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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인류에 준 가장 가치있는 문화

와인은
음료로서 가장 가치 있고
약으로서 가장 맛이 있고
음식 중에서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 히포크라테스

최근 우리시대의 와인문화는 급성장하고 있다.
이미 와인의 수요가 연간 소주 매출을 따돌리고 술 분야 매출 2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와인 매출이 소주 매출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신세계 이마트는 올해 1~5월 전국 113개 점포의 주류 매출을 집계한 결과 와인이 243억원으로, 소주(241억원)를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1일 밝혔다. 이마트 관계자는 "와인 매출은 맥주에 이어 주류 부문 2위로 뛰어 올랐다"면서 "와인의 매출 신장률이 맥주의 5배에 달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맥주 매출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05년만 해도 와인 매출은 소주의 41.5% 선에 그쳤지만, 지난 3년 간 와인 매출은 평균 40%대로 급성장한 반면 소주 매출은 정체상태를 보여 왔다.
이마트는 무엇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른 저렴한 제품 출시 등 와인이 대중화되고, 낮은 알코올 도수의 주류를 선호하는 추세를 매출 상승의 이유로 꼽았다.
또 최근, 소주 전체 판매는 소폭 늘어나고 있지만, 동네 슈퍼마켓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두드러지지 않은 소주를 대형마트에서 사는 소비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조선일보 2008.06.01 기사>





와인의 유래
아직까지 와인을 누가 처음 발명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구상에서 인간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만 년 전쯤으로 추측되며, 과일과 같은 당을 포함한 식물은 그보다 더 오래인 600만 년 전에 이미 지구상에 넓게 분포해 있었고, 당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하는 할을 하는 효모와 같은 미생물은 지구의 역사와 맞먹는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문에 알코올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쯤으로 생각되는 원시인들은 먹던 포도가 남아 나중에 먹으려고 동굴 속의 움푹패인 곳에 숨겨 두었는데, 한참 뒤 생각이 나서 먹어보니 맛이 좀 이상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음료로 변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기원전 3,500년경에 포도를 압착하던 도구가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대략 6,0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지 않았나? 추측된다. 현존하는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4,000~5000년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대 강 하구에 살았던 고대 민족 수메르 인이 남긴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인데 이것이 역사적 배경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고대 바빌론시대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와인에 물을 섞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 근거로는 이집트와 그리스의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를 살펴보면 디오니소스, 바쿠스라는 이름으로 와인의 신이 등장한다. 그만큼 고대인들의 생활에 와인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유럽에서 와인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포도나무가 평화와 번영의 오랜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인류에게 와인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태양의 숭배자 이집트인들 의해 완성되어지게 된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기초 화장수로 와인을 사용하였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이 시대에는 미술과 예술의 발달과 더불어 왕과 귀족의 술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많은 철학자와 시인, 음악가들이 와인을 칭송하는 시와 노래를 남기는 등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 알맞은 시간에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면 인류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2천5백 년 전에도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와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한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벽화에서 보듯이 포도를 따서 저장해 두면 발효가 되어 저절로 술이 되는 점을 미루어 보아 와인은 인류가 마신 최초의 술이다. 포도나무의 원산지는 카스피 해와 해사이의 소아시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노아가 홍수가 끝난 뒤 정착했다는 '아라랏산' 근처로 성경 구절과 일치하는 지역이다. 포도주에 대한 기원은 성경 뿐 아니라 다른 고고학적 증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와 이집트, 그리스에서는 와인을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고고학적 유물에 따르며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여러 향신료가 첨가된 진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물에 타서 마셨다고 한다.

(1) 고대
고대의 서사시에는 주대공이란 사람이 지구상의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땅을 떠나는 내용이 있는데, 이 내용은 약 6000년 전 슈멜문명의 점토판에 조각되어 있다. 유럽 포도 발달사의 연구에 따르면 "샤스라 드레종" 선조품종의 종자가 이집트 제11왕조, 18왕조의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 외 이집트 상형문자에도 포도밭, 포도, 와인이 있고 와인을 발효시키는 항아리 그림도 있다. 피라미드 속의 벽화에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화에 그려진 포도 재배와 와인의 양조모습은 근본적으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와인은 B.C. 1500년경에 크레타 섬 등의 에게 해 제도에 전파되고, 페르시아와 로마에 퍼지면서 서민들도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된다. B.C. 800년경에는 장사꾼이었던 페니키아인들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기술을 그리스인들에게 팔았고 그리스인들에 의해 이탈리아 시실리(B.C. 800년)지방과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북부(B.C. 600년)로 전파되었다. 그 후 세력을 강화해온 페르시아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프랑스 북부에 이르기까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기술이 널리 널리 보급되게 되는데, 오늘날 유명한 프랑스 와인 생산지역들 중 북부지역인 론, 르와르, 샹파뉴 지방은 시저에 의해 전파되었고, 보르도 지방은 크라수스에 의해 전파되었다. 후기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약한 페니키아인은 포도와 와인을 양조하는 기술을 이 땅에 전파하였고, 수송용 용기까지 발명하기도 하였다. 

(2) 중세
완인을 "신의 축복"이라 말하는 그리스는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포도와 와인을 전해 받은 유럽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었다. 테오크라스테라는 책에서 포도의 재배와 와인의 양조를 언급하고 있어, 이것은 중세 로마시대의 지침이 되고 있다. 당시 포도나무는 1ha당 2000-5000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 시대의 와인은 달콤한 것으로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물에 1:1 혹은 1:3의 비율로 타서 마셨다고 한다. 양고기, 올리브유, 양기름을 많이 사용한 요리를 먹었기 때문에 달콤한 와인을 좋아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뒤를 로마가 이어나감으로 포도 재배 지역은 확장되어졌으며, 특히 로마는 식민지를 넓힐 때마다 포도 재배와 양조를 하게 하였고 와인 양조기술을 발달시켜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와는 달리 복수품종으로 와인 양조가 이루어졌다. 현대인이 마시고 있는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달콤한 맛의 와인을 마셨으나 보리빵이나 생선, 소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하고 소시지나 햄 샐러드 등의 요리를 먹을 수 있어 톡 쏘는 맛의 새로운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양조기술의 진보로 대량생산이 가능해 일반 서민 에게도 보급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양조기술의 기초는 이미 이 시대에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 고양을 재는 음료"로서 숙성된 고급와인과 "사는 기쁨을 확인하기"위해 마시는 일반와인 등 두 가지나뉘어 만들어지기도 한 시대가 바로 로마시대입니다.  중세시대에 와서는 교회의 미사나 성찬용으로 또 의약용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포도 재배나 와인 양조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와인은 기독교인의 피다”라는 가름침과 통합니다. 게다가 대와인공장이 생기고 교회에서 필요한 양보다 많은 양을 생산하여 주된 수입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중세와인은 로마제국의 영토확장과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함께 유럽 각지에 전파되어 오늘날의 유럽 와인 지도가 완성되게 되었다. 오늘날의 프랑스, 스페인, 독일, 북부 이탈리아 등 세계의 유명 포도 산지들이 이때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와인의 역사를 2000년 정도라고 말하는 것은 시저의 정복전쟁이 B.C.58년부터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와인의 생산 및 소비가 전 유럽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영국에서는 와인소비가 갑자기 급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헨리 2세가 보르도의 앨러너 공주와 결혼하면서 보르도가 영국령같이 되어 와인이 세관 통관 없이 수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의 와인은 배고픔과 통증을 잊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오늘날의 "바(bar)"의 원조도 나타나게 되었는데 런던에 설립된 윈트나즈 컴퍼니라는 회사가 에드워드 3세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아 중간상인을 통하지 않고 소매점에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3) 근대

근대에 들어서는 생활의 향상과 명문 와인의 등장, 병에 넣어 보관하는 방법, 편리한 운반 등으로 인해 와인의 보급은 물론 소비량 역시 크게 늘어났습니다. 또한 1679년 프랑스 "동페리뇬"에 의해 샴페인 제조법이 발견되었고, 와인 병의 마개로 코르크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졌습니다. 이 때부터 품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으며 유럽 전 지역뿐만 아니라 신대륙에서도 와인의 수요가 급증하여 주요한 무역 상품이 되어졌습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와인의 생산이 저조하였으나 르네상스시대에 와서 다시 와인의 생산이 살아나기 시작하였음은 와인과 문화의 밀접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17세기~18세기경부터 유럽의 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에 나서기 시작하는데, 알제리, 남아프리카연방, 미국,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다. 한편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수입된 야생 포도나무의 뿌리에 있던 "필록세라선충"이라는 기생충이 유럽 전역의 포도원을 황폐화시키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묘목과 유럽 포도 묘목의 접붙이기로 해결할 수 있었고, 1860년 "미생물에 의해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 는 사실이 파스퇴르에 의해 발표되어 효모의 배양, 살균, 숙성에 이르는 와인 제조방법이 크게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4) 현대
포도 재배와 압축기, 여과기 등 양조기술의 발달로 훌륭한 와인이 많이 생산되어졌는데, 1935년 프랑스 에서는 와인에 대한 규정 AOC를 제정하여 와인의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잇따라 이태리, 독일, 미국, 호주, 스페인 등이 비슷한 와인법을 시행해 와인의 품질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또한 교통의 발달로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졌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이들 지역에도 와인이 확산되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좋은 포도가 와인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나, 포도의 재배에 노력을 기울이던 옛날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포도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압축기와 여과기 등의 발전에 힘입어 와인의 훌륭한 맛을 충분히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즉 현대 와인생산에서는 기계와 자연의 조화가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와인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전통 와인 생산국들과 미국, 칠레,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약 50여 개국에서 연간 250억 병이 생산되어지고 있습니다. 

(5) 오늘날의 한국인의 와인(술)과 음식문화

한반도에 포도가 처음 전래 된 것으로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B.C. 126년 서역 정벌에 나섰던
중국 진안의 장건 이라는 장수가 중앙 아시아에서 포도를 중국으로 가져왔다. 이것이 이후에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래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근대적 식용 및 양조용 포도의 시초는 1900년에 남프랑스 캄블라제 출신의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교회를 짓기 위해 안성지방에 올 때 미사용으로 사용하려고 가져온 무스깟(Muscat)포도와 서울뚝섬의 '권업모범장'시초다. 권업 모범장은 일본인들이 세운 시험농장으로 Vitis labrusca계의 진판델, 블랙캠벨 등과 Vitisvinifera계의 유럽 종을 포함한 7종의 포도 품종을 이식하여 품종선별과 재배법을 연구 농가에 보급하였다. 근대와인의 기업형의 시초는 일제시대 때 경북포항의 미쯔와 농장에서 포도주를 만든 것이나, 포도주다운 포도주는 1970년에 와서야 가능해진다. 현대적 양조기술을 뿌리내리게 되는 것은 1970년대 초 마주앙 기술진에 의해서다. 독일에서 양조기술을 익힌 기술진들이 경북 청하와 경남 밀양에 포도원을 조성하여 Rieslig과 Seibel, Muscat 품종으로 만든 '마주앙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 연구진들이 방한하여 기술 지도를 받은 진로 와인기술진들에 의해 '샤또 몽블르'가 생산되었고, 수석 농산에서 (주)파라다이스 농산을 인수하여,'위하여' 화이트와 레드, 로제 와인을 만들었고,1982년에는 프랑스Deutz Gelderman사와 기술제휴를 한 대선 주조가 경남 함양지방의 백악질 토양에서 재배한 샤르도네 품종으로 샹파뉴 방식으로 만든 국산 1호 정통 스파클링 와인'그랑쥬아'를 1987년에 시판하기에 이르는 등 1970년에서 1990년까지의 20년간은 한국와인의 최고전성기였다. 그러나 1987년 수입자유화의 영향과 과잉경쟁으로 인하여 1990년대 초를 끝으로 국산 와인의 운명은 겨우 일부 백포도주와 미사주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존폐의 기로에 선다. 더욱이 1996년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와 물가상승과 고유가 등으로 서민 경제의 어려움들이 지금 까지 지속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저 알코올을 선호하는 소수의 대중과 와인의 수입 증대와 프랑스 햇와인 보졸레 누보의 일시적 인기로 와인의 소비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 회복의 불확실성 등의 여러 가지 정치, 경제적 상황의 어려움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물론 많은 와의 수입량이 증대하고 소비도 증대 되었지만 전체적인 술의 수입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에서 언급한대로 와인과 문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 안보와도 많연관성이 있다. 현실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잘 풀나아가야 할 숙제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출처>


 
 
 
 

 

 

 

 

  

 

이렇게 와인이 우리문화에서 생활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무엇보다 와인문화의 선호도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그 성장 가능성 역시 매우 고무적이다.
나 역시 몇 년전부터 연중 행사처럼 마시던 와인이었지만 이제는 매월 2~3병 이상은 기본적으로 마시는 듯하다.
친구를 만날 때,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 선후배를 만날 때 그리고 선물용으로 적지 않은 수량을 소비하고 있다.
지난 구정과 이번 추석에도 와인을 10여 세트 정도 선물했을 만큼 선물용으로 이제는 어떤 상품들에 비해 그 가치와 의미가 손색 없다.
위 기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향후 와인이 1위 맥주 매출을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우선 와인은 작업하기 좋은 술이다.
와인병, 와인잔, 와인 빛깔, 와인의 역사, 와인에 함유된 알코올 농도, 와인 향기, 와인과 함께 해야하는 음악, 와인과 함께 먹는 음식, 와인의 효능 등등…
어디 하나 손색 있는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구석이 없다.
과실주이기 때문에 마실 때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마신 후 일어서면 휘청거린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작업(?) 혹은 수작(?)을 위해서라면 와인문화에 좀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겠다.(^^ 이 표현은 다소 농담이 진한 문장이라는 점에서 오해가 없으시길…)
어쨌든 와인이라는 것이 어쩌면 악마(?) 같아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다 그럴싸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이미 우리문화의 하나로 정착하기 시작한 와인!!
좋은 와인을 찾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요즘 내가 먹는 와인은 그냥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와인들이다.









에스쿠도로호

몬테스알파

에쿠스

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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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9-05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