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검시관의 하루 - 차가운 시신 따뜻한 시선
주디 멜리네크.T.J. 미첼 지음, 정윤희 옮김 / 골든타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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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멜리네크'는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다 그만두고 법의병리학 을 새 직업으로 갖게 된다. 쉽게 풀이하면 부검의, 검시관이다. 시체를 보며 죽은 원인을 찾아내고 사망확인서를 발급해주는 일. 시체가 도착하면 일단 외부에 상처가 난 건 없는지를 살피고 그 후에는 몸을 갈라 그 안에 모든 장기와 뼈, 뇌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몸에서 혹시 마약이나 약물이 나오진 않는지,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공들여 찾아내서는 그것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혹은 살인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게다가 유족들에게 슬픔을 전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숨을 멈추기 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유족에게는 '아니요 바로 사망해서 고통은 없었을 거예요'라고 거짓말해주는 일까지.



그녀는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있다. 자신이 그간 의대에서 또 외과 레지던트로 일한 경험으로 알게된 지식을 다 쏟아 붓는다.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배로부터도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그래서 거기에 또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다. 똑똑한 여자가 자기의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것, 그 일에 애정을 갖는 것, 동료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게다가 그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진 게 보여서 즐거웠다. 매일 시체를 보고 시체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사람들에게 즐거웠다는 말을 하는 건 어쩌면 부적절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 일을 일로써 잘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실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에이미 박사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두개골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돌려주었다. "뼈 하나하나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난 내 일을 정말 사랑해요." ( p.125)



그러나 역시 한 사람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보는 것, 아는 것, 전달하는 것은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사연을 접하노라면,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구나 싶고, 그만큼 다양한 죽음-내가 결코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종류의 것들까지-이 있구나 싶다. 사고사로 결론 날 수 있는 것인데 가족이 찾아와 그럴 리 없다고 사연을 들려준다거나, 자살한 아들을 인정하지 못해 계속해 사고사일거라고 평생을 주장하는 어머니라든가 하는 사연이, 과연 그냥 남의 일이기만 할까. 그녀의 상사는 그들이 해야할 일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거다, 이것이 살인사건인지에 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지만, 그녀는 혹여라도 누군가 억울한 죽음에 이른 건 아닌지 돕고 싶어한다. 



그녀가 처음 검시관 일을 하면서부터 맡게 되는 혹은 알게 되는 수많은 사연들에 대해 읽어가다가, 맙소사, 마지막 10장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어야 했다. 10장의 제목은 <충격과 공포>인데, 2001년 9월 11일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의대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맨해튼 어퍼 사이드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종양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스를 보자마자 곧바로 아파트에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로 달려갔다. 친구의 집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있었고, 응급실은 그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에는 심장병 전문의, 피부과 전문의, 노인병 전문의까지 온갖 동료 전문의들이 접수처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서, 테러 현장에서 실려 올 환자들을 도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먼저 바퀴 달린 들것을 모아 두었고, 부상 정도에 따라 구역을 나눴으며, 부목과 붕대를 준비했다. (p.252)



큰 사고가 일어난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무엇이든 도와야 한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사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 친구 얘기가 10장의 처음인데, 이 때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당연히 검시관인 주디도 그 때부터 속속 도착하는 시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온전한 형태의 시신이 도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왼쪽 골반 하나만 도착하기도 하고 또 바스러진 뼈들이 도착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대체 주디는 어떻게 이 일을 견디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야할 일이니 그것을 업무적으로 잘 처리하던 주디도, 나중에 소방관 두명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9월 11일 이후 나는 최대한 감정의 문을 닫고 전문가답게 처신하려고 애를 썼지만 두 구의 소방관 시신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업었다. 첫 번째 남성은 어깨 윗부분에 아기 천사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한쪽에는 티파니, 다른 쪽에는 헨리 주니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1975년과 1978년이라는 출생연도가 적혀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소방서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었다. 서류의 이름과 문신에 새긴 아이의 이름으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서류는 다름 아닌 퇴직 신청서였다. 헨리는 50대 중반으로 20년이 넘게 소방관으로 일했다. 신원을 확인했지만, 소방 장비에 적힌 이름과 서류에 적힌 이름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쌍둥이 빌딩 테러가 발생할 당시, 헨리는 비번이었고 뉴스를 보자마자 가까운 소방서에 가서 다른 소방관의 장비를 급히 걸쳐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신은 왼손에 아일랜드의 전통 결혼반지 클라다 링(두 개의 손이 하트를 마주 잡고 있고 그 위에 왕관이 씌워진 반지)을 끼고 있었다. 내 남편도 똑같은 반지를 끼고 다녔다. 지갑 속에는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소방관의 뒤틀린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잡는 순간,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졌다. 수술용 마스크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람에 어떻게든 현장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던지고 무작정 뛰어나갔다. 그리고 작업용 텐트 밖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구석으로 나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p.285-286)




주디를 비롯한 뉴욕 검시관 사람들이 모두 잠을 줄여가며 시신 신원파악에 나서고 경찰과 소방관들이 사건 현장에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돕기 위해 스스로 오고, 구세군은 검시관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계속해서 시신을 다루어야 하는 검시관들을 위해 정신과 상담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것들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어디에서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구도 다치지 말라고, 다쳤다면 치료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구나 싶으니,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거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했지만 또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되살리고자 한다. 


사건 현장에 가서 부상을 입고 이마에 멍이 들었다가 그 멍이 점점 눈으로 내려온 주디의 동료가 있다.



신원 확인 작업을 하면서 에이미 젤슨 박사도 많이 치유된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부상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마에 있던 시커먼 멍이 점차 눈 쪽으로 내려오면서 일명 너구리 눈이라고 불리는 양쪽안와주위혈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게요." 어느 날 아침 작업을 위해 가운을 갈아입으면서 에이미가 말했다. "어제 한 경관이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갔더니 너구리처럼 시커멓게 변한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 눈을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군지 이름만 얘기하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요. 그래서 깔깔 웃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오사마 빈 라덴이에요. 잘 부탁해요.' 상대는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고요." (p.281)



나에게도 이건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나는 경관이 그녀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혹시 모를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걱정해 그녀를 도우려 했다는 게 또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것은 응당 다른 사람들이 또 경관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정말이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까. 폭력을 당한 사람을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게 그동안 이 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여자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조용히 말하는 경관이라니. 




많은 죽음 앞에서 부정적 감정을 가진 많은 사연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주디가 이 일을 해내는 동안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돕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전업주부로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게다가 그녀가 직장을 옮기면 그녀를 따라 옮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녀에게 다정하며 그녀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축복을 바라준다. 테러가 있고나서 사람들이 모두가 내가 도울일이 없는지 현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10장을 읽는 내내 울어야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내던 딸이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상처이다. 그런 그녀가 만나는 시신들 중에는 당연히 자살사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자살 때문에 가졌던 걱정과 상처들을 알고 있기에,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 지를 안다.



다음 날 피터 클라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어제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13살밖에 안 된 딸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거였다. 우연히 가게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보았는데 그제야 결혼식장에 자신의 손을 잡고 들어가 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결혼식에도 아버지가 참석하시지 못했어요. 13살 때 아버지가 자살하셨거든요. 그쪽 따님이랑 똑같은 나이였어요." 나는 미망인에게 말했다. "따님에게 자살은 유전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주셔야 해요. 저 역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충격이 조금 가셨을 때, 자실이 유전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제일 두려웠어요. 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운명이 아닌가 싶었죠. 정말로 그랬어요. 어머니께서 따님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반드시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자살은 질병이 아니니까요. 똑같은 경험을 했던 의시가 하는 말이라고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나자마자 오랜 경력을 지닌 전문가로서의 자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누었다. (p.211-212)



나는 그녀가 유족들에게 들려줬던 그녀의 모든 말들이, 그녀의 모든 생각들이 언제나 잘했던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했을 거고 때로는 어떤 식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것들일 것이다.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더 성장하기도 할테고. 



그녀는 이 '죽은 사람'을 다루는 일을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시선이 나는 무척 좋았다. 



2년간 뉴욕 검시관 사무소에서 검시관으로 일하면서, 총 262구의 시신을 부검했고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총 2,000여구의 시신을 부검했다. 지금까지도 하루하루 인체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과학과 의학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 직업의 비과학적인 부분, 유족과 상담을 하고 경찰과 협업하고, 때로는 증언대에 서야 하는 상황까지도 사랑한다. 부검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역할은 바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대신하여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의사는 연민의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되고, 이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매일 죽은 자들을 마주하고 시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p.320-321)




이 책의 책장을 덮고 나는 아, 정말 책은 좋구나, 하는 걸 또한번 느꼈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검시관이란 직업에 대해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몰랐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한 생각만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자기 일을 사랑하는 똑똑한 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어 기운이 났다. 책이야말로 세상에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닌가. 책 너무 좋아 ㅜㅜ







파티의 해피엔딩은 역시 결혼 발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바로 연구실 동료였던 카렌 투리 박사의 결혼 소식이었다. 카렌 박사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참사 당시에 한 경사를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고 고생했다. 인류학자 에이미 박사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주선자의 큰 도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불타올랐다. 우리는 모두 그런 끔찍한 경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끈끈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카렌과 경사의 관계는 점점 사랑으로 발전했다. (p.320)

법의학 병리학자, 즉 부검의라는 나의 직업은 지난 10년 동안 TV 드라마에 단골손님을 등장했다. 내가 업으로 삼는 일이 가상의 드라마로 소개될 때마다 나 역시 덩달아 짜릿함을 느꼈다. 강렬한 눈빛의 여자 검시관이 높은 스틸레토힐을 신고 가슴골이 드러나 보이는 의상을 걸친 채로 흐릿한 조명 아래 피투성이가 된 사건 현장에 등장한다. 드라마 속의 부검의는 즉각적이고 완벽한 진단을 내리며, 여기서 나아가 성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가운데 동료와 위트 넘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터질 때도 있다. 실제 부검의들은 4주간의 수습 기간 동안, 단 일주일만 뉴욕의 살인 현장에 나갈 수 있으며 그것도 경찰서의 사건 조사 전담반이 동행할 때만 가능하다. 또한, 주로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두툼한 바람막이를 걸치고 다닌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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