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헌사부터 아름답다.



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존재들이 이 헌사 안에 다 들어가있다. 특히나 나는 '이해하는 남자들'을 빼놓지 않은 것이 너무나 좋다. 이 책을 사게 만든, 그리고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이 분명 세상엔 많이 존재하지만, 한쪽 성, 혹은 차별받아왔던 성이 느끼는 부조리함을 '이해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므로, 그 존재들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시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따금 불쑥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나 음모론을 늘어놓는 사람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지만, 내 경험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p.15)




이 책에서 말하는 '가르치려는 남자들'은 당연히 '상대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친절한 남자들과는 다르다. 나는 상대가 어떤 성을 가지고 있든 대화중에 내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물어보고, 또 상대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면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내 말에 무언가 잘못된 게 있다고 지적하면 아 그런가?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하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꾸 나를 가르치려는 남자들'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어리석은 듯, 자신의 지식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만큼 깊지 못함을 넌지시 암시하며 얘기하는 남자들을 말한다. 이런 남자들은 도처에 널려있는데, 그러다보니 재작년이었나, 남자사람 L 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책에 대한 대화중이었는데, 자세한 얘기는 패스하고, 주변에서 이 분 책 좋아하고 많이 읽으세요, 라고 나를 가리키는데 그의 양어깨에는 거만함이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책이란 무엇이고 문학이란 무엇인지 얘기하는 그에게 나의 의견을 얘기해봤자 귀에 닿지 않았다. 얘기하다 진이 빠져서, 야 이자식아, 내가 책을 읽고 쓴 책도 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나, 다락방이야, 새꺄!




'어떤' 남자들에게는 여자들은 여전히 남성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남성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장착되어 있는 것 같다. 본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여성' 앞에서는 죽어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류의 남자들. 자신이 뭔가 가르쳐줘야 비로소 여자들이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들. 이 책을 쓴 저자, '리베카 솔닛'은 바로 그런 경험을 했고, 이 경험들이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이 겪었던 경험이란 것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 



"자자, 책을 두어권 쓰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나는 대답했다. "사실은 그보단 더 많이 썼습니다."

그는 친구의 일곱살 난 아이에게 플루트를 얼마나 배웠는지 이야기해보라고 구슬리는 사람처럼 물었다. "그래서, 어떤 내용들입니까?"

그때까지 내가 쓴 예닐곱권의 책들이 다룬 주제는 상당히 다채로웠지만, 나는 2003년 그해 여름에 나온 최신작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림자의 강: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기술의 서부시대』(River of Shadows" Edward Muybridge and the Technological Wild West) 라는 책으로, 시공간의 소멸과 일상의 산업화를 다룬 내용이었다.

내가 마이브리지를 언급하자마자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올해 마이브리지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다는 거 압니까?"

나는 내게 할당된 배역, 순진한 아가씨라는 배역에 워낙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책이 동시에 출간되었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그걸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벌써 그 아주 중요한 책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장광설을 펼치는 남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만한 표정으로, 자기 자신의 권위라는 저 멀고 흐릿한 지평선에 지그시 시선을 고정한 얼굴로. 

이 대목에서 잠깐, 내 인생에는 사랑스러운 남자들도 잔뜩 있다는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부터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격려하고 내 글을 발표해준 일련의 수많은 편집자들, 한량없이 너그러운 남동생, 그리고-펠렌 선생님의 초서(Geoffery Chaucer) 수업에서 배웠던 것이 여태 기억나는 『캔터베리 이야기』속 대학셍에 관한 묘사처럼-"그는 기꺼이 배우고 기꺼이 가르쳤다"라고 표현할 만한 멋진 남자 친구들. 그래도 세상에는 다른 남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아주 중요한 남자분은 내가 처음부터 그 정체를 알아차렸어야 마땅한 책에 대해서 거만하게 떠들었고, 보다 못한 쌜리가 끼어들어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입니다" 라고 말했다. 아니, 끼어들려고 시도는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쌜리가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이라고요"를 세번인가 네번쯤 말한 뒤에야 그는 말귀를 알아들었고, 그 즉시 꼭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사람처럼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알고 보니 그가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 몇 달 전에 『뉴욕 타임스 북리뷰』에서 서평만 읽었을 뿐인 그 아주 중요한 책의 저자가 나란 사실은 깔끔한 범주들로 분류되는 그의 세상을 몹시 교란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여자인 우리는 조신하게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곳까지 벗어난 뒤에야 웃음을 터뜨렸고,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건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은밀하고 모호한 힘들이 풀밭에서 스르르 기어나와, 소를 삼킨 아나콘다나 카펫에 떨어진 코끼리 똥처럼 우리 눈에 뻔히 들어오고야 마는 순간을. (p.13-14)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이 책의 1장이 교과서에 실렸으면 좋겠다고 한 트윗을 봤다.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이 책의 1장을 고스란히 이곳에다 옮기고 싶어졌다. 오래전부터 학습되어온, 배경으로 깔려온 '여성의 열등함'은, 애초에 여성에겐 대부분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끊임없이 여자들은 그것을 남성들과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고 말해왔고, 그래서 여기까지 이르게 된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세다. 그것이 남자는 과잉 잘난척을 하게 만들고 여자는 자기 절제를 하게 만든다. 9.11 테러전에 여성 FBI 요원이 수상한 사람의 수색을 요청했지만 상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고, 결국 그가 테러가담자였음이 테러 후에 드러난 사실까지 드러내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한 이런 증후군은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일 치르고 있는 전쟁이며 여성 내면에서도 벌어지는 전쟁이다. 자신이 잉여라는 생각과의 전쟁이고, 침묵하라는 종용과의 전쟁이다. 작가로서 썩 괜찮은 경력을 쌓은 나조차도 (더구나 나는 많은 조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바로잡은 사실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했다. 인정하건대, 내게도 그 아주 중요한 남자분의 거만한 확신이 그보다 덜 굳건했던 내 자신감을 자빠뜨리도록 허락한 순간이 있지 않은가. (p.16-17)



내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듣고 '어, 이러면 안되는건가?'라고 돌이켜 보는 것이 확실히 내가 속한 성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것은 자기 불신과는 다르다.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닌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나는 다른 여성들에 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할 권리를 훨씬 많이 인정받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나는 약간의 자기불신은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이해하고 귀담아듣고 발전하는 데 좋은 도구라는 사실도 안다-지나친 자기불신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철저한 자기확신은 교만한 멍청이를 낳겠지만 말이다. 남성과 여성은 그런 양 극단으로 각각 밀어붙여지고 있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행복한 중간지대가 있으며, 우리는 모두 서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그 훈훈한 적도대에서 만나야 한다. (p.17)



저자는 끊임없이 언급한다. 모든 남성이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는' 남자들, '사랑스러운' 남자들, 이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내 주변에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남자들은 사랑스럽고 이해하려는 남자들이라고.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너무 좋은 시선으로만 보려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분명 나는 이해하려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과 대화도 해보고 또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역시, 안다. 



신뢰성은 생존의 기본 도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알아가기 시작하던 시절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핵물리학자 삼촌이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그 삼촌은 우리에게 핵폭탄 연구자들이 사는 교외의 자기 동네에서 한 이웃집 부인이 한밤중에 알몸으로 집을 뛰쳐나와서는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비명을 질러댔다는 이야기를-마치 가볍고 재미난 대화 소재인 것처럼-들려주었다. 나는 물었다. 남편이 진짜로 아내를 죽이려 한 게 아니란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내게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따라서 남편이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말은 여자가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외치면서 집을 뛰쳐나온 데 대한 설명으로서 믿을 만하지 않다고, 오히려 여자가 정신 나간 거라고 ‥‥‥(p.18)



.............빡친다. 단순히 빡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여자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으려는 저 자세, 저 마인드가 어쩌면 그날 한 여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했을런지도 모른다. 점잖은 중산층 가정은 대체 뭘 의미하는가. 왜 알몸으로 뛰쳐나온 여자의 발언은 힘이 없는가. 그러므로 '남자들이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것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강간과 성폭력에 이르게 되는 이 글이 결코 비약도 아니고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여성의 발언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이니까. 



여성도 생명권, 자유권, 문화와 정치에 관여할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싸움은 가끔은 퍽 암울하다. 내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쓰면서 스스로도 놀란 점은, 처음에는 재미난 일화로 시작한 글이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을 이야기하면서 끝났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괴로움, 폭력으로 강요된 침묵, 그리고 폭력에 의한 죽음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연속선상의 현상들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그리고 우리가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잘 이해하려면 힘의 오용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가정폭력을 강간,살인,성희롱,협박과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지 말아야 하고, 온라인과 가정과 직장과 거리를 전부 아울러야 한다. 그렇게 전체를 보아야만 패턴이 뚜렷해진다). (p.31)




제2장에서도 '함께 하는 남자들'에 대한 언급을, 저자는 빠뜨리지 않는다.



대체 남성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사람들이 남성다움을 상상하는 방식, 남성의 어떤 특질을 칭송하고 장려하는 방식, 소년들에게 폭력이 전수되는 방식에는 뭔가 고심해볼 만한 문제가 있다. 물론 세상에는 사랑스럽고 멋진 남다조 많다. 여성에 대한 전쟁의 이번 판에서 그나마 고무적인 점은 이 문제를 이해하고, 이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고, 일상에서나 온라인에서나 올겨울에 뉴델리에서 쌘프란시스코까지 번졌던 가두행진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나선 남자들이 아주 많았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남자들은 점점 더 좋은 동맹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남자들은 과거에도 소수나마 늘 있었다. 다정함과 온화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감정이입에도 남녀가 없다. 오늘날 가정폭력 건수는 과거 수십년에 비해 현격하게 낮아졌고(지금도 충격적으로 높기는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이 남성성과 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상을 빚어가고 있다. (p.60)



문득 궁금해졌다. 함께 하는 남자들에 대해 여성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느낄때, '가르치려는 남자들' 은 그 남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그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로 대할까? 또한 남성들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여자사람들에게는(니가 옷차림을 조심해야지, 남편 밥상을 니가 꼭 챙겨줘야지 등등), 이 모든 여성들또한 남성들의 주장과 운동이 어떻게 보일까? 그들은 역시 여성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생각할까? 여성 상위 시대가 됐다고?



이 책의 4장은 내가 읽으면서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이다. <위협을 칭송하며>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평등결혼의 진정한 의미' 라는 부제를 또한 달고 있다. 동성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게이와 레즈비언은 어떤 특질과 역할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가 하는 질문을 진작부터 제기해왔고, 그런 물음은 이성애자에게도 해방적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가 결혼을 하면 그에 따라 결혼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들의 결합에는 위계의 전통이 깔려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현상을 기쁘게 환영했다. 동성결혼을 많이 주재한 한 장로교 목사는 내게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하된 뒤, 결혼식을 진행하기에 앞서 동성 커플들을 만나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들의 관계에는 오래된 가부장적 기본 설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건 보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p.95-96)



아!!!!!!!!!!!!!!!!!!!!!!!!!!!!!!!!!!!!!!!!!!!!!!!!!!

이건, 내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자식에게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는 것도, 남편의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며 양육을 하는 역할이 자연스레 여성에게 주어지던 것도, 이 동성결혼에서는 없을 수밖에 없잖은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같이' 해야한다. 결혼이 평등해지는 순간이다.'동성애는 아픈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관대한 시선을 자랑하던 사람은 이걸 어떻게 볼까. '평등한' 관계가, 어떻게 '아픈'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단 말이냐!! 위 인용문에서 목사가 '보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일' 이라고 했는데 읽는 내게도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다. '평등한' 결혼이라면, 할만하지 않은가! 


이외에도 밑줄 그은 부분은,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므로 밑줄긋기로 밑에 추가하겠다.




주말에는 친구와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을 찾았다. 걷는 코스가 약 세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는데, 쉬엄쉬엄 슬렁슬렁 걸으려다가 처음에 똭- 눈앞에 펼쳐진 오르막길에 당황했다. 오르막길..힘...들잖아? 여튼, 가는 길에 우리는 까페에 들러 차가운 커피를 주문했다. 알라딘 보틀을 내밀고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친구는 아이스캬라멜라떼를 주문했다. 이미 한 까페에서는 병 입구에 들어가지 않는 얼음을 가진 터라 되돌아 나왔다. 이곳의 얼음은 입구에 들어가긴 했는데, 넣을 때 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어느 정도 넣어야 되는지도 몰라 커피 안의 얼음은 금방 녹아버렸다. 커피를 붓는데도 속시원히 확- 붓는 게 아니라 좀 시간이 걸린다. 뒤에 사람들 줄도 서있는데, 아 나 이거 민폐 아닌가 싶어지더라. 커피를 받으면서, 병이 작아서 좀 불편하셨죠, 라고 까페 직원에게 물으니, 예쁘게 생긴 여자사람 까페 직원은 



"네, 주둥이가 좁아서요."



라더라. 하하하하하하하하. 주둥이, 란 말에 친구랑 나는 빵터졌다. 





병 안의 얼음은 금방 녹아버렸고, 아이스커피는 아이스커피가 아니었...정말 더럽게 맛없었...커피는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래야 하는데 이건 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 환경 생각한다고 병 가지고 왔다가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버렸다. 하아- 이런 무의미한 삽질들...커피를 사는데 이 병은 딱히 쓸모가 없었다. 그냥 텀블러가 낫다. 예뻐서 한 개 더 받으려다가 관뒀다. 



산림욕장을 걷는데, 우와- 초록초록한 게 정말 좋았다.






사춘기 소녀의 심정으로 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을 봤을 때는 어쩐지 가고 싶어지더라. 나는 반항하는 소녀!




과천 서울대공원 역에서부터 시작하면 총 네시간여를 걸었고, 우리는 지쳤다. 날씨는 좋았고 사갔던 500미리 물은 다 마신 상황. 내려오자마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고, 우리는 길에서 걸으며 마셨다. 이것은, 어른의 특권!



(어느 손가락이 제 것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순천 정원박람회에 갔을 때도 산책 도중 맥주를 사마시며, 아, 나는 내가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는 말을 친구와 나눈 적이 있었다. 이 맛을 모르고 산다는 건 초큼 슬플 것 같아. 나는 내가 술을 마시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어른이 되어 좋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19금 영화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가 볼 수 있고, 19금 책을 살 수 있고,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때나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래서 맥주를 마시고 또!! 술집엘 갔다. 우리는 많이 걸어 피곤하고 에너지를 소비했으니, 그걸 다시 채워줘야잖은가!



건배!



토요일에 올린 피쏘 사진은 이 일 뒤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날 저녁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폭식..을 한 것이다. 폭식에 과음..다음날 일어나니 눈이 개구리 눈이 되어 있었다. 내 다이어트는..어디에???????????????



금요일 오전, 외근 다녀오면서 여섯살 조카와 통화를 했다. 지난 주말 우리집 왔을 때 위 아래로 검정색 옷을 입었던 조카가 무척 예뻤던 것이 불쑥 생각나, 그 얘기를 했다.


타미야, 며칠전에 타미가 이모네 집에 왔을 때, 위 아래로 검정색 옷 입고 왔잖아, 기억나?


타미는 기억난다고 했고, 나는 


그때 타미 너무너무 예뻤어.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


라고 했는데, 타미는 '타미는 싫어' 라고 하는 거다. 그날 제 친할아버지 집에 먼저 들렀던 타미는 위에 다른 색 옷을 하나 더 입고 갔었는데, 우리집에 오던 중 더워 입던 옷중 하나를 벗고나니 위아래 다 검정색 티셔츠와 레깅스로 검정색 차림이 된 것. 근데 그 모습을 보고 제부가 자꾸만 '도찐개찐'이라고 놀렸던 거다. '아빠가 자꾸 도찐개찐이라 놀려서 싫어' 라고 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입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타미 아빠도 타미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그래.


말해놓고 나니 이게 말이야 소야, 되게 멍청한 발언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이게 뭐야. 허구헌날 어른들이 뻘소리 해대던거, 그거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그러고 있잖아! 다시 주워담고 싶은 말이었다. 예쁘고 귀여워서 놀린다니...아뿔싸, 혀를 깨물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타미가 말했다.



예쁘면 예쁘다고 해야지!



아! 타미 말이 맞다. 나는 보이지 않는 전화기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말이 맞다. 맞아. 그래서 타미에게 말했다.



응, 타미 말이 맞아. 예쁘면 놀리는 게 아니라 예쁘면 예쁘다고 해야해. 



나는 이렇게 여섯살 아이에게 또 하나를 배운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와 함께 어른도 커가는 것이구나.





읽지 못한 책이 책장에 수두룩하게 쌓였는데도 또 이렇게 책박스를 받아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친구에게 '야, 그 책이 뭐였지?' 하고 또 읽지 않고 사지 않은 책을 사고자 묻는다. 다른 책을 읽고 있다가 빨리 읽고 싶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를 읽었는데, 이걸 읽으면서도 또 황정은의 책과 수전 손택의 책이 막 읽고 싶어지고, 어휴, 한 번에 하나씩만 읽을 수 있다는 게 되게 불편하다. 눈이 스무개쯤 달렸으면 원하는 만큼 읽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그래봤자 머리가 하나면 별수 없지 않나 싶어, 그렇다면 머리도 열개쯤 되야되나, 하는 생각을 하릴없이 해본다.



실은 요즘엔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까닭이다. 나로서는 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끝.



울프는 텍스트를, 상상력을, 소설 속 인물들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특히 여성들을 위해서도 그런 자유를 요구했다. 바로 이 점이 울프의 핵심이자 내가 최고로 모범적이라고 여기는 특징이다. 그녀가 칭송했던 해방은 공식적,제도적,이성적 해방이 아니라 익숙한 것, 안전한 것, 알려진 것을 넘어서 좀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해방이었다. 그녀가 요구했던 여성해방은 단순히 남자들이 수행하는 제도적 활동의 일부를 여자들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요즘은 여자들도 다 한다), 지리적 차원에서든 상상력의 차원에서든 자유롭게 쏘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실제적인 형태의 자유와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울프는 잘 알았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그런 주장을 펼쳤는데, 흔히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만 기억되는 그 책에는 예의 유명한 극작가의 불운한 여동생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멋지고 비참한 사연을 통해서 여성에게는 또한 대학과 전세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p.143-144)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훈련할 수 없었다. 하물며 술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한밤중에 거리를 쏘다닐 수 있었겠는가?" 술집에서의 식사, 한밤중의 거리 산책, 도시의 자유로움은 우리의 자유에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체성을 잃기 위해서다.(p.144)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일은 전혀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그동안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는 자신들이 망상적이고, 헷갈려하고,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사악하고, 음모론적이고, 선천적으로 부정직하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가끔은 그 모든 표현들을 동시에.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문제는 왜 사람들이 여성의 말을 일축하려는 충동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런 비난이 왜 그렇게 자주 여성은 대단히 부조리하거나 히스테릭하다는 비난으로 빠지는가 하는 점이다. 부조리와 히스테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받는 비난이다.(p.154)

내가 좋아하는 비유는 따로 있다. 진보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표현하는 비유이다. 그것은 바로 판도라의 상자다. 취향에 따라서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호리병 속 지니라고 해도 좋다. 사람들이 판도라 신화에서 보통 강조하는 대목은 단지를-신들이 판도라에게 준 것은 사실 상자가 아니라 단지였다-엶으로써 그 속에 들어 있던 온갖 재앙을 세상에 퍼뜨린 여자의 위험한 호기심이다.
그런가 하면 단지에 끝까지 남은 것, 즉 희망을 강조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게 흥미로운 대목은, 아랍 설화의 지니들과 마찬가지로, 판도라가 내보낸 힘들이 도로 상자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혜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든 두번 다시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몇몇 고대 문화는 우리에게 온전한 인간성과 의식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브에게 고마워한다.) 한 번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p.207-208)

1973년에 로 대 웨이드(Roe v. Wade)재판으로 연방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했을 때-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에게는 자기 몸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지킬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에 의거하면 낙태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판결했을 때-여성들이 얻은 생식권을 누군가 도로 빼앗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어떤 권리들이 있다는 생각만큼은 그리 쉽게 없앨 수 없을 것이다. (p.208)

아직 갈 길이 머나멀지만,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멀리 걸어왔는지 돌아본다면 힘이 날 것이다. 가정폭력은 몇십년 전에 페미니스트들이 그 현상을 드러내고 규탄하는 영웅적 노력에 나서기 전에는 대체로 드러나지도 처벌되지도 않는 행동이었다. 요즘은 가정폭력이 경찰에 접수되는 신고 중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지만, 법 집행으느 아직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미한 수중니다. 그래도 남편에게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다거나 그런 일은 사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조만간 되살아날 리는 없다. 지니는 호리병으로 도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혁명이 실제 작동하는 방식이다. 모든 혁명은 무엇보다도 생각의 혁명이다. (p.212)

요즘처럼 죽음과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이메일이 매일같이 답지하고 아마추어들과 전문가들이 전쟁과 위기를 기록한 자료가 넘치는 시대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많다. 정권들은 갖은 애를 써서 시체와 죄수와 범죄와 부패를 숨긴다. 그럼에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신경을 쓸지도 모른다. (p.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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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읽는다는 기쁨
    from 마지막 키스 2015-05-20 10:43 
    이 책을 사서 읽을거란 말에 회사동료 e 양이 다 읽고 얘기해달라 했었다. 어제 점심시간, 나는 이 책을 다 읽었다며 이 책에 대한 이야길 해주었다. 애초에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귀기울여듣지 않는 사례들을 열거하며. 그러다 결국 중동에선 그게 더 심하게 나타나고, 그것이 강간으로 글을 맺게 했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일상적인 유치한 일 하나가 글을 맺을 때는 강간을 언급하게 돼. 여성의 이런 상황이 좀더 극단적으로 드러
 
 
다다 2015-05-1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왜 한쪽 손톱만 깎고 그러세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톱만 깎으면 친구 손톱이랑 거의 똑같다고 이야기 하고 싶으신가요?
오 그렇다면 진짜 천생연분인데......아무튼, 예쁘네요. 두 분.
타미한테 배웠어요. 예쁘면 놀리지 말고 예쁘다고 해야한다고요. 흐응.

다락방 2015-05-18 14:32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읽고 제 손톱 한 번 보고..
음, 손톱 좀 잘라야겠군
생각했어요. 기네요, 손톱이. 잘라야겠어요.

마노아 2015-05-1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손 스퀘어 손톱이요~ ^^

다락방 2015-05-18 14:32   좋아요 0 | URL
딩동댕~ ㅎㅎㅎㅎㅎ

AgalmA 2015-05-1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물리학자 삼촌 일화 들으니 그 삼촌께 패디 콘시딘 <디어 한나>와 김태용 <만추> 영화를 좀 권해보고 싶네요. 연구하시느라 영화 잘 안 보실테니 dvd를 갖다 안겨드려야 되려나요;중산층은 그럴 리 없어 처럼 이건 다 영화지 하실까봐 것도 걱정...핵폭탄 연구가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게 실제 은유적이기도 하단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 2015-05-18 14:34   좋아요 0 | URL
언급하신 영화 두 편 모두 제가 본 작품들이네요. 디어 한나에서 초반 남자의 폭력성을 제가 굉장히 조마조마해하며 봤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여자의 남편까지요.
말씀하신대로 그런 영화를 본다고 해도 워낙 확고히 자리잡은 인식이다보니 `이건 다 영화지` 하고 들은 척도 안할 것 같아요. -_-

유부만두 2015-05-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면서 맞아 맞아, 추임새를 넣게 되네요. ... 다락방님도 다람쥐과 인듯~ 성인 다람쥐 ㅋ (어감이;;;)

다락방 2015-05-18 14:39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이 책 후기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 부랴부랴 올렸어요, 유부만두님.
그런데 다람쥐과의 사람이란..뭔가요? 어떤 사람을 뜻하나요? 인터넷상 용어인가요? 아님 개그프로그램에 나온 캐릭터인가요? 네이버에 다람쥐 검색했더니 그냥 동물 다람쥐만 수두룩하게 나와서... ㅋㅋㅋㅋㅋ


아! 유부만두님 페이퍼에 쓰신 것처럼 책을 막 모아들여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요? 이제 이해 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5-05-1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보니깐 이번 보틀은 안 갖고 싶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함께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동감해요. 그걸 계속 말해준다니 저자에게 고맙네요.


타미는 정말, 예쁘다!

다락방 2015-05-19 09:19   좋아요 0 | URL
제게 이번 보틀은 그다지 쓸모가 없네요. 하나 받아 한 번 써보고 그냥 집에 있어요. 예쁘긴 겁나 예쁜데, 저는 예쁜 것 만으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ㅎㅎ

타미는 정말, 예쁘죠! 제 이모를 닮았지 뭡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AYLA 2015-05-1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행하는 유자소주 드셔보셨어요? 그걸 마시고서..날 잡고 이걸로 끝장을 봐야겠구나 싶었거든요. 락방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개 2015-05-19 08:27   좋아요 0 | URL
유자소주? 어디 어디 팝니까????

^^:::::::

다락방 2015-05-19 09:21   좋아요 0 | URL
아뇨, 유자소주 안마셔봤는데요. 그거 어때요? 전 `맛있는` 술은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쓴 게 좋음요 ㅋㅋ 근데 궁금하긴 엄청 궁금하네요, 유자소주 ㅋㅋㅋㅋㅋ 조만간 마셔보게 되면 또 후기를 올릴게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5-19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가 사라지지 않는한 평등한 결혼생활이란 불가능.
뭐 물론 조금씩 조금씩 `함께하는 남자들`이 늘어날수는 있겠지만요.


다락님이 주신 카뮈보틀을 운동하면서 잘 사용하고 있는지라
이번 보틀이 무시무시하게 이뻐도 꾹 참고 구매 안했는데
잘한듯ㅋㅋㅋ

회사에서 알라딘을 열수 있는 방법을 오늘 아침에 알아냈어요.
아 진짜 좋다.
데이타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되고
회사컴으로 알라딘도 안열려서 답답해 죽는줄 알았는데 ^^::::::::

다락방 2015-05-19 09:24   좋아요 1 | URL
책 읽는 건 너무 좋아요, 아무개님.
저는 평등한 결혼이란 게 애초에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동성결혼으로 생각해보니 똭- 답이 나오는 거에요. 거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동성결혼, 그 평등함이라면 `함께 사는 것`이 괜찮을 것 같아요. 좋을것 같기까지 합니다. 집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가 함께 해나가고 함께 고민하는 거잖아요. 물론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로 역할 분담은 되겠지만요. 그러나 그 역할 분담은 너는 남자니까 이거하고 여자니까 이거하고, 이런 식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좋을것 같아요. 이런걸 책을 읽다 알았네요, 제가. 아, 너무 좋아요!


회사에서 알라딘 열 수 있는 방법 알아냈으니 이제 자주 들어오는 겁니까? 네? 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15-05-19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어요. 흑흑. 한달에 한편 독후감 쓰는 것도 뭘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ㅠㅠ 삶을 재조정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도 책은 꾸준히 사고 있답니다. 님께서 언급하신 책도 대번에 샀지요.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 특히 저 대목은 정말 인상적이지요. 여자는 진지한 책의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그런 인식을 가진 남자들이 아주 많지요. 배송이 되고 있을 텐데 오면 잽싸게 그것부터 읽을 생각입니다. 님의 리뷰는 언제나 유쾌하네요^^ 참참, 전 요즘 글이 잘 안써져요. 경향 칼럼도 너무 글을 못쓰는 거 같아 그만둔다고 했답니다.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글 때문에 고민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네요. 10년만인 것 같다는.... (이렇게 말하면 재수없으려냐요 ㅠㅠ) 제가 댓글을 잘 못남겨도 제 마음은 아시죠? 님 팬이라는 거.

다락방 2015-05-21 12:56   좋아요 1 | URL
저는 다시 열심히 책을 읽어보자 라고 생각은 하는데 집에 가면 자기 바빠요, 마태우스님 ㅠㅠ

마태우스님이 이 책을 읽고 쓰실 리뷰가 아주 많이 기대돼요. 꼭 리뷰 써주세요, 마태우스님.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져서 다시 독후감 쓰는데 열정이 발휘될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쪼록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이 찾아왔다면,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더 나은 글쟁이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마태우스님? 마태우스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님의 팬이고, 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계속 응원할거에요. 그러니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써주세요, 마태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