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비교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소장하고 있는 종이책 까치 출판사(제3판 개역본), e book 펭귄클래식 두 책을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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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까치 출판사)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속수무책이고 여우는 늑대에게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펭귄클래식)

 

 

 

『군주론』은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 있으나 가격, 번역의 질, 챕터 요약, 충실한 부록(인명과 용어 해설 등)을 고려하면 까치 출판사가 제일 나을 듯.

 

 

 

 

 

 

 

 

 

 

 

 

 

 

 

 

 

● 현대미술 - 규모의 전쟁

마이클 윌슨 『한 권으로 읽는 현대미술』(마로니에북스)

ㅡ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보고 나니 미술, 현대미술 책이 읽고 싶어져 다시 펼쳐들기 시작~ 지금의 예술작업을 파악할 컨템포러리 미술,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어서 좋긴 한데 모든 아티스트 설명이 2페이지로 끝나니 감질남! 그러나 재밌다. 확실히 요즘 현대미술은 아이디어보다 규모의 전쟁. 규모있는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미 아이디어다. 3층 이상 크기의 무언가를 만들어보라. 그것은 반드시 이슈가 된다. 강물 위의 거대 병아리처럼.

 

 

 

 

 

 

● 당신의 책 - 어떤 말이 당신에게 가닿았을까를 생각했다

그장소,

언젠가 당신이 같이 읽자 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말하는 책이 아닐 거라 짐작해서 다른 책 읽느라 바쁘다고 헤헤헤 하며 사양했었지.

내 예상은 맞았지만 가볍게 읽기엔 재밌었다. 나와 당신과 다른 듯 닮은 사람이 많단 걸 또 느끼며.... 지금에서야 당신을 잃고 생각하며 읽는다.

진심은 우리 생각과 달리 반만 보일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도 우리는 닮았고 언제나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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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려다 보니」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사람이 되는 건지는 몰라도 무엇이 ‘현명하지 않은 행동’인지는 알고 있다.

그걸 지워나가면 되겠지.

 

때론, 기쁨은 나누면 반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배가 된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를 듣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건 힘든 마음 자체보다 더 소모적이다.

 

요청한 적도 없는 배려와 선의를 베풀고 나서

넌 왜 제대로 보답을 하지 않느냐고 호통치는 사람들.

 

해맑고 순수한 사람들은

때로 그 선의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왜, 보통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줬을 땐 나도 모르게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 물론 작심하고 할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언제나 타인을 찢어발길 준비를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렇다고 해도 내가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게 무죄가 되진 않아. 상처를 받은 사람이 과민한 게 아니라, 거기까지 미처 배려하지 못한 내가 무심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게 현대 지성인의 자세 아닐까?

그러니까 모르는 건 죄야.

늘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

 

감사는 내게 넘치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주는 것.

위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는 것과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감이고

‘그러니 난 아무 약속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함이다.

어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김나연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문학테라피), p63~65

 

 

 

 

 

● 명확히 나뉘는가

브라이언 어거스틴 외『배트맨 - 가스등 아래의 고담(A Tale of the Batman)』

어떤 생각은 경험에서만 나온다. 어떤 경험은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어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나 영웅 배트맨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린 일상에서도 이미 양면적 아니 다면적이다. 이 책에 브루스 웨인이 1889년 빈에서 프로이트와 상담하는 장면도 잠깐 나오는데, 최근 읽은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을 보면 프로이트는 인간 심리의 이원론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이른바 생 충동과 죽음 충동의 이원성은 진화론에서 유전자와 자연 선택의 결합처럼 간단명료한 정리 같기도 하지만 더 나은 종합은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사회 문화적인 힘인 '밈'까지 추가한 거겠지만.

 

 

 

 

 

 

 

 ● 또 절판?

2017년에 나왔는데 벌써 품절이다. 상황으로 봐선 이 버전으로는 다시 나올 거 같지 않다.

폴 발레리 『테스트 씨』는 테스트 씨를 캐릭터로 세우고 사유에 대해 치열히 고찰하는 소설이다.

폴 발레리가 이렇게 소설을 잘 쓰다니! 더 놀라운 것은 현상학, 철학에 꿀리지 않는 통찰!

기회가 된다면 읽어 보시길.

 

 

 

 

 

 

 

 

● 詩 - 까욱, 까아욱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Wheat Field with Crows](1890)이 연상되는 시

 

 

 

 

 

 

 

● 1일 1그림 - 게으르지만 틈틈이...

 

 

갑자기 내리던 빗속에 인상적이었던 이미지를 이제야 남긴다.

우산을 챙기지 못해 짜증 날 상황이었을 텐데도 웃으며 아가와 쌩쌩 달려가던.

두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지 않을 거 같아 나는 그 모습을 눈 속에 오래 담았다.

단지 한순간의 긍정일 뿐이더라도 이렇듯 향기롭게 퍼질 때도 있다.

행복하세요. 이름 모를 당신들.

(BGM : 신해철 & NXET "아가에게")

 

 

 

 

 

 

내가 생각하는 창작의 첫 번째 관건은 대상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뇌리에 인상 깊게 다가오면 어찌 되든 표현해 본다. 대상에 압도되기만 했을 때는 도취에 빠진다. 종교화가 대표적인 예. 상상적 실재를 좋아하는 인간인 우리는 그 분위기에 쉽게 빠진다.

글도 마찬가지인데 도취에 빠진 글은 무미건조하다. 그런 글이 숱하게 많다는 걸 모르거나 무시한다. 감상적인 글이란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나 카프카의 변신과 알레고리는 압도되지 않은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과를 무시하고 자신이 구축한 내재적 구조로 밀어붙인다. 쉽게 말하면 객관화의 성공 예라 하겠으나 아시다시피 객관과 주관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의 수용은 확률적 운이지만 인정받게 되면 '개성'이라 불린다.

내가 예술을 좋아하는 건 인과를 더 쉽게 부술 수 있기 때문. 생각하고 그리는 내 사고가 갇히지 않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1시간 정도 지나면 그리기 싫어진다. 일이 아니니까 멈춘다. 화가 되긴 그른 건가😓

신나게 그렸고

밖은 다시 어두워지고

여전히 내 옆엔 라벤더

이런 하루도 괜찮아.

무언가 남아 있는 느낌을 곰곰이 느낀다.

아냐, 남아 있다는 건 틀렸어. 이 세계는 항상 무언가로 넘친다. 나는 그 흐름을 느끼는 거고 늘 헷갈리지. 내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그래서 꽃이든 사랑이든 대상이 필요한 걸 거야. 라벤더는 벌이 필요 없지. 날 그리고 싶어 하지도 않아. 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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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다른 서점 다 둘러봐도 기형도 30주기 기념 굿즈로는 이게 최고👍 『기형도 전집』 있는데도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도 사고 싶다!!!

표지 재질이 스크래치 잘 생겨서(벌써 하나 생김ㅜㅜ) 가지고 다니는 건 안 되겠음💦

희미해서 잘 안 보일 텐데 저 『기형도 전집』 표지에 있는 타이포그래피가 필사 노트 표지 앞뒤에 프린트되어 있음!

필사 노트에 1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포도밭 묘지」가 필사 노트에 없어서 아쉽다. 내가 쓰면 되지😋📝 

 

그래서 썼다.

 

 

 

「포도밭 묘지 1」

나는 이 시에서 "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에 밑줄 그었다.



 


 

「포도밭 묘지 2」

이 연작시는 처음 읽었을 때부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마주라는 느낌이었다.

세사르 바예호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1998)에서도 골라 써봐야징~

노트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기형도 필사 노트 생겨서 필사 재미에 빠지다^^

 

 

 

• 탄산수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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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이 없다면 당신은 그저 감정적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감정에 대한 이런 견해는 수천 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플라톤도 이런 식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부처, 데카르트, 프로이트, 다윈 등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폴 에크먼Paul Ekman, 달라이 라마Dalai Lama 같은 유명한 사상가들도 이런 고전적 견해에 뿌리를 둔 설명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감정은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감정은 당신의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당신의 문화와 양육 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한다.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다. 오히려 감정은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실재한다. 다시 말해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산물이다.

내가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이라고 부르는 견해에 따르면 멀로이 주지사의 연설 중 일어난 사태를 매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멀로이 주지사의 목이 메었을 때, 이것이 내 안의 슬픔 회로를 촉발해 일련의 전형적인 신체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내가 슬픔을 느낀 까닭은 특정 문화 속에서 성장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한 신체 감각이 끔찍한 인명 피해와 동시에 일어날 경우 ‘슬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이다. 총기 사고에 대한 나의 지식, 그 피해자들과 관련된 나의 예전 슬픔 같은 과거 경험의 조각들을 사용해 나의 뇌는 내 몸이 이런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신속히 예측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은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적 구성을 바탕으로 여러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이론들의 가정이 모두 똑같지는 않지만, 이것들의 공통된 출발점은 감정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점, 감정이 매우 가변적이며 지문이 없다는 점, 감정이 원칙적으로 인지나 지각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ㅡ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과 연계해 보면 재밌다. 카너먼은 우리의 사고 작용을 “제1형 사고 -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며 때로는 무의식적이고, 연상적인 일관성”을 띤 지각과 직관, “제2형 사고 - 통제되고 의식적인 노력이 더해지며 규칙에 지배받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띤 종합적 사고가 얽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럿의 분석이나 최근 읽고 있는 여러 책을 보면 감정은 일관되고 보편적 무엇이 아니고 복잡하고 깊게 우리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즉 합리적 사고라는 경계도 매우 임의적이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자부하지 마시길. 그 속에 섞인 당신의 각종 감정과 비합리를 보는 눈이 있다. 없으면 곤란하죠.

 

 

 

내가 요즘 탄산수를 자주 마시는 이유는 《Axt》(no 23, 2019. 3. 4) 때문. 악스트 이번 호를 읽는다면 당신도 겪게 될 듯.

금주하는 사람들은 무알코올 맥주, 탄산수를 대용품으로 자주 쓴다. 나도 종종 그랬다. 맥주 마시는 시간보다 깔끔해서 좋기도 하고. san pellegrino보다는 내 입맛엔 san tavittoria가 더 맛나다. 이게 더 싼데 더 좋잖아! san pellegrino가 더 부드럽지만 santa vittoria가 더 쨍한 탄산 느낌에 짠맛이라 그런 듯. 대체로 심심한 맛보다 짠 걸 더 맛나게 느끼니까. 짜다는 게 사실이야? 왜 짜다고 느끼는 거지? 탄산수를 더 탐구해야 할 일 발생. 흐엉.

 

 



이번 호 서평 키워드는 '항구' 재밌군.

김종옥 작가 하루키론도 좋다.


◇ cover story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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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는 몇 년 전에, 문단 성폭력 문제가 수면에 드러났을 때 「나는 여성 작가입니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많은 것들이 지속적으로 말해지길 바랍니다.” 지금 그녀는 말해지지 않은 많은 것들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지면에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잘 쓰기 위해 ‘좌충우돌’ 중이라고 말했다

ㅡ손보미

그렇다. '좌충우돌' 정말 그녀 이미지다.

그동안의 인터뷰어들 생각하면 손보미 X 윤이형 인터뷰는 좀 심심했다^^; 후반에 정용준 참여 너무 짧았다. 악스트 인터뷰는 두 사람 대담보다는 복수로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게 더 재밌는 듯.

​​

focus 진이정 특집!​

📎

그것은 랩의 언어, 불량 청년의 넋두리에 가깝다. 진이정이 내뱉은 저항과 반역의 언어들, 내면의 파열을 드러내는 요설의 시는, 기본적으로 사바세계와 한판 싸움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부터 발원한다. 진이정의 시는 자기를 욕보이는 자기모멸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김수영과 닮아 있고, 시대의 추문을 사인화(私人化)한다는 점에서는 이성복이나 황지우의 시적 언술과 가깝다.

1990년대 대중문화의 자양분을 빨아들이고 대중적 전위주의를 표방한 진이정의 시는 일종의 방언이다.....(중략)....“우린, 애욕의 싸움에선 백전노장이다”(「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8」)라고 짐짓 의연함을 가장하지만 시적 자아를 지배한 것은 모호한 두려움이다.“나는 무서웠던 거야”라고 실토하는 무의식에 도사린 두려움은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이 두려움은 사랑의 불모성과 마주하고 선 자의 공포다. “창포로 머리 감은 처녀와 하루만 살고 싶다”는 순결한 사랑에의 의지는 사랑이 포르노로 대체된다.

ㅡ장석주 : 디스토피아를 건너오기

장석주 시인 시 비평도 참 좋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해. 진이정의 유고 시집이 이토록 오래 재출간되지 않는 건 시대적인 특징이 뚜렷해서 오는 거리감, 현란한 무속적 요설 때문에 지금 독자들과 소통하기 어려울 거라 짐작해 저어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 문단의 엘리트주의도 의심하고 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라고 너는 내게 말한다.

"다 가버렸어요. 응접실, 침실, 정원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려서 아무도 없지요."

나는 네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떠나버리면, 누군가가 남게 마련이라고. 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이제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고. 그저 없는 것처럼 있을 뿐이며,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곳에는 인간의 고독이 있는 것이라고. 새로 지은 집들은 옛날에 지은 집보다 더 죽어 있는 법. 담은 돌이나 강철로 된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집을 짓는다고 그 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 때 비로소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집이란, 무덤처럼,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집과 무덤이 너무너무 똑같은 점이지. 단, 집은 인간의 삶으로 영양을 취하는 데 반해서, 무덤은 인간의 죽음으로 영양을 취한다는 게 다른 거다.

그래서, 집이 서 있고, 무덤은 누워 있는 법.

모두들 집에서 떠났다는 것은 실은 모두들 그 집에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들의 추억이 그 집에 남은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 집에 산다는 말은 아니지. 집으로 인해 사람들이 영속할 수 있다는 것일 뿐. 집에서 각자 맡았던 일, 일어났던 일 같은 것은 기차나 비행기, 말 같은 것을 타고 떠나거나, 걸어가버리거나, 기어서라도 떠나버리면 없어지지만, 매일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던 행동의 주인이었던 몸의 기관은 그 집에 계속 남는 법. 발자취도 가버렸고, 입맞춤도, 용서도, 잘못도 없어졌다. 집에 남아 있는 건, 발 · 입술 · 눈 · 심장 같은 것. 부정과 긍정, 선과 악은 흩어져 버렸다. 단, 그 행동의 주인만이 집에 남았을 뿐.

ㅡ세사르 바예호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그장소...

나처럼 시를, 폐가를 좋아했던 당신. 당신은 가고 당신이 있던 자리, 내 마음 어딘가도 그리되었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다 이걸 어찌하나 울컥했다. 영원히 복기할 지점으로 남은 하나의 집. 형체는 없고 내내 맴돌기만 할 정원.

그때 ……다면 그날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당신을 좋은 곳에 데려가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찾는 이가 아니었던 게지. 그 일이 있기 전 당신은 바다를 갔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그때 당신 모습은 어떠했을까 나는 내내 그 생각을 해. 바다를 왜 그렇게 아프게 바라봤는지 이제 알게 되었지만 그건 내 비밀이 아니지.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여기까지야. 둘이 마주 보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을 우리는 이해했고 내내 포기해야 했지만 이젠 그조차 할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증오하는 일도 다시는 그처럼 할 수 없어.

힘들게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길. 이젠 좀 나은가, 당신.

당신이 보낸 엽서는 영영 바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 뜻밖의 고생

사무엘 베케트 『몰로이』(1995 초판, 절판, 희귀도서) 중고 주문이 들어 왔는데 김현 선생 번역이라 판매 불가 통보.

이 책은 특이하게 문학동네 출판사 직인이 아니라 김현 선생 도장이ㅎㅎ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몰로이』는 번역자가 다르다. 안타깝군. 사람들이 김현 선생 번역으로 보지 못하다니.

표지 그림은 박상순 시인.

임제 선사 『임제어록』(한국선문화출판사)

임제 선사 책은 국내에 제대로 된 정리본이 없었다. 몇몇 책도 그나마 최근에 나옴. 이 책은 구하기 어려우므로 판매 불가 통보. 禪 사상에 관심이 있다면 『임제어록』은 필독서.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필사도 한 애정 어린 책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볼 수 있으니깐 눈 질끈 감고 보내기로 한다ㅜㅜ



 

 

 

 

 

 

 

 

 

 

• 숨 가쁜 독서기록

오노 가즈모토 엮음 『초예측』 (웅진지식하우스)

제목과 저자 네임드에 낚인 거 맞는 거 같음ㅎ; 참고할 내용이 더러 있긴 하지만 별 셋 이상은 아님. 1, 2장을 화려하게 시작하는 유발 하라리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특히 실망스러움. 큰 줄기들은 그들 저작에서 다 했던 얘기. 일본 잡지 게재를 위한 기획이어서 일본 중심이고 한정된 지면이다 보니 모든 인터뷰가 얘기를 하다 만 듯한. 세계 전반을 다룬 예측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마이클 셔머 『천국의 발명』 (arte)

아재 유머? 미국식 유머? 가 많이 나와 ㅋㅋㅋ 재밌게 완독. 책값 안 아까울 책. 셔머의 이전 책들을 최신 정보로 보완해 좀 더 대중적으로 쓴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천도서👌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

반 정도 읽은 상태. 『스토너』 여성 버전? ㅎㅎ 가난한 시골뜨기 여성 로즈의 상경기. 어찌 보면 흔하고 별거 아닌 얘긴데 먼로는 참 귀 기울이게 하는 재주가 있음! 역시 작가야.

 

 

 

 



 

 

 

 

 

 

•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밤 사이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를 다 읽었다.

1970년대부터 자립하는 여성이 되기 얼마나 어려웠나를 보여준다. 여전히 이 세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대다수 남성들은 얼마나 이해할까. 해코지를 당할까 봐 눈치를 보는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높다. 일상조차 늘 이런 스트레스가 가득한데 양비론으로 맞서며 자기도 피해자라고 말하는 남성들은 요즘의 대안 우파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여성도 늘 피해자 방패로 나설 일도 아니다. 인식과 정치와 사회를 바꿔야지 성별 싸움으로 뭘 해결할 수 있나.

사람은 거지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지로 평가받는다. 패트릭이 로즈를 '거지 소녀'로 봤듯이.

 

• 뜻밖의 고생

우에노 지즈코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2014, 절판, 품절, 현실문화)

- 주문이 들어왔는데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이다. 이런 책을 찾아 읽겠다는 사람이 반가워 보내고도 싶은데 오늘도 일을 해야 해서 한 번 더 읽고 보낼 시간이 없다. 이걸 어쩐다 고민. 최대한 서둘러 보냈다.

 

• 선행 / 자선 / 가난에 대해서

봄이어도 추위는 좀체 떠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트럭에서 과일 행상을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대추라는 이름의 개가 담요를 덮은 채 얌전히 곁에 있는 모습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딱했다. 일에 지친 채 늦게 귀가해 과일 사기 어려운 내 처지도 생각해 과일을 샀다. 노상에서 그것도 밤에 사는 과일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지만 기부하는 셈 치고 샀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에서 이복동녀 여사가 떨어진 사과 주워 파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가 산 사과는 어느 창고에서 묵힌 듯 더 좋지 않은 상태였다. 유기농 과일 챙기는 세상에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좋은 과일을 어떻게 얼마나 팔 수 있을까. 향기도 가난한 과일을 말리며 휘발되지 않는 가난의 고리를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아득하다. 

그리고 또 그장소가 생각났다. 이번에 말린 사과를 못 보내서 슬펐다. 더 많이 더 자주 못 나눈 것도. 

 

 

 

 

 

 

『초예측』 때문에 다른 예측서들에도 관심을

혼자서도 초예측 잘 하시는

스티븐 호킹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까치출판사)

빅 퀘스천 답변에 물리학 강의가 자꾸 나와서 한참 집중해서 들었더니 머리 아픔. 도대체 이 공부는 언제 수월해지는 겨!

'인공지능과 격차 갈등' 문제는 다들 인지하고 있는 거 같고(요즘 이거 못 느끼는 사람 있나;;), 북핵으로 인한 &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핵 전쟁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게 공통적인데 내가 너무 안전불감증인가 a;; 북한이 그렇게 돌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초예측』에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말도 하심. 지구가 앞으로 1000년을 더 버텨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라!" ㅎ0ㅎ 정말 초미래적 석학!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 프래질』(와이즈베리)

요즘 미래 예측 책 보다 보니 왠지 얘도 읽어야 할 거 같아서 읽게 됐는데 참 재밌는 경제학 에세이.

탈레브에 대한 내 인상은 경제학 배운 니체? 문헌학자였던 니체처럼 고전에서 비전을 더 살피고, 호통치며 지적하는 에세이스트 모습이 니체랑 비슷ㅎ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나도 좀 못마땅하게 여겨 지적한 적 있었지만 탈레브는 한술 더 뜨네. '악당 경제학자 장하준' ㅋㅋㅋ 책에다 이렇게 써도 명예훼손 아닌 거야요ㅋㅋ

나도 통계와 자료에 너무 의존한다고 탈레브에게 까일 거 같지만ㅎ

 

 

 

 

📎 1

2009년 가을,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저명인사들과 함께 한국에 있었다. 패널 중에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부총재 다카토시 카토Takatoshi Kato도 있었다. 패널 토론이 진행되기 전에, 그는 우리에게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경제를 전망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돌렸다.

당시 나는 등산을 자주 가고 말을 천천히 점잖게 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기보다 참기로 다짐한 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토의 이야기를 듣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2000명의 한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버럭 화를 냈다. 너무 화가 많이 난 나머지, 내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프랑스어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연단으로 나가, 앞으로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예측 결과를 보여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의 경우, 카토는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경제 위기가 일어난 2008년과 2009년을 예측했던 자료를 보여줬어야 마땅하다. 그러면 청중들은 존경하는 카토 부총재께서는, 정중하게 말해서, 예측 업무에 아주 능숙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비단 카토 부총재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대하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경제와 정치 현상을 제대로 예측했던 경우의 수는 0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냥 0이다. 나는 즉석에서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잘못된 예측 결과를 내놓은 놓은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보낼 수는 없으며, 예측을 중단할 수도 없다. 또 미래를 약속하는 사람을 고용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카토의 예측을 포함한 모든 예측이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다. 바로 ‘강건함’이다.”

트라이애드에 담긴 생각은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롯되었고, 내가 느꼈던 좌절감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프래질—강건함—안티프래질은 예측 방법론에 대한 대안이다.

ㅡ 『안티프래질』, <8장. 예측, 근대의 산물>

 

 

📎 2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를 떠올리면서 어떤 조건이 다른 조건을 선행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제 악당 경제학자 장하준의, 단순한 것이 더 낫다는 식의 강력한 주장을 살펴보자. 1960년 대만의 문해율은 필리핀보다 훨씬 더 낮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만의 국민소득은 필리핀의 10배다. 당시 한국의 문해율은 아르헨티나(문해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였다)보다 훨씬 더 낮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5분의 1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국민소득은 아르헨티나의 3배다. 더구나 같은 기간 동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문해율이 크게 높아졌지만, 생활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 철저한 프리쳇의 연구에 이런 사례는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왜 이처럼 자명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단순하게 연상시키는 오류, 즉 무작위성에 속아 넘어가는 오류를 저지른다. 부자 나라의 교육 수준이 높으면, 확인도 하지 않고 교육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생각해버린다. 여기에서도 부수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추론이 갖는 오류는 교육이란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희망적 관측에서 비롯된다. 나는 사람들이 국가의 부를 퇴폐처럼 나쁜 것과 부수적 연상을 시키지 못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퇴폐나 높은 자살률처럼 부가 낳은 다른 질병이 부를 창출한다고 추론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개인에게 교육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교육은 직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용장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가를 단위로 생각했을 때 이런 효과는 는 사라진다. 교육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가정의 소득을 안정시켜준다. 상인이 돈을 벌고, 그의 자식들이 소르본대학교에 가서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된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을 다 써버리더라도, 자격증은 오랫동안 돈을 벌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국가에게 중요하지 않다.

ㅡ 『안티프래질』, <14장. 두 가지가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닐 때>

 

📎 3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최근의 것을 좋아하는 불치의 네오매니어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 밤 나는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을 만날 예정이다[타베르나taverna, (그리스 지방의 작은 레스토랑 - 옮긴이)는 적어도 25세기 동안 존재해왔다. 나는 5300년 전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의 빙산에서 발견된 남자 미라가 신던 신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발을 신고 그 레스토랑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기술로 만든 은식기를 사용할 것이다. 이것을 사용하면 양고기의 다리를 뜯는 동안 손이 데이지 않아 아주 편리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application(어떤 분야나 서비스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크게 보급시킬 계기가 된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 또는 콘텐츠 - 옮긴이)’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최소한 6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와인을 마실 것이다. 이 와인은 페니키아인의 후예인 나의 레바논 동포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유리잔에 채워질 것이다. 만약 출처가 의심스럽다면, 페니키아 상인들은 최소 2900년 동안 유리 장신구를 팔아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메인 요리를 마치고 나면, 최근 기술로 만든 수제 치즈를 먹는다. 이것은 장인들이 수세기 동안 대를 이어 변함없이 만들어왔던 치즈라서 값이 더 비싸다.

1950년에 누군가가 이처럼 사소한 모임을 예상했다면 아주 다른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따라서 감사하게도, 나는 합성섬유로 만든 반짝이는 우주복을 입지 않아도 될 것이고 스크린을 통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영양학적으로 최적화된 알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저녁식사 파트너들은 돌아가면서 내 얼굴에다 병원균을 뿜어댈 것이고, 은하계 저편에 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요리사들은 상당히 낡은 기술(불)과 로마 시대 이후 (몇 가지 금속 제품의 품질을 제외하고는) 거의 변하지 않은 주방용품들을 사용해 음식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최소한 3000년은 이어져 내려온 의자라는 물건에 앉아 있을 것이다. 이 의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위엄 있는 의자보다 덜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레스토랑으로 가기 위해 날아다니는 오토바이를 타지도 않을 것이다. 주로 걸어서 가거나 늦었다면 1세기 전의 기술로 만든, 이민자들이 운전하는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1세기 전의 파리에서는 러시아 귀족들이 택시 운전을 많이 했다. 지금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베를린과 스톡홀름에서는 주로 이라크와 쿠르드 난민들이, 워싱턴 D.C.에서는 주로 에티오피아 출신의 박사후과정 학생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주로 음악을 좋아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뉴욕에서는 국적을 불문한다).

데이비드 에드거턴은 21세기 초반에 우리는 자동차에 비해 자전거를 2.5배나 더 많이 생산하고 있고, 기술적 자원의 대부분을 기존 장비를 유지하거나 기존 기술을 세련되게 다듬는 데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이런 현상이 단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구 도시들은 자전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 있는 기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 꺼리는 콘돔 제조 기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콘돔은 기술이 별로 필요 없는 제품으로 여겨지길 원하지만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의미 있는 개량 과정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따라서 가장 커다란 실패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해보라는 주문을 받으면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여기에 새로운 기술과 제품, 그리고 이치에 맞는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더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발전의 연장선에서 이론적으로 숙명이라 여겨질 만한 것을 이끌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소수의 비관론자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에 따라 주로 자신의 소망에 이끌려 미래를 표현하려고 한다. 결국 미래에는 우리들의 소망이 녹아 들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지나치게 기술화하고 앞으로 1000년 동안 우리가 마주하게 될, 여행용 가방의 작은 바퀴와 같은 기술의 위력을 과소평가한다.

ㅡ 『안티프래질』, <20장. 시간과 프래질>

 

 

 

 

 

 

 

제프리 웨스트 『스케일』(김영사)

그림을 제시하며 설명하는 대목이 많은데 e book에서는 그림이 많이 빠져 있네요. 보완이 좀 필요할 듯.

아무튼 내가 읽은 올해의 책 10위권 순위에 들어갈 책.

읽다 보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잃어버릴 수 있으니 이 책을 두 권 사라고 강력 추천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래요. 저는 종이책이랑 e book 두 권 샀다는ㅋㅋ

생물학과 물리학의 절묘한 만남!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쓴 유현준 저자에게 추천하고픈 책. 주제넘은 말이지만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왜 '도시'는 이렇게 형성되었는지, 보일러'가 왜 중요했는지 님의 주장보다 더 타당한 추론도 나오거든요.

비교하기엔 제프리 웨스트가 압도적으로 우월한 건지도;

1993년 미국의 초전도 초충돌기(SSC) 계획 취소로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방향 전환한 게 제프리 웨스트에게는 전화위복이었는지도.

저자도 고민했듯이 그리 재밌게 쓴 건 아니지만ㅎ 정말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는 책.

탈레브와 마찬가지로 분야 통합적 통찰, 세계의 비선형성, 복잡계 파악이 앞으로 미래 예측의 관건.

 

 

 

 

 

 

 

 

 문학동네 북클럽 영화 시사회 <콜레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삶이 워낙 다채롭다 보니 작가적인 면보다 그녀가 작가가 된 시점까지의 파란만장한 행적들을 보여 준다. 난봉꾼 작가 남편을 만난 콜레트는 그의 비서 역할을 하며 착취 당하지만 그 시대 여성들이 대개 그렇듯 나름대로 만족하며 산다. 여러 대필 작가를 두고 작가 사업을 하는 윌리는 경제 사정이 최악에 이르렀을 때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처박아두었던 『클로딘』을 첨삭 수정해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클로딘』 은 대필 작가가 부족하자 윌리가 콜레트에게 소설을 써보길 권유해서 나온 작품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온 이야기를 담은 『클로딘』은 콜레트가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썼고 암묵적 강압으로 유명 작가인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했는데 어이없게 대박! 시리즈로 계속 쓰게 됐고 연극 상영까지.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이 책의 판권 소송까지 이야기가 길다.

 

연기 잘하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윌리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장면이 압권.

일화 중심이다 보니 영화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전기 영화치곤 재미는 있다. 별 ★★★

문학동네 시사회니 당연히 책을 파는 홍보도ㅎ

영화가 콜레트의 작가 초기를 다룬다면 문학동네에서 나온 『여명』은 50대가 된 콜레트의 이후 삶을 조망할 소설. 자전성과 소설의 묘한 줄타기는 콜레트 작품의 특징인 듯.

 

 

 

 

 

 

지만지에서 나온  『방랑하는 여인』이 콜레트가 자기 이름으로 낸 첫 책.

 

 

 

북클럽 문학동네 오픈 행사엔 유일하게 참여한 거 같은데 이런 다양한 이벤트 좋군요🌸

김금희 & 이다혜 GV는 들을 만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관객 질문들이 평이. 북클럽 회원이면 책도 많이 읽는 사람들 아님? 열혈 책 마니아라고 하기엔 실망스러운 질문들이었다.

나라면 콜레트와 뒤라스의 비교를 요청했을 텐데 까임ㅋㅋ 먼저 손들걸~

콜레트가 시골 출신이라 소설에 자연친화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지만 68 혁명, 히피 문화가 그랬듯 다분히 벨에포크 시대 자유 지향적인 파리지앵의 영향이 그녀의 삶 전반에 녹아든 거 같다. 프랑스에서는 콜레트를 국장까지 치를 정도로 높이 평가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그 후대를 잇는 여성 작가 뒤라스가 더 유명하지 않나. 당신들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내 답은 담론을 탑재한 차이라고 본다.

윤이형 작가는 《Axt》인터뷰에서 그간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페미니즘이 강렬히 요구되는 시류 속에서 최근 작품에 그런 시대적 고민을 담는 데 고심한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자기 정체성 고민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김금희 작가가 지금 시대 속에서 고민하는 주제성은?

 

 

 

 

•  뜻밖의 고생 - 오늘의 음악

내가 고생스럽다고 하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게 어딨더라 찾는 것부터 일이다.

책만 파는 것도 아니다. 음반도 판다. 스트리밍 무제한 감상만으로도 만족하는 소박한 음악 감상인이 되었으므로.

가뭄에 콩나물 나듯이 가끔 중고 음반 주문이 들어오는데, 책 사는 사람보다 더 반가운 게 시디 사는 사람.

내일은 This mortal coil [blood](1998) 음반과 안녕. 다시 들어도 좋았다. 수록곡이 무려 21곡인데 다 좋아! 요즘 같으면 음반 두 개로 나눌 텐데ㅎ;

시디 튐이 없는지 체크해야지. 이러다 진정한 장사꾼이 되... 기는 뭘, 내 능력에 췟. 미니멀리스트 되기 참 고달프다. 많은 취미생활도 이젠 버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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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29 0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탄산수 대목에서 움찔^^; 무알콜 맥주와 탄산수를 아무리 마셔봐도 알콜과 대체불가능임을 느껴서ㅠㅠ;; 좋아요 여러번 누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기형도 전집 갖고 있는데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살까말까 합니다. 필사노트도 갖고 싶고-_-;;;;

AgalmA 2019-04-10 00:46   좋아요 0 | URL
그...그렇습니까^^; 탄산수도 습관이라 콜라처럼 계속 찾게 돼요. 맥주도 그런 게 있겠죠ㅎ;
저도 기형도 전집이 있어서 트리뷰트 시집 사서 겨우 필사 노트를 받긴 했는데 하나 더 갖고 싶어서 고민 중이오ㅎ;; 하나로 만족 못하는 인간의 심리여ㅜㅜ

2019-03-29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0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3-29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정도 페이퍼 쓸라믄 시간이 엄청나겠는데...늘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

AgalmA 2019-04-10 01:50   좋아요 1 | URL
이젠 여긴 공공장소 같아서 시시콜콜하게 매일 올리는 게 좀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남기는 책기록을 모아서 올리다 보니 이리 되네요^^; 너무 많아서 추리고 추려서 올리는 게 이 정도입니다ㅎ;;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3-29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애호가는 못 되는 수준입다만, LP판위에 바늘이 처음 떨어졌을 때 그 소리를 무척 사랑합니다^^:) 시디 이야기가 나와 뜬금없이 말해봅니다. ㅋ

AgalmA 2019-04-10 00:52   좋아요 1 | URL
저는 그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심장마비 올 거 같이 긴장되어서 오히려 싫더라고요ㅎㅋ;;;
책보다 부피는 덜 하지만 시디도 보관하기 어려워서 이젠 모으기 벅차네요
 

 

 

현재 1,000여 권의 책을 정리! 이걸 언제 다 정리하나 한숨 푹푹 쉬었는데 매일 꾸준히 하니 이것도 정리가 된다. 하자고 들면 안 될 건 없다. 적어도 책 정리는. 자자, 힘을 내서 나머지도!

※ 알라딘은 모바일 바코드 업로딩이 돼서 아주 편하다!

이런 기회로 책 상태도 살피고 재밌는 연결도 만들어보는 재미

<문학 /소설>

줌파 라히리 『저지대』

헤르타 뮐러 『저지대』

- 언제 저지대 이어 읽기 해봐야겠군ㅎ

 

 

 

 

<희귀도서 / 절판 / 품절>

앙토냉 아르토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션끼에비츠 외 『폴란드 문학의 세계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여자들』

- 찰스 부코스키는 신간도 열심히 나오면서 이전 책도 열심히 품절되고 있는 재밌는 작가ㅎ;

민음 세계시인선 리뉴얼판으로 또 신간이 나왔던데 『창작 수업』,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ㅋㅋㅋ 문장 잽 날리기 고수인 부코스키 입담에 어울리는 제목👍

나는 찰스 부코스키만 생각하면 눈물겨우면서도 푸풉~ 웃음이 나와

 

 

 

 

 

 

 

 

 

 

 

옛날책 모아보니 운치있다^^

• 러시아 시집

알렉산드르 블로크 · 표도르 솔로구프 · 미하일 쿠즈민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

(열린책들의 흑역사? 열린책들에서 나온 옛날 시집)

• 청하출판사 시집 표지 디자인은 지금 봐도 예술!

좋아하는 시인만 말고 더 많이 모았어야 했어!

잉게보르크 바하만 『소금과 빵』

실비아 플라스 『거상』

프랑시스 퐁쥬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H. M. 엔첸스베르거 『늑대들의 변명』

옥파비오 파스 『태양의 돌』

같은 제목으로 창비에서 나온『태양의 돌』은 라틴아메리카 현대대표시선으로 파스의 단독 시집이 아니다.

파스 시론집 『활과 리라』도 품절 상태던데(이 책도 좋죠)

• 셰이머스 히니 『북쪽』

한겨레도 시집을?

셰이머스 히니 시전집이 문학동네에서 나왔는데 43200원이라는 거금;; 노벨문학상 시인이라 큰 노력하신 듯;

• 중국시

정우광 엮음 『뻬이따오의 시와 시론』

• 단편소설

베르톨트 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브레히트는 시와 희곡으로 유명한데, 단편소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유명한 거 챙겨 읽기도 벅차지만^^;

 

 

 

 

 

 

 

 

 

 

 

 

 

 

 

 

 

 

 

 

 

당장 팔 생각이 없는데 왜 자꾸 주문이 들어옴😭;;;

이거 팔면 살 수 있는 책이 몇 권이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집과 이별할 생각이 없다.

진이정 당신은 왜 이리 유명한가.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세계사)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에 김현 선생 해설이었다면 진이정 시집은 황현산 선생 해설이어서 어찌나 좋은지!

기형도만 키우지 말고 진이정 시집이나 재출간하시오! 이연주 시 전집도 나왔잖습니까~

 

 

 

 

뜻밖의 고생은 계속된다.

책 정리를 하면서 요며칠 눈 뜨자마자 나를 기다리는 건 중고 주문😑

나는 중고도서 보낼 때 커피 스틱이나 연필, 굿즈들을 함께 보낸다. 후딱 없애고픈 게 아니라서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있고, 좋은 책 보는 분께 보내는 응원으로!

택배 포장을 하며 하루를 시작해야 하다보니 출근이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

스트레스 해소로 커피와 젤리(마이구미 딸기 넘 마시썽!)를 마구 섭취 중.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 뇌과학, 인지심리학, 경제학 필독서. 강력 추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이 책을 『국부론』, 『꿈의 해석』과 동급 수준이라고 말한 게 과찬이 아니다. 자주 읽기 위해 종이책 팔고 이북으로 살 계획.

 

스털링 P.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허연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초판, 희귀도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시를 읽는 게 좋다. 죽음이 햇살보다 잘 녹아 있으니까.

허연 시집은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는데도 더 비싼 이 시집을 굳이... 그 맘 모르는 바 아니다. 구판 디자인으로 읽을 때 더 잘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안 판다!

이성복, 기형도 등의 영향이 느껴지는 시가 많지만(이성복 시의 제목, 문장, 구조, 시적 정황을 리메이크한 게 특히 티가 나는데) 그럼에도 허연의 개성과 성찰이 담긴 문장들이 있다. 이성복 시와 비슷한 「그날도 아버지」 경우 "당신 분노의 발끝도 모르는 세상 한가운데" 같은 마지막 문장.

 

 

 

안녕, 너희들을 나란히 보는 것도 마지막.

에밀 시오랑(1911~1995)은 품절, 절판이 자주 되는 작가이고, 마니아도 꽤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절망의 끝에서』로 꽤 입소문이 난 작가였는데 오랜 절판 속에 있었다. 2004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독설의 팡세』(1952)도 한동안 구하기 어렵다가 다시 재출간한 걸로 알고 있다. 2103년 챕터 하우스에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두 권이 나와 환호했는데 또 품절 사태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나 『독설의 팡세』는 e book까지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는 종이책도 품절이고 e book도 없다. 그리 오래된 책도 아닌데 출판사가 왜 이렇게 진행했는지 모르겠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1934년 시오랑의 첫 작품이다. 이 책으로 그는 신예 작가에게 주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1973)는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시종일관 말하고 있다.

모국어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사유를 적어나간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존재 조건에 대한 증오와 무관하지 않다. 불면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유혹 속에 삶을 분석하는 그의 글들이 탄생했듯이.

📎

"조상을 향한 끊임없는 반발 속에서 나는 평생 동안 나 아닌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스페인 사람, 러시아 사람, 아니면 식인종이고 싶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기를, 자신의 것 이외의 다른 모든 조건을 가져 보길 원한다는 것은 결국 망발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절대를 가리키는 모든 단어들을 읽어 본 날, 나는 내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조국과 언어를 잘못 택했음을 깨달았다."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4. 「그저 그렇게 세월 따라가고 있죠」

 

 

 

예전에 그의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내 생각을 대변해 준 듯해 동감으로 호응했다면 지금은 그를 이해하며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의 말처럼 "사람들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끊임없는 그 '잠깐 생각해 본 것'일 뿐"이라는 걸 실감하기에. 물론 그는 '객관적'이라는 것도 비판한다.

📎

"객관적이라는 것은 물체를 다루듯, 시체를 다루듯 다른 사람을 취급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해 장의사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이제 나는 전보다 내 사유를 좀 더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사유 몇몇과는 안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상이 필요하지 않고 당신도 알다시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그가 쓴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난파의 느낌 때문에 나는 그의 글을 읽는다. 처음엔 이해한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이윽고 조용한 소용돌이 속에 아무 두려움 없이 휘말리며 내가 흘러가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 정말로 나는 흘러간다. 그러나 진짜로 물에 빠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너무 멋지겠지만! 나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며 다시 이해한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보이고, 그가 말하는 것을 내가 이해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그리고 흘러간다. ……. 이 모든 것은 심오해 보이길 원하고 있고 또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는 그것이 난해했을 뿐이라는 것, 진정한 심오함과 가장된 난해함 사이의 간극은 계시와 변덕스러운 기분 그 양자의 사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5. 「비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1987년 절필하면서 낸 『고백과 저주』가 출판되길.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의 개정판이 2020년『태어났음의 불편함』이란 제목으로 드디어 등장! 정말 적절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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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8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9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3-08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애독서였던 <지금 이 순간~~> 제 글에 무지 인용을 많이 했던 책이죠. 아니 페이퍼 쓸 때 인용문을 많이 넣었죠.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도 사서 꼼꼼히 읽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 못했어요.
요즘 새 책으로 다 바꾸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책이 오래되니까 먼지가 앉고 누렇게 되고 그래서요.
님의 책들을 보니 새 책이 더 갖고 싶네요. 그런데 이미 읽은 책들을 새 책으로 구입하는 건 낭비이고 욕 먹을 짓이겠죠.
참기로 합니다. ㅋ
책 구경 알차게 하고 갑니다 .

AgalmA 2019-03-09 14:07   좋아요 1 | URL
에밀 시오랑은 제가 옮겨적은 문장이 가장 많은 작가이기도 한데요. 예전에 절판이 오래여서 도서관 대출해 읽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ㅎ;;
지금 그의 글을 읽어보면 예전만 같진 않아요. 문장은 참 아름답고 공감되는 게 많지만 비합리적인 사유, 독선도 꽤 많아서요ㅎ;

저는 구판 팔고 새로 사는 경우 꽤 있어요. 번역책은 개정판이 대부분 좋으니까요. <이기적 유전자>나 <감시와 처벌> 경우도 구판 번역보다 개정판이 오류도 많이 잡고 뜻도 제대로 잡힌 게 많더라고요. 절판이 아니면 구판은 값 더 떨어지기 전에 빨리 파는 게 낫죠ㅎ;;
한국 시집은 번역 문제 같은 게 없으니 저는 구판을 그대로 갖고 있죠^^;

겨울호랑이 2019-03-10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저는 가져가야할 이유를 여럿 만들어 쉽게 못버리는데그래도 1,000권 정리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서재에 쌓아둘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머리에, 가슴으로 옮겨야 하는데, 이 이사는 평생 걸려도 하지 못할 듯 합니다. ‘우공이산‘하는 마음으로 해내가야겠지요...

AgalmA 2019-03-10 09:16   좋아요 2 | URL
일단 나중에 처리하기 쉽게 올려두기라도 하자 싶어서 업로드했는데 계속 주문이 들어오니 참 난감하더라고요. 도서관에 있거나 앞으로 더 읽을 거 같지 않은 책은 그냥 팔기로^^;; 현재 사고 읽는 책도 소화를 못하면서 욕심부려봐야 세월만 더 흐르고...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사는 거 겪으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는;;;
겨울호랑이님이야 깊이 있는 책들을 많이 읽으시니 쉽게 팔 수 없는 게 당연하죠ㅎㅎ
 

차 시간이 임박해서야 도착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걸로 예매했다는 걸 눈치챈 이 바보😱는 그래서 1시간 반 뒤의 새 표를 울상으로 끊고 이 텀을 이용해 북플을 열었다. 북플 이웃 마실을 2시간째 하고 있는데 이러다 도착할 때까지 하고 있을 거 같다; 책 4권이나 가져왔는데 이게 뭐야;;; 장시간 이곳에 있다가 사이버지만 내 집에 아무것도 안 남기고 가는 것도 머쓱해 이 글을 쓴다. 


○ 리뷰 쓰기의 어려움이 아니라 리뷰 올리기의 어려움


리뷰를 올리려는데 자꾸 페이퍼로 올라간다. 몇 년째 북플을 이용해도 북플 리뷰 쓰기는 당최 모르겠다. 되면 어, 됐다!고 안 되면 힝...이다. 모바일 웹으로 리뷰 쓰면 이미지 첨부가 안 되어서 그냥 포기한다. 애초에 모바일과 웹 병행을 고려하지 않은 게 불만이다.
중구난방 이미지 배열과 레이아웃 조정이 어려워 북플 페이퍼 쓰기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 포스트-잇 플래그 vs 알라딘 born to read 스티키 북마크


​포스트-잇 플래그는 44x6mm 9색 180매
본투리드 스티키 북마크는 30x8mm 3색 72매 : 양이 적어 금방 쓰기 때문에 클립을 빼고 양을 늘려주면 좋겠다. 색상 혼합용도 최근에 샀는데 내 취향엔 무채색이 더 좋다.
둘 다 폭이 두꺼워서 반 잘라 쓴다. 표시용이기 때문에 얇은 게 좋고 아껴 쓰기 위해서도. 좀 귀찮아도 이거 살림에 보탬이 됩니다ㅎ 자원을 아낍시다. 자원을ㅎ

분량으로는 포스트-잇이 훨씬 좋지만 깔끔함과 아름다움에서는 본투리드 쪽이... 포스트-잇보다 좀 더 두꺼워 구겨짐이 덜하고 컬러 부분을 작게 줄여 정확하게 붙일 수 있도록 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실제로 써 보면 느낌이 정말 좋음! 결론은 둘 다 쓴다. 이게 뭐야ㅋㅋ

 


 

 

 

 

 

 

 

 

 

 

 

 


○ 의미없이 마시고 읽기 어려운 때


졸음과 한숨을 잠깐이라도 몰아내기 위해 바깥에 나와 숨을 쉬면서 독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분을 느낀다.
추워 죽겠는데 나는 왜 굳이 찬 탄산 음료를 마시고 있는가를 탓한다ㅡ물론 이 원인을 알고 있다. 제프 다이어가 캄보디아에서 지뢰에 한 다리를 잃은 소년에게서 산, 몰락한 디트로이트 시티에서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하며 마시는, 콜라들 때문이지. 눈 둘 풍경을 찾는 내게 ‘現代‘라는 기호가 밀려온다. ‘현대‘라는 단어는 ‘지금의 시대‘를 뜻하기도 하지만 참신함이나 혁명적인 혹은 멋지다는 뜻에서 ‘현대적‘이라 표현하는데도 쓴다. 지금 내 눈앞의 저 現代는 어느 기업의 기호이자 그와 같은 부를 얻고자 하는 자들의 열망을 부추기는 욕망의 기호이자 더 현대적으로 바뀌길 바라는 舊 現代다. 요즘 흔한 영어가 아닌 한자라 더 기묘한 인상을 준다. 저 現代에는 화장실이 급할 때 찾는 즉각성, 절박함이 없다.
무엇을 내보이고 무엇을 삼켜야 할까. 여기서는 거의 문학적 기술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실즈와 제프 다이어 책을 읽으며 더욱 그러한 생각을 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와중에 두 사람은 각각 다음 책들을 냈다. 실즈의 책은 기대보다 더 좋았고 다이어의 책은 호평이 좀 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두 책 다 지금의 내겐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오늘날 지적으로 엄격한 작가가 대처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는, 기술적으로 좀 더 세련되고 따라서 좀 더 본능에 가깝게 느껴지는 형식들 때문에 문학이 주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그런 형식들로 글을 써도 좋고, 그런 형식들에 대해서 써도 좋고, 그런 형식들을 통해서 써도 좋고, 그런 형식들의 전략을 전유해서 써도 좋다. 하지만 진공 상태에서 계속 써 나가는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소설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서 발명된 형식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한다. 내가 아는 서른 살 미만의 사람들은 다들 놀라울 정도로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다. 소설은 공예품이다. 골동품 애호가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은, 과학처럼, 전진한다. 형식은 진화한다. 형식은 문화를 위해서 존재하고, 형식이 죽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소설이 음울한 것이 된 지 오래이므로……˝
ㅡ5장 <상처와 활>

“성공적인 작품은 객관적인 모순을 그럴싸한 조화로 풀어내는 작품이 아니라, 다듬지 않은 순수한 형태 그대로의 모순을 가장 내밀한 구조에서 체현함으로써 오히려 부정적으로 조화의 발상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_아도르노
ㅡ6장 <모든 훌륭한 책은 결국 작가의 이가 깨지는 것으로 끝난다>
: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호사스럽고 아늑한 곳에서 그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이 무지 행복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사실은, 정말 울었던 것 같다. 나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누가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마음먹었다. 당신에게 이런 저녁이 있는 한, 누가(나는 계속 “누구”와 “당신”과 “나”를 섞어가며 쓰고 있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십 대가 불꽃과 야망,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이십 대보다 낫다. 심지어 한때 당신을 움직이게 했던 그 희망들이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렸던 삼십 대보다도 낫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내가 말했다. 스스로 한 말에, 그 성숙함과 통찰, 그리고 거기에 담긴 지혜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나는 그 비슷한 말들을 계속 지껄여댔다.˝
ㅡ<호텔 오블리비언 - 암스테르담의 기억나지 않는 행복>
: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계속 컴 화면을 노려보며 주변을 배회하기도 하면서 1월엔 그 날 이후 결국 아무 리뷰도 쓰지 못했다. 각종 허망함 속에서.

두 개째의 캔을 딴다. 외양은 탄산 음료를 따고 마시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내 맘은 전혀 다른 의미다.



던바의 수 150명도 내겐 벅찬 듯;; 미처 방문 못한 이웃에게 죄송;;; 다음에 들를게요.
그럼 모두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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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04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님, 어머님 기다리고 계신 집으로 가는 길에 쓰신 거군요. 잘 다녀오세요.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편안한 시간 잘 보내고 오세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AgalmA 2019-02-04 14:41   좋아요 1 | URL
앗, 그러고보니 서니데이님 서재 들르는 걸 깜빡했군요;;

서니데이님도 설 연휴 잘 쇠시길^^

2019-02-0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9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04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남은 제프 다이어의 책이 있었네요...

메리 설날되세요 !!!

AgalmA 2019-02-09 15:04   좋아요 0 | URL
제프 다이어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 마침내 첫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명절에도 책과 함께 이셨겠지요? ㅎㅎ

moonnight 2019-02-04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쉬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AgalmA 2019-02-09 15:05   좋아요 0 | URL
명절 연휴 잘 보내셨나요^^ 2월도 평안히 즐거운 나날 되시길. 책의 압박은 좀 덜 받으시길 바라고요ㅎ;;

단발머리 2019-02-0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마크 스티키 이웃님에게 선물받아 한 번 써보고 나서 양이 적고 비싸걸 알지만 계속 사게 되는 ㅠㅠ
그런 면에서 클립 빼고 양을 늘려달라는 아갈마님 지적에 물개박수를 짝짝 칩니다.
반으로 잘라쓰는 신공을 배웠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갈마님, 메리 설날이요^^

AgalmA 2019-02-09 15:07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 스티키 북마크 깜찍해서 선물하곤 했는데요. 클립은 당최 쓸데가 없어요ㅎㅎ;
반 잘라 쓰는 걸 활용 안 하시는 분들이 꽤 되는 것에 좀 놀랐습니다. 이게 붙여놓는 거 외엔 크게 쓸 일이 없는데 너무 크잖아요!
명절 잘 보내셨나 모르겠네요^^
 

 

 

 

책 모으는 재미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 실컷 읽을 생각만 했다. 벗의 죽음 뒤 남은 가족이 책 처리에 애먹는 거 보니 나는 참 이기적으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했다. 죽고 난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사무치게 느꼈다. 나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선 최선을 원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최소한도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생각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중고도서 DB에 올려 처리하기 쉽게 만들어 놔야지 했다. 벗이 내게 주고 간 교훈이 많다.

가지고 있는 동안 다 읽으면 원이 없겠네...

 

 

 

 

● 극복의 노력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난 슬픔에도 우울에도 잠식되지 않을 거야.

이건 대상 집중에서 빠져나오려는 리비도의 작용이기도 하겠지. 그렇더라도 나는 무력하게 끌려다니지만은 않겠어. 내 상황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끊지 않는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겠어.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과학으로 끌어올리려 하다가 한계를 느껴 해석학으로 폭을 넓힌 게 흥미롭다.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과학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니 당연.

프로이트가 개진한 개념들을 종합해 조감할 수 있어 프로이트 전집에서 이 책을 처음 읽는 것도 좋겠다.

"리비도"와 "이기적 유전자"를 이어서 생각해 본다면?

📎

"우울증의 특징은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자기 비하감을 느끼면서 급기야는 자신을 누가 처벌해 주었으면 하는 징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를 갖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우울증의 상황은 우리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특징들이 다 슬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예외란 바로 슬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자애심(自愛心)의 추락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모두 동일한 특징들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깊은 슬픔에도 우울증과 똑같은 고통스러운 마음,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상실(외부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기시키지 않는 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로 사랑하던 사람을 대신할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던 이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행동도 금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자아의 억제와 제한이 오로지 슬픔의 감정에 빠져 버린, 따라서 다른 목적이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다. 이런 슬픔의 태도가 우리에게 병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실은 우리가 그 슬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슬픔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슬픔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듯싶다. 현실성 검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사랑하는 대상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 대상에 부과되었던 모든 리비도를 다 철회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물론 이런 요구는 당연히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런 반발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랑하던 대상을 대신할 대체물이 보장되더라도 리비도적 입장을 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발심이 너무 강하다 보면 현실에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환각적인 소원 성취의 정신병을 매개로 하여 예전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그래도 현실에 대한 존중이 우세하게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그 현실의 명령을 그 즉시 따르지는 않게 된다. 말하자면 현실의 요구와 명령은 조금씩 조금씩, 많은 시간이 경과되고, 많은 에너지의 소비가 있고 난 뒤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잃어버린 대상은 마음속에 계속 존재하게 된다. 결국 사랑하던 대상에 리비도를 집중시켰던 때의 어떤 기억과 기대가 각기 되살아날 때마다 리비도가 과잉 집중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을 존중하는 가운데 리비도의 이탈도 이루어진다."

 

 

이 책 다음으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 책 중 제일 손이 안 가기도 했지만 정말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는 정보적인 것만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나는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보려 하기 때문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을 찾아 읽으면서도 마음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서도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찾는다. 매 순간 양가적이다. 하루 종일 자고 또 자면서 나를 달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 일을 하러 나가고 책을 읽는다. 벗이 내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내내 곱씹으며 '왜 그랬을까',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같은 수많은 자문자답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내게 더 이상 기댈 수 없었을지도 몰라.' 내가 타인에게 그렇듯이. '내가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 자책의 순간이 오면 입술을 깨물고 지나가길 기다린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이랬다면 저랬다면' 원망의 순간이 오면 얼른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린다. 아무리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심연에서 발이 묶이고 그러다 보면 이렇듯 멍한 채 일어나 아침을 맞는다. 하루라도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우리는 결코 홀로 자신이 되지 않는다. 섬은 바다가 있기에 다른 육지들이 있기에 섬이다. 섬 속에서 섬을 알게 되듯이 고통은 고통을 통해서야 만 발견할 수 있다. 많이 겪었다 생각했는데 苦 앞에 나는 늘 이리 어린아이다.

 

 

 

 

 

※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는 신호로 이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드리고 여러분 각자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힘을 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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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1-25 15:19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안이죠. 저도 늘 준비한다 하고선 내일 내일 하며 챙기지 못하고 있었어요.
늘 늦죠.
모쪼록 건강하시길!

겨울호랑이 2019-01-16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이유지만 절판이나 품절되는 종이책들을 생각하면 전자책으로 갈아타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원서를 읽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쉽진 않네요...

AgalmA 2019-01-25 15:19   좋아요 1 | URL
시간이 많은 것도 내 생각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싶으니 장기적인 계획으로 읽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현재 저는 지금 필요하다 싶은 책들을 읽으며 폭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싶습니다. 절판/품절 책까지 꼼꼼히 챙겨 읽기 참 힘듭니다^^; 겨울호랑이님은 저보다 더 잘 해나가실 수 있겠죠 :)

2019-02-11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2-16 21:40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이런 급사 소식을 많이 접하니 참 울적합니다.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어쩔 수 없는 일이죠.
염려하는 맘이신 거 아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