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데이브의 일화는 그와 그의 친구 다섯 명이 길거리에 서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매력적인 여성이 그들 앞을 지나가고 그들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중 한 명(편의상 '밉상'이라고 부르자.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나불거리는 그런 타입 있지 않은가)이 그녀를 향해 외친다. "거기 언니, 완전 섹시한데! 내가 죽여줄까?" 이런 경우 대부분 여성들은 밉상의 부적절한 발언을 익숙한 듯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그 여성이 뒤돌아보더니 제대로 쏘아붙인 것이다. 

그녀는 욕을 섞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로 밉상을 따끔하게 혼내주었다. 그녀의 말발 센 공격을 받고 나자 데이브와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우우" 하고 외쳤다. 나는 데이브에게 이런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 데이브는 친구들이 여자에게 굴욕당한 밉상을 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씨름에서 여자에게 지는 것은 남자에게 지는 것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리게 여자에게 당한 것이었고 맨박스에 따르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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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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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밉상의 남자다움을 위협하며 그를 맨박스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절망적이 되어 화가 치민 그는 이윽고 욕을 하며 여성을 때릴 듯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뛰쫓아 가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데이브 말로는 결국 자신과 나머지 친구들이 밉상을 붙잡아서 제지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계속해서 여성을 위협하고 비인간적인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이내 여성이 물러서자 밉상은 그제서야 남자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p.120-121)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과 함께 집근처의 독서실에 다녔었다. 밤늦게까지 독서실에 있다가 나오면 독서실 문 앞에서 아빠가 우리를 집에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밤늦게 독서실에서 나왔는데 우리가 전보다 약간 빨리 나왔던건지, 아빠는 채 독서실 문앞까지 오시지 못한 채, 저기 저 횡단보도 앞으로 다가서고 계셨다. 우린 아빠를 발견했고 아빠도 우리를 보셨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해 신호가 바뀌면 아빠가 우리 쪽으로 오거나 혹은 우리가 아빠 쪽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우리도 그렇게 횡단보도 앞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맞은편에서 남자 아이들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도 아마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을 갔다 왔는가보다. 그들은 네명 혹은 다섯명이었는데, 그들 중에 한 명이 나와 내 여동생 옆을 지나면서 우리에게 뭐라고 했다. 그것이 나 혹은 여동생 혹은 둘다의 외모 비하였는지 성적 대상화에 관련된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완전 화가 나서 그 놈한테 욕을 했다. 개새끼야 닥치라고 했던가, 뭐 그런 식으로 소리치며 욕을 했던 거다. 



그 무리는 우리를 지나쳐가고 있었고, 그 학생이 우리에게 비하 발언을 하고 내가 욕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이는 한걸음 두 걸음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 무리 아이들이 우리를 욕한 그 학생에게 낄낄대며 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낄낄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화가 난채로 걸었고 그렇게 점점 그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다다다닥- 하고 뛰면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나한테 욕을 먹었던 놈이 우리를 향해 주먹진 손을 위로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아아, 이러다 얻어 터지겠구나, 생각하고 겁먹은 나는, 금세 저 횡단보도 앞에 우리 아빠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크게 "아빠!" 하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우리 아빠를 가리켰다. 당연히 뛰어오던 놈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던 방향을 보았고, 거기엔 우리 아빠가 이 새끼야 죽고싶냐며 돌을 들고 서 계셨다. 그러나 신호가 아직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건지, 이 놈은 멈추지 않고 우리 앞까지 뛰어왔고, 마침 독서실 옆 순댓국집 사장님이 밖에 나와 식칼을 갈고 계시다가 그 칼을 들고는 우리쪽을 향해 뛰셨다.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하고. 이 사장님을 본 녀석은 잽싸게 뒤를 돌아 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히(?!) 그 놈에게 맞지 않은 채로 무사히 아빠를 만났고, 아빠는 뛰어와서 순댓국 사장님과 잠깐 이야길 나누셨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이 일로 아빠 엄마에게 엄청 혼나야 했다. 미쳤냐고, 왜 거기서 남자애들한테 욕을 하냐고, 겁도 없이 왜그러느냐고, 너 그 때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냐, 너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 등등...아 진짜 많이 혼났다......



중학교 때도 그랬어 ㅠㅠ 나를 포함한 여자애들 세 명이 하교중이었는데, 저 쪽에서 걸어오던 우리 또래의 남학생 세 명중 한 명이 우리에게 '기집애야 조용히들 걸어!' 라고 했던가, 뭐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해서 내가 또 나도 모르게 '너나 조용히해 이새끼야' 이래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해놓고 나서 맞을까봐 졸 무서워했더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나여.. 맞을까봐 무서워하면서 왜 버럭버럭 맞서는가... Orz




고등학교 시절 밤길에 마주친 그 남학생은 친구들 앞에서 쪽팔림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애가 자기에게 욕을 했고, 친구들 앞에서 그 욕을 먹어버렸으니.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림이 먼저였겠지. 그 쪽팔림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에 세다는 걸 다시 보여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나를 때리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 나를 죽도록 팼을지, 한 대 때리고 도망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들 앞에서 나를 때려야만 자신의 기가 다시 산다고 느꼈을 것이다. 애초에 놀리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말이다. 아아, 오만년만에 내 고딩시절 생각났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있는듯 없는듯한 아이였는데,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도 아닌, 그냥 구석에 쭈그러진 여고생1 이런 거였는데, 그런 아이가 저런 상황에서는 개새끼, 이새끼 이러면서 욕을 했어..... 난...뭐냐? 


나는 내가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묻힌 과거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니 '싸우자!' 하는 그런 사람이었는가보다. 나는 나를 잘 몰랐던건가...




이 책의 저자 '토니 포터'는 남자들이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등등)이 남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이라고 말한다. 선한 남성들이 거기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폭력을 가하는 남성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남자가 남자에게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뀌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일단 남자들이 여자들 말은 무시하면서 남자들의 말엔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래서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이 당연한 일을 생각하고 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마어마하게 감사한 마음도 든다. 이런 식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남자가 적은데 토니 포터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여기엔 한계가 있구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할 때, 그걸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는 이유가 '네 딸이 다른 남자들로부터 그런 대상이 되어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떨것 같냐?' 이니까. 나는 여기서 한계를 느끼고 씁쓸해지는데, 남성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면 안되는 이유에 '네 딸이, 네 여동생이, 네 누나가, 네 어머니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를 전제해야 하는걸까. 그걸 인간이 인간에게 그러면 안되는 일로는 이해하기 힘든걸까. 실제로 이렇게 물었을 때 많은 남성들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깨닫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이 전제는(우리가 성적대상화 하는 대상이 우리의 딸, 애인일 수도 있다) 습관처럼 누군가를 성적대상화 할 때 번번이 떠오를까? 이건 얼마나 유효할까. 게다가 '나는 딸 안낳을건데?' 라는 식으로 자기가 대상화 하는 대상과 분리시켜 버리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 거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될 짓, 지켜야 할 기본 선, 이런 걸로 이해하라고 하면 내가 너무 이상적인걸까?




수천 명의 남성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있었다. 만약 남성들 중 하나가 내가 보는 앞에서 여성을 "XX년"으로 지칭하면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대응하곤 한다.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알겠스니다만 제가 한 가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우선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를 잠시 생각해볼까요? 만약 선생님께서 아는 다른 여성분들이 그 단어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만약 따님이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그 단어를 들었다면 어떨까요?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p.152-153)



게다가 이 일을 '나의 딸이나 애인이 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라고 하면 우선적으로는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일어나면 기분 나쁘다'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결국은 '그런 소리 안듣게 잘 하고 다녀' 라고 여성들에게 또 책임을 미루지 않을까? 나는 아무리 생가해도 그럴 것 같은데? 야, 나는 니가 그런 말 듣는 거 싫어, 성적 대상화 되는 거 싫으니까 옷 야하게 입지 말고 화장 진하게 하지 말고 밤에 다니지 말고 기타등등...으로 되어버리지 않을까? 나는 사실 많은 남자들이 이미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더 조심하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게 어떻게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그래서는 안된다, 를 주입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다닐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누군가 나를 대상화 시켜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너도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이걸 인지하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네 주변의 누군가가~ '하고 대입시키는 건 답이 아닌 것 같아...




남자들에게 주어진 성역할, 남자들은 강해야 하고 울지 말아야 하고 감정 표현을 느끼는대로 다 하면 안되고 등등 '강요된 남자다움'을 맨박스라고 하는데, 이것부터 일단 없애버리는 것, 이 맨박스로부터 나오는 것이 가장 우선된 순서이다. 남자들은 이래야 한다~ 를 말하는 순간 자연스레 '여자들은~ '도 생겨버리니까. 게다가 남자들에게 강인함을, 냉정함을, 객관적임을 주입하는 순간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와 동시에 '그래서 열등하다'가 되어버리니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약하니 우리를 보호해줘, 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너네 폭력을 쓰지마!'를 말하는 거지. 토니 포터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는 길은, 남자의 사회화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고. 이런 사람이 알고 있고 또 여러 사람에게 얘기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백 명이 듣는다고 백 명이 다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그동안 자신이 '선한 남자로서' 폭력이 행해지는 데 어떻게 도왔는지 인지할 것이고 또 잘못을 뉘우칠 것이며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 사람이 점차로 많아지면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라고 있다, 나도. 




여성들은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이 폭력을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성들은 해법의 일부분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 된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존중한다면 여성의 안전은 자연히 뒤따라 올 것이고 여성 폭력도 감소할 것이다. 먼 훗날엔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맨박스가 언제까지 선한 남성들의 핑계가 되어 줄 수는 없다. (p.174-175)





폭력적인 남성은 우리 같은 평범한 남성들로부터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 남자들이 ‘나쁜 놈‘들을 용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간섭하지 않고 자기 일에나 신경 쓰는 것이 이에 속한다. 남자들의 남의 가정 폭력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는 저변에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그 사람의 아내 혹은 여자 친구)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남성들이 침묵을 지킬 때 그 침묵은 폭력적인 남성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는 남성들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방해물로 작용한다. (p.25)

<빌의 이야기> 요새 몇몇 여자들은 남자들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남자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도 합니다. 여동생이 이런 소리를 자주 하는데 저는 이게 결혼할 남자가 없는 걸 정당화하려는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여자가 남자 따위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는 걸 증오합니다. 그런 행동이 남자들의 기를 죽이기 때문이죠.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이 "난 남자가 필요 없어요. 돈도 있고 집도 있고 좋은 차도 뽑았어요.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다고요" 라고 말하는 건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에요. 저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이런 성향을 이해하고 일부러 자존심을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리 하기 싫지만, 저는 여자들이 여성 폭력 문제를 스스로 초래했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때리는 게 괜찮다는 게 아니라(저야 폭력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여자들도 자기들이 폭력 문제를 발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알아야 합니다. (p.88-89)

빌은 스스로를 ‘꼰대‘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성의 손으로 자행되는 여성 폭력을 여성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있다는 주장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서도 종종 들려온다. 여성이라면 남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자의 자존심이 상처 입지 않도록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는 발상은 남성들이 매우 자주 언급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집단이 힘없는 피해 집단에 강압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강요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성들이 강압적인 처사에 반기를 들거나 평등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반작용(폭력)은 스스로 불러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시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빌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데 바로 여성들이 남자에 대한 반발로 동성애를 선택한다는 인식이다. (p,89)

"남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뭐냐면요. 여자에 대한 인식과 여자를 대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껏 몸에 깊게 밴 인식을 재정립해야 하는 거죠. 전 남자들이 어떤 이슈에서건 여자들의 의견과 생각, 제안, 충고를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남성만큼 존중할 때 우리는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성차별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자신을 ‘덜 남자답게‘ 느끼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순히 기분이 나쁘다, 신경질이 난다 또는 여자들에게 화가 난다, 이렇게 반응하죠. 맨박스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반응해도 된다고 가르치거든요." (게리의 이야기중 p.123-124)

"성폭행의 가해자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정답은 당연히 남성이었다. "만약에 여학생들을 구내식당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실어 나르는 대신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봐야 하죠?" 회의에 참석한 여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동의를 표했다.
우리의 가히 ‘혁명적인‘ 대응책은 일부 남성 교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심지어 한 남성은 우리가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젠더 프로파일링‘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그렇다면 캠퍼스 내에서 자행되는 성폭력도 엄연히 젠더 프로파일링임을 상기키셨다. 캠퍼스의 모든 여성들에게 셔틀 차량을 이용할 것을 촉구하는 것 또한 젠더 프로파일링일 터였다. (p,136)

우리는 ‘진정한 남자다움은 최대한 여자드레게 관심을 두지 않고 여성들의 경험과 거리를 두는 것‘이라는 믿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해보고, 그 세상 속에서 다른 남성들이 자신의 딸을 어떻게 대할지를 그려보고 나면 대화에 임하는 남성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내 자기 내부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주변 남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잠자는 시간만 빼고 딸들을 쫓아다니며 다른 남성으로부터 방패막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딸이 겪게 될 세상을 상상하며 자신의 평소 행실을 더욱 통력하게 반성하게 되고 마침내 전구의 스위치가 반짝 켜진 듯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p.142)

여성들이 지켜야 할 갖가지 수칙만큼이나 많은 질문들이 여성들을 따라다닌다.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면 이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왜 그랬는데?" 류의 질문들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습니까? 왜 그렇게 야한 옷을 입고 외출한 겁니까?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습니까? 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니지 않고 혼자 길거리에 나왔습니까? 가정 폭력 케이스에 등장하는 매우 고질적이고 고약한 질문인 "남편이 그렇게 폭력을 쓰면 헤어져야지 왜 안 헤어집니까?"도 마찬가지다. 한술 더 떠 "맞으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거 보니 좋은가 보지"라고 내뱉기도 한다.
이런 질문들은 ‘피해자 책임 전가‘라고 부르는 현상의 일부다. 우리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도록 강요한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에게 습관처럼 "왜 그런 남편하고 안 헤어집니까?"라고 물으면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 "왜 폭력을 멈추지 않습니까?"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p.149-150)

온라인 속 남성들의 비상식적인 발언들은 여성을 겨냥한 경우가 많다. 앞서 보았듯 여성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경향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내용은 워낙에 남성들이 소화하기 버거워하는 주제이므로 그나마 남성의 편으로 보이는 나 같은 남성이 말할 때 조금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여성이 가르치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성들의 마음속에는 ‘어디서 여자가 자꾸 이런 시비를 걸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여성 강연자가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나보다 더 상냥하게 전달한다고 해도 결국 남성들은 같은 남성이 가르치는 것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건 남서들이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남성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맨박스 일화들에서 보았듯 착한 남성들도 다른 남성들만큼이나 성차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그 어떤 남성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p.155-156)

노력과 인내심, 용기를 가지면 맨박스를 벗어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첫 단계로 뜻이 맞는 남성들을 모아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남녀평등 이슈를 다시 새각하기 시작한 남성은 이것이 아주 장기적이고 힘든 (하지만 보람찬) 과정이란 걸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려면 주변에서 동기부여를 도와줄 이들이 필요하다. 내 경우 가장 큰 동기 부여는 내 딸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과 내 앋르들이 자라났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p.164)

남성ㄷ르은 곧잘 자신의 성별 때문에 제공받은 특혜와 이점을 마치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여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화적 규범은 이런 믿음이 옳다고 편들어준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며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대접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고 억압하며 학대하는 행위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해악은 남성들이 먼저 책임을 인정하고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고쳐질 수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진 남성이라고 해서 이토록 많은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계속해서 무시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사랑하는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문제이기 때문이다. (p.170)

남성들이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폭력 행위의 책임을 가해 남성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성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같은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대로 정확히 명칭을 정하자면 행위의 가해자인 남성을 지목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처럼 말이다. (p.171-172)

남성들은 여성 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여성 폭력 문제는 모든 남성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일처럼 폭력 근절을 약속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남성 모두가 연대적 책임감을 느끼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난 모든 남성들이 자신의 사회화 학습 내용과 여성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보길 요청한다. 이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의무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말이다. (p.173)

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비폭력적으로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소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절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죠. 그들은 자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를 빼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폭력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폭력성이 정신병 때문이었다면 폭력 행동은 여성 앞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나타났겠죠. 정신병 증상이 발현된다면 상대방을 가리거나 성별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남성의 폭력만큼은 여성 앞에서만 발현되는 듯했습니다. (p.187)

여성들은 신변의 안전을 지키고 남성들의 폭력을 피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은 하루에 세 명꼴로 현재 혹은 과거 배우자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은 여성들의 가장 흔한 신체적 상해 원인으로 꼽힙니다. 미국 기준으로 매일 응급실에 방문하는 여성들의 35% 정도는 남성에 의한 폭력의 직간접적인 결과입니다. 우리는 극히 소수의 남성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략 15~20%의 남성들이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성폭력을 저지릅니다. 열 중 여덟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우린 이 여덟 명의 남성이 다른 두 명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말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남성들이 던지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폭력과 학대를 반대하는 남성들이 폭력을 쓰는 남성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우리가 고대하는 변화가 현실화되고 남자다움이 재정의될 거라 믿습니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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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21 22:03   좋아요 0 | URL
앗 저 안그래도 밑줄긋기 하러 들어왔다가 오타 발견하고 수정했어요. 히힛. 새당 보고서 응? 새누리당 쓸라 그랬나? 했지 뭡니까 ㅋㅋㅋㅋㅋㅋ 대상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고마워요!

오늘의 안주는 없습니다! 오늘은 술 안마시고 밑줄긋기만 다 올리고 잘거예요. 혹시 날아갈까봐 일단 저장 한 번 해주고 다시 덧붙이러 갑니다. 히힛.

님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시군요! 우먼 파워!! 얍!!!

나와같다면 2017-02-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만 해도 갈고 있던 식칼을 들고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라고 소리치는 순댓국집 사장님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믿음 이란게 있었는데..

지금은 각자 살아남아야 되는 세상인것 같아요..

다락방 2017-02-22 07:56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성평등에 대해 가르치고 교육한다면 지금보다 확실히 더 나은 세상이 될텐데요. 우린 너무 차별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었을 때부터의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같다면 님.

아무개 2017-02-22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강의 주제가 맨막스와 유리천장이었어요.
이 두가지를 같은 방식의 억압기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유리천잗은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사회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기제이지만
맨박스는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맨박스에 헌신하는 남성(강하고 남자다운 남성)일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수 있는 기제가 된다.
이렇게 두가지를 같은 억압기제로 보기 때문에 남성들이 우리도 맨박스 때문에 힘들어요. 징징징 거리는 거라고
강사가 이야기 하더라구요.
아차...싶었습니다.
저도 맨박스 읽으면서 여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아시겠지만, 네 딸, 부인 뭐 여튼 아는 여자로 상상해라 등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맨박스에 갖힌 남성들이 안됐다, 너희들도 힘들겠다 그러니 같이 페미니즘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맨박스에 안에서의 삶이 맨박스를 깨고 나오야 하는 삶보다
더 많은 이득이 주어질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 개인에게 왜 그 박스를 부수고 나오지 않냐고 하는 것은 멍청한 소리였어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손해 볼것이 없으니까요.

개인의 변화가 먼저인가, 사회의 변화가 먼저인가.
답을 알겠다 싶으면 그 답이 틀렸나 싶어지고....

다락방 2017-02-22 09:13   좋아요 5 | URL
저는 맨박스가 유리천장과 같은 식의 억압기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었어요. 맨박스는 강요된 사회화로 이해했거든요. 이건 오르려 해도 오를 수 없는 유리천장과는 다르니까요. 저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인만큼 더 유효하게 작용할 거란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래서 한계가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리뷰에도 썼지만, ‘니가 아는 여자가 당했다고 생각해봐라‘ 는 전 진짜 답이 아닌 것 같거든요. 남자가 여자가 되지 않는이상, 그 수많은 성적대상화의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니가 아는 여자가 당했다고 생각해봐‘는 부질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예를 들면 남자들이 아! 하고 깨닫는다고 하더라고요. 글쎄요, 저는 남자들이 이미 많이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여자들이 억압당하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저자가 맨박스로부터 나오자, 라고 하는 건 충분히 의미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보여져요. 그렇지만 제가 거기다 대고 ‘맨박스로부터 나와‘ 라고 말하는 건 아예 들리지도 않겠죠. 그래서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계가 느껴지고 ... 책장을 덮었을 때는 개운한 기분이 아니더라고요. 저도 계속계속 공부하고 계속계속 생각하는데 뭔가 뚜렷한 길이 딱 눈 앞에 나타나는 기분은 아니에요. 순간순간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참고 문헌 없음] 텀블벅에 후원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가 선택한 오늘의 할 일이었어요! 눈뜨자마자 후원! 후훗.

레와 2017-02-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페이퍼를 읽으면서 또 배우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다락방 2017-02-22 20:58   좋아요 0 | URL
배우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 내가 고마워요!
우리 계속 얘기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