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9 Vol.17 스켑틱 SKEPTIC 17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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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웃는데 서글프게도 대부분 실소(失笑)다. 내 일상과 정치 사회 뉴스 속에서도 그렇고 과학과 종교의 대치를 봐도 그렇다. 현명함의 좌표를 그린다면 현대인은 어디쯤 해당될까. 과학이 발전하고 매일 세계는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자 목적이며, 신이 창조하고 보살피는 존재라는 인간 중심적 견해”를 가진 이들은 여전히 많다. 스티븐 B. 그레이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학적 사실들」을 열거한다. 태양중심설, 진화론이 가장 충격적 영향을 미쳤고 그 외에도 우주와 지구에 대한 관측, 인간의 직관과 이해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다차원과 다중 우주, 영혼의 부재를 밝힌 신경과학 등은 이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가치도 일깨운다. 이 과정을 살피면 신을 창조자로 넣을 이유도 자리도 없다.

 

 

 

 

랠프 M. 반스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 연구」를 보면 과학자는 긍정적인 경험적 증거(변이를 동반한 유전에 특히 집중)에 의존하지만, 지적설계론자는 ‘증거의 부재’와 추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론과 그 변형인 지적 설계론은 과학보다는 자연신학이나 변증학과 유사하다.

 

 

「설득을 위해 적의 소리를 들어라!」에서 앤드류 쿠퍼-샌손은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 음모론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말을 신봉’하기에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과 부딪히면 자신의 근거가 부실하더라도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경향”(인지 편향)이 강하고, 반박을 당하면 정체성 공격으로 여기며, 특히 도덕 문제에 관해 논쟁할 때 이성을 잃는 경향이 많다. 대니얼 데닛은 “삶을 착각으로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의 있게 일깨워줄 방법은 없다”라고 했다. 샌손은 우리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이 믿음의 통제를 받고 있음을 통찰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주장과 그들의 핵심 신념과 제도를 파악하며, ‘왜 옳지 않는지’ 치명적 오류를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연민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니 논쟁은 더 극심해지는 것 같으니 어쩐다.

 

 

무신론의 반박을 빠르게 핵심만 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유익할 마이클 코헨 「무신론 연대기」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연달아 나온 베스트셀러ㅡ샘 해리스 『종교의 종말: 종교와 테러 그리고 이성의 미래』(2004)와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2006),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2006) , 대니얼 C. 데닛 『주문을 깨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2007),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종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가』(2007) ㅡ를 통해 유신론과 종교에 대한 과학적 회의주의 반박을 담고 있다. 1930년 헨리 루이스 멩켄은 『신들에 관한 논고』에서 종교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견딜 수 없는 자들을 깔아뭉개고, 우주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개조시키려는” 인류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불만'을 통제함으로써 문명의 질서를 유지하는 심리적 요소로 보고. 종교 사상의 두 원천을 ‘유아기적 환상’(『문명 속의 불만』), ‘최초의 아버지와 신을 동일시하고 부성상 파괴에 대한 집단 죄의식을 문화적 신경증( 및 원죄 신화의 형성)과 동일시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신경증”(『토템과 터부』)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매우 더딜 것이라고 보았는데 현재 그렇다.

앞서 언급한 네 저자는 강경에서 온건까지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공통적이다. ①종교가 다른 형태의 앎으로 간주됨에 따라 종교적 믿음들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을 더 이상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샘 해리스는 이성적 판단 없이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은 ‘미치광이’ 또는 ‘망상증 환자’로 취급받지만, 그러한 믿음이 보편적 지위에 오르면 ‘신앙’으로 불린다고 말한다.”) ②문화를 구성하는 도덕률을 ‘규정’하는 신은 없다.(세계 3대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모순되고 때론 터무니없거나 잔학한 구절들은 도덕적인 본보기와 거리가 멀다) ③이성과 사실에 반하고 각종 유혈 사태를 일으켜 반목과 증오의 “무시무시한 증폭기”(크리스토퍼 히친스)로 인간 생존에 득보다 해를 더 끼친다. ④우리가 “종교적 믿음을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오사마 빈 라덴의 믿음과 자살 폭탄 테러도 존중해야 한다는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다른 작가들 역시 모두 동의한다.

 

 

도덕률이 신의 명령이라는 주장(플라톤 외)을 과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성이 포유류가 구사하는 진화한 협동 전략들의 확장으로서, 사이코패스는 예외지만 ‘보편도덕문법’이 있는 것으로 본다. 도덕 규칙은 주관적인 이해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 시대마다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고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파괴하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클래이 패리스 내프 & 앤디 노먼 「과학자가 선악을 탐구하는 방법」).

악마, 질병을 죄와 동일시하는 문화는 옛 믿음에 짜여 있어 현실 왜곡을 자주 하므로, 과학적 방법들을 통해 물리적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로버트 스턴은 「비과학적 사고가 만든 악의 흔적들」).

“악이 형이상학과 신학의 밖에 존재할 수 없고, 또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선 역시 그런 식으로 존재하거나 정의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악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관용에 대해」에서 조지 샐리스는 악을 진단하는 여러 방법론을 살펴보고, 기계론적 처벌보다 뇌의 메커니즘에 근거한 치료책을 제시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섬뜩한 개조 약물이 아니라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 주입으로 피험자의 공감 및 감정 인지 검사 점수를 향상시킬 수 있다. “공감은 사이코패스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주요 요소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무딘 정서를 경험하므로 스스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고통을 대리 경험하기보다는 동정심(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공감 훈련보다 더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제2의 본성이 될 정책과 규범이어야 하고, 공감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과 같이 공감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심각한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강력한 법적 제재 얘기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데, “징벌에 대한 욕구는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통계나 공감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의 이분법을 폐기하고 양자가 작용하는 방식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번 《스켑틱》 vol. 17에서는, 일본에서 넘어온 음이온 괴담이 가짜 과학과 엉터리 마케팅으로 성행하는 것을 고발하는 덕환 「음이온 환상에 빠져버린 사회」, 탈리도마이드(임산부 입덧 치료제로 사용하다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된 사례) 같은 재앙 방지를 촉구하는 해리엇 홀 「임상 시험 중인 약, 써보시겠습니까?」, 여러 차례 의혹이 제기된 MBTI 검사를 ‘황홀한 자기 인식’으로 믿지 말라고 당부하는 캐럴 태브리스 「성격을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초자연적 주제를 홍보하고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합리성을 쉽게 내던지는지 보여주는 제임스 랜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생각을 찍는 법」, ‘생명우선론자’ VS ‘선택우선론자’ 모두 틀린 주장을 하고 있고 ‘인격 우선’ 입장에서 “인간 유기체가 인격이 되는 시기는 태아가 의식 능력을 획득하는 수정 후 약 25주 째”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개리 위튼버거 「태아는 언제 인격을 가지는가」, “20세기의 유전학이 ‘유전체는 어떤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푸는 데 힘을 모았다면, 포스트게놈 시대의 유전학은 지난 세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전체(프로그램 코드)의 차이가 어떻게 표현형(프로그램 출력값)의 차이를 산출하는가’라는 문제까지 함께 풀어내야 하는 상황”임을 멘델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대한 「유전학이란 무엇인가-변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향하여」,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별’이라 설명하는 김상욱 「우주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을 나타내는 드레이크 방정식의 계수를 설명하는 이명현 「행성을 거느린 별을 찾아서」, “역사는 음모보다는 혼돈의 산물”(미국 국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이란 말처럼 끊이지 않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음모론을 다룬 제임스 램버트 「음모론의 해악」(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가 워런 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총체적으로 왜곡한 것을 예술적 허용으로 넘어가야 하는지도 고민해 볼 문제), “원시인 다이어트는 기대와 실패, 이상적인 건강의 추구,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 시간의 흐름을 피하고픈 욕망과 시간의 흐름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 사이의 변증법”을 보여주는 에이드리엔 로즈 존슨 「원시시대 조상들의 삶이 더 좋았다고? - 구석기 다이어트와 유토피아의 꿈」 등 하나하나 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의 행동은 ‘상황, 나이, 파트너나 동료, 성숙도, 직업의 요구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달라지고, 우리에게는 ‘휴리스틱[*], 경험 법칙[**],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 수학 능력, 과학적 방법’ 등  각종 사고 소프트웨어도 많다. 그러나 근거 없는 믿음은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스켑틱》 은 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이렇듯 경고한다.

 

 

 

 


 

 

[*] 휴리스틱: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일부만을 취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문제 처리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올바른 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 경험 법칙: 이론보다는 일상 경험에 근거하는 규칙들로 어느 정도 신뢰할만하지만, 엄밀하게 정확하거나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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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4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전도를 목적으로 세력 확장을 꾀할 때 정치가 되고, 폐해가 커진다 여겨집니다... 종교의 지향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galmA 2019-04-14 22:03   좋아요 2 | URL
네. 종교가 순기능을 할 때도 있지만 인간은 활용의 천재잖아요. 정치적 목적, 탐욕과 권력의 도구가 되는 폐해 너무 많아요. 그것 때문에 가족이 붕괴하고 상처받고 어이없이 죽는 일도 있으니.... 종교가 그런 빌미가 되는 일 너무 많습니다. 지나친 맹신으로 저도 멀어진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너무 이상해져서 가까이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제가 무신론자라고 노골적으로 저를 적대시하기에 뭐 저도 두 손 들었죠. 종교의 탈을 쓰고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에게 사기치는 뉴스들 매일같이 접하는데 울화가 치밀어서...휴. 종교에 매달릴 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꾸릴 내면의 힘을 길러야지. 하느님, 예수님은 날 버리지 않으신다 그런 식의 자기 최면으로 삶을 꾸리는 건 도피일 뿐입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하기엔 외부의 영향이 무척 많죠. 과학은 자유의지조차 환상이라고 하니 사면초가죠.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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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과 한계 극복을 스티븐 호킹(1942.1~2018.3) 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도 드물다. 그는 스물한 살 때 5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불편한 몸에 굴하지 않고 일흔여섯 살이 될 때까지 탐구에 매진했고,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물리학의 난제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는 ‘양자중력 법칙’의 단초를 제공했다. 놀라운 천재였지만 그는 우리가 과학자에게 흔히 가지는 차가운 이미지도 아니었다. 책 말미에 루시 호킹의 추모글에서 보듯 그는 가정적인 아버지였고 책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의 역할을 열심히 하려는 아버지였다. 몸이 점점 마비되는 병을 앓았지만 그 몸속에서도 우주를 인간의 미래를 내다보았던 그는 인간 슈퍼맨이었다. 죽음의 위협을 매 순간 느꼈기에 그는 시간의 탄생과 죽음을 더 알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이 책을 쓰며 평생 연구한 과학의 질문이기도 한 빅 퀘스천에 대한 대답을 모았다.

 

 

 

 

1.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인식의 원인에 대해 호킹은 “종교가 위안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과학을 믿지도 이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호킹과 아인슈타인의 ‘신(God)’은 ‘비인격적 의미의 자연법칙’이다. 우주를 이해하기 어려워 우리는 신(설계자)을 만들어 쉽게 해결 보려는 것은 아닐까.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신의 존재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가 보여준다. 질량을 에너지로 그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으므로 에너지와 공간과 있으면 우주는 탄생한다. 그것은 빅뱅이라는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인과적 사고로 빅뱅의 원인을 또 따질 텐데,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으로 보면 “자연의 법칙은 우주가 양성자처럼 외부 도움 없이 혼자 튀어나와 존재할 수 있고, 에너지 측면에서도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빅뱅의 원인 그 자체도 없을 수 있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신이 우주를 만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지구의 가장자리로 가는 방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호킹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주가 영원하다고,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가정한 게 오류라고 지적한다.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그것을 깼다. “이 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도, 사건의 고정된 배경도 아니다. 공간과 시간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서 형태를 가지게 된 역동적인 양이다. 시간과 공간은 오직 우주 안에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우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왔다거나, 항상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 정상우주론(1948, 헤르만 본디 & 토머스 골드 & 프레드 호일)을 제시한 이론가들처럼 우주에 시작이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우주의 기원은 과학의 영역이 아닌 형이상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속한 문제하고 주장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다. 호킹은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며 무너지지 않는 과학 법칙을 찾고,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불확정성 원리를 포함해 이해하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파인먼의 다중 역사 개념을 결합시켜 완벽한 통일 이론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추가적으로도 우주의 경계면, 즉 공간과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는 경계조건의 이해도 요구된다. 

우주의 미래나 다양한 우주의 가능성은 우주 안의 물질의 양에 좌우된다. 물질이 특정한 임계량보다 많으면, 은하들 사이의 중력이 잡아당기면서 팽창을 늦출 것이고 그 결과 한 군데로 모이는 빅 크런치(Big Crunch)가 일어날 것이고, 우주 밀도가 임계치보다 작으면 중력이 약해져 우주가 서로 멀리 떨어져 날아가게 되고 우주는 점점 더 텅 비어가고 점점 더 차가워지는 빅뱅(Big Bang)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호두껍질 안에 묶여 있으면서도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자처”하는 햄릿처럼 살고 있다.

 

 

 

3. 우주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일반적으로 ‘생명’은 “탄소 원자들의 사슬 기반에 질소나 인 같은 몇몇 다른 원자가 붙어 있는 형태이다.” 생물은 생명을 유지하고 개체를 복제하도록 개체에게 지시하는 명령들(유전자)과 그 명령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신진대사)로 존재한다. 기계의 도움을 많이 많았던 영향인지 호킹은 전자 기반의 생명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도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진화의 필연적 결말이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능은 수많은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일 뿐이고 지능이 오래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조차도 불분명하다. 지구 위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더라도 박테리아와 단세포 유기체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걸 상기하라. 호킹은 여러 가능성 중 “저 바깥에 다른 형태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간과”했다는 데 무게를 둔다.

 

 

 

4.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라플라스(1749~1827)가 제안한 고전적 견해에서는 어느 시점의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입자의 미래의 행동이 완벽하게 결정되었다. 이 견해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둘 다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세상에 나오면서 수정되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동함수만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절반밖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된다. 위치와 속도의 조합의 형태로 예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하여 관측할 수 없는 공간의 영역(블랙홀)이 존재한다. 내부의 입자 관측, 입자의 위치와 속도도 전혀 측정하지 못하는 블랙홀을 고려하면 어쩌면 이 제한된 예측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도 중력이 붕괴되어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블랙홀에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현실이 블랙홀같이 느껴지는 게 이 설명을 들으니 더 이해되는 듯도-_-;

 

 

 

5. 블랙홀 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붕괴된 별의 잔여물로 불리던 ‘얼어붙은 별(frozen star)’은 존 미첼에 의해 지금의 블랙홀의 과학적 특성으로 1783년 처음 논의되었다. 존 미첼은 dark star라고 불렀다.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이름은 1967년 존 휠러에 의해 명명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안에 무엇을 던져 넣든, 또는 블랙홀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든, 블랙홀은 항상 똑같아 보인다. 존 휠러는 이 원리를 ‘블랙홀에는 머리카락이 없다(A black hole has no hair)’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중력은 알려진 자연의 힘들(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중 가장 약한 힘이지만 다른 힘들에 비해 결정적인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력은 먼 거리에서도 작용하고 항상 당기는 힘만 있다.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서 크기가 큰 별의 입자들 사이의 중력이 다른 힘들 모두를 압도하여 붕괴로 이어지고 그렇게 블랙홀이 탄생한다. 아인슈타인은 1939년 논문에서 물질이 특정 크기 이하로 수축될 수 없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서 별들이 붕괴될 수 없다고 했지만 미국의 과학자 존 휠러는 달랐다. 1950~1960년대의 여러 연구에서 별이 수축하는 특이점(singularity) 즉 별의 중력 붕괴 현상을 파악할 실험과 관찰 결과를 얻게 되었다.

블랙홀의 경계(사건지평선)는 중력이 매우 강해서 빛조차도 안으로 끌어당긴다. 질량이 크고 무거운 블랙홀이 아니라면 사건지평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것은 찢겨 나간다. 그러나 블랙홀에서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을까. 제이콥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이 질량, 전기전하, 각운동량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유한한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호킹은 블랙홀이 보통의 뜨거운 물체처럼 입자와 복사를 만들고 방출한다는 걸 계산했다. 호킹 온도, 호킹 복사 같은 용어도 여기서 유래한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 상대성이론이 노벨상을 못 받은 것처럼 호킹의 이 이론도 안타깝게도 그가 살아 있을 때 실험이나 관찰로 증명되지 않아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못 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업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장의 내용은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2018, 동아시아)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6.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과거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는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고, 이 공리들의 결론 중 하나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간이 휘어지는 비유클리드 기학의 세계에서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꼭 180도이지 않다. 1854년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휘어진 공간을 설명하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휘어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설명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빛을 보았다. “실제로 태양 가까이 스쳐 오는 빛이나 전파가 아주 살짝 휘는 현상을 통해서 태양의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힘을 관찰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빛보다 빠르게 날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지만, 괴델이나 끈 이론가의 논리에서는 “시공간 곡선이 다시 자기에게 휘어져 들어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가정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결국 과거로 갈 수 있도록 시공간을 휘어지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구현되었듯이 공간 안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시공간을 물질이 휘어지게 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휘게 하여 작은 관(웜홀)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넘쳐나지 않는 이 현실을 보자면 시간 여행은 오로지 미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을 죽이는 패러독스를 해결할 두 가지가 있다. 결정론적인 ‘일관된 역사 접근법’으로 보면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영화 <콘택트>가 이해된다. 리처드 파인만 ‘역사 총합’ 개면에서 나온 ‘대안 역사 접근법’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지지한 가설이고 <백 투 더 퓨처> 영화 제작자가 가진 생각이었다. 우주는 가능한 모든 역사를 전부 가지고 있으며, 역사들은 각자의 확률로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호킹은 물리학 법칙은 거대 규모의 시간 여행을 가로막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일관된 역사 접근법’을 지지하는 ‘연대기 보호 가설’을 제시한다. M 이론에 아직 희망이 있으니 시간 여행이 좌절되었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7 & 8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 우리는 우주를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에서는 떠날 수 있는 신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신세계가 없다. 우리 인근에 유토피아는 없다. 우리가 가진 공간을 다 썼고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다른 세상뿐이다.” 지금과 같이 지구 환경오염에 무관심하다면 온실 효과와 지국 온난화로 지구는 곧 황산 비가 내리는 섭씨 250도의 금성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1997년 국제 협약인 교토의정서 이상의 행동을 전 세계가 나서야 한다. 핵폭탄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평화 같은 건 환경에서는 결코 바랄 수 없다. 호킹은 앞으로 1,000년 안에 핵 대치나 환경 재난으로 지구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을 것이라 예상한다.

내부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른 우주 탐험을 감행해야 한다. “우리는 소행성 충돌에 대해서 전혀 방어할 방법이 없다. 소행성이 지구와 마지막으로 충돌한 때가 약 6,600만 년 전이었고, 그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했다고 여겨진다. 소행성 충돌은 또 일어날 수 있다. 지금 이 이야기는 과학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와 확률의 법칙이 보증하는 내용이다.” 우주 식민지 정복이라는 둥 빈정거림을 보기도 하는데, 자신이 음모론에 심취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보길 바라고 자기 외의 미래를 생각할 줄 안다면 그런 말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9. 인공지능은 우리를 능가할 것인가?

과학자답게 호킹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우려보다 제어 조건 설정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눈에 띈다. 인간의 지능이 진화를 통해 발전된 만큼 인공지능도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계속 개선할 여건이 된다면 이미 몇몇 부분에서도 그렇듯 인간을 능가하리란 건 명약관화하다. 우려스러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컴퓨터가 우리와 일치하는 목표를 가지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을 보면 일명 트롤리 문제를 자율 주행 자동차에 입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윤리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조화, 모델화하여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더 치밀해져야 한다.

“AI의 단기적 영향력은 누가 통제권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는 반면, 장기적 영향력은 그것이 애초에 통제될 수 있기는 한 것인지에 달려 있다.”

“초고도 지능을 가진 AI의 출현은 인류에게 일어난 사건들 중 최고의 또는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다. AI의 진짜 위험성은 적개심이 아니라 일처리 능력이다. 초고도 지능의 AI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극단적으로 능숙할 텐데, 만일 AI의 목표와 인간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10.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이 장은 앞서 나왔던 내용들의 종합이다. 아인슈타인처럼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용기를 발휘할 것,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대안 행성을 찾아 우주 탐사를 열심히 할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 이 세 가지가 주요 권유 사항이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얼굴 근육 몇 개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매일 아침 일하러 나갔다는 스티븐 호킹. 작은 일로도 일상이 크게 흔들리는 내게 호킹은 뛰어난 천재성보다 인간 의지의 힘을 더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호킹은 수학을 우주 자체의 청사진으로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준 선생님이 중요한 스파크였다고 했는데, 공부가 힘들 때 호킹의 책을 읽으면 정말 생각의 스파크가 일어난다. 호킹은 누구에게나 빅 퀘스천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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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0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니,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전자력으로 움직이는 작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치 사람이 산소를 통해 지구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듯이,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AgalmA 2019-04-14 16:08   좋아요 0 | URL
진화적으로 생명체라고 하면 자기복제로 자기 자손을 남겨야 하는 거잖아요. 컴퓨터가 자가 수정으로 복제하는 단계는 아직 아닌 걸로... 호킹도 뇌는 컴퓨터와 다르지 않다 말하는 사람이니 너무 급진적이신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논의를 누가 해주면 책을 보고 또 배우게 되겠죠^^;;

2019-04-1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4-1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1번 글을 읽고 든 생각. - 저는 고전을 읽다가 신에 대해 쓴 글을 읽게 되면 신뢰가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파스칼의 <팡세>를 무척 좋아하지만 신에 대해 쓴 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호킹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AgalmA 2019-04-14 16:1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신‘ 얘기 나오면 호감이 급 떨어져요. 자연법칙으로 신을 말하는 것까지는 참겠는데 인격신에 처벌하는 신까지 운운하면 절레절레입니다... 과학책 읽다보니 더 그렇게 됐고요.

호킹,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b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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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많은 생활의 편리를 매일 누리면서도 과학을 어려워하는 것을 넘어 적대시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제껏 알던 것들을 부수는 과학의 혁신성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폐해를 거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운용하는 방식의 문제다. 과학은 인간에게서 나왔고 인간을 위한 삶의 방법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故 칼 세이건(1934~1996)의 뜻은 마이클 셔머에게도 이어졌다.

 

“10년 전 칼 세이건의 강의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은, 지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방황에 빠져 있던 내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회의주의 학회, 〈스켑틱〉,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결국 칼 세이건이 불어넣어 준 영감 덕분이며, 회의주의와 과학의 가능성들에 내가 온 마음을 쏟게 된 것도 그이 덕분이다.”

 

저 헌사로 시작되는 이 책은 독자를 비장하게도 뭉클하게도 만든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회의주의는 입장이 아니라, 주장들에 접근하는 방법”이었고, “과학 또한 주제가 아니라 방법”이다. 1997년 나온 이 책은 셔머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각종 지식과 주장의 타당성을 과학적 회의주의로 논파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그는 멀찍이서 논리로만 따지는 과학자가 아니다. 적극적인 취재, 활발한 강연과 저술, 대중 매체 활동으로 각종 사이비와 대결하는 것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이 책은, 서로 비슷한 믿음과 희망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을 다룰 것이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를 구분하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다룰 것이다. 비록 각 장이 독립적으로 읽힐 수는 있지만, 장이 이어지면서 심령술사의 능력과 초감각 지각, UFO와 외계인 납치, 유령과 흉가가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지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사회에 해를 가져다 줄 논쟁들?이것들이 꼭 사회의 주변부에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창조과학과 성서 축자주의,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표현의 자유, 인종과 아이큐, 정치적 급진주의와 극우익, 도덕적 공황 상태와 집단적 히스테리에 의해 촉발된 현대의 마녀 광풍, 이와 아울러 기억회복 운동, 악마 숭배의 의식적 폐해, 소통보조자에 의한 소통 문제를 다룰 것이다. 생각의 차이가 모든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인간은 주변의 사물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추구하고 찾아내는 능력을 진화시켰으며(이를테면 방울소리를 내는 뱀은 피해야 한다는 것), 최상의 연관성을 찾아낸 사람들이 가장 많은 자손을 남겼다. 그 후손이 바로 우리들이다. 문제는 인과적 사고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상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연관을 짓는다. 이런 착오의 결과는 두 가지이다. 잘못된 부정은 목숨을 해칠 수 있다(방울소리를 내는 뱀은 해가 없다). 반면 잘못된 긍정은 시간과 기력만을 허비하게 할 뿐이다(기우제를 지내면 가뭄이 물러갈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은 바로 잘못된 긍정이다. 출면시 환각이 유령이나 외계인이 되고, 빈집에 울리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정령과 폴터가이스트의 존재를 암시하고, 나무의 음영이 동정녀 마리아가 되고, 화성 표면의 산들이 아무렇게나 드리운 그림자가 외계인이 구축한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다.”

“믿음은 지각에 영향을 준다. 지층 속에 ‘빠진’ 화석이 있다는 것은 신에 의한 창조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고, 유대인을 말살하라는 히틀러의 문서화된 지령이 없다는 것은 그런 명령이 없었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유대인 말살이 없었다는 의미가 되며, 어쩌다가 아원자입자들의 구성과 천체 구조가 일치하면 지적 설계자가 우주를 설계했다는 증거로 둔갑하고, 애매한 느낌과 기억이 최면 요법이나 유도 상상 요법을 통해 되살아나면 아동기 때 성학대를 받았다는 아주 뚜렷한 기억으로 변모해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을 확증해 줄 아무런 보강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신화는 과학과는 전연 무관한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신화를 과학으로 바꾸거나, 과학을 신화로 바꾸는 것은 신화에 대한 모욕이며, 종교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에 대한 모욕이다. 창조론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신화가 가지는 의의, 의미, 숭고한 본성을 놓쳐 버렸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와 재창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망쳐 버렸다.”

 

 

복잡한 이 세계에서 우리는 가설→이론→사실 확인을 살피는 과학적 방법으로 독단을 피해야 한다. “개인들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자기네 생각들의 토대를 다질수록(우리 모두는 반증이 아니라 확증의 증거를 찾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음을 기억하라), 각자가 가진 이념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존의 것을 보강해 주지 못하는 새로운 생각들에 저항하는 ‘면역성’을 키우는 셈”인 ‘플랑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셔머는 ‘이상한 것을 믿게 만드는 스물다섯 가지 사고의 오류’를 자세히 소개하며 독단에 빠지지 않을 사고력을 키울 것을 당부한다. 그는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이 진보적이라고 말하면서도 과학적 방법을 써서 밝힌 지식이 절대적으로 확실한지는 알 수 없다고 인정한다.

 

“과학은 일련의 믿음들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박과 확증에 열려 있는 시험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탐구의 과정이다. 과학에서 지식은 유동적이고, 확실성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과학을 제약하는 것이며, 또한 과학이 가진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마녀 광풍이 1980년대 악마 숭배의 공포‘로 부활, 1960년대 미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아인 랜드(Ayn Rand(1905~1982)의 ‘객관주의’ 운동이 개인 숭배와 컬트 집단이 된 사례, 근절되지 않는 각종 사이비 종교, 홀로코스트 부정론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왜 반복될까? 수많은 계들이 닫힌 계를 형성해 정보 순환하는 되먹임 고리를 통해 자기 조직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각종 카르텔, 종북좌파 운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지식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거나 버리라고 요구하는 창조론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추론 방법도 비슷하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역사학자들의 학문에서 오류를 찾아낸 다음, 그들의 결론이 틀린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역사학자들은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처럼. 진화론 부정론자들(창조론자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다)은 과학에서 오류를 찾아낸 다음, 과학의 모든 것이 틀린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과학자들은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처럼.”

“순진해서 그랬든 의도적이었든 간에, 창조론자들은 이제까지 유기체 변화의 인과적 요인들을 두고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건전한 과학 논쟁을 오해해 왔다. 창조론자들은 과학자들이 벌이는 정상적인 생각의 교환과 과학이 가진 자기 교정의 본성을 마치 그 분야에서 내분이 일어나 곧 스스로 무너질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로 여긴 듯하다. 진화론자들이 수많은 주장을 하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모두가 한뜻으로 확신하는 한 가지가 바로 진화는 정말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쉬지 않고 논의하는 것은 정확히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다양한 인과 메커니즘들의 상대적 세기는 어느 정도인지 하는 문제들이다. 엘드리지와 굴드의 단속 평형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세밀하게 다듬고 개선시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뉴턴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단속 평형 이론 역시 다윈이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언제까지고 버리지 않는다. 그런 희망이 바로 종교, 신화, 미신, 뉴에이지 믿음의 원천이다.”

 

위 인용은 간단히 가져온 것일 뿐이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의 스물다섯 가지 반박은 책에서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 1920년대 시작되었던 스콥스 ‘원숭이 재판’을 시작으로 1987년 미연방 대법원까지 갔던 루이지애나 재판은 공립 교과서에 진화론을 금지하려는 창조론의 노골적인 움직임이었다. 셔머가 최근 낸 『천국의 발명』에서 “1990년대 말 이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중 72에서 83퍼센트 정도가 천국을” 믿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천국에 대한 믿음은 강력하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라는 이들도 3분의 1은 사후 세계를 믿는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비합리와 비이성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며 감히 말하지만 영원할 거 같다.

세계화로 인해 대륙 간 이동이 많은 만큼 민족주의, 인종 차별 문제도 해결 기미는 요원하다.

 

“곤충들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분법적인 변이는 예외에 속하며 연속적인 변이가 일반적이다.” 킨지의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행동의 경우에도, 우리는 “극단적으로 옳은 행동과 극단적으로 그른 행동 사이에서 무한히 다양한 형태의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채” 옳다 그르다를 판단한다. 정말 그렇다면, 생물의 진화처럼 문화의 진화에 대한 희망은 변이와 개인주의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개체 간의 이런 차이들은 유기적인 세계에서 자연이 진보, 진화를 이루는 데 질료로 삼는 것들이다. 사회 변화의 희망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자리하고 있다.”(크리스텐슨 1971)”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같은 딱지들은 우리가 여전히 인종과 문화를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계보를 얼마나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까?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놓였던 베링 육교를 건너기 전인 2만~3만 년 전으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사실상 아시아인이다. 그리고 아시아인은 수십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상 ‘아메리카 원주민’을 ‘아프리카?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이란 말로 대신해야 마땅하다. 만일 아프리카 기원설(인종의 단일 기원)이 맞다면, 현대의 모든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다. (카발리 스포르차는 최근 7만 년 전에 이 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설사 아프리카 기원설 대신 가지촛대설(인종의 다중 기원)이 맞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과科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모두 그냥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표시해야 할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독일인이셨고, 외할아버지는 그리스인이셨다. 다음번에 인종을 묻는 문항에 표시할 때 나는 ‘기타’에 표시를 하고, 내 인종 및 문화적 혈통에 대해서 진실을 적을 것이다.”

 

 

 

사람들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회의주의자들과 과학자들의 답변은 대략 이렇다. “교육을 받지 못함, 잘못된 교육을 받음, 비판적 사고가 부족함, 종교의 흥기, 종교의 쇠락, 전통 종교를 컬트가 대신함, 과학에 대한 두려움, 뉴에이지, 암흑시대의 재도래,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봄, 독서를 별로 하지 않음, 잘못된 책들을 읽음, 가정교육을 못 받음, 저질 교사들에게 교육받음, 그냥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 셔머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현상이 일종의 ‘문화’라고 평가하며 몇 가지 바탕을 짚는다.

 

①‘크레도 콘솔란스(내 마음을 달래 주기 때문에 믿는다)’게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의 사고는 감정과 이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명확하기보다 교란되기 쉽다.

②‘즉석 만족’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의 운세를 생각해보라!

③“‘단순성’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상살이를 단순하게 설명해 주면, 그 믿음에 대해서 아주 쉽게 즉석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착한 사람에게나 나쁜 사람에게나 사람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 같다. 게다가 과학적 설명은 십중팔구 복잡하고, 알아들으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운명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미신과 믿음은 삶의 복잡한 미로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단순한 길을 제공한다.”

④“‘도덕과 의미’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과 의미에 대한 과학 체계와 비종교적 체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보다 높은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뭔가? 윤리의 기초는 무엇인가?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대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좋은 물음들에 대해서 과학자들과 비종교적 인본주의자들은 훌륭한 대답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다가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무한하고, 보살핌이 없고, 무목적적인 우주를 제시하면서 오직 차갑고 잔인한 논리만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마술, 종교는 도덕과 의미에 대해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위안이 되는 규범을 제공한다. 한때 거듭난 기독교 신자였기에, 나는 과학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⑤“‘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 모든 이유를 한데 묶어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으로 삼았다.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언제나 더 나은 수준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종이라는 나의 확신을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들려 하거나, 오로지 불관용과 무지를 고집함으로써, 오로지 타인의 삶을 가벼이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다가올 미래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놓쳐 버린다는 것이다. 희망의 다른 원천도 있다. 원천이 다르더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서 무수히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역사의 진보가 계속 이어져 보다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보듬어 갈 것이라는 희망, 사랑과 공감과 아울러 이성과 과학도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우주를 탐사할 만큼 놀랍기도 하지만 이토록 암담한 딜레마도 가지고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로 생각의 노를 끝없이 젓는 길밖에 달리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이야기를 짓는 동물이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종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패턴들, 곧 신들과 하느님,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신비로운 힘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 우주 속 우리 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사람들이 줄기차게 마술적으로 사고하는 이유의 하나는, 현대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몇 백 년밖에 되지 않은 반면, 인류는 몇 십만 년 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믿음 엔진을 진화시켰던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1 자연선택 믿음 엔진은 생존에 유용한 메커니즘이다. 곧,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게 하고(여기서 1형 적중과 2형 적중이 생존에 도움을 준다),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을 마술적인 사고를 통해 덜게도 해 준다. 불확실한 환경에 처했을 때의 불안을 마술적 사고가 줄여 준다는 심리학적 증거도 있고, 기도, 명상, 숭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건강하게 한다는 의학적 증거도 있다. 또한 주술사, 샤먼, 이들을 휘하에 둔 왕이 더욱 큰 권력을 쥐고, 생식 활동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면서, 마술적 사고에 맞는 유전자를 널리 퍼뜨린다는 인류학적 증거도 있다.

2 스팬드럴 믿음 엔진에서 마술적 사고 부분은 스팬드럴spandrel이기도 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메커니즘이 진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부산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스팬드럴이다. 1979년에 발표한 영향력 있는 논문 「산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과 팡글로스적 패러다임: 적응주의자 프로그램에 대한 한 비판」(『왕립학회 의사록』, V. B205: 581쪽~598쪽)에서 굴드와 르원틴은 이렇게 설명한다. 건축에서 스팬드럴은 “두 개의 둥근 아치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할 때 형성되는 끝이 뾰족한 삼각 공간이다.” 중세 교회에서는 이 여분의 공간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안들로 채워 넣었는데, “그 공간이 모든 분석의 출발점인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주변 건축 구조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적합한 분석 경로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스팬드럴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잘못된 물음이다. “남자에게 젖꼭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올바로 물으려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여자에게 젖꼭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대답은, 여자가 아기에게 수유하기 위해선 젖꼭지가 필요하고,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구조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자연 입장에서는 바탕에 깔린 유전적 구조를 남녀가 다르게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남자가 불필요한 젖꼭지를 갖도록 구성하는 것이 단연 쉬웠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 엔진의 마술적 사고 요소는 스팬드럴이다. 우리는 인과적으로 사고해야 하기 때문에 마술적으로 사고한다. 우리에게는 1형 적중과 2형 적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1형 오류와 2형 오류를 범한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패턴 찾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술적 사고와 미신을 가진다. 둘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마술적 사고는 인과적 사고 메커니즘이 진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부산물이다.”

 

내가 이 리뷰에 인용을 가득 채운 뜻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자세와 지식으로 중무장한 책을 간파하고 찾아 읽으며 당신도 과학적 회의주의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믿는 건 쉽다. 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 따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을 때 많다. 그러나 삶 자체가 복잡하다. 오래전 파스칼은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지만 지성적이든 도덕적이든 모든 면에서 인간이 그 상태를 지속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 4월 21일이 과학의 날이라지요. 평소에도 과학책 많이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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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0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의 공헌은 우리를 막연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에 한계점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밝히겠지요. 다만, 과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대한 의심 또는 다른 한 편으로 ‘열린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ㅑ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AgalmA 2019-04-14 16:16   좋아요 0 | URL
과학의 방법론도 쓰자는 거지 과학을 추종하자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렇게 오해하는 선입견이 있는 거 같아요. 과학은 믿고 따르자는 학문이 아니잖아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더 반증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과학 아닙니까. 그나저나 저는 과학쟁이가 되고 싶어도 수학이 약해서 이번 생에서는 글렀어요ㅜㅜ
 
지식의 착각 -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 / 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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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착각’이란 책 제목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이해의 착각 속에 살면서 스스로 지식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ㅡ개인의 힘, 재능, 기술, 업적ㅡ에만 주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지능은 과대평가되었고, 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공유된다. 1960년대 인지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일종의 컴퓨터로 이해했는데, 1980년대에 인지학자 랜다우어는 컴퓨터의 메모리 크기를 측정하는 척도로 인간이 지닌 기억의 크기를 추정하고자 했다. 많은 실험 결과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인간이 70년 정도 살면서 같은 속도로 학습했을 때 보유하는 정보는 1기가 바이트’로 나왔다. 인간은 컴퓨터와 같은 지식 저장소가 아니라는 결과다. 또한 인간의 “지식은 대체로 수많은 연상, 그러니까 구체적인 이야기로 분해되지 않는 대상이나 사람 사이의 고차원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의 과정과 언어와 정서는 모두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도와주는 일상적인 추론과 관계가” 있는데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필요한 정보만 능숙하게 추려내고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과 추론은 불완전하며 한정된다. 인간은 지식 공동체로서 이 한계를 보완하며 진화했다. 인간의 ‘생각’은 머릿속, 외부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끌어다 쓰는 특징이 있고, 우리가 지식의 착각 속에 사는 이유는 머릿속 지식과 외부 지식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비행기를 이용할 줄 알지만 세부와 전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식 공동체에 의지해 우리는 더욱 무지와 곤란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 공동체조차 완벽하지 않다. 캐슬 브라보 핵실험 경우 수많은 사람이 협력한 복잡한 프로젝트였는데,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1000배에 달하는 폭발을 예상하지 못해 방사능 피폭 피해가 일어났고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70년이 지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911 테러 경우는 어떤가. 1993년 이미 한 번의 폭격으로 사상자가 난 사건이 있어서 미국 경찰 당국은 세계무역센터가 유력한 표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2001년 항공기가 미사일이 되어 돌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이런 무지의 재앙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알려지지 않은 무지를 예측할 수 없다.” 복잡성으로 가득한 카오스 체계에서 보면 초기의 작은 변화로도 최종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복잡성을 무시하고 잘 안다고 믿으며 아는 체하는 것은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ought)를 통해 세상의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추론하며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려 한다. 이렇듯 우리의 인지 작용은 삶을 위해 총동원되고 있다. 우리는 분자의 위치와 방향과 움직임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미세한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계와 운동계는 이보다 높은 차원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가령 식물과 동물(특히 다른 인간)과 인공물처럼 우리가 실제로 소통하는 물리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우리의 직관과 정념은 서로 협조하며 심사숙고해 결론을 완성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행위는 단순히 뇌의 작용이 아니라 몸과 뇌의 협동으로 이뤄진다. 서양 문화에서 손가락 열 개에서 착안해 십진수 숫자 체계에 의존했듯이 “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이나 도구와 결합한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는 정서 반응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의 말대로 인간의 생각은 얄팍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력하다.

 

우리에겐 천재나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보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문지식이란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의미한다. 무지는 둘 다 없다는 뜻이다.” “지능이란 더 이상 개인이 문제를 추론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이 집단의 추론과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제는 뛰어난 기억력과 신속한 처리 능력과 같은 개인의 정보 처리 능력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보고 타인의 정서 반응을 이해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저자들은 지능을 지식 공동체 개념으로 볼 때 이 사회와 집단의 문제를 더 잘 조율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집단의 효과적 수행으로 개별 구성원들이 더 나은 혜택을 누리는 이런 전망은, 노동의 분업으로 더 나은 세계가 열릴 것이라 진단한 마르크스의 비전의 다른 해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위대한 일도 한 개인의 능력과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축적된 지식과 시스템을 이용하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건 집단 공동체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미에 개인들이 바르게 설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식은 상호 의존적이고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
“컴퓨터 과학은 항상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인지과학자들은 신경과학에서 개발된 방법을 사용한다. 물리학은 뇌 기능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기계에 기여하고 학습과 정보의 흐름에 관한 복잡한 수학 모형도 제공했다. 이 책은 인류학과 문화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개념을 인지심리학자들이 융합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책이 많은 연구의 방향을 바꿔주지 바란다. 이 책에서 논의한 개념을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읽고 융합해주기 바란다.”
 

 

나는 많은 독자들도 융합하며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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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말 -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한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칼 세이건 지음, 김명남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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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위어 『마션』에 이어 데미언 샤젤 <퍼스트 맨> 재관람을 앞두고 예비 독서 2
<퍼스트 맨> 개봉관이 점점 줄고 있다;; 우리 동네 상영관은 조조 아니면 한밤에 상영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ㅜㅜ; 이런 작품이 푸대접을 받다니!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아는 방법"이며 "우리는 모두 별 물질로 이뤄진 존재들"이란 명언을 남긴 칼 세이건. 우리 몸의 무거운 원자인 탄소와 산소 원자는 폭발하는 별의 내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기에 그 말은 단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한 23년간 인터뷰를 모았는데, 『코스모스』에서는 잘 알 수 없는 그를 볼 수 있다. 그 시대 속 경향과 문제 속에서 그의 치열하고 다양한 활동을 생생히 전달한다.

달은 정복되었고 당시 우주에서 초 관심 행성이었던 화성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소설 『콘택트』를 쓸 정도로 우주에 지구인 외 지적 생명체가 있으리라 확신하던 칼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지금은 화성 정착 프로젝트 "Mars one"까지 추진하고 있으니 지구인의 화성 관심은 여전하다. 앤디 위어 『마션』은 그 전초전의 그림을 그려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진화 생물학까지 공부한 건 외계 생명에 대한 확신을 점검하기 위한 작업이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생명」 항목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그의 그런 지대한 관심 연유에 대해 질문까지 받을 정도였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살아 있는 걸 좋아하고, 가령 몰리브데넘 원자와 공명하기보다는 뭔가 살아 있는 것과 감정적으로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왜 다른 동물에게 흥미를 느낄까요? 왜 아르마딜로의 생활사에 흥미를 느낄까요? 왜 남극까지 가서 황제펭귄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볼까요? 그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에 근본적으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ㅡ 「살아 있는 것과의 공명」(1976년 인터뷰, 1979년『화성의 생명을 찾아서 The Search for Life on Mars』(헨리 홀트 앤드 컴퍼니)에 수록)■

그의 엉뚱한 상상력과 폭넓은 식견, 유명세 때문에 학계에서는 폄하와 질투를 받았지만 칼은 사실 철저한 과학적 회의주의자였다. 신의 존재와 부재 둘 다 의혹과 불확실성이 가득하기 때문에 "둘 다 자신만만한 양극단"이라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정도였다. 종교에 대해서도 종교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문제시했다.


"회의적이고, 의문하고, 권위자의 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과학의 태도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요구하는 정신적 태도와 거의 같습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서로 공명하는 가치와 접근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 우리가 어느 한쪽 없이 다른 한쪽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ㅡ「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1996년 5월 3일 라디오 프로그램 <토크 오브 더 네이션> 녹취에서)■

그는 과학 문해력이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만 유용한 게 아니라 열린 사회에서 꼭 필요한 비판적 사고 기술을 함양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일상과 동떨어진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된다.


"과학이 늘 철저히 연역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최첨단은 늘 무모한 직감을 좇고 단서를 추적하는 방식의 활동입니다. 과학이 예술과 다른 점은 현실을 다른 형태로 직면한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학 이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별하게 해주는 시험 방법이 있죠. 그것은 곧 해당 이론이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느냐 마느냐 하는 잣대입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연구 동기가 되어주는 내면의 열정은 아주 예술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질서와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탐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ㅡ「아주 미미한 지구」(1973년 6월 7일 자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우주적으로 보는 관점이라 지구에 대한 그의 걱정도 국지적이지 않다. 『창백한 푸른 점』이 지구적 윤리와 도덕적 전망을  다뤘다면, 마지막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사이비 과학이 판치는 세계에 과학적 이성을 촉구하는 책이었다.
그는 이 세계가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 사회가 되기를 꿈꾸며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평생 노력했다. <코스모스> tv 시리즈 출연과 책 출판도 그런 노력이었다. 깊이보다 폭넓은 대중화를 선택할 때 돌아올 손해를 알면서도 그는 그러했다.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 주력했고, 호감 가는 외모와 말솜씨와 함께 이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아래와 같이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위트 있게 비꼬며 사실에 초점을 돌리는 언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좀 다른 종류의 편집증적 몽상에 대해서라면─즉, 외계인이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발견하고는 우리가 맛있기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우리를 잡아먹으러 찾아올 거라는 몽상은─실현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송 비용이 너무 비쌀 테니까요. 정말로 인간의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이 그들에게 유달리 맛이 좋게 느껴진다면, 그들은 인간 한 명만 자기네 고향으로 데려가서 그 단백질을 합성한 뒤에 인공적으로 대량생산을 하면 됩니다. 다른 행성의 미식가들은 그 방식으로 자기네 행성에서 생산한 물질을 먹으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아뇨, 전 그런 생각은 충분히 세심하게 끝까지 따져보지 않은 결과라고 봅니다. 전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위협을 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할지 모르는 위협도 별들 사이의 방대한 거리 때문에 제약된 상태라고 봅니다. 게다가 인류는 아무리 그래도 점차 나아지고 있잖아요."
ㅡ 「아주 미미한 지구」(1973년 6월 7일 자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멋질 겁니다……. 설령 그들이 땅딸막하고, 뚱하고, 부루퉁하고, 섹스에 집착하는 존재일지라도요. 설령 그럴지라도 그들이 발전된 문명의 전령으로서 이곳을 찾아왔다면 아무쪼록 꼭 그들을 발견해야겠죠. 하지만 문제는 증거가 부실하다는 겁니다. 숱한 경험담 중에서, 우주선 선장의 항해일지 한 쪽을 찢어 왔다거나 지구에 없는 동위원소 조성의 기이한 합금을 살짝 긁어서 가지고 왔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납치 이야기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상황은 외계인이 작은 감시 기기를 자기 콧구멍 속에 심었다고 말하는 경우인데요, 잘된 일이죠! 그 기기를 하나 구하면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요. 그런데 납치 애호가들이 하는 얘기란 게, 그 이식물이 톡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내던져버린다는 겁니다. 납치된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들 호기심이 없는 걸까요. 그 물건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줄 결정적인 증거란 사실도 깨닫지 못하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이 외계인의 정자로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수 천자 검사를 해보면 안 될까요? 초음파검사는? 아기가 태어나거나 유산된 경우는 어떨까요? 그런 경우는 어떻게 됐다고 생각해야 좋을까요? 산과 인턴이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외계인인 아기가 태어..."
ㅡ「과학이 세상에 착륙하다」 (<헤미스피어Hemispheres> 유나이티드항공의 기내지, 1994년 10월 호 인터뷰에서)■

우주 탐사가 현실을 외면한 예산 낭비라는 비난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논했다. 우주 탐사 예산은 국방비보다 투자가 적었다. 우주 탐사가 냉전 체제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된 건 맞지만, 인류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모색에서는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칼의 의견처럼 전 세계가 공조해 이 프로젝트를 활성화한다면 예산이 그리 문제시될까. 여전히 이 문제는 국가적 대항과 경쟁으로 남아 있다.

(인터뷰어 플래토)
"NASA의 우주 예산이 국방 예산만큼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5퍼센트밖에 안 되죠."
(세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만일 수많은 시급한 사회문제, 환경문제, 그 밖의 문제들을 처리할 돈을 어디에서 구할지가 걱정이라면 냉전이 끝난 지금도─간접비를 포함하여─연간 30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국방부야말로 꼼꼼히 살펴보기에 가장 알맞은 지점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폴로 프로그램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1961년에 그 역사적 연설을 하면서 아직 설계되지도 않은 추진 로켓,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합금, 아직 구상되지도 않은 랑데부와 도킹 기술을 써서 아직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달에 가겠다고 선언했고, 더구나 그걸 1960년대 말까지 해내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선언 시점에는 미국이 미처 지구궤도에도 못 올라간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일정은 정치적으로 도달 가능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정말 그 일정대로 해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기술적·인간적 성취였습니다."
"로봇 우주탐사를 열렬히 지지하고, 지난 35년 동안 로봇 탐사에 관여해왔습니다. 우리가 과학을 하고 싶다면 그게 최선입니다. 그편이 더 싸고, 인간의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더 위험한 곳에도 갈 수 있고, 기타 등등 장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처럼, 현실에서 유인 우주 비행을 지지하는 정당한 근거는 그보다 훨씬 더 폭넓은 정치적·역사적 의제여야만 할 겁니다. 그리고 전 그런 근거가 세 가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감정적인 것인데─많은 사람이 이 감정을 느끼지만 느끼지 않는 사람도 많이 압니다─바로 우리가 방랑자에서, 수렵 채집인에서 유래했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지구에서 거주한 기간의 99.9퍼센트 동안 고정된 주거지가 없는 상태로 살았습니다. 아주 오래 그렇게 지내다가 최근에야 마을과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구에 대한 탐험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일시적으로 정주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른 탐험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상현실이 있으니까요. 몇 명만 탐험하더라도 그 경험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아이가 굶주리는 형편이라면 이 논증이 그다지 호소력 있게 와 닿지 않겠지요."
ㅡ「콜라 전쟁이 아니다」 (1994년 12월 16일  방송된 <토크 오브 더 네이션 Talk of the Nation>을 녹취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학자들에게 아폴로 프로그램에 270억 달러나 썼다며 꾸짖습니다. ‘대체 얼마나 더 바라는 거야?’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쓴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정치적인 이유에서 쓰인 돈이었습니다.” 세이건은 이렇게 단언하고, 이어서 설명한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피그만 침공 사건 1961년 4월 16일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정권이 사회주의국가 선언을 하자 미국 CIA가 이를 교란하려고 쿠바 망명자들로 침공대를 조직, 익일 쿠바에 상륙시킨 사건과 유리 가가린의 지구궤도 비행 성공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목표는 1960년대 말까지 달의 기원을 밝히겠다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해냈죠.”
ㅡ 「외계 생명을 소망하다」(<사이언스다이제스트Science Digest> 1979년 6월 호 인터뷰에서)


"우주 유인 탐사가 중단된 이유는 용기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재정적, 정치적, 심지어 천체물리학적 현실도 후퇴를 거들었다.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은 냉전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한 오늘날에는 화성이나 다른 먼 세상으로 가는 데 1000억 달러를 쓰는 걸 정당화할 단기적인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가 없다."
ㅡ「또 다른 행성에서」(1996년 5월 30일 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골수형성 이상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그가 한 사람의 지구인으로서 지구와 우주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사랑했는지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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