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향신문을 넘겨보다가 [경향시선-미래에서 온 詩] 를 읽게됐는데, 오, 인용된 시가 훅- 들어왔다.





시, 시, 비, 비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 좋아 뒤로 자빠지라는 얘기였는데 그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면서 그 흔한 줄행랑에 바쁘셨다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서로 손가락질하는 기쁨이었다지만 우리 사랑에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건 결국 시 때문이다 줘도 못 먹는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 김민정(1976~ )



사랑해라는 고백 앞에 오줌을 싸버리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었을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덜컹거렸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줌을 싸버리는 것도 그리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줌이라도 싸버리면 나았을까. 오줌을 참았던 건, 어쩌면 이 시 속에서 말한것처럼 역겨워 떠나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으로 말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가 닿거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고백하는 사람의 진심을 안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건 그저 나를 좋아한다는 친구나 직장 동료들의 말과 별로 다를 바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스치듯 한마디 하는 것에도 얼마나 쿵쿵거리던가. 사랑한다는 고백은 말하는 이의 진심이 아니라 듣는이의 마음앞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저 시가 있는 시집이 무엇인가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저 제목 좀 보라지.


 














제4부 뛰는 여자 위에 나는 시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어느 날 가리노래방을 지날 때 
정현종탁구교실 
뛰는 여자 위에 나는 시 
예상 밖의 효과 
한밤의 숨바꼭질 
콜! 
시라는 이름의 시답지 않음 
시는 그래, 그렇게나 기똥찬 것 
시, 시, 비, 비 
시가 밥 먹여주다 
어떤 절망 
이상은 김유정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가을이 시의 계절인건지

내가 시의 계절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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