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 세계사에서 포착한 경제의 전환점 5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황선종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20년 넘게 세계사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역사를 쉽고 재밌게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한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로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는 경제가 주도하는 이 시대에 향후 미래를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세계 경제 전환점’ 51개 중심으로 흐름을 살펴본다.
    
책의 목차와 서문만 봐도 책의 전체 윤곽을 잘 알 수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 요약을 잘해주고 있다.

 

“서장은 화폐의 탄생에 대해 살펴본다. 은화와 동전이라는 두 개의 화폐 체계 가운데 은화에는 4000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제1장과 제2장은 유목민과 상인이 이끌어간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와 대서양의 자본주의적 해양 경제의 부흥을 서술한다.
제3장과 제4장은 바이킹 세계에 속하는 북해의 소국 네덜란드와 영국이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를 쌓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식회사, 국채, 보험, 지폐, 중앙은행, 상품거래, 주식거래, 버블 등의 발생을 살펴본다.
보통 일반적인 세계사에서는 그다음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서술하지만 이 책은 제5장에 금융시대의 도래에 관한 내용을 배치했다. 미국독립전쟁과 나폴레옹전쟁에 엄청난 군사 비용이 소모되면서 유럽이 금융의 시대에 들어서고 로스차일드 가문 등 유대인이 대두했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다. 제6장은 산업혁명과 대규모 철도 건설 등 유럽을 중심으로 단일 경제 세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그린다.
제7장은 영국의 파운드가 패권을 잡는 모습을 기술한다. 영국이 교묘하게 사상 최대의 해양제국을 구축하고, 재정 부문을 맡은 유대인이 파운드를 조종하여 은화의 시대에서 지폐의 시대로 전환해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제8장은 신흥국 미국이 19세기 말의 20여 년 사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제9장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유럽 경제가 몰락한 뒤 달러가 세계 통화가 되고 단일 세계 체제로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모습에 대해 서술한다.
제10장은 1970년대 닉슨쇼크 이후 달러의 황혼 시대, 달러가 힘을 잃고 기세가 붙는 아시아 경제를 다룬다. 인터넷을 활용한 금융의 확대, 일본버블 붕괴, 세계 규모의 증권버블 붕괴(리먼쇼크) 등과 함께 글로벌경제가 진행되면서 미국 경제가 공동화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바뀌어가는 격동기를 살펴본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예측할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폐의 탄생과 발달
“부란 화폐가 아니라 화폐로 살 수 있는 상품이다” ㅡ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화폐는 유목민과 상인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물품 교환증이었으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4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 이라크, 파키스탄, 중국의 산서성이 지금은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지역이 된 건 흥미로운 점이다. 지역적 폐쇄성을 바탕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거 같다.
“고대에 가장 풍요로운 농업 사회였던 이집트는 동쪽과 서쪽은 사막으로 둘러싸이고, 남쪽과 북쪽은 폭포와 바다로 막힌 폐쇄된 사회였기 때문에 물물교환이 2000년이 넘도록 이어지며 금속 화폐가 늦게 출현했다.”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던 유럽이 무역과 세계 진출에 활발했던 게 향후 세계 제패로 이어진다.
두 번 째로는 자본주의 경제로 발전하지 못한 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화폐의 기능을 주로 3가지 기능으로 보는데 “① 가치의 교환 수단, ② 가치의 계측 수단, ③ 가치의 보존 수단”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폐에는 제4의 기능이 막강해졌다. “④이자로 인한 자가증식”. 이 기능이 ‘금융’으로 이어져 자본주의 경제를 탄생시켰다.
‘이자 소득’의 막강함을 잘 알았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공동체 내의 이자 소득을 금지했지만, 로마제국이 고향에서 추방해 망국민이 된 유대인의 종교는 예외적으로 타민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을 인정했다. 유대인이 지금 경제 세계의 주축이 된 배경이다.
10세기에는 수학·부기 등 이슬람 문화가 상인에 의해 유럽에 전해지며 상업이 광역화·대규모화되었고 이로 인한 화폐 부족 현상은 신용경제(이슬람의 어음·중국의 지폐)를 확대했다.
    


    
● 대항해 시대 이후 경제 중심의 이동
“생태계의 변동을 동반하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대규모 동·식물 교류를 아미레카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Crosby)는 ‘콜롬버스의 교환’이라고 불렀다.”

 

 

대서양 주변에서 15세기에 시작된 대항해시대에는 미개발지 대서양이 상업을 토대로 개발되면서 ‘토지와 노동력의 상품화를 토대로 화폐를 활용하여 최대 이윤을 올리는 자가증식 구조’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의 틀이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서양의 역사를 토대로 19세기 후반에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게 된 영국의 대경제권이 형성되었으며, 영국의 번영은 아메리카합중국으로 이어졌다.…(중략)…대항해시대 이후 세계 경제는 ‘유라시아의 대륙 및 해양 경제’의 시대에서 ‘세 개의 대양이 다섯 대륙을 연결하는 경제’의 시대로 크게 전환한다. 그전까지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던 유럽이 17세기와 18세기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서양과 신대륙 덕분이다.” “19세기가 되자 자본주의 경제가 철도·증기선·전신을 이용해 유라시아 전통 경제를 단숨에 앞질렀다. 유럽 경제의 중심은 대항해시대 이후 유라시아와 연결되던 베네치아·제노바 등 북이탈리아 도시에서 대서양과 이어지는 저지대 국가의 안트베르펜(앤트워프),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했다. 이 대규모 경제 변동을 상업혁명이라고 부른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각국은 아시아의 전통적인 농업 사회, 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의 원주민 사회를 식민지로 삼았고, 17~18세기에는 노예무역, 사탕수수 플렌테이션, 설탕 판매(대서양 삼각무역)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화를 이룬다. 이와 비견되는 건 19세기 중반 무렵 영국의 기계제 면포, 인도의 아편, 중국의 홍차를 묶은 영국의 아시아 삼각무역이다.
대항해시대에는 ‘무적함대’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막강했던 스페인이 주목된다. 그러나 ‘① 신대륙에서 들여온 방대한 은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전쟁 등의 군비를 충당하느라 국외로 유출,  ② 유대교도 추방령으로 경제 능력이 높은 유대인을 국외로 추방, ③ 신대륙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국내 산업이 쇠퇴, ④ 거래를 할 때마다 세금을 징수하는 ‘아르카바라’라는 소비세로 인해 민중의 삶이 피폐” 등으로 스페인의 세력이 기울었고, 이후 17세기 네덜란드(세계 최초의 주식회사(1602년), 튤립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버블(1637년)),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와 국민 경제라는 세계 경제 구조가 완성되어가며 스페인 함대 격파-항해법 제정-네덜란드전에서의 승리-국채 제도-산업혁명과 철도 건설-금본위제 확립과 파운드 지폐의 세계 통화 획득 등으로 대서양 상권을 장악해 19세기 세계 최대 식민지를 차지한 영국, 19세기 말 북태평양에 진출하여 해양제국으로 성장하고 20세기에 제1차 세계대전 특수를 누린 미국으로 세계 경제 중심의 힘이 이동했다.
    
※ 유럽의 패악
“1820년대 영국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각 국가에 대한 투자 붐이 일어났으며, 1828년까지 브라질을 제외한 국가들은 영국으로부터 막대한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현재 신흥국들이 직면한 채무 위기의 기원은 182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선진국은 신흥국에 투자를 해왔으며, 투자가 확대되면서 대외 채무가 누적되었다. 그 누적된 채무는 외적 요인에 의해 문제가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은 몇백 년 전부터 되풀되어왔다.ㅡ 옮긴이)”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를 주인 없는 땅으로 결정하고 선점권을 내세워 1880년대 이후 약 20년에 걸쳐 분할한다.” 지금 아프리카의 끝없는 내분과 경제 후퇴의 원흉이다.

 

 


    
● 산업혁명 이후 현대까지

“초기의 산업혁명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50년 주기로 기술이 변화했다는 주장을 전개한 사람은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Nikolai Dmitrievich Kondratiev)이다. 이에 따라 약 50년마다의 변화를 장기파동(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고 부른다.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공업의 변화를 고찰할 때에는 이렇게 크게 묶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파동은 일반적으로 ① 제1 파동(1780~1840, 산업혁명), ② 제2 파동(1840~90, 증기기관과 철도), ③ 제3 파동(1890~1940, 전력과 철망), ④ 제4 파동(1940~90, 대량생산과 자동차), ⑤ 제5 파동(1990~, 정보통신)으로 구분한다.”

 

“현재 우리 생활을 이루는 물건 중 대부분이 제2차 산업혁명으로 출현했으며,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제2차 산업혁명(1870년대~)이 ‘현대’의 기점이 된다.”
앞서 살펴본 책인 사토 마사루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에서도 그랬지만 세계사 기록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를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대불황기(1873~96)의 경제는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계 경제의 변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디지털화에 뒤처진 현재의 일본과 대불황기 영국의 처지가 흡사하다.
영국은 대불황으로 인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왔지만, 자본 수출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자·배당·보험 수입 등이 호조를 보였기에 ‘세계의 은행’, ‘세계의 금융·서비스 센터’로 변신하여 위기를 벗어났다.”
    
세계사를 보면 경제 악화와 전쟁은 맞물리는 한 쌍이다. 현재는 경제 활동의 정체·후퇴(불황)와 물가의 지속적인 상승(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험한 적 없는 유형의 대불황(스테그플레이션)의 위험 속에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미국, 유럽, 일본의 기업들은 노동력이 저렴한 구식민지의 신흥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다국적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다국적기업의 증가). 동시에 제3차 산업혁명(IT혁명)으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며 지구화의 움직임이 강해졌다. 그 결과 국가의 틀을 넘어선 지구 규모의 수평 분업이 진행되었다. 세계은행과 다국적기업이 글로벌경제의 중심 행위자가 되고, 세계 규모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미국이 구상했던 단일 세계와는 다른 글로벌경제로 움직였다. 요컨대 아시아의 신흥국에서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아시아 경제가 부상하는 시대가 되고, 미국・유럽 등 선진 공업국의 우위가 흔들렸다. 세계의 경제사를 조망하면 자금은 성장지역으로 흘러가는 것이 철칙이다.” 미국은 군사와 정치력으로 경제권을 놓치려 하지 않고 있지만 베트남전 때와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깊이 개입했다가 경제적 파탄을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 과잉 투자로 인한 버블 붕괴도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책을 통해 세세한 경제 역사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으나 앞으로의 타개책 전망은 확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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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8-15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넘 좋아하는 실제적 실용적 가성비 뛰어난 작가입니다. ^^

AgalmA 2018-08-16 02:18   좋아요 0 | URL
그...그런가요. 전 이 저자 책을 처음 읽어서^^a 이 책 정리력은 뛰어난데 독창적인 해석력은 못 느껴서 별점 짜게 줬는데^^;

아무 2018-08-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책은 서문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읽고 있는 <투게더>에서도 느끼는 점이지만, 서문의 요약도 그렇고 절과 절을 넘어가는 부분도 그렇고 깔끔하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용해주신 서문을 보면서도 그런 점들이 많이 느껴지는..
1차 대전 직전과 같은 상황이 현재와 반복되고 있음에도 타개책이 분명치 않음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그걸 해결할 전망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AgalmA 2018-08-16 02:21   좋아요 1 | URL
네. 서문 정리만 봐도 작가의 내구력이 느껴지죠. 아무님 글도 그렇던데^^*

기후문제만 해도 미국 같은 강대국이 기후 변화 협약에서 마구 이탈하는 걸 막거나 제재를 못하는 식이니... 에효

겨울호랑이 2018-08-15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누군가에겐 불행이고, 누군가에게는 행운이라는 슬픈 현실은 경제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8-08-16 02:52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전쟁 물자 팔아서 부를 축적하기도 하니... 누군가는 전쟁을 바랄테고. 미국의 총기규제 문제만 봐도....
EU처럼 싸워봐야 들 될 거 없다는 걸 알아도 성질 나면 치고 박는 게 또 사람이라-_-;; 인간이 정말 이성적인 걸까요... 탐욕을 이성이라고 가린 것 같다고 역사가 말해주는 것 같아요.
 
[eBook]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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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특히 한국 교육에서는 세계사·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방대한 사건들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능력으로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그런 접근은 전혀 좋지 않다. 빠르고 쉬운 답을 도출하기 위해 상관 관계를 인과 관계로 연결 짓기도 쉽다. 맥락 찾기와 이해가 역사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이 책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원저 제목 세계사의 진수世界史極意, 2015)에서 사토 마사루가 강조하는 것은 아날로지. 아날로지란 비슷한 사물을 연관해 사고하는 방식으로, “미지의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도 이 상황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때 그 상황과 흡사하다라는 판단과 함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중요하다. 저자는 아날로지적 사고력 향상이라는 실리적 목적외에도 전쟁 저지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에릭 홉스봄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진단한 것과 달리 전쟁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날로지적으로 통찰하기를 전도하고 있다. 전도라는 말을 내가 괜히 쓴 게 아닌데, 아날로지가 신학적 사고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때 역사 신학을 공부하며 후지시로 다이조 선생에게 아날로지를 배웠다.

실증주의에 입각하는 사학에서는 사료를 다루는 것, 즉 사료 수집과 선택·비판·해석은 이성만으로 충분하겠으나 정신과학으로서의 역사학 연구는 이성만으로는 지극히 불충분하며 신체·이성·의지·감정·신앙을 가진 인간 주체로서 이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딜타이가 말하는 체험·표현·추체험에 의한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사료에 표현되어 있는 체험을 연구자 주체가 추체험해 이해해야 한다. …… 사학 방법론에서 중요한, 와 전체, 특수성과 보편성, 독자성과 동일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여기에 있다. 해석학은 먼저 사료의 언어학적·역사적(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석을 철저히 한 후, 그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다.” 후지시로 다이조 기독교사

이 세상 안에서 생을 부여받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제외한다면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이 말했듯 절대정신이 변증법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단순한 흐름을 취하지 않아요. 역사는 훨씬 복잡한 현상입니다. 타인의 마음이 되어 생각하는 것, 타인을 추체험하는 것을 얼마나 거듭했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역사는 아날로지를 통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강력한 세계관에 기초해서 역사를 역동적으로 독해하는 수법에 매력을 느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이나 신학이 어딘가에서 구체적인 인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후지시로 다이조, 수업에서 

 

이 책은 세계사를 통사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민족과 내셔널리즘’,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세 가지 주제를 핵심 문제로 보고 진행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제국주의 시대는 187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다. 구미 열강이 군비를 확장하고 세계 각지를 식민지나 세력권으로 삼아 지배하던 때였다. 16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중상주의(절대왕정이 실행한 경제정책)자유주의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신자유주의형태로 변천해왔다. 마르크스 자본론이 고찰하는 것은 국가가 시장을 간섭하지 않는 순수한 세계이지만 레닌 제국주의론독점자본이 국가와 결합하는 지점에 제국주의의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시장을 찾아 외국에 진출하지만 대외 활동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사이의 대립을 야기한다.” 알다시피 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의 귀결을 맞았다. “자유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패권국가가 존재하며, 패권국가가 약화하면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이 패권국가였던 시절은 자유무역 시대였다. 그러나 영국이 약해지자 독일과 미국이 대두했고, 군웅할거의 구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가. “2000년대 들어 브릭스BRICs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존재감이 낮아졌다. 20019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 2008년 가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군사와 경제 양방에서 미국의 약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개인적으로 이 2008년 즈음을 경계로 국제정세의 조류가 달라지면서저자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례로 피너클 제도와 스프래틀리 제도,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방공식별구역 설정, 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EU 회원국과 미국 등이 그들의 종주국이었던 동남아 투자로 영향력 강화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식민지를 두지 않으며 전면전을 피하는 게 신제국주의 특징이지만, 착취와 수탈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제국주의의 본질과 행동양식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화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강력해지면서 국가의 징수 기능이 약화되자(법인세율 씨름, 조세회피처 등등을 생각해보라) 국가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데 제국주의 시대와 비슷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보호주의가 대두했듯이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겉으로 자유무역체제 옹호를 외치면서도 보호주의로의 전환을 교활하게 도모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는 유럽연합·슬라브연합·아메리카대륙연합·중동연합·아시아연합 형태로 분할되어 있는데, 세력 균형 상태를 조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민족과 내셔널리즘
저자는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민족의 원형이 서유럽이 아니라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탄생했기에 지역의 역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등 서유럽은 비교적 이른 단계에 주권국가로서의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동유럽을 포함한 15세기 말의 신성로마제국(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동부·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 등)은 서유럽과 달리 혼돈 상태였다. 베스트팔렌조약에서부터 프랑스혁명 시대까지 유럽의 국제정치사를 보면, 신성로마제국의 동쪽 지역에서는 극심한 영토 변경을 동반하는 전쟁이 잇따랐다.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국가들에서는 민족의식과 국민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제국을 리더로 하는 범슬라브주의와 독일·오스트리아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범게르만주의 사이의 민족적인 대립이라는 구도를 띠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확대된 내셔널리즘이 중·동유럽에서 복잡한 민족 문제를 생성해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세계사 교과서나 참고서가 가르쳐주지 않은 내셔널리즘론의 지적 거인 삼인방 베네딕트 앤더슨·어니스트 겔너·앤서니 스미스의 이론도 가져와 자세히 비교 설명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에는 원초주의와 도구주의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고가 있다.
원초주의란, 일본 민족은 2,600년 동안 이어졌다든가 중국 민족의 역사는 5,000년이라든가 하는 식의, 민족에게는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원천이 있다는 실체주의적인 사고다. 이때 구체적인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언어·혈통·지역·경제생활·종교·문화적 공통성 같은 것들이다.”
도구주의는 민족이란 개념을 엘리트들이 만들었다고 보는 사고다. 다시 말해 국가 엘리트가 통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내셔널리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도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가 앤더슨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국민이란 마음속에 이미지로 그려지는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다. 즉 일본 국민이란 우리는 일본인이다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공동체라는 이야기다. 이미지일 뿐 실체적인 근거는 없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국민의식이 성립한다는 것이 앤더슨의 생각이었다.”
 
앤더슨
나폴레옹이 침략한 후,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념이 유럽 국가로 퍼진 사실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이념에 대항하고자 러시아는 정교회·전제專制·국민성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세 번째 원칙인 국민성이 이 시기에 새롭게 추가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19세기 말이 되면 알렉산드르 3Alexander 의 치세 아래, 발트 해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이처럼 지배층과 지도층이 위에서부터 국민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관주도 내셔널리즘인데, 이는 왕권의 정통성을 지탱하는 새로운 도구로 기능함과 더불어 새로운 위험을 동반했다 앤더슨은 지적했다.”
 
겔너
최초에 민족이 있은 후 내셔널리즘이 생겨난다는 원초주의적인 통념은 그릇되었으며 내셔널리즘이라는 운동에서 민족이 생겨난다는 것이 겔너의 사고다. 겔너도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감각이 근대와 함께 생겨났다고 보았다.”
산업화에 의해 유동화한 사람들 안에서 생겨나는 동질성이 내셔널리즘을 싹트는 기반이라는 것이 겔너의 내셔널리즘론이다. 앞서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은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소개했는데, 내셔널리즘 형성에도 노동력의 상품화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
민족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여긴 앤더슨과 달리, 스미스는 근대적인 네이션을 형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았다. 무언가를 나타내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어인 에스노스ethnos 또는 현대 프랑스어인 에스니ethnie. 그렇다면 에스니란 무엇인가? 스미스는 에스니란 공통의 조상·역사·문화, 어떤 특정 영역과의 결합을 지니며 내부에서의 연대감을 소유한, 이름을 가진 인간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근대적인 네이션은 반드시 에스니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에스니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위적으로 민족을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니를 가진 집단이 반드시 네이션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 지극히 일부가 네이션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며, 네이션이 온전한 자기 국가를 가지는 경우는 더욱 제한된다. 이 에스니라는 개념이 역사와 결합함으로써 정치적인 힘이 탄생한다. 이 힘에 의해 에스니는 민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인들이 앤더슨이나 겔너의 도구주의를 더 선호하지만 원초주의에 가까운 스미스의 에스니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족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문화 엘리트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탈린이 이슬람원리주의혁명이 확대되는 것에 위기를 느껴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 투르키스탄을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이렇게 다섯의 민족 공화국으로 분할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관주도 내셔널리즘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민족의식에 종교 문제까지 엮이니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제국주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앞 장에서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이 공동화空洞化한다. 이 빈 곳을 메울 가장 강력한 사상이 내셔널리즘인 것이다. 신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내셔널리즘이 다시금 소생하고 있다. 합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셔널리즘은 근현대인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를 원천으로 삼은 EU와 이슬람을 원천으로 삼은 IS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게 참 많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서양의 내정 간섭이 문제를 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지배하기 위해 알라위파를 중용했고, 현지 행정과 경찰·비밀경찰에 알라위파를 임명했다. 식민지를 지배할 때 소수파를 우대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다. 다수파 민족이나 종교집단을 우대하면 독립운동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소수파를 우대함으로써 종주국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994년에 제노사이드genocide 벌어진 르완다에서도 종주국인 벨기에는 소수파인 투치족을 다수파인 후투족보다 더 우대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사정을 떠안고 있었던 시리아에 아랍의 봄이 밀어닥쳤을 때,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아랍의 봄이 일어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체제세력이자 수니파인 무슬림동포단이 존재를 드러냈다.”
 
내셔널리즘의 대두로 절대자의 위치에 민족이 들어옴으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 앞에 국민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인간은 세계대전을 치렀다.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량의 살인과 파괴는 이성과 무신론으로 이루어진 계몽의 시대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냈다. 무신론의 시대, 즉 계몽의 시대는 1914년에 끝을 고했고, 그와 동시에 불가능의 가능성으로서의 신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였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어도 여전히 계몽정신이 왕성했으므로 비합리적인 정념(전근대적인 보이지 않는 세계’)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감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계몽사상이나 합리적인 사고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통찰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어두기만 했다. 그 영향은 21세기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지식인들이 격투를 벌였던 계몽의 어둠이라는 문제를 외면하고 만 것이다. 그때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청구서가 되어 날아온 현재, 격차와 빈곤, 배외주의, 영토 문제, 민족 분쟁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EU 탄생 목적은 내셔널리즘 억제에 있었다.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그들로서는 전쟁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톨릭·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결합이었다. EU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뻗어가지 않은 것은 정교회 문화권을 포섭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종교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결합에는 민족이나 내셔널리즘을 초월하는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IS도 글로벌한 이슬람주의를 통해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문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초월해 인간을 살해하는 사상이 되었다 점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한 저자는 앤서니 스미스의 에스니론이 이슬람원리주의를 무력화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계 여러 민족에 존재하는 에스니를 자극해 이슬람교에 대한 귀속의식보다도 민족의식을 강화해 이슬람원리주의의 침투를 막는다는 것인데, 이 맞불 작전이 제대로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정리]


이 책 속에서 전개된 역사 흐름은 다음 단락으로 요약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빈곤과 격차 확대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부와 권력의 편재가 초래하는 사회불안과 정신의 공동화는 사회적인 유대를 해체하고, 모래알처럼 분리된 개인을 고립시킨다. 그러면 국가는 내셔널리즘을 통해 국민들의 통합을 꾀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국 내의 소수민족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민족 자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동향을 보아도 구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는 유사하다. 위에서부터의 관주도 내셔널리즘이나 배외주의적인 내셔널리즘으로 사람들이 동원당하는 한편 합스부르크제국에서 체코 민족이 각성했듯이, 현대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오키나와가 에스니 발견에 기초해 스스로 민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현재의 국민보다 더 하위의 네이션, 즉 더 작은 민족에게 주권을 가지게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등장한다. 2장의 핵심을 이루었던 아날로지는 이상과 같다.
 
오키나와나 스코틀랜드와는 대조적으로, 국민국가의 위기를 지역과 영토를 초월한 이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바로 종교적인 이념이다. 이번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대는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나 이슬람교에서도 사회 위기에 복고주의·원리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 지역과 영토를 초월해 확산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현대의 EU도 관점에 따라서는 서로마제국, 나아가 로마제국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렇다

첫 번째는 다시 한 번 계몽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인권·존엄·사랑·신뢰 같은 손때 묻은 개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근대의 정신, 바꾸어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몇 번이고 서술한 대로, ‘보이는 세계를 중시하는 근대의 정신은 구제국주의 시대에 전쟁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재부상하리라고 본다.”

 

잘 될까. 매우 공감하며 읽긴 했지만 이 밤 뒤에 아침이 오리라는 건 현재에서는 늘 예측과 희망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하루 더, 일생을 노력한다.
 
 

 

정리할 내용이 많아 아주 개괄적으로 이 리뷰를 썼다. 저자의 해석 깊이가 얕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지젝을 읽었을 때를 생각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후시지로 다이조처럼 생각할 것만도 아니고, 아날로지 즉 유추적 사고의 맹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든 반박하든 당신의 아날로지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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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데이브 레비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비보를 들었다. 헛소리와는 정반대인 촌철살인 발언을 하던 한국 정치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런 분들의 뜻을 이어가고 싶고, 믿을 만한 사람도 정보도 가리기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경계 지침들을 잘 챙겨 이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니 마음 부담이 컸다.
  
이 책은 2016년 11월에 탈고되었고 2017년에 나왔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 이 책을 내 그를 언급하지 못한 걸 매우 애석해하며 머리말에서 첨언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하고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주장이라 분석할 가치조차 못 느껴 주로 웃고 말게 된다. 그러나 그의 터무니없는 말 대포는 해도 해도 너무 많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부정적 영향은 무시 못 할 게 된다. 게다가 그는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미국의 지도자이지 않은가!
 
이 책 원제 『Not a Scientist - How Politicians Mistake, Misrepresent, and Utterly Mangle Science』이기도 한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은 미국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 정치인들이 처음 썼고 즐겨 쓰는 수사인데, 자료와 분석을 언급하며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인 척하는 그 겸양 뒤에는 숨은 의도와 오류가 가득하다. 저자는 과학적인 걸 내세우며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그들의 사례를 여러 항목으로 분류해 지적했다.

  
1. 지나친 단순화 : 과학적 실수, 왜곡, 훼손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 임신 20주 이후 낙태금지법 통과를 위해 태아가 언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느냐를 두고 설왕설래되는 상황과 마리화나가 입문용 약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가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도 마리화나에 대한 관심이 계속 제기되어 조금 덧붙이면, 니코틴과 알코올 같은 다른 합법적인 약물들도 비슷하거나 훨씬 더 심한 입문 효과가 있다. 더 중요한 요인은 ‘특정 약물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이고, 그에 따라 입문 효과의 강도가 달라진다. 술을 구하기도 마시기도 쉬운 한국에서 주취폭력 문제가 심하고 사건 발생 시 감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2. 체리피킹(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취하고 더 큰 증거를 무시해버리는 것) :
저자는 기후변화 문제성에 특히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된 사례를 많이 가져왔다. 2009년 연구 발표에서 최고·최저 기온 비율은 2:1이었지만 21세기 중반 즈음이면 그 비율은 20:1로 예상된다. “2100년이 되면 최저 기온이 한 번 경신될 때마다 최고 기온이 50번 경신될 것이다.” 지금도 더워 죽을 맛인데 장차 살아가게 될 인류의 여름이 더 걱정되는 소리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에 제동을 걸려고 체리피킹 하는 정치인들이 인면수심이라 생각되는 대목이다.
알래스카주 빙하에 관한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얼음이 해마다 75기가톤씩 사라지고 있다. 1기가톤이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몰라도 이는 10억 메트릭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고 싶다면, 아프리카 코끼리 1억 마리나 흰고래수염 600만 마리 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천 채를 상상하면 된다.”
 
3.
아첨과 깎아내리기 : 어느 나라든 예산 배분은 늘 골치 아픈 문제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예산안을 깎을 생각에 나사(NASA)의 우주 개발을 칭찬하면서 지구와 대기권을 연구하는 허튼짓 말고 우주 탐사라는 진짜 목표에 전념하라는 헛소리를 했다. 지구 과학이 기본 중에 기본이며 나사(NASA) 창립에 그 뜻도 있다는 걸 모르는 소리다. 부시 행정부 때 미국 국립보건원 예산도 줄이기 위해 이런 전략을 썼는데, 긍정적인 걸 거론하며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고의성이 짙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오류와 수사적 장치 중에서도 악질이라고 강조한다.
 
4.
악마 만들기 : 공공의 적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 전략은 아주 무시무시하다.
여기서는 2015년 초반 디즈니랜드에서 홍역이 발생하자 그 원인을 영세한 나라의 밀입국자, 불법체류자들에게 돌린 정치인들의 사례가 나온다. 실상 개발도상국들의 홍역 예방접종률이 최고 선진국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백신에 대한 신뢰 부족과 공포가 백신과 자폐증을 연결하는 소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장 중 하나인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관계는 아니다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5.
블로거에게 떠넘기기 :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므로 기후변화 얘기는 계속된다.
국립아카데미 산하 국립연구회의NRC 1979년 보고서에서 이미 세계의 온난화를 엄중히 경고했다. 기상 이변을 매해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안이하고 어리석게 그냥 두고 보자는 정책으로실수를 오랫동안 되풀이하고 있다. 데이터를 제멋대로 고치고 꼬아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진위 여부를 확인할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잘못되어도 책임을 떠넘기기도 쉬우니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싶은 정치인에게 인터넷은 솔깃한 헛소리들이 모여 있는 완벽한 노다지다.” 지구냉각화 미신이 끈덕지게 지속되는 이유는 수십 년 전에 나온 특정 기사들 때문이라기보다 오늘날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거들이여, 제발 업데이트와 교차 체크 좀 하고 살자!
태아조직 기증의 적법성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태아 세포는 홍역·풍진 백신 개발에 사용됐고 소아마비 백신 배양에도 일조했다.” 의학진보센터의 영상들을 잘못 해석하고 생명 존중과 윤리를 외치며 격앙된 분위기 속에 한 남자가 가족계획연맹 진료소에 침입해 여러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도 있었다.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지라시’ 운운하며 인용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 공직자라면 그런 행동은 비난받을 만하다.
“‘블로거에게 떠넘기기는 어떤 면에서 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을 허용해주는 무임승차권과 같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해야 한다. 보통의 블로거들과 달리 공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정치인들에게는 과학에 관한 한 더 높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몹시 위험한 헛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행태를 제대로 지적하면 다방면에서 유익한 결과를 볼 수 있다. 낙태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으면 극단주의적인 폭력사태를 줄일 수 있고, 기후학에 대한 신뢰를 쌓아올리면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해 말 그대로 세계를 구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6. 이 외에도 복잡한 과학적 쟁점을 유치한 얘기로 둔갑시켜 사람들이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게 만들어버리는
조롱과 묵살, 논점을 호도하는 문자주의적 논리,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확실한 불확실성, 주장에 맞추기 위해 철 지난 정보 들먹이기, 아무 말 대잔치로 만들어버리는 정보의 와전,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기 쉬운 순수한 날조 등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미국 사례이었지만 한국 정치인들 행태와 비슷해서 다른 분들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유형이든 과학적 발언을 평가하는 데 가장 좋은 요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희한한 소리처럼 들리면 실제로 헛소리일 확률이 높다!(주의: 양자물리학 법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기이함이야말로 양자물리학의 특징이니까.)"
 
끝으로 한국 뉴스계의 지각변동을 보여준 사례인 JTBC 뉴스룸 칭찬을 한 마디 하고 싶다. 이 뉴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팩트체크비하인드 뉴스. 그들도 사람이라 간혹 실수도 하고 내가 동조하기 어려운 논점일 때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놓쳤을 수도 있는 정치인 발언들과 그 사실 관계를 따져줘서 긍정적인 역할이 크다. 일반인이 기자들처럼 이런 세세한 걸 다 살펴가며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이 옳을 수 없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을 게을리하는 순간 잘못되고 삐뚤고 기울어지는 풍조에 일조하는 결과가 된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일독할 만한 책이다.
 
아직 논란이 많은 유전자 변형(GMO) 식품에 대해 저자가 과학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불확실성에 바탕을 둔 확실성’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별점은 높게 주지 않았다. 
  
※ 사진에 나온 요거트는 간접 광고는 아니고 요즘 제가 맛들인 간식;; 알라딘 7월 굿즈 책 라디오 넘 이쁨♥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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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책(7/21) - 찰스 스펜스 『왜 맛있을까』

주말에 골치 아픈 책 읽긴 싫고ㅎ 쉬어가는 타이밍으로 고른 책. 그런데 메모해두고 외울 게 넘 많아😂
먹는 걸 그닥 즐기지 않지만 관련 이야기들에는 관심이 많다. 먹는 고단함보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게 더 편해서ㅎ;
기대 안 했는데 유용한 정보도 많고, 뇌과학과 음식의 접목을 보며 연신 놀라고 있다.
우리가 혀가 아니라 뇌로 먹는다는 게 아주 잘 느껴짐. 수업 시간에 배우고 외웠던 혀 지도도 잘못된 정보였다니! 충격😣; 정보 업데이트 없이 그냥 살면 그대로 믿고 죽 살 거 아닌가ㅎㄷㄷ
이 복잡한 세상, 무슨 정보를 믿어야 하나;
현재 동향뿐 아니라 미래 음식 산업의 추이도 살펴볼 수 있다.
추천 도서/

<밑줄 긋기>

📎
˝경쾌한 음악은 단맛을, 고음의 음악은 신맛을, 신나는 음악은 짠맛을, 부드러운 음악은 쓴맛을 더 잘 느끼게 합니다. 반면 시끄러운 소리는 단맛을 덜 느끼게 만들죠.”
📎
“자꾸 손이 가 원망스러운 간식은 빨간 그릇에 담아두세요. 빨간색에 대한 회피 본능이 있어 손이 덜 갈 겁니다.”
📎
˝12시 방향(정확히는 12시에서 시계방향으로 약 3도 기울어진 방향)일 때 사람들이 음식을 가장 맛있게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식기의 무게가 음식을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한다˝




● 오늘의 책(7/22) -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괜찮아』

나는 조제처럼 엎드려 다다미는 아니고 대자리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의 무심하지만 집중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애석하게도 내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지. 그래서 사람들이 찍은 내 무방비한 모습은 짜릿한 쾌감과 수치심을 준다. 당신이 뭘 안다고 이런 걸 찍어서 보여 주는 거야 공격하고 싶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런 사진을 찍고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표현하는 사람. 그러니까 화를 내고 싶다면 자신이 더 많이 그런 사람이 아닌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그래서 성급하게 화내는 걸 싫어한다. 제 얼굴에 침 뱉기 될 거 같아서.

갑자기 생각길이 끊겼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어머니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포기하면 글은 끝난다.

삶은 이러한 무수한 비연속, 비균질 속에서 연결됐다가 끊기길 반복하는데 하나의 연속성과 영속성을 주장하고 고집하는 이들에게 나는......그렇게 사람 사이에는 ‘관점의 차이‘라는 묘비석만 무수히 늘어간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괜찮아』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1권 )

이 소설은 빠르고 명쾌한 스토리 전개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좋은 반응이 나오기 어렵겠다. 윌리엄 포크너의 나른하고 잔인한 묘사와 심리 관찰을 따라가는 걸 즐기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묘사와 비유 구경만 해도 즐거운! 너무나 치밀해. 정말.




캠핑의자까지 꺼내 설쳐봐도 더운 건 어쩔 수 없군.
나 :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요/
나 : 네. (응기적 응기적)

타들어간 잎들과 그 기세처럼 피어오르는 꽃들의 대비를 보며...
올해 치자꽃은 두 개만 피고 말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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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22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인줄 알았는데, 아이패드인 거군요.
오늘이 어제보다 더 더운 것 같은데, 더위 잘 피하세요.
a님, 더운 여름 건강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AgalmA 2018-07-26 15:18   좋아요 1 | URL
종이책도 요즘은 더운 소품처럼 느껴져요ㅎㅎ; 전자책이 밤에 불 꺼놓고 읽고 듣기 좋더군요^^ 책이든 전자책이든 더워서 집중이 잘 안 되는 어려움이ㅜㅜ
감기 걸리신 건 좀 나으셨나 모르겠네요. 저도 아뮤래도 더위로 인한 알레르기 증상 땜에 병원 다니고 있어요.
다들 여름 건강히 나야 할 텐데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8-07-22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단것을 너무 좋아하니 앞으로는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해야겠군요... Megadeth, Judas Priest를 들으며 밥 먹으면 소화가 잘 될지 모르겠어요 ㅋㅋ

AgalmA 2018-07-26 15:16   좋아요 1 | URL
좀 복잡한 사안인데요ㅎ;
선곡한 헤비메탈 음악이 좋아하는 곡이 아닐 때 쓴맛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니 적절하긴 한데요. 좋아하는 곡일 땐 단맛이 강화돼요ㅋ
또 헤비메탈처럼 시끄럽고 빠른 음악은 맛을 잘 못 느끼게도 하지만 음식을 빨리 먹게 만들죠. 그러니 많이 먹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는ㅎㅎ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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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불만을 품고 신학자들만큼 독학을 많이 한 무신론자라면 도킨스의 이 저서가 신기할 것도 없겠지만 도킨스가 신이 없다고 철저히 논박 해나가는 이 과정을 보는 나는 정말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렇다고 도킨스 교가 되지는 않을 거다. 독고다이 무신론자들은 이래서 잘 뭉치는 종교인들에게 계속 밀린다고 도킨스가 개탄ㅋ;

 
신의 반증 불가능성 때문에 종교가 더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우리가 무언가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와 비존재가 동등한 입장에 서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우저와 싱어는 무신론자와 종교인의 판단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현실 속 많은 부분에서는 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치고 신뢰하면서 신에 대한 과학적 검증 과정은 단호히 막는다면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런 사람의 말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지? 증거보다는 사적인 계시를 통해 지역별로 다양한 전통으로 뿌리내린 신 가설은 신빙성보다 이야기성이 더 강하다. “종교사가들은 원시 부족의 애니미즘에서 그리스, 로마, 북구의 신들 같은 다신교를 거쳐 유대교와 그 파생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로 진행되는 흐름이 있다고 본다.” 도킨스 말대로 종교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그런 특권을 누리는 걸 당연시할까. 삶을 통제하기 어려운 인간의 나약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나는 보는데 의지할 데가 정녕 종교밖에는 없는가. 일단 당신이 신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자가 체크해보자.

 

“확률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판단들을 확실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놓인 스펙트럼 상에 나열해보자. 그 스펙트럼은 연속적이지만, 다음의 7가지 이정표를 이용하여 구별할 수 있다.
   1. 강한 유신론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함. 카를 융(Carl Jung)의 말을 빌리면, “나는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2. 확률이 아주 높지만 100퍼센트는 아님. 사실상 유신론자. “나는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신을 굳게 믿으며 신이 있다는 가정하에 산다.”
   3. 50퍼센트보다 높지만 아주 높지는 않음.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 자지만 유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싶다.”
   4. 정확히 50퍼센트. 철저하게 불편부당한 불가지론자. “신의 존재와 비존재는 확률상 똑같다.”
   5. 50퍼센트보다 낮지만 그리 낮지는 않음.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지만 무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존재에 회의적인 쪽이다.”
   6.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0은 아님. 사실상 무신론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신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고 신이 없다는 가정하에 산다.”
   7. 강한 무신론자. “융이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확신한 것만큼 나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안다.”

리처드 도킨스는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증 가능성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인지 6번이라고 했다. 나도 6번이다.


책 초입에서 도킨스는 과학자들조차 혼동해 쓰고 있는 현재 혼재된 ‘신’ 개념을 정리하고 들어간다. 

“와인버그는 신이라는 단어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즉, ‘우리가 숭배하기에 적합한’ 초자연적 창조자를 지칭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분명 이 말은 옳다.
   훨씬 더 불행한 혼란은 아인슈타인식의 종교와 초자연적인 종교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빚어진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종종 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그런 무신론자 과학자가 그만은 아니다), 그런 유명한 과학자가 자신들의 편이기를 너무나 바라는 초자연주의자들의 오해를 자초하곤 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극적인(혹은 장난기 어린?) 말로 끝을 맺음으로써 대단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그 구절을 읽고서, 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호킹이 종교인이라고 믿게 된다.”
유신론자는 초자연적 지성을 믿는다. 그 지성은 우선 우주를 창조하는 큰일을 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주위를 맴돌면서 자신이 창조한 것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유신론적 신앙 체계 내에서 신은 인간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기도자에게 응답하고 죄를 용서하거나 처벌하며, 기적을 이룸으로써 세계에 개입하고 선행과 악행에 시시콜콜 관심을 가지며, 우리가 언제 선행과 악행을 행하는지(더 나아가 그런 행위를 할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한편 이신론자는 초자연적 지성을 믿지만, 그 지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설정하는 일에만 관여할 뿐 인간사에 개입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범신론자는 초자연적인 신을 아예 믿지 않지만 신이라는 단어를 자연이나 우주 또는 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가리키는 비초자연적 동의어로 사용한다. 이신론자는 신이 기도자에게 응답하지 않고 죄나 고백에 관심이 없으며, 우리 생각을 읽지 않고 변덕스러운 기적을 부리지 않는다고 본다는 점에서 유신론자와 다르다. 이신론자는 신이 일종의 우주적 지성이라고 보는 반면 범신론자는 신을 우주 법칙의 비유적 또는 시적 동의어라고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범신론은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다. 이신론은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다.” 

 

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칭송되는 세계 창조를 생각해 보자. 신의 ‘지적 설계’는 

“우연의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자연선택은 경제적이고 설득력 있고 우아한 해답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제시된 것들 중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지적 설계는 우연과 똑같은 반론에 시달린다. 그것은 통계적 비개연성이라는 수수께끼의, 설득력 있는 해답이 아니다. 그리고 비개연성이 높아질수록 지적 설계는 더욱 설득력이 없어진다. 잘 보면 지적 설계는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설계자 자신(그/그녀)의 기원이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인정한다면 “무언가를 설계할 정도로 충분한 복잡성을 지닌 창조적 지성은 오직 확장되는 점진적 진화 과정의 최종 산물로 출현한 것이다.”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신은 망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그것은 유해한 망상이다.” 과학적 실증주의 접근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는 신을 곧장 불가지론 영역으로 모셔 가는데, 도킨스는 재빨리 막아선다.

“1835년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별에 관해 이렇게 썼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별의 화학적 조성이나 광물 구조를 연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콩트가 이 말을 하기 이전에 이미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Joseph von Fraunhofer)는 분광기를 이용하여 태양의 화학적 조성을 분석하는 일에 착수한 상태였다. 현재 분광학자들은 아주 먼 별의 화학적 조성까지 정확히 분석함으로써 콩트의 불가지론을 반박하고 있다.[13] 콩트의 천문학적 불가지론이 정확히 어떤 입장이었든, 이 교훈적인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가 불가지론이 영구적인 진리라고 아주 큰 소리로 선언하기에 앞서 시간을 두고 좀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무신론자에게 ‘없음’을 증명해보라는 유신론자들의 생떼에 대해서도 공격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수용된 독단적 견해는 독단론자들이 아닌 회의론자들이 반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이다.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을 도는 중국 찻주전자가 하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찻주전자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다는 단서를 신중하게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이 반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억측이라고까지 내가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로 여겨져야 옳다.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옛 서적에 명확히 나와 있고, 일요일마다 그를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치며, 학교에서도 그를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시킨다면, 그 존재를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은 괴짜라는 표시가 될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자는 계몽시대의 정신과의사나 그 이전의 종교 재판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기도하다’라는 동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리처드 도킨스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이유로 과학 원리들에 위반되는 ‘기적’을 든다. 아서 클라크의 명언처럼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것을 신 아니면 외계인과 곧장 연결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도킨스는 성서 오류들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는데 이건 신앙인들이 더 봐야 한다. 창조론자들은 “현재의 지식이나 이해에 나 있는 틈새를 열심히 찾아다니며” 신의 이름을 박고 있다. “이렇게 놀랍도록 맹목적인 태도를 보이는 심리적인 이유는 생물학자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연선택과 비개연성을 통한 의식 각성을 겪지 않아서일 것이다. 앤더슨 톰슨은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또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 모두가 무생물을 행위자로 인격화하는 심리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톰슨에 따르면, 우리는 강도를 그림자로 착각하기보다는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잘못된 긍정은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신에 대해서는 더. 
    

 

인간사에 시시콜콜히 개입하고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에게는 재앙과 무관심으로 대하는 신의 모습보다 다윈의 자연선택이 오히려 세계의 움직임을 더 잘 설명한다. “자연선택은 모든 변이, 가장 사소한 변이까지 찾아내기 위해 매일 매시간 세계를 샅샅이 훑는다.”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보존하고 추가하며, 언제 어디에서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없이 눈에 띄지 않게 유기적 존재의 개선에 힘쓴다.” “어떤 야생동물이 습관적으로 어떤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면, 자연선택은 시간과 에너지를 생존과 번식에 투자하는,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를 선호할 것이다. 자연은 경박하고 기발한 착상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설령 늘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냉혹한 실용주의가 이긴다.” 신의 이해하기 어려운 뜻 운운하며 읊조리거나 이상하게 해석하는 거보다 더 명쾌하다!


우리가 왜 종교와 신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지(이러한 해석도 사실 우리의 착각이다)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나방은 빛이라는 나침반에 의해 움직이는 생물이다. 도시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을 보고서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던진다. “왜 나방들은 자살을 하는 것일까?” 그 질문 대신에 우리는 왜 우리의 신경계가 그들이 빛줄기에 대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례만 바라보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게 자살같이 보이는 나방의 죽음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유용했던 나침반이 만들어낸 빗나간 부산물”이다. 이  나방의 ‘자기희생 행동’과 신앙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며 죽고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닮았다. 
    

 

도킨스는 종교 기원의 인류학적 추론들도 꼼꼼히 가져왔는데 ‘화물 숭배 의식’, ‘지역 숭배 의식’ 등등 자세한 건 책에서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서 거론된 추천서 중 하나인 마이클 셔머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국내 번역 제목)에서는 내게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시각적 종교 경험이 측두엽 간질과 관련이 있다는 마이클 퍼싱어의 주장”이라는 문장에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외치고 말았다. 이 외에도 도킨스가 「신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하려 애쓰는가」 챕터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직접 언급했다.

“우리 모두가 친절함도, 자비도, 관용도, 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도 전혀 없는 무정하고 이기적인 쾌락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려면 자긍심이 지극히 낮아야 할 듯하다. 일반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가 그런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 그가 이반 카라마조프의 입을 빌려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설령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성서 교리에 대한 비판도 아주 시원시원하다.

“나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속죄가 악의적이고 가학피학적이고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그것을 개가 짖는 소리로 치부해야 하지만,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객관성이 무뎌져 있다. 신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싶다면, 스스로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용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굳이 그렇게 함으로써 먼 미래 세대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살해자’라고 박해받고 학살당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유전되는 죄는 정액에 담겨 전달되었을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원래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다른 유대인을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미국의 의사이자 진화인류학자인 존 하텅은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그는 성서에서 말하는 내집단 도덕의 역사와 진화를 다룬 놀라운 논문을 썼는데, 그 이면에는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깔려 있었음을 강조한다.” 


도킨스는 종교의 규범적인 배타성보다 증오와 폭력과 분열을 조장하는 그 논리에 더 놀라워한다. 특히 성서에서 동성애, 여성이 얼마나 비천하게 다뤄지는지를 보면 신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낙태에 대한 종교의 입장을 구구절절 동감되는 의견으로 반박한다.

 

 

종교주의자와 과학이 공리로서 대결해도 어떤 것이 더 논리적인지 자명하다. ‘믿음’의 개념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논리적 회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근본주의자는 ‘신성한 책’에서 진리를 읽고 자신의 믿음을 뒤흔들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안다. 신성한 책의 진리는 추론 과정의 최종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공리다. 그 책은 옳으며, 만일 증거가 그것과 모순되는 듯하면 버려야 할 것은 그 책이 아니라 증거여야 한다. 대조적으로 과학자인 내가 믿는 것(예를 들어 진화)은 신성한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연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전혀 다른 문제다. 진화에 관한 책들은 신성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서로를 지탱하는 증거를 압도적일 정도로 많이 제시하기 때문에 믿는다.”  

 

종교를 뿌리까지 들어내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나도 중요하다 싶었다. “부드럽고 온건한 종교도 극단주의가 자연스럽게 번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데 일조한다.” 스스로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고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는 세뇌와 다름없다. 조국애와 민족애가 만난 극단주의가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일본의 자살특공대, 스리랑카의 타밀타이거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교가 인간 삶에서 ‘설명, 훈계, 위로, 영감’으로 주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신이 채우는 틈새를 우리는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리처드 도킨스는 권유한다. “미국인의 약 95퍼센트가 죽은 뒤에도 삶이 있다고” 믿는다. 미국이 처음 건국될 때는 종교의 다양성을 수용했는데 점점 극단에 치우치고 있다. 무신론자에게는 선거에서 가장 표를 주지 않는 실정이다.
도킨스는 반문한다. “우리가 신 없이 살면 우울해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그는 초자연적 종교 없이 행복하고 충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어쩐지 그게 인간의 진짜 삶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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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7-21 0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앙인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삼단 논법이 아닌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좋은 것은 무엇이든 빨리 받아들이는 시기에, 종교를 가진 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신앙인들의 삶과 비신앙인들의 삶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다른 이들에게 선교하기에 앞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신앙고백보다 먼저라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2번! ㅋ

AgalmA 2018-07-21 08:46   좋아요 3 | URL
범신론에 저는 평소 우호적이었는데요. 무신론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ㅋ 그런데 무신론이 강력해지면서 범신론이 유신론 범주가 돼 상황이 묘하게 되어 버렸어요ㅎ;
낼 휴일이라 늦게까지 또 책씨름하시나부다😋 난 낼 출근인데!

겨울호랑이 2018-07-21 03:39   좋아요 4 | URL
^^:) 그렇군요. 사실 유신론 무신론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입으론 신을 말하면서 지옥갈 일을 태연하게 저지리는 이들을 보면... 지금껏 자다가 더워 잠시 깼어요. ㅋ 잠은 충분히 자는 주의라 ㅋㅋ

2018-07-21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7-22 14:01   좋아요 0 | URL
말씀에 동감합니다. 신을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게 그래서겠죠ㅎ

북다이제스터 2018-07-21 1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자인 도킨스가 반증가능성으로 신 유무를 판단한 점에 실망했습니다. 과학은 반증론이 아닌 패러다임일 뿐인데요. ㅠ
더구나 신의 여부는 확률로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보입니다. 확률은 5:5 등 단순한 확률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반영한 기대값을 고려해야 하기에 존재 확률이 극히 낮아도 혜택 혹은 불행이 무한대에 가깝게 되어, 전 확률에 의한 분류에 반대합니다. ㅎㅎ

AgalmA 2018-07-22 16:19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쓴 전체 맥락을 더 보셔야 해요. 도킨스는 유신론의 모든 논점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죠. 안 건드리면 모르거나 자신없어서 그런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들의 프레임도 기꺼이 받아 줍니다. 당신들 틀에서도 이건 틀렸다를 보여주는 게 가장 직접적이기도 하고요ㅎㅎ 도킨스가 확률을 끌어 들인 건 틈새를 더 넓히기 위함입니다.
˝설령 신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가용 증거와 추론을 통해 50퍼센트에서 먼 확률 추정값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프리쿠키 2018-07-21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힘들었어요ㅎ
도킨스 이 사람~그래도 멘탈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 전 굳이 고르라면
4번을 ㅎㅎ

AgalmA 2018-07-22 16:20   좋아요 1 | URL
책 사놓고 꽤 묵히고 있다가 도선생 뽐뿌에 이번에 제대로 읽어서 좋습니다^^ 맞아요. 도킨스 멘탈 탐나요ㅋㅋ

저는 무신론이라고 하긴 좀 애매하게 선불교 같은 기타 종교 가치는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이쪽도 사상적인 면에서 좋아하는 거지 신 존재에 대한 믿음 같은 건 아니고요. 그러니 기독교, 일신교, 다신교에 비한다면 강한 무신론이라고 해야 할.

페크pek0501 2018-07-21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 사려다 말았어요. 제가 읽은 책에서 많이 나오는 책 중 하나라서 꼭 제가 읽은 듯한 느낌이라서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게 중요한데요,)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ㅋ

AgalmA 2018-07-22 16:21   좋아요 1 | URL
역사서나 인문서에서 본 내용들이 제법 나오는데 종교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볼 수 있어서 좋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나가는 이 투지와 집요함은 읽는 이에게 용기를 주는ㅎ!
빨리 못 읽으실 거 같음 이북 권장합니다. 이 책 저는 이북이랑 번갈아 봐서 더 빨리 읽은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