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은 좁고 몸은 복잡하다. 거의는 더럽고.


로또를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K는 뇌일혈로 쓰러진 채 한밤 내내 거리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본인에게 들었다. 그는 아직도 한밤 내내 도망친다. 내가 봤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또 다른 K의 가출은 탈영을 해도 결혼을 해도 교도소를 가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아는 사람이다. 가족이어도 면회를 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선자인가. 누가 뭐라든 나는 나다. 너와 연결된. 네가 아는 내가 나라고 어떻게 믿어 주지? 증명해 봐. 내게 증명을 떠넘기지 말고. 네가 말한 책임을 져 봐. 네 말 뒤에 찌질하게 숨지 말고. 말로 그럴 듯하게 화장하지도 말고. 칸트를 가져와도 소용없어. 칸트도 욕에 당할 재간은 없거든. 산책처럼 정확하게.

한밤, 음악이 지나간다. 차를 타고. 기억보다 빠르게.

C는 일찍 죽었다. 또 또 다른 K도 일찍 죽었다. C, K (Calvin Klein 말고)....이름 마저 똑같을 정도로 무수하게 많지만 누군가에겐 기억되고 기억되지 않는다. 그들이 음악이었다면 아름답게 오래 기억되었을까. 인간은, 존재는 위대하다며? 定義와 正義는 다르다. C와 K처럼. 같다면 C와 K가 인간이듯 언어라는 것. 그러자 넷 다 닮아간다. 모두 다.

한밤의 잠처럼 잠깐 머물다 가는 것, 나쁘지 않잖아. 그런데 다들 뭔가 남기려 기를 쓰지. 꿈의 기록마저. 낙태된 꼬라지더라도. 왜? 생명 존중 운운하고 싶어? 내가 위에서 말했지. 말로 화장하지 말자고. 그렇다고 내가 말을 똥으로 쓰고 있는 건 아냐. 정신이 있다면 제대로 좀 들어봐. 가장 멋진 사과를 고르듯 들으려 하지 말고. 그래봐야 먹고 똥 싸고 한참 이렇게 지껄이고 고르다가 에이씨, 잘 거잖아. 내 몫의 인생을! 자아를! 멋지게 만들어 보겠다고. 자아는 잠꾸러기~일어나봐, 제발! 제발! 과연 있다면! 

시시해 그래 시시해. 오늘은 ˝병신 같은˝ 이란 말을 두세 번 내뱉었는데, K도 맞장구치며 ˝@&&₩&& 같은˝ 인간들을 끄집어냈지. 우리는 (술 안 먹었어) 제정신이었어. 제정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끝나지 않는 낮과 밤을 이리저리 오가며 대화를 했지. 결국 잊을 거면서. 거의 다 失語에 失意였어. 알면서도 그러는 거야. 우리는. 모르는 너에겐 경의를 표한다. 안다고 말할 때 가장 경멸스러운 어조이고 표정인 걸 알아?

내 유일한 재산은 가까스로 제정신이라는 것. 앎이 내 지갑은 아니라는 것. 


더러워 더러워 어느 날 어머니의 이 말씀이 유산처럼 남아 있다. 


잠처럼 더러운 물을 마신다 달다
많은 처음이 그랬다 그렇다



버려 버려
꿈 속에서라도.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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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9-1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주한다 나라는 이름의 너를.

책읽는나무 2015-09-1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에요!!
심란해 보이네요?제 눈에만??^^

가을이네요!!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가을하늘이 이쁘구나!!여길터인데~~
저도 이제 즐겨보려 노력중이어요!!
님도 맘껏 즐기기 시작!!
입니다^^

AgalmA 2015-09-14 00:55   좋아요 2 | URL
마음병이 또 심각해지는 거 같아요. 햇볕이 제겐 A4 용지로밖에 안 와닿는 듯 느껴지니 말입니다.
물론 즐길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다음달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갈 거니까요. 우울해도 가야합니다. 표까지 이미 받았으니;

발랄한 격려 고맙습니다. 이런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이라니! 이것도 복인데....

수이 2015-09-14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꺅 나도 자라섬 가는데!!! 하루만 가지만_

AgalmA 2015-09-14 00:53   좋아요 1 | URL
전 금토 이틀~ 이젠 3일은 힘들더라고요. 끙))) 여유가 있으면 일요일은 대낮 무료공연 잠깐 볼 지도. 하이파이브 해야겠네요ㅎㅎ
그런데 가게하는 사람이;; 물론 좋은 자세입니다ㅎb

수이 2015-09-14 00:52   좋아요 2 | URL
거기 가려고 오픈 날짜도 미뤘는걸 ㅋㅋㅋㅋㅋㅋ 마주치면 인사하기 찌찌뽕!

AgalmA 2015-09-14 01:29   좋아요 2 | URL
당신이랑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맥주를 같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때 웃음이 터지려나요. 물론 영영 아니 되어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요. 이래도 인생, 저래도 인생.

물론!이 왜 이렇게 많아! (그러면서 끝내 안 고친다) 무른!

물고기자리 2015-09-14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음악과 더불어 햇볕의 편애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2015-09-24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5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09-2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와 포우, 카프카가 한 책장에 꽂혀 있는게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타당한 듯 합니다. 배경 갈색 염색 머리도 잘 어울리고..^^ 어느 서점인가요? ㅎ

AgalmA 2015-09-30 13:50   좋아요 1 | URL
책을 모으며 기쁜 건 그렇게 나란히 두면 아, 이들도 그랬었지...눈물겹게 위안이 되는 점이랄까요. 책 모으는 사람들 다 알겠지만.
제 맘대로 책배열을 하기 좋은 서점이지요 :) 부시시한 머리로 아무 책이나 빼서 읽어도 되고;
 








§

물고기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미끼를 달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대사로 멋지게 시작하는 에리 데 루카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대신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먼저 집어든 건 두 소설 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ㅡ 일요일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제목과 그의 발문 때문이다.

 

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인지력이다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그리고 상상력과 인지력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이미지와 메타포의 시적 테크닉은 그렇게 해서 쓰인 작품을 다분히 서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서.정. 그것은 성취일까, 한계일까. 여긴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서정 만들어지는 싸구려 감성이 아니다. 신파와 혼동하지 말 것.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시를 완강하다고 할 정도로 서정시로 읽고 받아들이려 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서정은 진부함이 아니다. 인간이 예술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 중 하나다. 서사”성은 소설이 이어 받았다. 요즘은 이런 경계를 거부하는 이도 많지만. 독자 보다는 작가 쪽에서 더.


리처드 브라우티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언어보다 행간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작가나중엔 어떨지 몰라도 개시(開示)된 언어에 이견을 달 수 없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내게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그렇다나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먼저 발견하고 이해한 사람들을 가끔 시샘한다박정대 시인을 제일...

 박정대 시인의 데뷔시집(1997, 세계사)이자 표제시 「단편들」은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를 가져와 시작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녹아있다. 그 다음 시집에서도. 계속.

그리고 이젠 20년이 다 되어간다. 






상상력과 인지력의 언급은 철학과 과학이 주관과 객관의 싸움판을 벌이는 것과 연관되어 보이기도 한다. 주관과 객관-내면세계에 대한 각투(角鬪),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문학은 어떻게든 소통하게 하려는 멋진 예술이지하고 나는 일요일답게 중얼거린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62편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 <잔디밭의 복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할머니는 미국의 과거라는 풍랑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다할머니는 워싱턴 주의 조그만 마을에 사는 밀주업자였다.”





ㅡAgalma










(그의 생애 中)

1935년 미국 워싱턴 주 터코마에서 태어나 오리건 주 유진에서 자랐다. 가난했던 그는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배불리 먹어보려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졌으나 경찰은 그를 오리건 정신병원으로 보내 전기충격을 받게 했다.

1984년, 브라우티건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49세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신 행방을 찾기 위해 출판사에서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발견되어 정확한 사망날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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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읽는 책이 과학 정의는 무엇이고 과학이 과연 객관과 실증주의, 반증주의를 반드시 담보해야 하는 것인가여서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AgalmA 2015-09-06 19:29   좋아요 0 | URL
같이 읽고 있는 책 중에 진화론 책이 있어서 계속 이런 의문이 끼어 들게 됩니다.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려는 의도는 아니고 유사하게 느껴지는 걸 어쩝니까ㅜㅜ
전대호 번역가의 말처럼 주관과 객관 사이엔 깊은 심연이 있어 이런 곤혹이겠지만요.

비로그인 2015-09-06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을 읽고 다음이 궁금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글이 있지요.
저 `잔디밭의 복수`는 궁금증을 부르기에 실패는 아니라고 하고 싶네요...

AgalmA 2015-09-06 21:26   좋아요 0 | URL
<태평양에서 불탄 라디오> 단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는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에서 시작된다. 그건 당신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로 시작합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게 아니라 어느 단편을 봐도 이런 멋진 도약을 하는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어 브라우티건을 좋아합니다 :) 괜히 브라우티건을 시적이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작품이 말해주죠

아애 2015-09-06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멋진 첫 도약이에요. 조만간 챙겨 읽겠네요. 틀림없이.

AgalmA 2015-09-06 21:42   좋아요 0 | URL
레이먼드 카버가 문득 맞닥뜨리는 나뭇잎 향기가 난다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아득한 구름향이 난다고 할까요(알지도 못하는 구름향이라니!) 브라우티건 장편소설 <워터멜론 슈가에서> 작품 영향인 듯;

붉은돼지 2015-09-06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은 그 유명한 송어낚시도 저는 읽다가 중도 포기했습니다만 단편은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어요. 62편이라니...손바닥장 장편인 모양이군요^^

AgalmA 2015-09-06 22:59   좋아요 1 | URL
<미국의 송어낚시> 출간은 커트 보네거트의 도움이 컸다고 하죠. 저도 그 책은 중간까지 밖에 못 봤어요. <워터멜론 슈가에서>의 흥분감만 못해서 조금 심드렁했는데 다시 도전해봐야 할 듯;
네, 200페이지 약간 넘는데, 무려 62편;;
5줄짜리 시에 가까운 손바닥 장편도 있어요ㅎ; 그러나 그 짧음 속에도 울림은 참 제 취향>_<)ㅇ~~
하여간 하루키에게도 밀리지 않을 재미도 있다능!

2015-09-06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09-06 2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느낌상 제 취향일 것 같은 책이에요ㅎ

AgalmA 2015-09-07 00:01   좋아요 1 | URL
밤새 다 읽게 될 듯...놓지를 못하겠어요! 예상은 했지만...엄청 안 진지한 문체로 술술 이야기를 펼치는데, 웃다가 찡그리다가 눈물이 날 거 같다가 하여간 브라우티건 참 괴상하게 맘에 드는 작가😭!
물고기자리님도 좋아하실 듯~
이 글에 물고기자리님까지 동석하니 물고기로 가득하다!!! 와아아아~~~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

에이바 2015-09-08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뜻 개구리인가 싶어 다시보니 멸치 대가리!(대가리라고 해도 되겠죠? 머리라 하면 어색해서^^;) 센스!! 더 위켄드 노래 좋지요 영화보다 사운드트랙 호평이 많더군요. 뮤지션이 나이도 어린데 실력있다고 인정받나봐요. 저 노래가 유독 치명치명... 브라우티건은 송어낚시의 평을 들은 이후로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는... 영화도 찍었다는 것 같던데 음~ 아마 에밀리 블런트가 나오는 것 같던데 말이죠.. 할머니 얘기로 시작하는 단편을 보니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삶은 몰랐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AgalmA 2015-09-17 11:37   좋아요 1 | URL
에이바님이 멸치 대가리ㅎ라고 말씀하시는 게 왜이리 귀엽고 사랑스럽죠? *- -*)
더 위켄드 들으면서 저는 브루노 마스도 생각했는데....이들은 마이클 잭슨 2세대인지도 모르겠다 했지요. 받을 건 받고 자기만의 개성 살릴 건 살리고 했다는 기분?
찰스 부코우스키 <팩토텀> 영화도 보고 싶던데!!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누가 뭐라건 제겐 명백히 시집입니다. 브라우티건은 언제나 시인이였어요. 그의 사고는 확실히 시인의 점프력을 가졌어요~ 이 책 저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AgalmA 2015-09-09 0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플렌드 간텐: 웬걸요. 나도 가끔 진화의 불가피한 부산물 때문에 짜증을 냅니다. 우리의 척추는 물고기에서 왔어요. 약 5억 년 전에 물고기들은 근육이 달라붙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구조물이 필요했어요. 물고기들이 사는 물속 환경은 중력이 없으니까. 그런 구조물로 척추가 이상적이었죠. 하지만 그 후에 양서류와 파충류가 육지로 올라왔어요. 결국 직립보행이 등장했고요. 그런데 척추는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턱없이 약해요. 하지만 자연은 물고기의 설계를 끝내 버리지 않았어요.

ㅡ 슈테판 클라인 인터뷰집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중


(....물고기....물고기....)



[그장소] 2015-09-17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멸치..머리 행진 즐겁게 잘보고 가요^^

AgalmA 2015-09-17 11:36   좋아요 1 | URL
후후)/
 

§ 봐야할 영화 : <위로공단>


예매해놓고 못 갔다.

다른 영화를 취소한다는 게 이 영화를 취소하는 실수를.

이렇게 되면 결국 못 보는 사태가 종종 생기던데...


<위로공단>의 이미지는 내가 그간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한국 정서를 충분히 살리면서 신선하다. 

한국의 본격 공포 영화보다 이런 소재가 더 공포스러울 때가 많은데, 이 영화는 자체가 이미 공포물...

소재 때문일까, 감독 성향 때문일까, 한국 때문일까 , 모두 다겠지...

이런 점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연결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스틸컷만 봐도 제작기간이 3년 걸린 만큼의 퀄리티를 보인다.

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역대 한국이 받은 최고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이 달 중에 꼭 보고 싶은 영화.





















§§ 가야할 곳안토니오 타부키 & 조르주 페렉 강연


이 이벤트 당첨 소식을 듣고 앞서 말한 영화 취소 헤프닝이 벌어진 것.

이 강연 듣고나면 안토니오 타부키와 조르주 페렉 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될까.

조르주 페렉 책은 제법 모아두었으나 안토니오 타부키는 이제부터 시작....

가을이어도 모든 게 여유롭지 않다....






















§§§ 잡지도 책 잡지, 일년 내내 글,글,글이군



<Axt 창간호> 늦게 샀더니 사은품으로 탐나던 연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제본도 엉망인 걸로 왔다.

반품 절차가 책값보다 더 나올 거 같아 그냥 본다.


그건 다 그렇다치고 만족도는 별 ★★★


알라딘 서재 리뷰와 페이퍼들과 비교해 그 질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단점. 

비평가와 작가가 모여서 쓴 글이 리뷰어들보다 나이브해 보였다. 지금 문학판의 나이브함처럼.

그와 반대로 잡지라는 걸 고려하지 않은 논문식, 문예지식 글은 완전 에러였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작가 인터뷰 정도가 그나마 메리트가 되어 줄까?

천명관 작가 인터뷰가 겉치레 없는 시원시원함을 보여줘서 신뢰도를 받았을 듯.

9월 인터뷰는 박민규 작가. 역시 이 부분이 제일 힘이 실리는..

<작가란 무엇인가>의 [파리 리뷰] 정도가 되길 빈다. 

그렇다면 좋은 작가가 많아야 된다는 소린데...



전반적으로 아이디어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소설 전문 잡지라는 컨셉이 핸디캡이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이번달 <Axt 2호>를 살까 말까....고민 안 해도 되는 가격경쟁력!



<Axt>를 보니 소설이 강력히 쓰고 싶어졌다. 

남들이 뭘 하든 말든.




ㅡAgalma











♪ 들으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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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9-0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로공단> 이 영화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못 봤네요. 이런 영화 한 번 때 놓치면 보기가 쉽지 않은데...눈과 얼굴을 가린 포스터 속의 여성들...<Axt>에 대한 평은 전체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2호를 사야겠다는 것도요.

AgalmA 2015-09-03 23:13   좋아요 1 | URL
<위로공단> 간만에 보고 싶은 한국영화입니다^^
최근엔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도 보고 싶고요. <액트 오브 킬링>을 번번히 놓쳐서 이번 기회에 다같이 봤으면 하는데, 상황이 어찌 될 지 모르겠어요.
제 관심사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영화 추이를 보면 실화 차용들도 많고 다큐의 확장성이 이번 세기 영화의 비전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책도...<스켑틱>, <미스테리아>, <악스트> 등 잡지붐이 생겨 독서시장계의 판도를 바꿔줬음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에이바 2015-09-0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부키랑 페렉 강연 꼭 꼭 감상 남겨주시기에요!! ~*

AgalmA 2015-09-05 00:41   좋아요 0 | URL
음..., 기대에 못 미쳐서 감상을 따로 남길 것까진 없을 거 같아요.
타부키와 페렉이 직접 연관된 건 없고
주요하게 언급된 것은,
타부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레퀴엠> 소설, 영화 / 페렉 <잠자는 남자> 소설, 영화였어요.
<레퀴엠> 페소아의 이명 작가들 총출동해 마지막에 페소아가 등장한다고 하니 페소아를 좋아하는 우리가 안 볼 수 없는 작품 되겠습니다 :) 세계에서 페소아를 가장 사랑한 작가는 타부키겠더군요. 페소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포르투칼 여인과 결혼할 정도로 포르투칼에 심취~
포르투칼에선 페소아 그래피티가 거의 체 게바라처럼 가득할 정도로 국민 시인이였더군요! 우리나라에선 이름도 잘 모를 정도인데....
<잠자는 남자> 영화는 페렉이 공동 연출로 참여한 거라 같이 보면 좋겠더군요. 아주 인상깊은 작품!
읽다 말아서 이 소설 다 읽고 리뷰 쓰게 되면 두 작품 비교글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에이바 2015-09-04 11:22   좋아요 0 | URL
전 두 작가를 연계한 강연인 줄 알았죠! 아쉽네요. 타부키가 페소아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죠... 덕업일체 되겠습니다. 이번에 페소아 시선집도 나오니까 좋아요. 포르투갈 자체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블루오션이죠 히~ 페렉 잠자는 남자 파이팅이요! 전 페렉이 어렵더라는...

수이 2015-09-02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들이 뭘 하든 말든
나는 오늘도 캔맥주를 하나 따고 시를 쓰기로 작정했다_

AgalmA 2015-09-03 23:19   좋아요 1 | URL
남들이 뭘 하든 말든 야나님은 야나문이 있잖습니까! 엄청난 프로젝트 아니겠습니까... 남들이 뭘 하든 말든 신경쓸 새가 없으실 거 같은데요 :)
저도 지금 캔맥주 하나 따고 이 인생을 어찌 해야 하나 창밖을 봅니다. 시라도 오면 좋겠지만...

[그장소] 2015-09-0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어요!!

AgalmA 2015-09-03 23:19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그장소] 2015-09-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좋다!!! 시 보여주셔요! 영화 하나가 다들 불러모아 한곳을보며 한깡씩 나누는 한모금 식은 맥주의 맛~느껴 버렸어요,~~^^

AgalmA 2015-09-06 02:27   좋아요 1 | URL
그 영화는 <케빈에 대하여>입니까. 린 램지 감독의 초창기 영화 찾아보니 <케빈에 대하여>는 2부란 생각이 들더군요. 긴 이야기는 언젠가 하겠지 싶었는데 또 시간이 흘러 가네요...

그장소님 마음의 골짜기는 구 만리 같을 테지만 밝게 지내시는 게 보기 좋습니다 :)
저는 요즘 만사가 시들합니다. 가을 탓은 아니고...가끔 인생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듯 삶이 그럴 때 있잖아요. 지금이 그래요.

<첫 맥주 한 모금>이란 책이 있죠. 이 제목을 참 좋아했습니다. 언제나 무엇에든 ˝첫 맥주 한 모금˝ 같이 호기심과 애정으로 그러길 바라고 애써 왔으나, 왜 언제나 다 읽어버린 시집을 덮고 막막한 기분일까요. 오늘밤도 까마득합니다. 아마 책을 읽겠죠. 무한히 쓰며....

[그장소] 2015-09-17 02:13   좋아요 1 | URL
음..아마도..저는 왜 이글을 이제야 보는걸까요?보통땐ㄴ 알람이 잘도 울리는데..속상해..ㅠㅠ;
지금은 제속 보단 더 가라앉은 Agalma님 글을
보고와서 짐짓 걱정되긴 하지만..자라섬에 맡겨보려고..제가 보내주는 건 아녀도..힘이 나셔서오시면 좋겠어요.
저도 웃으면 웃게된다에 요즘 거의 매달려 있죠..별 수없음 그냥 웃자고..^^
그러니..뭐든 웃을 일을 만드시길 바랍니다..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 이 있단것..잊지 마시고요!!

AgalmA 2015-09-17 11:36   좋아요 0 | URL
알림이 많으면 때론 놓치는 경우도 있죠^^
딱히 지금이 더 그래 하기도 그래요. 계속 중심을 잡는 노젓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돛으로 잘 작동해주길 바라기도 하고...

[그장소] 2015-09-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림이 없어서..모르는 거랍니다^^
저야 이렇게 깊이있는 글을 쓰는게 아니니..그나마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그것만도 고마운일이라서요..^^

AgalmA 2015-09-18 12:57   좋아요 1 | URL
북플 알림 설정을 해제해 두신 건가요? 나름 좋은 방법일수도.
제가 어느 정도 깊이있게 책을 읽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 저도 반가워요

[그장소] 2015-09-18 14:1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알림을 해놓음 다른분들 대화에도 울리는 일이 있더라고요..한자락 껴들면 그만 일테지만..늘 그러는 것도 참 못할일이고..감시하는 것 같아 미안스럽고 그래서 가능함 안울리게 해놓았어요.
그랬더니 정작 안부 궁금한 분 것도 못보는..^^;;
 

§


여성인권영화제가 벌써 9회군요! 
초창기엔 흥미있게 참여했는데, 영화제가 늘어나다 보니(핑계! 좀 게을러져서;) 요즘은 좀 뜸했습니다. 
이런 이벤트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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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1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다른데서 본것 같은데..ㅎㅎ;
 
TV노예가 되는 1주일이 돌아오다 - EIDF 2015

 

 




1. 희망도 절망도 없는 인간?

고쿠분 고이치로는 마무리하는 소감에서들뢰즈가 베케트를 논한 「소진된 인간」을 거론하며 들뢰즈가 살았고 살아낸 삶 자체가 희망도 절망도 없는이른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세계”(<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266)가 아닐까 조심스레 말하고 있다.

 


들뢰즈가 가져온 수많은 사례들-데이비드 흄에 대한 논문을 시작으로, 스피노자와 칸트 같은 고전 철학영화와 같은 예술프로이트와 라캉 이론에서 그랬듯 푸코의 권력담론에서도 들뢰즈=가타리식 욕망’ 분자를 끄집어내기프루스트에게서 과거를 떼어내고 습득의 경험’(사유의 현장성)을 말하기카프카....

이 책에서는 카프카 연구를 비롯해 들뢰즈가 예술을 통해 분석해 본 시간론을 다루고 있지 않아 아쉬웠다

여하간 알랭 바디우는 들뢰즈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들뢰즈가 늘 지루하고 똑같은 말(일종의 예단적 사고)만 한다고 비난한다. 알랭 바디우의 비난은 내게 이렇게 보인다철학론이라면 자신만의 무공훈장=개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를 간파한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데카르트는 코기토(Cogito)의 사상을 설하고칸트는 초월론적 탐구를 밀고 나갔으며헤겔은 변증법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고베르그송은 지속으로 현실을 보는 시각을 전위시키려 했다그러나 들뢰즈의 저서는 그러한 스타일로 쓰여 있지 않다.”(<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p16) 


그리고 들뢰즈의 독특한 자유간접화법을 서술하며 1장을 시작한다추종 아니면 인신공격적 반론 일색인 철학의 場에서, 들뢰즈의 자유간접화법은 철학자가 스스로 사유한 것을 말로 분석해낼 때 암묵적 전제를 폭로하기 위한 도구(<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39)로써 매우 매력적이다. 그것은 들뢰즈가 개념을 세우는 철학적 방법이다. 내가 들뢰즈의 사유에 끌린 이유가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나는 들뢰즈의 모든 저작을 다 읽지 못했다게다가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는 들뢰즈 책만 논하는 게 아니라 칸트, 하이데거라이프니츠정신분석 그리고 들뢰즈 푸코론과 관련해서는 푸코의 저작과 그 의미까지 방대하게 거론하고 있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이 책의 리뷰로 들뢰즈에 대해 뭔가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제대로 말할 수 있는 일인지 여러 날 고민됐다. 그런데 왜 하려는 거지?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이 끌려나오고 있잖아!

 

사유의 이미지에 도달하는 것은 논술대상이 되고 있는 철학자가 말하고 있는 것만으로 논해서는 실현되지 않는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38)

 


2. 떨어진 잎으로 채운 Tea Time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의 다큐 <티 타임 Tea Time>(다시보기: http://www.eidf.co.kr/dbox/movie/view/116)을 보며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어느 칠레 여인들의 시공간을 70분 간 경험했다.

이 영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평점과 감상평을 보며내 편견이겠지만이 영화에서 소진되고 사라져가는 저 많은 순간들을 많이 놓쳤을 거라 생각했다고교 동창의 인연으로 여유있는 노년까지 그녀들은 시끌벅적하게 환담을 나누고 하나둘 노환으로 죽는다는 내러티브만 보지 않길 바랐다. 60년 넘게 이어진 티 타임을 둘러싼 무수한 것들....포켓몬과 동성애 등등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채 죽음을 말하며, 화장을 고치는 그 시공간을...다운증후군 소녀가 부는 불편하고 기이한 피리 연주에서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어떤 희망, 어떤 절망을 모호하게 나타내고 있는 그녀들의 시선, 표정, 동작! 

 

어떤 Scene

창밖에는 잎이 흔들리고유리찻주전자 안에는 찻잎이 화려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오랜 만에 만난 할머니들이 인사를 나누며 칠레 노래인지 시인지를 읊는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은/바람의 장난감//잎은 깨어진 환상/애달프구나//우리 가슴 속 나무에서/떨어져버린 잎이여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을 떠올렸다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죽은 사람들>이다.

 






















 

그녀는 곤히 잠들었다.

게이브리얼은 팔꿈치에 기대어 그녀의 깊이 들이쉬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동안 앙심 없이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반쯤 벌어진 입을 바라보았다그래그녀의 일생에 그런 로맨스가 있었구나한 남자가 그녀 때문에 죽었어이제 그가그녀의 남편인 그가 그녀의 삶에서 했던 역할이 얼마나 초라한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은 거의 그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그는 마치 그와 그녀가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처럼 잠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호기심어린 두 눈이 오랫동안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머리칼에 머물렀다그리고 그 당시그녀가 최초로 여자다운 아름다움을 꽃피웠을 그 시절에 그녀는 과연 어땠을까를 생각하니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가엾다는 기묘하고도 친밀한 생각이 들어섰다그는 그녀의 얼굴이 더 이상 그에게조차도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그는 그 얼굴이 마이클 퓨리가 과감히 목숨을 걸었던 그 얼굴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녀는 그에게 얘기를 전부 털어놓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그의 눈길은 그녀가 옷 몇 가지를 던져놓은 의자로 옮아갔다페티코트 끈이 마루까지 대롱거렸다부츠 한 짝은 나긋나긋한 윗부분이 꺾인 채 바로 서 있었고다른 한짝은 옆구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그는 한 시간 전 자신의 길길이 뛰던 감정들이 의아스러웠다그런 감정들이 어디서 나왔지이모 댁에서의 저녁식사에서자신의 바보 같은 연설에서포도주와 춤에서현관 마루에서 작별할 때 그렇게 흥겹게 떠들던 것에서눈 속에 강을 따라 걷던 기쁨에서가엾은 줄리아 이모그녀도 곧 페트릭 모컨과 그의 말과 더불어 그림자가 될 것이었다그는 그녀가 '신부로 단장하고'를 부를 때 그녀의 얼굴에서 수척한 안색을 알아챘다어쩌면 곧 그가 검은 옷차림으로 실크햇을 무릎에 놓고 바로 그 거실에 앉게 될 거였다차양들이 내려지고 케이트 이모는 울며 코를 풀며 또 그에게 줄리아가 어떻게 죽었는가 얘기하면서 그의 곁에 앉아 있을 거였다그는 마음속에 그녀에게 위로가 될 말을 궁리할 것이고 단지 절름발이고 쓸모없는 단어들만 발견할 것이다그렇다그렇다정말 곧 그렇게 될 거였다.

방안 공기가 그의 어깨를 사리게 했다그는 조심스레 시트 밑으로 몸을 펼쳐서 아내의 곁에 누웠다한 사람 한 사람그들은 모두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나이 먹어 음울하게 빛바래고 시드는 것보다는 수난의 충만한 영광 속에 과감하게 저승으로 건너가는 것이 더 나으리라그는 자기 곁에 누운 여자가 그녀에게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던 연인의 눈동자의 모습을 가슴속에 그토록 오랜 세월 꼭 품고 있었던 것을 생각했다.

눈물이 게리브리얼의 두 눈에 흠뻑 괴었다그 자신은 어떤 여인을 향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그런 감정이 분명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그의 두 눈에 눈물이 더 뿌옇게 어렸고 군데군데 어두운 가운데 그는 자신이 물방울 뚝뚝 듣는 나무 아래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상상했다다른 모습들이 그 곁에 보였다그의 영혼은 무수한 죽은 자들이 사는 영역에 접근한 것이었다그는 그들의 불안정하고 깜빡이는 존재를 의식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자신의 정체성은 만져지지 않은 어떤 잿빛의 세계 속으로 스러져가고 있었다견고한 이 세계 자체가이 죽은 자들이 한때 키웠고 또 그 안에서 살았던 그곳이 해체되고 또 줄어들고 있었다.

몇몇 가볍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몸을 창 쪽으로 돌렸다다시 눈이 오고 있었다그는 졸린 눈으로 가로등에 비스듬히 내리는 은빛 나는 어두운 색의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그가 서쪽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온 것이었다그랬다신문이 옳았다눈은 아일랜드 전국에 걸쳐 내리고 있었다어두운 중앙 평원의 방방곡곡에나무 없는 언덕 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앨런 늪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더 서쪽으로시커멓게 솟구쳐 오르는 섀넌강 파도 위를 소리 없이 내렸다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 외로운 교회마당에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내렸다눈은 바람에 흩날려 빙퉁그러진 십자가와 묘석들 위에작은 문의 뾰족한 문설주 위에메마른 가시나무 위에 내렸다눈이 온 세상에 희미하게그들의 종말이 내려오는 것처럼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희미하게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나는 왜 이런 연상을 하게 되는 걸까. 이렇듯 사유는 내 의지가 아니라 대부분 강제이며 부딪힘이다. 차후적인 '개념'에 대한 씁쓸함...분노...절망...

<티 타임>과 <더블린 사람들>을 비교하며, 흔히 조이스 작품에서 거론되는 에피파니’(현현(epiphany):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 혹은 통찰[네이버 지식백과])를 거론한다면 너무 도식적이고 식상하다더 풍부한 사유가 필요하다나는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에서 다음 대목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인공인 는 마들렌의 맛이라는 기호signe’ 해독방식의 습득을 가리킨다주인공인 는 마들렌의 맛이라는 기호에 의해 과거를 상기했을 때 기묘한 기쁨을 느끼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그렇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기호의 해독방식을 배우고 이 기쁨의 비밀을 이해한다그는 과거를 단지 상기하는 것이 아니다기호를 해독하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최종적으로 어떤 종류의 진리의 계시에 도달한다기호와의 만남그리고 그 해독방식의 습득이라는 경험이 프루스트의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들뢰즈의 주장이다(또한 기호라는 말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7편 되찾은 시간에 빈번하게 출현한다).(<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97)

 

예컨대우리는 헤엄치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수영에 관한 논문에 의해 배워서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수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은 흐르는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뿐이다”(Heidegger 1954(1977), S.22). 하이데거가 이 유추analogy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사물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사물을 생각함이란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사유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우리가 도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유할 때이다”).(<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p105)


이러한 내 모든 사유 작업은 "관념연합" 아닐까. 


정신을 구성하는 그 흩어진 관념들이 일정한 원리에 따라 연합되었을 때 '항상성과 균일성'을 가진 체계가 발생한다. 연합에는 '근접', '유사', '원인과 결과'의 세 가지 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 원리들에 기반을 두어 행해지는 관념연합이 어떤 임계점에 달했을 때 정신이라는 소여의 상태를 넘어선 주체가 발생한다.”(<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p51)


흄의 "관념연합"을 칸트는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과연 모조리 철회할 수 있는 것인가. 

들뢰즈는 흄의 경험론과 칸트의 초월론을 직선적 철학이 아닌 면面적인 철학으로 모두 수용하고 있다. 질문을 담은 비판으로. 

무수한 우주 파편들처럼 내게 도착하는 기호, 사유... 나는 '주체'로서 헤엄치고 있는가, '무주체'로서 떠다니고 있는 것인가.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모든 것이 소진되기 전에....




3.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그리고 푸코로

고쿠분 고이치로는 들뢰즈 철학의 '방법'(1장-자유간접화법), '원리'(2장- 칸트와 흄을 모두 수용한 초월론적 경험론), '실천(3장-"적극적 의지의 부재를 인정한 다음 습득"(p123)되는 사유)을 말한 뒤 4장에서 들뢰즈가 가타리와 협동작업을 통해 어떤 새로운 사유의 실험-'전회(轉回)'에 착수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때 탄생한 저작이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카프카』이다.









이 작업에 대해 많은 이들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두 사람은 흔한 공저(共著)의 형태가 아니었다가타리가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하고 수정작업 없이 들뢰즈에게 전달하면 그가 편집 수정해 내용을 채우는 식이었다


"실제로 나도Nadaud가 편집한『안티 오이디푸스 초고』(2004)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들뢰즈=가타리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개념(영토화/ 탈영토화/재영토화, 코드화/탈코드화, 욕망하는 기계들, 연접連接/통접/이접離接, 원국가原國家, 집단적 언표행위, 분열분석, 말벌과 난蘭의 사랑...)은 어느 것이나 가타리에게서 유래하고 있다.(<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15)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작은 들뢰즈=가타리라는 등식으로 그 저작의 특성이 설명된다이 방식은 논하는 측과 논해지는 측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만드는 들뢰즈의 '자유간접화법적 구상'의 또 다른 변형인 셈이다

 

들뢰즈=가타리라는 정치적이며 역동적인 작업 후 들뢰즈는 푸코로 향한다.

 








억제나 이데올로기는 힘들 간의 투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의해 말려 올라간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다”(F, p.36).


푸코는 법이 하나의 평화 상태도, 쟁취된 전쟁의 결과도 아니라는 것을 제시한다. 법은 전쟁 그 자체이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의 전략이다. 바로 권력이 지배계급이 획득한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행해지고 있는 그 전략의 행사 그 자체임과 마찬가지로.(F, p.38) 

 

들뢰즈는 푸코의 권력담론을 탐구하며 의문을 제시한다. 


정치철학의 문제는 왜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하게끔 되는가가 아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자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가이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p225)


들뢰즈는 푸코의 권력담론이 일종의 이원론적 성격(그렇게 말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썼지만)-지배/피지배의 근본 기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생- 정치에서 길이 막혀버렸고, 윤리론으로 길을 틀어버리게 된 것이라고...

 

 

들뢰즈의 '욕망 일원론의 철학'은 그 근본 기제에 딱 들어 맞는다. 이 책의 논리 대로라면.

들뢰즈가 데이비드 흄에 대한 첫 논문으로 시작한 인간 본성의 탐구는 '욕망'이라는 풀 수 없는 기호로 다시 도착했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를 제대로 읽은 것이길 바라며, 이제 나는 들뢰즈가 '들뢰즈=가타리'가 되기 전인 『의미의 논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티 타임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이 책 읽고,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과 가브리엘 타르드 저서를 매우 읽고 싶어졌지만 그 티 타임은 나중으로 미룬다. 외계인에게 피랍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면 언젠가....


ㅡAgalma 





 

 








모든 철학자는 새로운 개념을 야기하고 그것을 제시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개념이 어떠한 문제에 응답하는 것인지, 그 문제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다 질문을 완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예컨대, 흄은 믿음이라는 독자적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만 인식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의해 인식이 한정 가능한 믿음의 양태가 되는 됨은 어째서인가에 관한 사정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철학사는 어떤 특정한 철학자가 기술한 것을 또 한 번 기술하는 것이 아니며, 철학자에게는 반드시 언외言外로 암시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무엇인지, 철학자 본인은 기술하고 있지 않으나 그가 말한 것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PP, p.186)

ㅡ질 들뢰즈 <경험주의와 주체성 - 흄에 따른 인간본성에 관한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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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1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웬일인지 글에서 벌써 가을 냄새가 나네요^^

AgalmA 2015-09-01 17:20   좋아요 0 | URL
본의 아니게 그러게요. 여름 내내 얼음 커피만 잔뜩 먹었는데, 이제 차도 좀 즐길 계절이 왔네요 :)

21세기컴맹 2015-09-01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토록 숨가쁜 티타임이라니...ㅎㅎ

AgalmA 2015-09-01 17:21   좋아요 0 | URL
차 마시기 대회에 나가 원샷하고 있는 웃긴 풍경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어서 잡아야 해! 하는 마음이 크다보니;;

cyrus 2015-09-0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이 인용하신 <더블린 사람들>의 저 문장은 세계문학작품 중에서 죽음을 엄숙하게 묘사한 장면으로 꼽고 싶어요.

AgalmA 2015-09-01 20:3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주 인상깊었던 장면이라 이따금 펼쳐보는데, 다른 판본으로 다시 사서 봐야 할 듯 합니다. 제 책은 너무 오래된 책이라...

에이바 2015-09-0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닉스 노래 영상 정말 좋네요. 저 순간을 공유한다는게 행복해지는데 아갈마님은 어떻게 저걸 알고 소개해주셨는지... 감사감사...

AgalmA 2015-09-09 03:01   좋아요 0 | URL
유투브가 일등공신이겠고...둘째로 어떻게 아냐...면 제가 책보다 음악을 더 열심히 찾아듣고 시간도 더 투자하기 때문이겠지요^;;;...phoenix-north도 나온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암튼 책공부를 이리 열심히 했으면...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ㅎ;;
음악 맘에 드신다니 저도 흐뭇합니다. 에이바님의 애정어린 공감을 생각해 음악 풀무질을 좀 열심히 해야 할 지도ㅎ...요즘 만사허무 귀찮아서...
phoenix-too young도 찾아서 들어보세요. 귀엽고 흥겨운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