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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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의 시는 꼬불꼬불한 시골길 같고, 느슨하게 풀어진 봄바람 같다..

어느날 서점에서 발견한 시집 『가재미』로 나는 순간 가재미처럼 납작해지고 말았다..

나 역시 시 속의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고야마는 시인 문태준의 힘이다..

'그러나 댓잎 소리가 풀벌레 소리를 쓸어내거나/그러나 풀벌레 소리가 댓잎 소리 위에 앉거나/그러지는 않은' 것처럼 서로의 소리가 함께 합주하듯 들리기는 하지만 분명 그 소리 마다의 고유한 영역이 있음을 시인은 듣는다..

산은 강을 가로막지 않고 강을 비껴서고, 강은 산을 가로지르지 않고 돌아흐르듯 자연은 인간 보다 더 지혜롭게 행동한다..

이 시집을 읽을 때는 가만히 귀를 귀울여야 한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은 다양한 소리들이 등장한다..

특히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기 위해서는 오감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돌담을 지나가고 있었다

귀뚜라미가 돌담 속에서 울고 있었다

구렁이가 살던 곳이라고 했다

돌담을 돌아도 돌담이 이어졌다

귀뚜라미가 따라오며 울었다

집으로 얼른 돌아와

목침을 베고 누웠다

빈방에 가만히 있었다

귀뚜라미가 따라와

목침 속에서 울었다

방이 어두워지자

밤이 밤의 뜻으로 깊어지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 까닭도 없이

위 시 「아무 까닭도 없이」에서 보면 쓸쓸한 귀뚜라미가 화자를 따라와 베개 속으로까지 따라와 운다..

'밤이 밤의 뜻으로 깊어지자/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시인은 측은함 때문에 결국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아무 까닭도 없이' 눈물을 떨구는 이유는 굳이 어떤 이유랄게 없이 정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울려고 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떤 상황이나 소리나 풍경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숨가쁘게 감동을 받으면 눈물이 이유없이 흐르는 법이다..

 

표제작 「그늘의 발달」그윽한 정겨움과 감나무 그늘과의 깊은 사연을 상상케 한다..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한 몸의 그늘/그늘의 발달'이라는 감나무 그늘이 상징하는 '음지의 미학'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

시인 문태준은 '음지(-)의 시인'이다..

양지(+)의 성격을 가진 주제나 소재, 상징, 상상 등 양의 성질을 가진 건 드물다..

그는 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득하다..

그늘을 통해 바라본 주름진 세상의 눈물 같은 시인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은 전 시집들 보다는 다소 평이해졌다는 느낌이 어쩌지 못하겠지만 그만의 운치가 넉넉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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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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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신아-일러스트>

요즘은 사람들이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다..

시의 역사는 소설 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또한 시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다..

오죽하면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국가 정치에 적대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게 시인이었다고 판단했다..

 

아주 오랜만에 예쁜 시모음집이 나왔다..

물론 국어책에 나오는 시도 적지 않아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이만한 시모음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다시금 가슴이 여울처럼 넉넉해진다..

부제가 나를 유혹해서 단박에 구매해 읽어버렸다..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차 보조석에 늘 함께 두고 여행할 것이다..

가끔 교통체증에 시달릴 때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여유를 찾으리라..

어딘가 마음이 닿는 곳에 가면 여백을 시읽기로 채우리라..

문득 내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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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문태준 해설, 잠산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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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일주문>

 

시..

詩..

시의 한자어를 보면..

'말씀' 언(言)과 '절' 사(寺)..

'말의 사찰'이란 의미이다..

무릇 '절'이란 게 세속에서 벗어나 어떤 경지(혜탈)를 향한 비움(버림)의 상징 아니던가..

아낌 즉 절제의 미학이 곧 詩가 아니던가..

결국 '시'는 세속에서 벗어나 자꾸 비우고 절제하고 깎고 닦아서 만들어낸 또다른 정신이고 세계고 우주일 것이다..

 이 책에는 좋은 시들이 많이 모였다..

지난 시절 읽고 또 읽었던 시들이 모여서 이렇게 합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설렌다..

마치 저명있는 관현악단의 교향곡을 듣는 것과 같다..

시라는 이름 앞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를..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 한 편을 옮긴다..

"송수권의 [산문(山門)에 기대어] 전문"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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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문태준 해설, 잠산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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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 가르친 것은 인생의 또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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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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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나를 꽃 피게 하는 노래다,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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