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라면 나는 《오만과 편견》을 읽었고, 《설득》을 읽었다. 이 두편에 대해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딱히 제인 오스틴이 좋아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제인 오스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나 책이 더 재미있더라. 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 이나, 《비커밍 제인》같은 것들. 그러므로 제인 오스틴의 책을 더 찾아 읽어나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인지라 이 책, 《노생거 사원》을 읽게 됐다. ㅇ님이 쓴 리뷰를 읽고나서 관심이 생긴 것인데, 그 리뷰에는 이 책속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너무 좋아해서' 라는 문장이 있었던 것. 크- 나는 여기에 완저 꽂혀가지고 읽었고, 그래서일까, 내가 읽었던 다른 두 권의 제인 오스틴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고작 세권이 되긴 했지만 내가 읽은 제인 오스틴 소설중에 최고랄까.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고, 그러면서 소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참 좋더라. 소설을 폄하하는 시선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모습이랄까. 나는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위대한 소설들을 그들이 읽어봤다면 '소설이나 읽는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을거라고 정말이지 강하게 생각한다. 일전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주연한 영화에서 그런 시선이 한차례 나왔던 걸 본 터다. '저 여자 읽는거 소설일걸?' 하고. 쳇. 


자, 우리의 제인 오스틴이 당당히 주장하는 '소설'에 대해 들어보자.



오전에 비가 와서 할 일이 없으면 굳이 축축하고 더러운 길을 달려가 둘이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바, 경멸적인 비난으로 자기들도 생산해 내는 바로 그 소설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옹졸하고 무례한 관습을 따르지 않으리라. 소설가들은 적들과 합세하여 소설에다가 심한 욕설을 하고, 여주인공에게 소설을 허락하지 않고 만약 여주인공이 우연히 소설을 집어 든다면 분명 그 재미없는 페이지를 욕하면서 넘기게 만든다. 안타깝다!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에 의해 후원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보호와 관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난 인정할 수 없다. 문학비평가들이 한가할 때 공상을 발산하도록, 그래서 요즘 출판사에서도 싫어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떠들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자. 우리는 서로를 배신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상처받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 활동이 다른 문학 관련 활동보다 훨신 광범위하고 꾸밈없는 즐거움을 제공하는데도, 어떤 글쓰기도 이렇게까지 비난받은 적이 없었다. 오만과 무지와 유행에 휩쓸려 우리를 비난하는 무리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넘친다. 『영국의 역사』의 구백 번째 축약본을 쓴 작가, 또는 밀튼과 포프와 프라이어를 수십 줄 인용하면서 『스펙테이터』한 부와 스턴의 소설 한 장을 모아 펴낸 작가의 재능을 무수한 사람들이 나서서 찬양하는데, 여기에는 소설가의 능력을 비판하고 소설가의 노동을 깎아내리고 천재성과 위트와 취향을 골고루 갖춘 소설을 우습게 보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 "난 소설을 안 읽습니다. 소설은 거의 안 봐요. 내가 소설을 읽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소설에서나 있는 일이죠." 이렇게들 떠든다. "무슨 책 읽어요, 아가씨?" 아가씨는 "그냥 소설이에요"라고 대답한다. 무관심한 척하면서 또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소설책을 내려놓는다. "그냥 『세실리아』, 『까밀라』, 『벨린다』라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와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그런 작품이란 말이다. (p.39-41)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 소설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에 존경심마저 든다. 무엇보다 자신이 쓰는 장르를 자신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흡족하다. 그런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중에 가장 재미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내게는 이 《노생거 사원》이 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캐서린이 남자를 매우 많이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수시로 드러나고, 그점에 대해서는 재미있었지만, 뭔가 둘이 갑작스레 성사된 듯한 느낌이다. 남자도 여자를 어떻게 보는지, 어떤 식으로 감정이 자라는지, 그 점에 대해 좀 더 묘사되어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이 남자, 헨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캐서린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또한 더 생각이 깊다. 그런 점이 무척 만족스러운데, 아주 당연한 이치-그러나 캐서린은 알지 못했던-에 대해 조곤조곤 캐서린에게 일깨워준다.



"친애하는 몰란드 양," 헨리가 말했다. "오빠를 걱정하는 아리따운 마음이 좀 잘못된 건 아닐까요?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닐까요? 그녀가 틸리 대령을 안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애정, 아니 적어도 그녀의 반듯한 몸가짐이 보장된다는 그 생각을 당신 오빠 스스로에게나 쏘오프 양에게나 바람직하다고 보고 감지덕지할까요?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비로소 안전해지는 남자인가요?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은 다른 누가 붙잡지 않을 때에만 그를 향하나요?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당신이 지금 힘든 거 알겠으니까 '힘들어하지말라'고는 안 할게요. 그래도 가능하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해요. 당신 오빠와 당신 친구가 서로 사랑한다고 믿잖아요. 두 사람 사이에 질투는 없어요. 그들 사이에 불화는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가슴은 서로에게 열려 있지 당신에게 열려 있지 않잖아요. 그들은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알아요. 재미있을 때까지만 장난치고 그만두어야 한다는 거, 안단 말이죠." (p.171)



그래, 바로 이거다. 헨리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비로소 안전해지는 남자인가요? 라니. 크- '야광토끼'의 노래가 생각난다. '그녀보다 나를 더 먼저 만났대도 그래도 너는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라는. 크- 이거슨 남녀관계의 진리. '누구때문에' 안되는 게 아니라, 안되니까 안되는 거다. 아니니까 아닌 거다. '그녀의 마음은 다른 누가 붙잡지 않을 때에만 그를 향하나요'라는 이토록 날카로운 질문이라니.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그와 나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일테다. 헨리 멋지다. 






아!

그리고 나는 이 소설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더 완벽하다. 2015년에 책 읽은 목록을 Ireaditnow 를 통해 쭈욱 훑어보면서, 아, 이 책이 유일하게 완벽한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1월달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더라. 그러므로 2월달부터 읽은 소설중에 완벽한 걸로.


자, 일단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학자로서도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도 못한' 스토너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삶은 단조롭고 조용하다. 그러나 그윽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이 소설은 대체 어디에서 나에게 완벽하다는 느낌을 주는걸까, 곰곰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다만, 며칠전에 읽은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이 생각났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소설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원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문장을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식의 전달을 원할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아주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었다.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읽으면서 감동도 받고 빡치기도 하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도 되고 전혀 다른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되더라. 그러면서 아름다운 문장, 고요한 이야기에 크게 만족감을 느낀다.


《허즈번드 시크릿》은 분명 사람들끼리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소재를 제시한다.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되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나면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며, 너라면 어떨 것 같아? 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비밀은 그만큼 굉장히 '거대한' 것이었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고, 영화화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스토너의 삶에 대해서라면, 다 읽고나서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말해주기가 민망하다. 저 위에 쓴대로 '어느것에도 성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딱히 이렇다할 충격적인 일이라든가, 반전이라든가 하는 것이 이 책에는 없다. 다만 그저 성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동정심이나 연민을 생기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쉽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독자는,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나는, 그저 그의 삶의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다.


잠이 안오는 일요일 밤,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새벽 세시가 넘을 때까지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잤는데(그래서 나 지금 예민하다), 스토너가 문학에 대한 사랑을 느낄때 처음 가슴으로 훅- 뭔가 들어오는 것 같았고, 이 결혼은 실패다, 라는 걸 깨달을 때 무척 안타까웠으며, 자녀에 대해서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때 같이 애석해했고, 아, 그가 사랑을 주고 또 받을 때는 한없이 그 사랑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이구나, 비슷한 크기로 상대방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구나, 누군가에게 그건 아주 늦게 나타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스토너 덕에 하게 됐다. 결국 스토너가 그 사랑을 끝내 선택해 함께하게 된 게 아니었어도, 죽음에 이르러 불러볼 이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책장은 넘어가고 스토너의 경력이 쌓일수록, 아, 몸은 허약해지고 스토너는 이제 죽음에 다른다. 그때, 나는 내 나이를 돌이켜 보았고, 나에게도 이제 죽음이 십년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 때문에 무서워졌다. 이 고요함, 이 묵직함, 이 고독함.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아플 줄이야.



2월 말에 또 피로가 그를 덮쳤다. 아무리 해도 피곤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작은 뒷방에서 소파 겸용 침대에 기대어 서류작업을 했다. 3월에는 다리와 팔이 둔중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며 따뜻한 봄이 되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그저 휴식이 필요할 뿐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4월이 되자 통증이 아랫배 쪽으로 국한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수업을 빼먹었고, 강의실을 옮겨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월 초에는 통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그냥 귀찮기만 한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대학 부속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p.360)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약해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이때의 스토너는 60대이다. 내게 6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슬픈 깨달음이 왔다. 나도 이렇게 지내다가 언젠가는 내 다리가, 내 팔이, 내 허리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점점 더 느끼게 되겠지. 이 책의 책장을 넘기는 새벽, 우울해진 까닭이다. 몸 여기저기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 결국은 병원에 가게 되고, 약을 처방 받고, 종국엔 움직임조차 힘들어지는 날이 오겠지...




위에 언급했듯이, 스토너는 사랑을 잃었다. 그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영원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고 결국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육체의 병은 마음에서 쉽게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몸이 아팠을 때는, 내 마음이 크게 아팠을 때였다. 마음이 너무 아프면, 몸이 그걸 버텨내지 못했다. 이런 나를 두고 남동생은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쪽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와 상처를 번번이 피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일전에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이 아팠다. 스토너는, 사랑을 잃고 아프다. 사랑을 잃었다면, 아플 수밖에 없지. 나도 사랑이 아파서 몸이 아프기도 했으니까.



그해 여름에 그는 강의를 맡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았다. 그는 원인이 불분명한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져서 몹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청각마저 일부 잃어버렸다. 여름 내내 그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겨우 몇 발짝만 걸어도 녹초가 되었다. (p.306)



하아-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을 정도로 그는 아팠다. 사랑을 잃었다. 사랑을 잃고 그는 아팠다. 청각마저 일부 잃을 정도로. 몹시 수척해질 정도로.



근데..

나도 사랑 때문에 몹시 아팠던 적이 분명 있는데, 왜 나는 수척해지질 않지? 왜 아파도 안수척해지지, 나는? 나 진짜 아팠었는데???? 아플수록 잘먹어야 된다. 그래야 빨리 낫는다.



스토너는 캐서린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기 혼자만의 것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캐서린이, 그것이 캐서린에게도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자기 혼자만 캐서린을 열망했다고, 흠모한다고 생각했던 스토너에게, 어느날 캐서린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캐서린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앞에 서 있는 당신 모습은 아주 크고 사랑스럽고 서툴러 보였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뭔가 격렬한 것을 보고 싶다고 갈망했는데, 당신은 전혀 몰랐죠?" (p.276)



이 부분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 한 구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는 갑자기 아찔해서 비틀거렸다. 자기에게 무관심하던 그 소년,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사를 시작한 이 남자, 바로 그가 마지막 순간에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줌파 라히리, <뭍에 오르다> p.389)




어쩌면 우리는 생애 한번쯤, 자신이 정말 갈망하던 사람과 사랑하며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은 짧든 길든 어쨌든 유한하겠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고, 그때가 모두에게 다르게 오겠지만. 



이 책은 읽고나서 다른 사람과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다만 조용히 혼자 곱씹고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을 폄하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읽으라 권하고 싶다. 아름답고 고요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나는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p.31-32)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 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이야.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이 진흙탕 속에서 뽑아낸 그런 인간들 말일세." (p.53)

"뭔가 잘 안 되네요, 그렇죠? 죄송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없어서 제가 자꾸 서투른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을 곤란하게 해드렸다면 용서해주십시오." (p.75)

"나는 여러 면에서 무지한 사람입니다. 바보 같은 것은 바로 납니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은 ‥‥‥ 내가 당신한테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잘못 생각하셨어요."
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내 감정 때문에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계속 만난다면 조만간 그 감정이 뚜렷이 드러났을 테니까요."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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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5-04-2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말을 해야해요. 말을해야알지!! ^-^



뭔가 책 한권 들고 골방에 콕 처박히고 싶은 날입니다.



다락방 2015-04-20 16:20   좋아요 0 | URL
응 조용히 읽기에 좋은 책이었어요. 노생거 사원은 재미있고 스토너는 문학의 클래식 같은 느낌. 특히나 조용한 골방에서 읽기에 맞춤한 책입니다. 헤헷 :)

nomadology 2015-04-2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리뷰를 봤을때는 그저 그러려니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점잖게 잘 쓴 소설 정도?) 했는데, 다락방님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5-04-20 16:21   좋아요 0 | URL
참 좋더라고요, 저는. 왜, 한장 한장 꼭꼭 씹는 느낌으로 읽어야 되는, 그런 소설이었어요. 저는 이런 소설이 정말 좋아요!! >.<

단발머리 2015-04-2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을 폄하하지 않는 독자로서 [스토너]를 서둘러 읽어야겠어요~ 소설에 대한 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막 불끈!!!해지는데요~~

다락방 2015-04-20 16:27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좋은 소설입니다. 정말 좋은 소설이에요. :)

다다 2015-04-2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다락방님 페이퍼를 향한 애정은 유통기한이 없나봅니다.
언제 읽어도 좋구요. 깨닫는 바가 많아요.
오늘도 다락방님의 무등에 올라탄 난쟁이가 되어 좋은 소설 하나를 발견하네요.
[스토너] 장바구니에 쑝 담습니다. 감사해요. 락방님. ^-^

다락방 2015-04-21 15:17   좋아요 0 | URL
네, [스토너]는 정말 좋습니다, 소금꽃님.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읽어보세요.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콱콱 와서 박힐겁니다.

blanca 2015-04-2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 두권. 언제나 읽고 싶어지는 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저는 제일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고마워요^^

다락방 2015-04-21 15:17   좋아요 0 | URL
우와- 저 두 권의 책에 대해서 블랑카님이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풀어놓을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에이바 2015-04-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말씀하신 부분이 <노생거 사원>에서 참 아쉬운 부분이에요. 오스틴 소설 속 남주들의 감정묘사가 아쉬울 때가 많은데요. 저는 드라마로 <오만과 편견>을 보고 책을 읽었는데 다아시 분량이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콜린스 출연의 임팩트가 더(?) 강하더군요. 그래도 명작은 명작이더라고요. 요즘 오스틴 다시 읽기중인데 다락방님께 공감하고 갑니다. 그리고 <스토너> 읽어야겠어요.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꼭꼭 읽겠습니다.

다락방 2015-04-21 15:18   좋아요 0 | URL
네, 여주의 사랑이야 충분히 잘 알겠는데, 대체 남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랑이 시작된건지, 아니 얼마만큼 사랑하는건지, 아니 이건 표현이 이상하고 뭐랄까, 사랑을 하기는 하는건지 충분하게 느껴지질 않아서 답답하더라고요. 야..뭐야, 니네 왜 갑자기 서로 사랑이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에이바님 덕에 노생거 사원 읽었습니다. 헤헷.

스토너 꼭 읽으세요, 에이바님. 정말 좋아요!! >.<

프레이야 2015-04-20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 2권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길요!

다락방 2015-04-21 15:19   좋아요 0 | URL
우하하핫. 독서공감 2권이 탄생한다면, 이 영광을 프레이야님께로!!

잘 지내시고 계신거죠, 프레이야님?
앞으로 자주자주 소식 전해주세요.

블랙겟타 2016-01-1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ireaditnow어플 쓰시는 군요 ㅎㅎ 제가 가장 아끼는 어플중에 하나에요 이 어플 때문에라도 책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할 정도 거든요 ㅎㅎ 제가 다락방님 글을 읽고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샀던 책이 `스토너`였었는데 제 주위에서도 추천을 하길래 ˝이제야(?) 읽을때가 됐구나!˝ 라고 생각이 들어 드디어 읽어보았는데요. 다락방님 말대로 아름다우면서 고요한 책으로. 조용히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네요..별 내용이 없었던것 같은데 읽고난 뒤 먹먹해지네요 ^^;;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다락방 2016-01-18 10:26   좋아요 1 | URL
우어엇 블랙겟타님도 아이리뒷나우 어플을 쓰시는군요! 반갑습니다! 꺅 >.<

스토너는 참 좋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딱히 별 내용이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런것과는 전혀 별개로 묵직하고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남동생에게도 추천해줬는데 남동생은 이걸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네요. 스토너가 늙고 병들 때 참 외로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아, 삶은 뭘까, 싶기도 하고요. 아프고 병들어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졌을 때, 저도 같이 아프고 힘든 느낌이었어요.

블랙겟타님, 자주 나타나주세요! 같이 얘기해요, 우리!

블랙겟타 2016-01-18 23: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그 소설에서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외로움! 이었어요.

사실 다락방님 서재에 최근엔 뜸해서 조금 찔렸었는데. ^^;;; 앞으론 자주 들릴께요 ㅎㅎ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