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가 두려워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내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내 문제는 내 심장을 길바닥에서 떼어내는 거다. 하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리 대화가 그녀의 옷이 마음에 안 드는 데에서 인생 자체가 우주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당신이 페어팩스로 왔잖아요. 난 당신이 정말로 한 번 더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 정말로 그래."

"그럼 왜 당신이 내 인생의 팔십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나는 당신 인생의 십 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거죠?"

"내가 더 작아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내 팔십 퍼센트가 네 십 퍼센트와 같은 크기인 거지."

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채움을 두려워해요."

"네 말이 맞을 거야."

내 단점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에는 거기 맞춰주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은 바 있다. 어쩌면 그 설교에서 뭔가를 배울 수도 있다.

"당신도 헌신할 수 있지만 당신 마음이 진짜로 여기에 있지 않아요."

"그 말이 거의 정확한 거 같아." (p.411-412)

 

 

 

 

 

 

 

 

 

 

 

 

 

 

 

 

 

남자는 한 번 이혼했었고 지금 서른여덟 살이다. 여자는 스무살이고 '아직' 고등학생이다. 이 둘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남자는 자신의 심장이 누군가에게 가기에는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는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해낸다. 남자는 이 여자와 사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마어마한 나이차이를 보라- 여자는 그의 나이 같은 게 안중에도 없다. 여자를 돌보고 있는 여자의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러 가는 게, 남자로서 부담되는 건 당연한데, 여자는 그를 소개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기만하다. 자신이 이토록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다거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모와 이모부 역시 그를 그대로 봐준다. 와인을 좋아하는 성인 남자로, 자신의 조카와 잘 맞는 남자로.

 

 

"북페어에 대한 이야기는 잘 먹혔어?"

이것이 그녀가 왜 시내에 가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미리 짜놓은 알리바이다.

"그냥 시내에 갈 거라고만 했어요."

"누구랑?"

"당신이랑요."

스바루로 가는 동안 신발에 자갈이 걸렸다. 나는 카테고리에 관한 설명(어떤 남자, 어떤 나이 많은 남자, 친구, 어쩌다 만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설명은 없었다.

당신이랑요. (p.94) 

 

 

사랑이 뭘까.

사랑은 어떻게 구성되어질까.

사랑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르다면, 당신과 내가 사랑하기 위해서 그 정의는 서로에게 일치해야 하는게 아닐까.

만약 당신이 나의 팔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당신의 십 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그때는 대체 어떤 식으로 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한쪽은 좀 덜어내고 또 한쪽은 좀 키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걸까. 그 노력은, 제대로 결실을 맺을까.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듯,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최대치가 십퍼센트일 수가 있다. 팔십퍼센트의 사랑이 있는데 그중에 십 퍼센트만 당신에게 썼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내 안에 사랑이란 건 십 퍼센트밖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신을 십퍼센트만큼 차지하게 둔다면, 그건 온전히 모두 다 당신에게 줘버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남자와 내가 대화할 때, 번번이 나는 그의 기억력에 감탄하곤 했었다. 어, 그걸 어떻게 기억해, 하고. 그는 항상 내게 말했다,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는 나에게 '지난번에 너한테 말했었는데'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의 말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날 마주 앉아 그는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라고.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는걸까, 맞지 않는걸까, 생각하느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 말을 인정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내가, 그의 입장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내가 상대로부터 '너 머리 좋다, 그걸 어떻게 기억해' 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반면에 나는 그에게 '이 얘기 우리 지난번에 했었는데...'라고 말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고는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었다.

 

 

상대에 대한 관심, 그것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당신과 내가 같은 강도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사이는 어쩌면 오래 지속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당신은 팔십이고 당신에게 나는 십이라면, 우리가 이것을 번번이 느낄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걸까. 내가 당신의 팔십이고 당신은 나에게 십이라면, 나는 자꾸만 당신에게 미안해야만 하는걸까. 그렇다면 그때는 또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걸까. 결국 시간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때까지, 그저 계속 가보아야 하는걸까. 나는 당신에게 팔십이고 당신은 나에게 십이니 우리는 서로 사십으로 맞추어야 하는걸까. 나는 그동안 어떤 식의 해결 방법을 내보이는 사람이었던가. 당신이 나의 팔십이었을 때의 나는, 가슴이 찢어졌으므로 돌아섰고, 내가 당신의 팔십이었을 때의 나는, 미안하므로 돌아섰다. 어쩌면 나는 돌아서기 위해 팔십을 혹은 십을 선택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많은 것들을 연관짓게 한다. 가장먼저 생각하게 되는건 아이폰의 'siri' 이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는 '생명이 없는' 그저 '시스템'. 또한 영화 [그녀]도 생각난다. 시스템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내가 불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

 

'닥터바셋'은 남자의 아버지의 일기장을 토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인간적으로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남자는 이 컴퓨터로부터 의사였던 아버지를 느낀다.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적에 하지 못했던 대화를, 그는 '닥터바셋'과 나눌 수 있다. 이 대화속에서 그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된다.

 

 

친구1: 뭔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어떨까?

닥터바셋: 난 내 환자들에게 케첩에 대해 말하지. 케첩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매일 먹고 싶지는 않을 거야, 안 그래? (p.120)

 

 

닥터바셋: 남자와 여자는 성별을 넘어서 친구가 되어서는 안 돼. 유혹이 생기거든. (p.186)

 

 

 

어쩌면 어머니가 옳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내 시야가 좀 더 넓어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지. 이런 대화속의 아버지는 훨씬 덜 엄숙하고, 더 행복해 보이니까. 부모님의 태도가 엄숙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미성숙한 사람의 태도이고 어쩌면 아버지와 내 관계가 미성숙한 상태로 멎어 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겐 다른 면이 있었다. 윌리와의 우정, 병원에서 우스운 이야기를 모으던 것. 나는 이런 면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석상처럼 딱딱하고, 가정생활에 대해 경건한 태도만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가정생활은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았던 생활인지도 모른다. (p.187)

 

 

 

'채닝 테이텀' 주연의 영화 [서약]은 제일 처음,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그 독백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로 이루어져있다고, 그게 나를 만든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바로 그 말이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 겹쳐진다. 경쟁회사에서도 당연히 인간적인 컴퓨터를 만들고, 닥터바셋을 구성했던 일기장을 몰래 스캔해 자신들의 시스템에 주입시키지만, 그 컴퓨터와 남자의 컴퓨터는 결과적으로 달랐다. 매번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수정작업을 거치며 그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 결국 그 컴퓨터와 대화를 하며 그 시스템을 점점 더 완성된 모습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사람이 달랐기 때문에. 남자의 시스템이 좀 더 인간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건, 결국 그 컴퓨터가 '아들'과 대화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만나서 이런 과정을 겪고, 또 다른 당신을 만나서 저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당신 때문인 것이다.

 

 

 

"도시로 이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평범한 옷차림으로."

내가 물었다.

"염두에 두고 있는 평범한 장소가 있어요?"

"내 아파트는 어때? 꽤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했다. (p.452)

 

 

남자는 여자에게 같이 살기를 권하지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거나 영원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든 그들의 관계도 변하게 될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변하게 될거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나 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변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내가 지금 이런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거니까.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는 그녀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구십을 그녀로 채울 수도 있다. 바닥에 떨어진 심장을, 그는 그녀로 인해 주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 낮에 일자산에 오르면서,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나는 이 책을 생각했다. 계속해서 여자를 신경쓰지만 여자로부터는 '나는 너에게 십만큼만 차지해' 라는 말을 듣는 남자가 나 같아서. 어쩌면 내 심장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 심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혹시 바닥에 있으면 어쩌지? 그리고 그 바닥이 본래 자신의 자리라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리고,

이제는 진짜 소로를 읽을 때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왜 자꾸 소로가 나오지?

 

"난요, 음, 물건을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단순하게."

레이첼이 사과조로 말했다.

"소로를 읽어?"

나는 그녀를 다시 보았다. 놀랍고, 어느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p.19)

 

 

내가 읽은 책, 은연중에 드러나는 나, 누군가 알아봐주는 사람. 이런것들은 어떻게든 맞물려 당신과 나 사이에 3만큼씩의 자리를 더 허락하게 되지 않을까. 서로에게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은 평범한 옷을 싸들고 평범한 누군가가 사는 평범한 아파트에 들어가 함께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때 내가 느끼게 되는 기분은 평범한 기분일까 평범하지 않은 기분일까. 평범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다 이내 평범해질까. 팅커가 월든을 주머니에 늘 꽂고 다녔었지. 나도 월든을 읽어볼까.

 

평범한 아파트에서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사람과 함께 평범하게 지낸다는 건, 서로에게 핵심적인 인물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비슷하게 팔십씩을 차지하게 되고, 그 팔십은 핵심이 될까. 그 팔십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우리는 서로의 핵심이 아니라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걸까. 행복은 상대의 핵심이 되는 순간 찾아올까. 나는 당신이 나의 핵심이 아니어도 행복한데, 당신은 나의 핵심이어야만 행복이 찾아온다면, 그런 때는 또 어떡해야 하나.

 

"어쨌든 난 그 사람과의 삶이 정말, 정말 좋겠지만 내가 그 인생의 핵심 부분이 아니라는 기분이 자꾸 들어. 이 방정식에서 나를 빼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어도 여전히 똑같은 방정식일 것 같단 말이지.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사려 깊고, 내 관심사를 전부 다 알고, 나를 사랑해. 내가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그냥 로또 당첨자 같은 기분이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가졌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은데, 아니 최소한은 더 누릴 만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녀의 말투는 조금 우울하게 들렸다. 왜지? 그녀는 뭔가를 찾았고, 마침내 발견했다. 스스로 슬프다고 말하니까 슬픈 이야기인 거다. 혹은 스스로 불안해하니까 그런 거다.

"로또에 당첨 안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p.479)

 

 

요즘에는 슬픈 느낌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그 슬픔은 바로 저 방정식에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넣어도 상대에겐 변함없을 거라는 생각. 그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자꾸 우울해졌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그 방정식으로부터 빠져나와도 된다고, 나 역시 내 삶의 방정식에서 당신을 빼도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빼고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넣어 내 삶의 방정식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나는 그 사람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넣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나에게 삼십오만큼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혹은 이십칠만큼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십칠이나 삼십오는 아주 큰 퍼센테이지였던 것 같다. 반면 나는 상대에게 육십오쯤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육십오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고, 한 번 들고나니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서, 이 예민하고 슬픈 느낌이 눈 앞에서 그대로 실현되며 내가 누군가와 바톤 터치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울적하다. 다만 이것이 지금 이 순간만의 멍청한 느낌이기를 바라야지. 당신 육십오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넣는다면, 나도 내 이십칠에 다른 사람을 넣을 거야.

 

 

 

토요일엔 친구와 만나 소주를 마셨다. 2차로 옮겨 황태를 뜯고 맥주를 마시다가 우리는 충동적으로 유럽의 어느 나라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는데, 아무 예약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자리를 옮겼다. 야외에 테이블이 마련된 까페로 들어가 커피와 녹차롤을 시켜놓고서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즐거워했다. 녹차롤은 맛이 없었지만, 뭐, 다음부터 안먹으면 되니까. 서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얘기했다. 좋다, 좋다. 어쩌면 이렇게 날씨마저 우리를 도와줄까. 우리가 열시간 이상을 날아 다른 곳에 가게 된대도, 그 곳에서 아주 짧게 지내고 온다고 해도, 그래도 꼭 짬을 내어 그곳에서도 이런 시간을 갖자고 약속했다. 늦은 밤에 따뜻한 커피를 시켜두고 이렇게 마냥 앉아있자고, 그 곳의 기후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고. 아마 분명 좋을거라고.

 

그 밤의 커피 사진을 올리려고 했는데 내 방의 노트북에서는 올려지지가 않네? 머저리 노트북...

 




 

어쨌든 그러지 않기를 그토록이나 바랐지만 일요일이 거의 다 지나가고 말았다. ㅠㅠ

 

 

 

 

 

 

 

 

아, 맞다. 토요일 밤에 들어와서 티브이를 돌리다가 재이슨 스태덤이 나오는 영화 [세이프]를 보게 됐다. 난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재이슨 스태덤판 아저씨' 라고 하는거다. 여튼 봤는데, 어휴, 내가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해서 좋다고 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다. 액션도 좋지만 아저씨, 사람 좀 그만 죽여요. 물론 그들이 아주 잔혹하고 나쁜 범죄조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인정사정 볼것 없이 너무 다 쏴죽이잖아... ㅠㅠ 물론, 소녀를 구해온 건 아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그렇지만...

 

 

영화에서 재이슨 스태덤이 열한살 소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엑셀을 밟기에 앞서 한 손으로 소녀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주연했던 영화 [트랜스포터]에서 자신의 집에 폭탄이 터지자 식탁 아래로 숨은 서기의 머리카락을 귀로 넘겨주며 괜찮냐고 묻던 장면과 겹쳐져, 나는 이 영화, 세이프가 구리다고 생각하면서, 또, 재이슨 스태덤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아, 나란 인간, 어쩔 수가 없어...재이슨 스태덤은 내 안에 구십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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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4-09-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이라는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닌가? 그냥 타이밍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ㅋ

다락방 2014-09-16 14:49   좋아요 0 | URL
타이밍, 저는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너일까, 뭐 이런 개념으로다 말입니다.

2014-09-15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6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5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5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밤 2014-09-1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런것 같아요. 그래서 일과 구가 만나는거라고 생각해요. 9와 9가 만나는것이 아니라.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마음이 클 때까지.

다락방 2014-09-16 08:42   좋아요 0 | URL
한쪽은 마음을 조금 덜어내는 시간, 다른 한쪽은 마음을 조금 더 키우는 시간이 필요한걸까요. 그래서 균형을 맞춰야 할까요. 균형잡히지 못한 사랑은 어느쪽에도 힘든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또한 사랑이 균형 잡히기도 힘이 들고 말이지요.

단발머리 2014-09-1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난 그 사람과의 삶이 정말, 정말 좋겠지만 내가 그 인생의 핵심 부분이 아니라는 기분이 자꾸 들어. 이 방정식에서 나를 빼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어도 여전히 똑같은 방정식일 것 같단 말이지.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사려 깊고, 내 관심사를 전부 다 알고, 나를 사랑해. 내가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그냥 로또 당첨자 같은 기분이야."

이 문장이 좋은데,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전 사실 누군가의 100%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적도 없거든요. 그냥 100%는 부담되서요. 생각해보니, 87%도 부담되고, 75%도 부담스러워요. 그냥, 67이나 68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사랑이라면 물불을 안 가려야 (엥?) 되는 건데, 콩깍지 이론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저는.

제 방정식에서 다락방님을 빼지 않을테니, 다락방님도 바쁜 일정에서 알라딘 페이퍼를 빼지마세요, 꼭이요!!

다락방 2014-09-16 08:45   좋아요 0 | URL
저는 물불을 가리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싱글인 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은 아마도 본인 성향의 문제겠지요. 왜 공일오비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노래 가사에 그런 부분이 나오잖아요.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는거야' 라는. 그런데 저는 사랑을 안하면 안했지 자존심을 포기하기는 싫거든요. 자존심을 포기하며 거머쥐는 사랑이라면, 저는 안갖고 말겠다, 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콩깍지를 언제든 벗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랄까요. 저는 이런걸 더 견딜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되었겠지요.(뭔말이지...?)


누군가에게 저는 늘 머리나 가슴 한쪽에 자리잡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저는 항상 염두에 두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요. 그러나 제 바람은 언제나 그들의 것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네네, 알라딘에 페이퍼 쓰는 일은 제가 기뻐하는 일이니 빼먹지 않고 써야지요. 헤헷 :)

단발머리 2014-09-16 13:55   좋아요 0 | URL
우아... 이 문장 오늘의 명언에 넣어야겠어요.

"자존심을 포기하며 거머쥐는 사랑이라면, 나는 안 갖고 말겠다."

완전 공감하며, 아멘~합니다^^

자작나무 2014-09-1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사랑은 자기애에 기초해 있어요.
인간은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지 않아요. 남을 사랑하는 경우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싶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보상받기 원하는 거예요. 사랑이 보상이 되지 못할 경우 사랑은 중단되어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남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요.

다락방 2014-09-17 09:48   좋아요 0 | URL
네. 남을 사랑할 때 조차도 '남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사랑은 자기애에 기초해있고 인간의 사고는 모두 자기중심적이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