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음악

 

 

히피는 집시였다 [빈 손](2018, 정규, 이 글 쓰는 시점인 현재 알라딘엔 없ㅎ;;;)
2월에도 정규 앨범냈는데 또! 좋아 좋아!!
「빛」
"찬란한 해야 // 낳아줘 백야 // 만약 탐이 널 찾아오면 // 검은 것을 낳거라 // 아주 높이 떠 해야 // 아주 높이 떠 해야 // 아주 높이 떠 해야 // 아무도 널 볼 수 없게"
「흙」
"뉘어진 채로 // 다시 돌아가 // 나 다시 돌아가 // 하지만 // 하지만"

가사는 희박하고 그 외의 것들이 더 귀 기울이게 한다.

 

 

 

 

 

 

Wayfie [Shame On Me](2018, 싱글)
「Shame On Me」
- 올해 100회 이상 들은 곡 중 하나.  잔잔한 피아노와 에코 가득한 사운드가 명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Bye Bye Badman [너의 파도](2017, EP)
「너의 파도」
- Adoy처럼 2017년에 처음 알게 된 뒤 계속 관심 두는 인디밴드.

 

 

 

 

 

 

First Aid [Farewall](2018, 싱글)
「Farewall」(feat. 진보)
- 올해 100회 이상 들은 곡 중 하나.  로맨틱한 멜랑꼴리 정말 좋지.
 

 

 

pony [태평양](2018, EP)
「태평양」
- 귀와 눈이 번쩍한 음반@@! 인디밴드 Zzzam의 부활인 줄 알았뜸! 이런 로우파이스타일 참 좋아하는데 반갑반갑~
보컬, 키보드, 기타 담당하는 최상민 씨 역량b

 

 

 

 

 

♩ Swaloopy [Midnight EQ](2018, EP)
「You Don't Care」
- 소울 팝 좋구만요. 타이틀곡 「Alone」보다 나는 이 곡이 더 좋구만요.

 

♩Fromm [Midnight Candy](2018, EP)
「Midnight Driver」
- 데이빗 린치 TV 시리즈 《트윈 픽스》 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수록곡 같은. 그러니까 90년 대 이런 느낌 곡 많았는데 마냥 진부하진 않고 이상한 매력이 있어.

 

 

 

 

 

Washed Out [Life Of Leisure](2010, EP)
「Feel It All Around」
- Electronic은 여름 용이 아님~~~ 사계절 내내 청량하구만. 캬~

 

 

 

 

 

 

 

 

♩ 진솔  [Dawn](2018, 싱글)
ㅡ가을엔 특히 알앤비/소울이지!  수록된 두 곡의 작사, 작곡을 다 본인이 했다고 한다.
「Bullet」은 Lauryn Hill 「Just Like Water 」(unplugged)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데, 피아노와의 콜라보, 멜로디 코드, 곡 진행, 음색 등 나는 Alicia Keys 「If I Ain't Got You」와 더 유사성을 느꼈다. 표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두 음악 다 좋다는 것 와, 「If I Ain't Got You」가 나온 지도 이제 15년이 지났... 어휴ㅜㅜ

 

♩ Harry Styles [Harry Styles](2017, 정규)

이 앨범 나오자마자 서재에 소개한 적 있는데 문득 생각나 「Sign of the Times」를 찾아 들었다. 역시 이 곡은 MV로 봐야

음악에 가을이 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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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해철 추억의 문을 열면 어찌 되는지 잘 아는ㅡ신해철 발인 날 내가 걱정돼 병원에도 같이 가 줬던ㅡ 친구가 위로차 방문해 화분을 주고 갔다.
신해철 배지를 보자마자
"어, 그거.... 예쁜 사진 많은데 왜 젤 뚱뚱하고 인상 나빴을 때 사진으로 배지를 만들었대-_-)"
그러게 말이야~_~;
근데 넌 이름이 뭐니?
이름도 없이 와서 나는 너의 이름을 '해철이'라고 해주겠다.

같이 살고 같이 자라자.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이 둘.

 

 

 

 

 

 

 

 

 

 

 

 

 

 

다 쓰고 나서

언제나 자조와 상대에게 위로 가득했던 당신 가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

Letter To Myself(나에게 쓰는 편지 / From Album "Myself" 91')

 

(나레이션)
사는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대답은...그래 Yes야
무섭지 엄청 무섭지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또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때마다
근데 말이야.. 남들도 그래..
남들도 다 사는 게 무섭고 힘들고 그렇다고
그렇게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한발 또 한발 그게 사는게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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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6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AgalmA님은 신해철 추모기간을 보내고 계신 듯합니다...

AgalmA 2018-04-26 14:36   좋아요 2 | URL
이상하게 끊을 수가 없어요~_~) ..... 그래서 신해철 추억의 문이 열리면 무서워요.
 

내 생각엔
앞서 나온 A-Ha 「Take On Me」가 「그대에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걸로 보인다.
신스팝의 돌풍 시대였고 멜로디언으로 작곡했으니 당연할밖에. 신해철의 음악적 원체험과 평생의 작업에서도 이 일렉트로닉 요소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당시  A-Ha 「Take On Me」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했다. 뮤직비디오도 혁신적이어서 국내에서 조용필을 앞세워 맥콜 음료 광고로 대놓고 베끼기도; 그 해가 신해철이「그대에게」로 상을 거머쥐게 된 1988년이었다.

신해철의 저음에 맞춰 <Take On Me>보다 단음 낮게 진행되지만 두 곡의 톤을 맞춘다면 아주 유사해질 것이다. 「그대에게」가 록 성향과 드럼과 기타 세션으로 분위기가 사뭇 다를 뿐. 보컬 진행은 A-Ha와 거의 비슷. 화려한 시작과 유장한 종결부 처리 등등도 아주 흡사하다.
나는 지금 표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영향 관계, 연결이 흥미롭다는 것이지.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 우우 우우~A-HA~A-HA~A~AA~AAa~ 우... 우우... ˝

 

 

A-Ha - Take On Me (Official Video)

https://youtu.be/djV11Xbc914?list=RDdjV11Xbc914

 

무한궤도 - 그대에게

https://youtu.be/bIEpNx38J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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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8-04-25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ha 리드보컬의 외모가 천상의 외모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뮤비도 획기적이어서 맥콜 광고도 따라하고.. 지금말로 신드롬이었던것 같아요~ 추억 돋아요^^

AgalmA 2018-04-25 08:2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사람이 저렇게 멋질 수 있는가 열광의 혼동 속이었죠ㅎㅎ 지금 봐도 여전히 멋지더라는^^!

비연 2018-04-2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A-HA! 추억 돋네요~ 정말.

AgalmA 2018-04-26 09:58   좋아요 0 | URL
^^ 꽃이 피듯 마음이 환해지죠. 음악은 그래서 참 좋아요.

2018-04-25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26 10:00   좋아요 0 | URL
^^ 저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카세트를 잃어버리고 사라졌어도 이 늘어진 테이프는 갖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8-04-2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간만에 다시 보니, 신해철님 진짜 풋풋하네요.
저는 이 곡의 전주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좀 전주를 중시하는 사람이지요~~~~~)
우우 우우~~ A~HA~ 우... 우우~~ 에 집중하면서 들어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AgalmA 2018-04-26 10:00   좋아요 0 | URL
저도 한 30초 들으면 이 곡은 내가 좋아할 곡인가 아닌가 판가름이 나서 전주는 중요합니다^^

레삭매냐 2018-04-2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e‘re talking away

로 시작되는 아하의 테이크 온 미는 정말
쎈쎄이셔널 그 자체였습니다.

대단했었죠 !!!

모튼 하켓, 나중에 시간이 흘러 유투브에서인가
베를린 라이브로 보았는데 추억 돋았습니다.

뭐 그런 거죠.

AgalmA 2018-04-26 10:02   좋아요 0 | URL
ㅎㅎ 커트 보니것이 삼촌의 명언을 인용하듯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되겠습니다^^
 
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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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그대에게

작품은 그것에 몸 바치는 자를 작품이 불가능하리라는 시련에 처하는 지점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원래 밤에 이루어지는 경험이며 밤 그 자체의 경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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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가 지옥으로 찾아간 것, 그것은 단 한 가지이다. 오르페우스의 작품의 모든 영광, 그의 예술의 모든 힘, 그리고 심지어 낮의 아름다운 밝은 빛 아래 누리는 행복한 삶의 욕망조차 이 단 하나의 관심에 희생이 되니 그것은 밤 속에 밤이 감추고 있는 것, 또 다른 밤, 모습을 드러내는 그 감춤을 직시하는 일이다.”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5장 영감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를 찾아 지옥까지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으며, 불안과 조급함으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에우리디케를 욕망이라 하든 꿈이라 하든 영감이라 하든 창작자에게 그 의미는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열망이다. 신해철은 평생 그 열망을 좇았다. 그의 데뷔곡이자 불후의 명곡이 된 <그대에게> 가사처럼(“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음악은 진실로 마약이며, 한 번 중독되면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

 

신해철은 음악 천재도 아니었고 재능이 없다는 숱한 지적을 받았음에도 평생 섹스도 결혼도 안 해도 좋으니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며, 음악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집도 재산도 가지지 않겠다고 간절한 신탁을 요청했고, 신은 마침내 그것을 허락했다.” 강변가요제에서 예선 탈락하자 그는 넉 달 뒤에 열리는 대학가요제에 몰두했다. 아버지 눈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네 문방구에서 산 멜로디언과 스펀지로 뮤트mute시킨 통기타를 이용해 하룻밤 만에 쓴 <그대에게>는 그렇게 탄생했다. 4박자 8비트의 전형적인 팝 록에 고전적인 코드 진행과 순진무구한 사랑타령 같은 이 곡은 그가 무한궤도-솔로-넥스트-크롬-비트겐슈타인-넥스트-솔로-넥스트를 거치는 긴 세월 동안에도 떼어내기 힘든 영광이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 이 곡의 신비한 탄생과 마력은 그도 우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비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대에게>에 대한 내 소견 첨부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50701

 

신해철의 음악만큼이나 우리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우리들이 꿈꾸는 자유를 추구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시련과 대가와 굴욕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길을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꿋꿋이 헤쳐 간 사람이었다. 시류와 유행에 타협하기보다 스스로의 인문학적 화두를 음악을 통해 풀어나가려 했고, 솔로 2Myself- 넥스트 1Home- 2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3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을 자아-가족-존재-세계를 탐구하는 콘셉트 앨범으로 완성했다. 한국에서 이런 콘셉트 앨범은 드물뿐더러 제대로 완성된 예도 없다. 발라드, , 하우스 뮤직, 아트 록, 메탈 등의 온갖 장르를 종횡무진하면서 인정 받든 받지 못하든 개의치 않고 묵묵히 수행한 것은 의지만으로도 힘든 일이다. 그의 이 끝없는 호기심과 실험과 추구를 나는 어쩐지 이해할 거 같다. 1968년 생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겪은 삶과 문화가 그에게 피와 살로 녹아 있는 게 이제는 눈에 잘 들어온다. “대한민국 첫 번째 영상 세대인 동시에 마지막 라디오 세대였고, 가장 민감한 10대에 ‘MTV'의 문화적 충격을 받은 세대였다. SF와 판타지 장르에도 심취했던 그는 음악이 할 수 없는 영상 서사를 펼치고픈 예술적 욕망을 자연스레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과 맞물려 그는 영화음악 감독으로 사운드트랙 앨범을 다섯 편(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김홍준 <정글스토리>, 송능한 <세기말>, 박정우 <쏜다>, TV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냈다. 극영화는 모두 흥행 참패했고, 넥스트가 절정의 기량일 때 아예 정규 음반으로 제작한 <영혼기병 라젠카>가 아동용 TV 만화였던 건 얼마나 웃픈 일인가. 강헌의 말처럼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었다. 강헌 기획으로 제작한 <정글스토리>의 흥행 적자를 신해철의 OST가 만회해 주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그의 삶 전체는 이런 가교에 있었다.

 

 

* 편견과 가치평가 사이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가자. 이 곡이 대학가요제 그랑프리를 넘어 대회 다음 날부터 무명 록 밴드 음악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중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이 평지돌출에 놀란 시샘이 덩달아 쏟아졌다. 멤버 전원이 명문대 재학생인 데다 유력한 재벌 그룹 아들까지 끼어 있었으니 음지의 다양한 질투는 거개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초호화판 기자재들이 무한궤도 전용 연습실에 즐비하다는 이죽거림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이 곡의 멜로디를 문방구제 멜로디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길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그대에게>를 만 스무 살 아마추어 대학생이 아니라 이들 귀공자군단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전담 작곡 팀이 만들어주었다는 낭설은 노골적인 모욕이었다. 가진 자프레임은 짧은 무한궤도 커리어 뒤에도 계속 유령처럼 신해철의 행보 주위를 기웃거리게 된다.”

 

서태지는 표절 논란 말고는 문화대통령으로서 프리미엄을 누린 데 반해,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등 음악 저널리즘에게서 인색한 대우를 받는 복수를 감내해야 했다. 세기말에 이르러 파상적으로 진행된 각 매체의 베스트 100’앨범 선정에 있어넥스트 앨범은 결코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략)

어지러움 음악 행로가 새로운 분야를 향한 창조적 도전의 의미보다는 신해철 자신 혹은 동료와의 음악적 신뢰 결여로 읽힌다는 게 의심의 출발점이다. 전선이 넓어지면 집중력은 당연히 그만큼 엷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경기장의 이동은 변화보다는 변덕에 가깝지 않은가? 이와 같은 유목적 행로는 특히 록 정통주의자에게 참을 수 없는 희롱으로 느껴질 것이다.

장르로 범위를 좁히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앞선 말한 명반 선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록 밴드를 음악적 아이덴티티의 토대로 구축했다고 해도 트로트로부터 동요와 민요까지 장르 전선을 확대한 조용필의 경우에는 거의 모욕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아무리 진지한 음악적 접근 태도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모든 장르를 커버하려고 시도하면 예술적 탐욕의 혐의를 받거나 상아한 세대 취향을 노린 상업적인 의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조용필과 1990년대의 신해철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은 일련의 앨범에 걸쳐, 그리고 한 앨범 안에서 극단적인 장르 어법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신해철 앨범에 가해지는 가장 일반적인 공격은 장르의 백화점식 진열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다.

(중략)

그는 앨범 한두 장으로 일시적인 상업적 재미를 보려고 하면 모르겠으나 한 사람이 음악 인생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그렇게 시도한다면, ‘이 사람은 이것이 콘셉트구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강헌

 

 

 

* 락과 그 외 사이

(신해철) “나의 음악적 원체험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혹시 디스코가 아닌지? 농담이 아니다. 나중에 만난 헤비메탈처럼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특히 홀스트의 <혹성>, 베토벤의 교향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와 보니 엠의 디스코는 굳이 말하자면 1970년대 후반에 10대를 시작한 나의 음악적 원체험의 공간에 아직 잔존하고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뒤로 일관되게 나타난 오케스트레이션을 향한 욕망도 아마 그런 영향이 아닐까? 그리고 나중에 프로그래시브를 만나자마자 확 끌린 것도 아마.”

 

(강헌) 당신은 스쿨 밴드 적부터 딥 퍼플 같은 하드 록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신해철) “아니, 다만 원체험의 중심축에 록이 없었을 뿐이다. 올바른 음악의 태도는 정통적인 것과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것의 조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좀 더 매혹되어 있을 뿐이다.”

ㅡ 『리뷰4(1995)

 

* 서양음악과 국악 사이

(신해철) “이순신 장군 영화는 단체로 관람하면서 공짜인 국립극장의 국악 공연은 한 번도 데려가지 않는 게 우리 교육의 실상 아닌가? 나와 내 세대는 서양음악을 통해 음악을 익혔고, 앞으로도 그 질서는 본질적으로 변함없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나의 임무는 명확하다. 서양음악을 제대로 흡수하고 소화하는 것,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나의 음악 언어를 완성하는 일이다. 나는 발라드와 댄스 뮤직은 물론, 랩과 메탈, 그리고 아트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양 음악을 섭렵하는 중이다. 몇몇 사람은 내 음악이 너무 서양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생각해보자. 바흐부터 바르토크까지 이들의 음악만을 레퍼토리로 삼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만이 국가의 자랑인가? 우리 대중음악계엔 서양의 록 음악에 우리 국악을 접목시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김수철 형이 있다. 그의 끈질긴 자세를 나는 존경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며, 국악에 대한 접근은 조급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앨범부터 국악적인 요소의 고용을 고려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결국 빼버리고 말았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할까? 이쯤 되면 우리 대중음악에서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해진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나는 끊임없이 빈 곳을 채워가는 링커가 되고 싶다.

ㅡ 『리뷰4(1995)

 

* 386 세대로서 고뇌하는 비겁자

뮤지션으로서 신해철의 아이덴티티는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유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이루어진 주체 형성의 산물이다. 박정희 시대를 지배한 권위적인 가부장주의 아래서 유년을 보내고 전두환 시대의 폭력적인 비민주성을 정면에서 마주한 청년, 어쩌면 한국 근대에서 지극히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의 주체 형성 과정은 그로 하여금 뮤지션십과 시민성을 분리하지 않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신해철은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이 뮤지션십 속에 실종되지 않은 한국 대중문화의 첫 번째 세대이며, 그는 자신의 시대가 부여한 이 세대 정신을 시치미 뚝 떼고 외면하는 식의 선택을 포기했다. 즉 가족 관계 속에 숨은 세대 갈등과 종교적 경험을 통해 양성된 존재론적 근원에 관한 성찰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는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더욱 정교하고 사변적인 수사학과 현실주의적 문제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강헌

 

87학번이었던 그는 전태일이 분신한 청계천 거리에 6월 항쟁으로 나섰다. 백골단에게 잡혀 폭행을 당하는 여학생을 구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숨어서 봤던 경험(‘고문의 망치사건)은 그가 평생 스스로를 ‘(고뇌하는) 비겁자로 말하며 자신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는 원체험이 되었다.

 

* 뮤지션과 시대의식 사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하얀 그림자출신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선율을 만들었고, 리더인 신해철이 가사를 붙였다. 신해철은 해설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삼국-고려 시대까지 족내혼이었다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중국에서 수입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제도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정작 본바닥인 중국조차 1908년에 동성동본 금혼 관련 법을 폐지했으며, 따라서 미풍양속이란 주장도 개소리라고 말이다.”

강헌

 

정치를 혐오했고 연예인에게 금기시되는 정치적 행동으로 어떤 불이익이 올지도 모르는데도 신해철은 노무현 대통령 찬조 연설에 나섰다. 그를 지지하는 결정적 이유로 우직함을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자신이 살면서 지키고자 한 애티튜드였잖은가. ‘솔직함, 달변, 열정, 진정성, 약자에 대한 옹호, 정면돌파... 젠장 또 눈물이.

남들과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무서움보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무서움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그냥 자기 방식을택한 그.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그는 정치 혐오와 관망의 자세를 버리고 논객이자 행동하는 시민으로 거듭난다. 대마초 합법화에 대해서, 간통죄 폐지에 대해서, 학교 체벌 금지 운동을, 이라크 파병 반대 1인 시위, 이명박 정책과 기독교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다작가, 다변가인 그는 꼬박 3년간 단 한 곡도 발표하거나 녹음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예술적 탈상을 지켰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노무현 추모 앨범 脫傷 -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찍힐까 봐다들 몸을 사리던 때 그는 <Goodbye Mr. Trouble>로 돌아왔다. ‘끝까지 살겠소 죽어도 살겠소 우리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소탄식으로 절절한 그 곡은 이제 신해철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으로 남았다. 죽어서도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을 만들게 한 못 말리는 그대여.

 

 

 

우리 앞의 생이 끝나기 전까지 이별의 "안녕"은 없어

시대와 시대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음악과 음악 사이에서 음악만이 아니라 언제나 돋보이는 목소리이기도 했던 그. 그가 꿈꿨던 음악,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조차 실현하지 못한 밴드 불모지 한국에서 그가 N.EX.T로 실현하고자 했던 행복한 꿈을 이제 누가 해나갈 수 있을까. 여기 응원하고 있는 사람 있어. 힘내시오! 

 

왜 신해철은 그의 노래 <민물 장어의 꿈>처럼 생애를 걸고 밴드로 회귀하는 몸부침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자본이 지배하는 문화 산업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밴드야말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음악 청년이 자신의 상상력을 억누르는 통제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예술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음악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연주를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표현할 욕망을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하는 것, 나아가 자신이 녹음하고 자신만의 프로덕트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헌

 

미완의 프로그레시브, 미완의 록, 미완의 재즈, 미완의 발라드새로운 것도 아니고 낡은 것도 아닌, 뭔가 좀 그런 것같았던 무한궤도의 아쉬움을 끝까지 완성해 보고자 했던 그.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이 노래는 신해철의 기나긴 디스코그래피에서 매우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대에게>가 연가의 담론을 빌려 음악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을 표현했다면, 장엄하면서도 순수하며 솔로와 코러스의 콜 앤 리스폰스가 효과적으로 잘 배치된 이 노래는 신해철이 짧은 평생을 두고 일관되게 추구한 존재의 다양한 의미와 가치의 균등성이라는 화두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도입부는 대단히 서정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템포는 느긋하며 강박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속한 야만적인 약탈의 시대로 인해 나날이 파괴되어가는 동시대의 젊음에게, 또한 다름없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반문하고 다시 반문한다. 신해철이 지닌 지성의 훌륭한 애티튜드는 그가 우리에게 답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는 모든 이의 다양한 꿈을 응원하는 한편으로 희망을 잃지 않게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수많은 이가 (우울한 사춘기 시절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준) 신해철을 여전히 정신적 구루guru로 숭배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노래가 증명하듯이 그의 권위는 군림이 아니라 상처와 약함에 대한 동감에서 비롯한다. 나중에 이 애티튜드가 노래 텍스트를 넘어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가 품은 정치적 담론으로 발전할 것이다.”

강헌  

 

 

 

My Epilogue

    

신해철 리뷰를 정리하다 잠들었고

오늘 하루를 걱정하며 서둘러 눈떴다.

내가 쓰는 글이 내게 빛이 돼 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존재의 빛으로 증폭되는 저 풍경처럼.

내게 유일한 희망은 나다.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 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N.EX.T <The Dreamer>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N.EX.T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ps 솔직 1) 단도직입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신해철이 Crom 프로젝트 작업할 때 발표한 '일상으로의 초대오르골 꼭! 받고 싶습니다.

ps 솔직 2) 팬심을 아무리 동원해도 신해철 Jukebox Musical The Hero는 음.... <정글스토리> 2가 되기 십상이겠습니다; 설정, 스토리가 더 현대적이고 제대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이건 우리끼리 웃으며 추억하는 걸로; 이것 때문에 별 하나 뺐습니다. 강헌 선생님, 고생 많으셨고 매우 감사합니다. 이 책 보며 울고 웃으며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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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1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우린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전망 좋은 직장, 가정 안에서의 안정,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우리 가치의 척도가 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아마도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AgalmA 2018-04-22 07:13   좋아요 1 | URL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랑 <나에게 쓰는 편지> 가사 조합으로 댓글 마무리라니ㅎㅎ 신해철 리뷰에 엄청 어울리는 댓글이네요ㅎ👍
저도 신해철처럼 재산 모으는 거 신경 안 쓰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끊임없는 불안정, 빈 잔고로 살아왔지만 이 생활에서도 후회할 만한 게 있죠. 이것도 다 경험해봐야 아는 거지만. 마음 자세와 삶이 늘 일치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인생은 어떻게 살든 아쉬운 거 같아요^^;
 

오늘도 나는 일하기싫어병이 발동해 도망~
내게 탈출할 전시회 티켓이 있었지!

 

버지니아 울프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거리 출몰하기 : 런던 모험」중에서

 

 

(첫 문단)
연필 한 자루를 향한 열렬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소유하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오후의 차를 마시는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 사이에 런던을 정처 없이 걷고 싶다는 하나의 목적을 품고 핑계를 대는 순간이 그런 때이다. 여우사냥꾼들은 여우들의 품종을 보존하기 위해 사냥하고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열린 공간들이 건축업자들로부터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에 골프를 친다고 하듯, 거리를 거닐어야겠다는 욕망이 퍼뜩 떠올랐을 때 우리는 연필이 할 일을 구실로 일어나면서 말한다. "정말로 연필을 하나 사야만 해." 마치 이를 핑계 삼아 겨울에 도시의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안전하게 탐닉할 수 있는 것처럼ㅡ런던의 거리를 한가로이 어슬렁거리는 것 말이다.
시간은 저녁이어야 하며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은 공기가 한없이 맑고 투명하며 거리의 친숙함이 반갑기 때문이다. 그늘과 외딴곳, 풀밭에서 불어오는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는 여름과 달리 우리는 그때에는 조롱을 받지 않는다. 어둠과 가로등 불빛이 드리우는 저녁 시간은 우리에게 무책임함 또한 선사한다.

(끝 문단)
일탈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며, 겨울의 거리에 출몰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모험이라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집 현관 계단에 다다르면서, 오래된 소유물과 오래된 편견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에 위안을 받는다. 그토록 여러 거리 구석구석에서 이리저리 떠돌았고, 그토록 여러 접근하기 어려운 전등들의 불길에 나방처럼 난타당한 자아는 보호받고 에워싸인다. 여기에 다시 평소의 문이 있다. 여기에 우리가 떠나면서 빙그르 돌아갔던 의자와 도자기 접시와 양탄자 위에 난 갈색의 동그라미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ㅡ살살 부드럽게 살펴보자, 경외심을 갖고 만져보자ㅡ도시의 모든 보물로부터 되찾아온 유일한 전리품인 연필이 한 자루 있다.

 

 

 

 

 

 

 

전시장 초입에 <벨에포크 시대로의 초대> 섹션이 있다.
벨에포크 시대부터 로랑생 노년기에 접어들 때까지의 미공개 희귀본 사진 21점이 전시되었다.

1. 청춘시대 (1904~)
데생 학교에서 스승으로 만난 조르주 브라크를 통해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세탁선 Bateau-Lavoir'에 입성. 그곳의 주인인 피카소를 비롯 앙리 마티스 등의 예술가들과 동등한 활동을 했다.


"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ㅡ 마리 로랑생


2.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열애와 결별 시대(1910~)
(파란색, 분홍색, 초록색, 회색 네 가지가 주조를 이루는 색채의 시대)
세탁선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로랑생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만나 열애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생아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재밌는 건 1911년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아폴리네르가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나면서 이들의 사랑은 종지부.
"미라보 다리"가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작품에 동시에 등장.
이들의 사랑과 운명이 나타나는 그림

 

 pont de passy(passy bridge), 1912

 

"마리 로랑생의 섬세한 기술은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독창적 예술의 하나이다.
그녀의 그림은 구성도, 색상도, 혹은 데생도 다른 것을 모방하지 않았다. 그녀의 그림에 영감을 불어넣는 그녀만의 감정과 감각을 볼 때 그녀의 작품 세계는 르네상스 혹은 여타의 감정과도 유사성이 없는 독창적인 세계임을 느끼게 된다."
ㅡ 기욤 아폴리네르 '타협자' 중에서


"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과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ㅡ 마리 로랑생



3. 망명 시대(1914~1920)
로랑생은 여러 연인과 교제 끝에 독일인 남작 오토 폰 뷔체와 1914년 결혼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적국의 사람으로 간주되어 로랑생은 스페인에 망명하는데, 마드리드에 머물던 시절 프라도미술관에 자주 다니며 프란시스코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공부했다.
그리고 1918년 기욤 아폴리네르의 마지막 전보와 전사 전보를 동시에 받았다.
이때 그린 회색조의 색채와 자화상은 당시 그녀의 고독과 절망이 녹아 있다.



4. 열정의 시대(1921~)
로랑생이 정식으로 파리로 돌아온 시기. 남편과 이혼 뒤 장 콕토 등 프랑스 예술가들의 탄원 속에 국적을 회복하고 재기에 성공한다.
자기 초상화를 그리는 게 유행이어서 '코코 샤넬의 초상'과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초상' 등이 이때 제작되었다. 코코 샤넬이 이 초상화를 맘에 들어하지 않아 수정을 재차 요구해 로랑생은 거부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프랑스에 기부하게 되는 재밌는 사연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코 샤넬의 초상'은 로랑생이 가장 유명해지게 된 작품이다.
이 시기 마리 로랑생 작품은 그녀가 좋아하는 푸른색이 많이 보였다.



"우아함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
ㅡ 마리 로랑생


1923년 프랑스 풀랑크가 작곡,  디아길레프 감독, 장 콕토가 구성한 발레 암사슴들(Les Biches)은 '도시적 여성들의 일상- 모던 라이프를 표현한 작품'이었는데, 로랑생이 무대와 의상, 장식 디자인을 담당해 명성을 쌓았다.

당대 인기 작가였던 마리 로랑생은 수채화나 석판화 등으로 20권이 넘는 책 일러스트를 그렸다. 앙드레 지드 <사랑에 대한 시도>(192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30),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1939) 등등.
알렉상드르 뒤마 <춘희>연작 일러스트(1936) 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대 프랑스 여성의 복식사와 패션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자료다.
유명 패션잡지 '보그'(1923)와 '베니티페어'의 표지 삽화, 르노 자동차의 첫 자동차 모델의 광고 그림도 그리는 등 당시 그녀의 인기를 짐작게 한다.

훗날 코코 샤넬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 2012년 F/W 오트쿠튀르에서 로랑생에게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발표했고, 니나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앙리는 2017년 F/W 레디 투 웨어에서 로랑생 작품이 프린트된 의상을 발표했다.


5. 성숙의 시대(1929~)
1929년 뉴욕 주식 대폭락으로 경제공황이 닥쳤다. 로랑생의 우아하고 관능적인 스타일은 파리 귀환 후 1930년대 완성되었다. 사교계에서 물러나 자기 안에 침잠한 이때는 그녀가 기피하던 적색과 황색을 더 풍부히 쓴 시기였다.
선천적 근시가 악화되어 구도는 간략해지고 모티프 윤곽도 무디어진다. 색채도 섬세함에서 선명함으로 나아간다.

"고독은 하나의 왕국입니다"
ㅡ1948년 1월 마리 로랑생의 비망록 중에서

그녀는 유언으로 장미 한 송이와 기욤 아폴리네르에게서 받은 편지 한 장과 묻어달라고 했다.

 

 

 

*사진 촬영 가능한 부분만 찍은 전시장 풍경*

 

마리 로랑생이 60세 즈음부터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세 명의 젊은 여인들'(Trois jeunes femmes), 캔버스에 유채, 97.3x131cm

 

 

 

 

 

마리 로랑생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실제 주인공이었고, 자신도 시를 썼다. 1954년 시집 겸 수필집 <밤의 수첩>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잊힌 여인"이라는 시구로 유명한 「진정제」(Le Calmant) 등 40편의 시와 10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산 굿즈 : 스티커, 클리너, 손거울

※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서 굿즈샵 풍경을 찍지 못했음;_;)

 

 

 

 


 

 

공지 

 

표가 한 장인 줄 알고 털레털레 갔는데 2장을 받았어요; 친구도 시간이 없다 그러고, 이 표를 알라딘에서 받았기에 알라디너에게 남은 1장을 건네고 싶군요.

3월 11일까지라 좀 촉박해서 근처 사시는 분께 드리는 게 나을 거 같네요^^;

3월은 pm 8시까지 관람 가능하고 월요일은 휴관인 거 참고요.

가신 분은 꼭 인증컷을 남겨 주셔야 함요-ㅅ-)! 표가 공중분해되는 거 NO~NO~

https://www.sacticket.co.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30917

가시겠다는 의사와 동네를 밝혀주시면 젤 가까운 분께 드리겠음요~

가고 싶은 의사가 열혈인 분도 참고하겠음요a;;;

등기로 안전하게 보낼게요/

아무도 없음 저혼자 또 가죠 뭐ㅋㅋ;

쾌적한 예술의 전당 가는 거 좋아함ㅎㅎ

 

 

빠르게 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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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2-27 2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마리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 주인공이었군요!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무른다.

AgalmA 2018-02-27 22:01   좋아요 2 | URL
연의 키우기 바쁘셔서 머무를 새가 없으신 걸로...-,.-)

겨울호랑이 2018-02-27 22:02   좋아요 2 | URL
ㅋㅋ 아이는 스스로 크지요, 저는 거들뿐..ㅋ

2018-02-27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2-27 21:57   좋아요 1 | URL
제가 올린 사진부분만 촬영 가능해요^^;
님 외출에 일조할 수 있다니 기쁘네요.
당첨~ 축하드려요^^

2018-02-27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2-27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뿔싸, 좀 늦게 봤네요. ㅠ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정말 참 좋네요. ^^
왜 그림이 첫눈에 좋은지 이제 곰곰이 들여다 봐야겠어요. 까만 눈동자’들’ 때문일까요? 아님... ^^

AgalmA 2018-02-27 23:34   좋아요 2 | URL
낼 시간 되세요?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12/27, 1/31, 2/28)
- 기본가에서 50% 할인 (중복할인불가, 현장매표소에서만 할인 가능)
- 할인적용 기간 : 행사 당일 오후 6시 - 8시 (현장매표소에서 티켓구매 시 적용가능)
- 야간연장개관 진행 : 오전 11시 - 오후 9시 (입장마감 오후 8시)

도슨트도 참고^^
오전 11시30분,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 오후 5시 30분 (4회)

어찌 보면 너무 흐릿하게 그린 거 같은데 시기별로 그림들을 보니 마리 로랑생만의 개성과 풍부한 재능이 눈에 확 들어와서 굿즈도 왕창 사 버린^^;

작품도 많고 잘 꾸며놔서 꼼꼼하게 보면 2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2-27 23:41   좋아요 2 | URL
내일은 평일이라 ㅠ 모레라도 출근 안 하면, 가보고 싶습니다. ㅎ
그것도 안 되면 책이라도 사봐야겠습니다.
그림이 정말 좋아서요. ^^

AgalmA 2018-02-27 23:44   좋아요 1 | URL
에구...그렇군요.
로랑생 책은 서점에 팔고 있는 게 없으니 전시장 가서 도록을 사셔야 할 듯.
굿즈가 꽤 비싸서 이것저것 사니 만 얼마가 훅 나가는데 차라리 도록을 사는 게 더 나았을 지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