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그날 밤 베이커 스트리트에서 묵었다. 우리가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있을 때 보헤미아의 국왕이 들이닥쳤다.
“정말 사진을 손에 넣었나!”
국왕이 홈스의 양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아직은 아닙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소?”
“그렇습니다.”
“갑시다.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군.”
“마차를 불러야 합니다.”
“그럴 필요 없소. 내 마차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일이 한결 수월하겠군요.”
우리는 집을 나서 브라이오니 로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이린 애들러가 결혼했습니다.”
홈스가 말했다.
“결혼했다고! 언제 말이오?”
“어제요.”
“누구랑 한 거요?”
“노턴이라는 영국인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할 리가 없는데?”
“전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어째서 말이오?”
“그래야 앞으로 전하를 성가시게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만일 숙녀분이 남편을 사랑한다면 더이상 전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전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을 망칠 이유도 없지요.”
“그건 그렇군. 하지만……! 그녀가 나와 같은 신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왕비가 되었을 텐데!”
국왕은 침울한 듯 서펀틴 애비뉴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브라이오니 로지의 문은 열려 있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계단 위에 서서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셜록 홈스 씨인가요?”
여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친구는 놀라고 의아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정말이네! 주인아가씨가 댁이 찾아올 거라고 했거든요. 아가씨는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해 오늘 새벽에 남편분과 함께 채링크로스 역에서 5시 15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떠나셨어요.”
“이런! 영국을 떠났단 말인가?”
충격을 받은 셜록 홈스는 휘청거리며 원통함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실 거예요.”
“그럼 사진은? 전부 끝나버렸군.”
국왕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으로 봐야겠소.”
홈스는 여자를 밀치고 황급히 응접실로 들어갔다. 국왕과 내가 뒤를 따랐다. 가구들이 어수선하게 사방에 흩어진 채였다. 선반은 텅텅 비었고 서랍도 열려 있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정신없이 짐을 싼 모양이었다. 홈스가 설렁줄이 늘어진 곳에 있던 작은 미닫이문을 뜯어냈다. 안에는 사진 한 장과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아이린 애들러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찍은 독사진이었다. 함께 놓인 편지 봉투에는 ‘셜록 홈스 귀하 친전’이라고 씌어 있었다. 친구가 편지 봉투를 뜯어 우리 세 사람은 함께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쓴 시각은 전날 자정이었다.

 

 

친애하는 셜록 홈스 씨
정말 훌륭하셨어요. 완전히 속아넘어갔으니 말이에요.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내가 불가피하게 사진의 위치를 드러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몇 달 전에 이미 당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들었으니까요. 전하가 탐정을 고용한다면 틀림없이 당신일 거라고 하더군요. 해서 당신 주소도 알아두고 조심했는데 결국 당신이 찾는 물건의 위치를 직접 알려주었군요. 온화해 보이는 연로한 목사님이 그런 못된 짓을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난 배우 생활을 오래했어요. 남자 옷을 입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종종 남자 옷을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하니까요. 마부 존에게 당신을 감시하라고 한 뒤 2층으로 올라가 내가 산책용 의상이라고 부르는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당신 뒤를 미행했어요.
당신 집까지 따라가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그 유명한 셜록 홈스 씨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죠. 그때 경솔하게도 당신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그리고 법학원으로 남편을 만나러 갔죠.
우리 두 사람은 일단 무시무시한 적수를 피해 달아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일 아침 당신이 찾아올 때쯤 이 집은 비어 있을 거예요. 의뢰인에게 사진에 관해서는 안심해도 좋을 거라고 전해주세요. 난 그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전하는 자기가 무자비하게 버린 여자의 훼방을 받지 않고 뜻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건 순전히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죠. 전하가 내게 저지를지 모를 일에 대한 무기로 말이에요. 대신 그 사람이 갖고 싶어 할 만한 사진 한 장을 남겨둘게요.
그럼 이만.
아이린 노턴(결혼 전 성은 애들러) 드림

 

 

“대단한 여자라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편지를 다 읽자 보헤미아의 국왕이 외쳤다.
“강단 있고 똑똑한 여자라고 하지 않았소? 정말 훌륭한 왕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 여자가 나와 신분이 다르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지 않소?”
“제가 보기에도 숙녀분은 전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습니다. 의뢰하신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홈스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는 없지. 내가 알기로 아이린은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오. 사진은 이제 불에 태운 거나 마찬가지요.”
국왕이 말했다.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대에겐 큰 신세를 졌소.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만 하시오. 일단 이 반지를…….”
국왕이 손가락에서 에메랄드가 박힌 뱀 모양 반지를 빼서 손바닥에 얹어 내밀었다.
“제가 원하는 건 그 반지보다 훨씬 귀한 것입니다.”
홈스가 말했다.
“뭐든 말만 하시오.”
“이 사진을 주십시오!”
국왕은 깜짝 놀란 눈으로 홈스를 쳐다보았다.
“아이린의 사진 말인가! 그대가 원한다면 주겠소.”
“감사합니다. 이걸로 사건은 끝났습니다. 전하, 부디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홈스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국왕이 내민 손을 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나와 베이커 스트리트의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사건으로 보헤미아 왕국은 엄청난 추문에 휩싸일 위험에 처했었고 셜록 홈스가 공들여 세운 계획은 한 여성의 기지로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껏 홈스는 여성의 지혜를 무시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아이린 애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나 그녀의 사진을 언급할 때마다 홈스는 항상 이름 대신 ‘그 여성’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사용했다.

 

_끝

 

 

* [출간 전 연재]로 공개되는 텍스트는 곧 출간될 단행본의 텍스트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엘릭시르판 '셜록 홈스 단편 전집'은 11월말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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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날 오후 3시 정각에 베이커 스트리트로 찾아갔지만 홈스는 없었다. 하숙집 주인의 말로는 아침 8시경에 나갔다고 했다. 언제가 됐든 홈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으로 난로 옆에 앉았다. 나는 이번 사건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앞서 기록한 ‘주홍색 연구’와 ‘네 사람의 서명’ 사건처럼 기이하거나 섬뜩한 분위기는 없었지만, 사건의 성격과 의뢰인의 고귀한 신분 때문에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내 친구의 손에 들어온 사건의 성질이 어떻든, 그의 훌륭한 상황 판단과 명민하고 날카로운 추리를 지켜보고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기민하고 미묘한 방식을 따라 연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홈스가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에 익숙했던 나는 그가 실패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4시쯤 되었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구레나룻을 지저분하게 기르고 초라한 옷차림을 한 마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친구의 신출귀몰한 변장술을 익히 알면서도 세 번이나 살펴본 뒤에야 그가 홈스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더니 침실로 사라졌다. 오 분 뒤 다시 나타났을 때는 트위드 정장 차림의 말쑥한 모습이었다. 홈스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난로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섰다. 그러더니 한참 동안 큰 소리로 웃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는 이렇게 외치더니 또다시 숨이 막힐 정도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지친 듯 의자에 힘없이 기대앉았다.
“무슨 일인가?”
“너무 웃겨서 그래. 오늘 아침 내가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자네는 상상조차 못 할 거야.”
“그건 그렇지. 짐작건대 아이린 애들러의 집이나 동태를 감시하다 온 게 아닌가?”
“맞아. 그런데 아주 뜻밖의 결과가 펼쳐졌지 뭔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지. 난 오늘 아침 8시경에 집을 나섰다네. 실직한 마부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말이야. 마부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암묵적인 공감과 이해가 존재한다네. 마부가 되어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난 브라이오니 로지를 금세 찾아냈어. 집 뒤를 정원으로 꾸민 작고 예쁜 주택으로, 정면이 도로에 면한 이층집이지. 문에는 정교한 처브 자물쇠가 달렸더군. 바깥에서 보면 문 오른쪽으로 가구가 잘 갖추어진 커다란 응접실이 있고 창문은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길다네. 그 영국식 창문에 달린 허술한 자물쇠는 어린아이라도 딸 수 있겠더군. 집 뒤쪽에는 별다른 게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마차 차고 지붕에 올라가서 복도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더군. 나는 집 주위를 돌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네. 그 외에 흥미를 끄는 건 없었지.
그런 뒤에 어슬렁거리며 길을 내려가니 예상했던 대로 정원 담을 따라 난 골목길에 마차 보관소가 있더군. 말을 솔질하는 마부들을 도와주고 이 페니를 벌었지. 더불어 혼합 맥주 한 잔 얻어 마시고 섀그 담배 두 대를 받아 피우면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네. 애들러에 관한 정보만이 아니라 아무 상관 없는 이웃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
“아이린 애들러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아, 그 지역 남자들의 마음을 모두 빼앗은 것 같더군. 모두들 세상에서 그보다 우아한 여자는 없을 거라고 칭찬들을 하지 뭔가. 서펀틴 마차 보관소에 있는 남자들 말로는 그 여자는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조용히 살고 있다고 했어. 매일 오후 5시에 마차를 타고 나갔다가 7시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더군. 노래를 부르러 갈 때를 제외하면 다른 시간에 외출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고 했어. 집에 찾아오는 남자는 한 명밖에 없는데 자주 들락거리는 모양이야. 검은 머리에 잘생긴 멋진 남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데, 하루에 두 번 올 때도 있다고 하더군. 고드프리 노턴이라는 자인데 이너 템플 법학원에서 일한다고 했어. 마부를 친구로 두면 얼마나 편한지 이제 알겠나? 남자가 서펀틴 마차 보관소에서 몇 번인가 마차를 타고 집에 돌아간 덕분에 마부들은 그자에 대해 잘 알고 있더군.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은 다 알아낸 뒤, 다시 브라이오니 로지 쪽으로 걸어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지.
고드프리 노턴이라는 남자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변수인 것이 분명했네. 그자는 변호사야. 아무래도 수상하지.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무슨 일로 남자는 그 여자 집에 계속 찾아가는 걸까? 여자가 남자의 고객이나 친구일까? 어쩌면 정부일지도 모르지. 만일 고객으로서 만난다면 여자는 사진을 남자에게 맡겼을 거야. 정부라면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어느 쪽이냐에 따라 브라이오니 로지를 계속 조사해야 할지, 아니면 변호사의 사무실로 관심을 돌려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네. 미묘한 문제다 보니 조사 범위가 넓어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자네에게 지겨울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려면 어떤 난점이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하는 걸세.”
“잘 듣고 있다네.”
내가 대답했다.
“내가 그 문제로 계속 고민하고 있을 때 이륜마차 한 대가 브라이오니 로지 앞에 멈췄지. 신사 한 명이 내리더군.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를 가지고 콧수염을 기른, 눈에 띄게 잘생긴 남자였지. 말로만 듣던 남자가 분명했어. 그자는 몹시 서둘렀다네. 마부에게 기다리라고 소리친 뒤 하녀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그대로 안에 들어가더군.
남자는 삼십 분쯤 머물렀어. 거실 창문으로 얼핏 보니 방안을 정신없이 서성거리면서 흥분한 듯 떠들며 양팔을 휘젓고 있었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이내 집에서 나오더니 들어갈 때보다 더 서두르더군. 마차에 올라타서는 주머니에서 금시계를 꺼내 심각하게 쳐다보곤 버럭 외쳤어.
‘전속력으로 달립시다! 먼저 리전트 스트리트에 있는 그로스 앤드 행키스에 들렀다가 에지웨어 로드에 있는 세인트 모니카 교회로 가는 거요. 이십 분 안에 도착하면 반 기니 주겠소!’
떠난 마차를 쫓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 작고 깔끔한 사륜마차 한 대가 집앞으로 달려오더군. 마부 꼴은 완전히 엉망이었다네. 코트 단추는 반만 채웠고, 넥타이는 한쪽 귀 뒤로 넘어갔고 옷자락은 멜빵 밖으로 빠져 나왔지. 마차가 멈춰서기도 전에 그 여자가 뛰어나오더니 올라타며 소리쳤어. 그때 잠깐 여자를 보았는데, 확실히 사랑스러운 미인이더군. 남자들이 목숨을 걸 만했어.
‘존, 세인트 모니카 교회로 가요. 이십 분 안에 도착하면 반 파운드를 줄게요!’
여자가 외쳤어.
왓슨, 정말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였네. 그대로 쫓아갈지, 아니면 여자가 탄 마차 뒤에 몰래 올라타야 할지 고민하는데 마침 마차 한 대가 다가오더군. 마부가 내 초라한 차림을 두 번이나 훑어보기에 승차를 거부하기 전에 재빨리 올라타 소리쳤네.
‘세인트 모니카 교회로 갑시다. 이십 분 안에 도착하면 반 파운드 주겠소.’
그때가 11시 35분이었지. 뭔가 사건이 일어나려는 게 분명했어.
마차는 전속력으로 달렸지. 내 평생 그렇게 빨리 달리는 마차를 타본 적이 없을 정도였어. 하지만 두 사람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네. 내가 교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륜마차와 사륜마차의 말들이 몸에서 김을 뿜어내며 서 있더군. 난 마부에게 삯을 지불하고 서둘러 교회로 들어갔다네. 안에는 내가 쫓아온 두 남녀와 흰 사제복을 입은 사제밖에 없었지. 사제가 두 사람에게 뭔가 훈계를 하는 것 같았어. 그들은 모두 제단 앞에 서 있더군. 나는 우연히 교회에 들른 사람인 양 통로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네. 그때 놀랍게도 제단 앞에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거야. 고드프리 노턴이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이렇게 소리치더군.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침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서요!’
‘무슨 일입니까?’
‘이쪽으로 와주세요. 삼 분이면 됩니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무효가 될 겁니다.’
나는 반쯤 끌려가다시피 제단 앞으로 나갔다네. 어디에 있는 건지 깨닫기도 전에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를 따라 웅얼거리며 대답을 하고 뭔지도 모르는 맹세를 했지. 신부 아이린 애들러와 신랑 고드프리 노턴의 결혼식 증인이 된 거야. 결혼식은 순식간에 끝났지. 신랑 신부가 내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바로 앞에 서 있던 사제도 환한 미소를 지어주더군. 평생 그렇게 황당했던 적은 없었다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니까. 약식 결혼식이다 보니 사제가 증인을 세우지 않으면 식을 마칠 수 없다고 진행을 완강히 거부하던 모양이야. 그런데 때마침 내가 교회에 들어가는 바람에 신랑이 증인을 찾으러 길거리를 헤맬 필요가 없어진 거지. 신부가 사례라며 금화 일 파운드를 주었다네. 그 금화는 시곗줄에 달아 기념으로 간직할 생각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로군. 그래서 어떻게 됐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될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지. 두 사람이 바로 떠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난 신속하고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했다네. 그들은 교회 앞에서 헤어졌어. 남자는 법학원으로 돌아가고 여자도 자기집으로 돌아갔다네. 여자는 헤어지면서 말했어.
‘평소처럼 5시에 공원으로 나갈게요.’
그 말밖에 들리지 않았네. 그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마차를 타고 떠났어. 그래서 나도 준비를 하려고 돌아온 거야.”
“무슨 준비?”
“차가운 쇠고기 요리와 맥주 한 잔 말이야.”
홈스가 사람을 부르는 종을 울렸다.
“너무 바빠서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지 뭔가. 게다가 저녁에도 아주 바쁠 것 같네. 그건 그렇고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기꺼이 돕지.”
“법을 어기는 일이라도 괜찮겠나?”
“상관없네.”
“체포될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된 명분만 있다면야.”
“명분이야 확실하지!”
“그렇다면 문제없네.”
“자네가 있으면 정말 든든하다니까.”
“내가 뭘 하면 되겠나?”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니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홈스는 하숙집 주인이 가져다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네. 벌써 5시가 다 되었군. 두 시간 안에 현장에 가야 해. 아이린 양, 아니, 이제 부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부인은 7시에 돌아오니까 말이야. 우리가 먼저 브라이오니 로지에 가서 그 여자를 기다려야 한다네.”
“어떻게 하려고?”
“나한테 맡기게.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어. 한 가지만 특별히 당부하겠네. 자넨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서지 마. 알아들었나?”
“중립을 지키라는 건가?”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지. 다소 불쾌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네. 그래도 끼어들지 말게. 내가 집안으로 실려 들어갈 텐데, 사오 분 뒤에 응접실 창문이 열릴 테니까 자넨 창문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게.”
“알겠네.”
“나를 잘 보고 있어야 하네. 밖에서도 보일 거야.”
“그러지.”
“그러다가 내가 손을 들어올리면 이 물건을 방안으로 집어던지고 바로 ‘불이야’하고 소리치게. 알겠나?”
“물론이지.”
“그리 위험한 물건은 아니야.”
홈스가 주머니에서 시가 모양의 길쭉한 물건을 꺼냈다.
“배관공이 파이프가 새는 곳을 알아내는 데 쓰는 연막탄이라네. 양끝에 뇌관을 심어 저절로 연기가 나게 만든 물건이지. 자네가 할 일은 거기까지네. ‘불이야’라고 소리치면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그럼 골목 끝에 가 있게. 내가 십 분 안에 갈 테니. 제대로 알아들었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고 창문 가까운 곳에 가만히 서서 자네를 지켜보고 있으란 거지. 그런 다음 신호를 하면 이 물건을 방안으로 던지고, ‘불이야’라고 소리친 후에, 골목 끝에서 자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 아닌가.”
“맞아.”
“그런 일이라면 믿고 맡겨주게.”
“좋아, 그럼 이제 새로운 역할을 연기할 준비를 해야겠군.”
홈스는 침실로 들어가더니, 몇 분 뒤에 온화하고 순진해 보이는 비국교도 목사로 변장하고 나타났다. 챙이 넓은 검은 모자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흰색 타이를 맨 모습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선량한 호기심이 어린 평범한 얼굴은 배우 존 헤어에 필적할 만했다. 홈스는 단순히 옷만 갈아입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인물로 변장하느냐에 따라 표정과 태도, 영혼까지 바뀌는 듯했다. 그가 범죄 전문가가 되는 바람에 연극계는 훌륭한 배우를 잃었으며 과학계는 뛰어난 연구자를 잃은 셈이다.
우리는 6시 15분에 베이커 스트리트를 출발해 6시 50분에 서펀틴 애비뉴에 도착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브라이오니 로지 앞을 서성거리며 집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셜록 홈스에게 설명을 듣고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의 집이었지만 생각처럼 호젓한 동네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동네의 작은 골목치고 활기가 넘치는 편이었다. 한쪽에 모여 담배를 피우면서 웃는 추레한 차림의 남자들, 회전 숫돌을 가진 칼갈이, 젊은 보모에게 수작을 거는 근위병 두 명, 말쑥하게 차려입고 시가를 문 채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도 몇 명 보였다.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동안 홈스가 말했다.
“여자가 결혼을 한 덕분에 문제는 한결 간단해졌네. 이제 사진은 양날의 칼이 된 거야. 의뢰인이 공주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이린 애들러 역시 남편인 고드프리 노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제 문제는 하나일세. 사진을 어디에 숨겨놓았을까?”
“정말 어디에 숨겼을까?”
“가지고 다닐 가능성은 적어. 캐비닛판은 드레스 속에 숨기기엔 너무 크지. 게다가 여자는 국왕이 보낸 사람이 노상강도를 가장하고 공격해 사진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이미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러니 사진을 가지고 다니진 않을 거야.”
“그럼 어디에 있다는 건가?”
“거래 은행이나 변호사에게 맡겼을 수도 있어. 그랬을 가능성이 두 배는 되지. 하지만 난 그쪽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여자란 천성적으로 비밀이 많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숨기는 걸 좋아하지. 다른 사람한테 맡겼을 리가 없어. 자기 수중에 있어야만 마음이 놓일 테니까.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맡기면 그가 간접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압력을 받을 수 있는데 미리 경고를 해줄 수도 없지 않나. 더군다나 여자가 며칠 이내에 사진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틀림없이 손 닿는 곳에 놔두었을 거야. 집안에 말이지.”
“두 번이나 도둑을 보내 뒤졌다고 하지 않았나.”
“흥! 찾는 방법도 모르는 자들이야.”
“자네는 어떻게 찾을 셈인가?”
“난 찾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여자한테 알려달라고 해야지.”
“거절할 텐데.”
“그럴 수 없을 거야. 드디어 마차 바퀴 소리가 들리는군. 여자의 마차가 오고 있어. 이제부터 아까 내가 말한 대로 해주게.”
홈스가 말하는 동안 마차에 달린 등불이 거리 모퉁이를 비추며 다가왔다. 브라이오니 로지 문 앞에 작지만 근사한 사륜마차가 덜컹거리며 멈춰 섰다. 마차가 서자 골목에서 빈둥거리던 부랑자 중 한 명이 동전 몇 푼 챙길 욕심에 쏜살같이 달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같은 생각으로 달려온 다른 부랑자가 그를 팔꿈치로 밀어내자 격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술 더 떠 근위병 두 명이 부랑자들 중 한 명의 편을 들자 칼갈이는 다른 쪽의 역성을 들었다. 주먹이 오가기 시작했다. 마차에서 내린 숙녀는 사납게 주먹다짐을 주고받는 남자들 속에 갇혀버렸다. 홈스는 숙녀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들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 옆에 도달한 순간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홈스가 쓰러지자 근위병들은 그대로 도망쳤고 싸우던 부랑자들도 줄행랑을 쳤다. 싸움에 끼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던 말쑥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이 곤경에 처한 숙녀와 부상당한 홈스를 돕기 위해 몰려왔다. 아이린 애들러는 황급히 현관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렇다, 나는 홈스와 달리 그녀를 이름으로 부른다.) 그녀는 계단 맨 위에서 멈춰 서더니 현관 불빛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뒤돌아보았다.
“불쌍한 신사분은 많이 다쳤나요?”
그녀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아직 살아 있소. 하지만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숨을 거두겠군요.”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용감한 분이었어요. 이분이 아니었으면 아가씨 지갑과 시계를 빼앗겼을 거예요. 저놈들은 부랑자예요. 아주 거친 놈들이죠. 아, 남자분이 숨을 쉬네요.”
어떤 여자가 말했다.
“이대로 길거리에 놔둘 순 없소. 이분을 집안에 눕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아이린 애들러가 말했다.
“그럼요. 응접실로 옮겨주세요. 거기 편안한 소파가 있으니까요. 이쪽이에요!”
사람들이 홈스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브라이오니 로지 안으로 옮겨 응접실에 눕혔다. 그동안 나는 응접실 안이 잘 보이는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응접실 불을 켰지만 커튼을 내리지 않아 소파에 누운 홈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연기를 하던 홈스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다친 사람을 친절하고 따뜻하게 보살피는 아름다운 여자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홈스가 나를 믿고 맡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를 배신하는 행위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외투 속에 넣어두었던 연막탄을 꺼냈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를 다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뿐이었다.
몸을 일으켜 앉은 홈스가 숨이 막힌다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하녀가 재빨리 창문을 열었다. 동시에 홈스가 손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신호를 보고 나는 연막탄을 방안에 집어던진 뒤 ‘불이야!’라고 외쳤다. 내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옷차림이 말쑥한 사람, 지저분한 사람 할 것 없이 신사든 마부든 하녀든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큰 소리로 ‘불이야!’라고 외쳤다. 응접실을 가득채운 자욱한 연기가 열린 창문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안에서 허둥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이내 불이 난 게 아니라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법석을 떠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골목 끝으로 향했다. 거기서 십 분을 기다리자 친구가 나타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소란스러운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홈스는 말없이 몇 분간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이윽고 우리는 에지웨어 로드로 통하는 조용한 거리로 들어섰다.
“아주 잘했네, 의사 선생.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을 거야. 아주 좋았어.”
홈스가 말했다.
“사진을 찾은 모양이군!”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어.”
“어떻게 알아낸 건가?”
“그 여자가 알려줬다네. 그럴 거라고 말했잖은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전혀 어려울 것 없어.”
홈스가 소리 내어 웃은 뒤 말을 이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니까.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공범이었다는 건 자네도 알아차렸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내가 오늘 저녁에 고용한 사람들이었다네.”
“그럴 줄 알았어.”
“싸움이 일어났을 때 손바닥에 빨간 물감을 미리 묻혀두었다네. 앞으로 뛰어들어가다가 쓰러지면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쳤지. 덕분에 불쌍한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네. 사실 아주 낡은 수법이지.”
“그것도 알고 있었네.”
“사람들이 나를 집안으로 옮겼지. 여자는 나를 들일 수밖에 없었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나? 결국 난 응접실로 들어가게 되었다네. 난 처음부터 사진이 응접실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침실이거나. 그래서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 거지. 그들이 나를 소파에 눕히자 갑갑하다는 동작을 해서 창문을 열게 만들었어. 그때 자네가 연막탄을 던질 기회를 잡은 거고.”
“그게 어떤 도움이 된 건가?”
“결정적인 도움이 됐지. 집에 불이 나면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기 마련이니까.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압도적인 충동이야.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성향을 이용한 적이 있었지. 달링턴 바꿔치기 스캔들이나 아른스워스 성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였어. 결혼한 여자라면 아기를 먼저 끌어안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보석 상자를 챙긴다네. 우리 숙녀분이 현재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바로 우리가 찾는 그 물건 아니겠나. 그녀라면 사진부터 챙기려고 달려가겠지. 불이 났다고 알리는 소리들이 실감나더군. 연기가 퍼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불이야’라고 외치기 시작하니 아무리 강철 같은 신경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동요할 수밖에 없지.
여자도 내가 기대한 그대로 행동하더군. 사진은 오른쪽 설렁줄바로 위의 작은 벽감 안에 있었어. 미닫이문이 달렸더군. 여자가 그곳으로 달려가 사진을 반쯤 꺼내는 모습을 언뜻 봤다네. 내가 진짜 불이 난 게 아니라고 소리치자 여자는 사진을 집어넣고는 바닥에 떨어진 연막탄을 흘끗 보더니 방에서 나가버리더군. 그 뒤로 여자를 보지 못했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핑계를 대고 집에서 나왔어. 나오기 전에 사진을 가지고 나오려고 틈을 보고 있었는데 마부가 들어와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에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 괜히 성급하게 행동했다가는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가 물었다.
“실질적으로 탐색은 끝났어. 전하와 함께 찾아갈 생각이야. 괜찮다면 자네도 같이 갔으면 하네만. 우리는 응접실에서 숙녀를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할 거야. 하지만 그녀가 왔을 때는 우리도 사진도 사라지고 없겠지. 전하도 직접 사진을 찾는 편이 만족스럽겠지.”
“언제 찾아갈 건가?”
“아침 8시. 여자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가는 편이 수월할 테니까. 사실 서둘러야 한다네. 결혼을 했다는 건 생활과 습관이 완전히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지. 곧장 전하에게 전보부터 보내야겠군.”
우리는 베이커 스트리트에 다다라 하숙집 문 앞에 도착했다. 홈스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고 있을 때 누가 지나가면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셜록 홈스 씨.”
그때 거리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 중 얼스터코트를 걸치고 우리 옆을 급히 지나친 호리호리한 젊은이가 건넨 인사 같았다.
“목소리가 귀에 익는데 누군지 모르겠군.”
홈스가 흐릿한 가로등이 비추는 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 9월 30일 오전 11시에 '보헤미아 스캔들 #3'이 이어집니다.
* [출간 전 연재]로 공개되는 텍스트는 곧 출간될 단행본의 텍스트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엘릭시르판 '셜록 홈스 단편 전집'은 11월말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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