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중학생인 나를 엄마가 당분간 친척 집에 맡긴다면, 안간다고 신경질을 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어찌어찌 친척집에 갔다면, 뭔가 화난 상태로 계속 뚱해 있었을 것 같다. 리쿠도 그랬다. 엄마가 고모네 집으로 자신을 보낸 게 너무 싫었다. 게다가 엄마가 그토록 무시해서 그동안 만나보지도 못하게 했던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를 쓰는 고모가 아닌가! 어릴때부터 간사이 지방 사투리는 천하다고 시끄럽다고 엄마한테 들어왔기에, 리쿠는 그 지방의 사투리가 혹여라도 자기에게 익숙해질까봐 치를 떤다. 엄마의 지나치게 '완벽한' 교육 때문에 공감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리쿠는, 그러나 어떤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눈물이 필요한 순간에는 운다.



음, 좀 복잡한 마음이 되었는데,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에는, 자신의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분홍색이나 인형에 대한 선택이 필수적인 것처럼 되는 걸 막기 위해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지만, 유치원에 보내고나니 분홍색과 인형을 취향으로 갖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이 세계 안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갖게 되는 고유한 환경은, 그 안에 있을 때는 힘이 세다. 물론 바깥으로 처음 나간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고. 그러나 더 넓은 세계에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고, 또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엄마밖에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말은 힘이 세지만, 아빠의 말은 진실이지만,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완전히 낯선 세계가 펼쳐지고, 그걸 보며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서 취하게 된다. 리쿠는 중학생인지금, 다른 세계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쩌면 엄마 아빠가 틀린 걸수도 있다는 걸 아마 앞으로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걸 아주 늦게 알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집에서 받는 교육과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 졸업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아빠 엄마의 말과 선생님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내가 듣지 못한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경험을 중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좁은 세계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 좁은 세계의 환경이 전부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은 넓은 세계로 자꾸만 나가게 되는데,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릴 때의 환경은 얼마나 중요할까? 에 대한 생각을 해보노라면, 리쿠가 그랬듯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인 것 같아 엄청 중요하게 느껴지다가도, 그러다가 결국은 다른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른 생각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달라지는 걸 보노라니, 결국은 인간 개개인의 잠재력이 살아가는 데 더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부모님에게 교육 받은 대로 살지 않고 또 국민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지 않고,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니, 결국 사람은 자기 갈 길을 가는건가..



아이사와 리쿠는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이 만화의 중요한 포인트 역시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 다음'을 얘기하기 위해 풀어놓은 이야기. 




리쿠의 엄마에 대해서도 꼭 얘기하고 싶은데, 그녀는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외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요일에 보았던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에서 여자주인공인 '에이미'의 아버지는 몸이 아파 요양원에 계신다. 자신에게 사귀자고 말하는, 연인이 되자고 말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중에 에이미는 요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가 다치셨다고. 함께 있던 남자는 닥터였고, 에이미가 통화를 끊고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하자 자신도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래서 그와 그녀는 에이미의 아버지를 찾아가고 남자는 아버지의 이마에 찢어진 상처를 치료해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연인이 되어있었던 남자는 에이미의 옆에 있어주고 그녀가 동생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을 때도 그녀를 토닥이며 안부를 물어준다. 아, 저런 게 연인인가, 저런 게 상대를 사랑하는건가 싶을 만큼 그 장면들이 좋았다. 관심을 가진 상대, 애정을 가진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거. 그리고 도움을 주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 그래서 그들이 서로를 너무나 좋다고 말하면서 연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리쿠의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바람피는 걸 알고있고, 그걸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쿨한 척 하지 않아도 될텐데, 싶었던 거다. 남편이 '그녀와 헤어질까?'라고 물어도 그녀는 아니라고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이 혼자 아내를 짝사랑하는 것 같다고 외로워한다. 그렇게 강한 척 하지 않는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강한 척 하다가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고. 어차피 인간이야 결국 외로운 동물이긴 하지만, 차라리, '나랑 결혼했는데 나만 사랑해야지' 라고 으르렁거리는 편이, 너가 다른 여자를 만나니까 나는 외로워, 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너가 좋을대로 다른 여자 만나, 라고 해서 리쿠의 엄마는 자꾸만 쓸쓸함을 안에 쌓아두게 되는 것 같다. 여태 세상을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이 세상에 '쿨한' 사람은 없다는 거다. '쿨한 척'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건강한 관계란 그런 것 같다. 나의 외로움, 나의 모자람을 상대에게 솔직히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대가 그에 대해 위로와 격려 도움을 준다고 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완벽하게 보이고 싶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에 더 부족해지는 게 아닐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픈 걸 모르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걸 모른다. 자꾸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음..뭐, 나도 그리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울면 상대가 안아주고 상대가 울면 내가 안아주고 그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웃으면 상대가 함께 웃고 상대가 웃으면 나도 같이 웃으면서 그렇게. 리코는 '그 다음'이 기대되는 중학생이지만 '리코 엄마'는 이제 변하기 힘든 어른인 것 같아서 리코보다 훨씬 더 눈에 밟힌다. 가뜩이나 사는 게 더러운데, 세상이 더러운데,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유행가 가사 중에도 그런 게 있지 않나. 사랑만 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라.....




아침에 동료직원이 아메리카노를 사주고 촉촉한 초코칩도 줬다. 함께 먹는데 존맛..핵존맛.. 너무 맛있어서 집에 가고 싶다. 촉촉한 초코칩을 수십박스 사서 쌓아두고 아메리카노 어마어마한 냄비에 받아놓고 하루종일 먹으면서 핵존맛 핵존맛.. 이러면서 있고 싶다. 그러면 행복하겠지.. 인간..

크리스마스 계획을 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빠 엄마 모시고 가서 함께 갈비를 먹고!! 크리스마스 당일날에는 퍼져서 늦잠을 자는 거다!!!!! 


완벽한 계획이야...


삶의 연속성..무얼 먹을지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유지되는....삶의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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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5-11-2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크리스마스 계획인데요!
계획........ 슬쩍 컨닝해갑니다.
저는 담주에 기념일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11-26 10:17   좋아요 1 | URL
계획 좋죠!! 맛있게 많이 먹고 퍼져서 늦잠 자는 건 진짜 지상 최고의 계획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5-11-2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1-26 15:54   좋아요 1 | URL
그림체가 좋았어요. 단순한 그림이잖아요. 이 만화책은 `그 다음`이 중요한 만화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 읽고나서 했어요. 그리고 리쿠 가족이 좀 신경쓰여요..

크리스마스에 딩굴딩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져요. 뭐, 저는 별 게획 없음에도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왔지만 말예요. 크리스마스는 어쩐지 두근두근한단 말예요? ㅎㅎㅎㅎㅎ

건조기후 2015-11-27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맛있어서 집에 가고 싶다 ㅋㅋㅋㅋㅋ 나는 촉촉한 초코칩이랑 칙촉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왔다갔다해요. 희한하게 하나가 맛있으면 하나가 맛없더라고요.. 흐음

다락방 2015-11-27 17:11   좋아요 1 | URL
오늘은 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에요. 일주일만에 엄마 만나는데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 하시길래 소고기 먹고싶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먹자, 라고 하셔서 행복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촉촉한 초코칩이 책상 서랍에 하나 남아서...아껴야겠다 싶어, 좀 전에는 오레오웨하스를 먹었어요. 이것도 진짜 맛있어요. 행복해..초콜렛은 사랑인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