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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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인류의 위대한 지성이라 불리는 작가, 사상가, 학자의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한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를 보면 그들의 유언은 소박하다 못해 원초적인 감각을 좇는 모습으로 덩그렇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으로 살다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간다. 시공간이 다를 뿐 우리 삶은 그래서 본질은 비슷하다. 소문과 폭력과 억압이 가득했던 소설 속 소도시 핸래티는 특별한 곳이 아니다. 1970년대에도,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이 꾸리고 사는 장소다. 저마다의 아랫도리가 내는 목소리, 폭발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은밀한 한숨이나 으르렁거림이나 애원이나 단순한 진술까지도 익숙해지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서 목적 없는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핸래티의 풍경이 낯설기만 한 사람이 있을지. 비교하고 비교 당하며, 폭력을 당하고 폭력에 동조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거지 소녀에서 기꺼이 다시 거지 소녀로 돌아간 로즈처럼. 왜? 우리 삶은 배우고 버리는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자주적으로 허물어지는 걸 선택한 사람은 로즈가 유일하다. 로즈의 아버지를 도피처로 생각하며 결혼한 의붓어머니 플로, 다시는 학생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스펠링 책을 들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교직 생활을 한 선생,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며 가난한 여학생들에게 자선을 베풀며 품위 있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해온 독신녀 헨쇼 박사, 물질적 풍요가 있으니 거짓 유대조차 없이 악의로 서로를 대하던 패트릭의 가족, 가족의 부와 속물주의를 비판했지만 자신도 마찬가지 생활을 꾸렸던 패트릭, 사람들의 통념을 깨려 하고 비웃었지만 남편 클리퍼드의 성공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려 했던 조슬린 등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현실 세계의 우리는 서로에게 착취적이고 기만적이다. 패트릭의 열정을 받아준 것처럼 자조했지만 로즈도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결혼으로 도피했을 뿐이었다. 단지 가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골 수재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갈 정도의 지성을 갖춘 로즈였지만, 교내에 생리대가 떨어진 것만으로 풍기 문란죄로 범인을 색출하려 했던 핸래티 학교, 도덕을 핑계로 술에 취한 청년들이 노인을 찾아가 집단 폭행해 숨지게 만드는 사건 등을 보면 그녀도 마을 정서, 피로, 교활함, 기만성, 심술처럼 어떤 계층의 공통적인 성향 같은 것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엄한 매질’ 속에서도 공포와 매혹을 느꼈던 그녀가 스스로의 균열을 도모한 중대 사건이 성적 일탈이나 외도 등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로즈가 클리퍼드에게 끌린 것도 계층의 공통적인 성향(‘둘 다 의뭉한 물건들’) 때문이었다.

 

“당시에 그녀는 술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진정제를 복용하지 않았고, 갖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때는 그런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괴로움. 그건 무엇이었을까? 모두 낭비였을 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너무도 불미스러운 슬픔. 짓밟힌 자존심과 웃음거리가 된 환상. 마치 망치를 들고 의도적으로 제 엄지발가락을 박살 낸 것과 같았다. 그것이 때로 그녀가 하는 생각이다. 다른 때 드는 생각은, 그것은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는 것, 파괴와 변화의 시작이었으며, 패트릭의 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 오게 한 과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으레 그러하듯, 인생은 작은 효과를 위해 엄청난 소동을 피우는 법이다.”(「장난질」, p237)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게 대단한 일탈이고 금기를 깨는 행위처럼 여겨지는 시대, 장소, 나이가 있었지만 인생을 되돌아볼 때 그것은 치기 어린 헛소동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방향 키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해 자신의 인생을 소진해버리는 이들도 많다. 로즈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적절히 배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즈의 모습에서 시골 여자의 특징을 읽어내고 첫 캐스팅된 일화처럼 로즈는 자신의 치부를 배우라는 가면 속에 숨기고 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적절하다는 건 어디까지일까?  현실 속 로즈의 모습을 누구도 제대로 볼 생각이 없다.

 

“시기나 하는 빌어먹을 기득권층.

로즈는 그 말을 들었다, 혹은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흘낏 보았다, 혹은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바로 보지 못했으므로. 기득권층. 그것이 로즈였다. 그런가? 로즈가 기득권층인가? 배우 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교직을 택했고, 무대와 텔레비전에서의 경력 덕분에 교직을 구할 수 있었으나 학위가 부족해 급여가 깎인 로즈가?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었다. 일을 해온 오랜 세월, 피로, 출장, 고등학교 강당들, 긴장, 지루함, 다음 급여는 어디에서 받게 될지 모르는 형편. 로즈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같은 편으로 받아달라고 그들에게 간청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한 거실의 무리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편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원칙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두려웠다. 그들의 박절한 도덕관념과 냉정하고 경멸이 서린 얼굴, 그들의 비밀과 웃음, 음담이 두려웠다.”(「사이먼의 행운」, p288)

 

 

 

사실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그렇다.

 

 

“브라이언은 로즈와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본인을 면전에 두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그가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배우, 화가, 언론인, 부자(자신도 부자라는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의 예술 계통 교직원 전체, 관련 계층과 범주 전체가 다 쓸데없는 낭비. 죄목은 모호한 사고와 과시적 행동, 부정확한 말, 도를 넘는 방종.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누이 앞에서 일부러 하는 말인지 로즈는 알 수 없었다. 브라이언이 경멸조의 낮은 목소리로 미끼를 던지면 그녀는 덥석 물었다. 남매는 싸웠고 누이는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로즈는 느꼈다, 그 모든 것의 한꺼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랜 경쟁─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선택했는가?─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한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의 인정, 아마도 둘 다 기꺼이 줄 의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인정이었다.”(「스펠링」, p323~324)

 

로즈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그녀가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한 사이먼과의 어이없는 사별도 삶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이 일은 그만큼 자주 일어나고 이미 늦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흉내를 잘 내던 랠프 길레스피와 만났을 때도 그녀는 동류의식을 느꼈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를 보고 소년처럼 수줍어하고 환심을 구한다고 느꼈던 첫인상은 수정되어야 했다. 그것은 그의 껍데기였다. 그 껍데기 아래에서 그는 자족적이었고 당혹감 속에서 사는 삶을 받아들였으며 어쩌면 긍지를 느끼는 것도 같았다. 그녀는 그가 바로 그 차원에서 말을 건네주길 바랐고 그 자신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가 그들을 막았다.

그러나 뭔가가 부족한 듯했던 이 대화를 나중에 떠올렸을 때, 로즈는 두 사람 사이에 우애가, 공감과 용서가 흘렀다고, 비록 분명 누구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물결이 되어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늘 떨쳐내지 못했던 이상한 수치심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연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허튼 것에만 주목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만 전달했던 건 아니었을까, 항상 그 이상의 어떤 것, 섬세한 결이나 깊이나 빛 등이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은 비단 연기와 관련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때로는 실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랠프 길레스피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처럼 강렬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랠프에 대해 생각할 때는 자신의 실수들이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그 시대가 낳은 자식이었으므로 랠프에 대한 느낌이 단순한 성적 호기심이나 정감이 아닌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번역을 통해야만 말해질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감정들은 번역을 통해야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번역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하기도 하고.”(「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p367)

 

 

이 소설에서 로즈는 의붓어머니 플로와 학교 선생에게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란 훈계를 듣는다. 사랑과 관계가 강요와 책임으로 자주 변질하듯이 한 사람의 정체성도 상대에 따라 사랑스러운 거지 소녀가 되기도 하고 경멸스러운 기득권층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잘 나갈 수 있는 존재인지 증명해야만 하는 관계도 있고, 변함없이 잘해줘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을 때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에 담지 않아도 번역하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도 있다. 로즈는 랠프 길레스피를 통해 그런 관계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혼 같은 관습도 인연의 절차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관계!

플로가 묵고 있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이 아이 때처럼 스펠링 맞추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단어가 되어 의미가 되기 전의 스펠링. 스펠링은 아직 미래가 비밀스러운 인간의 아이 때 모습이기도 하다. 노인은 많은 스펠링이 담긴 책처럼 완성된 것인가. 잘못된 지식과 편견과 실패와 악의로 가득하다면 그 책을 누가 볼 것인가! 그러나 삶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먼로에 의해, 로즈에 의해 드러난 이 책의 많은 인간 군상들이 그것으로 모두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도 자신을 다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사는 존재다. 우리의 모습, 시선, 마지막 말 모두에 우리 자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게 다 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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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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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딱 한 문장만 가져오라고 한다면 나는 이 문장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앨런 케이)

 

 

 

이 책이 내세운 철학의 실용성, 창의성 추구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응용해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그 해결책을 탐구했던 이들의 철학이자, 그들의 철학을 야마구치 슈가 사람, 조직, 사회, 사고 네 가지 콘셉트에 따라 큐레이션 한 해결책이다. 철학의 역사가 ‘제안→비판→재제안’의 연속이었던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철학이 여전히 강력한 무기가 되며 배워야 되는 이유를 밝힌다. ①상황을 정확히 통찰하고 해석 ②상식으로 인식되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들을 비판(What‘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와 How‘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 이래 아직도 결정적 답은 나오지 않았다) ③모든 혁신은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실현되게 마련이므로, 교양을 높이고 안목을 길러 과제를 제대로 설정하는 능력 고양 ④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극복.

 

 

몸에 좋은 약이 귀하듯이 철학도 배워 익히기가 쉽지 않아서 저자는 철학 입문서의 전형성을 피했다. ①험하기만 하고 따분한 시간 축의 철학 역사를 따르지 않고, ②현실에 쓸모에 중점을 두며(철학 사상의 중요성보다 유용성), ③철학 이외의 영역(경제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언어학)도 적극적으로 다룬다. 저자의 방향성에 나도 동감이다.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는 일은 가능할까?’ 물음에 철학에서 데카르트와 칸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것을 증명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역학 분야였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처음 생각해낸 ‘지구는 허공에 떠 있다’고 한 철학적 고찰도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즉 “철학의 영역에만 초점을 맞춰 고찰하는 일 자체가 애초에 철학적이지 않다.” 인풋 아웃풋을 활발히 하며 전투적으로 배워나가는 과정이 곧 철학이다.

 

 

 

 

◆ 타인과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 관해 통찰하는 ‘사람’에 대한 콘셉트에서 언급된 철학

1.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 - 타인의 시기심(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하고 복종 or 원인이 된 가치 기준을 뒤바꾸거나 정반대의 가치판단을 주장해 그 감정을 해소한다.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설파한 『성서』,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 『공산당 선언』을 꼽았다. 독일어에는 인간 미묘한 심리에 대한 단어가 많은데 ‘르상티망’의 설명을 읽으며 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도 떠올랐다. 샤덴프로이데는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는 타인이 불행에 빠졌을 때 느끼는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뜻이다. 권력층과 연예인에게 이런 심리 표출을 하는 걸 자주 본다. 김신현경은 「5장 여자 아이돌/걸 그룹과 샤덴프로이데: 아이유의 《챗셔》 논란 다시 읽기」(김은실 외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2018, 휴머니스트)에서 여자 아이돌/걸 그룹들이 선망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순간을 설명하기도 했다.

 

 

 

 

 

 

 

2. 칼 구스타프 융의 ‘페르소나’ - 최근 아이돌 그룹 BTS가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를 내며 머리 스타인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 순식간에 3년간 판매 부수를 뛰어넘어 화제가 되었다. ‘페르소나-가면’(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이라는 융의 이 개념은 자주 회자된다. 각종 관계와 커뮤니티 속에 있는 우리는 일관된 정체성으로 살고 있지 않다. 여러 폭로 기사를 보면 사일로(silo, 개인이 속한 다양한 입장과 소속, 즉 여러 개의 페르소나)의 균형이 깨진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삶은 ‘도망치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3.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의 ‘예고된 대가’에 대한 실험 결과 - 데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과급이 기대되는 행동만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성과급 정책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조직의 창조성과 혁신을 저해한다. 자발적 동기로 성과를 얻는 데에서 창조성을 더 발휘하고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모두 동감하지 않는지.

 

 

4.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 표현의 자유가 혐오의 문제로까지 커지는 요즘이다. 홍성수 교수가 『말이 칼이 될 때』(2018, 어크로스)를 내며, 한국이 차별과 혐오를 낳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행동을 진정한 의미에서 바꾸고 싶다면 설득보다는 이해, 이해보다는 공감이 필요하다”(야마구치 슈)는 걸 우리는 자주 잊는 것 같다. 사람이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아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로고스(logos 논리), 에토스(ethos, 윤리), 파토스(pathos, 열정)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열정적 연설로 유명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뿐 아니라 대중에게 존경받는 이들은 저 특징이 공통적으로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은 사람 마음을 나쁜 길로 홀리는 것이라며, 레토릭보다 대화를 강조했다. 히틀러와 나치의 전략이 레토릭의 대표적인 나쁜 예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레토릭이 사람을 매료시켜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도 강력히 보여준다.

 

 

5. 프랑스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 장 칼뱅의 ‘예정설’ - 마틴 루터를 이어받은 장 칼뱅은 면죄부 따위는 없고 깊은 신앙심이나 선행과 상관없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뱅파의 예정설이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는 논리를 펼쳤다. 구원의 여부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허무 사상에 빠지거나 쾌락을 좇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이야말로 구원받기로 선택된 인간’이라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금욕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논리다. 인과응보를 부정한 예정설이 자본주의와 잘 맞아떨어졌듯 ‘노력→결과→평가→대가’의 인과관계는 사회에서는 그저 이론이다. 낙하산 인사, 은퇴한 공직자의 대기업 취업, 고위급 정치인 자녀들의 청탁 취업 등 한국 사회에서 ‘미리 정해져’ 있는 구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뿌리부터 변해야 하는데 다 같이 일시에 변할 수 없으니 답답한 지경이다.

 

 

 

6. 존 로크의 ‘타불라 라사’ - 타불라 라사tablue rase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존 로크는 의사로 많은 영유아를 접해 본 경험을 통해 사람의 심성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과 같다고 말하며 경험과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을 강조했다. 로크의 이 주장은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부정하는 데에서 구축되었다. 이 사고관은 타고난 우열이 없으므로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념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시대 속에서 로크의 무기는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는 외부 환경적 요인에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저자가 좀 더 공정을 기했다면 ‘빈 서판’ 이론을 반박하는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야 했다. 스티븐 핑커의 스승이었던 촘스키는 모든 인간이 이른바 언어 문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도 주장했다. 뇌와 행동의 여러 상관관계를 따져볼 부분도 많은데 그 점에서는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7.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프롬은 나치 독일에서 발생한 파시즘에 주목하고, 그것은 자유에 따르는 고독과 책임으로부터 도피한 이들이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추구함으로써 나온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조직이나 이념뿐 아니라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소속감을 느끼길 원한다. 공익제보자가 어려움에 처하는 걸 자주 보는데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책임이 오직 개인에게만 주어지지 않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8.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 ‘대가’ 2 - 스키너는 행동 심리학의 창시자로, 자유의지는 환상이며 사람의 행동은 과거의 행동 결과에 의존한다는 강화이론을 주장했다. 앞서 나왔던 데시의 ‘예고된 대가’ 경우와 맥락이 닿는데 스키너의 실험도 대가가 불확실하게 주어질 때 효과가 크다는 걸 밝힌다. 욕구계(도파민)가 쾌락계(오피오이드)보다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 추구하는 행동을 한다. 도박이 고전적인 대표적 예이고 요즘은 소셜미디어 중독이 더 크다. 이 책의 리뷰 대회를 보고 이 글을 쓴 나도 당신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9. 장 폴 사르트르 ‘앙가주망’ - 사르트르는 에리히 프롬처럼 자유를 매우 무겁게 생각했다. 이들의 사상에서 세계 대전 같은 극단적 경험을 배제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뿐만 나이라 이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외부의 현실과 나를 결코 끊을 수 없으므로 현실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앙가주망’을 요구했는데, 사회나 조직이 원하는 가치와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자주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이가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을까. 누가 이런 조사를 좀 해주면 좋겠다. 이미 어딘가 있으려나.

 

 

10.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점이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즉 누구나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현행 시스템이 초래하는 악폐에 생각이 미치기보다는 그 규칙을 간파하여 제도 안에서 능숙하게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무의식중에 먼저 생각한다.” 아렌트의 철학은 시스템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가는 사고와 행동을 촉구한다. 

 

 

11.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메슬로 ‘자아실현적 인간’ -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소속과 애정의 욕구→존중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 5단계 구조로 설명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은 순차적이지 않으므로 신뢰도가 떨어지지만, 그의 연구 중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15가지 특징(‘①현실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각하고 쾌적한 관계를 유지, ②자연을 비롯해 자신과 타자를 수용, ③자발성, 단순함, 자연스러움, ④과제 중심적, ⑤초월성-프라이버시의 욕구, ⑥자율성-문화와 환경으로부터의 독립·능동적 인간, ⑦언제나 새로운 인식. ⑧신비로운 경험-최고의 체험을 가지고 있다, ⑨공동체 의식, ⑩소수의 사람과의 깊은 유대관계, ⑪민주적인 성격 구조, ⑫수단과 목적의 구별, 선악의 구별, ⑬철학적이고 악의 없는 유머 감각, ⑭특수한 창조성, ⑮문화에 편승하기를 거부)은 나를 돌아보는 지표로 삼을 만하다.

 

 

 

12. 미국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 ‘인지 부조화’ -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시사한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에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생각해 보면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 잘 지내려고 인지를 바꿔서 낭패를 당한 적 있다. 내 의식과 감정, 행동 하나하나 의심해야 하니 사람의 삶은 참으로 고행이다!

 

 

13.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의 복종’ - 나치의 명령을 따른 이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걸로 유명한 ‘아이히만 실험’은 ‘난 단지 명령 집행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명령을 내린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실험이 이뤄졌는데, 같은 복종률을 나타내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질인 것을 보여줬다. 관료제와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한 채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만큼 해결도 어려워 보인다. 

 

 

14.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은 과제의 수준과 능력의 수준이 높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뤄 ‘몰입flow’ 상태에 든다. 어렵더라도 과제 수준을 높이고 일에 몰입함으로써 능력 단계를 올려나가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인이여, 무기력을 한계로 만들지 말자.

 

 

 

 

 

◆ 집단에 속한 인간이 보이는 행동을 이해하는 ‘조직’에 관한 콘셉트

15. 니콜로 마키아벨리 ‘뛰어난 리더의 조건’ - 마키아벨리는 전쟁에 약했던 피렌체의 지도자들이 피렌체의 가장 위험한 적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보르자 가문의 체사레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배우길 바라며 『군주론』을 썼다. 위기 상황에서는 강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국 정치계를 봐도 그 때문에 인기를 얻거나 욕을 먹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한국 재벌을 보면 합리와 도덕성이 조화로운 리더들을 보기 더 어렵다. 500여 년이 지나서도 이 책은 건재한데 좋은 리더가 이렇게 부족한 건 아이러니다.

 

 

 

16. 존 스튜어트 밀 ‘악마의 대변인(다수파를 위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 -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경제 분야에서의 과도한 통제 거부를 지적했듯이 밀은 『자유론』 집필을 통해 정치와 언론 분야에서도 그것이 적용되길 바랐다. 역사의 수많은 사례를 보더라도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더라도 비슷한 의견이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지적 생산의 질이 낮아진다. 이때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파의 의견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해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돕는다. 가짜 뉴스와 황색 언론이 판을 치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 ‘악마의 대변인’은 아주 필요한 요건이다.

 

 

 

17.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는 지연이나 혈연 등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자연 발생적인 커뮤니티를, 게젤샤프트gesellschaft는 이익이나 기능, 역할에 의해 연결된 인위적인 커뮤니티를 뜻한다. 원래 독일어로 게마인샤프트는 ‘공동체’, 게젤샤프트는 ‘사회’를 의미한다.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에 의하면 인간 사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연이나 혈연, 우정으로 깊이 연결된 자연 발생적인 게마인샤프트가 이익이나 기능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게젤샤프트로 점차 옮겨간다. 더불어 퇴니에스는 이 과정에서 인간관계 자체는 소원해진다고 생각했다. 기능을 중시하는 게젤샤프트에서는 사회나 조직이 일종의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된다. 게젤샤프트에 소속된 개인의 권리와 의무는 ‘명확’해지며, 그때까지 인정에 약하고 감정적인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성적인 인간관계로 바뀌어 간다.”

 

예전 기업은 ‘종신고용, 연공서열, 노동조합’이라는 세 가지 특수한 제도가 있어서 ‘게마인샤프트’적이었지만 ‘계약제, 경력·능력제’로 빠르게 바뀐 요즘 기업은 ‘게젤샤프트’다. 회사나 가족의 해체로 인해 요즘은 새로운 사회적 유대 유형으로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끼리끼리 모이고 끊기 쉬운 소셜 미디어를 나는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대안이 없는 이상 이 시스템은 계속될 거 같다.

 

 

 

18.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 레빈은 조직 내에서 ‘개인과 환경의 상호 작용’에 의해 사람의 행동이 규정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레빈에 의하면 어떤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해동-혼란-재동결’의 과정을 거쳐 변화한다. …(중략)… 쿠르트 레빈의 지적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친일 세력 청산 & 박정희 정권 & 군부 체제의 잔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사회 여러 곳에서 문제를 만나는 한국을 생각할 때 정말 그렇다. 슈가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 말하고 있듯이 우리도 “지난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끝내야 한다.”

 

 

 

19.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 ‘카리스마’ - 우리가 흔히 쓰는 ‘카리스마’는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다루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베버는 지배자의 권위에 피지배자가 복종하는 현상이 ‘①정당성 : 전통적 지배로 인해 이어져온 권위(ex-세습군주), ②카리스마 : 천부적 자질로 갖는 권위(ex-예언자,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 선동 정치가), ③합법성에 의한 지배(ex-공무원)’라는 근거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어느 요소가 없을 때 다른 요소로 흐름이 이양되는 양상은 흥미롭다. “역사적 정당성이나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조직에서 역사적 정당성을 날조하는 일이 발생”하는 데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보는 일이다.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많이 나오도록 사회 여건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다시 한 번 한숨이.

 

 

 

20. 에마뉘엘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 -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他者’는 자신 이외의 사람이 아니라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라고 말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는데 레비나스는 “단지 죽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뿐이다”라고 말하며 ‘얼굴’을 이해가능성의 매개체로 중요하게 다뤘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저지르는 악행으로 우리는 인터넷의 악플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북미 회담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한국 정치 상황을 생각해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도 중요하다.

 

 

 

21.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 ‘마태효과’ - “과학 사회학의 창시자인 로버트 킹 머튼은 좋은 조건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는 뛰어난 연구 실적을 올림으로써 한층 더 좋은 조건을 얻게 된다는 ‘이익-우위성의 누적’ 메커니즘을 지적한다. 머튼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라는 문장을 차용해 이 메커니즘을 ‘마태 효과’라고 명명했다.” 슈가 제시하는 ‘4월생의 우수성’ 주장은 좀 미심쩍지만 초기 실적 차이로 우열을 두지 말고 긴 안목으로 사람의 가능성과 성장을 내다보아야 한다는 것 슈의 결론에는 동의한다.

 

 

 

22. 존 내시 ‘내시의 균형’ - 내시는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사고 실험 ‘죄수의 딜레마’는 “단 한 번의 의사 결정으로 참가자의 이득이 결정되는 게임인데, 실제 인간 사회는 그 정도로 단순하지 않아서 협조냐 배신이냐의 선택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된다. ‘몇 번이나 반복한다’는 측면을 반영해서 사회에서 인간의 의사 결정에 보다 깊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이 바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협력’과 ‘배신’의 카드가 끝없이 가는 상황에서 최강의 전략은 상대가 배신했을 때 응징하더라도 계속 협조하는 카드다. 외교 핑퐁 게임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카드다.

 

 

 

23. 네덜라드의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권력 거리’ - 통계를 보면 부조종사의 실책보다 기장이 조종타를 잡았을 때 추락 사고가 더 많이 발생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호프스테더는 ’상사에게 반론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 강도‘를 조사해 수치화했고 이를 권력거리지수라고 정의했다. “호프스테더는 권력 거리를 ‘각 국가의 제도와 조직에서 권력이 약한 구성원이,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예기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라고 정의했다. 영국처럼 권력 격차가 작은 국가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최소한도로 억제되고 권한이 분산되는 경향이 강하다. 상사는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 전반에도 특권이나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권력 격차가 큰 국가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오히려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고 권력 약자가 지배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권력 거리의 국가별 차이는 직장 내에서 상사와 부하의 관계 성향에도 크게 작용한다.” 슈는 권력 거리가 ‘준법성’, ‘혁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종합한다. 앞서 소개되었던 ‘악마의 대변인’처럼 반대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수용하려는 문화가 많이 퍼져야 한다.

 

 

 

24.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반(反)취약성’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 제목이기도 한 ‘안티 프래질’ 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례를 그 책에서도 보았는데, 슈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反취약성이란 ‘외부의 혼란이나 압력에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을 뜻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책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반취약성’이라고 표현하면 무척 딱딱하고 강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조어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는 1억 원 벤츠보다 저렴한 자전거가 이동이 편하듯이 시스템이 언제 어느 때 취약해질지 모르므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반취약성’을 찾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 사회의 성립 과정과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회’에 대한 콘셉트 

25. 카를 마르크스 ‘시스템의 인간 소외’ -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 사회 아래서 전개되는 노동과 자본의 분리, 분업에 의한 노동의 시스템화가 초래하는 폐해로 네 가지 소외ㅡ①노동 생산물로부터의 노동자 소외 ②노동이 인간에게 지루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으로 전락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③종류(種)로서 속한 건전한 인간관계가 파괴된 유적(類的) 소외 ③인간다움을 잃고 뺏고 얻을 것만 생각하게 되는 타인으로부터의 소외ㅡ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슈의 정리처럼 규칙이나 시스템으로 통제하고 개선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못한다. ‘자발적인 이념과 가치관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추구하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26.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년)으로 사회 계약 이론을 확립하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정치 철학의 초석을 구축했다. 홉스의 ‘유물론적 세계관’ 또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고, 인간이 원하는 것은 희소하고 유한함으로 사회의 상태가 필연적으로 ‘만인의 만인에 의한 싸움’ 상태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성원은 규칙을 정하고 지킬 것을 약속한다. 규칙이 깨졌을 때를 대비해 벌을 줄 큰 권력 권위체(리바이어던)를 만들고 그 권력이 사회를 통제한다. 청교도 혁명 속에서 사회가 혼란 상태에 있던 상황이라 홉스는 ‘자유롭지만 무질서한 사회’보다 ‘거대 권력에 지배된 질서 있는 사회’를 원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앞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관찰과 유사한데,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27.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일반의지’ - “조직의 집합적인 의사 결정 구조의 가능성에 관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논한 사람이 장 자크 루소다. 그는 저서 『사회 계약론』에서 시민 전체의 의지를 ‘일반의지’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의회제나 정당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일반의지에 기초한 통치야말로 이상적이라는 사고를 제시했다.” 시민 전원의 일반의지를 수렴하기 위한 시스템과 알고리즘이 통제되는 부정적 상황을 조지 오웰 『1984』,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살펴보게 된 우리에게 ‘일반의지’는 참 난제다. 개인의 인격과 견해가 반영되지 않는 집합적 의사 결정 시스템의 위험성도 있다. 최근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치 『모두 거짓말을 한다』(2018, 더 퀘스트)는 빅 데이터의 긍정성을 강조했고, 캐시 오닐 『대량살상수학무기』(2017, 흐름출판)는 부정성을 강조했다. 현대의 사회 운영 방식에 많은 한계가 있는 만큼 테크놀로지 당연히 투입될 거 같은데 프로세스의 블랙박스화를 막는 게 관건이다. 스티븐 호킹이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2019, 까치)에서 지적하듯이 AI의 통제권과 목표 설정에 대한 숙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28. 영국의 철학자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시장에 의한 조절)’ - 마케팅에서는 행하는 주체자의 이지적인 고찰의 결과로 최적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전제한다. 반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은 이지적 고찰 과정이 아니라 최적의 가격은 무작위로 다양한 가격이 시장에서 제안되고 타당성 없는 가격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도태 과정에 따라 배제되어, 시장에서 가장 타당하다고 보이는 가격 결정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정착된 가격이 최적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가격에 팔리고 이익도 발생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하는 실용적인 해답이 휴리스틱(heuristic, 엄밀한 분석에 의하기보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판단·선택하는 의사 결정 방식)이다. 수요 변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적절한 유연성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29. 찰스 다윈 ‘자연도태’ - 다윈이 제창한 ‘자연 도태’ 개념은 ‘돌연변이, 유전, 자연선택’을 주요 요소로 꼽는다. 즉 자연도태는 “다양한 형질의 돌연변이 중 ‘우연히’ 더 유리한 형질을 지닌 개체가 그 형질을 차세대에 유전으로 남기고, 더 불리한 형질은 지닌 개체는 도태되어 가는 과정”이다. “자연도태의 메커니즘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적응력의 차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사고가 세계를 바꾼 걸 생각할 때 나는 어떤 돌연변이를 만들어 볼까 싶다.

 

 

 

30.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아노미’ - 슈는 뒤르켐이 『사회분업론』, 『자살론』 저서를 통해 제창한 아노미(anomie)가 ‘무규범’, ‘무규칙’으로 해석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아노미가 초래하는 결과이고, 무연대(無連帶)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아렌트, 마르크스 등 여러 철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또다시 ‘분업’이 문제다. 뒤르켐은 “분업이 지나치게 발달한 근대 사회에서는 기능을 통합하는 상호 작용 행위가 결여되어 공통 규범이 생겨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석학들의 인터뷰 『초예측』(2019, 웅진지식하우스)에서도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각종 격차 속에서 각 개인은 조직이나 가정에 대한 연대감을 잃고 고독감 속에서 사회를 표류하고 있다. 유발 하라디도 인류 3부작 시리즈에서 ‘자신과 사회가 무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의 문제성을 거듭 지적했다. ‘무연사회無?社?(단독 세대가 늘어나고 사람 간의 관계가 희미해져 가는 현대 사회의 일면을 나타낸 말)’라는 말은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 교수가 제안했는데 1990년 대 버블 경제 몰락 이후 일본의 높은 자살률, 사이비 종교의 문제 등이 사회가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음을 시사했다. 저자는 무연사회의 해결책으로 가족의 회복, 소셜미디어, 회사라는 ‘종적 커뮤니티’를 대체할 ‘횡적 커뮤니티’를 제시했는데, n포 세대, n잡 세대, 인터넷 유목민이 소속감을 느낄 커뮤니티 찾기가 만만지 않아 보인다.

 

 

 

 

31.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모스 ‘증여’ - 폴리네시아인들의 증여 문화는 끝없는 교환 활동을 보여줬다. 오늘날 사람의 경제 활동과 사물의 가치를 설명하는 큰 틀은 ①모든 일의 가치는 투입된 노동량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노동 가치설’ ②모든 일의 가치는 효용의 크기로 결정된다고 보는 ‘효용 가치설’이다. 근대 이전에는 증여가 기본 형태였고 근대 이후 유럽 사회가 증여라는 관습을 잃어버렸기에 경제 시스템에서 인간성을 잃고 말았다는 모스의 ‘증여’ 가설은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슈가 교환 방식으로 ‘증여’를 심도 있게 다룬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도 보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칸트와 스피노자가 너무 대단한 무기여서 쓰지 못했다고 밝혔듯이 고진 선생도 그래서였을까^^;

 

 

 

 

 

 

 

32.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 보부아르는 생물학적인 여성과 사회적인 여성을 규정한 후에 “태어날 때부터 여자는 없다. 모두 사회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로 ‘여자다움’을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문화가 심하고 사회생활에서 남녀의 성별 역할이 구분되는 경향도 강하다. 저자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남성들이 자신이 갇혀 있는 사회적 성차별에 관해 인식하고 성역할에 대한 왜곡과 편견, 즉 성 편견gender bias을 얼마나 자각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했는데, 생존 경쟁이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남성이 정말 공존할 의향이 있느냐 하는 데에 나는 더 초점이 둔다.

 

 

 

33. 질 들뢰즈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 들뢰즈와 과타리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소개된 용어인 ‘파라노이아’는 아이덴티티에 집착하고 정체성을 공공히 하는 편집증을, ‘스키조프레니아’는 고정된 아이덴티티에 속박되지 않는 리좀(프랑스어로 뿌리, 다양성이나 다면성의 형태를 일컬음)적 인간으로 분열증을 뜻한다. 아사다 아키라 『도주론』에서 파라노이아는 정주(定住)형 인간, 스키조프레니아는 도주(逃走)형 인간으로 설명한다. 기업이나 사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다양한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취약하다. 저자의 당부대로 직감과 도망칠 결단을 내릴 용기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 모두가 모든 상황에서 잘 살아남는 결과는 되지 못할 것이다.

 (※ 아사다 아키라 『도주론』 읽고 싶은데 절판이라 안타까워요)

 

 

 

 

 

 

34. 사회 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 ‘격차’ - 공평이나 공정과 정반대에 있는 차별이 이질성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차별이나 격차는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 2000년도 더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지적한 바 있고, 모스코비치는 인종 차별도 동질성의 문제로 보았다. 알렉시 드 토크빌도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불평등이 사회 공통의 법일 때는 최대의 불평등도 사람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거의 평준화될 때 인간은 최소의 불평등에 상처받는다. 평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항상 평등의 욕구가 더욱 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정하고 공평한 조직과 사회 속에서는 자신의 열등성을 부정할 수 없으니 자기방어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정이 善이자 定義 실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허를 찌르는 통찰이다. 우리의 본심은 ‘나를 위한 공정’인지도 모른다.

 

 

 

35. 미셸 푸코 ‘패놉티콘’ - “패놉티콘Panopticon은 독방이 원주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감시탑이 설치된 감옥 건축 양식”이다. 원래 패놉티콘이라는 형태의 감옥을 구상한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었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상적인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추구했는데, 그러한 사회에서는 범죄자의 갱생도 최대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감옥을 만들었다. 소수의 교도관이 많은 독방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디자인되었다. 한국에는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건축된 남영동 대공분실이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사람을 고문하기에 최적화된 건축으로 유명했다.

“푸코는 패놉티콘이 만들어 내는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현대에서는 독방이 아니라 사회 일반에도 널리 확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이 압력이 인간의 개성, 또는 자유로운 사상과 행동을 억압하고 이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한 개인’을 광인으로서 집단에서 배제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근대 국가는 법률이나 규칙 등 외부의 제도뿐만 아니라 훈련으로 형성된 도덕과 윤리로도 국민을 지배한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었다. 우리는 자율적으로 ‘그것이 좋은 일이므로, 그것이 도덕이므로’라는 식으로 자기 마음속에서 이유를 붙여 행동을 일으킨다고 느끼지만, 푸코는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지배 형태라고 경고한다.”

대기업들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감시하고 압박을 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고 목숨을 끊는 이들도 많았다. 앞서 소개되었던 밀의 ‘악마의 대변인’, 호프스테더 ‘권력 거리’ 등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이 압력도 좀 낮아지지 않을까 싶다.

 

 

 

 

36. 장 보드리야르 ‘차이적 소비’ - 고전적 마케팅 구조에서 소비의 목적은 ①기능적 편익 획득, ②정서적 편익 획득, ③자아실현적 편익 획득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필요보다 욕구에 집중한다. 그는 『소비의 사회』에서 소비가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라는 ‘차이’를 표현하는 기호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지닌 ‘욕구’는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성, 즉 ‘사회적’인 것으로 설명 가능하다” 고급 주택, 명품만이 아니라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이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에 대한 설명으로도 적절하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아무 목적 없이 행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기호가 생겨난다. 이 거북한 진실에서 놓여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그러한 ‘기호의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보드리야르는 강조했다.” 이 철학은 상품 개발과 서비스에서 유용한 지침이다.

 

 

 

 

37. 멜빈 러너 ‘공정한 세상 가설’ -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거라는 세계관을 ‘공정한 세상 가설’로 정리했다.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혔을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①“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이 무의식중에 방출하는 ‘노력 원리주의’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천진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큰 성공을 이룬 음악가나 스포츠 선수는 모두 1만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훈련에 쏟아부었’듯이 그리하면 모두가 성공할 것처럼 말한다. 슈의 반론처럼 노력한다고 모두 모차르트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정한 세상 가설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노력의 누적량과 성과의 관계는 해당 경기나 종목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혀졌다. 개인 기량이나 운도 고려되어야 한다. ②이 가설에 사로잡인 사람은 자주 반대의 추정도 한다. 불행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원인이 당사자에게도 있을 것이라는 ‘피해자 비난’ 편견에 빠지기 쉽다. 유대인 박해는 역사적으로 길었고, 약자 박해, 왕따 문화, 강간당한 여성의 잘못 등 수많은 사례를 거론할 수 있다. ③이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은 조직에 원한을 쉽게 품게 된다. 테러를 일으키는 이들의 심리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균형 잡힌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 모든 일을 깊고 예리하게 고찰하기 위한 ‘사고’에 관한 콘셉트

38. 소크라테스 ‘무지의 지’ - “‘무지無知의 지知’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우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므로 배움에 대한 욕구나 필요성도 없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이 아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사실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인 점을 지적했다. 그다음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옮겨 가면, 이때 비로소 배움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이 생겨난다. 그 후 학습과 경험을 쌓으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옮겨 가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게 되는 상태다. 그리고 마지막은 진정한 달인, 즉 숙달의 영역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잊고 있는)’ 상태, 즉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다.”

달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앞서 나왔던 ‘몰입’의 경지와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앎에는 모르는 앎에 대한 겸손도 필요하다.

“우리는 쉽사리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걸까? 영문학자이자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의 저자인 와타나베 쇼이치는 “두근두근할 만큼 알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또한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역사학자 아베 긴야 교수가 그의 스승인 우에하라 센로쿠 교수에게서 “안다는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안다는 데서 오는 심원함과 자신이 느낀 감동을 밝혔다. 우리의 배움은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정체되고 만다. 과연 스스로 설렐 만큼, 앎으로써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알게 되었는가? 우리는 안다고 내세우는 일에 조금 더 겸허해져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충고는 불쑥 어떤 일을 정리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의 ‘위험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설명은 뒤에 나오는 후설은 ‘에포케epoche’(판단 정지)와 유사하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창조적인 발견과 생성을 이끌어 내려면 ‘결국 ??이다’라는 식으로 축소해서 인식하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의 데이터와 조합하는 것을 경계”하고, 만약 “결국 ~이라는 뜻이죠?”라고 요약하고 싶어질 때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과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라는 것.

 

 

 

 

39. 플라톤 ‘이데아’ -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은 천상계에만 존재하는 이데아가 복제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수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의 사후에 이데아론에 대해 계속 비판했다.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가상을 사고의 입각점에 두는 일은 소용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상 개념보다 눈앞의 현실을 똑똑히 관찰하는 방법을 사고의 입각점에 두어야 한다는 사고관이었다. 저자는 이데아에 사로잡혀 현실을 경시하는 전형적인 예로 인사 제도를 꼽았다. “바람직한 모습의 이상형을 그리는 일은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지만, 그 점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불가능한 것을 무리하게 추구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40. 프랜시스 베이컨 ‘우상’ - 이번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격당한다. “베이컨은 연역, 즉 일반화된 법칙에서 개별의 결론을 추론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오히려 오류를 야기하기 쉽고, 올바른 지식은 항상 실험과 관찰이라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컨은 인간의 인식 능력은 미덥지 못한 면이 있어 오해나 편견으로 인해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 관찰과 관찰 결과의 귀납적 추론에 의해 정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해 생기는 오류로 베이컨의 ‘우상 이론’은 매우 유명하다. ①종족의 우상(자연 성질에 의한 우상) ②동굴의 우상(개인 경험에 의한 우상) ③시장의 우상(‘거짓말’이나 ‘전해들은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현혹되는 것) ④극장의 우상(권위에 의한 우상) 가짜 뉴스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언론이 횡행하는 한국에서 베이컨의 우상 이론은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될 사고이다.

 

 

 

41. 르네 데카르트 ‘코기코’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는 일반상식으로 다 알지만, 이 말이 나온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유럽 최대의 종교 전쟁 시기에 살았는데 “30년 전쟁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으로, 양자는 신앙과 교의의 이상적인 모습에 있어 어느 쪽이 ‘진리’인지를 두고 싸웠다.”그는 교의와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연구하는 신학자로서 당시 권위로 군림하던 기독교와 스토아 철학에 대항해 “철저하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라는 뜻으로 저 말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의심하는 그의 ‘방법적 회의’가 신의 존재 증명으로 끝나는 것은 아쉬운 결말이다. 지금의 우리는 생각하는 나, 자유의지조차도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으니 발전이라면 발전일까.

 

 

 

42. 게오르크 헤겔 ‘변증법’ - 헤겔의 사상도 시대적 배경 이해가 필요하다. 헤겔이 살던 시대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다. 헤겔은 변증법적 사고를 진리 탐구만이 아니라 역사에도 적용했다. 그는 군주제라는 테제(正)에 공화제라는 안티체제(反)가 제안되어 혁명(合)이 성취되었다고 보고 이상적인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류에게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공산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양자택일을 종용받는 현실에서 저자는 상반된 두 명제를 통합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해 나가는 이런 지적 태도를 가장 배울 점으로 꼽는다. “변증법에서는 사물이 직선형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발전”하므로 “‘진화·발전’과 ‘복고·부활’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저자는 合(진테제)가 ‘나선형 발전’에 의해 출현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43. 스위스의 언어학자이자 구조주의 기호학의 창시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로 정의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체계는 언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소쉬르는 우리의 세계 인식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시스템에 의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의 분석은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이 구조주의 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도 우리의 사고가 ‘사회적 입장’, ‘사회적 도덕’,‘자신의 무의식’에 의해 불가피하게 왜곡된다고 지적했다. 소쉬르의 분석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성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결정적 반박이다. 또 중요한 점은 풍부한 어록이 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역량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제시한다. 말 그대로 ‘아는 것이 (세계를 보는) 힘’이고 우리가 교양을 쌓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44. 오스트리아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에포케’ - 후설은 눈앞의 사과를 볼 때 객관적 실체를 주관적 인식으로 ‘환원’하는 사고 프로세스가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하지 않은 것,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석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성급하게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으므로 후설은 ‘에포케epoche’(판단정지)를 제시했다. 후설의 ‘에포케‘는 잠시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로, 각자의 완고한 생각을 중지하고 내가 보는 세상과 상대가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대화를 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돌아보게 한다.

 

 

 

45. 영국 과학 철학자 칼 포퍼 ‘반증 가능성’ - 포퍼에 따르면 “논리 혹은 사실을 이용해서 명제와 가설에 반론할 여지가 없을 경우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모든 욕구의 근원에는 성적 리비도가 있다”(프로이트)라는 명제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는 명제도 반증할 수 없기에 포퍼는 과학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진 가설의 집합체”이며, ‘과학으로 검증되었다’는 것으로 주장의 정당성이 완결되지 않는다. 주의할 것은 포퍼의 주장은 ‘과학인 척하는 가짜 과학’을 논박하기 위해서지 반증 가능성을 갖지 않는 것이 ‘옳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창조론자들은 근거가 아니라 ‘증거의 부재’를 지적하며 추론에 의존하면서 과학이라 우긴다.

 

 

 

46.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브리콜라주’ - 레비스트로스는 남미의 원주민들이 ‘언젠가 무언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물건을 보관했다가 요긴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브리콜라주’라고 명명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근대적이고 예정조화적인 사상(용도 시장을 명확히 하고 나서 개발에 착수하는 사고관을 지닌 유파)보다 유연한 사상을 내세웠다. “용도 시장을 지나치게 명확히 설정하면 혁신의 싹을 자를 가능성이 있는 반면, 용도 시장이 불명확하면 맹목적으로 개발에만 매달리게 되어 상업화하기가 수월치 않다”는 딜레마가 있지만, 축음기, 비행기, 아폴로 달 착륙 계획 등이 ‘브리콜라주’ 같은 비예정조화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아폴로계획은 막대한 예산 낭비라고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기술과 시스템의 발전을 낳았다. 물건을 못 버리고 집에 쌓아두는 ‘저장 강박’이 되지 않고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실행하는 능력 개발을 그의 철학에서 배울 수 있다.

 

 

 

47.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토머스 쿤 ‘패러다임 전환’ -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은 일반적으로 인정받은 과학적 업적으로, 어떤 한 시대에 전무가가 묻고 대답하는 방법의 패턴을 알려주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 일시적으로 패턴을 부여하는 ‘과학적 업적’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오늘날 ‘패러다임’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설명하기 적절해 과학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이나 테크놀로지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개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어떤 패러다임에 뛰어난 설득력이 있어 그 시대에 주어진 난제의 대부분에 답할 수 있다 해도 그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ex 천동설)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우열을 가리기 위한 공통된 기준이 없으므로(‘공약 불가능성’) 패러다임의 전환은 매우 긴 세월에 걸쳐 일어난다(ex 활판인쇄 기법, 감염증의 예방법). 지금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연구가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단초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분야는 정말 예측이 어려워 나는 요즘 ‘브리콜라주’ 자세로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48.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탈구축’ - “탈구축?構築은 쉽게 말해 이항대립二項?立의 구조를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자크 데리다에 의하면 서양 철학은 ‘선과 악’, ‘주관과 객관’, ‘신과 악마’와 같이 우열 구조를 전제로 발전해 왔지만, 탈구축에서는 이러한 우열의 구조 자체가 갖는 모순성을 밝힘으로써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구축構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탈구축은 “반증 사실을 가지고 반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주장하는 논고의 내부적인 모순을 공략함으로써 반론하는 방법”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면 여러 가지 사고관을 모두 인정해야 하고 ‘획일성과 전체주의’가 훌륭하다는 주장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다양성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되어 원래의 명제와 모순된다. 레비스트로스도 탈구축 사고관으로 사르트르를 논박한 적 있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사고는 모든 사회와 문명이 발전이라는 척도로 ‘앞서가는 사회문명’과 ‘뒤처지는 사회문명’으로 나누게 되는데, “사르트르가 제시한 것은 발전과 미개의 이항대립이며,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함으로써(이것을 사르트르는 앙가주망이라고 불렀다) 역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가 제안한 발전과 미개라는 이항대립 구조 자체에 유럽의 오만함이 드러나 있다고 비판”했다. 탈구축 비판 접근을 하려면 교양이 있어야 하므로 또다시 철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49.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 ‘미래 예측’ - 앨런 케이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아이디어를 생각한 뒤 실현을 위해 노력했고 컴퓨터 탄생에 기여했다. 그의 사고관의 특징은 ‘어떻게 될까’하는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까’하는 비전을 가진 적극성에 있다. 예측에 의지하고만 있으면 예측이 빗나갈 때는 답이 없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탁월한 행동지침이다.

 

 

 

50. 미국 신경 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신체적 표지’ - 철학 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대두되면서 과학에서도 ‘마음과 신체’의 관계는 논란 주제다. “플라톤은 이 문제를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연구했고, 시대를 한층 건너뛰어 데카르트는 이를 ‘심신이원론’으로 정리해 기본적으로 양자를 분리, 독립된 별개로 취급했다. 한편 스피노자는 ‘심신평행론’을 내세워 마음과 신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며 데카르트를 비판했다.” 최근의 여러 연구를 통해 마음이 주(主)이고 신체가 종(從)인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게 밝혀졌다. “다마지오는 수리와 언어라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뇌 기능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인 의사 결정 능력이 심하게 결여된 환자를 수없이 관찰하고, 적시에 적정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는 이성理性과 정동情動(분노, 두려움, 기쁨, 슬픔 등 비교적 급속히 일어나는 일시적이고 급격한 감정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신체적 표지 가설’을 내놓았다.” “신체적 표지 가설에 따르면 정보에 접촉함으로써 야기되는 감정이나 신체적 반응(땀이 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입이 마른다 등)이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 부분에 영향을 미쳐 눈앞에 주어진 정보에 관해 ‘좋다’ 또는 ‘나쁘다’의 판단을 도와 의사 결정의 효율을 높인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의사 결정은 가능한 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행해야 한다’라는 상식은 잘못된 것이며 의사 결정을 할 때 오히려 감정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책들을 보면 인간의 행동의 상당 부분 이성과 감정으로 명확히 양분되지 않는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지각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했다(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인지 과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할 때 우리가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을 예를 들며 정치에서의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 싸움을 자세히 다루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데 떠올리듯이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되므로 그 프레임이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지는 역효과가 나왔다. 그에 따르면 “우리 도덕적 감각을 특징짓는 회로망이 바뀌면 우리의 인성도 바뀐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 바뀜으로써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도 바뀐다.” ‘감정 휴리스틱’ 개념을 만든 심리학자 폴 슬로빅도 사람들이 자신의 선호 감정에 따라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합리적 이성보다 감정과 비합리 속에서 행동하기 더 쉽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학자 경제 캐스 R. 선스타인 & 리처드 H. 탈러 『넛지』(2012, 리더스북)도 타성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그 힘을 역이용해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넛지)”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향해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 소개된 니체 ‘르상티망’부터 여러 가지 심리 요인을 이 책에서 두루 살펴보았듯이 감정은 인간의 행동, 역사에 사실 중추적일 수도 있다. 이성 중심주의는 서양 철학의 오래된 관습에서 비롯된 사고관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그 패러다임을 바꿀 전환기인지도 모른다.

 

 

 

 

51. 내가 생각하는 ‘철학은 왜 인기가 없을까’ - 철학 공부는 지루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는 장애도 있지만, 영혼이 남자 배아 경우 40일, 여자 배아의 경우 90일 후에 부여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스켑틱》 vol. 17 「태아는 언제 인격을 가지는가」) 같은 엉터리 논점도 많기 때문에 그걸 솎아내며 지식을 쌓는 일은 보통 사람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시스템 1(직관적 판단)과 시스템 2(복잡한 계산)라는 사고 시스템을 설명하며 시스템 2 사고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영화 <머니 볼>에서도 봤듯이 빌리 빈이 통계로 선수를 뽑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물론 통계를 직접 낸 건 아니지만). 통계와 근거,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편향과 착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열심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충분한 근거를 모으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태도를 익혀야 한다. 뛰어난 과학자이면서 뛰어난 철학 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뛰어난 철학자가 뛰어난 과학자인 경우는 드물다. 물리학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통합해야 통일 이론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하느데 철학도 한 우물 파기가 아니라 많은 분야를 섭렵하고 통합할 줄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는 무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ps)

철학입문서 많이 읽어봤지만 방대한 내용을 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한 게 확실히 이 책의 장점입니다. 철학 공부 고단수라고 해도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을 부분을 짚어주기도 하니까요. 두 번 읽었는데도 참고할 게 많았습니다. 3~4페이지로 짧게 짧게 설명되어 아쉬울 수 있지만 짧은 시간에 챕터별로 개념을 배울 수 있어 철학 공부가 어려울까 봐 걱정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죠. 사람들이 지루해할 고전 철학자들을 뒤에 배치한 것도 이해되더군요. 재밌게 읽어나가며 철학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면 후반부에서는 당연히 끝까지 읽게 되니까요^^ 다루지 않아 아쉬운 저자, 영역도 많았는데 차후 2탄이 나올지도 모르니 기다려 보고요. 유경험자로서 험하기만 하고 볼 건 없는 철학 입문서가 아닌 걸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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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4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바빠지셔서 뜸하게 오신 줄 알았더니, 절이나 도서관에서 식음을 전폐하시고 책을 읽으셨군요!^^:)

AgalmA 2019-04-14 19:17   좋아요 2 | URL
요즘 읽는 책들이 쉽게 쉽게 넘어갈 책들이 아니라서 여유 부릴 짬이 안 나더라고요ㅠㅠ 밥..밥은 챙겨 먹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4-14 19:25   좋아요 2 | URL
목차만 봐도 배부를 책이라 조금만 드셔도 아주 배부를 듯합니다 ㅋㅋ 벌써 좋은 페이퍼 기대됩니다. ^^:)
 
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9 Vol.17 스켑틱 SKEPTIC 17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매일 웃는데 서글프게도 대부분 실소(失笑)다. 내 일상과 정치 사회 뉴스 속에서도 그렇고 과학과 종교의 대치를 봐도 그렇다. 현명함의 좌표를 그린다면 현대인은 어디쯤 해당될까. 과학이 발전하고 매일 세계는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자 목적이며, 신이 창조하고 보살피는 존재라는 인간 중심적 견해”를 가진 이들은 여전히 많다. 스티븐 B. 그레이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학적 사실들」을 열거한다. 태양중심설, 진화론이 가장 충격적 영향을 미쳤고 그 외에도 우주와 지구에 대한 관측, 인간의 직관과 이해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다차원과 다중 우주, 영혼의 부재를 밝힌 신경과학 등은 이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가치도 일깨운다. 이 과정을 살피면 신을 창조자로 넣을 이유도 자리도 없다.

 

 

 

 

랠프 M. 반스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 연구」를 보면 과학자는 긍정적인 경험적 증거(변이를 동반한 유전에 특히 집중)에 의존하지만, 지적설계론자는 ‘증거의 부재’와 추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론과 그 변형인 지적 설계론은 과학보다는 자연신학이나 변증학과 유사하다.

 

 

「설득을 위해 적의 소리를 들어라!」에서 앤드류 쿠퍼-샌손은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 음모론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말을 신봉’하기에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과 부딪히면 자신의 근거가 부실하더라도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경향”(인지 편향)이 강하고, 반박을 당하면 정체성 공격으로 여기며, 특히 도덕 문제에 관해 논쟁할 때 이성을 잃는 경향이 많다. 대니얼 데닛은 “삶을 착각으로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의 있게 일깨워줄 방법은 없다”라고 했다. 샌손은 우리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이 믿음의 통제를 받고 있음을 통찰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주장과 그들의 핵심 신념과 제도를 파악하며, ‘왜 옳지 않는지’ 치명적 오류를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연민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니 논쟁은 더 극심해지는 것 같으니 어쩐다.

 

 

무신론의 반박을 빠르게 핵심만 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유익할 마이클 코헨 「무신론 연대기」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연달아 나온 베스트셀러ㅡ샘 해리스 『종교의 종말: 종교와 테러 그리고 이성의 미래』(2004)와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2006),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2006) , 대니얼 C. 데닛 『주문을 깨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2007),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종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가』(2007) ㅡ를 통해 유신론과 종교에 대한 과학적 회의주의 반박을 담고 있다. 1930년 헨리 루이스 멩켄은 『신들에 관한 논고』에서 종교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견딜 수 없는 자들을 깔아뭉개고, 우주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개조시키려는” 인류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불만'을 통제함으로써 문명의 질서를 유지하는 심리적 요소로 보고. 종교 사상의 두 원천을 ‘유아기적 환상’(『문명 속의 불만』), ‘최초의 아버지와 신을 동일시하고 부성상 파괴에 대한 집단 죄의식을 문화적 신경증( 및 원죄 신화의 형성)과 동일시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신경증”(『토템과 터부』)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매우 더딜 것이라고 보았는데 현재 그렇다.

앞서 언급한 네 저자는 강경에서 온건까지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공통적이다. ①종교가 다른 형태의 앎으로 간주됨에 따라 종교적 믿음들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을 더 이상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샘 해리스는 이성적 판단 없이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은 ‘미치광이’ 또는 ‘망상증 환자’로 취급받지만, 그러한 믿음이 보편적 지위에 오르면 ‘신앙’으로 불린다고 말한다.”) ②문화를 구성하는 도덕률을 ‘규정’하는 신은 없다.(세계 3대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모순되고 때론 터무니없거나 잔학한 구절들은 도덕적인 본보기와 거리가 멀다) ③이성과 사실에 반하고 각종 유혈 사태를 일으켜 반목과 증오의 “무시무시한 증폭기”(크리스토퍼 히친스)로 인간 생존에 득보다 해를 더 끼친다. ④우리가 “종교적 믿음을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오사마 빈 라덴의 믿음과 자살 폭탄 테러도 존중해야 한다는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다른 작가들 역시 모두 동의한다.

 

 

도덕률이 신의 명령이라는 주장(플라톤 외)을 과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성이 포유류가 구사하는 진화한 협동 전략들의 확장으로서, 사이코패스는 예외지만 ‘보편도덕문법’이 있는 것으로 본다. 도덕 규칙은 주관적인 이해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어 시대마다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고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파괴하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클래이 패리스 내프 & 앤디 노먼 「과학자가 선악을 탐구하는 방법」).

악마, 질병을 죄와 동일시하는 문화는 옛 믿음에 짜여 있어 현실 왜곡을 자주 하므로, 과학적 방법들을 통해 물리적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로버트 스턴은 「비과학적 사고가 만든 악의 흔적들」).

“악이 형이상학과 신학의 밖에 존재할 수 없고, 또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선 역시 그런 식으로 존재하거나 정의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악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관용에 대해」에서 조지 샐리스는 악을 진단하는 여러 방법론을 살펴보고, 기계론적 처벌보다 뇌의 메커니즘에 근거한 치료책을 제시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섬뜩한 개조 약물이 아니라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 주입으로 피험자의 공감 및 감정 인지 검사 점수를 향상시킬 수 있다. “공감은 사이코패스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주요 요소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무딘 정서를 경험하므로 스스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고통을 대리 경험하기보다는 동정심(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공감 훈련보다 더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제2의 본성이 될 정책과 규범이어야 하고, 공감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과 같이 공감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심각한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강력한 법적 제재 얘기가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데, “징벌에 대한 욕구는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통계나 공감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의 이분법을 폐기하고 양자가 작용하는 방식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번 《스켑틱》 vol. 17에서는, 일본에서 넘어온 음이온 괴담이 가짜 과학과 엉터리 마케팅으로 성행하는 것을 고발하는 덕환 「음이온 환상에 빠져버린 사회」, 탈리도마이드(임산부 입덧 치료제로 사용하다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된 사례) 같은 재앙 방지를 촉구하는 해리엇 홀 「임상 시험 중인 약, 써보시겠습니까?」, 여러 차례 의혹이 제기된 MBTI 검사를 ‘황홀한 자기 인식’으로 믿지 말라고 당부하는 캐럴 태브리스 「성격을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초자연적 주제를 홍보하고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합리성을 쉽게 내던지는지 보여주는 제임스 랜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생각을 찍는 법」, ‘생명우선론자’ VS ‘선택우선론자’ 모두 틀린 주장을 하고 있고 ‘인격 우선’ 입장에서 “인간 유기체가 인격이 되는 시기는 태아가 의식 능력을 획득하는 수정 후 약 25주 째”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개리 위튼버거 「태아는 언제 인격을 가지는가」, “20세기의 유전학이 ‘유전체는 어떤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푸는 데 힘을 모았다면, 포스트게놈 시대의 유전학은 지난 세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전체(프로그램 코드)의 차이가 어떻게 표현형(프로그램 출력값)의 차이를 산출하는가’라는 문제까지 함께 풀어내야 하는 상황”임을 멘델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대한 「유전학이란 무엇인가-변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향하여」,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별’이라 설명하는 김상욱 「우주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을 나타내는 드레이크 방정식의 계수를 설명하는 이명현 「행성을 거느린 별을 찾아서」, “역사는 음모보다는 혼돈의 산물”(미국 국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이란 말처럼 끊이지 않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음모론을 다룬 제임스 램버트 「음모론의 해악」(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가 워런 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총체적으로 왜곡한 것을 예술적 허용으로 넘어가야 하는지도 고민해 볼 문제), “원시인 다이어트는 기대와 실패, 이상적인 건강의 추구,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 시간의 흐름을 피하고픈 욕망과 시간의 흐름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 사이의 변증법”을 보여주는 에이드리엔 로즈 존슨 「원시시대 조상들의 삶이 더 좋았다고? - 구석기 다이어트와 유토피아의 꿈」 등 하나하나 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의 행동은 ‘상황, 나이, 파트너나 동료, 성숙도, 직업의 요구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달라지고, 우리에게는 ‘휴리스틱[*], 경험 법칙[**],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 수학 능력, 과학적 방법’ 등  각종 사고 소프트웨어도 많다. 그러나 근거 없는 믿음은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스켑틱》 은 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이렇듯 경고한다.

 

 

 

 


 

 

[*] 휴리스틱: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일부만을 취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문제 처리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올바른 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 경험 법칙: 이론보다는 일상 경험에 근거하는 규칙들로 어느 정도 신뢰할만하지만, 엄밀하게 정확하거나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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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4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전도를 목적으로 세력 확장을 꾀할 때 정치가 되고, 폐해가 커진다 여겨집니다... 종교의 지향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galmA 2019-04-14 22:03   좋아요 2 | URL
네. 종교가 순기능을 할 때도 있지만 인간은 활용의 천재잖아요. 정치적 목적, 탐욕과 권력의 도구가 되는 폐해 너무 많아요. 그것 때문에 가족이 붕괴하고 상처받고 어이없이 죽는 일도 있으니.... 종교가 그런 빌미가 되는 일 너무 많습니다. 지나친 맹신으로 저도 멀어진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너무 이상해져서 가까이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제가 무신론자라고 노골적으로 저를 적대시하기에 뭐 저도 두 손 들었죠. 종교의 탈을 쓰고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에게 사기치는 뉴스들 매일같이 접하는데 울화가 치밀어서...휴. 종교에 매달릴 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꾸릴 내면의 힘을 길러야지. 하느님, 예수님은 날 버리지 않으신다 그런 식의 자기 최면으로 삶을 꾸리는 건 도피일 뿐입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하기엔 외부의 영향이 무척 많죠. 과학은 자유의지조차 환상이라고 하니 사면초가죠.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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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과 한계 극복을 스티븐 호킹(1942.1~2018.3) 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도 드물다. 그는 스물한 살 때 5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불편한 몸에 굴하지 않고 일흔여섯 살이 될 때까지 탐구에 매진했고,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물리학의 난제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는 ‘양자중력 법칙’의 단초를 제공했다. 놀라운 천재였지만 그는 우리가 과학자에게 흔히 가지는 차가운 이미지도 아니었다. 책 말미에 루시 호킹의 추모글에서 보듯 그는 가정적인 아버지였고 책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의 역할을 열심히 하려는 아버지였다. 몸이 점점 마비되는 병을 앓았지만 그 몸속에서도 우주를 인간의 미래를 내다보았던 그는 인간 슈퍼맨이었다. 죽음의 위협을 매 순간 느꼈기에 그는 시간의 탄생과 죽음을 더 알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이 책을 쓰며 평생 연구한 과학의 질문이기도 한 빅 퀘스천에 대한 대답을 모았다.

 

 

 

 

1.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인식의 원인에 대해 호킹은 “종교가 위안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과학을 믿지도 이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호킹과 아인슈타인의 ‘신(God)’은 ‘비인격적 의미의 자연법칙’이다. 우주를 이해하기 어려워 우리는 신(설계자)을 만들어 쉽게 해결 보려는 것은 아닐까.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신의 존재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가 보여준다. 질량을 에너지로 그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으므로 에너지와 공간과 있으면 우주는 탄생한다. 그것은 빅뱅이라는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인과적 사고로 빅뱅의 원인을 또 따질 텐데,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으로 보면 “자연의 법칙은 우주가 양성자처럼 외부 도움 없이 혼자 튀어나와 존재할 수 있고, 에너지 측면에서도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빅뱅의 원인 그 자체도 없을 수 있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신이 우주를 만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지구의 가장자리로 가는 방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호킹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주가 영원하다고,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가정한 게 오류라고 지적한다.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그것을 깼다. “이 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도, 사건의 고정된 배경도 아니다. 공간과 시간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서 형태를 가지게 된 역동적인 양이다. 시간과 공간은 오직 우주 안에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우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왔다거나, 항상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 정상우주론(1948, 헤르만 본디 & 토머스 골드 & 프레드 호일)을 제시한 이론가들처럼 우주에 시작이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우주의 기원은 과학의 영역이 아닌 형이상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속한 문제하고 주장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다. 호킹은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며 무너지지 않는 과학 법칙을 찾고,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불확정성 원리를 포함해 이해하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파인먼의 다중 역사 개념을 결합시켜 완벽한 통일 이론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추가적으로도 우주의 경계면, 즉 공간과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는 경계조건의 이해도 요구된다. 

우주의 미래나 다양한 우주의 가능성은 우주 안의 물질의 양에 좌우된다. 물질이 특정한 임계량보다 많으면, 은하들 사이의 중력이 잡아당기면서 팽창을 늦출 것이고 그 결과 한 군데로 모이는 빅 크런치(Big Crunch)가 일어날 것이고, 우주 밀도가 임계치보다 작으면 중력이 약해져 우주가 서로 멀리 떨어져 날아가게 되고 우주는 점점 더 텅 비어가고 점점 더 차가워지는 빅뱅(Big Bang)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호두껍질 안에 묶여 있으면서도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자처”하는 햄릿처럼 살고 있다.

 

 

 

3. 우주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일반적으로 ‘생명’은 “탄소 원자들의 사슬 기반에 질소나 인 같은 몇몇 다른 원자가 붙어 있는 형태이다.” 생물은 생명을 유지하고 개체를 복제하도록 개체에게 지시하는 명령들(유전자)과 그 명령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신진대사)로 존재한다. 기계의 도움을 많이 많았던 영향인지 호킹은 전자 기반의 생명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도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진화의 필연적 결말이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능은 수많은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일 뿐이고 지능이 오래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조차도 불분명하다. 지구 위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더라도 박테리아와 단세포 유기체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걸 상기하라. 호킹은 여러 가능성 중 “저 바깥에 다른 형태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간과”했다는 데 무게를 둔다.

 

 

 

4.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라플라스(1749~1827)가 제안한 고전적 견해에서는 어느 시점의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입자의 미래의 행동이 완벽하게 결정되었다. 이 견해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둘 다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세상에 나오면서 수정되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동함수만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절반밖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된다. 위치와 속도의 조합의 형태로 예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하여 관측할 수 없는 공간의 영역(블랙홀)이 존재한다. 내부의 입자 관측, 입자의 위치와 속도도 전혀 측정하지 못하는 블랙홀을 고려하면 어쩌면 이 제한된 예측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도 중력이 붕괴되어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블랙홀에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현실이 블랙홀같이 느껴지는 게 이 설명을 들으니 더 이해되는 듯도-_-;

 

 

 

5. 블랙홀 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붕괴된 별의 잔여물로 불리던 ‘얼어붙은 별(frozen star)’은 존 미첼에 의해 지금의 블랙홀의 과학적 특성으로 1783년 처음 논의되었다. 존 미첼은 dark star라고 불렀다.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이름은 1967년 존 휠러에 의해 명명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안에 무엇을 던져 넣든, 또는 블랙홀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든, 블랙홀은 항상 똑같아 보인다. 존 휠러는 이 원리를 ‘블랙홀에는 머리카락이 없다(A black hole has no hair)’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중력은 알려진 자연의 힘들(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중 가장 약한 힘이지만 다른 힘들에 비해 결정적인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력은 먼 거리에서도 작용하고 항상 당기는 힘만 있다.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서 크기가 큰 별의 입자들 사이의 중력이 다른 힘들 모두를 압도하여 붕괴로 이어지고 그렇게 블랙홀이 탄생한다. 아인슈타인은 1939년 논문에서 물질이 특정 크기 이하로 수축될 수 없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서 별들이 붕괴될 수 없다고 했지만 미국의 과학자 존 휠러는 달랐다. 1950~1960년대의 여러 연구에서 별이 수축하는 특이점(singularity) 즉 별의 중력 붕괴 현상을 파악할 실험과 관찰 결과를 얻게 되었다.

블랙홀의 경계(사건지평선)는 중력이 매우 강해서 빛조차도 안으로 끌어당긴다. 질량이 크고 무거운 블랙홀이 아니라면 사건지평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것은 찢겨 나간다. 그러나 블랙홀에서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을까. 제이콥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이 질량, 전기전하, 각운동량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유한한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호킹은 블랙홀이 보통의 뜨거운 물체처럼 입자와 복사를 만들고 방출한다는 걸 계산했다. 호킹 온도, 호킹 복사 같은 용어도 여기서 유래한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 상대성이론이 노벨상을 못 받은 것처럼 호킹의 이 이론도 안타깝게도 그가 살아 있을 때 실험이나 관찰로 증명되지 않아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못 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업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장의 내용은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2018, 동아시아)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6.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과거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는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고, 이 공리들의 결론 중 하나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간이 휘어지는 비유클리드 기학의 세계에서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꼭 180도이지 않다. 1854년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휘어진 공간을 설명하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휘어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설명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빛을 보았다. “실제로 태양 가까이 스쳐 오는 빛이나 전파가 아주 살짝 휘는 현상을 통해서 태양의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힘을 관찰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빛보다 빠르게 날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지만, 괴델이나 끈 이론가의 논리에서는 “시공간 곡선이 다시 자기에게 휘어져 들어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가정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결국 과거로 갈 수 있도록 시공간을 휘어지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구현되었듯이 공간 안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시공간을 물질이 휘어지게 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휘게 하여 작은 관(웜홀)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넘쳐나지 않는 이 현실을 보자면 시간 여행은 오로지 미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을 죽이는 패러독스를 해결할 두 가지가 있다. 결정론적인 ‘일관된 역사 접근법’으로 보면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영화 <콘택트>가 이해된다. 리처드 파인만 ‘역사 총합’ 개면에서 나온 ‘대안 역사 접근법’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지지한 가설이고 <백 투 더 퓨처> 영화 제작자가 가진 생각이었다. 우주는 가능한 모든 역사를 전부 가지고 있으며, 역사들은 각자의 확률로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호킹은 물리학 법칙은 거대 규모의 시간 여행을 가로막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일관된 역사 접근법’을 지지하는 ‘연대기 보호 가설’을 제시한다. M 이론에 아직 희망이 있으니 시간 여행이 좌절되었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7 & 8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 우리는 우주를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에서는 떠날 수 있는 신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신세계가 없다. 우리 인근에 유토피아는 없다. 우리가 가진 공간을 다 썼고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다른 세상뿐이다.” 지금과 같이 지구 환경오염에 무관심하다면 온실 효과와 지국 온난화로 지구는 곧 황산 비가 내리는 섭씨 250도의 금성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1997년 국제 협약인 교토의정서 이상의 행동을 전 세계가 나서야 한다. 핵폭탄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평화 같은 건 환경에서는 결코 바랄 수 없다. 호킹은 앞으로 1,000년 안에 핵 대치나 환경 재난으로 지구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을 것이라 예상한다.

내부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른 우주 탐험을 감행해야 한다. “우리는 소행성 충돌에 대해서 전혀 방어할 방법이 없다. 소행성이 지구와 마지막으로 충돌한 때가 약 6,600만 년 전이었고, 그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했다고 여겨진다. 소행성 충돌은 또 일어날 수 있다. 지금 이 이야기는 과학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와 확률의 법칙이 보증하는 내용이다.” 우주 식민지 정복이라는 둥 빈정거림을 보기도 하는데, 자신이 음모론에 심취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보길 바라고 자기 외의 미래를 생각할 줄 안다면 그런 말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9. 인공지능은 우리를 능가할 것인가?

과학자답게 호킹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우려보다 제어 조건 설정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눈에 띈다. 인간의 지능이 진화를 통해 발전된 만큼 인공지능도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계속 개선할 여건이 된다면 이미 몇몇 부분에서도 그렇듯 인간을 능가하리란 건 명약관화하다. 우려스러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컴퓨터가 우리와 일치하는 목표를 가지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을 보면 일명 트롤리 문제를 자율 주행 자동차에 입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윤리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조화, 모델화하여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더 치밀해져야 한다.

“AI의 단기적 영향력은 누가 통제권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는 반면, 장기적 영향력은 그것이 애초에 통제될 수 있기는 한 것인지에 달려 있다.”

“초고도 지능을 가진 AI의 출현은 인류에게 일어난 사건들 중 최고의 또는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다. AI의 진짜 위험성은 적개심이 아니라 일처리 능력이다. 초고도 지능의 AI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극단적으로 능숙할 텐데, 만일 AI의 목표와 인간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10.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이 장은 앞서 나왔던 내용들의 종합이다. 아인슈타인처럼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용기를 발휘할 것,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대안 행성을 찾아 우주 탐사를 열심히 할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 이 세 가지가 주요 권유 사항이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얼굴 근육 몇 개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매일 아침 일하러 나갔다는 스티븐 호킹. 작은 일로도 일상이 크게 흔들리는 내게 호킹은 뛰어난 천재성보다 인간 의지의 힘을 더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호킹은 수학을 우주 자체의 청사진으로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준 선생님이 중요한 스파크였다고 했는데, 공부가 힘들 때 호킹의 책을 읽으면 정말 생각의 스파크가 일어난다. 호킹은 누구에게나 빅 퀘스천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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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0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니,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전자력으로 움직이는 작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치 사람이 산소를 통해 지구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듯이,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AgalmA 2019-04-14 16:08   좋아요 0 | URL
진화적으로 생명체라고 하면 자기복제로 자기 자손을 남겨야 하는 거잖아요. 컴퓨터가 자가 수정으로 복제하는 단계는 아직 아닌 걸로... 호킹도 뇌는 컴퓨터와 다르지 않다 말하는 사람이니 너무 급진적이신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논의를 누가 해주면 책을 보고 또 배우게 되겠죠^^;;

2019-04-1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4-1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1번 글을 읽고 든 생각. - 저는 고전을 읽다가 신에 대해 쓴 글을 읽게 되면 신뢰가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파스칼의 <팡세>를 무척 좋아하지만 신에 대해 쓴 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호킹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AgalmA 2019-04-14 16:1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신‘ 얘기 나오면 호감이 급 떨어져요. 자연법칙으로 신을 말하는 것까지는 참겠는데 인격신에 처벌하는 신까지 운운하면 절레절레입니다... 과학책 읽다보니 더 그렇게 됐고요.

호킹,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b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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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많은 생활의 편리를 매일 누리면서도 과학을 어려워하는 것을 넘어 적대시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제껏 알던 것들을 부수는 과학의 혁신성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폐해를 거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운용하는 방식의 문제다. 과학은 인간에게서 나왔고 인간을 위한 삶의 방법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故 칼 세이건(1934~1996)의 뜻은 마이클 셔머에게도 이어졌다.

 

“10년 전 칼 세이건의 강의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은, 지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방황에 빠져 있던 내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회의주의 학회, 〈스켑틱〉,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결국 칼 세이건이 불어넣어 준 영감 덕분이며, 회의주의와 과학의 가능성들에 내가 온 마음을 쏟게 된 것도 그이 덕분이다.”

 

저 헌사로 시작되는 이 책은 독자를 비장하게도 뭉클하게도 만든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회의주의는 입장이 아니라, 주장들에 접근하는 방법”이었고, “과학 또한 주제가 아니라 방법”이다. 1997년 나온 이 책은 셔머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각종 지식과 주장의 타당성을 과학적 회의주의로 논파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그는 멀찍이서 논리로만 따지는 과학자가 아니다. 적극적인 취재, 활발한 강연과 저술, 대중 매체 활동으로 각종 사이비와 대결하는 것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이 책은, 서로 비슷한 믿음과 희망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을 다룰 것이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를 구분하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다룰 것이다. 비록 각 장이 독립적으로 읽힐 수는 있지만, 장이 이어지면서 심령술사의 능력과 초감각 지각, UFO와 외계인 납치, 유령과 흉가가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지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사회에 해를 가져다 줄 논쟁들?이것들이 꼭 사회의 주변부에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창조과학과 성서 축자주의,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표현의 자유, 인종과 아이큐, 정치적 급진주의와 극우익, 도덕적 공황 상태와 집단적 히스테리에 의해 촉발된 현대의 마녀 광풍, 이와 아울러 기억회복 운동, 악마 숭배의 의식적 폐해, 소통보조자에 의한 소통 문제를 다룰 것이다. 생각의 차이가 모든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인간은 주변의 사물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추구하고 찾아내는 능력을 진화시켰으며(이를테면 방울소리를 내는 뱀은 피해야 한다는 것), 최상의 연관성을 찾아낸 사람들이 가장 많은 자손을 남겼다. 그 후손이 바로 우리들이다. 문제는 인과적 사고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상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연관을 짓는다. 이런 착오의 결과는 두 가지이다. 잘못된 부정은 목숨을 해칠 수 있다(방울소리를 내는 뱀은 해가 없다). 반면 잘못된 긍정은 시간과 기력만을 허비하게 할 뿐이다(기우제를 지내면 가뭄이 물러갈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은 바로 잘못된 긍정이다. 출면시 환각이 유령이나 외계인이 되고, 빈집에 울리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정령과 폴터가이스트의 존재를 암시하고, 나무의 음영이 동정녀 마리아가 되고, 화성 표면의 산들이 아무렇게나 드리운 그림자가 외계인이 구축한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다.”

“믿음은 지각에 영향을 준다. 지층 속에 ‘빠진’ 화석이 있다는 것은 신에 의한 창조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고, 유대인을 말살하라는 히틀러의 문서화된 지령이 없다는 것은 그런 명령이 없었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유대인 말살이 없었다는 의미가 되며, 어쩌다가 아원자입자들의 구성과 천체 구조가 일치하면 지적 설계자가 우주를 설계했다는 증거로 둔갑하고, 애매한 느낌과 기억이 최면 요법이나 유도 상상 요법을 통해 되살아나면 아동기 때 성학대를 받았다는 아주 뚜렷한 기억으로 변모해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을 확증해 줄 아무런 보강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신화는 과학과는 전연 무관한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신화를 과학으로 바꾸거나, 과학을 신화로 바꾸는 것은 신화에 대한 모욕이며, 종교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에 대한 모욕이다. 창조론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신화가 가지는 의의, 의미, 숭고한 본성을 놓쳐 버렸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와 재창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망쳐 버렸다.”

 

 

복잡한 이 세계에서 우리는 가설→이론→사실 확인을 살피는 과학적 방법으로 독단을 피해야 한다. “개인들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자기네 생각들의 토대를 다질수록(우리 모두는 반증이 아니라 확증의 증거를 찾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음을 기억하라), 각자가 가진 이념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존의 것을 보강해 주지 못하는 새로운 생각들에 저항하는 ‘면역성’을 키우는 셈”인 ‘플랑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셔머는 ‘이상한 것을 믿게 만드는 스물다섯 가지 사고의 오류’를 자세히 소개하며 독단에 빠지지 않을 사고력을 키울 것을 당부한다. 그는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이 진보적이라고 말하면서도 과학적 방법을 써서 밝힌 지식이 절대적으로 확실한지는 알 수 없다고 인정한다.

 

“과학은 일련의 믿음들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박과 확증에 열려 있는 시험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탐구의 과정이다. 과학에서 지식은 유동적이고, 확실성은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과학을 제약하는 것이며, 또한 과학이 가진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마녀 광풍이 1980년대 악마 숭배의 공포‘로 부활, 1960년대 미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아인 랜드(Ayn Rand(1905~1982)의 ‘객관주의’ 운동이 개인 숭배와 컬트 집단이 된 사례, 근절되지 않는 각종 사이비 종교, 홀로코스트 부정론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왜 반복될까? 수많은 계들이 닫힌 계를 형성해 정보 순환하는 되먹임 고리를 통해 자기 조직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각종 카르텔, 종북좌파 운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지식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거나 버리라고 요구하는 창조론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추론 방법도 비슷하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역사학자들의 학문에서 오류를 찾아낸 다음, 그들의 결론이 틀린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역사학자들은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처럼. 진화론 부정론자들(창조론자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다)은 과학에서 오류를 찾아낸 다음, 과학의 모든 것이 틀린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과학자들은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처럼.”

“순진해서 그랬든 의도적이었든 간에, 창조론자들은 이제까지 유기체 변화의 인과적 요인들을 두고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건전한 과학 논쟁을 오해해 왔다. 창조론자들은 과학자들이 벌이는 정상적인 생각의 교환과 과학이 가진 자기 교정의 본성을 마치 그 분야에서 내분이 일어나 곧 스스로 무너질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로 여긴 듯하다. 진화론자들이 수많은 주장을 하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모두가 한뜻으로 확신하는 한 가지가 바로 진화는 정말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쉬지 않고 논의하는 것은 정확히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다양한 인과 메커니즘들의 상대적 세기는 어느 정도인지 하는 문제들이다. 엘드리지와 굴드의 단속 평형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세밀하게 다듬고 개선시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뉴턴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단속 평형 이론 역시 다윈이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언제까지고 버리지 않는다. 그런 희망이 바로 종교, 신화, 미신, 뉴에이지 믿음의 원천이다.”

 

위 인용은 간단히 가져온 것일 뿐이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의 스물다섯 가지 반박은 책에서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 1920년대 시작되었던 스콥스 ‘원숭이 재판’을 시작으로 1987년 미연방 대법원까지 갔던 루이지애나 재판은 공립 교과서에 진화론을 금지하려는 창조론의 노골적인 움직임이었다. 셔머가 최근 낸 『천국의 발명』에서 “1990년대 말 이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중 72에서 83퍼센트 정도가 천국을” 믿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천국에 대한 믿음은 강력하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라는 이들도 3분의 1은 사후 세계를 믿는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비합리와 비이성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며 감히 말하지만 영원할 거 같다.

세계화로 인해 대륙 간 이동이 많은 만큼 민족주의, 인종 차별 문제도 해결 기미는 요원하다.

 

“곤충들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분법적인 변이는 예외에 속하며 연속적인 변이가 일반적이다.” 킨지의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행동의 경우에도, 우리는 “극단적으로 옳은 행동과 극단적으로 그른 행동 사이에서 무한히 다양한 형태의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채” 옳다 그르다를 판단한다. 정말 그렇다면, 생물의 진화처럼 문화의 진화에 대한 희망은 변이와 개인주의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개체 간의 이런 차이들은 유기적인 세계에서 자연이 진보, 진화를 이루는 데 질료로 삼는 것들이다. 사회 변화의 희망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자리하고 있다.”(크리스텐슨 1971)”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같은 딱지들은 우리가 여전히 인종과 문화를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계보를 얼마나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까?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놓였던 베링 육교를 건너기 전인 2만~3만 년 전으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사실상 아시아인이다. 그리고 아시아인은 수십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상 ‘아메리카 원주민’을 ‘아프리카?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이란 말로 대신해야 마땅하다. 만일 아프리카 기원설(인종의 단일 기원)이 맞다면, 현대의 모든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다. (카발리 스포르차는 최근 7만 년 전에 이 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설사 아프리카 기원설 대신 가지촛대설(인종의 다중 기원)이 맞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과科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모두 그냥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표시해야 할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독일인이셨고, 외할아버지는 그리스인이셨다. 다음번에 인종을 묻는 문항에 표시할 때 나는 ‘기타’에 표시를 하고, 내 인종 및 문화적 혈통에 대해서 진실을 적을 것이다.”

 

 

 

사람들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회의주의자들과 과학자들의 답변은 대략 이렇다. “교육을 받지 못함, 잘못된 교육을 받음, 비판적 사고가 부족함, 종교의 흥기, 종교의 쇠락, 전통 종교를 컬트가 대신함, 과학에 대한 두려움, 뉴에이지, 암흑시대의 재도래,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봄, 독서를 별로 하지 않음, 잘못된 책들을 읽음, 가정교육을 못 받음, 저질 교사들에게 교육받음, 그냥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 셔머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현상이 일종의 ‘문화’라고 평가하며 몇 가지 바탕을 짚는다.

 

①‘크레도 콘솔란스(내 마음을 달래 주기 때문에 믿는다)’게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의 사고는 감정과 이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명확하기보다 교란되기 쉽다.

②‘즉석 만족’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의 운세를 생각해보라!

③“‘단순성’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상살이를 단순하게 설명해 주면, 그 믿음에 대해서 아주 쉽게 즉석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착한 사람에게나 나쁜 사람에게나 사람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 같다. 게다가 과학적 설명은 십중팔구 복잡하고, 알아들으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운명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미신과 믿음은 삶의 복잡한 미로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단순한 길을 제공한다.”

④“‘도덕과 의미’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과 의미에 대한 과학 체계와 비종교적 체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보다 높은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뭔가? 윤리의 기초는 무엇인가?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대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좋은 물음들에 대해서 과학자들과 비종교적 인본주의자들은 훌륭한 대답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다가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무한하고, 보살핌이 없고, 무목적적인 우주를 제시하면서 오직 차갑고 잔인한 논리만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마술, 종교는 도덕과 의미에 대해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위안이 되는 규범을 제공한다. 한때 거듭난 기독교 신자였기에, 나는 과학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⑤“‘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 모든 이유를 한데 묶어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으로 삼았다.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언제나 더 나은 수준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종이라는 나의 확신을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들려 하거나, 오로지 불관용과 무지를 고집함으로써, 오로지 타인의 삶을 가벼이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다가올 미래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놓쳐 버린다는 것이다. 희망의 다른 원천도 있다. 원천이 다르더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서 무수히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역사의 진보가 계속 이어져 보다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보듬어 갈 것이라는 희망, 사랑과 공감과 아울러 이성과 과학도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우주를 탐사할 만큼 놀랍기도 하지만 이토록 암담한 딜레마도 가지고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로 생각의 노를 끝없이 젓는 길밖에 달리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이야기를 짓는 동물이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종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패턴들, 곧 신들과 하느님,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신비로운 힘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 우주 속 우리 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사람들이 줄기차게 마술적으로 사고하는 이유의 하나는, 현대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몇 백 년밖에 되지 않은 반면, 인류는 몇 십만 년 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믿음 엔진을 진화시켰던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1 자연선택 믿음 엔진은 생존에 유용한 메커니즘이다. 곧,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게 하고(여기서 1형 적중과 2형 적중이 생존에 도움을 준다),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을 마술적인 사고를 통해 덜게도 해 준다. 불확실한 환경에 처했을 때의 불안을 마술적 사고가 줄여 준다는 심리학적 증거도 있고, 기도, 명상, 숭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건강하게 한다는 의학적 증거도 있다. 또한 주술사, 샤먼, 이들을 휘하에 둔 왕이 더욱 큰 권력을 쥐고, 생식 활동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면서, 마술적 사고에 맞는 유전자를 널리 퍼뜨린다는 인류학적 증거도 있다.

2 스팬드럴 믿음 엔진에서 마술적 사고 부분은 스팬드럴spandrel이기도 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메커니즘이 진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부산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스팬드럴이다. 1979년에 발표한 영향력 있는 논문 「산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과 팡글로스적 패러다임: 적응주의자 프로그램에 대한 한 비판」(『왕립학회 의사록』, V. B205: 581쪽~598쪽)에서 굴드와 르원틴은 이렇게 설명한다. 건축에서 스팬드럴은 “두 개의 둥근 아치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할 때 형성되는 끝이 뾰족한 삼각 공간이다.” 중세 교회에서는 이 여분의 공간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안들로 채워 넣었는데, “그 공간이 모든 분석의 출발점인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주변 건축 구조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적합한 분석 경로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스팬드럴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잘못된 물음이다. “남자에게 젖꼭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올바로 물으려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여자에게 젖꼭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대답은, 여자가 아기에게 수유하기 위해선 젖꼭지가 필요하고,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구조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자연 입장에서는 바탕에 깔린 유전적 구조를 남녀가 다르게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남자가 불필요한 젖꼭지를 갖도록 구성하는 것이 단연 쉬웠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 엔진의 마술적 사고 요소는 스팬드럴이다. 우리는 인과적으로 사고해야 하기 때문에 마술적으로 사고한다. 우리에게는 1형 적중과 2형 적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1형 오류와 2형 오류를 범한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패턴 찾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술적 사고와 미신을 가진다. 둘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마술적 사고는 인과적 사고 메커니즘이 진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부산물이다.”

 

내가 이 리뷰에 인용을 가득 채운 뜻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자세와 지식으로 중무장한 책을 간파하고 찾아 읽으며 당신도 과학적 회의주의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믿는 건 쉽다. 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 따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을 때 많다. 그러나 삶 자체가 복잡하다. 오래전 파스칼은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지만 지성적이든 도덕적이든 모든 면에서 인간이 그 상태를 지속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 4월 21일이 과학의 날이라지요. 평소에도 과학책 많이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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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4-10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의 공헌은 우리를 막연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에 한계점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밝히겠지요. 다만, 과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대한 의심 또는 다른 한 편으로 ‘열린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ㅑ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AgalmA 2019-04-14 16:16   좋아요 0 | URL
과학의 방법론도 쓰자는 거지 과학을 추종하자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렇게 오해하는 선입견이 있는 거 같아요. 과학은 믿고 따르자는 학문이 아니잖아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더 반증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과학 아닙니까. 그나저나 저는 과학쟁이가 되고 싶어도 수학이 약해서 이번 생에서는 글렀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