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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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p.51)




내가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때 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가 무얼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끊임없이 '왜 나만?', '왜 여자만?', '왜 나는 너(남자)랑 같은 행동을 하면 안돼?' 라고 의문을 가져왔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 발언했었다. 내가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페미니스트 였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린 셈이다.


한편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있고, 그걸 드러내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불리한 위치에 여성이 놓여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성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나는 하이힐을 신으면서 기분 좋아하고 예쁜 원피스를 나풀거리면서 걷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눈화장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이는 눈을 만들 수 있을까 섀도우를 바르며 갸웃갸웃 한다. 보습이 잔뜩 들어간 크림을 새로 샀고, 예쁜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다. 


나는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자기들만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환상을 이제는 공공연한 기준으로 세워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성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모델들은 전부 남자들이 바라는 바로 그런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육체를 바로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순간도 없다. 너네는 저렇게 마른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니네들이 세워놓은 니네들만의 기준이고, 나는 그렇게 살진 않겠다, 라고 늘 생각해왔다. 나는 내 욕망에 충실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어. 그것이 비록 항아리처럼 배가 나온 모습이라도, 그게 내가 좋다면 나는 그런대로 살거야. 너네한테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먹고 싶은 걸 참고 하루종일 운동하면서 살진 않을 거야. 만약 내가 먹고 싶은 걸 참고 운동하는 데 빡세게 노력한다면, 그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어야 해. 혹여 '남자들은 그렇게 뚱뚱한 여자, 관리 안하는 여자 싫어해' 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싫어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남자가 있어야만 삶이 충족된다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가 함께할 때 불행한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나지만, 내 스스로 여전히 많은 고정관념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을 볼 때마다 좋아 죽는 것이다. 이렇게 강한 남자를 보는 게 너무나 짜릿해, 이것은 사회가 맞춰놓은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에 그대로 굴복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단지 나는 미에 대해 나만의 기준을 가진 것인가... 내가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가득한 몸을 보고 좋아하는 게, 그러니까, 그냥 나의 취향적인 문제인걸까? 아니면 나는 길들여진건가? 여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강한 남자가 그러니까 나만의 고유한 판타지인건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내가 갇혀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쳐나가야 할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갇힌 고정관념에 대한 것일 거다. 그렇지만... 나는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하지만....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내 연인에게 재이슨 스태덤처럼 되라고 말하진 않아, 재이슨 스태덤이 저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페티시즘에 더 가깝지 않을까? 단단한 근육, 강인함에 대한 페티시즘? 



그러면서 약간 갸웃하는게, 내 주변의 여자사람들은 나처럼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보다는 잘생긴 얼굴, 마른 몸, 아름다운 미소 같은 것으로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강동원한테 1도 관심이 없고(정말이다, 영화 개봉해도 안궁금하고 안본다) 오로지 재이슨 스태덤한테만 관심있다. 아, 이것은 그러니까 나의 취향의 문제인가..




내가 지금껏 써놓은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작은 책 한 권에 그대로 들어가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자신의 남자사람 친구, 동료, 할머니의 얘기들을 풀어놓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한다. 실제의 사람들과 실제의 대화, 본인의 경험으로 풀어놓은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힌다.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전국의 청소년에게 모두 배부했다고 하니, 이 책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것을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될테다. 얼마전에 여자지인에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했는데, 그 책 읽기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읽어보면 사실 그간 자신이 느껴오고 생각한 게 정리되어 있었을테지만, 거기에 접근하는 용어라든가 그걸 툭툭 건드려서 꺼내놓는 걸 읽는 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선물하기로 했다. 이 책이라면 접근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 페미니즘을 다룬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타자화'라는 단어 자체부터 일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는 그런 어려운 용어들로 페미니즘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책이 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남성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기는 좀 더 꺼려지는데, 나는 이 책을 남동생에게 읽어보라 권했다. 이거 되게 짧아, 한 시간도 안걸릴거야, 그리고 쉬워, 그러니까 꼭 읽어봐, 라고 했더니 남동생은 읽었다. 다 읽고나서는,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이 책은 남자보다도 아직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여자들이 읽는 게 중요할 것 같아, 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김을동 같은 사람이 읽어야 되지 않겠냐고... 김을동.......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나 확고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크게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아직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혹은, 이건 뭔가 이상해, 이건 좀 불공평하잖아? 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래 맞아! 라고 고개 끄덕이며, 그렇다면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생각하게 될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입문서로 권한다.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 이론으로 설명한 게 아니라 경험으로 접근한 책이라 책장을 넘기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남동생이 다 읽은 이 책을 제부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또 한 권을 준비했다. 남동생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들이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소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말한다면, 귀기울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게 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을 경험으로써, 제공한다. 



이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8,82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음, 조금만 더 저렴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어떤 기념일에, 명절연휴에,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이 상대에게 건네며 선물하기에 좋은 가격 아닌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책의 말미에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아니,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나라에서 뭐하냐, 역사교과서 가지고 지랄하지말고 이 책을 청소년 모두에게 배부하라!!




다른 사람의 페미니즘 테드 강연까지 더해서 책을 이거보다 살짝 두껍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겨 별을 하나 뺀다.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p.13)

나는 간절히 반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시험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은 남자아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선생인믕 그 점을 사전에 밝히는 걸 잊었는데, 어차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시험에서 이등을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남자아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욱더 재미있었던 점은, 그 남자아이는 회초리를 들고 교실을 순찰하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상냥하고 온화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너무너무 그러고 싶었지요.
하지만 나는 여자였고, 그 아이는 남자였으므로, 그 아이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p.15-16)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p.16)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Wangari Muta Maathai 는 이 형산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p.20)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p.23)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p.31)

한번은 알고 지내는 어느 나이지리아 사람이 내게 나 때문에 남자들이 위축될까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위축될 남자라면 애초에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타입이니까요. (p.33)

나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심지어는 직장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을 하도 많이 받은 나머지 등 떠밀리듯이 나쁜 선택을 하고 만 젊은 여자들을 많이 압니다.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에 다다른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심각한 개인적 실패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p.34)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p.35)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화가 그 차이를 더 강화합니다. (p.39)

내가 아는 한 여성은 남편과 똑같은 학위를 받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집안일을 거의 도맡는데, 이건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렇죠. 내가 그보다도 놀란 점은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내가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그녀가 남자가 자기 자식을 돌보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면 어떨까요? (p.41)

나는 내 여성성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만하니까요. 나는 정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사상에 관해서 훌륭한 논쟁을 벌일 때 행복합니다. 나는 하이힐을 좋아하고, 립스틱을 바릅니다. 남자에게 받는 칭찬도 여자에게 받는 칭찬도 다 좋지만(솔직히 털어놓자면 스타일 좋은 여자들의 칭찬이 더 기쁘긴 합니다), 가끔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그 옷을 입으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남성의 시선"이 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대체로 부수적입니다. (p.42-43)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묹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4)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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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마야 2016-0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교과서 대신 이걸 읽게 하자는 다락방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는 모든 남성들에게 선물하려구요. 모두가 평화롭게 존재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요^^

다락방 2016-02-12 15:20   좋아요 1 | URL
네네, 저도 쟁여두고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회사 동료에게 한 권 선물했어요. 히힛. 좋은 책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레와 2016-02-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완료! 땡큐!

다락방 2016-02-15 08:03   좋아요 0 | URL
금세 읽을 거에요, 레와님. 무엇보다 생활에서 나온 얘기들이라 쉽게 접근 가능했고요. 추천!

2016-02-1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