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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이란 무엇인가 컨템포러리 총서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서용순 외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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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종합적 정리는 연휴 끝나고 올려야 될 것 같다. 

우리 언어 속 잠식들에 대해 얼마나 치열한 책인가.

언어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구별짓기에 탐닉해 있는지,

'페미니즘''호모 새끼'는 언어를 통할 때 얼마나 가까운지.

어제 김태훈 씨 페미니즘 논란 글에 나는 생각을 좀 더 차분히 정리하고 말하자, 말하자 하면서도 그만 말을 뱉고 말았으니...

내가 "쓰레기"란 단어를 내뱉을 줄이야. 그렇다. 나는 그랬다. 돌이킬 수 없다.

 

 

 

 

 

 

 

 

[김태훈 론 : 나쁜 여자 http://blog.aladin.co.kr/749915104/7384979] (곰곰 생각하는 발님) 글에 대한 내 댓글

 

 

Agalma 2015-02-17

 

 김태훈 씨의 칼럼은 제겐 정말 쓰레기로 보입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그 말을 하게 된 전반을 더 살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뉴스에 단골 원인으로 자주 제시되던 왕따, 가정불화/간섭 등등 대신 요즘은 이런 극단적 사례는 일베만 갖다 붙이면 되니 일베가 무슨 이 분야 KS 마크 스티커 같습니다 그려. sns나 커뮤니티의 소통 방식을 탓할 생각까진 못했나 봐요? 이미 있는데 어쩌겠나면 시스템 운운은 참 웃깁니다? 1차적으로 인간적, 2차적으로 반성적 접근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칼럼에선 전혀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고 보입니다.
자신은 쏙 빠지고, 칼럼비 받는 딱 그만큼의 거리감과 수준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페미니즘이랑 물티슈랑 동급으로 놓으면서 혹 자신은 객관적이라거나 비유 잘한다거나 생각했을까 봐 걱정입니다. 좌파/우파 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정작은 싸움붙이는 꼴. 곰곰발님이 정말 제대로 보신 듯.
68혁명이니 배트맨, 설국 열차니 그럴싸한 거 끌어다 붙인 것에도 실소를 보냅니다. 말미에 사랑과 대화 어쩌고 급마무리한 게 제겐 사랑과 전쟁으로 보이는 이 사태는 어쩔?

허울좋은 남녀평등 아무리 외쳐본들 며느리 입장과 사위 입장이 한국에서 얼마나 세월이 바뀌어야 평등해질지 저 죽기 전엔 안 보일 거 같은데 어쩌죠? 매일 일과 육아 둘 다에 치이는 기혼여성들, 명절 강력한 시랜드 체험하는 여성 앞에 군체험과 페미니즘 들먹이기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이 훨씬 좋은 조정 역할이 되었을걸요.
부모가 치매에 걸려 똥오줌 못 가려도 장남이, 며느리가 책임져야지 하는 게 한국 대부분의 가정 실상인 거 같은데, 과연 이게 시스템과 교육 문제일까요? 그걸 만든 게 누구인데요? 어디까지 원인을 파들어 갈까요? 아담 이브 창조설 바탕요? 유교 교육요? 자본주의요? 지배계층요? 정부의 복지정책 문제요? 돈 있으면 요양원에 보내 서로 깔끔할 텐데 하는 경제력의 문제일까요? 형제 중 누가 잘 모시면 효도했다 칭찬해주면 끝인 인성과 인내심 테스트 문제인가요?

자기가 얼마나 차별적이지 않은지, 남의 인식 탓하기 전에 자신의 인식 점검 좀 했으면 합니다. 시스템요? 교육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같이 만드는 겁니다. 가정교육이니 학교교육이니 인터넷이니 국가니 핑퐁 떠넘기기 하지 말고 각자 자기를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네, 저도 매일매일 반성합니다. 인간으로서!

 

 

 

이 책의 피에르 부르디외 「'인민적'이라고 말했나요?」는 어제 섣부른 내 감정적 발화를 뼈아프게 반성하게 했다.  얼마나 냉철하게 이 문제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지!

김태훈 씨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IS로 간 소년은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자신을 이해할 기회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것조차 나는 서투르고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논란을 나중에 다시 불거지게 하기 보다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모두에게 소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ㅡAgalma

 

 

p45 ~ 47

     모든 언어의 척도인 '표준' 언어를 '인민적' 언어와 대립시키려 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의 효과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언어적 생산의 모델로 되돌아가서 그 안에서 언어적 아비투스들의, 그리고 시장들의 여러 계급 사이에 가능한 다양한 조합으로부터 나오는 말투들의 극단적 다양성의 원리를 재발견해야 한다. … (중략) … 

     적법한 말하는 양식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포하는 복종과 온순함에 대한 가장 눈에 띄는 거부가 나타나는 곳은 바로 물론 남자,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민가정 출신 청소년과 같이 가장 젊고, 현재 특히 잠재적으로 경제적 · 사회적 질서에 가장 덜 통합된 사람들이다. 폭력과 오토바이, 술이나 마약같이 거의 자살 놀이 이 안에서 미래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미래와의 관계가 확인된다 를 숭배하는 것에서 완수되는 힘의 도덕은 아마도 하기 싫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자진해서 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현실주의와 견유주의를 드러내는 편견, 여성적이거나 여자 같은 감상에 동일시되는 감정과 감성에 대한 거부, 천민 귀족주의라는 절망적인 과감성으로 이어지는, 자신이나 타자에 대해 냉혹하게 구는 일종의 의무, 이것들은 도덕성과 감성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빈곤과 정글의 법칙, 차별과 폭력에 의해 지배되는 출구 없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한 방식이다(* 이민가정 출신인 '거친' 청소년들은 그들이 학교에 의해 그리고 또한 일상적 인종주의에 의해 상징되는 '프랑스' 사회에 대한 완전한 거부까지 밀고 나가는 것 안에서 아마도 한계를 표상한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헐벗은 가정 출신 청소년들의 봉기의 원리는 종종 학교교육에서의 어려움, 실망 또는 실패에서 발견된다). 위반을 의무로 구성하는 도덕은 특히 집단의 끊임없는 지원을 받는 청소년들에게 언어적이든 다른 것이든 공식적 규범들에 대한 과시된 저항 엄청난 긴장을 대가로만 항상적으로 지탱될 수 있는 을 강제한다. 기회에 희망을 맞추는 일을 전제하고 생산하는 인민적 현실주의처럼, 이 도덕은 방어와 생존의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 다른 사람들이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얻는 만족을 얻기 위해서 법을 위반해야 하는 사람들은 봉기의 대가를 너무나 잘 안다. 폴 윌리스Paul E. Willis가 잘 봤듯이, 허세(예를 들어 공권력과 특히 경찰에 대한)의 자세들과 태도들은 단지 성별뿐만 아니라 위계 관계를 건드리는 모든 것에 아주 부합하게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적 존중이 강제하는 과시적인 거칢은 연대에 대한, 게다가 애정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 이 노스탤지어는 무리 안의 고도로 검열되는 상호작용echange들에 의해 충족되는 동시에 억압되기 때문에 포기의 순간에 표현되거나 드러난다. 은어는, 그리고 여기에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계층'의 테두리를 넘어 은어가 유포되는 이유 중 하나인 상징적 강제의 효과를 가진 은어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자본을 가장 덜 가진 남자들이 거칢이라는 기호 아래 전적으로 위치한 그들의 사나이다운 정체성과 사회 체계에 대해 가진 시각 본질적으로 여성적(또는 여자 같은) '연약함''복종'에 맞서 조성된 의 모범적이고 말하자면 이상적인 표현 중 하나 엄밀히 정치적인 표현은 이것을 고려하고 나아가 이것과 함께 조합돼야 할 것이다 를 구성한다.  

 

"어린아이는 인민의 대변자이다. 아니, 그게 아니다. 어린아이는 변형되기 이전, 자신의 타고난 진실 안에서 저속함 없는 인민, 인민 그 자체이다." 미슐레의 이 말은 비웃음을 살 수 있지만, 우리가 인민적인 것(언어) 또는 포퓰리즘적인 것(담론)에 대해 말할 때, 거기에는 일종의 의심과 혐오가 있지 않은가?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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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2-1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은 에밀을 제대로 읽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남녀의 고생에서 앞전 세대는 여성, 그 이후에는 남성이 더 불쌍하게 여깁니다. 물론 제가 남성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힘든 사람이 더 불쌍한 것이라는 점이죠.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쌍한 남자가 불쌍하고, 불쌍한 여자가 불쌍합니다. 남녀로서 불쌍함을 여기는 것보다 인간 그 자체로 불쌍한 것을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참고로 예전에 섹스와 돈이란 서적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나, 불쌍한 남성이 여성에게 소외받은 이유는 남성중심의 미디어가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드라마에 남자들은 훈남에 재벌에 스포츠외제차를 모는데, 현실의 남자들에서 그럴 경우는 1%나 될까 싶군요.

AgalmA 2015-02-24 04:02   좋아요 0 | URL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만화애니비평님과 대화를 하게 되면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분이라 하심은 김태훈씨요? 저또한 에밀을 읽지 못한지라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뭐라고 말할 게 못되네요.
남녀에 고생에 대해서는...서로 의견이 다른 듯해서 조심스러운데요. 단순히 불쌍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참 어려운 점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혈연적으로, 종교적으로, 취향적으로 인간은 무수한 위치점을 가지고 있고 상대들 또한 무수한 가변점에 있으니 말입니다. 보편성을 논하기에는 파고들수록 난공불락의 지점을 만나게 된다고나 할까요.
살인자의 죄를 따지며 그의 불우한 과거를 참작할 때 유족은 과연 어느 정도 불쌍하다고 여기게 될까요. 그런 과거가 있어도 훌륭히 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잣대를 들이댄다면 제 3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같이 아이를 죽였을 때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죄를 더 묻고 형량이 더 높은 건 과연 타당한 걸까요. 모성은 왜 여성에게 당연해야 할까요. 인간이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공식적으로 많은 이들을 죽여왔나요.
또다른 경우, 전세계 여성 5명 중 1명은 강간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오는데, 남성 강간경험은 통계를 뽑아 비교하지 않았으니 그런 극단적 비교는 섣부르다고 해야 할까요.
여전히 노예가 있듯이 여전히 여성의 차별, 비하문제는 (더 내재화되어) 상존하지요. 여성 군인 성폭력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성호르몬 문제로 그렇게 상습적으로 일어나겠습니까...여전히 그 처벌에 있어 이성으로 다스리지 못한 걸 죄로 묻지 않고 호르몬 문제로 치부하잖습니까. 힘으로든 상황적으로든 더 취약한 게 여성입니다. 특성을 우열론으로 가른 게 누구인가요. 남자들도 당한다 식으로 본질을 흐리진 말았으면 합니다.
네, 인간사는 누구나 참 풀기 어려운 미로입니다....

말씀하신 남성중심의 미디어...문제 저도 공감합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단적 대결들의 난무...드라마와 오락거리를 만들기에 그만한 것도 없죠. 남자는 더더 잘나야 하고, 여성은 더더 신데렐라를 꿈꾸게 만드는... 재밌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더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 이또한 참 풀기 어려운 인간 내면의 끄트머리 아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탁발하며 집도 없이 떠도는 구도자가 인간의 삶이라 말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2-2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질은 흐트리는 것은 님입니다. 성범죄에서 여성이 당하는 입장이지만, 남성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저도 중학교 시절 당했습니다. 그것도 여자교사에게 말이죠. 아니 저말고 대부분 학생들이 당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지적당해 불려나와 바지에 손을 넣고 얼마나 여물였나? 라고 말하더군요. 이런 경우 성폭행 내지 성추행은 반드시 여자만 당하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 어릴 적엔 멋모르고 있으나 어른이 되고 나서 중학교시절일이 엄청난 범죄라는 점을 알았죠.

그러나 위의 일은 극히 일부적인 일이고, 님이 말하신 것처럼 대부분 여성들이 피해본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자만 피해본다는 것에 찬성못하고, 그동안 여자만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님은 생물학적인 성에 치중하고, 사회적인 요소에 대해 더 깊이 고려해주시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군대에서 성군기는 주로 장교 부사관 중에 높은 계급에 해당하는 자들이 저지르고, 일반사병은 거의 무관하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불쌍한 것에 대한 기준으로 본다면 남녀에 대한 관찰은 단순히 남녀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란 점에서 봐달라는 점입니다. 힘 없고 백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남자들도 불쌍하고 역시 힘 없고 백 없고 가진 게 없는 여자가 불쌍합니다.

성범죄의 경우 남성들이 잘못이 크나, 그것은 그 개인의 자질과 인성의 문제죠. 하지만 성범죄 당하는 수치가 높다면 남자의 그런 성향을 만드는 문화적 배경도 큰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시야 할 점은 님처럼 남녀문제에 성범죄에 대한 피해자로서 대변하면 남성은 군대를 들먹이겠죠. 저 남자아이는 군에 가지도 않았겠지만, 당하는 것 역시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훈련소 시절, 외조모가 별세하여 가족이 알려주어도 훈련중이라 연락받지 못했습니다. 자대근무 중에 같은 사무실 내에 있는 사병이 간밤에 간질로 사망했습니다. 년마다 죽는 군인은 엄청납니다. 누가 더 불쌍하냐 마냐에서 본질을 흐리지 말자 했으나, 본질은 이렇다는 겁니다.

누구의 입장도 있고, 타인의 상황은 항상 변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님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성적인 문제를 성범죄로 강조하기보단 사회적인 요건에 말하는 겁니다. 제가 언급한 섹스와 돈이나 미디어는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을 두고 만드는 겁니다. 님이 공감하신 신데렐라 신화에서 현대사회는 스펙타클의 사회 같이 미디어의 이미지가 인간을 지배합니다. 미디어에는 경제와 정치적 권력을 반영합니다.

제가 왜 남자가 요새 불쌍하다고 하는 이유는 생물학적인 요소에서 불평등은 여자가 큰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요소는 남자에게 오는 게 크다는 점입니다. 강간이 문화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일어나는 시점은 남자의 개인적인 자질과 조절이 크다는 점입니다. 요새 한국에 결혼비율이 줄고, 부양이 어려워 아이를 낳기 어렵다는 문제는 경제적 문제죠. 그런데 그런 경제적 문제에 대한 고통은 여자보단 남자가 더 심각한 것이고, 그 문제를 부추키는 것은 미디어죠.

단순히 성범죄를 두고 말하면 여자가 상당히 불리하고 피해보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글은 그것만이 아니란 점이고, 님도 어느정도 인지하겠지만, 좀 더 넓은 눈으로 봐달라는 점입니다. 제 덧글이 남녀우열론보단 사회경제론적으로 보는 게 더 맞지 않은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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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4 08:42   좋아요 0 | URL
만화애니비평님 우려한대로 오해하시고 말았군요. 한국에서 잦은 추행부터 성희롱,성범죄 비슷한 걸 안 당한 여성을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남자/여자 경험의 유무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더 잦고 더많은 피해를 보는 위계 관계와 상황을 같이 조망해보자는 겁니다. 님이 당하셨다는 성추행도 위계관계의 대표적 피해죠. 성문제가 사회문제화된 양상인거죠.
군부대나 공장지대 가 보십시오. 단란주점, 안마방, 모텔들 얼마나 많은 성관련 업소가 판을 치는지. 그러한 소비시장을 두고 경제주의와 여성 성노동자, 문화적 환경적 배경탓을 할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사려는 수요층이 막대하게 남자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호스트바 얘기 꺼내실 건가요. 그때 저는 여성 물성화를 만든 남성문화가 변용 수용된 탓이다 라고 답해야 하나요.
우리가 생물학적인 인간인 이상 성적 담론을 절대적으로든, 상대적으로든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여하튼 우리가 바라보는 성적 판단들이 사회적으로 분출되고 관습적 문화를 산출해내고 있는 실상을 저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평등하게 바라보자는 게 현실적으로 참 매우 어렵다는 현상을요.
만화애니비평님은 자꾸 미디어, 스펙타클, 자본주의를 앞에 거시고 말씀하시는데요. 이론뿐만 아니라 일상의 문제마저도 매우 남성시각으로 판단하시니 이럴 때 제가 참 벽을 느낍니다. 부양과 경제 문제에서 남자가 더 심각하다고 말씀하시는 님의 발언이 매우 남성시각 편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애석합니다.
일단 아이는 낳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온갖 보살핌을 받(아야만 한다)는 게 사회 매커니즘이죠. 하다못해 친정에 아이를 맡기는 것에도 눈치를 보며 애태우는 구구절절함이 회사 사정 못지 않단 말이죠. 제 사무실에도 이런 기혼여성이 있는데 두 아이를 챙기느라 회사일을 놓치는 게 한둘이 아니라...이해는 하면서도 왜 아이를 둔 여성을 기피하는지 실감안할 수는 없더라는...하지만 이해해야죠. 같은 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곤란에 대한 배려로서요. 한국여성들이 왜 아이를 안 낳겠습니까. 돈의 문제보다 이런 제반의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기피하는 겁니다. 자신의 커리어 단절 생각하면서도 아이 때문에 직장을 관두는 많은 여성들의 희생을 한국의 특정 남성층들은 얼마나 배려하나요. 그래서 얼마나 자신도 육아와 가사에 시간을 쏟나요. 네, 예전보다 노력하는 아빠들도 있죠. 하지만 아빠들은 못한다고 피하거나 애 좀 봤다고 유세라도 할 수 있지만 엄마의 역할은 그럴 수가 없다는 딜레마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산후우울증으로 목숨까지 끊거나 고부 갈등의 무수한 사례가 여성 개인의 탓만은 아니라는 거죠. 지금 이 발언도 여성 옹호 발언입니까.
게다가 한국의 여성들은 육아만 하는 게 아니라 반수 이상이 일도 하지요. 그뿐입니까. oecd가입국 중 가사일을 하는 한국남성의 비율은 최하위권이죠. 이런 얘기에 늘 회자되는 남자가 한국조직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다보니...또 그런 이야기 꺼내실 겁니까. 저는 앞서 여성 또한 육아와 일, 온갖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슈퍼우먼을 강요당한다 말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월급 수준이 처음부터 차별되는 건 또 어떻고요. 지금 저는 여성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객관화해서 살펴보고 서로의 인식과 사회를 고쳐나가자는 겁니다.
위의 제 발언은 언제나 도돌이표되는 상황이라는 거 누구나 다 알 겁니다.
정말 넓은 시각을 님께도 부탁드립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2-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는 기본적으로 님의 의견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부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제 시각이 협소한 것은 님의 의견처럼 상황적 요소이고(이런 부분 주변이나 뉴스에서 종종 봅니다), 제가 님에게 협소한 시각이란 점은 부조리는 남자와 여자도 받겠지만, 너무 여자중심이란 점입니다. 일단 결혼하여 아이출산 문제 심각하죠. 하지만 그 문제도 결혼해야 하는 조건이고, 제가 요새 남자가 불쌍한 점은 남자가 힘들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님이 결혼여부는 모르나 저는 아직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현실적으로 자신이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은 현실입니다. 만약 하더라도 고민입니다. 같이 일하다 만약 님의 상황에 걸리면요. 님의 시야가 협소하다는 점은 그런 상황을 모르거나 설사 몰라서 인지하더라도 그 고통을 여자만이라는 겁니다. 저는 대학에서 교양수업으로 여성학을 들었을 때 교수님이 하는 말씀이 여성학은 여성만 해방이 아니라 남성도 해방을 해야 진정한 여성학의 완료라고 했습니다. 제가 배운 내용에서 교수님(여자교수님입니다)의 가르침이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내지 스펙타클 미디어는 남성중심주의가 아니라 이것 역시 <섹스와 돈>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도서입니다. 여자 힘든 것은 알지만, 남자 힘든 것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여자는 이래야 해! 라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강요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 문화사회적인 시야를 부탁한 점입니다.

2.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사창이 아니라 유럽처럼 공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님 말씀대로 남성 중에 성욕구가 없는 남자는 거의 없고,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합니다. 전공이 환경이라 생물학과 연계되며,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동물이고, 수컷의 본능에서 리비도는 옳습니다. 차라리 기본적인 요소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남자들이 문제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근데 이런 문제를 밝혀가더라도 결국 착취와 억압이 있기 때문이고, 남자들이 그런 곳에 치중하는 이유 역시 인간이 기계화 내지 동물화되기 때문이죠. 님은 계속 여성만이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왜 당하는 것인지 그 근본맥락은 계속 빗나가고 있습니다.

3. 객관적으로 보고 고치는 것은 중요하나, 그 본질적 요소에서 저는 자본주의와 미디어(결국 이게 고착화하는 도구이니)에서 심각하게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습관법이란 게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와 요점에서 도돌이표가 되는 이유는 제가 말하듯이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이 당한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그 전 자보다 덜 부당한 일을 당하지만, 계속 아무 말 없이 있어야 하고, 말하는 순간 찍히는 남자사회, 그래서 저는 남자가 더 불쌍하다고 여긴겁니다. 님 글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공생이라기보단 피해(사실 현실이지만)만 나열한 것 같습니다. 위에 님이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세요. 너무 감정적입니다. 위 문제에 대해 제가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현실입니다. 하지만 위 덧글 같은 입장은 님이 계속 고수한다면 한국남자는 자신들이 거의 쓰레기나 다름 없이 취급당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듭니다.

AgalmA 2015-02-24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부정하고 계시다는 걸 모르시는 것 같아 제가 말하고 있는 겁니다. 네, 남자, 여자를 떠나 누구나 힘들죠. 그러나 그 해결에 있어선 누군가 인정해줘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 터놓고 의논하고 도우며 타계해 나가야 할 그런 문제일 겁니다. 남자 한 사람이 결혼을 못하고 어려운 처지인 만큼 여자 한 사람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님의 모든 글에서 자본주의와 스펙타클과 미디어가 나온다는 걸 한번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틀에서만 사고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십사 부탁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여교수님 해방 거론이 인간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점에서 공감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 1과 연계해 제게 근본 맥락을 빗나간다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님 또한 제게 갇힌 맥락으로 보이는 우려도 있습니다.
맑스의 ˝착취, 물신, 전유, 재생산˝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 외의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가치 생산이 언제나 착취 도출이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요즘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데가 있나를 전제로 풀어나간다면 해결모색은 더욱 난항이 될테지요.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맑스가 틀렸다는 논지가 아닙니다.
저는 남성/여성의 차별 자체를 논하자는 게 아니라 그 차별화를 양산하는 우리 인식의 적대성과 이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살펴보려는 게 초점입니다. 제가 선의는 없이 오로지 남성공격만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정녕?

3 부당한 일을 당하고 아무 말 없이 있어야 하고 말하는 순간 찍히는 게 여자/남자 사회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제 논지입니다. 누가 더 불쌍한 상황이 아니라고요. 선후와 좌우가 아니라는 점이고요.
저는 제 편향을 배제하고 최대한 있는 사실을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계속되는 지적으로 보아 이 부분은 서로 더 타협해 볼 여지가 없는 것 같네요.
제 글이 감정적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종종 있는 점을 예전에도 님에게 양해를 구했던 적 있습니다. 민감한 문제에 있어 더 냉철히 사태를 보려는 데서 발생하는 어조이자 제 인성 탓이니 그 부분에서 불쾌하셨다면 그건 사과드리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남성을 쓰레기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않았던 쓰레기 취급을 님 스스로가 하시는 겁니다. 지금...
제 자신에 대한 비판은 누구보다 가열차게 하고 있습니다. 이 개판 같은 사회와 남성/ 여성의 악다구니 씨름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즐겁자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지적질할 지식을 쌓으려고 이런 책들을 찾아 읽는 거겠습니까. 제 이런 모습과 글을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꺼려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누구를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건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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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John Lennon - Beautiful boy]

 

§

당신은 이 글을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린 거의 외로울 것이다.  

 

◆  북플과 리뷰를 '마니차'나 '안전망'으로 바라지만 사실은 '외로움'

    - 소비자로서가 아닌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이웃이 필요한 이유

 

p84~85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유명인과 동일시하려는 욕망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명명한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 개념을 도입해 보면 좀 더 복합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상호 수동성은 개인과 그 개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해 주는 대리인[대용물]proxy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령 세르비아에서는 상을 치르는 사람들이 대신 애도해 줄 여성들을 고용해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게 한다. 불교도에게는 자신을 대신해 기도해 주는 마니차praying mills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결코 보지 않을 영화를 녹화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녹화기가 그들을 대신해 영화를 봐주기 때문이다. ■

(* 마니차 : 라마 불교의 두루마리 경전을 넣어 둔 원통형 법구法具, 문맹이어서 경전을 읽을 수 없었던 티베트인들은 이것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p208   결론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우리가 선택을 할 때 흔히 조언을 구한다는 바로 그 사실은 개인이 공동체에서가상의 공동체든 현실의 공동체든안전망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선택은 아주 외로운 행동이 되었다. 과거에는 가족이나 다른 집단에 기댈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언을 구하고자 늘 새로운 방법을 강구한다. ■

 

 

◆ 선택의 독재성

 

p23   서론

 

선택은 압도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선택을 잘못했을 때 발생할 죄책감과 불안, 후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선택의 독재적 측면에 기여한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렇게 지적한다.

정치사상에서 독재tyranny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용례 가운데 하나는 주권의 동의어이다. 모든 문제가 공통의 주권적 원리나 이성에 회부될 때 그 원리 혹은 개인은 사회에서 독재자로 군림한다. …… 제도가 단일한 권위의 원천으로 군림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신념이 현실을 재단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Richard Sennett, The Fall of Public Man, 1986)

 

p26~27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만의 모습을 찾아라라는 명령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 불안하고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후기 산업자본주의가 선택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따르면, 문제는 자기 삶이 구성되는 방식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자명한 것, 주어진 것, 거의 자연적인 것으로 기능한다. 철학자들이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숨겨진 명령들, 존재의 방식들, 비밀스러운 요구 조건들을 이해하려면 자명한 것obviousness과 주어진 것given-ness의 베일을 벗겨 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복종하는, 기이하지만 아주 정연한 논리를 의식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사회 또는 현재의 상황에 반대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사람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믿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신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의 다수가 믿는 것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들은 타자의 믿음에 대한 믿음에서 번성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던 전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명백할 것이다.

 

 

 

선택의 불안

  p36   1장   선택은 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선택과 관련해 어떤 게 신경 쓰이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 이상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화 회사를 바꾼다.)

• 남들이 내 선택을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한다.
•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느낀다. (예컨대, 사람들은 정말로 전기 회사를 직접 선택하길 원하는 것일까? 이것이 개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인가? 하고 자문한다.)
• 실제로는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할 것이하는 점이 염려된다. (남들이 나를 대신해 이미 '선택'을 내리고 있고,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 "가만 있으라"는 오래된 뿌리

 

 p41   1장   선택은 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칼뱅주의적 노선을 취했던 기독교 자기 계발서들은 독자가 삶의 많은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단념하게 하도록 애썼다. , 천국에도 자리가 제한되어 있듯이 모두가 세속의 성공을 누리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있긴 하지만 사실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내부의 더 낮은 자아와 끊임없이 씨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p42

  그러나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경제활동에 관해 조언하는 많은 자기 계발서의 논조가 서서히 바뀌었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전리품을 차지한다는 관념이 용인된 것이다. 한 사람이 삶에서 성공하고자 할 때는 자기 내부의 자아와 태생적 환경들에 맞서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성공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을 앞지르는 일에도 주의를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다윈 이후의 사고방식, 즉 적자생존과 연관되었고, 삶은 가장 강한 자 내지 가장 교활한 자가 성공하는 일종의 전장으로 인식되었다. 20세기 들어 여성이 일터에 진입하게 되면서 자수성가형 인간[남성]에 관한 생각은 또다시 수정되었다.

(중략)…… 오늘날에는 자수성가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선진국의 젊은 남성 혹은 여성들이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사다리의 고정된 경로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심지어는 어느 정도 성공해 부를 획득하는 것조차 흔하고 당연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제는 자기 창조. 포스트모던한 쩐문직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창작 활동 혹은 도전적인 기업 경영, 즉 계속해서 개량하고, 개정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며, 성공은 그것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택에 대한 관념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 사람의 모든 것은 사회가 조장하는 행복과 자기 충족감에 다다르기 위해 조심스레 내려야 하는 결정의 문제가 되었다. ■

 

§§

몸이라도 건강하면 좀 더 의연할 수 있을 텐데, 병원이라도 가게 되면 우리는 당장 위태해진다.

 

◆ 수술대 앞의 의료소비자, 우리의 현재 - 내 몸은 어디까지 내 책임인가

 

 p87~88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현재 의료 서비스에서는 선택과 자기 지배라는 관념을 예찬한다. 의사는 더는 권위자를 자처하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권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저 환자에게 선택지들을 고지하고 환자가 결정하도록 하거나 동의(또는 거부)를 표하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사의 처방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고 훈련도 받지 못한 환자가,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에 대해 동의를 한다는 것[고지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은 요식적인 행위일 수 있으며, 상황이 잘못됐을 때 책임과 소송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심각한 질병이 생겼을 때 어떤 치료를 받고 싶은지 직접 선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선택의 자유가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호소력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누군가 전문 지식을 갖춘 권위자 가 대신 선택해 주길 바란다. 배리 슈워츠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건강한 집단에게, 만약 암 진단을 받을 경우 치료 방법을 직접 고르겠는가 라고 묻자 6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실제 암 환자 가운데 직접 선택하길 원한다고 답한 이들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p89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가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급격히 번성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의료 기관에서 받는 치료에 점점 더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이들 가운데 갈수록 더 비싸지는 민영 의료 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었다. 자기 치유 이데올로기는 건강에 대한 책임, 심지어는 병을 치료하는 힘까지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각종 산업들도 발전시킨다. 내면의 치유력과 조우하는 신기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소위 뉴에이지 의료 전문가health guru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분석해 들어갈수록 우리의 선택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주체적이지도 않다.

이론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도 늘 느끼고 있다.

"대충 네 알아서 줘" , "이거 어떤 거 같아?" , "그냥 이걸로 하자", "앗, 깜빡했네, 미안." , "어, 이거 집에 있었네", "나도 그거" 등등등...

◆ 대타자와 대주체

 

p104~106     2장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대타자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프랑스 정신분석가 샤를 멜망Charles Melman은 대타자에 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가 세계는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합리적 세계에 대한 믿음은 대타자에 대한 사고뿐만 아니라 세계가 예측불가능하며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거대한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상의 가능성을 박탈한다.

십여 년 전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알랭 밀레Jacque-Alain Miller와 에릭 로랑Eric Laurent은 더는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론하고 윤리 위원회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과학의 진보는 많은 해답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의문을 야기해 왔고, 우리는 이런 답을 제시하는 어떤 권위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임시 특별 기구들예를 들면 대타자의 비일관성을 다루도록 고안된 윤리 위원회들을 만들어 낸다. 물론 이런 기구들도 늘 비일관성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질서의 구조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다니-로베르 뒤푸르Danny-Robert Dufour는 이를 중요한 사안으로 보고 대타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추적했다. 문화들은 저마다 언제나 특수한 자기 기원의 흔적들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주체들을 형성한다는 프로이트의 가정에서 출발한 뒤푸르는 이것이 사람들이 대타자를 그리고, 노래하고, 형체와 목소리를 부여하고, 무대에 올리고, 표상하는(심지어는 표상할 수 없는 것에 eogoj도 초월적인 표상을 부여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대타자는 우리를 위해 우리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을 유지해 주며, 따라서 우리가 형성되는 토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늘 대타자의 역사, 더 정확히 말해 대타자의 이미지들인 것이다. 뒤푸르는 더 나아가 주체는 늘 대타자에 종속된 주체이며, 대타자는 과거에 일종의 대주체big Subject의 형태로 신이나 왕에서부터 자연원리와 인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 왔다고 지적한다. 서구 역사가 전개되어 오면서 개별 주체와 이 대주체의 차이는 작아졌다. 뒤푸르는 계몽주의 시대 초반에 개인이 자신의 준거를 바로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다고 본다. 바로 이때부터 주체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더는 외부의 존재Being , 나라, 혈통 를 참조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이 자기 고유의 기원이 되었다. 근대성과 더불어 다양한 대주체들이 출현했다. 이는 교회 권력의 쇠퇴와 엄청난 과학적 진보와 관련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인간 주체는 점점 더 그 자신과 관련해 탈중심화되었다.

뒤푸르는 탈근대 사회에서는 더는 상징적 대타자, 즉 주체가 요구를 표명하고 문제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위가 되는 불완전한 실체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타자가 된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가 되리라는 발터 벤야민의 예견을 이어받아, 시장이 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근래의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자유 시장경제라는 신조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죄다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 주체는 영구히 탈중심화되어 있다. 주체를 둘러싼 상징적 공간은 항상 아노미 상태이고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탈근대성 논의들은 거대 담론들과 신뢰할 만한 권위들이 사라졌다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개인주의는 주체가 점차 자신을 자기 창조자로 인식하는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 바라지 않았던 선택의 모습

 

p183~184    5장   강제된 선택

누군가가 선택권을 제공받는 동시에 빼앗긴다면, 당연히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제된 선택은 사회를 결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강제된 선택의 사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합의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는 이 자유를 간단히 거부할 수 없다. 가장 엄하고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조차도 흔히 강제된 선택이란 행위에 의지했다. 이는 강압적 정치가 흔히, 개인이 정권의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 환상에 근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런 정치적 일상적 사례들에서 나타난 강제된 선택은, 개인에게 방어기제(, 신경증)를 형성하는 강제된 선택이 있다는 정신분석 개념과는 상이하다, 정치적 사례들의 경우,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고문없었음에 표시하거나 죽어나, ‘예의에 맞게 행동하거나 품위 없는 사람이 되거나 등과 같은) 행동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런 사례들에서는 방어기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감자나 징집병이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진실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이 말하는 주체는 사회화 과정에서 훨씬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주체가 개인적 방어기제를 형성하는 강제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정신병 또한 선택의 문제다. 또다시 강제된 선택이긴 하지만 말이다. 라캉에 따르면, 정신병에 걸리는 문제에서조차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정신병적 구조는 단순히 개인에게 부과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다. 비록 의식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

 

 

 

 

 

§§§§

옮긴이 박광호씨의 의식 있는 후기도 옮겨본다.

  결국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선택해야 할 것은 우리 공동의 것, 게임의 룰, 선택의 룰 자체이다. 그 고민과 씨앗은 협동조합, 지역 화폐, 마을 공동체,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온전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및 결선 투표제, 국가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주민자치를 강화하는 풀뿌리민주주의 등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고, 기본 소득, 토지 공유화, 노동자 경영권 등으로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는 선택 역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는 구조 ㅡ 정치적 · 경제적 구조와 인간의 심리적 구조 ㅡ 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 조삼모사 원숭이의 선택이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적은 분량임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책이다.

대타자와 이데올로기라는 과도한 상정으로 개진해 나간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의 사회가 광범위하게 그 테두리에 매몰되어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전혀 무리수가 아니란 생각.

우리와 연관된 정치 · 경제 · 생활(소비,육아) · 정신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

결국 사지 않기로 한 선택 하나.

생각해 보니 그 카테고리에서 사고 싶은 책은 『공산당 선언』뿐인데,

컵을 갖기 위해 굳이 그 이상의 책을 사고 싶지 않다! 로 탕탕탕! 결론.

읽었던 책이 많아 살 수 없는 것이니 구매자분들은 오해마시길^^;

 

 

사겠다는 자유와 사지 않겠다는 자유.... 선택의 자유인가, 자유의 선택인가....그것을 끝으로.  

 

 

 

ㅡAgalma

 

 

 

 

 

 

p136
무제한적 만족과 자기 충족감을 조장하면서도 불만족이라는 토대에서 번창하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토록 소비에 미쳐 있을 리 없다!) 좌절감은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개인에게 좌절은 흔히 불만족보다 더 고통스럽다. 불만족은 욕망과 얽혀 있는데 좌절은 주이상스와 관련된 문제들ㅡ우리가 향락하는 바로 그 방법ㅡ과 연관되어 있다. 장-피에르 르브룅은 이렇게 쓴다. ‘주이상스를 향한 의지가 사회를 지배할 때 프롤레타리아의 끈끈한 연대는 경쟁과 대립으로 바뀌고 사회의 증오는 심화된다.’(Lebrun, Un monde sans limite, p.250)

p200
우리는 스스로 내린 선택에 수치심을 느낄 때 전체 사회를 응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또한 사회의 부정의 앞에서는 시선을 떨구고, 적절한 선택을 내리지 못한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우리는 사회질서의 결함을 보는 대신 자신의 결함을 보고, 우리가 누리거나 성취하는 것이 적을 때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다. 이들은 삶에서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고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비난을 개인적으로 견텨 내야 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쇼, 놀이동산, 새로운 무수한 오락물이 넘쳐 나는 시대에 가난은 외부의 시선에서 보기엔, 선택할 수 있는 생활, 자유의사로 참여하고 그만둘 수 있는 개인으로 오인될 수 있다

p209~211
그러나 선택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개인이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곧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선택을 오로지 전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그래서 경제 이론과 소비자의 관점에서 선택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견해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선택을 인간의 정신 및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파악하는 더 폭넓은 이해 방식이 필요하다. 정신분석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고통을 이성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개인은 주체ㅡ늘 자신의 증상(즉, 신경증)을 만들어 내는 사람ㅡ라는 의미이다. 변화는 가능하고 또 우리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능력도 있다.
선택이란 관념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사회는 계급차이와 인종적‧성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1987년 마거릿 대처는 유명한 선언을 남겼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으로서의 남녀, 그리고 가족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 관점은 이후 사회의 전 층위에 스며들었다.

p213
존 레넌의 유명한 노래[아들을 위해 쓴 <뷰티플 보이>Beautiful boy]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살다 보면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그동안에 너는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말야.’ 선택도 마찬가지다. 선택지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선택을 내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독재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실제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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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이벤트와 사투 - 펭귄클래식의 역습
    from 공음미문 2015-02-24 21:19 
    §신학기라 슬슬 알라딘도 이벤트에 박차를 가하는군요.지난주 펭귄클래식 컵을 안사고 버텼건만펭귄클래식이 어찌 또 내 속을 알고 1만 원만 사도 사은품을 준다는 솔깃한 제안을!그린핑거 베이비로션이 1000명 인분으로 창고에 가득할 것 같지만.... 그래서 오늘 주문하는 김에 펭귄클래식에서도 1권 사고야 말았습니다;랜덤이라지만 무조건 당첨은 확실하니 상품으로 뭐가 올지 살짝 기대합니다 ☞☜;내일 지킬 하이드 영화도 보러 가는데 제발 지킬 하이드 양장 노트가
  2. 불안의 기후 변화 속에서
    from 공 음 미 문 2015-06-22 05:02 
    § 불안, (반갑진 않지만) 안녕? 책을 읽을 때는 기분이 많이 울적했는데, 정리 하다보니 내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돼서 생각에 살이 좀 붙은 거 같다. 이 맛에 리뷰를? 하지만 아직도 너무 길어.... 1장 [서론] 그동안 인류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주었고 지속적인 불안 요인인 것은 폭력(전쟁, 테러, 각종 범죄), 질병(바이러스), 환경(지진, 쓰나미 등), 경제 불황이라고 생각된다. 서론에서 레나타 살레츨은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불안해
 
 
수이 2015-02-1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들과 맞닿는 지점이 많은데요. 음음 노래 좋고 읽어야지_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근데 언제 사서 언제 읽지_ 그리고 더불어 이렇게 쓸데없는 댓글을 달아도 괜찮을까 그냥 삭제를 해야 하나 역시 선택의 갈등 앞에서 한참 왔다 갔다 하네요. 그리고 마지막_ 쿨럭;; 컵을 갖고 싶어서 책을 산 이 사람;;;;;; 푹 찔리고 말았습니다;;;;;;

AgalmA 2015-02-17 14:46   좋아요 0 | URL
댓글 쓰는데 웬 고민을 그리; 저또한 이 책 요즘 제가 생각하는 지점 많이 짚어줘서 좋았어요. 결국 펭귄컵을 포기하게 만든 주범이기도ㅎ...정말 갖고 싶었지만ㅜ
200페이지라 금방 읽으실 거예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메모를 하도 옮겨야해서 차라리 살 걸 그랬나 했어요ㅎ 여기 글에 안 올린 재미난 글이 얼마나 더 많은지 모르시죠? ㅎㅎ

수이 2015-02-17 14:54   좋아요 0 | URL
으악_ `여기 글에 안 올린 재미난 글` 으악으악_ 저를 이렇게 안달나게 만드시다니! Agalma님 나빠욧! 하고 냉큼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다른 분들 글도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AgalmA 2015-02-17 14:58   좋아요 0 | URL
후회 안하실 거예요. 최대한 살펴보시라고 굳이 제가 방대한 양을 올린 거니까요. 라캉 이해에도 도움이 많이 되실 거예요.
3월에 살레츨 새 책 또 나올 예정이던데 그것도 꼭 볼 생각입니다^^

수이 2015-02-17 15:22   좋아요 1 | URL
레나타 살레츨 Ted 강연 막 듣고 왔어요. 이번 주는 무리일 거 같고_ 다음주에 월급 들어오는대로 지르려구요. 언젠가 읽어야지_ 하다가 보니 테드 강연 있어서 다 듣고_ 그래, 읽어줘야지, 읽어야겠어, 이 책은 나를 위한 거잖아! 막 흥분하고_ 3월에 나온다는 살레츨 새 책_ 그것도 리뷰 꼭 해주셔야 해요, 아님 미리 알려주셔도 좋구요. 기다리기 전에 막 조를래요. 다른 `재미난 글`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AgalmA 2015-02-17 15:3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램프로 돈도 가져가고 책읽고 리뷰 내놓으라는 사채 시스템 비슷한ㅋㅋ

수이 2015-02-17 15:3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ㅋ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06-26 0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참 안타까웠는데...계속 그 글쓰기 시스템은 나한테 제 개인적으론 너무 최적화였는대, 폰이 안되고 제 가 취할수 있는 모든 방법이 거부하니, 애석하게도 , 서재로 우회하는 수단..글을 복사해 붙이는 방법을 쓰고있는데.. 여기 서재는 글저장
시간및 로그아웃이 멋대로인 지라..어느 순간 훅 날아가거든요.그렇게해서, 북플사용자에서 탈락자가 되고 말았죠. 그런데 계속 있었데도 누가 보는가 안보는가에 천착해 내글이 이제 인기글이 아닌가에 까지..두루 신경을 써야한다, 생각하니..자연도태가 저는 필요한 수순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치열하지 못하니..꼭 필요한 글만 남아야하는 거죠. ^^ 영화에서 말하듯 쓸모없는 글, 쓸모없는 사람,..자연제거 되는 식..^^ 그래서. 결국 마음에 대한 것을 보는데 책은 전문적인가 흥미위주에 머물러 볼
것인가...인가..까지도..선택하라 ?! 관심가져달라...?!어렵다..이건.

AgalmA 2015-06-27 20:06   좋아요 1 | URL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 행위가 중요한 동력이며, 그것을 또한 객관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들면 내 글은 금방 무너지죠. 그러나 내 감상, 주관 속에서 안주하려 들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도 어렵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작품이든 책이든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과정은 결국 동일한 거죠.
 

§

다뤄진 내용들은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알지만 정확히 법리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처리되었는지 잘 알지 못 했다. 그저 됐다, 안됐다 / 유죄냐 무죄냐 선고에만 관심을 가지고, 징역 몇 년 몇 개월이다 하며 분노했다. 모종의 커넥션과 거래와 음모론으로 생각하는 걸로 그쳐서도 안될 것이다. 어떤 법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악용되고 있는지도 보고, 이참에 법공부도 겸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세월호 법적 처리에 대한 예비공부도 할 겸. 그간 판례 흐름을 보면 지속적인 비슷한 맥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뒤가 잃어버린 20년의 대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의 이치와 이론과 방편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에게 불도저식으로 적용되고 있는 법리를 제품 사용서보다도 외면한다면 정말 암담한 일이다. 무엇보다 법을 잘 몰라 당한 어려움, 누구든 있지 않은가. 아직 없다면 축하ㅡㅜ!

어린 친구가 이 책을 보고 사법고시에 도전하는 계기가 돼도 좋겠고! (미안, 난 글렀어. 기억력이 만신창이라)
읽기로 정해둔 책 정리가 되면, 이 책 리뷰도 꼭 써보고 싶다. 갑자기 법공부하고 싶어지면 곤란한데;;
이런 책은 도서관에 신청해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신간일 때 사람들에게 가장 노출 빈도가 높으므로 좋은 책일수록 나는 대출반납을 빨리 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가서 봤을 때 대출이 안 되어 있으면 혼자 애태우며;;
법리 책은 나도 생소해서 판결문과 법리에 내가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것은 법조히즘인가;
내용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 같으니 보기 전에, 우리 겁먹지 말자! 법을 밥 말아 먹자!!
치맥과 법치의 대결~ 집에서 해보는 거 어떨까? 법치 치맥 인증 사진 리뷰대회!!! 같은 거 하면 이 분야 책 좀 팔릴 거 같은데.... 흠.
후원해 줄 프랜차이즈 치킨 사장님, 연락 주세요. 알라딘에~ 사은품: 치킨 모양 대형 쿠션 제공도 좋겠네요. 디자인 시안 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ps)
낼 출근을 위해 이젠 자야 해서 모바일로 쓰느라 맞춤법, 문장력이 괴발개발인 점 감안해 주시길;
이 책이 많이 알려지고 읽혀서 알라딘에 리뷰가 많아졌으면 하는 맘에서 글 올립니다.


ㅡAgalma

 

 


 

 

 

 

 

 

 

 

 

 

 

 

 

 

 

2014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위법 / 원전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 / 도박 중독자에 대한 강원랜드의 책임 /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 / 원세훈 1심 /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노동자성 / 전교조 법외노조 1심 / 이해관 KT 공익신고 2심 / 자살 여군 대위, 성추행한 소령 집행유예 / 선거권·피선거권의 연령 기준 헌법소원 / 해병대 장교 이적표현물 소지죄 무죄 /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재심 / 김용판 1심 / 옥외 집회 사전신고제 합헌

2013년
통상임금 판결에서 신의칙 문제 /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대리투표 유죄 / 외부 성기 형성 없어도 성별 정정 허가 /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학교 폭력과 학교의 책임 / ‘언소주’의 소비자 불매 운동 상고심 / 노회찬 삼성 떡값 검사 실명 공개

2012년
이동흡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으로 부적합한 이유 / 박경신 ‘검열자의 일기’ 2심 / 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 / 집시법상 해산 명령의 적법 요건 / 기성회비 반환 소송

2011년
정봉주 허위사실 유포죄 확정 판결 / 인터넷을 통한 후보자 지지·반대 금지 위헌 / 무죄판결의 의미 / ‘선거 쟁점’에 대한 찬반 표시도 공직선거법 위반

2010년
제주 강정마을 절대보전지역 해제 / 군 불온서적 지정 / 역사 교과서 수정 명령 / 한명숙 뇌물 수수 사건 1심 /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의 효력 / 전교조 시국선언

2009년
야간 집회 금지 집시법 규정 위헌 / 강제 철거의 근거였던 도시정비법 조항 위헌법률심판 제청

2008년
야간 집회 금지 집시법 규정 위헌법률심판 제청 /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배정 이건희 무죄 1심

2007년
상경 집회 원천봉쇄 / 성희롱으로 해고된 카드 회사 지점장 / 정몽구 회장 집행유예 /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 1심 / 상지대 정이사 선임 무효 / 파업에 참가한 울산 북구청 공무원 승진 취소 / 교통 불편 우려로 경복궁 인근 집회 금지 / 한미 FTA 협정문 초안 비공개

2006년
감사원 내부 비리 고발자 현준희 / 선분양 하면서 인근 쓰레기 매립장 설치를 알리지 않은 건설사 / 개인 파산 제도에서 면책 불허가 사유인 카드깡과 카드 돌려막기 / 관급 공사의 부패를 막는 청렴계약 조항 / 명의 신탁과 불법원인급여 / 퇴직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 / 안산시 공무원 내부 고발자 김봉구

2005년
법원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 합헌 / 삼성전자 주주 대표소송 확정판결 / 돈 갚을 능력 없는데 카드 사용하면 사기 / 이마트 노조 가처분 사건 / 미술 교사의 누드 작품 음란물 인정 / 공안문제연구소의 공안 감정 / 지문 날인 제도 합헌 / 성폭력 범죄에서 ‘항거 불능 상태’의 의미 /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다큐멘터리 부분 삭제 판결 /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에 올린 비판 글 / 동방페레그린증권 사건과 삼성전자 주주 대표소송에서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 제한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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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평한가 1 - 집회의 자유 : 법은 인간 위에 있지 않다
    from 공음미문 2015-05-21 22:15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란 문장은 매우 의심스럽다. 만인은 법에게 권한을 줌으로서 법에 구속받는 궁지를 자처했다. 강제 속에서 평등을 꾀한다니 이치가 참 괴이하다. 법(law)의 사전적 뜻에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라는 이중삼중의 강제력이 포진해 있다. 法이라는 한자어는 어떤가. 水와去는 둘 다 ‘흐르다’는 성질이 있다. 去에는 ‘내쫓다’라는 제거의 뜻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흐르게 하고, 무엇을 제거하고 있는 것일까. 칼 슈미
 
 
수이 2015-02-1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치 치맥 인증 리뷰대회_ 생각만 해도 아찔아찔 좋아 죽겠는데 과연_ 음......

AgalmA 2015-02-12 23:02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을 때 제가 자진 법치 치맥 리뷰대회 스타트 하려고요ㅋ;

오쌩 2015-02-1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덕에 책 보관함에 넣었습니다ㅎ 이책과 더불어 한겨례에서 나온 올해의 판결이라는 책도 같이 보면 좋을듯 합니다. 저도 도서관 반납기일때문에 완독은 못했습니다;;

AgalmA 2015-02-16 23: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한겨레 그 책들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원세훈 판결 처리가 향후 어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정말 법 좀 알아야겠단 생각이 물씬^^

네오 2015-04-11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읽었어요? 오늘 폴리티코에 양심적인 미국연방 판사글 보니 한번 책뭐있나 했더니,,판결문수집록 밖에 없네요, 저는 이런책으로 읽지는 않고 아예, 판결문정본을 읽었어요,. 그런데 이 소송절차법을 알면 이해가 쉬운데 우리는 결론만 보잖아요, 그래서 오해가 생기는것 같은데, 김용판케이스는 구체적증거없이 증언만가지고는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내릴수 없었을거예요 그리고 헌재결정문과 대법윈판례는 조금 다른 유형이예요,

AgalmA 2015-04-11 15:49   좋아요 0 | URL
도서관 신청해서 아마 다음달에 받아보게 될 듯 해요. 판결문 정본도 보십니까@@ 또다시 네오님은 무시무시한 분이다 할께요(_ _) 소송절차가 정확히 어찌되나 헌법부터 해서 관련 법전들도 한번 볼까 하다가 그러다 고시생 되겠어서ㅎ; 일단 이 책을 보면 법관련에 대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맥락이 잡힐 듯도 해서 관심 시작단계예요.
단순히 한국사회 부정의를 알자는 게 아니라 세계의 시스템을 알고자 하는 데 더 방점이 있어요

네오 2015-04-11 16:59   좋아요 1 | URL
보면 어떤지 알려주세요,,,,그런데,,,매번 책검색할때마다,,아니 음반검색할때도,,,님이 있네요^^,

AgalmA 2015-04-11 17:01   좋아요 0 | URL
자주 안 부딪히는 쪽으로 노력해 볼께요. 이거 또한 재밌을 듯ㅎㅎ

네오 2015-04-1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되게 반가웠다는 말이었는데요,,정말 취향 똑같다고요,,혹시 야구는 좋아해요?????????

AgalmA 2015-04-11 18:05   좋아요 0 | URL
반가움 뜻이란 거 알아요ㅎ 뭔가 다른 것도 있어야 더 흥미로운 대화가 있지 않겠나 하는 뜻의 말이었습니다. 제가 또 청개구리 스타일이어서...남들 좋다고 하면 아예 다른 걸 찾는 자라서; 그래서 제인과 에밀리도 읽지 않는지도요ㅎ
폴 오스터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보면 야구에 관심을 가져볼까 싶기도 한데, 짐작하다시피 제가 너무 관심사가 많잖습니까? 스포츠까지는 참 힘들어요ㅎ 그리고 스포츠의 대결의식들,룰,판정,인간의 환호들.... 제겐 재미가 아니라 인간 욕망에 대한 불편한 점을 건드리기도 해서^^;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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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내 독서 지침은, 이 현실을 유지시키고 곧잘 그 믿음을 붕괴시키는 나/타자/사회가 함의하고 있는 매우 의타적인 동인(動因)을 살피는 것이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더 늦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하는 심경으로 

그동안 내 독서는, 다변화를 모색했다 해도 필요와 호기심과 취향이 모인 괴상한 모습이었다. 누구를 돕거나 알릴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독서였다. (네, 우물안 베짱이였죠)

세상은 한 가지만 파기에도 무궁무진했다. 전문가여, 오타쿠여, 그래서 행복합니까.

탐구와 취향의 다른 편에는 자기 계발과 현실 안주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와 개체 그리고 정신 두루 살피는 독서가들은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 않는다. 풍부한 지성이 있다해도 관용과 배려가 어우러져 있는 이도 참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정도의 사람이라면 알려지지 않기가 쉽지 않고, 숨어 있다면 그들은 뭘 하고 있는걸까. 아는 만큼 회의론과 결정론에 빠지기 쉬워 말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공부가들은 그럼에도 말하는 책임을 감수하며 말하는 것일테다.

내 무식하고 자의적인 표본 관찰 속에서 우리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요즘 이걸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전화위복이 돼줄까?

아무튼 모든완벽을 꿈꾸며 추구하는 동안 우리는 카운트다운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호는 이 무수한 허구성을 드러내 보여준 원자폭탄이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천안함침몰, 용산사태, 국정원 부정선거 무수히 겪어도 당면한 사건들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다. 세월호 참사가 마지막일 거 같지 않아 우리는 더 불길해하고 있다.

무엇이 우릴 그토록 강박하게 만드는지 나대로 계속 생각해왔다.

 

생명의 소중함.

전 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매일 걱정하고 슬퍼하지 않는다면, 이건 매우 속인주의적인 태도다. 지장보살이 아니고서야 전 세계의 죽음을 위해 매일 눈물 흘린다는 건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인간 생명 뿐 아니라 전 지구의 생명을 우린 재점검해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정부의 온갖 무능과 비리와 부조리함들.

왜 이런 정부, 이런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나. 일제 청산도 안했는데 없는 게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 기회주의와 탐욕은 굳이 경제라는 거대담론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인간의 내재성이다. 자본주의 치하 아래 이 현실을 욕하고 외면하는 이들과 제 이익 좇기 바쁜 이, 모두가 함께 이 결과의 지렛대질을 한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더 울분에 싸이는 거겠지. 죄인이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세상. 죄를 제대로 벌할 수 없는 세상.

 

주권을 박탈당한 채 끊임없이 희생물로 바쳐지는 "호모 사케르" 피해자들. 

[자신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만큼 제3자인] 우리는 촛불을 들고 각종 후원을 하고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얘기하고 사건의 명확한 해결 촉구를 요구하지만 매번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연일 혹독한 수모와 실제 고통의 호모 사케르적인 삶은 모두 사건 피해자들이 살고 있다.

예방을 바라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표면적이다. 세월호 피해자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또한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이다. 비굴하게 이 땅에, 이 삶에 예속되어 있으니까.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홍철기씨는 우리 표면 깊숙이 내재화되어있는 우리 의식의 썩은 뿌리를 적시해줘서 반가웠다. 이 책을 덮을 때까지 이것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적은 지면이지만 적절한 지적이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 기획 의도는 "우리는 과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총체적 난국 속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이 시점의 정리와 질문을 대신해준 셈이다. 정답 제시가 아니었기에 각각의 부족함과 한계들은, 독자인 우리도 갖고 있는 것이므로 결점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상징적인 표현임에도 나는 "기억하자"는 구호를 경계한다. 그것은 자칫 감정적 연민으로 끝날 수 있다. 이 연민에 대한 경계를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지적한 바 있다. '가만히 있으라'처럼 감정적 정지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끊임없이 "관심"으로 현실화시켜야 한다.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금요일에 돌아오렴』(창비, 2015) 속속 관련 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인과관계의 실타래가 복잡한 상태지만, 이후 더 체계적이고 더 다양한 층위 분석이 꼭 제시되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미증유의 우울함 속에서 나 또한 찾아나가야 한다.

말로만 내지르는 질타와 호소는 쉬운 법이다. 그조차도 모르고,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홍철기씨의 의견처럼 우리는 '공적으로 보여주고 보는 능력'을 기르고 의사소통의 길을 바로잡아야 한다.

행동에 있어서도 우리 난관은 이어진다. 불의에 대한 진정한 미움과 거부는 내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라는 타협점을 빌미로 자신의 삶으로 후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싸울 수 있을까는 변함없는 인류의 질문이다.

입으로는 조화와 화해와 긍정을 말하지만 허상적인 주체성으로 똘똘 뭉쳐 이익과 경쟁과 시기를 일삼는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용기를 얼마나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이 또한 근대 이후 계속 되어온 질문이다.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우린 매번 궁지에 처할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어떤 해결을 보느냐가 향후 한국의 미래일 텐데, 사건 해결은 바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간과하는 것이 너무 많이 보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 정체(停滯)들이 너무나 섬뜩하다. 더한 것도 겪었다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든 흔하게 말하는, 자유 · 행복 · 삶 · 사람 … 이 저 우주의 별보다도 점점 더 멀게만 느껴져 뼈저리다.

과거 사람들의 희생과 교훈 따로, 내 인생 따로 그렇게 스스로 분리되어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 몸처럼 진정 세상의 전반을 [보]살펴야 할 때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찾는다고 한다. 나는 좋은 질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그에 부합하는 행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무수한 실패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좋은 질문을 찾아야 한다. 의타(依他)가 아닌 의지(意志)로서.

 

 

 

 

ㅡAgalma

 

 

 

p207 홍철기「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신자유주의란 ‘정치’가 ‘경제’에 의해 대체되는 기획일 뿐만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통치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치가 경제에 의해 대체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정치와 경제는 문화, 예술, 사회, 기술처럼 인간 활동의 다원적 영역들 중 특정하게, 그리고 가장 가시적으로 ‘정치’ 혹은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 영역을 지칭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가 정치를 대체한다는 것은 경제 영역으로부터의 국가의 후퇴, 그리고 정치와 사회 영역을 경제의 논리에 종속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시민사회는 시장으로 대체되거나 그와 동일시된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정치적인 것은 정치의 존재론적 조건, 혹은 토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특정 행위나 활동을 ‘정치적’이라고 표상하는 동시에 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기준’을 뜻한다.

p210​ 홍철기「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주체성의 사유화에 의해 초래되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언어, 혹은 의사소통 관계 자체의 사유화인 것이다. 사유화된 의사소통의 관계에서 각자의 경험의 복합성은 그것을 말하는 자신에게도, 이를 듣는 타자에게도 모두 사적인 측면으로 환원되어 표상될 뿐이다.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실존적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부재"이며 "그 결과 남는 것은 (……) 지극히 사사로운 관계 혹은 동일한 관계다. 대신 그 자리는 힐링이니 상담이니 하는 말로 사적인 것을 더 사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소비하는 그런 ‘시장’의 팽창이 대신한다" (엄기호 『단속사회-쉴새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창비, 2014, p26~27)

p214 홍철기「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투명사회의 치안이라는 측면에서는 오직 사유화된 영역만을 가장 투명한 가시성의 범위에 남겨두며 공공성을 보이지 않는 사회의 그림자 속에 버려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명 사회의 치안의 논리하에서는 모든 논쟁적인 외부는 사라진다. 혹은 사라졌다고 선언된다. 따라서 법치에 대한 왜곡된 강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적 책임은 사법화를 겪는다.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으면 정치적 책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 전도는 책임의 탈정치와의 가장 명확한 징후다. 동시에 ‘제도’는 ‘조직’의 형태로의 부패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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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읽고 싶소!!!

나를 뽑아주시오~ 스크랩 흔적 남기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도 이벤트 신청한 보람을 주시오~~

내가 우주 공부로 넘어가게 제발, 도와주시오;

 

ㅡAgalma

 

 

 


 

 

 

*  http://blog.aladin.co.kr/banni/7357927

 

[서평 이벤트]


1. 모집 기간: 1월 30일(금) ~ 2월 5일(목)

당첨자 발표 : 2월 6일(금)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2월 10일(화)까지 개인정보를 비밀 댓글로 적어주세요!

2월 10일(화)까지 확인이 되지 않으면 선정이 자동 취소됩니다.

서평 기간 : 2월 11일(수) ~ 2월 24일(화)


2. 인원: 5명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 인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참여 방법

- 응모 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서평 방법 : 서평 기간 동안 알라딘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 후, <우주, 일상을 만나다>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와 그 외 블로그, 외부 채널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완료됩니다.



우리 곁에서 만나는 우주!

독일의 인기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별과 우주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들

 

★ 독일 2014 올해의 과학도서상 수상작 ★

 

우주 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게 되었나?

냄비요리 안에는 어떤 우주원리가 담겨 있을까?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천문학 입문서

저 멀리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우리의 삶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구가 생긴 지는 46억년이나 지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하나도 둘도 아닌 데다,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까지의 거리만도 4,500만 킬로미터나 될 정도라니, 어마어마한 숫자들에 오히려 무감각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는 우주가 그렇게 먼 세상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에서도 우주를 만날 수 있으며, 소박한 한 끼의 밥상과 이제는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에도 어김없이 우주의 원리는 작동하고 있단다. 그러니 살짝 관심을 가져보라고. 천문학을 만나는 건 작은 관심이면 된다고 설득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하늘과 지구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져왔다. 최근 국내 개봉되었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흥행만 보아도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주에 대해 마음 한켠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우주의 끝은 어디이며, 우리는 우주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독일어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저자는, 유명한 과학 블로거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답게 쉽고 재미있게 우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 아침 불어오는 바람에서 시작해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탐색하며 일상에 숨겨진 우주의 흔적을 찾아낸다.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산책하듯이 걷다보면 누구나 우주가 간직한 아름다움과 그 원리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 우리가 먹고, 걷고, 머무는 도시에서 우주를 만나다

우주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을까?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집집마다 갖추고 있는 텔레비전의 위성 안테나는 인공위성의 원리와 역할을 알려준다. 특별한 날에 비싸게 주고 산 귀금속에 소행성 충돌의 역사가 남겨져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 땅바닥에는 우주에서부터 날아와 먼지가 되어 내려앉은 별의 흔적에 있고, 꽃들을 헤집으며 꿀을 채취하는 벌의 눈동자에는 항성들의 빛이 담겨있다. 이뿐 아니다. 우리가 삼시 세끼 먹고 마시는 음식에는 오래전 태양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숨겨져 있고 낯선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에는 우주에 떠 있는 위성들과의 교류가, 사계절의 순환에는 기울어진 지구와 달의 만유인력이 존재한다. 그렇다.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의 일상은 참으로 우주적이다! 이 책은 이처럼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우주의 원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일상에서, 도시에서 우주를 만날 수 있게 한다.

 

▼ 왜 우리는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가

우주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시와 노래 그리고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낙사고라스는 당대를 지배하던 종교적 교리를 벗어나 태양은 신의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고향에서 추방당했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를 두지 않았다고 해서 미치광이 취급을 당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최초로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그의 스승 티코 브라헤의 지적 유산을 바탕으로 우주의 법칙을 밝히기 위한 ‘전쟁’을 치렀고, 아이작 뉴턴은 공식을 사용해 물체간의 만유인력을 계산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시공간이 갖는 근본적 구조를 밝혀 상대성이론을 발견했다.

높고 푸른 밤하늘이 주는 낭만과 철학적 사색은 과학과 만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별 한줌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도 우리는 별을 꿈꾸고,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존재를 진실로 알고자 탐구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우주를 탐구함으로써 학문적 발전을 이루고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었듯이, 앞으로도 우리 또한 팽창하는 우주를 향해 나아갈 몫이 많이 남아있다. 저자는 이 책을 넘어 각자의 책꽂이에서 관련된 책을 찾고 더 깊게 생각하며, 더 깊은 우주로 나아가기를 독려한다. 이제 독자들이 이 책을 시작으로 거인의 어깨를 밟고 서서 더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책 속으로

지구는 우주의 일부이고, 우주에서 움직이는 행성 중 하나다. 행성이란 항성 주위를 맴도는 천체를 말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태양은 항상 중 하나로, 다른 수천억 개의 다른 항성과 함께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우리 은하마저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일 뿐이니, 우리 존재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구성 성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일상에서 아주 또렷하게 맞닥뜨리고 있다. -8쪽

 

‘낯선’ 생명체는 말 그대로 낯설다. 그 생명체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면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탐색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원칙상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생명체인지를 근본적으로 밝혀내지 못하는 한, 그 생명체를 찾을 수도,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껏 찾아낸 843개의 행성에 우리가 인식 가능한 종류의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수십 년 이내로 그 생명체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나뭇잎들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신호를 전 우주로 내보내고 있는 것처럼, 다른 행성의 식물 또한 존재의 신호를 내보낼 테니 말이다. -95쪽

 

한 숟가락에 담긴 음식물 안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탄소가 들어 있다. 그중 대부분은 평범한 탄소-12고, 그 외 일부가 탄소-13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일지라도, 방사성인 탄소-14가 존재한다. 음식을 섭취하면서 방사능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인체에 해를 끼치기에는 너무도 적은 양이니. 방사성은 특정 정도 이상일 경우에만 신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작은 손상 정도는 저절로 치유되기도 한다. 어찌됐든 아주 미약한 정도일지라도 전 세계 도처에 방사성 원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146쪽

 

지은이와 옮긴이, 감수자

 

지은이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Florian Freistetter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천문학 연구소에서 소행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나의 프리드리히-쉴러 대학 천문물리학 연구소, 하이델베르크 루프레흐트-카를스 대학 천문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08년에 개설한 우주과학 블로그는 매달 수십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외 여러 권의 천문학 책을 썼으며,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우주의 신비와 천문학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우주, 일상을 만나다》로 ‘2014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수상했다.

블로그 : www.scienceblogs.de/astrodicticum-simplex

 

옮긴이 최성웅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통번역가로 일하며,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KBS 스페셜>의 프랑스어 영상을 번역한 바 있고, 옮긴 책으로 《단단한 독서》, 《창조적 사진 전략》, 《폴, 행복을 찾아서》, 《돌아온 검은 고양이 네로》 등이 있다.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프랑스어 학습 카페(cafe.naver.com/pasdequoi)를 운영 중이다.

 

감수 김찬현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 후 오사카대학교 이학부를 거쳐 도쿄대학교 대학원 이학계 연구과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반물질의 최소 단위인 반수소원자 합성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진행중인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 ASACUSA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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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이벤트 신청글에 좋아요를 이토록 많이 누르시지-_-;;;....어서 가서 님들도 이벤트 신청하세욥ㅎㅎ

수이 2015-02-02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막 웃고 저도 신청할까 말까_ 책소개글 이따 놋북으로 읽어봐야겠어요. 아무래도 서평단에 뽑히실 거 같아요~ :)

AgalmA 2015-02-03 07:18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일 거 같아 이웃분들도 신청해서 누구라도 읽으면 좋지 않겠나 싶었어요 :) 이렇게라도 방향 전환이 안되면 제가 너무 어려운 세계에서 지쳐버릴 거 같아서요^^; 쉬엄쉬엄 책읽기가 안되고 꽂히면 돌진하는 스타일이라 저도 참;;
그러나 우주를 누가 쉽다고 말했던가....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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