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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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마술적 리얼리즘. 벨라 타르의 영화가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책 디자인도 그렇고 감탄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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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2-10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님 잘 지내셨나요. 연휴가 시작되어 인사드립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AgalmA 2021-02-10 23:33   좋아요 1 | URL
명절 때마다 인사 건네주시는 서니데이 님^-^
연휴 시작이네요. 올 한해도 서니데이 님에게 좋은 일 많길 바랍니다♡

2021-02-10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5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8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탄탱고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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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픽션 속 등장인물이 잔인할 정도로 비정하고,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으며, 비정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현실의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다보니 그게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속 시원한 풀이가 아니다. 보르헤스가 들여다본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에 대한 설명을 빗대어, ‘인간’은 이상하게 길들여져 있고, 신을 믿고 신화를 흠모하기도 하고, 어디로든 싸돌아다니길 원하고, 탐욕과 게으름에서 줄타기를 하며 미친 듯이 나부대기도 하며, 수없이 많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에 나오기도 하며, 방금 찻주전자를 깨뜨린 존재이기도 하면서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파리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것도 인간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소설 속 인물들이 전혀 비정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의 수만큼 우리가 보는 만큼 인간의 특성도 미묘하게 다르면서 많고, 소설가는 내러티브와 책이라는 형태 속에 그런 인간의 모습을 담는다.

수전 손택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고 평했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수긍된다. 나는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로 이 작품을 먼저 접했는데, 7시간 30분의 러닝 타임보다 영화가 담은 경이로움에 더 놀랐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묵시록적인 영화와 또 다른 보석이었다. 내가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린 건 그럴 만했다. 이 소설은 공산주의가 붕괴되어가던 1980년대 헝가리에서 몰락해가는 어느 집단농장 마을 사람들을 그렸다. 번역과 해설을 쓴 조원규 씨 말마따나 이 당시의 몰락은 “정치적 층위보다는 역사적, 심리적, 형이상적 층위”의 몰락이다. 마을에는 일이 없어 타지역에서 벌어야 하고, 가난과 실패와 무력감에 찌든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속이고 간통하며, 아이들도 나쁜 짓에 서슴없고, 엄마가 딸이 매춘한 돈을 뺏는 그야말로 작은 소돔과 고모라 같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눠야 할 품삯을 슈미트와 크라네르가 챙겨 도망가려는 걸 간파한 후터키가 슈미트를 위협해 음모에 가담하려는 순간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다. 마을의 지도자(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공산당 정부의 정보원)였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고 마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한밤 내내 그들을 기다린다. ‘메시아 알레고리’가 대개 그렇듯 마을 사람들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더욱 진창에 빠져들 거라는 걸 독자는 금세 눈치채게 되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술집에서 가련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이 춤판에 빠져있는 동안, 소녀 에슈티케는 자신이 죽인 고양이 시체와 함께 천사의 구원을 바라며 자살한다. 소녀의 죽음은 바람과는 다르게 이용된다. 이리미아시는 소녀의 죽음으로 비탄과 혼란에 빠진 마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이용해 새로운 삶을 꾸려야 한다고 공산당식 일장 연설을 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내놓도록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을 자신의 개인 스파이로 만들어 당국에 자신의 입지를 돋보일 계획까지 꾸몄다. 비정한 무신론자이자 사기꾼인 이리미아시에게 여러 계시(도살장에서 도망친 말, 죽은 소녀의 시체)가 나타나도 그는 마음을 되돌리지 않는다. 어리석은 생각과 마음은 도처에 있다.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없이 생기는 거미줄과 사투를 벌이며 탐욕을 채울 궁리만 한 술집 주인도, 사람들을 외면하면서도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에 집착했던 알콜중독자 의사도,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각자의 희망과 무력감 때문에 이리미아시의 계획에 빠져든 마을 사람 누구도 사태를 바로잡지 못한다. 이리미아시의 계획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간파하고서도 후터키는 막지 않는다. 교회도 종도 없는 마을에서 종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몰락을 예감한 꿈에 적응하듯 그 종소리를 무시했다. 같은 종소리를 들은 의사는 “종소리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인간의 삶에 지금껏 알지 못했던 추진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종소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 나섰지만, 환멸만 확인하고 다시 칩거한다. 그가 관찰할 마을 사람들이 이제 없다는 걸 알아도 그는 그의 글쓰기 속에서 몰락할 것이다. 현실과 괴리된 허망함이랄까. 현실과 악랄한 교접자라 할 이리미아시조차도 정부의 보고서에는 그가 혐오하는 실패한 인간 군상과 그는 구분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울타리에서 그들은 죽음의 선고를 앞둔 가축에 지나지 않다. 적극적으로 찾든 찾지 않든 ‘구원’은 없다는 메시지일까. 관점을 달리해서 봐야 할 것이다. 자신과 서로를 돌보지 않는 인간에게 구원은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구덩이는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만 할 것이다. 구원, 마법, 글, 인간애 등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1985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36년이 지나서도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는데, 우리가 바라는 ‘신’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인간’의 부재 때문인 것 같다.


 

📖

한참 뒤에 이리미아시가 말했다. “좀 전에 이상한 광경을 봤다고 그럴 필요는 없어. 천국? 지옥? 피안彼岸? 다 헛소리야. 난 그런 지어낸 얘기는 다 정신을 홀려놓기 위한 거라고 믿네. 그렇게 환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진실은 영영 알 수 없는 법이야.” 이제 페트리너는 완전히 마음이 놓여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이리미아시가 자신감을 되찾도록 자기가 무슨 말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고함만은 치지 말게!” 그가 부탁했다. “안 그래도 곤란을 잔뜩 겪지 않았나?” “처진 귀, 신은 문자로는 나타나지 않아. 신은 무엇에도 나타나지 않지. 신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봐, 난 신을 믿는 사람이야!” 페트리너가 성을 냈다. “적어도 내 앞에선 조심해주게, 이 무신론자야!” “난 예전엔 잘못 생각했어.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네. 나와 벌레, 벌레와 강물, 강물과 강을 넘어가는 고함 소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건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거야. 뿌리칠 수 없는 구속과 시간을 뛰어넘은 대담한 도약 사이에서, 영원히 실패하는 감각이 아닌 오로지 환상만이 우리로 하여금 비참한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끔 유혹하지. 하지만 도망칠 길은 없어, 귀 늘어진 양반!” “그 얘길 하필 지금 해야겠나?” 페트리너가 항의했다. “‘지금’이라고 했지? 지금 우리가 본 건, 우리가 본 게 틀림없어!” 이리미아시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서 난 우리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 거야. 왜냐하면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그럴듯하거든.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거고, 그다음엔 눈을 믿지 않는 거지. 페트리너, 그건 우리가 언제나 빠지고 마는 덫이야.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지.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란 게 결국은 자물쇠를 바꿔 다는 일일 뿐이거든. 그렇게 덫은 완벽하다네.”

 

 

그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농장이 해체되고,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또 미련 없이 떠나가버린 뒤에 의사와 학교 교장을 포함해 오직 그와 몇몇 집들만이 남았는데, 누구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부터 그는 음식 맛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죽음은 무엇보다 수프와 고기 접시에, 그리고 담벼락에서부터 스며들어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을 삼키기 전에 오랫동안 입안에 물고 있었고, 물이나 혹은 드물게 식탁에 오르는 와인을 마실 때도 아주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가끔씩 그가 사는 오래된 펌프하우스의 기계실에서 석회 덩어리를 깨 한 조각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 그렇게 향과 입맛의 질서를 무참히 깨트릴 때 어떤 경고를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는 죽음이 절망적이고 영구적인 종말이 아니라 일종의 경고라고 확신했다.

후터키는 창유리 너머의 풍경을 더는 볼 수 없었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벌레 먹은 창틀과 석고가 부스러진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창에 갑자기 불분명한 물체가 보이더니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춰갔다. 처음엔 그게 누구의 얼굴인지, 놀란 두 눈을 볼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알아본 것은 자신의 초췌한 면상이었고, 순간 놀라고 당황한 것은 비가 창유리 위의 얼굴을 지워내듯이 세월이 그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 모습엔 무언가 엄청나고 낯선 궁핍이 어려 있었다. 수치와 자부심 그리고 두려움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그에게로 다가들었다. 갑자기 혀끝에 다시 신맛이 느껴지고 아침에 들은 종소리가 떠올랐다.

소녀는 고양이의 따스한 배와 뛰는 맥박을 느끼고 여기저기 찢긴 상처에서 솟은 피를 보고서야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수치와 후회로 목이 메었다. 소녀는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승리를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녀가 다가가려는 몸짓만으로도 고양이는 도망칠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이다. 불러도 소용없고 꾀어낼 수도 없으며 껴안지도 못할 것이다. 미추르는 끔찍했던 죽음의 모험을 두 눈에 간직할 것이고, 언제든 도망갈 채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녀는 패배만이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승리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잔인한 싸움에서 부끄러운 점은 그녀가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질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하, 하." 소년이 비웃었다. "농담도 잘하시네요." 페트리너는 소년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다. "잘 알아둬라. 인생의 비밀은 농담에 있다는 걸."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일은 어렵게 시작해서 나쁘게 끝난단다.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다 좋은 법이야. 네가 걱정할 건 마지막 순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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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1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장정이 아름다워요. 묵시록이랑도 어울리는 거 같고. “인생의 비밀은 농담에 있다는 걸.” 이런 대사도 좋고요. 음력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

scott 2021-02-1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리뷰는 천천히 읽을 것임ㅎ 아갈마님 새해 복 많이많이 ^.^
 
악스트 Axt 2021.1.2 - no.03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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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소재로 삼는 글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글쓰기에서 그 과정은 불가피하고, 창작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상상을 총동원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요즘 경향을 보면 국내외 구분 없이 '글(쓰기)을 위한 글'로 끌고 가는 소재가 너무 많다. 밥벌이도 해야 하고 마감을 어기거나 원고 청탁을 거절하면 다음 청탁이 불투명해지므로 기어코 써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글을 쓴 작가들 글이 대개 그렇다. 하필 내가 읽는 책만 그런 걸까. 미투 운동 등 페미니즘 열풍으로 이쪽 소재도 한창 몰려 있다. 각종 콘텐츠의 발달, 에세이 붐으로 문학의 소재 빈약은 더 두드러진다.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출발했지만, 뭘 써야 하는지 왜 써야 하는지 공허와 실의에 빠져 있다가 맘을 다잡고 작가는 다시 글을 쓴다. 모든 작가가 염원하는 '대작'의 길은 여전히 멀다. 쓰기 자체가 고역인데 이럴거면 자신이 즐거우려고 쓴다는 정지돈 작가의 말이 이해도 된다. 그는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써달라는 당부도 들었고(대부분의 청탁), 실험 정신을 마음껏 발휘해 달라는 지지(워크룸프레스 출판사)도 받았다. 세상과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작가라는 평보다 전위적인 냉소주의자라는 평이 더 많은 것 같다. 작가도 여러 개성이 있으니, 어떤 점이 더 두드러진 소설만 읽은 사람은 단면만 보고 평가했을 수 있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인간에 내재된 어떤 보편적 욕망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면 『봄에 나는 없었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어떤 냉혹한 현실과 대면한 의식의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서전과 소설이 함께 필요한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폴 리쾨르의 논의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한 인간의 정체성의 구성은 역사와 허구가 각자의 기능을 갖고 함께 작용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자기 속의 다른 존재가 필요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손정수,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 얼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에르퀼 푸아로와 『봄에 나는 없었다』의 조앤 스쿠다모어>



인간의 지각은 매우 예민해서 작가가 고통스럽게 쓰면 독자도 그걸 느끼고, 작가가 즐겁게 쓰면 마찬가지로 느낀다. 잘 모르겠다거나 이상하다거나 불편하다는 평가로 던져버린다면 그는 매우 게으른 독서가이다. 그림도 그러해서는 안 되지만 글은 전시장에서 쓱 훑어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위상이 커진 만큼 (그 소비자가 바로 독자이므로) 독자의 위상도 커졌다. 어디서든 최소 투자 최대 효용을 요구하는 태도를 자주 본다. 현대의 독자는 자신이 읽기만 하면 글이 알아서 채워주길 바란다. 명작에 동의하든 부정하든 어떤 평가를 하려면 자기만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지돈 『영화와 시』 리뷰에서 그의 글의 특성과 왜 어렵게 읽히는지에 대해 쓴 적 있다. 정지돈 소설을 '독자와 싸우려는 작가'라고 재단하고 별점 테러하는 걸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모든 장르에서 '다양성'은 더 많아야 한다. 한국 문단에서 낯선 정지돈의 글쓰기는 그래서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소설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이 장소에서 한 인간이 풀어놓는 사유의 한 보고서로서도 들여다볼 만하다. 문학의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문학이 쓸모없다는 '무용성'론은 일종의 면피이자 끌리는 말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왜 끝없이 실패하는지 (지금까지는) 문학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었다. 많은 작가가 실패와 고립된 소외자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형상화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반추하는 특성의 반영이면서 작가 자신과 인간의 근원적 마음의 대변이다. 대동소이한 '행복'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야기가 힘을 발휘할 때는 복잡한 불행의 만다라를 그릴 때다.

글쓰기에서 언제나 남는 문제는 하나다. 우리는 왜 읽고 왜 쓰는가. 단지 재미만을 위해서? 읽고 쓰는 행위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왜 저것은 문제이고 이것은 이토록 중요한가에 대해서. 이런 지경임에도 우리는 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그러나 예술에서 간편하게 얻는 위안처럼 문학의 힘도 점점 축소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술과 문학의 핵심일 수는 없다.


*

베이비샤워에서 다들 선물을 돌려보며 “아, 이거 너무 예뻐요!”라고 할 때 올리브는 너무 끔찍해하고 나중에 잭한테 내 인생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하죠. 그런 게 너무 웃겨요. 더 나아가서 올리브라는 캐릭터가 그 자체로 이 소설의 큰 특성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번에 『다시, 올리브』를 읽으면서 소설 장르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의 삶이 있는데 그중에 우리가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는 삶이 있지만, 진짜 삶은 모르잖아요. 가족들만 아는 사연이 있고, 또 가족 안에서도 각기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삶이 있거든요. 그런 비밀스러운 삶까지 읽을 수 있는 게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 말하는 삶이 아니라, 진짜 내가 느끼는 삶에 대한 이야기. 그런 점이 올리브라는 캐릭터의 특성과도 통하는 듯해요.


- 김세희, <table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시, 올리브』 : 김세희+정연희+이봄이랑 / 백다흠 - 올리브가 차를 몰고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만 먹고 자는 게 아니듯 읽고 쓰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든 뭔가 써보려는 작가가 아니라 게으른 독자가 해악이다. 그런 독자들이 많을수록 우리가 좋은 글을 마주할 기회는 줄어든다. 자신의 피드에 온갖 책을 진열해 놓아도 교양은 그렇게 쌓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무엇을 읽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니까. 역사 내내 우리가 사회 지도층,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느끼는 문제도 이것이잖은가. 읽지도 않고 생각도 귀찮아하며 자기 주장에 열 올리는 이 시대 분위기는 더욱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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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05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정지돈의 늪에 빠졌어요.... 한번 읽으면 뭔 얘기야... 싶지만 왠지 읽고 싶다. 읽고 말겠다 이러다 한 열흘째 이 책만 보고 있어.... 오늘 반드시 털겠어요.... 😡

2021-02-05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짐 안 만들려고 열심히 비우고 있습니다만, 사람이 마냥 그럴 수는 없죠-_-)...이 시대가 그렇게 놔두질 않아😣

이케아 가구 모을 때 조립 많이 했죠. 집이 점점 좁아져 여럿 정리하고 한동안 안 샀는데, 요즘은 이케아 같은 조립 가구 종류가 많아 구경만 해도 재밌습니다🤓

저의 집에서 수납의 90%를 차지하는 것은 책입니다.

책쟁이라면 탐나기 마련인 매거진 랙 갖고 싶었는데, 할인 이벤트! 마감 임박! 을 보고 지름신이 버튼을 눌러서 샀어요😅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조립🔩🪛🔩

여닫을 때의 분위기가 확 다르죠😲

식물 놓을 자리가 늘어난 건 일단 좋아요❤

매거진 랙으로 공간이 넓어진 건지 좁아진 건지는...아직 모르겠어요🤔


사뮈엘 베케트 선집 주루룩 진열하고 혼자 구경하기 아까워서 공개ㅎㅎ












1월 알라딘 굿즈였던 어린 왕자 커피잔 트레이를 색깔 고민하다 원하던 거 더 못 산 아쉬움이 있었는데, 2월에 어린 왕자 뚜껑 머그가 따단~😳 핑크냐, 블루냐 고민 No 다 샀어요😤! 하나보다 두 개 나란히 있어야 더 예뻐요!
알라딘이 최근 아기 공룡 둘리도 새 아이템으로 추가했던데 알라딘 마케팅의 실수라고 봐요. 어린 왕자와 피너츠라도 잘-..-) 저는 둘리 캐릭터가 별 메리트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린 왕자나 피너츠에 비해 요즘 뜨는 레트로 이미지로 봐도 애매하고, 결정적으로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없어요-_-



어린 왕자 머그를 갖고 싶지만 좋은 책도 사고 싶어 고르고 고른

폴 너스 『생명이란 무엇인가』

살만 루슈디 『2년 8개월 28일 밤』





어린 왕자 굿즈 산더미...




에세이 열풍따라 굿즈 파워도 이 분야가 가장 세지요.
박완서 선생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양장본 표지는 예쁘나 삽화가 많이 아쉽습니다. 하루키의 최근 에세이집 『고양이를 버리다』 경우 얇은 책이라 책값 비싸다, 애독자가 호구냐 말 많았지만 삽화가 무척 아름다워서 저는 용서가 되었는데 이 책은 ...
알라딘 서점 굿즈인 다이아몬드 왁스 타블렛 향이 좋아 옷장 안에 넣어 두기로.






에세이 사는 김에 몰아서 산다!
페터 한트케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포스터 800원.
2020 노벨문학상 텀블러(사뮈엘 베케트) 사은품 재고가 아직 남았나 봐요.




프루스트 관련 에세이가 자꾸 등장하고 있습니다. 프루스트 산문집 『어느 존속 살해범의 일기』 샀는데, 유제프 차프스키가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 강의를 한 내용이라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도 나와 냉큼 구매. 류재화 번역가라 더 신뢰.

프루스트 산문집 『어느 존속 살해범의 일기』는 제목은 살벌하지만 신랄하지 않습니다. 그의 글은 언제나 아름답고 품위있는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도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 아담스 맥주잔에 미세한 파손이 있어 교환 신청. 설 연휴 배송 문제로 맞교환 하지 않고 다시 보내주신다고. 유리 제품 배송은 서로 피곤해지는 일.




예술 분야도 흥미 있는 책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삽니다. 마틴 게이퍼드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이 협소한 범위에서 다뤄진 거 같아 아쉬웠는데, 기본은 하는 저자라 어떤 책이든 믿고 살만합니다. 신간 『예술과 풍경』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놨을지 궁금해서 구매.







노트 많이 처분했지만 윌리엄 모리스 노트는 이쁘용♡




♧ 중고도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책도 제가 모으는 품목입니다. 가장 읽고 싶은 『infinite jest 무한한 농담』 을 알마 출판사에서 번역 중이라 들었지만 언제 나올지 감감무소식이라 원서 중고 구입. 하루 한 페이지씩 읽다 보면 번역되어 나오지 않을까요🤓 새해 뜻하지 않은 영어 공부 계획💦













🪅 무한한 굿즈 타령
작년 봄에 에세이 분야 사은품으로 캔버스천 피너츠 깅엄체크 백이 등장했는데, 올해는 겨울에 코듀로이 소재로 등장. 작년 거보다 폭이 여유롭고 보들보들합니다. 잠시 외출할 때 간단한 소지품 넣고 다니기 좋은 가방.





알라딘 굿즈 사다가 그레이 성애가 더 심해졌어요;;
이 달엔 그레이 랩탑 파우치 구매. 내부가 따땃한 융털이라 노트북보다 내 손을 넣고 싶다ㅋ





내게 어린 왕자만큼이나 많은 굿즈 아이템이 있으니 그것은 피너츠!
이벤트 굿즈도 아닌데 굳이 정가를 주고 산 피너츠 참 브로치. 본전 생각해서 매일매일 하고 다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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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05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거진락 넘 멋져여. 잘 사신듯 👍 이 달의 책 촤르륵 진열하시면 넘나 좋을 거 같아요. 저 예술과 풍경 넘 궁금해요 🙋‍♀️역시 아갈마님이 사실 거 같았어 ㅋㅋㅋ

AgalmA 2021-02-05 22:00   좋아요 1 | URL
마틴 게이퍼드 제발 띄엄띄엄 책 내줬으면 합니다ㅎㅎ;;
매거진 랙 역시 책 진열하는 재미가 있어요☺ 엽서랑 그림 붙이면서 혼자 놀기에 더 🔥을 지펴주는ㅎ

2021-02-05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1-02-05 22:37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이 아니라 굿즈 얘기라서 그럴 거예요. 한눈에 보이니 구구절절 설명할 게 없잖아요^^;
이상하실 거 없으세요ㅎㅎ;

님 읽으시는 책 생각하면 가벼워 보일 만 하지요😅

2021-02-05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2-05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안녕하세요? 구매하신 굿즈보고 입이 딱!!^^;;
저 중에 제가 산 것은 민트색 연필꽂이 가 다 인듯 합니다. 움하하하하
다른 사람이 산 굿즈 보는 재미가 책 샀다고 올리는 페이퍼 만큼 재밌네요!!
그런데 이 페이퍼는 굿즈와 책!!! 👍

AgalmA 2021-02-10 22: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라로 님^-^
어린 왕자 연필꽂이 사셨군요. 다들 굿즈 사고 조용히 즐기시는 게 더 신기해요.
다른 사람 굿즈 보는 거 재밌어서 정보 공유 차원에서 올리는데
굿즈를 혼자 사는 것마냥 저는 요람하고 경망스럽게 보이고ㅜㅜ
아무튼 감사합니다!

scott 2021-02-06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 아갈마님에 페이퍼 속 굿즈 구경 쵝오!
알라딘에서 보여주는것 보다 더 좋음 ㅋㅋㅋ
피너츠 참 브로치에 스누피에 다른 친구들도 매달수 있으면 좋겠어요 ^,^

AgalmA 2021-02-10 22:46   좋아요 1 | URL
피너츠 브로치가 짤랑거려서 걷다보면 제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옷에 다는 건 피해야 할 듯ㅎㅎ;;;
scott 님 페이퍼도 재미로 치면 빠지지 않으니 어서 구경 가야겠어요ㅋ
재미 공유 시대~~~ ㅎ

루시아 2021-03-10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부럽고 멋지십니다.ㅠㅠ
 
[eBook]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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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성, 폭력성, 모방 범죄, 2차 피해의 우려로 자세히 쓰지 못했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N번방과 디지털 성범죄 탐사 보도보다 단과 불이 여성으로서 겪은 부당과 불편에 대한 에세이 비중이 많아 좀 아쉬웠습니다. 대중의 공감에 호소하는 에세이보다는 후반부처럼 문제 관련 정보와 사실 전달이 더 많았어야 했을 거예요. 즉각적인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가 지금 가장 절실하니까요. 두 사람이 처음 책을 써봤고,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픈 마음도 있어서 책의 방향이 두 갈래가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겠지요. 제 평가가 비판적이라 섭섭하시겠지만, 앞으로 기자로서든 아니든 글을 쓸 일이 많을테니 참고하셔야 할 거 같아 남깁니다.
님들의 용기와 노력에는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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