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셰프 분투기 - 음식에 가려진 레스토랑에서의 성차별
데버러 A. 해리스 & 패티 주프리 지음, 김하현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노동통계국 2013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요리 산업 내에서 셰프와 헤드 쿡head cook 중 여성은 20%다.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가 많다고 지적받는 기업 세계에서도 여성 CEO가 24%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여성이 전문 레스토랑 부엌보다 회의실에서 더 잘나가고 있다. 요리를 여성적인 행위이자 업무로 간주하면서 이런 젠더 불평등은 왜 있는 것인가. 저자들은 남성의 공적 영역(레스토랑)과 여성의 사적 영역(요리책, 요리강좌)으로 나누는 젠더 불평등을 지적한다. 남성 셰프가 미식의 장을 지배하면서 여성의 진출을 막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본다. 업계는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일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거나 소득이 줄 것을 우려한다. "초등학교 교사처럼 처음에는 남성이 주를 이루었다가 점점 여성이 많아진 직업은 실제로 소득이 줄었다." 또한 누가 훌륭한 셰프인지 결정하는 영향력 있는 요리 전문 기자나 평론가들의 편향도 얽혀 있다. 여성 셰프의 요리는 요리의 생산적 측면이나 물리적 특징을 부각하는 반면 남성 셰프의 요리는 지적 작업이나 창조적 예술로 평가하는 예들이 이 책에 무수히 제시되고 있다.  리더 묘사에서도 남성 셰프는 카리스마 넘치는 군대식 지휘자로 묘사한다면 여성 셰프는 식사 경험 전체를 통제하는 것보다 고객을 보살피는 전형적인 여성성으로 강조한다.  '어머니' 같은 요리를 만들어냈을 때도 남성 셰프 경우는 그것을 뛰어넘는 선구자나 혁신가, 천재로 묘사된다면 여성 셰프 경우는 전통의 세습자 이상의 묘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음식 전문 기자와 요리 평론가만이 아니라 우리도 남성의 요리는 전문적·독창적, 여성의 요리는 아마추어적·가정적이라고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어 있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셰프직은 오랫동안 남성 셰프의 역사였다. 남성 중심의 구조적 틀 속에서는 남성이 전문가가 되기 쉬운 건 당연하다. 교육 환경에서도 남성을 우대하는 게 노골적이며, 레스토랑에 진출해서도 여성 셰프는 패스트리와 샐러드 담당에 배치되어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이다.
아래 인용은 단지 셰프의 세계만이 아니다.

 

로즈는 요리학교에서 여성 선생님 한 분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다. "잊지마, 너는 남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난 여자니까 이거 못 해', '난 여자니까 저건 못해'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돼. 나도 언제나 조심하고 있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이런 생각이 들지. '그래, 이 직업을 갖기로 선택한 건 나니까.'" 우리가 인터뷰한 여성 셰프 대다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의 원인을 남성 셰프에게 돌리지 않았다. 대신 부엌에 오로지 남성만 있었던 오랜 역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인은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셰프가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남성 셰프와 달리 알렉산드리아가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곧 그녀의 지식, 더 나아가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 있었다. 나타샤 또한 잘 모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누구도 자신을 "깔아뭉개지 못하도록" 하려고 언제나 "숙제를 했다"


여성이 체력도 약하고 쉽게 감정적이며 기술이 떨어진다고 규정하는 것은 노동 환경뿐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 퍼져 있다. '여성인데 대단하다'란 표현이 칭찬일까. '남성인데 대단하다'란 표현을 그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광경을 자주 본다. 남자도 당연시 요구되는 게 있다고. 상당수 논리가 아니라 남성들의 반격 문화 일 때가 많고 결국 문제를 계속 상대적으로 만드는 논리 순환이 되어 어떤 해결도 낳지 못하고 만다.
남성 중심 셰프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여성은 외모나 행동에서도 '명예 남성 social men'이 되어야 한다. 건설, 탄광, 소방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자신이 "반격"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걸 남성 동료에게 입증해야 하며, 남성들의 무리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을 끝없이 심사 받는다. 남자들끼리의 성희롱과 성적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받아칠 줄 알아야 한다!  남성 셰프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 불알을 꺼내서 네 머리를 후려친다"라고 위협하면 "글쎄, 네 불알로 나를 때리려면 진짜 가까이 와야겠네"라는 말로 여유롭게 되받아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고발?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 남성이 대다수인 환경은 성적이고 경쟁적인 문화가 조성되는데(일터의 성화 sexualization)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이였던 남성 세프들이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유머가 선을 넘어 사건으로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언제나 늦다. 부적절한 행동을 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떠나는 불이익이 비일비재하다. 더러운 적자생존이다.
레스토랑, 더 나아가 미식의 장 전체에서 여성이 토큰(token, 차별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 한 사람을 뽑아 구색을 맞추는 것을 토크니즘 tokenism이라고 하며, 이때 뽑힌 한 사람을 토큰이라고 한다)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부엌에서 남성의 실수나 감정은 개인의 실수가 되는 반면 여성의 그것은 '역시 여자들이란...' 평가로 여성 전체에 대한 일반화 되기 쉽다. 젠더 불평등을 무시하는 성 중립성 태도도 문제를 호도한다.
 

샤론 버드와 로라 로튼은 성 중립성 연구를 검토한 후 이 개념에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행동을 성 중립적인 것으로 묘사한다("저는 '셰프'이지, '여성 셰프'가 아니에요"). 둘째,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젠더화라는 틀에 넣는 걸 거부한다(하지만 전 그게 성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셋째, 조직의 구조나 문화, 관행이 성 중립적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하지만 그건 모두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아요").


능력주의와 노력을 강조하며 여성 개인의 성격과 선택의 문제로 만들 때 일터에서 발생하는 젠더 불평등을 축소하거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성성을 폄하하는 직장 문화가 재생산되어 현 상태를 유지하고 변화를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 중립성은 자신이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위치나 상황에 있는 이들이 주로 가지는 태도다.

여성이 어렵게 셰프라는 리더가 됐을 때도 여전히 같은 이유(감정적, 비이성적, 예민, 권위 부족)로 남성보다 못하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권위 있는 자리는 대부분 남성이 차지했기 때문에 남성적인 리더십"이 기본값이 된 걸 우리는 간과한다. 요리계에서는 여성 상사가 드물어 그 밑에서 일하거나 지시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남자들과의 갈등을 조절하는 것도ㅡ남성 상사라면 느낄 필요 없는 감정노동까지 포함해ㅡ여성의 능력을 시험한다. 여성 셰프가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처럼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칸터의 토크니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너무 여성적(유혹자 유형)이거나 너무 남성적( '철의 여인' 같은 나쁜 년 유형)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큰누나 역할의 리더십 유형을 가장 많이 취한다. 

여성 셰프가 많지 않은 이유는 업무상의 성차별보다 역시 아내/엄마 역할 때문이었다.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파트타임 스케줄로 바꾸는 사람은 주로 남편이 아니라 아내다. 남성이 여성보다 진급이나 소득 혜택을 많이 받는 점, 육아를 모성에게 맡기는 전통적인 관습,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스케줄, 육아로 인한 업무 차질을 바라지 않는 직장 시스템, 직장보험이나 퇴직연금을 바랄 수 없는 불안정성 등 세프계에 여성들이 많이 없는 이유도 다른 업종과 비슷했다.

이 책은 미국의 사례 조사이기에 한국과 좀 다를 수도 있다. 한국은 '어머니의 손맛'을 특히 강조하는 문화니까. 그러나 미식의 장에서 한국 여성이 천재 셰프 소릴 듣기 쉬울까. 잘해봐야 어머니의 손맛 아닐까. 한국 요리 프로그램이 서양의 그것을 답습하는 이상 젠더 불평등의 사회화는 굳건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입안에 쓴맛이 가득하다.

이런 책도 가족들 식사에 신경쓰며 고투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읽겠지... 가정에서 아버지의 요리도 일상이 되는 사회, 오고 있는 것.이.겠.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6-20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1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6-2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요리솜씨가 없기에 주로 마무리 설겆이로... 그나마 기름때 제거를 제대로 못해 구박받는 주방 소방수입니다.ㅋㅋ 저도 요리 잘 하는 아빠가 되고 싶네요 ㅜㅜ

AgalmA 2017-06-21 04:25   좋아요 1 | URL
요리도 자꾸 해야 늘어요. 여성들도 배우려고 해서 느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죠.
요리, 육아는 여성이 더 잘 하지 않나... 하는 효율이나 재능으로 여성에게 가사일을 자꾸 전가하다보니 그게 사회화되고 인식화되면서 여성을 더욱 어렵게 하고요.
김영하도 요리 배워서 아내를 부엌에서 퇴직시켰다고 하던데ㅎ 겨울호랑이님도 노력해 보시길요. 아내 분이 도저히 못 먹겠다 퇴장시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ㅎ; 지능처럼 재능 차이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ㅎ;

희선 2017-06-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셰프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시샘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 이야기로 본 거지만... 자신이 셰프가 되리라 생각한 남자였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된 거야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 셰프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지만, 그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하는 사람 정말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AgalmA 2017-06-21 01:11   좋아요 1 | URL
여성 셰프가 예쁘면 업장의 긍정적인 이미지 부각을 위해 셰프 자리에 여성 셰프를 두는 오너도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글로벌한 마케팅시대니까요. 위 본문에도 썼지만 여성형 리더십을 취하는 사람은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요. 사람 사는 데가 늘 그렇듯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겠죠.
 
인벤톨로지 : 불평가, 문외한, 몽상가, 낙오자, 불법 거주자, 눈엣가시들의 역사 - 새로운 것을 도래케 하는 생각의 힘
페이건 케네디 지음, 강유리 옮김 / 클레마지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인터넷 글들을 멀리서 바라볼 때면 우리는 일종의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분열증의 일종) 상태가 아닐까 싶다. 논리나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그 지속성은 놀랍다. 그야말로 유발 하라리가 말한 사피엔스의 허구의 소통 場이다. 가까이서 보게 될 때엔 더 기묘하다. 비슷한 범주의 이야기만 계속 말하고 있는 편집증적 상태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 마켓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편식쟁이거나 다이어트, 소화불량 등의 다양한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이러니 서로 정보나 공감대가 맞지 않으면 대화를 피하거나 외면하게 되고 대화를 해도 곧 반목하기 일쑤다. 정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라는 게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가 교육과 방송과 언론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껏 세대 차이 정도로 봐 왔다면 앞으로는 정보 갈등이라 불러야 될 거다. 기술은 날로 앞서 나가고 안타깝게도 현재의 우리는 정보의 10분의 1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발명가들이나 재기 넘치는 대중들의 생각의 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싱크탱크 인프라가 대중적이어야 인공지능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좀 더 나은 방도를 짜볼 것 아닌가. 서로를 충이니 빠니 공격하고 놀려대거나 막연히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는 낡은 자세로는 다가올 세계에도 지금 처지보다 나을 게 없을 거다. 정치를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듯이 우리는 모든 분야 공부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폰 히펠은 "선도 사용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나 만나게 될 상황에 이미 익숙한 덕에 수요 예보 실험실need-forecasting laboratory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선도 사용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미래적인 문제를 겪는다. 일명 ‘화성 시차 피로Martian jet lag‘가 그런 예다. 화성 시차 피로란 화성 탐사 장비를 조종하는 엔지니어들을 괴롭히는 수면장애다.

우리는 괴로움과 좌절감이 발명에 누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애덤 스미스의 지적처럼, 사람들은 같은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게 되면 그 괴로움과 불쾌함을 없앨 방법에 관한 많은 것을 터득한다.

얼마 전까지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구입하거나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제3의 방법이 생겼다.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다, "이제는 분산적이고 탈중심적인 발명, 제작, 유통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생산 도구가 대중의 손 안에 있으니까요. 산업혁명에서 정보혁명을 거쳐 이제는 대안경제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로체스터 공과대학의 존 셜 교수는 예언했다.

심리학자 개리 클라인은 .... 자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머릿속에서 계속 재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주 자그마한 실수에도 신경을 씁니다. 실수에 좌절감을 느끼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수행 절차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궁리하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속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남들이 실수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 사건에서도 무언가를 배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구름의 패턴, 한 가닥의 연기, 지나가는 말 한 마디, 새는 곳, 도로의 파인 자국을 보고 문제를 예상한다.

디자이너 크리스 호커Chris Hawker는 고객들이 디자인의 어떤 무형적 특질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제품은 단순히 기능적이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고객이 그걸 원하게 만드는 시각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가 수십 차례씩 시안을 수정하며 제품의 점진적 개선을 요구하는 이유다. 올바른 디자인은 마음과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상태를 오르가슴에 빗대어 "아이가슴 "eye-gasm"이라고 부른다. "제품을 본 사람들이 ‘우와, 저거 꼭 갖고 싶다.‘라고 생각하게끔 해야 합니다.

ㅡ 1부 문제 찾기

이 책의 1부에서는 우리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 내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이제 2부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작업하는 발명가들에게 관심을 돌려 보려고 한다. "애초에 존재했던 해결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거꾸로 거기에 맞는 용도를 찾아내는 경우다. 전자레인지, 테플론[음식이 들러붙니 않도록 프라이팬 등에 칠하는 물질], 벨크로[흔히 ‘찍찍이라 부르는 옷의 여밈 장치], 심박 조절기, 안전 유리, 엑스레이 등은 모두 실험실의 연구원이 어떤 특이한 현상을 우연히 마주친 뒤 거기에 매려되어 결국 그 활용처를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발명가들은 직감적으로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왜 중요한지는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에 미주리 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샌다 에델레즈Sanda Erdelez는 사람들이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운 좋은 발견을 연구했다. 그녀는 100여 명의 시람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식으로 자료를 수집하는지 알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작업 중 수시로 예상하지 못한 발견에 맞닥뜨린다고 말했다. 에델레즈 교수가 "슈퍼 인카운터러super-encounterer"(패턴 인식과 발견에 능한 달인)라고 명명한 이 사람들은 언제든 의외의 일을 마주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자신이 어쩌면 특별한 지각 능력을 타고난 덕에 우연히 그렇게 단서를 찾아내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비-인카운터non-encounterer"들은 오로지 자기 할 일에만 집중했고, 작업 중 접한 신기한 현상을 살펴보려고 가던 길을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팅커링tinkering은 "실질적인 효과없이, 무언가를 대충 어설프게 수리하거나 개선해 보려고 애쓰는 행위"로 정의한다.
닥 에저턴Harold E. "Doc" Edgerton이라는 발명가는 응용과학과 팅커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그러한 인식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그는 생소한 기술이던 스트로브 조명을 현대 생활의 필수품으로 정착시켰다. 저렴하고 휴대성 높은 섬광등을 만들고, 공황 활주로에서 사무실 복사기까지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찾아냈다. 오늘날 에저턴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왕관 모양으로 퍼지는 우유 방울, 사과를 뚫고 지나가는 총알, 원자폭탄이 폭발해 버섯 모양으로 퍼지기 직전의 모습, 날갯짓하는 벌새 등을 담은 그의 사진은 20세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스트로브 사진은 과학적 현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그려 냈다. 나중에 그는 수중 음파 탐지기를 개발해 해양고고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미지를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영상 기법을 또 한 번 선보인 셈이다.

팅커링의 달인 스콧 버넘Scott Burnham은 사운드를 일으키는 디스토션 페달을 만들고 랫rat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타에 랫을 부착하면 모든 소리가 폭발적인 굉음으로 바뀌었다. 너바나, 라디오헤드 같은 밴드들이 이 페달을 사용했고,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버넘은 귀 기울이고, 만져보고, 이리저리 손대보다가 발견을 이루었다. 손과 귀와 눈이 총동원된 장인의 작업 과정이었다. 팅커링은 속도가 느리다. "슬로우 푸드"가 느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냄새와 소리를 받아들이고, 물리적 세계와 대화를 나누고,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찰스 타운스Charles H. Towness는 1960년 초 그가 발견한 레이저와 그에 대한 연구를 두고 "동료들은 나를 놀려대곤 했다."고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빌견을 시답지 않게 여겼다. 벽을 태워 구멍을 뚫는 광선을 대체 무엇에다 쓴단 말인가. 당시 사람들은 "해결할 문제를 찾고 있는 해결책"이라며 레이저를 조롱했다.
그러나 수십 년 뒤, 레이저는 안과 수술, 컴퓨터칩 제조, 광섬유 등 수많은 문제 영역의 해결책이 되었다. 타운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의 실용 기술 대부분은 수십 년 전에 밝혀진 기초 과학의 산물이다. 연구자들은 호기심에서 움직였을 뿐 자신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그랬던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 과정에서 발견하는 아이디어는 문자 그대로 진정 ‘새롭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의 바로 그 "쓸모없음"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을 한데 뒤섞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새로운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불가능을 상상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새똥, 흙더미, 만년설을 연구하게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ㅡ 2부 발견

재능있는 엔지니어 스톨라로프의 시도는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역사는 무려 기원전 1400년 델피의 한 신전에서 여사제들이 점을 쳐 주던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점을 치기 전 지하묘지로 내려가 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흡입했다고 한다. 2002년에 발표된 한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은 델피 신전이 실은 두 개의 단층이 만나는 지점 위에 위치해 있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수 세기 전 지하 모지에는 신전 바닥 밑에 쌓인 화학적 퇴적물로부터 피어오른 기체가 소용돌이치며 올라왔을 것이다. 여사제들에게 환각 상태를 유발해 영감을 주었던 예언의 약은 에틸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물은 상상력을 증진시키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했다.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들은 머릿속으로 온 우주를 소환해 낼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통해 집중력을 훈련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지구가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는 판타지 소설가에 견줄 만큼 능란하게 가상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냈다. 그는 머릿속 실험실에 원양 항해선을 한 척 지은 다음 사다리를 타고 갑판 밑 선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난데없는 나비들이 서까래 안에서 파닥이고 있었다, 그 날갯짓에 선창으오 비쳐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이 깜빡거렸다. 갈릴레오는 주장하고픈 바가 있어서 상상의 나비를 상상의 배안에 들여보냈던 것이다. 나비들이 움직이는 배에 타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파닥이며 돌아다니듯이, 사람도 지구가 빙빙 돌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차 땅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당시는 과학적 개념을 논할 가상의 시나리오를 근거로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같은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은 초등학교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될 만큼 아주 보편화되었다. 십대 시절 진보적인 학풍의 학교에 다녔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곳에서 사고실험의 원칙을 배울 수 있었고, 열여섯 살 때는 사람이 빛의 속도로 광선과 나란히 달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상의 풍경 속에 돌진하는 기차, 자물쇠를 채운 트렁크, 스톱워치, 엘리베이터, 눈 먼 딱정벌레 등을 등장시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곤 했다.
미래를 내다본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역시 다종다양한 재료를 풍성히 구비한 머릿속 실험실을 활용했다.

흔히 상상은 신나는 놀이공원, 정신의 디즈니랜드라고 여겨진다. 백일몽에 넋을 잃는다거나 공상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내면 세계에서 고작 몇 분 머무는 것도 고통스럽게 느낀다. 최근 연구에서는 여성 피험자의 약 4분의 1과 남성 피험자의 3분의 2가 15분 동안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혼자 앉아 있느니 전기 충격을 견디는 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Matthew Hutson, "People Prefer ELectric Shocks to Being Alone with Thoughts", 2014) 많은 이들에게 상상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과도 같다. 초월적인 경관이 펼쳐지지만 산소가 부족해 호흡곤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세부 여건을 하나씩 추정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우리의 머릿속 실험실은 대단히 서사적인narrative 특성이 있다.


고착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조직이나 산업 전체를 감염시키기도 한다. 수천 명의 디자이너가 똑같은 맹점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텍사스 A&M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스티븐 스미스는 한 가지 예를 제시했다. 철도시대의 초창기에 기차는 역마차를 사슬로 줄줄이 이어 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차장이 객차 사이를 이동하려면 추락하고나 불똥과 재에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허공을 건너뛰어야 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문제의 해결책을 발명가들이 생각해 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 한 기술에서 다음 기술로 전이할 때, 우리는 맥락적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가져가게 됩니다." 스미스는 설명했다. 일평생 말이 끄는 마차를 타 온 사람들은 증기엔진이 돌연 열어젖힌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차를 보면 자연히 ‘말이 없는 마차‘를 연상했던 것이다. 여러 대의 마차를 복도와 연결 통로를 연결하면 객실 사이를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지금도 틀림없이 우리는 비슷한 편견에 묶여 있을 것이다.


ㅡ 3부 예언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5-19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는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AgalmA 2017-05-19 18:51   좋아요 0 | URL
에디슨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더군요^^
˝나는 만 번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효과 없는 만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효과 없는 방법들을 제외해 나가다 보면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ㅡ 에디슨

북다이제스터 2017-05-1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하루 한 권 실천이세요?ㅎㅎ^^

AgalmA 2017-05-20 06:15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도 그렇겠지만 읽기는 늘 하고 있죠. 하루 한 권 이루기가 어려운 게 탈이죠. 괜찮은 책 하루 한 권 읽자면 일상이 그 중심으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게 제겐 어려운 문제. 책만 읽는다고 능사도 아니고.
책을 여러 권 겹쳐 읽다보니 정리 못하고 후루룩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읽기에 중점을 둔다면 이런 정리가 시간을 상당히 잡아 먹으니 시간이 많이 아까워요^^; 이 책 밑줄긋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할 지침 같아서 2시간 정도 소요하며 올려 봤어요^^; 늘 하는 생각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희선 2017-05-20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가 발명의 날이었어요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서 발명 많이 한 분 말도 했는데,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살면서 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편할까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발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죠 생각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희선

AgalmA 2017-05-20 12:5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새로운 것을 도래케 하는 생각의 힘‘인 거죠. 저는 공감력도 상상력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명의 날, 어쩌다보니 제가 시의적절한 글을 쓴 게 되네요ㅎ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 책에 러시아 공산주의 시절 얘기가 나와요. 기술 특허 관련 부서에서 일하던 남자가 자국에 발명 아이디어가 하도 형편없어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보죠. 공산주의 시절과 관련이 있었죠. 과학자나 수학자 등 창의적인 사람들을 숙청하거나 죽이거나 괴롭혀서 그 분야 인재풀이 아주 좁아지게 된 거죠. 그도 마찬가지로 눈 밖에 나서 여러 가지 혐의로 당국의 고문과 유형 생활을 겪어야 했어요. 뛰어난 발명을 해서 세상을 더 낫게 할 사람이 그런 고생하는 걸 보니 맘이 참 언짢더군요. 그런 성격이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감옥 나와 전세계적으로 인재 양성하는 데 공을 세우죠. 이 사람은 그나마 재능이 특출나서 이 정도까지 했지만 자기 재능을 개발하고 발휘 못하고 시절에 휘둘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 이겠습니까. 여기 한국만 해도 입시지옥 경쟁 시스템으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짓을 하고 있죠. 사람들이 스스로를 경직된 사고에 가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5-2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가 부지런하기도 하시지. : ) 바뀐 플사는 뭄바이에서 찍은 사진인가요? 멋져요 멋져. 이 참에 사진 카테고리도 만들어서 여행 사진고 구경시켜 주세요~

AgalmA 2017-05-22 15:10   좋아요 0 | URL
이 글은 밑줄긋기 외엔 부지런하다 소리 들을 힘 안 썼어요ㅎ;;

인도 갔을 때 인생 사진 참 많이 건졌죠. 다시 그런 사진들 건질 수 있을까 싶은데...똑딱이 카메라 아녔음 더 대단했을텐데 게을러서 아직도 대충 찍기에서 못 벗어남요. 뷰리풀말미잘님만한 능력 안 됨요ㅎ
서재는 서재답게~ 관련 책 얘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사진만 올리지 않겠다는 게 최근 제 방침^^; 1일1사진이나 대선 관련글은 좀 벗어나긴 했지만;; 블로그와 서재 사이에서 늘 고민되는 점이죠.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 하라리는 전작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집단신화(, , 인권, 국가, )를 발명한 후 지구를 정복한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이번 호모 데우스에서는 그 신화들이 새로운 기술 혁명을 만나 어떤 변화를 겪을지 예측하고 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난제였던 기아(가난), 역병, 전쟁을 신이 기적으로 퇴치해주길 빌었다. 그러나 스스로 신이 되어 극복했다. 경제성장 덕분에 그것은 더 이상 최상위의 의제가 아니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7만 년 사이 지구 생태계를 바꾼 과정(인류세)빙하기 시대와 지각판 운동이 지구에 미친 영향과 맞먹는다. 저자는 백 년 안에 우리가 미칠 영향은 6,500만 년 전 공룡을 없앤 소행성의 영향을 능가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녹아내리는 만년설보다 자신들의 마이너스 통장이 훨씬 큰 걱정거리인 인류는 생태적 균형을 무너뜨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다음 목표로 향하고 있다. 최근 300년 동안 인본주의의 기본 바탕이었던 생명, 행복, 의 현실적 대두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이 좋아지면 오래 살고 싶은 건 당연한 수순이고, 행복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분석도 흥미로워 소개한다. 인간의 행복심리적인 것생물학적인 것 두 기둥이 있다. 심리적으로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기대치에 달려 있기 때문에 만족보다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으로는 기대와 행복이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생화학적 조건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 종일 힘든 것부터 비디오게임의 쾌감에 빠져 사망하는 사람들 등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세계 여러 곳의 죄수들 상당수가 약물 때문에 수감된 사례도 소개한다. 모두가 영적 만족 상태의 수도사가 될 수 없는 현실상 우리는 영구적인 만족을 위해 생물학적 기제를 조작하는 단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자연선택을 통해 품질관리가 되던 알고리즘을 인간은 더 넓은 분야로 확대시킨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유기체 합성(인공지능)이다.” 유전 공학으로 똑똑한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해주고 생명공학과 생체공학의 발달이 치매 예방과 성기능을 개선해주며 없던 팔을 만들어 준다는 데 거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깨닫는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집단적 숙고 과정에 있지 않다.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켰다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인간은 농업 혁명 이후 대형동물의 90%를 가축화했고 지배자가 되었다. 신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2012년에도 미국인의 15퍼센트만이 자연 선택을 믿는 상황이었지만, 진화론의 연구가 활발해질수록 신과 짝을 이루는 영혼의 과학적 사실 근거는 더욱 희박해졌다. “진화는 변화를 뜻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동물들을 마음이 없는 자동장치라고 주장했지만 진화론으로 볼 때는 유전자, 과학적 관점으로 볼 때는 뉴런의 전기신호로 작동하는 인간이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를 정복한 이유가 불멸의 영혼이나 어떤 특별한 종류의 의식때문이 아니라 여타 동물들과 달리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유연하게 대규모로 협력할 줄 아는 능력 때문이라고 보았다.

앞서 언급한 집단신화(, , 인권, 국가, )는 많은 사람이 공동의 이야기망(허구)을 짜서 만든 의미이고 공동의 상상 질서이다. 그것은 객관적 실재(나무, 바위, )나 주관적 실재(두려움, 즐거움, 욕망)가 아니라 상호주관적 실재이다. “상호주관적 실재들은 개개인의 믿음과 느낌보다는 여러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존한다.”

 

농업 혁명 뒤에 이어진 인지혁명으로 인간은 문자를 통해 알고리즘을 짜듯 사회 전체를 더욱 잘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자 덕분에 추상적 상징의 매개를 통해 실재를 경험하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고, “이야기의 그물은 힘을 급속도로 키워 역사를 석기 시대에서 실리콘 시대로 떠밀었다.” 세계를 고정된 파이로 보는 전통적 세계관은 원재료와 에너지를 자원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지식(데이터)자원이 더 중요해졌다.

종교가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신의 유무보다는 사회구조에 초인적 법칙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규범과 가치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능(질서, 협력)에 있다. 종교는 윤리적 판단, 사실적 진술, 실질적 지침으로 교묘하게 짜여 있다. 그러나 과학이 성장하면서 사실적 진술의 증명할 수 없음이 계속 문제시되고 있다. 종교의 윤리적 윽박지름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하는 공통점으로 공생해왔다. 저자는 과학혁명이 역사상 가장 교조적이고 불관용적이고 종교적인 사회에서 시작된 것을 강조하며, “근대 이후의 사회는 인본주의 교의를 믿고, 그 교의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교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과학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 이후 경제 성장은 이러한 계약 관계를 서서히 깨뜨려왔다. ‘수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 성직자, 유대교 율법학자, 이슬람 종법 해석가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할 수 없다고 설파했지만 은행가, 투자자, 기억가 들이 등장해 200년 만에 극복해냈다.

 

예전엔 신만이 선, 정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정의할 수있었으나 근대의 핵심인 종교혁명으로 인류가 그 힘을 가지게 됐다. 신을 믿는 것은 내 선택의 문제이고, “권위의 원천은 나 자신의 감정이다. “인본주의는 삶의 경험이라는 수단을 통해 무지에서 계몽으로 가는 점진적인 내적 변화 과정으로 본다. 인본주의적 삶의 최종 목표는 광범위한 지적·정서적·육체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온전히 발현시키는 것이다.” “인생을 경험의 연속으로 보는 인본주의의 시각은 관광에서 예술까지 수많은 현대 산업의 창립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종교처럼 인본주의도 분열하게 되는데, 정통 분파(자유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크게 나뉜다. 자유주의는 집단 정체성 및 동족의식과 융합해 근대 민주주의를 형성했으며,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개인의 자유 추구보다 공동 행동을 더 강조했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히틀러와 나치의 극단적 형태도 있었지만 인류의 진화적 잠재력을 강조하기에 근대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21세기 형성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20세기는 이 인본주의 세 분파의 살벌한 종교 전쟁터였다.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 시장이라는 자유주의 패키지는 가치문제를 다루지 않는 21세기 과학 앞에 흔들리고 있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토머스 제퍼슨 시대의 자유의지는 당시에는 사실적 기술이었지만, 영혼과 마찬가지로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 앞에서는 모순적이다. ‘살인을 초래하는 뇌의 전기화학적 과정들은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이거나 둘 다이지 자유의지를 따르지는 않는다.’ 이 시점에서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뫼르소 생각에 눈물이ㅜㅜ... ‘경두개 자극기 연구만 봐도 자신도 모르게 인간은 능력이 향상된다.

 

 

과학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도 약화시킨다.’ 인간의 뇌 연구 사례는 모든 인간이 비슷한 기제로 작동하는 모습과, 결정을 하는 단일한 자아가 있는 게 아니라 충돌하는 내적 실체(경험하는 뇌:자아-이야기하는 뇌:자아)의 결과론을 보여준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에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이 통했던 이유는 나를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외부 알고리즘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시대가 저물며 지금 크게 부상하는 외부 알고리즘은 기술인본주의데이터교. “기술 인본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업그레이드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과 의식 상태에 접근한다. 인간의 의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상황이다. 데이트 말고 데이터교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믿지 않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신뢰하며, “인간의 욕망과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 데이터를 결정으로 전환하며 경쟁하게 만드는 경제 메커니즘(‘데이터 흐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한다.

 

 

인간이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한 때가 인본주의 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감동적인 이상들을 설교한 18세기였다. 1789년 이래로 무수히 많은 전쟁, 혁명, 격변이 있었지만, 인간은 새로운 가치를 내놓지 못했다. 그 이후 모든 무력충돌과 투쟁은 인본주의의 세 가지 가치를 위해, 또는 신에게 복종하거나 국가에 봉사하는 것 같은 더 오래된 가치들을 위한 것이다. 데이터교는 1789년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새로운 가치(정보의 자유)를 창출한 운동이다. ……(중략)……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를 받아준다고 믿기 때문에 신을 믿었고, 나를 이해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자아를 믿었고, 만물인터넷(알고리즘)이 내 취향과 필요를 더 잘 알아서 따르는 과정 속에 인류는 내면도 외면도 잃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그리스도교가 인간은 신과 그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데이터교는 인간의 뇌로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략)…… 이런 알고리즘들은 어떤 인간도 망라하지 못하는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 인식 방법을 배우고, 인간의 마음은 생각해낼 수 없는 전략들을 채용한다. ‘종자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 알고리즘은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따라 인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리고 어떤 인간도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


 

마지막에서 저자는 중요한 질문 세 가지를 제기했다. 안 읽은 독자들을 위해 이 자리에서 밝히진 않겠고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생명을 지금과 다르게 파악할 방법은 없을까.

가치를 따지지 않는 사피엔스의 진화를 꿈꿀 순 없을까.

의식 없는 지능도, 지능 없는 의식도 상상의 질서로 협력하는 사피엔스가 아니라면 적이 될 확률이 더 높지 않겠느냐고. 이것이 진화라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바보.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5-19 07: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데이터교의 등장에 한병철이 싫어합니다.. ㅎㅎㅎ

AgalmA 2017-05-19 12:34   좋아요 2 | URL
문지지자들도 광신도 취급을 받는데요ㅎ;; 황우석의 황빠처럼 지구상에는 여차하면 종교적 맹신으로 빠지기도 해석되기도 쉽죠.

겨울호랑이 2017-05-19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제목이 <호모 데우스>가 된 이유를 알겠네요. AgalmA님의 리뷰를 읽으니 포인트가 다소 잡히는 것 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리뷰에 감사합니다.

AgalmA 2017-05-19 12:37   좋아요 2 | URL
혹시 신이 되고 싶으셔서..... 농담ㅎ)
하라리 글을 보니 지각변동만큼 인류가 지구를 참 많이 바꿨다 싶으니 우리가 말하던 신의 능력 비슷하지 않나 싶더군요. 지금은 더 가공할 아이템을 획득해 지구 게임 시뮬레이션 상태라ㅎㄷㄷ

겨울호랑이 2017-05-19 12:44   좋아요 1 | URL
^^: 저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겠지요..ㅋㅋ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유발 하라리가 이스라엘인이라는 것과 AgalmA님의 리뷰를 통해 봤을 때,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가 연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경고를 하라리가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아니면 기각하면 되겠지요.^^:

AgalmA 2017-05-19 12:51   좋아요 2 | URL
유발 하라리도 본문에서 이건 예언서가 아니라고 거듭 당부ㅎㅎ
정보가 모이면 이게 어떻게 쓰일지 쓸지 검토하고 생각해 보는 건 사피엔스의 특징이잖아요? 역사학자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요. 그런 바탕에서 나온 추측이라 겨울호랑이님이 말씀하신 가설인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생각할 때 가볍게 무시할 사안도,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밥벌이가 걱정인 사람에겐 배부른 사고실험처럼 들리겠지만...

AgalmA 2017-05-19 13:06   좋아요 1 | URL
인간 아니어도 어흥~하는 겨울호랑이 정도면 남 부러울 거 없을 거 같은데요......이히히

겨울호랑이 2017-05-19 13:10   좋아요 2 | URL
^^: 어흥 빼고 다 부럽습니다 ㅋ 예를 들면 AgalmA님의 그림솜씨? 많지요..

AgalmA 2017-05-19 13:15   좋아요 2 | URL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멸종ㅎㅎ
부러운 거야 스쳐가면 그만 아니겠나요. 지식은 좀 탐나지만(내 안에 이미 호모데우스 유전자가!!!) 생활 전반에선 전 기대치를 아주 낮추고 살아서ㅎ

겨울호랑이 2017-05-19 18:42   좋아요 1 | URL
AgalmA님께는아마도 볼프강 amadeus 모차르트의 유전자가 있을듯합니다 ㅋㅋ

AgalmA 2017-05-19 18:47   좋아요 1 | URL
amado 아닐 걸요ㅎ;

dys1211 2017-05-19 0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급 읽고 싶어지네요...

AgalmA 2017-05-19 12:38   좋아요 0 | URL
알찬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단 재미있어서 금방 읽으실 듯^^

2017-05-19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19 12:46   좋아요 1 | URL
deus(신)은 모든 걸 알고 계신다는 우리의 오래된 정의에 따르면 인간이 모든 data(정보)를 알고 다룰 줄 알게 된다면 인간을 homo deus라고 부르는 게 과장은 아니죠^^; 좀 무섭긴 함)))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종자 알고리즘의 과정처럼 신도 모든 걸 다 다루는 만능체는 아녔을 거다 라고 말해도 신과 인간은 유사^^

레삭매냐 2017-05-1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 나니 앞으로 사피엔스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 지 궁금하네요.

지금의 모습과 다른 방식의 새로운 인류 출현이 가능할지도
궁금하요. 물론 지금의 사고로는 받아 들일 수 없겠지만 말
이죠.

AgalmA 2017-05-19 14:08   좋아요 1 | URL
하라리는 사피엔스와는 다른 인류의 탄생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원시 인류와 현대인의 차이보다 더 큰 낙차일 거라고요. 지금 우린 당연시 생각하지만 사피엔스도 사실상 새로운 인류 출현이었죠. 그러니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술과 인간의 합체가 맹렬히 진행 중이니까요. 자유자재 변신도 허무맹랑한 공상과학 같은 소리가 아니게 되고 있죠.

단발머리 2017-05-19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Agalma님~~~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교에 대해 읽는데 섬뜩한 느낌은 뭘까요....
더 이상 읽기를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AgalmA 2017-05-19 13:03   좋아요 1 | URL
저도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자기보존 본능에 대한 위협감 때문이겠죠.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책인데 뭘 그렇게 서두르십니까ㅎ; 그럴만한 책이긴 하지요^^

뷰리풀말미잘 2017-05-20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마의 정보량을 계산해 보면 2.4pb 정도 나온다는데. 이제 뇌를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된다면 생명은 곧 특정 패턴으로 고집적된 정보유기체정도로 정의되지 않을까요. 저는 기술이 신체를(두뇌를) 데이터화 하는데 성공하는 순간이 구원의 시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기 아시잖아요. 특이점이 온다. 2047년 이라던가요? ㅎㅎ) 구원받은 자들에게 물질가치는 의미가 없어지겠죠. 유희와 소멸에 대한 희구만이 고민의 전부로 남게 될 날을 저는 기다립니다.

유발 하라리의 글은 다소 성긴 그물처럼 보이는군요. 거대담론, 사이언스까지는 못 되는 픽션을 낚는.

지나가다 툭 던져 봤어요.

AgalmA 2017-05-20 04:4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전망은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에서 재미나게 제시되었죠. 뇌는 집에 있고 아바타만 돌아다니는 뭐 그런. 번거로운 뇌 조차도 비유기체에 옮겨버리면 인간은 완전한 비유기체적 존재로 날아다니는 전자 유령이 되는 거죠ㅎ
물질에 대한 가치를 인간이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게 잘 안 되니 불멸의 영혼 같은 것도 만들어서 자신의 가치를 만드는 거 아닙니까. 인간의 본능, 습속이란 게 워낙 질겨서 자신의 전부를 비유기체로 옮기는 데에는 일종의 도약 단계를 거쳐야 할 겁니다. 매트릭스에도 그런 얘기 나오잖아요. 전자정보에 불과한 가짜인 걸 알면서도 콜라와 스테이크를 즐기고 싶어 하던 거. 그게 유기체적 향수이냐 비유기체에 대한 동화냐 하는 건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겠죠.

픽션으로 읽어도 역사서로 읽어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책입니다. 그도 미래를 정확히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끝처리를 좀 미흡하게 처리하긴 했지만 자기 논리와 체계로 이야기를 푸는 능력에서는 저는 인정

뷰리풀말미잘님 지나가다 만나기 쉽지 않은데 황송이요ㅎ/

희선 2017-05-2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어떤 글을 보니 낙관주의자보다 비관주의자가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비관주의자는 병원에 자주 가서... 인류의 앞날을 낙관만 할 수도 비관만 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데이터교’라는 말은 좀 재미있네요 사람이 가진 지혜가 더 낫기도 한데, 데이터만 믿는 것도 안 좋을 듯합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만화영화도 있는데...


희선

AgalmA 2017-05-20 05:57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내용은 과학잡지 [스켑틱]창간호에 ˝캐럴 태브리스 ;긍정심리학의 그늘˝ 칼럼으로 읽은 적 있습니다. 거칠게 나눠보면 낙관은 감정적 상태, 비관은 이성적 상태라 볼 수 있죠. 낙관적 사고에 행동력이 더 실린다고 생각할 때 결론적으로는 두 사고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가진 지혜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희선님 이하 대부분 사람들의 가치 평가죠^^ 물론 현재로서는 인간의 지혜가 더 풍부하다 볼 순 이겠습니다만 기계중립적이고 데이터적인 사고가 더 중요할 때도 많으니까요. 위급한 상황이나 병원 경우는 인간의 실수로 더 큰 피해를 보는 사례도 많으니까요. 세월호 경우만 해도 그런 인간들만 아니었어도.... 지혜로운 인간은 사실 많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데이터를 더 신뢰하게 된 것이라는 아이러니.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 12시간 소요.
전작 《사피엔스》 읽지 않고 읽어도 무방.
최단시간 최대효용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추천. 역사 - 뇌과학 - 진화생물학 - 철학 - 경제 분야 10권 읽는 거보다 이 1권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잡다한 지식보다 그러한 지식을 수용했던 역사와 우리 자세를 검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뛰어난 책.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를 뛰어넘어 본질을 꿰뚫어보는 미래 예측서.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p534)를 키워드로 파헤쳐 들어가는 서스펜스 SF 역사서!
어두컴컴한 서론 100페이지를 지나면 1부부터 재미 롤러코스터 급상승. 두 번 읽어도 흥미진진할 책.
상반기 읽은 책 top 1로 꼽겠음 b


노무현 대통령과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고생이 오버랩되는 부분...

˝김정은과 알리 하메네이의 가장 무모한 이상도 원자폭탄과 탄도 미사일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사실상 1945년과 다를 게 없다. 푸틴의 염원은 구소련을 재건하는 것, 심지어 훨씬 더 오래된 차르 제국을 재건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편 미국에서는 편집증적인 공화당원들이 버락 오바마를 미국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인정사정없는 전제 군주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그는 8년간의 임기 동안 의료보험 개혁안도 겨우 통과시켰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일은 그의 의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p515)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깊이 인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었나 거듭 각성해야 했다. 


 


신나게 읽고 난 뒤라 긴 리뷰는 To be Continue~
정리할 생각하니 까마득하네ㅎ;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7-05-18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벌써 읽으셨어요?^^
저도 빨리....ㅎㅎ

AgalmA 2017-05-18 21:51   좋아요 2 | URL
끝이 궁금해서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ㅎ 읽는 거보다 리뷰 쓰는 게 더 고통. 흑흑

북다이제스터 2017-05-18 21:55   좋아요 2 | URL
제가 읽은 책 초반은 인본주의 찬양인데,
책 나머지는 인본주의 반성이라니 넘 궁금해집니다. ㅎ
어떠한 논리 흐름으로 엮었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

AgalmA 2017-05-18 21:57   좋아요 3 | URL
인본주의가 종교를 물리친 대항마였다는 의의가 크죠. 하라리는 그 점을 높이 산 거지 동의나 찬양까지는 아니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후반 알고리즘 부분도 빛을 발함^^

AgalmA 2017-05-18 22:28   좋아요 3 | URL
우리의 골칫거리 자유의지에 대해 이보다 더 철퇴를 내리는 글 못 봤음요ㅎ;

북다이제스터 2017-05-18 22:49   좋아요 2 | URL
점점 더 궁금하게 만드시네요. ㅎ
제 관심사 덧없는 자유의지 얘기도 있군요. ㅎㅎ
그럼 우린 이제 다니얼 데닛과 결별인가요? ㅎ

AgalmA 2017-05-18 22:52   좋아요 3 | URL
데닛은 기술적으로 설득해 들어간다면 하라리는 감정적으로도 오도가도 못하게 만든 달까요ㅎ;;

cyrus 2017-05-18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미국판 탄핵을 볼 수 있을까요? ^^

AgalmA 2017-05-18 21:53   좋아요 3 | URL
현재로선 상, 하원 공화당측이 탄핵 과반 찬성 안해 줄 거 같고 트럼프가 실책 골 더 넣어주면 곧 있을 의원선거에서 탄핵선수들이 추가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의 촛불운동이 여러 나라에 긍정적 영향을 보여줬으니 알아서 잘해 나가겠죠^^

2017-05-1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8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5-19 0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께서 완전 몰입하신 상태에서 읽으셨군요... 집중력이 대단하십니다. 뉴스공장을 듣고 계시겠군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김어준이 예전 LG 이상훈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ㅋ

AgalmA 2017-05-19 12:30   좋아요 2 | URL
여러 분야 책에서 봤던 내용이 상당수 였는데요. 하라리 맥락에서 읽으니 더 재밌게 읽히더라는^^ 재치있는 문장력 때문에 지루하지 않아 더 몰입해 읽게 되는 거 같아요. 집중력에 대해선 제가 겨울호랑이님 리뷰 볼 때 하는 생각인데요ㅎ
오늘자 뉴스공장은 아직 듣지 못했는데요. 어제 jtbc에서 김어준 뉴스공장 콕 집어 언급해줘서 김어준 기분이 엄청 좋았을 듯ㅎㅎ 자기 방송에서 나온 뉴스인데 출처 안 알리고 말한다고 자주 투덜투덜댔으니까요. 이젠 무시못할 인지도를 가진 방송이 된 듯.
스포츠를 잘 안 봐서 이상훈 선수 검색해 봤는데, 생김이나 털 수북 비슷하긴 하네요ㅎㅎ
 
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세상을 보는 태도에 대해서 나는 다음 글에서 얘기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9337037

 

 

이 책 제목 한 대목인 불구의 삶은 저자의 이 말에서 나왔다.

 

건강한 사람, 미래가 확고한 사람,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와 사회, 감성과 이성 사이의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고통을 겪을 때, 긍정적인 사회화를 거부하는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란 계속 충격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받아들임에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에 계속 놀라는 과정이라고 할 때, 누군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있다면 사회화에 세뇌되어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행복은 개인의 욕망과 삶을 사회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움직임 안에서 일어나는 환영이며, 자명한 질서에 유익한 도구이다. 우리는 행복할 때 자기를 잃는다. 행복은 사회적 인정, 즉 바깥으로부터 내게 오는 수동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삶을, 이성이 사회를, 주체가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근대적 확신은 전지구적 패러다임으로 확장되면서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라는 근대의 선언도 여전하다. 지성으로 세계를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욕망은 특정한 인간만을 주체로 제한했다. 삶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덮어씌우려는 관념도덕이라는 판단 체계로 타자를 무수히 판단하며 주체는 인종, 계급, 젠더, 세대를 나누고 서열화했다.” 우리는 끝없이 타자를 만들고 우리와 다른 것, 우리보다 약한 것, 혐오스러운 것, 죽여도 되는 것으로 만든다. 현재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라. 진보와 극우, 마초와 페미니스트, 기득권과 노동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강요하는 어른과 체제에 갇힌 아이들 어디를 둘러봐도 자신을 주체로 한 대상화가 만연하다. “대상화란 우월한 존재들의 타고난 능력인 지성의 판단 아래 여러 다른 삶을 단순화, 객관화, 일반화하는 것이다.” 주체란 허위다. 모두가 모두에게 대상화될 수 있는 이 가능성의 세계에서 비정상인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앎은 모름을 뺀 나머지에 불과하며, “이름은 존재를, 삶을, 사물을 덮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근대의 인간주의가 영속적으로 계속되고 있기에 예술가들은 그 사이를 횡단하며 불가능을 인식했고, ‘익숙해지지 않는 놀이로 긍정할 방법을 찾았다.

 

김소연 시인은 바로 그때입니다시에서 비와 잎이 만나는 순간의 폭력을 세계의 폭력의 실상으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여성을 여성성이나 모성애와 같은 개념을 동원해 본질화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여성주의는 남성성으로서의 근대성을 여성의 자리에서 한번 더 반복할 뿐이다. 이것은 결국 이름 붙일 수 없는 여성, 무한한 차이와 다양성으로서의 여성을 억압하고 길들이려는 근대화의 일환이다.”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 1854년 영국 시인 코벤트리 팻모어가 지은 시에서 처음 등장한 현모양처의 영어 이름)가 되기를 거부한 실비아 플라스김언희는 여성에게 사회적 굴레를 씌우고 문명의 중심을 차지한 모든 아버지--폭력을 시적 화자의 글쓰기를 통해 단죄한다. 최승자 시인은 상호주관성의 환상 속에서 서로를 대상화하고 지우는 세속의 사랑을 시로 보여주며 각자 단독자로서 자기 긍정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니체삶을 의미로 ()구성하길 거부하면서 삶의 무의미와 허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것을 주창한 근대 안의 타자였다. 황병승사회적 삶을 사는 자들이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받아들이는 관계, 행위, 이미지에 대한 철저한 거부. 인간주의적 삶에 대한 경멸. 오독과 오해를 자처하는 대범함. 도처에서 감지하는 고독의 위엄. 그럼에도 이 도시, 이 지옥, 이 악몽을 떠나지 않는, 이 폐허의 증인이 되기로 선택한 이의 결단……. 계속 말하기 위해, 계속 거부하기 위해, 근대의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혐오스런 말이자 로서 표현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인간 실격》에서 요조를 통해 인간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으며 처세술의 사회를 익살로 횡단하는인간상을 보여줬다. 저자는 시를 똥으로 비유한 박연준와 소설과 영화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통해 상징적 언어에 대한 예술가들의혐오를 억압하지 않는비체적 저항에 주목한다.

 

결론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웃음이다.

말과 사물을 쓴 미셸 푸코중국 백과사전의 분류법이 자신의 사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웃음을 불러왔다"라고 말했다. “굳건한 기반의 우연성에 무지한 채 그 사유의 내용에 포획당하는진지한 삶과 사유의 허위를 보았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도 존재하지 않는 전제, 우리를 속이는 전제를 알아본 사람이다. 성철 스님은 유언에서 속세의 인연인 딸을 찾으며 다시 세속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기독교인의 어휘인 죄, 구원과 지옥을 거론하며 불교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적 아이러니를 보여줬다. 모든 프레임을 거론하며 모든 것의 무의미를 농담처럼 남기고 성철 스님은 자기 무화를 실현했다. “꽃의 연약하고 섬세한 성질은 죄수의 거칠고 무감각한 성질과 본질적으로 똑같다"라고 말한 장 주네는 모순을 합으로 만들지 않고 모순을 대등하게 만든다. 악의 한가운데에서 사랑을 느끼는 주네는 세속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내적 명령을 자기 행위의 준칙으로 삼고 스스로 윤리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 무가치함을 알면서도 삶을 미적으로 일관되게 실천하려는 그는 기성 사회의 도덕적 선을 따르지 않는다.

 

 

 

주네도 미소를 말한다. 그 미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어주고 동등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텅 비어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닐 때, 그러므로 우리가 사물과 동등해질 때, 더 이상 인간도 비인간도 구별되지 않을 때, 모두 빛나는 꽃이 될 때 남는 것은 미소뿐이다. 미소는 비천한 주네가 찾아낸 보편적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스한 긍정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별이고 우주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화해하는 게 모든 이들을 위한 생존법은 아니다. 우리는 모국어를 소재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위한 옷을, 집을,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설사 그곳이 모국어가 옷, , 장소라고 부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우리가 경멸과 분노, 폭력을 가르치는 세상에서 사랑하고 웃고 울 곳을 만들어야 한다. 헤테로피아, , 혹은 비장소non-site로 불리는 그곳을 말이다. 성장은 어른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고, 그들을 딛고 가는 것이다. 즉 성장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당신이 겪고 있는 시련은 삶의 포기가 아닌 당신을 위한 언어를 요구한다. 당신은 당장 시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한 가치 판단이 아닌 나와 세계와 화해하기 위한 미소, 당신은 지금 짓고 있습니까.

  

 

 

 


 

ps)

책에 눈에 띄는 오류가 있다. 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았다고 서술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 at Arles」, 1888

고흐 친구였던 외젠 보슈의 여동생 안나 보슈에게 판 그림. 1500점이 넘는 그림 중에 한 점 판 것이라 미미하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어 사실 관계를 짚고 넘어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7-05-1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른이 되지 않고 늙어 갈 것 같아요. 저절로...
왜냐하면 끝까지 철없는 어른일 것 같거든요. ㅋ

AgalmA 2017-05-16 22:55   좋아요 1 | URL
같이 그렇게 늙어가시죠ㅎㅎ
재능 폭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