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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넥타이 수집가, 미당

 

 

 

 

 

 

베레모와 파이프담배 애호가, 미당

 

 

 

 

 

 

주례왕, 미당 -_-

 

 

 

 

 

 

 

 

 

 

 

아내에게 영어 가르치기 비공식 왕, 미당

 

 

 

 

 

 

 

 

 

 

 

 

 

아내 과자 챙기기 대장, 미당

 

 

 

 

 

 

 

산 이름 외우기 왕, 미당  

 

 

 

 

 

미당은 노년에 세계의 산 이름을 즐겨 외웠다.

나라와 높이까지 곁들여서 외운 이 이름들은 모두 1.625개. 1987년 연초부터 시작한 그의 산 이름 외우기는 1990년 9월에 완전하게 성공한다.

그 이후로 작고하기 전까지, 미당은 매일 아침 특유의 염불하는 듯한 목소리로 이 이름들을 불러냈다. 시간은 40분 정도.

가만히 들어보면 무슨 주문 같기도 하고, 그 자체가 시 같기도 하다.

미당은 기억력의 감퇴를 막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다 외우고 나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그때가 일흔 여섯이었다.

 

 

산 이름을 왜 외우시는가물으면 우스개소리로 말하기를,

산 이름들을 자꾸 외우면, 세계의 모든 산신령들과 친구 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새로운 목표를 향한 노시인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미당은 마지막 10년 동안 매일같이 세계의 모든 곳,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다. 세상의 어떤 시인도 보여주지 못한 정신의 높이를 스스로 즐겼다.

그는 지구를 휘감아 버티고 있는 설산의 위용과 굽이치는 산맥들을 자기 조국의 해뜨는 아침과 함께 꿈꾸었다.

우리가 시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이런 기백과 지혜이다.

미당은 에베레스트를 4천 번이나 오른 시인이었다.

 

 

(설명 : 윤재웅)

 

 

 

 

 

 

 

 

 

 

 

 

 

 

 

 

 

 

 

 

 

 

 

 

 

 

 

멀리... 질마재

 

 

 

 

 

 

 

 

 

 

 

 

 

 

 

 

 

 

 

 

 

 

 

 

 

 

  보리고개

 

 


  진달래꽃은 소월이 차지하고 모란은 영랑이 국화꽃은
  미당 것이 되어버렸고 파초는 지훈 눈물은 다형 풀잎은
  수용 윤 사월 나그네는 목월이 고향 향수는 지용이 침묵
  은 만해 별과 하늘은 동주가 꼭 잡고 아니 내놓는 사철
  이 보리 고개 나는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살거나

 

 

  범대순 [파안대소](2002 / 전남대학교 출판부)

 

 

 

 

 

 

 

§

범대순 시인처럼 누구의 것도 아닌 시를 찾아 헤맸다

시쓰기는 가난이었다

그는 가난을 대표하듯 짧고 아름다운 절구시(絶句詩)를 찾아냈다

 

나는 습관처럼 정면을 피했다

 

미당 시인처럼 시는 누구도 오르지 못한 산을 찾는 일이었다

시는 미지(未知)였다

 

다시,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누구의 것도 아닌 바다로 향했다

길은 언제나 막다른 물음이었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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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19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 바다 다 좋지요.. 미당 문학관 다녀오셨군요..
먼댓글 쓰기가 없어 그냥 관련 글 올립니다...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5-05-19 19:44   좋아요 1 | URL
선운사에서 설렁설렁 걸어서 갈만한 거리이기도 하고, 이 고장은 참 여행하기 좋은 곳 같아요.
카테고리 설정에서 먼댓글쓰기를 깜빡하고 허용 설정으로 안해 놓았더군요. 덕분에 고쳤습니다
저도 올리신 글 읽어보겠습니다 :)

프레이야 2015-05-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노년의 지혜를 또한 배웁니다. 선운사에서 걸어갈 정도인데 예전에는 왜 생각 못 했을까요. 근래 다녀오셨나요? 한달 넘게 남았네요 저는.

AgalmA 2015-05-20 05:02   좋아요 1 | URL
노년은 저를 말씀하신 건 아니죠^^;? 깜짝;

2001년에 완공되어서 그러셨을 거 같아요. 저 사진은 2006년도에 찍은 겁니다. 그런데도 주변 정리가 미흡해서 도로변에 국화를 급하게 심고 있더군요; 제대로 마무리를 안해서 국화들이 도로에 뿌리채 뽑혀 나뒹굴고;...지, 지금쯤은 좀 많이 나아졌겠죠^^;
국화 피는 가을쯤 지역문화 행사식으로 마을 부녀회가 전이랑 막걸리를 파는 엄청 시골스러운 분위기였죠. 제대로 된 가게도 없었어요. 먼지 잔뜩 얹고 있는 점방 하나 있었는데 이 또한 바뀌었겠죠. 오래된 정미소가 사라졌을까봐 좀 걱정입니다. 마을도 요즘 유행하는 벽화 담장 꾸미기를 해놨던데 다른 데보다 못하진 않지만 저는 좀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 지역 발전을 생각하면 이해해야 겠죠.
해질 무렵이 참 좋았어요. 대책없이 거기 죽치고 있다가 부녀회장님이 재워주셨죠ㅎ;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텔 하나 있어 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차를 가지고 가시지 않는다면 동선을 잘 짜셔야 할 듯.

프레이야 2015-05-20 00: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세한말씀. 단체로 버스 한 대 대절하여 갈 예정이에요 하루일정이구요. 미당생가는 같이 가볼만한지요?

AgalmA 2015-05-20 02:33   좋아요 1 | URL
아, 일행이 많으시군요. 미당 생가는 바로 옆에 있으니 가고말고 할 것도 없지만, 미당 생가는 그냥 그래요. 우리나라 흔한 생가들 생각하셔야 할 듯. 감흥을 느끼시기엔 한참 모자라죠^^;;
일행이 많다면 넉넉한 시간은 아니실 거 같은데, 거기 안내하시는 분께 설명 들으며 문학관 둘러보기도 빠듯하지 않나요. 생가를 빼먹긴 아쉬우니 슬쩍 보시고 질마재를 한번씩 바라보며 마을을 산책삼아 둘러보시는 게 더 나을 듯 해요. 프레이야님은 늘 그렇게 다니시는 거 알지만^^

프레이야 2015-05-20 00:45   좋아요 0 | URL
네 참고할게요. 고창읍성 걷기도 할 생각입니다

AgalmA 2015-05-20 00:49   좋아요 0 | URL
오~고창읍성도 좋죠^^...고창읍성 사진은 안 올릴께요^^;;

프레이야 2015-05-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시죠. ㅎㅎ 고창읍성걷기 시간 얼마나걸릴까요?

AgalmA 2015-05-20 01:45   좋아요 1 | URL
음..고창읍성 사진이 어딨더라;;; 좀 찾아볼께요.
단풍 가득한 가을이라 싱글벙글 소요하느라 꽤 걸렸던 거 같아요. 넉넉히 보시려면 1시간 넘게 걸리실 걸요. 넓기도 넓지만 거기 초가집들이 용인 민속촌만큼 잘 꾸며져 있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시간이 좀 걸리죠. 바깥으로 성 외곽도 빙 둘러보면 좋을텐데, 그때 저는 기차 시간때문에 그걸 못해 봤어요;_;

2015-05-20 0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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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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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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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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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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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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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4: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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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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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5-20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당 문학관보다는 고창읍성 성벽길 걸어다녔던 기억만 남아있어요.
이렇게 보니까 새롭워요~~
초등학교 학부모 독서회에서 단체로 갔었는데 이런델 왜 오냐고~ 투덜투덜.,
그때 저에게 서정주는 배신자였거든요.. 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었던 때여서요˝~~

AgalmA 2015-05-20 23:23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행복하자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친일파... 어제 흔적님 서재 <자서전>에서 귄터 그라스의 나치 동조행위에 대한 소회 보니 짐작만 하고 있던 그 심경을 알게 되어 더 숙고하게 되었어요. 순간의 실수, 판단착오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게 이데올로기적인 큰 상황일 땐 돌이킬 수 없는 죄가 되죠. 문인이기 때문에 그 죄는 더 가중처벌되고.
그렇다고 그 과오를 그의 문학성으로 다 덮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의 시에서 애환과 참회의식이 첨예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그러한 삶의 반성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누구나 윤동주처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실리적으로 좋은 시인이니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취지도 아닙니다. 한 인간의 과오는 과오대로 비판하되, 그의 작품과 노력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비판하는 자가 그 비판의 대상의 실수를 번복하는 오류가 없도록...
수많은 친일파 중에 유독 문인들에게 더 철퇴를 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손쉬운 속죄양 삼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인 작가에게 과중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05-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올 여름에는 고창인가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할까요 ㅋ

AgalmA 2015-05-21 22:30   좋아요 0 | URL
고창 공룡테마파크도 있더군요ㅎ 공룡 화석 바위 하나씩 보자고 100미터씩 걷거나 셔틀을 타고 돌아다니는 무료함을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ㅎㅎ 저는 고적해서 좋았습니다만ㅎ;; 서해가 바로 옆이라 해수욕, 뻘밭 체험학습도 가능할 테고, 코스 잘 짜면 번잡하지 않은 알찬 여름여행 되실 거 같은데요^^
일단 맛집들이 많으니, 아이들은 그걸로 꼬시는 걸로ㅎ

21세기컴맹 2015-05-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집니다 고창에 이런 곳이 있군요. 서정주 읽는 날은 휘발성 그리움이 도져서 약간 피하는데 이제 다시 들춰봐도 되겠어요 고창 가기 전에

AgalmA 2015-05-21 22:32   좋아요 0 | URL
선운사랑 가까우니 그쪽 가실 때 둘러 보세요. 서정주 시인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소박한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서정주 시인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
 

 

 

 

 

 

 

그때는,

 

빈속에 커피를 연거푸 들이부으며, 글렌 굴드의 배타성이 내가 결국 선택하려는 방향 아닐까 생각했다.

 

 

지우개를 하나 꺼내 무엇을 지울까, 문장을 들여다본다. 첫사랑을 지우고 싶을 때처럼 간절하게.

 

 

당신도, 나도 없이 무엇인가 아마 거기 있겠지요.

 

없어도,

 

지금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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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2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5-05-1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좀 치시나요? ^^

AgalmA 2015-05-12 20:47   좋아요 1 | URL
안타깝게도~_~)...피아노를 쳤다면 금방 재능이 없단 걸 알고 포기가 빨랐을텐데ㅎ..

뉴스에서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이 1967억원으로 낙찰되었다는군요. 프란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을 넘어 최고가 경신...
동의가 도저히 안되는 가격들...

에이바 2015-05-1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자인가요? 럭셔리한 배경...

AgalmA 2015-05-16 17:03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제가 잘가는 핸드드립집마다 저런 자개탁자가 있었답니다^^; 자개공예 배워보고 싶었는데, 배울 곳도 별로 없고 일단 재료값이 만만찮아서 포기;;;

네오 2015-05-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카소 말 많던데요, ㅋ 소득불평등이 이런 현상을, 이러다 예술도 정보 디바이스가 발생하겠어요, 예술이 자본의 독점이 아닌데 말이죠,

AgalmA 2015-05-16 17:02   좋아요 0 | URL
이런 가격대를 접하면, 예술은 예술가의 손을 떠난 이상 그의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합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다를 주장하며 거리벽에 그린 뱅크시 작품도 씁쓸한 일화 많잖습니까. 건물소유주의 소유권 주장, 벽을 떼어가는 도둑질....

새로운 예술이 나오면 여러 인간상을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합니다~_~;::

네오 2015-05-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화는 가파르게 오르는데 영화는 뭐 제자리인것 같더라고요, 뭐 뤼미에르 필름들이 그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냥 느낌상 오른 미술이 내릴 가능성은 없고,, 단지 이런 그림들을 자기서재에만 놓고 모셔두면, 미술관아니면 보지못하는 저같은 사람은 어떡하라는건지ㅋ

AgalmA 2015-05-16 17:12   좋아요 0 | URL
그것이 바로 벤야민이 말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의 아우라 아니겠습니까ㅎ 더불어 자본 증대와 소유화로도 만점이고^^;

네오 2015-05-1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화씨 451이 틀린말이 아닐수도 있겠죠,.그 가치를 모르면 없어져도 뭐 상관있겠어요~

AgalmA 2015-05-16 17: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비난하는 계절, 언제쯤 이 눈이 그칠까

사실 매달리고 싶은 것이 없는 시대, 무엇을 닮아가는 걸까

언제나 처음 만나는 당신에게, 어떤 어투로 말해야 하는 걸까

 

 

우선, 오늘은 죄책감에 시달렸지

여기 앉아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도 되는지를

거기 앉아서 노란 리본을 만지며 음악을 들어도 되는지를

낙서를 해도 되는지를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를

어떤 것도 동시에 되지 않으면서 한자리에 모이지

 

 

모든 게 흩어지고, 고의로 길을 잃었다

이 좁은 도시, 이 몸 하나로도 길을 잃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버스는 계속 달린다

 

 

모든 사물을 완전히 인식했을 때에야 인간은 자신을 인식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인간의 한계(범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ㅡ   니체 서광

 

 

당산쯤에서 어제의 교통사고 전광판을 봤어

사망 1명, 부상자 113

그 한 명을 나는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이 기억하고자 함은 내 어떤 부분인 거야? 도덕? 가치? 교만 같은 연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역시 너를 들여다본다.”   ㅡ   니체 선악의 저편

 

 

홍상수는 생활의 발견찍을 때 당신 책을 읽었던 걸까

우리들의 말과 글은 증오하면서도 떠나지 못한 채 서로를 닮아가며

그저 감정이라 말하며

 

 

판단과 가치평가는 감정(호감과 반감)의 형태로 유전된다. …… 이런 판단은 어쨌든 그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깃든 신들보다는 우리의 조부와 조모, 더 나아가 이들의 조부모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ㅡ   니체 서광

 

 

당신 어투는 불편한 매혹이야

계속 떠오르고, 계속 바라보게 만드니까

눈을 닮았어, 눈을, 많은 눈들을, 감은 눈들을, 내리는 눈들을, 모을 수 없는 눈들을

 

 

 

 

 

집에 오니 또 많은 게 도착해 있었다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From  Agalma

 

 

 

 

 

 

 

 

 

 

 

 

 

 

 

 

 

 

 

 

 

 

 

심연은 어디에나 있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저 짙푸른 하늘에도 있다. 물론 내면의 수직 갱도를 파내려갈 의향만 있다면 당신 안에도 있다. 《백경》의 작가 멜빌은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 표면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심연을 다녀온 고래의 충혈된 눈. 당신은 어디를 다녀왔는가. 당신의 사상가는 어디에 있는가. 고래들은 땅에 살고 바다에 살며 하늘에 산다. 그리고 당신 안에 산다. 깊은 곳, 아니 깊이를 잴 바닥보다도 깊어서 깊이 자체가 사라진 곳, 그곳을 다녀온 사상가들은 그 눈을 징표로 갖고 있다. 

 

ㅡ 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p12~13)

 

 

 

 

 

 

 

지름길은 가짜다. 최후의 심판도 가짜고, 대혁명도 가짜다. 성급한 독서는 모두 가짜다. 니체는 정직한 혁명만을 믿었다. 30년 동안 병이 들었다면 30년을 치료에 쓸 생각을 하라. 초조해서 발을 구르는 자는 죄를 짓는다. 조급해하는 이로부터 눈을 빼앗고 영혼을 빼앗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때는 꼭 와야만 하는 때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와도 좋은 때에 온다. 다만 당신이 천천히 걷기를. 혁명이란 빠른 걸음이 아니라 대담하고 단호한 걸음이다.

 

ㅡ 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p82~83)

 

 

 

 

 

(사진 : 노순택)

 

 

 

 

* 노순택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하지요

 

 

 

 

 

 

 

 

 

 

 

 

 

 

 

 

 

 

 

 

 

 

 

 

 

 

 

 

 


 

 

 

 

 ※ Jakob Bro [Gefion](2015) 이 음반은 아마 사야 할 거야. 유투브에도 없거든

     And They All Came Marching Out Of The Woods를 꼭 들어보는 게 좋을텐데……

 

 

 

 

 

 

 

 

 

 

 

 

  아쉬운 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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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4-1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콥 브로~
헐~!

AgalmA 2015-04-18 21:01   좋아요 0 | URL
역시 음악은 양철나무꾼님 취향이군요 :)

수이 2015-04-1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요, 이따 또 들어봐야지_

AgalmA 2015-04-18 21:18   좋아요 0 | URL
좋은 음악은 많이 들어도 탈이 안나니 많은 섭취를 권장합니다~ :)

21세기컴맹 2015-04-19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솜털이 일어났어요
소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몸의 반응 니체였는지 브로였는지 알아채기 전에 말이죠

AgalmA 2015-04-19 12:30   좋아요 0 | URL
그 말씀 동감요. 저도 그랬기 때문에^^

2015-06-07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7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7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돌들이 나를 지그시 눌러 가라앉혀 주길 바랐다는 점이다. 이웃이라는 온갖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떠들썩한 웃음 속에서 빈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밤이어도 나는 여기 있지 않은가, 생각하며. 우리의 위안은 사실 위안일까. 재빨리 지는 꽃이나 순간이 아니라?

오늘 붉은 돼지님 서재(http://blog.aladin.co.kr/733305113/7461189) 당호 사의재(四宜齋)” 유래를 보다가 마지막 문장이 내 눈을 지그시 눌렀다.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나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그 문장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를 도라 말하면 道가 아니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무겁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행동과 의식은 언제나 그에 한다. 그건 아니라고 지적하며 비판하다가 저기 가서는 와하하, 웃고 있다. 좋지 않으면서 빨리 좋아져야 된다고 자신을 채근하고, 이것을 어서 알아야 더 좋아지게 된다고 타인을 닦달한다. 시간이라는 왕 앞에 잔뜩 조아리면서도 티격태격하는 신하들처럼. 누군들 겪어보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것, 왕을 두지 말 것.  

 

밤을 새우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은 들을 만났다. 머릿속으로만 적고 옮기지 않았다. 더 무거워지고 더 더뎌지기 위해서.

 

 

§§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신청 책들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법정 출두 명령서처럼 왔다.

 

 

 

 

 

 

 

 

 

 

 

 

 

 

 

 

 

두 달을 기다려놓고 짧은 요며칠 동안은 그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라보며, 그때와 달리 지금 내가 긴급히 찾고자 하는 돌이 아니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맘 굳게 먹고 갔을 때는 도서관 휴관일이었다. 벚꽃이 맘 좋게 웃고 있었고, 그랬다. 오늘이 4일째고, 그중에 몇 권을 고를 테지만, 가장 먼저 읽을 책은 갑자기 고른 책이 될 것이다. 내 희망과는 언제나 다른 것이 온다는 것, 희망보다는 언제나 사실이 먼저 온다. 나는 이 사실들에서 희망과 절망 모두를 볼 것이다.

 

 

나는 얼음인 돌, 다 녹기 전에 뭔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길어지고 있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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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8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04-08 2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경기도 최북단의 시골인 이곳에서 저는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는
기다리다가 다른 주제로 돌아가(또는 다른 주제를 찾아) 글을 씁니다.
신청한 책을 구입했으니 대출해가라는 연락이 와 어렵게 이십 분을 걸어
도착한 그곳에서 내가 왜 이런 책을 신청했지, 하는 난감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또는 시효가 다한 책이기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예수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식으로 처리(배반)한 가롯 유다처럼 저는
급히 다른 주제로 눈을 돌리는 것인지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을 주문했습니다.
좋은 독서가 될 것이라 가대합니다...

AgalmA 2015-04-08 21:50   좋아요 0 | URL
아니, 흔적님도 그런 난감함(?)을 느끼시다니! 엄청 반가운데요ㅎㅎ!!! 그래도 이렇게 신청까지 해 놓고 안 읽는 건 도서관에도 민폐다 싶어 꼭 읽으려고는 합니다. 요즘은 상호대차가 활발하니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 합리화;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말씀하신 그 책 저도 궁금하던데, 음...흔적님은 하루에 한 권 읽으시는 분이니 리뷰가 곧 올라 오겠군요!
네, 저도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cyrus 2015-04-08 2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망도서 문자 확인을 하고 그 다음날에 한파를 뚫고 도서관에 간 적이 있었어요. 추위를 견디면서 도서관 정문에 도착했는데 휴관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맥이 빠져요. 그러면 입에 육두문자를 되풀이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죠. ㅎㅎㅎ

AgalmA 2015-04-09 00:56   좋아요 2 | URL
제가 그래서 이사 제1순위가 도서관이 가까운 곳! 지금 위치가 뛰어서 5분입니다ㅎ 휴일날 꼭 평일 시간이랑 착각해서 오후 5시 이후에 가서 허탈해하고는 하죠; 그러면서 또 남산도서관 가서 책 빌리는 바람도 좀 피우고, 매일 중고서점을 주시하는 등의 독서난봉꾼 같은 이상한 지경;

AgalmA 2015-04-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과 서재에 대한 감시 보고]
아침이 되니 이 글이 <화제의 서재글>에서 사라져 있었다. 참고로, <화제의 서재글>은 <좋아요>버튼 카운트 누적으로 상주 기간이 길어진다. 내 아래에 있던 글들이 <좋아요> 버튼이 더 적었던 걸 생각할 때 의도적으로 글을 내렸다는 소리가 되겠는데, 내 짐작엔 이웃의 대한 내 생각이 북플에 악영향을 줄까봐 그런 거였으리라 짐작한다. 설마 독서난봉꾼이란 댓글 단어를 보고 공공성 저해 글이라고 생각한 건 아녔을테니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알라딘은 <화제의 서재글>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겠지. 지난번 북플 이용에 대한 내 건의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웠던 건지 깨달았다. 별다른 내용이 없어도 신간에 대한 글이거나, 알라딘이 손대기 어려운 파워블로거 수준이라면, 누구든지 글을 두 세개씩 올릴 수 있다. 알라딘 시스템에 저해되는 글만 아니라면.
민주주의? 알라딘도 별 수 없군

cyrus 2015-04-09 10:22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의 글이 의도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갈마님이 작성한 이 글 다음에 업로드된 글이 `화제의 서재글`이 되어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아갈마님의 글은 어제 17시 12분에 작성되었어요. 좋아요 수가 5개 이상이니까 화제의 서재글에 떴어요. 17시 12분 이후에 작성된 다른 서재글이 화제의 서재글에 뜨면 아갈마님의 글이 사라지게 되죠. 사라진다기보다는 밀린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열심히 공들여서 쓴 글이 화제의 서재글에 노출되는 시간은 비교적 짧은 편이에요.

저는 가끔 글에 `책성애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공공성에 저해되는 의미도 아니고 알라딘 측에서도 제재를 받은 적도 없어요. 제 블로그 이름도 `책성애자`입니다. 독서난봉꾼, 참으로 재미있고 괜찮은 조어입니다. ^^

AgalmA 2015-04-09 10:35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이렇게 신속한 답변을! 그렇담 제 글이 알라딘 비방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반성하는 의미면서 사람들이 <화제의 서재글> 시스템을 아는데 도움이 되라고, 댓글 안 지우고 저만 그냥 멍충이로 남는 걸로 할께요ㅎㅎ
감사합니다. cyrus님 ˝알라딘의 위기탈출 넘버원˝ 이었어! 이 조어는 창의적이진 않지만 답례로 붙여 드립니다 :)

cyrus 2015-04-09 10:38   좋아요 1 | URL
북플 기능이 없었다라면 이런 신속한 답변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저도 알라딘 서재를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알라딘 메커니즘을 몰랐어요. ㅎㅎㅎ

AgalmA 2015-04-09 11:05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기능이 제가 끌까, 말까 매일 고민하는 기능입니다. 신속한 소통이면서 자칫 신속한 배틀이 될 수도 있으며, 상대가 그런 걸 알고 있을 시(부재중 표시를 할 수도 없으니;) 신속한 답글을 주지 않는다는 건 어떤 면에선 무시당한단 생각을 줄 수도 있어서 원글 작성자는 답글에 대한 의무감을 계속 신경써야되는....그야말로 취미가 노동이 되는 상황이 발생. 요즘 그 피로함을 느끼는 북플러가 많아졌단 생각도 하고요. 이걸 빨리 캐치한 사람은, 말을 줄이고 좋아요 기능의 활성화로 가는 것 같기도 한데, 소통은 다시 미묘한 원점...
암튼 그렇다고요. 바쁘신데 이에 대한 댓글 안 주셔도 됩니다^^
(북플보다 나라 걱정을 더 해라, Agalma야)

만병통치약 2015-04-09 14:58   좋아요 1 | URL
알라딘 화제의 서재글과 YES의 ˝많이 본글˝은 장단점이 있네요. 북플은 금방 사라지고 YES는 너무 오래 버텨요.

만병통치약 2015-04-09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만 글만 보면 ( 비슷한 성향의 블로거들만 만나서 그런지) 이 나라가 이럴리가 없어요!!!

AgalmA 2015-04-10 15:03   좋아요 0 | URL
이 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저는 점점 요지경 같아요; 제가 알든 모르든 언제나 그랬지만.

네오 2015-04-10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론 공부는 잘 돼요?

AgalmA 2015-04-10 15:02   좋아요 0 | URL
바깥 세상보다 제 독서 세상이 사실 더 복잡다단해서 죽겠어요^^; 김수행, 깅신준씨 책으로 자본론 돌입도 다시 발동 걸어야 할 듯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귀다"(p121)

"난 미쳤어"

-나는 미치광이이다. 내가 특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관례적인 것의 조잡한 속임수), 모든 사회성(sociabilité)으로부터 차단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타인들이 항상 그 무엇의 행동대원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것도 아닌 것의 병사인 나는 내 광기에서조차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화하지 않는다"(je ne socialisepas)(마치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상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p177)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바르트, 당신은 "네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거라고 했지.

맞아, 음악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난 계속 미치는 거야. 이 사랑은 언제나 날 거두어 주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그녀는 온갖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지. 락, 포스트 락, 일렉트로닉, 트랜스, 고딕 메탈, 샹송, 칸초네, 레게, 누에바 칸시온, 탱고, 삼바, 쿨 재즈, 비밥, 빅밴드, 클래식, 샤미센, 가요, 판소리 …… 그녀는 언제나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해.

 

오늘은 재즈야! 와하하하하하하.

 

 

 

 

빗속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내 두근거림처럼 천둥도 치고 말이야! 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있었어. 그는 155년 전부터 내 맘을 알고 있었더군. 바르트, 당신은 날 미쳤다고 말하고 있지만, 밀은 내게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고 있었어. 관습과 도덕률에 얽매이지 말고, 남과 하나가 되려는 몰개성에 빠지지 말라고. 상대를 비판하고 존중하는 만큼, 나 자신을 반성하고 추구하면 되는 거라고, 책을 통해 나를 따스하게 바라봐주더군.

 

아아,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셨지. 커피 머신이 3개나 돼서 나는 시골뜨기 같은 기분으로 뭘 작동시켜야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걸까, 잠시 고민했었어. 아무 버튼이나 눌렀어. 다들 쭈삣쭈삣 서서 커피를 마셨지. 뭐든 어때. 곧 음악이 시작될 텐데! 그녀를 만날 텐데!

 

불이 곧 꺼졌어. 그리고 나처럼 그녀에게 빠지고 싶어서 조바심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 거야.

아, 당신도 이 곡을, 불을 끄고 천둥과 빗소리와 함께 같이 들었어야 했는데!

 

Miles Davis(with Palle Mikkelborg) / White [Aura](1985)

https://www.youtube.com/watch?v=xgYp9Pc1ptc 

(소스 코드를 막아놔서 이 곡을 들으려면 우린 광고를 좀 봐야 돼. 어쩌겠어. 여긴 자본주의 천국이라서 말야.)

 

하여간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중간에 오보에 소리가 나와. 난 깜짝 놀랐어. 재즈에서 오보에가 나오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니까 말야. 바깥의 천둥소리는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지.

아아, 그녀는 정말 사람 안달 나게 해!

난 미친 듯이(이미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적어내려 갔어. 그녀는 언제든지 달아나려 한다는 걸 수십 년간 경험해 왔으니까.

 

 

 

 

Miles Davis Quintet / My Funny Valentine

어둠 속에서 자장가가 아니라 천둥소리와 함께 옥신각신하는 그녀들. 정말 그건 다 환상 같았어.

 

 

 

Miles Davis - Call It Anything (Miles Electric)

드랙퀸 같았지. 새까만 피부와 새빨간 가죽 재킷을 입은 마일즈 데이비스는 곧 날아갈 새 같더군. 그의 은사였던 버드(Charlie "Bird" Parker) 만큼이나 탁한 눈을 한 채.

아하하하, 지금은 카메라 플래시조차 병적으로 싫어하는 우리의 예민한 키스 자렛이, 그 옛날 저기서는 얼뜨기처럼 머리를 흔들어대며 건반을 두드려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그도 그때는 물불 안 가리고 사랑을 하던 청년이었던 거야!

누가 뭐라고 부르든 상관않는("Call It Anything!"), 오, 우리의 돌아오지 않을 히피 시대여!

 

 

 

 

 

 

 

내 애타는 사랑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응원하고 싶었는지 CD를 선물로 주더군. 내가 어제 저녁에 듣고 있던 그 [Kind of Blue]말야!!! 미국에서 매 주 5000장씩 팔려나간다는 음반이지. 난 공짜 사랑은 원하지 않았어!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을 샀어. 그녀에 대한 정보도 어차피 늘 충분치 않았으니까. 모자란 돈 5000원은 무통장입금으로 넣어드린다고 했어. 난 사랑에 미쳐 있는 거지, 남의 돈 떼먹는 사람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했지! 케루악이나 버로스였으면 얼렁뚱땅 시치미뗐을 수도 있겠지만ㅎ 풋내기라고 비웃으라지, 아무렴! 아무렴!

아, 어서 돈 부치고 마일즈 데이비스 책 봐야지!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감상회 Time Table : 처음엔 깨끗했는데, 끝나고 나니 온통 저렇게 돼 버렸어. 뒷면까진 보여주지 않을께. 

 

(옮긴이(김현준 재즈 평론가) 말 中)

"마일즈 데이비스는 무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날카로운 단검을 들어 자신의 육부를 아낌없이 도려낸다. 테너 색소포니스트 조지 콜먼이 이를 받아 들고 능청스러운 살풀이를 추어댄다. 마일즈의 손에 들렸던 단검이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에게 전해지고, 베이시스트 론 카터가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허비 행콕에게 건넨다. 허비 행콕은 마일즈의 단검을 성스러운 손짓으로 곱게 닦아 다시 칼집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캠코더에 담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토니 윌리엄스는 메모지를 하나 꺼내 캠코더에서 뽑아든 녹화 테이프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써 붙였다 - 어떤 외로움에 대한 보고서." (p9)

 

   -- 김현준씨는 자신이 번역해서가 아니라, 존 스웨드가 쓴 이 책이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해 쓴 최고의 평전이고, 마일즈 데이비스가 함께 살아온  재즈의 역사라고도 했어.

 

(서주 中) 

"인생을 이야기할 때 문제 되는 것은 결코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유동성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소설가 마틴 에이미스)" (p15)

"행동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어찌 만만한 일이겠는가. 평전을 집필하는 데 있어, 빈 공간을 충실히 메워야 하고 이야기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며 충분한 동기와 명확한 가치까지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이 집필자를 소설가로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p16)

 

ps)

막 파리에서 왔다는 친구는, 그! 미셸 슈나이더(굴드! 슈만!에 미쳐있던 친구 말야)를 인터뷰하고 왔다는 거야!!! 물어볼 게 너무 많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 그는 또 어떻게 미쳐 있는지 정말 궁금했어! 자신의 러브레터를 곧 공개할 거라고 찡긋 윙크를 해 주더군.  

우리는 각자의 사랑을 싣고 그렇게 헤어졌어. 비가 사랑처럼 계속 내려. 내일이 두려워. 이 사랑이 또 다른 걸로 변할까봐.

또 편지 쓸께. 거기서는 무슨 음악 들어?

암튼, 당신 답장은 없는 거 알아.

 

ps2)

생각해보니, 나 저녁도 안 먹고 편지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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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03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달한 연서 보기 좋군요. 그리고 마을즈 데이비스 연주가 좋군요. 갑자기 프렌치커넥션이란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AgalmA 2015-04-04 02:20   좋아요 0 | URL
미치광이로만 안 보여서 다행입니다; 저는 마일즈 데이비스 후기 음악들만 접하고 그 불협들이 안 맞아서(너무 철없던 시절이기도 하고ㅋ, 음반을 사야 감상이 되던 시절이였던 지라) 집어던졌다가 미련 때문에 계속 찔끔찔끔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랑데뷰 한 듯^^ 프렌치커넥션 좋죠. 저도 가끔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트럼펫 관악기들 소리 한참 들으니 저는 Last Tango In Paris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cocomi 2015-04-03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찾아 들었어요. 아갈마님 덕분에 좋은 음악 잘 들었어요. 내친 김에 키스자렛솔로연주까지.. 감사해요.^^

AgalmA 2015-04-03 11:05   좋아요 0 | URL
키스 자렛 저도 트리오 보다 솔로일 때가 더 좋더군요. 도움이 돼서 기뻐요 :)

돌궐 2015-04-03 0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음악도 째즈, Agalma님 글도 째즈 같아요.^^

AgalmA 2015-04-03 11:06   좋아요 0 | URL
돌궐님께 재즈적 흥겨움을 드렸다니 성공! 저도 그걸 바랐어요ㅎ

수이 2015-04-03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뭡니까_ 가슴이 촉촉해지고 말았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_

AgalmA 2015-04-03 12:21   좋아요 0 | URL
어제 혼자 갔잖습니까. 혼자라서 더 절절하고, 혼자라서 아쉬워하면서(이 좋은 걸 나눌 수도 있었는데!)...누가 같이 갔으면, 사실 이 정도로 미치게 빠져들 지도 않았을 테지만요ㅎ
누군가와 같이 갔다면, 앞으론 절 안보고 싶어졌을지도 모르죠. 혼자 무언가를 잔뜩 행하고 있는, 이 인간은 뭔가....하면서;

네오 2015-04-0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가 누구닙까?

AgalmA 2015-04-03 13:42   좋아요 0 | URL
내 사랑, 음악이죠 :)
영화와 음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음악을 택할 겁니다.
음악과 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음악을 택할 겁니다.
무인도에 단 하나만 가져가라면 음악을 택할 겁니다.
시와 음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그 질문은 좀 잘못된 거라고 말할 겁니다. 그건 그녀의 다른 모습들일 뿐이라고.

그런데, 왜 나는 러브레터를 롤랑 바르트에게 쓰고 있는 것일까요...

만병통치약 2015-04-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이 선곡해 주시는 음악은 항상 감미롭죠. 1964년 미국에서 흑인 재즈밴드가 음악을 연주시작하고 끝낼때 정장입은 백인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깊네요. 그리고 히피축제도 대부분 백인 젊은이네요?

AgalmA 2015-04-03 14:53   좋아요 0 | URL
60~70년대까지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직 백인 주류권이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얼마나 절실히 싸웠던가 생각해보면 알만하죠.
당시까지도 재즈클럽의 유명 재즈 흑인 뮤지션들(루이 암스트롱 조차도;) 욕을 많이 먹었죠. 백인들 무대의 꼭두각시짓이라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런 걸 비웃어주며 잘난 체 하는 센스~ㅎ

제 선곡에 대해선...음, 사람들이 저를 좀 어려워하는 것과 달리 제가 좀 엄청난 로맨티스트인가봐요ㅎㅎ!!! 헌데 이렇게 연애편지나 쓰는 찌질한;;;

곰곰생각하는발 2015-04-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질문입니다만. 책 아래 깔린 편지지 같은 종이`는 뭔가요 ? 보니까 라캉 그려져 있고, 공식도 그거 라캉 공식 같은데 그렇게 인쇄된 공책이 있는 겁니까 ?

AgalmA 2015-04-03 17:09   좋아요 0 | URL
예리하신데요. 영상자료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풀어읽는 영화] 프로그램 포스터 받아온 거요.ㅎㅎ 영화 보고 관련 연구자들이 GV식으로 강의하던 뭐 그런 거였어요. 몇 편 못 봐서 좀 아쉬웠죠.
보고 싶은 영화는 항상 있는데, 상암동 가는 것이 어찌나 귀찮은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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