상황을 만든 게 아니라서, 아아,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야 ㅠㅠ 정말 다행이다 ㅠㅠㅠ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을 뻔 했어.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 이틀동안 일자산에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개를 데리고 산책 온 사람들을 많이 마주쳤더랬다. 아마도 그래서 저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휴.. 책임질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섣불리 예쁘거나 귀엽다거나 나 외롭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들이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꿈에서 고통을 당하고 나니 더더욱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여 나중에 혼자 살게 되어도, 나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을 들이진 말자, 내가 그 존재에게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그저 책을 벗삼아, 술을 벗삼아, 그렇게 조용한 삶을 살자, 새삼 마음 먹었다.
토요일엔 여동생집엘 갔었다. 큰 조카가 유치원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고 작은 조카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 예정이다. 제부는 지난 주에 가족 제주도여행중에 양주를 사왔고, 그걸 함께 마시며 파티를 하자고 나와 남동생을 부른 것이었다. 제부네 집에 술을 마시러 가면 안주는 늘상 제부가 준비를 한다. 부대찌개 끓이는 솜씨는 수준급이라, 사 먹는 부대찌개는 이제 별 맛이 없을 정도다. 이번에는 새로운 안주를 만들어보겠다며, 그렇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니 잘 못만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제부는 차돌숙주볶음과 버터조개찜을 만들었다. 차돌숙주볶음은 내가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는 안주인데, 실제로 제부가 차돌을 듬뿍 넣어서, 남동생과 나는 연신 칭찬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거 이자까야 가면 숙주만 엄청 많고 고기는 몇 점 없잖아요, 하면서, 아아 여기 고기 듬뿍듬뿍 너무 좋아, 이러면서 흡입했다. 두 번째 준비된 안주는 조개찜이라고 했는데, 나와 남동생은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는 특히나 조개를 싫어해...먹고 싶지 않아...그래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오, 제부여, 왜 버터에 볶는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냄새며 비쥬얼이 장난 아니고, 오오, 먹었을 때 진짜 맛있는 거다. 내가 제부에게 몇차례나 얘기했다. 저 진짜 조개 싫어하는데 여태 살면서 먹어본 조개중 제일 맛있어요, 라고. 매운고추까지 있어서 진짜 맛있었다. 버터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 같다. 버터만세!! ♡
금요일엔 여자지인과 남자지인을 만나 셋이 함께 술을 마셨다. 우리가 그러니까.. 2011년부터 알아왔던가... 만난 횟수가 많진 않지만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라서, 이 만남은 항상 하고나면 너무나 즐겁다. 1차로 중국집엘 갔는데, 마파두부, 동파육, 유린기를 시켜 맛있게 먹고 2차를 가기로 했다. 2차는 가볍게 맥주 한잔 하자, 하고 일어났던 거였는데, 중국집 근처에 내가 가끔 가는 레스토랑이 있는 게 생각나, 와인 어떠세요? 물으니 두 분 다 좋다고 하시는 거다. 감바스를 안주로 시켜두고 와인 한 병을 시켜두고 우리는 계속 수다를 떨었다. 여행 얘기며 일 얘기, 그리고 내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 진짜 너무 재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2차는 제가 살게요, 하고 자리를 파하기 전에 계산을 했는데, 우리 이렇게 오래 만나다보니 와인도 같이 마시네요, 하고 별 거 아닌 순간들까지도 꽤 좋게 느껴졌다. 우리가 처음에 알 때는 서로의 사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사적인 얘기가 하나씩 둘씩 늘어가는구나 싶었다. 한 순간도 대화가 끊기지 않고 계속계속 얘깃거리가 나와서 참 좋았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진짜 큰 축복인 것 같다. 좋은 시간이었다.
술이 좋아.......
그나저나 주말에 여동생네 식구를 위해 책을 한 권씩 준비해갔었단 말이다.
왼쪽부터 다섯살 조카, 여덟살 조카, 여동생, 제부.... 에게 준 책인데....하아- 이들은 왜 책을 좋아하지 않는거지....조카 두 명에게 읽어줄까? 했더니 됐다고 하고...제부는 관심도 없는 것 같고.....제부랑 여동생이야 뭐.... 그렇다쳐도, 아니, 조카들아, 니네 이모가 다락방이야....니네 이모가 다락방이라고........그런데 왜 너희들은 책에 관심이 없니? 왜지? 어릴 때부터 이모가 책 읽는 걸 봐왔고, 우리 집에만 오면 이모방을 제일 먼저 오고 또 들어와서는 안나가려고 하잖아......그런데 왜때문에 너희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지???? 아아 그러나 무언가를 좋아하라고 내가 강요할 순 없는 법이지.......조카들아 이것만 알아주렴, 너희들이 책을 보고 싶을 때 이모 책장에 있는 책들은 너희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흙 ㅜㅜ 조카와 함께 즐거운 책읽기..이런 로망은 실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래, 그런 로망 실현하지 않으면 어때.... 괜찮아.....나는 성인 남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로망은 많이 실현했으니까....그래, 사람이 다 가질 순 없지.....조카들아, 너희들은 너희들이 즐거운 걸 찾아서 행복해지렴...이모도 그렇게 할게......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성인 남자는.............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네? ... 그래 괜찮아....내가 좋아하니까.......위 아 더 월드, 월드 피스!
아주 오래전에는 GQ 계속 사봤었는데 언젠가부터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더랬다. 그런데 이번 호에는 한국남자에 대한 칼럼이 몇 개 실렸나보다. 오오, 궁금해.
이번호 지큐는 사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