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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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는 '메이브 빈치'를 나는 『그 겨울의 일주일』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처음 책장을 열었을 때 차례를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인물들의 이름이 세로로 나열되어 주인공 소개라고 착각할 만큼 낯설었다. 분명 차례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왜 인물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했을까, 서로 다른 단편의 이야기인가 읽기 시작하면서도 나의 궁금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반이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물들의 고리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동시간에 공존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메이브 빈치'의 필력에 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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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의 일주일』을 통해 첫번째 만남을 갖게 된 치키. 그녀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고향을 등지고 가족과의 이별을 선택했지만, 그녀는 곧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실패를 보여주기 보다 자신을 곧추세우고 더 열심히 일하며, 자신을 만들어가기에 최선을 다한다.

치키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너무나 성급했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으로 거짓된 생활을 하게 이른다. 자신과 주변을 속이는, 속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그녀의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난 그녀가 한심하다거나 인생의 실패자로 보이지 않았다. 거짓된 삶을 이어갔지만 그녀는 단 한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위한 삶을 이어갔기에 더욱 그러했다.

치키는 열심히 일하고 배운 그녀의 능력은 허물어질 위기에 놓인 대저택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새롭게 단장하고자 하는 미스 퀴니와의 만남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치키의 삶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그 순간, 담담한 문장임에 틀림없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갖게 되었고, 그녀가 진행하는 속도에 맞추어 호흡을 조절하게 되었다.

 

새로운 삶을 내딛기 시작하는 치키에게 리거와 올라가 다가온다.

믿을만한 이가 필요한 치키에게 그들은 잠시 쉬어가는,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 온 곳이 스톤하우스이다. 그러나 리거와 올라에게 스톤하우스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자신의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새로운 문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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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얼마나 많은 영역을 지배하는 것일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대리만족이라는 욕심으로 변질되어 자식을 대신해서 선택하고 강요하기에 이른다. 또는 자식에게 미안한 한 부분이 가슴에 사무쳐 수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잘못임을 깨닫는 순간 찾아오는 절망을 맛보아야만 한다.

형제는 어떤가. 함께 자라온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눈 관계이지만 서로를 보이지 않는 경쟁 상대로 여기게 되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시기로 분열되고 그 상처는 꽤 깊게 그리고 오래 가슴속에 남게 된다.

그럼 친구는, 나에 대해 나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는 착각이 일만큼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서로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서로의 등을 보여야 되는 순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기엔 서로의 가슴에 아쉬움과 서운함이 먼저 자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치키가 선택한 사랑이 부모 형제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미혼모 눌라가 리거를 향한 무한정 사랑은 리거의 반항적이고 독단적인 범죄행위로 한순간에 무너지게 만든다. 친구 브릿지의 선택으로 불편해진 올라는 믿었던 우정의 빛이 영원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아일랜드 해안 도시를 배경으로 한 『그 겨울의 일주일』은

동시대에 함께 마을에 머물렀던 인물들이 각자의 삶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다가 만나는 곳이 처음 함께 했던 곳으로 모인다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끝임을 알려주는 그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러기에 그들은 시작하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과정 또한 쉽지 않다.

그 중심에 미스 퀴니가 있고, 묵묵히 일하면서 스톤하우스를 찾는 이들의 방문을 자연스럽게 아무일도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받아주는 치키가 있다.


사랑에 실패한 치키와 엄마의 사랑을 잘못 인지한 리거 그리고 열심히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올라까지 이제는 마지막을 알릴 듯 허물어져가는 대저택 스톤하우스에서 그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아닌 또다른 나를 찾아가는 새로운 시작을 선물받는다. 호텔로 변모한 스톤하우스, 그곳에 머물게되는 그들의 시간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이며, 어떤 쉼을 가져다주게 될까.


아일랜드 해변가에 위치한 스톤하우스, 그 곳에서의 일주일을 선물받고 싶다.

그들의 마음 속 깊이 그리움으로 자리한 하늘과 바다 그리고 공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책장을 넘긴 나를 당황스럽게 한 차례의 인물 이름들 뒤로 마지막에 적힌 인물.

다음 손님은 당신.

곧 나.

나의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너무나 황홀한 초대에 나는 YES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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