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지젝
켈시 우드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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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한 대중 강연에서 자신의 철학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철학에서는 헤겔을, 정신분석에서는 라캉을, 종교에서는 기독교-유물론입장을, 정치에서는 공산주의를 계승한다고 말이다. 즉 그는 두루뭉술한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 하나로도 접근하기 어려운데 그가 논하는 범위가 넓다는 게 더 큰 장애다. 어느 정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은 독자라면 철학적이고 정신분석적이며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걸 한꺼번에 담론으로 펼치는 지젝 철학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는 철학, 존재론, 정치철학, 문학, 영화비평, 생태학, 종교학, 언어철학, 인지철학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동일성,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프랑스 혁명, 레닌 같은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왔다.” 

이 책은 2012년 전까지 지젝이 발표한 저서와 논문 24편을 가져와 일반 독자들이  지젝 철학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북이다. 원저 제목이 아예 Zizek : A Reader' Guide이다. 

 

 

 

지젝에 대해서든 철학에 대해서든 근본적인 어려움은 우리가 언어와 의미 관계의 혼란 속에 있다는 데 있다. 언어 자체의 힘을 강조한 유명론(唯名論)과 반기술주의자(솔 크립키가 대표적), 보편적 본성과 이름에 내포된 의미를 강조한 실재론(實在論)과 기술언어주의자(존 설이 대표적) 모두에게 지젝은 반대한다. 지젝은 라캉 이론을 철학으로 발전시켜 설명한다. “언어는 사적일 수 없으므로 의미는 언제나 상호주관적이다. 그것은 상징적 질서, 라캉적 대타자 안에 존재한다.” 지젝은 앞선 이론들이 명명에 함축된 근본적인 우연성을 간과한다고 주장하며, 고유명사뿐 아니라 일상 언어에서의 모든 이름(기표)들은 순환적이고 자기 지시적이라 독단적 비합리와 동어 반복의 형태’(라캉의 주인 기표’)를 취하게 된다고 말한다. 주인 기표는 어떤 기의적 내용도 갖지 않는 텅 빈 기표이며, “용어의 모든 용법은 다른 것들에 맞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관계맺음을 통해 규정된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부자유 없이 자유를, 불평등 없이 평등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쉽게 민주주의를 절대 가치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이념이자 체제의 주요 기둥인 자유와 평등은 끝없이 충돌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와 부조리함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고 수습하기 바쁘다. 지젝은 이 혼란의 원인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함, 비합리성, 비일관성은 지젝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계속 거론하는 핵심이다. 헤겔 변증법 독해의 기존 방식에 대해서도 지젝은 비판한다. “지젝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동시대의 대륙 철학은 물론 후기 분석철학이 얼마나 독일 관념론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 용어는 오로지 다른 용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또 용어들이 아닌 요소들(예를 들어 환상이나 이미지)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문제가 되는 관계들은 종종 차이라는 부정적 관계들이다. 요컨대 순수한 자기 동일성이란 없다는 점에서 현실은 변증법적이다. 어떠한 사물, 사건 또는 속성들도 단순히 그것으로만 있지 않다. 사물이 무엇으로 있다는 것(그것의 존재 자체)은 그것이 아닌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부정성 때문에 대립자들은 더 높은 종합에서 결코 조화롭게 중재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의 차이가 차이로서 정립되어, 전체가 비일관적인 것으로서 형성된다.”

지젝은 사물들이나 사실들에 대한 우리의 상징적 재현들로부터 사물들또는 사실들을 분리해낼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고, 불완전성과 비일관성이 제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보편적 원근법주의”) 라캉적 행위를 통해 반복적으로 되돌아와 상징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상징적 현실의 방해꾼 대상 a로 인해 주체에게 객관적 현실은 영원히 접근 불가능하다. “자기”(self) 도 대상처럼 자기에게 접근할 수 없음으로 구성적이다. 궁극적으로 고정된 불변하는 현실 또는 상징적 의미도 없다. 즉 지젝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두 비일관적 관점들 양자를 모두 열어놓음으로써 시차를 유지하는 방법론이라 하겠다. 지젝은 헤겔적 변증법이ㅡ개념의 총체성이 자기 완결적 원환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절대적 관념론이 아니라ㅡ궁극적으로는 본질적인 것을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드러낸다고 말한다. 

 

 

 

지젝은 헤겔을 라캉의 견지에서 다시 쓰며 전통 형이상학(현실에 대한 이론)과 인식론(지식에 대한 이론)을 새로이 고안해냈다. 상상계와 상징계는 한 매듭을 이루는 세 개의 고리처럼 실재와 한 데 묶여 있고, 공유된 상징적 관행들과 상호주관적 언어 체계 안으로 구조화되기를 거절하므로 여하한 존재혹은 실존의 개시는 내부에서 파열한다

라캉과 지젝에게 욕망은 생물의 기능이 아니라, 상상적 투사(환상의 차원) 그리고 대타자가 가장 욕망하는 무엇이든 되려고 하는 시도와 관련되는 한 탈중심적이다.

실재는 우리가 단순히 가리키거나 매일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긍정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사건, 또는 속성이 아니다. 실재는 의식으로부터는 억압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객관적사회 현실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억압된 실재는 외재하지(exist) 않는다. 그것은 내재한다(insist)"

쉽게 말해보자. 상징적인 것으로부터 억압된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징후라는 실재적인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박근혜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당신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같다고 말하는가. 그토록 쉽게 

 

 

 

지젝은 영화 <지젝!>에서 자신의 많은 책 중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년 초판 발행),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1993년 초판 발행), 까다로운 주체: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1999년 초판 발행), 시차적 관점(2006년 초판 발행)을 가장 중요한 것들로 꼽았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라캉에게 덧입혀진 구조주의해석과  헤겔에게 덧입혀진 절대적 관념론”을  벗겨낸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는 국가주의적 정체성은 숭고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폭로한다. 까다로운 주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전통적 해석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코기토는 방법적 회의의 기능적 역할이라며 주체가 구성적임을 보여준다. 시차적 관점어떠한 조화로운 개념적 종합도 불가능한 두 사유 양식으로 분리시키는 시차적 간극을 고찰한다. 우리에게는 존재론적 차이라는 궁극적인 시차가 있고, 경험과 설명 사이에 놓인 과학적 시차, 사회적 적대로 나뉘는 정치적 시차, 공공의 법과 초자아의 외설적 보충 사이의 시차적 간극, 집단적 사회 행동에서 물러나는 바틀비적 태도와 사회 참여라는 시차적 간극 등 두 사유 양식 사이에 끝없이 놓인다.

 

 

 

지젝이 현대적 생활과 문화의 모든 측면들(경제적, 정치적, 예술적, 종교적, 사회적, 성적 그리고 지성적인 측면)을 분석하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극복불가능한 부정성이자 통약불가능성의 실재다.” 전체성이나 완전성은 우리의 환상이다. 그러므로 지젝의 변증법적-정신분석 접근은 지금까지의 모든 진리 개념이 부적절하다고 폭로한다. 지젝은 실재는 실체적 밀도를 갖지 않으며 두 관점 사이의 간극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별자(주체)와 보편자(공동체)도 양자를 관통하는 분열에 의해 만나고 화해할 가능성을 가진다. 상징적 초자아는 주체의 향유를 규제하고 금지하는 이면서 위반하고 즐기라는 외설적 명령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지금 시대는 후자와 자본주의가 강력히 엮여 있는 상황이다. “서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계몽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경향은 우리의 소외를 나타내는 한 징후다.” “포스트모던의 냉소주의는 우리 체계 내의 믿음을 타자에게로 옮기고 따라서 우리가 항복하거나 순응하라는 여하한 압력도 받지 않는다는 환상에 젖은 채 우리가 순응할 수 있도록(무반성적으로 자본주의가 여기 머물 것임을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범세계적 이데올로기를 지탱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 물신주의적 부인이다.” 그래서 지젝은 포스트모던을 그토록 비판한다. “물신은 상징적 의미작용의 연결망을 구성하는 내재적인 비일관성과 결여를 감추기 위한 통일성의 환상으로서 작동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범세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치명적 한계는 그것이 자본이라는 실재의 작동을 직면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실재야말로 우리의 후기자본주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근원적으로 억압된 빈틈이다.” 이 모든 걸 종합하려는 노력이 악화를 더 양산한다. “지젝의 헤겔 독법에 따르면, 변증법의 요점은 적대들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두 대립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시차적 이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헤겔 변증법에 내포된 부정성은 환상 가로지르기이며, 상징적 대타자 안의 결여를 경험하기라는 라캉의 개념과 상통한다. 지젝은 국가적, 사회적, 공동체적 정체성들 속에서 참되게 보편적인 것은 단독적일 때 가능하다고 말하며 개별적 보편성을 강조한다. 개별적 보편성은 지젝의 변증법적 유물론적 존재론과 그가 복권을 강조하는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의 연결고리이다.

 

마치 생산과정의 세 구성 요소들(지적 계획과 판촉, 물질 생산, 물질적 원료의 제공)은 점점 더 자동화되어 세 개의 분리된 영역들로 나타난다. 그것의 사회적 귀결로, 이 분리는 오늘날의 개발된 사회들에서 세 주요 계급들의 모순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정확히는 계급들이 아니고 지식 노동자들, 오래된 근육 노동자 계급 그리고 버림받은 자들(무직자 또는 빈민가나 공적 장소의 다른 작은 틈들에서 살고 있는)이라는 노동 계급의 세 부분이다. 노동 계급은 따라서 셋으로 분열되고, 각각의 부분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이데올로기를 갖는다. 지식인 계급의 계몽된 쾌락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노동 계급의 대중 영합적 근본주의, 그리고 버림받은 자들이 더 극단적인 개별적 형식들. 헤겔식으로 말해, 이 삼위는 명백히 보편자(지식 노동자들), 특수자(근육 노동자들) 그리고 개별자(버림받은 자들)의 삼위이다. 이 과정의 결과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삶의 붕괴, 모든 세 부분들이 만날 수 있는 공적 공간의 점진적 붕괴이다. 그리고 정체성정치는 그 모든 형식들에서 이 상실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정체성 정치는 세 부분들 각각에서 지식인 계급의 포스트모던의 다문화적 정체성 정치, 노동 계급의 퇴행적 대중 영합적 근본주의, 버림받은 자들 사이의 ()불법적 자주적 집단들(범죄 폭력단, 종교 종파들 등등)이라는 특정한 형식을 획득한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는 잃어버린 보편적 공간을 대체하기 위한 개별적 정체성에의 호소를 공유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따라서 셋으로 나뉘고, 각 부분은 다른 것들에 맞서도록 싸움 붙여진다. “빨간 목노동자들에 대한 문화적 편견으로 가득 찬 지적 노동자들, 지성인들과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대중주의적인 증오를 보이는 노동자들, 사회 그 자체에 적대적인 버림받은 자들을 생각해보라.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 오래된 요구는 따라서 그 언제보다 적절하다. 새로운 후기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환경에서, 노동 계급의 세 부분들은 이미 그것들의 승리다.”(The Idea Communism, Costas Douzinas and Slavoj Zizek, 2010)

 

헤겔과 라캉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막강한 창이자 방패를 만든 지젝의 논리에 맞서려면 상대도 헤겔과 라캉 이론에 정통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은 잘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 지금으로선 나는 그를 독해하기 바쁘다ㅎㄱㅎ; 이 책이 논한 지젝의 저서 이후의 모습을 보여줄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2016)를 읽고 나면 지젝의 빈틈이 더 잘 보일까. 궁극적으로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일관적이며 억압되어 있는 실재의 빈틈을 뚫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니 더 아득하지만 나는 뭔가를 그냥 받아들이는 자는 아닌 개별자여서 이 진리를 향한 투쟁에 계속 관여하고 싶다

 

 

 

지젝에 대한 나의 사투

 

좌파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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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03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ㅎ
이 책도 한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
그나저나, 책을 참 깨끗하게 보시네요. ^^

AgalmA 2018-05-04 12:09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은 어려운 책 많이 그리고 열심히 읽으시는 분이라 저보다 더 수월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도 이미 읽으셨잖아요^^
책에 대한 물신주의ㅋ;;)가 심해서 볼펜, 진한 연필, 형광펜 등은 일절 안 써요^^;; 흐린 연필을 써서 동영상에는 잘 안 보이는데 밑줄 엄청 많답니다^-^!

2018-05-03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04 12:46   좋아요 1 | URL
하나 설명하자면 바탕이 되는 용어 설명 4~5가지를 해야 해서 성기게 표현한 게 많습니다. 제가 부족한 것도 있고 리뷰로 논문 쓰고 싶지 않아서ㅜㅜ 이 책이 이런 걸 말하고 있다는 걸 대략 전달하려는 목적이 더 강해서 제 리뷰가 이 모양입니다^^;; 책을 직접 읽으면 앞뒤 설명이 잘 되어 있어 그리 당혹스럽진 않으실 겁니다. 바탕지식의 문제도 문제겠지만 기필코 읽겠다는 의지의 노력도 꼭 필요한 게 지젝 읽기 아닌가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03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지젝의 사상은 종합판 같군요. 저는 일단 뒤로 돌려야 겠습니다. AglmA님께서는 책장 넘기시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십니다!^^:) 알라딘 공식 속독가로 추천합니다.ㅋ

AgalmA 2018-05-04 12:4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앞에 제가 호랑무늬 자랑할 위인이 아닌 거 아는데 뭘 그러세요ㅎ;; 철학 기초 공부 꾸준히 하셔서 더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헤겔과 라캉 공부가 많이 됐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더라고요. 겨울호랑이님도 헤겔, 라캉 공부를 더 하신 뒤 보신다면 도움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속독ㅋ 저렇게 읽고 끝날 수 있는 공부라면 파우스트 거래라도 함 해보고 싶네요^ㅋㅜ)!
다 읽은 게 넘 기뻐서 기쁨의 세레모니로 촤라락ㅋㅋ

syo 2018-05-03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실 때마다 전 당신이 무섭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AgalmA 2018-05-04 12:18   좋아요 0 | URL
제가 syo님 무서워하는 날들에 비할 만 하겠습니까ㅎㅎ;;

2018-05-03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4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4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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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나이 46억 년에서 세포의 역사는 37억 년이다. 인류의 문명은 5~6천 년밖에 되지 않았고, 산업 문명은 고작 250년의 역사이다. 저자는 기술 진보의 속도가 생물학적 속도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인간의 발명품이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도 가지고 있는 자가 복제와 자가 수정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동식물의 유전자 조절 시스템에 비할 게 못된다고 말한다. 내 예상으로는 그 단계를 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싶다. 이 방면의 진척은 인간 윤리와 심리적 방어 기제로 더뎌져 왔다고 생각한다. 줄기세포 연구 등등 활발한 발전 상황으로 볼 때 각종 대체 장기, 노화와 질병 정복 등이 실현되면 인간은 그야말로 불로불사의 능력을 갖게 될 텐데.

 

서른여 개의 주요 동물 집단 중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만 얼굴을 가지고 있다. 5억 년에서 45천 만년 전 척추동물의 시조인 무악어류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특성을 유지하는 건 무엇을 뜻할까. 얼굴을 가지는 포유동물의 중요한 네 가지 특징은 턱과 치아와 털, 모유 수유, 얼굴 근육이다. “얼굴 근육 덕분에 포유동물은 얼굴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p207) 다윈은 인간의 문화와 민족 집단 전반에 걸쳐서 공통되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표현분노, 행복, 슬픔, 호기심, 공포, 혐오”(p62)ㅡ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후 다른 학자들이 확인했다. 생존을 비롯 감정 표현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두뇌와 얼굴은 공진화(생명체가 가진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특성이 함께 진화하는 현상)했다. "전뇌가 없으면 얼굴 발달은 물론이고 심지어 형태를 갖추지도 못한다."(p93) 얼굴은 팔다리와도 연결된다. "지느러미나 사지는 얼굴과 사지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모듈이 되는 기존의 유전자 네트워크의 주요 부분이 얼굴의 발달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다."(p147)

 

인간의 얼굴은 전형적인 포유류보다 더 납작하고 수직적인 형태다. 형태상의 이런 변화는 '주둥이의 흔적을 없애는 돌출된 턱의 축소와 인간이 가진 큰 뇌에 의해 형성된 이마' 때문이다. 인간의 큰 두뇌는 6층으로 구성된 대뇌피질의 발달로 더 많은 신경 전구 세포를 가지게 된 영향이다. 인간에게 주둥이가 사라지고 이마가 생겨나고 두뇌가 확장되어가며 언어와 말하기 능력이란 새로운 속성까지 얻게 되는 변모는 점진적 변화가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창발 현상이다.

 

이쯤까지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저자는 철저한 진화론자다. '지적설계론'에 대한 다음의 지적은 명쾌하다.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성"을 고도로 복잡하게 제작되는 제품에 빗대어 지적설계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성하는 몇 백 개의 부품들 중에서 어떤 한 가지만 제거되어도 그 자동차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거나 심하게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생명체는 미리 제작된 부분들에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요소들과 이런 요소들로 구성된 하부 구조들이 관련된, 길고 연속적인 자가 조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가변성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사실상 발달 과정에서 일련의 자체 검사와 타고난 유연성이 발휘되고, 이것이 변화를 허용한다. 그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가축들의 집중 육종 과정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생존력과 완전히 양립 가능한 변화다.(160~161)

 

유전자와 대립유전자의 구분도 생소했지만 유익한 정보였다.

우리는 별종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 유전자가 다르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정상 인간이라면 모두 유전자의 내용은 같다. "사람들이 가진 차이점들은 개인마다 전체 유전자 세트의 구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개별 유전자에 있는 뉴클리오티드 서열의 차이, 다시 말해 대립유전자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p174) 

흔히 '이기적 유전자'라고 하는 것도 정확하게는 이기적 대립유전자라고 해야 맞다. 더 자세한 내용은 p174~175에서 확인하시길.

 

성 선택의 일환으로 인간의 털은 퇴화되었으리라 추측되는데 그러므로 얼굴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더욱 향상되었을 거라고 진단한다. 유인원 줄기 집단을 특징짓는 세 개의 기본적인 유인원 특성“(1) 정밀한 시각이 발달한, 얼굴의 전면에 자리를 잡은 눈, (2) 얼굴 표정을 더 잘 드러나게 하는 털이 사라진 얼굴, (3) 음식을 먹고, 소리를 내고, 얼굴 표정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치아와 입술에 변화를 가져온 축소된 주둥이”(p286)은 인간의 특성과 매우 부합한다. “진화가 전적으로 미세한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이들이 개체군 내에서 축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p294)고 한 다윈의 주장은 60년이 지나서 집단유전학을 통해 입증받았다.

 

저자의 논지는 점점 모인다. 결국 더 나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생존에 유리한 사회 선택으로서 얼굴은 진화되어 왔다는 논지다. 특히 눈의 예를 봐도 그렇다. “인간은 흰자위라고 하는 공막이 겉으로 드러나고, 이 공막에 둘러싸인 다양한 색깔의 홍채(눈동자)를 가진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이것은 자신이 응시하는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회적 특성이고, 이번에도 역시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원하는 특면에서만 설명이 가능한 선택적 이점이다.”(p325) 우리는 안색이 어두운 사람을 보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거나 웃으라고 강요 같은 권유를 하기도 한다. 반려동물만 해도 집사들이 표정이 안 좋으면 동요하며 같이 슬퍼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저자와 같이 이렇게 긴긴 진화의 면면을 살피며 추적하고 진단하려는 사람은 왠지 극소수인 거 같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무심하고, 불행을 봐도 극악스러운 인간 사회를 생각하니 내 얼굴은 그리 밝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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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4-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여러번 구경했는데, 리뷰로는 Agalma님 리뷰가 처음인데 참 흥미롭네요. 지적설계론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요.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처음 문단인데요, 만약 인간 장기에 대한 개발이 활달해지고, 계속해서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면, 인간의 얼굴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궁금해요. 다른 장기들처럼 새로운 기계 혹은 장치로의 대체가 가능하다면, 주름진 얼굴을 계속 가지고 있겠다는 인간이 얼마나 될지 그것도 궁금하고요...^^

AgalmA 2018-04-03 05:18   좋아요 0 | URL
첫 문단은 <세계미래보고서 2018>을 보니 그런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봤기 때문인데요.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에서도 그런 내용이 많았잖아요. 카쿠도 인간이 그래도 육체까진 못 버릴 거다 조심스레 말하긴 했지만ㅎ 체험과 경험을 극도로 추구하는 추세로 보면 육체 탈피까지도 상당수 실행할 거 같은데요. 기억이나 정보는 어차피 뇌에 다 있는 거니까.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자연을 좋아하지만 도시적인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인으로 살지 않잖아요.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는 일이겠으나 경향이나 추세란 것도 무시 못하죠.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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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분석도 여러 변화 과정 속에 있다.

할란 엘리슨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1960년대 소설)에 나오는 인공지능 AM은 세계를 파괴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돌아다닐 수 없고 경탄할 수 없으며 소속될 수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에 분개하며 인간에게 복수하는 낙으로 산다. 니체는 인간만이 과거 앞에서 원한 감정과 복수의 정신을 갖는다고”(p216) 했지만 대부분의 SF 물에서 봤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다. 제발 분노한 침팬지들과 싸우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시로 마사무네 원작, 오시이 마모루 감독 공각기동대(1990년대 작품)인공지능 인형사(프로젝트 2501)는 개성과 다양성의 특성으로 진화하며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쿠사나기와 융합을 꾀한다. 다른 단편에서도 그랬지만 할란 엘리슨의 소설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적대만을 강조했다면, 공각기동대는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의 전망처럼 인간과 기계의 합체를 보여준다. 이상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은 왜 몸에 그토록 집착할까.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이 작품들에는 몸과 정신’, ‘라는 자의식 즉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참고로 이 책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은 몸의 일부인 를 가리킨다. 몸과 정신의 이원론과 그것의 불화는 플라톤 이전부터 생각되어 왔고 최소한 2500년 동안 지속된 생각”(p246)이다. 몸과 정신의 이원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라는 존재방식도 달라진다. “만약 디지털화라면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는 보존될 것이고, 지각 과정에 가깝다면 는 변형”(p298) 될 것이다. 이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 그러니까 15~16세기까지를 염두에 두면 세계에 관해 얻은 지식은 모조리 감각을 통한 지식이었습니다. 태양이 쟁반 정도 크기에 200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고 아는 식이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해와 달이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거리에 있다고 보았던 거죠. 그런 수준의 지식으로 논의된 철학은 자연에 대한 앎과 관련해서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가치와 관련된 논의들, 가령 윤리학이나 미학 같은 철학 논의는 여전히 통찰을 주고 있지만요.”(p262)

"모든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철학은 구식이에요. 실제 세계를 모른 채 철학하게 되는 거니까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흄 등 17~18세기 철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들이 당대의 자연과학과 동시대적으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더해 자연과학 지식이 우리에게 답변해주지 못하는 것들까지 논하려고 했던 거죠. 자연과학 지식을 모른 채 그렇게 한 게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철학자들이 저 선배들처럼 하지 못한다면 그건 지적 태만이 아닐까요? 과학에서 이미 알고 있고 공학에서 기술로 구현하고 있는데, 이를 부인하는 꼴이 되니까요. 물론 결정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실제 해당 분야 전문가조차도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겁니다. 바깥 분야 사람들에겐 더더욱 어렵겠지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답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p263)

 

 

 

데카르트의 코르푸스(, 물체)몸을 기계라는 말로 지칭하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지니지 않다고 명시적으로 말”(p291) 했다. 뇌사자에게 자아 존재로서는 죽었다고 판정하는 요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뇌와 마음의 구별도 말한다. “뇌도 그렇지만 특히 마음은 DNA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니까요.”(p306) 이러한 논지에서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결정론을 비판한다

 

자연선택은 결과의 관점에서 출발해서 계보를 찾는 거예요. 개체이건 개체군이건 아니면 특정한 형질을 지닌 유전자이건, 미리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요. 전략을 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저 변이와 다양성을 자기 안에 되도록 많이 확보하는 게 최선이에요. 그런데 변이와 다양성은 유전자 차원에서 확보될 수 없어요. 도킨스한테 유전자는 복제자로 이해되고 있거든요. 도킨스는 과도한 의인법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걸로 보입니다. 유전 자체는 동일성 전달이지만 자연 선택은 차이의 선택입니다. 동일할수록 환경의 급변 앞에서 멸절하기 쉽습니다. 나는 이 점에서 도킨스가 진화론의 기본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p325)

 

 

도킨스의 유전자론은 생존 조건이 DNA 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본유관념과 흡사하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베이트슨 Gregory Bateson 이론을 지지하며 논의를 펼친다. 진화가 끊임없는 학습에 의해 지속된다고 볼 때 학습은 개체 또는 체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학습 과정 전후에 우리는 전면적으로”(p326) 바뀐다. “생명체가 라는 형태로 자기 자신(정체성)을 계속 유지해가는 것은 일정한 변화 에서”(p353)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무작위성을 내장하고 있는 진화론적 생물의 특성을 간과한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의견도 비판한다.

호프스태터는 컴퓨터가 무작위성을 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았습니다. 세계의 무작위성을 흡수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중략)…하지만 내장되어 있지 않다면 알고리즘이 무작위 실행을 해보는 일은 원리상 불가능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그것이 무작위이건 아니건 에이전트의 구조에서 지각의 층위에 속합니다. 따라서 지각을 기반으로 삼아 알고리즘 자신이 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호프스태터의 직관보다 튜링의 직관이 옳다고 봅니다. 무작위 요소가 프로그램에 내장되어 있어야 학습과 진화가 가능합니다.”(p350~351)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진단이나 우려가 과도하다고 평한다.

 

자의식을 갖는 걸 반성 reflection이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며 어떻다는 걸 아는 거예요. …(중략)…자의식의 특징은 무엇이죠? 내가 생각하기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두 층위의 병행입니다. 작동이 일어나는 층위가 있고 동시에 한 단계 높은 층위에서 그 작동을 점검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반성이 성립하겠죠. 위계의 차이가 있으면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자기가 자기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이 수학적으로 프로그래밍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내 사색의 결론입니다.”(p355~356)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테슬라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 파이널 인벤션의 저자 제인스 배럿 등 많은 명사들이 말하는 묵시록적 전망은 과장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공지능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초인공지능의 불가능성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p359)

 

 

 

이런 책들의 결론이 대체로 그렇듯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일, 목표를 세우는 일, 한마디로 창조적인 일”(p360)을 찾으라는 걸로 끝이 났다.

도래하는 인공지능 시대, 어떤 철학을 가질 것인가가 이 책의 주제다. 좋은 질문이 곧 좋은 답이라면 결정론적인 단언보다 이러한 질문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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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1-28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 듀이가 말하는 것처럼 ‘경험‘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AgalmA 2017-11-28 20:48   좋아요 2 | URL
학습 과정으로 우리가 전면적으로 바뀐다고 하니 말씀처럼 경험이 대안일 수도 있겠죠. 허나 지금껏 많은 예들에서 봐왔듯이 어떤 철학,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경험의 운용이 천차만별이었다는 걸 주지해야 겠지요. 무엇보다 자연과학을 잘 할 줄 알아야 되는 거 같은데 저는ㅜㅜ.....

겨울호랑이 2017-11-28 20:50   좋아요 2 | URL
경험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그 질적 차이가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꿋꿋하게 살고 있는데 AgalmA님께서 무슨 걱정을 하세요 ㅋㅋ

AgalmA 2017-11-28 21:30   좋아요 2 | URL
개성과 다양성이 생존과 진화의 키워드이듯이 말씀하신 질적 차이가 바로 그러한 것이겠죠. 본문에서 ‘차이의 선택‘이라고 언급하고 있듯. 그런 면에서 개체로서든 개체군으로서든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건 우습죠. 이렇듯 치열한 기술 개발 저변에 깔린 인간의 불로불사 목표에서 보면 인간은 물곰의 우월한 생존력 발가락에도 못 미치니까요ㅎ; 대기권 밖에서도 살아남는 무서운 애!
겨울호랑이 님은 저보다 자연과학 더 잘 하시잖음ㅜㅜ 겨울호랑이 님을 능가할 생각은 없으니 상관없나ㅎㅎ;;

겨울호랑이 2017-11-28 21:17   좋아요 1 | URL
제가 자연과학을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AgalmA님께서 미술을 잘 하시는 것은 100% fact지요.ㅋ 연의와 노는 것은 제가 AgalmA님보다 분명히 나을듯 합니다.ㅋㅋ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인간 외 어떤 생물도 이를 인정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사실이 아닐듯 합니다.

syo 2017-11-28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우월한 글에는 우월한 토론이 펼쳐지는군요...b

AgalmA 2017-11-28 21:28   좋아요 0 | URL
^^?...^^;....^^a;;; syo 님 글은 너무나 방대한 걸 다뤄서 무슨 말을 해얄 지 잘 모르겠어요ㅋ

겨울호랑이 2017-11-28 21:27   좋아요 1 | URL
^^: syo님 좋은 글에 짧은 부족한 의견이었습니다..ㅋㅋ

syo 2017-11-28 21:33   좋아요 2 | URL
제가 뭔가 알찬 분위기를 망친 기분이...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11-28 21:42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거의 끝판이었습니다..ㅋㅋ 그렇지요? AgalmA님.

2017-11-28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1-29 06:29   좋아요 1 | URL
이상하죠. 말씀처럼 인간은 기계가 되려고 하고 기계는 인간이 되려고 하고...현재 상태에서 늘 부족함을 느껴 개선하려는 게 진화의 특성이며 우리의 숙명이라는 게 참 서글픕니다...

페크(pek0501) 2017-12-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적 유전자밖에 모르겠어요. 제가 책 편식을 심하게 하고 있다는 확인을 하고 갑니다.

AgalmA 2017-12-02 14:15   좋아요 0 | URL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관심을 억지로 가져 읽으려고 하면 책 읽기 전에 두통과 불면이ㅎㅎ;;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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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극악한 강력 범죄 소식이 전해진다. 2012년 두잇서베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10명 중 9명이었다. 묻지마 범죄의 근본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개인화 사회의 부작용’(34.7%)은둔형 외톨이의 증가’(34%) 때문이라는 답을 했다.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는 ‘‘정부 차원에서의 예방책’(37.6%), ‘각 가정’(19%)이웃’(19.1%) 차원에서의 관심과 예방활동이라고 답했다. 불안과 공포의 안개는 짙어지고 해답을 찾는 길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영철은 한국에서 원조 사이코패스로 평가된다. 외국에서나 보던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었고 당시 한국에서 살인은 5년이 기본형이었는데, 처벌부터 수사까지 이런 범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잘 모르던 때였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서도 범죄심리학이나 프로파일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강력 범죄가 점점 늘어나고,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크리미널 마인드(프로파일링)>, <라이투미(미세 표정 분석, 거짓 탐지> 등 미국 수사 드라마 열풍으로 대중적인 관심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정남규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영철과 정남규는 20042월부터 7월까지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살인을 벌여 혼선을 주기도 했다. 유영철이 검거되자 정남규는 완전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 공백기를 가졌고, 언론에 알려진 유영철 자료들을 토대로 더 치밀한 범행을 계획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연쇄 살인범의 일반적인 살인 단계와 심리 기제는 환상스토킹유괴살해사체유기로 설명된다. 그가 구치소에서 자살한 것은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유의 갈망이 아니라 고착화된 범행 환상을 풀 수 없는 괴로움을 자신을 살해하는 것으로 풀었으리라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이들을 이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벌어진 서남부권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강호순이 등장한다. 이 책을 통해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가 수차례 보험 사기를 친 건 맞지만 장모와 네 번째 부인을 살해하기 위해 고의적인 방화를 했는가에 대해서 저자들은 의문부호를 던진다. 그는 네 번째 부인 살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잘 따르던 네 번째 부인 사망 이후 심적 동요를 크게 느꼈고 심인성 장애(불면, 불안감, 답답증,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욕구불만을 해소하려는 욕망과 환상 속에 첫 시도 강원도 oo군청 여직원 강간살인사건을 저질렀고 연쇄살인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개 사육과 도축을 했던 경험도 인명 경시, 살인의 기술을 습득하는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페트릭(Petherick)이 분류한 4가지 범죄자 유형(사이코패스, 정신증적(psychotic), 질서형(체계형), 무질서형(비체계적))에서 강호순은 질서형 사이코패스다. ‘계획적인 범행, 잘 정돈한 범죄 현장, 면식이 없는 낯선 사람이 타깃, 교묘한 시체 유기, 평균 이상의 지능, 좋은 자동차 소유, 자기 거주지 또는 직장 등 익숙한 곳을 범죄 현장으로 채택,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거리의 여행 기질, 피해자를 조종할 만큼 화려한 언변과 피해자를 잘 통제하는 특징등이 부합한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구분은 이렇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모두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사회화의 결과물로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하위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인 부분에, 소시오패스는 후천적 발달 과정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를 더 많이 다루어왔다.

사이코패스의 선천적 기질 중 가장 뚜렷한 특징은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등 감각 기능을 맡고 있는 대뇌 피질의 각성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포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충동적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외부 자극을 더 추구하려고 하기 떄문에 위험 감수 행동의 가능성도 높아져 냉혈한이 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규범을 자기 것으로 하는 일, 즉 내재화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기질적 특성에 있어 별다른 손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반사회적 문제 행동은 어린 시절 가족의 무관심이나 학대, 비행 친구의 영향, 가난 그리고 낮은 지능으로 인한 교육 경험의 결핍 등 부정적 사회화 과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p55)

 

강간범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 유형으로 보상형 범죄가 있다. 권력 회복형이라고도 불리는데,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할 목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아주 1치원적 범죄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성적 만족을 얻는 데 필요한 만큼만 폭력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교 기술이 부족하여 또래 여성을 제대로 사귈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동년배를 범행 대상으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범행을 하면서도 피해자와 대화를 시도하거나 강간 행위 후 피해자를 위로하기도 한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인 권력 과시형 범죄자는 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고 성범죄를 저지른다. 여성을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물품이나 강간 행위를 찍은 비디오테이프 등 전리품을 수집하려고 한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거나 애무하지 않고, 상대를 성적 노리개로만 여긴다. ‘조용히 안 하면 죽인다고 위협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소리 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전 알코올이나 약물을 섭취한다.

세 번째 유형인 가학형은 성적 만족을 피해자의 고통이나 공포를 통해서 충족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성적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범행 수법을 사전에 계획해뒀다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선택하여 가학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성행위 도중에 욕설이나 음탕한 말을 하거나 피해자에게 시키는 등의 행위를 통해 성적 자극이 지속되도록 한다. 이들은 위험한 행동을 자주 시도하기 때문에 성적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네 번째 유형인 분노 보복형은 여성을 적대시하여 여성을 처벌할 목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다. 범행 자체는 계획되지 않을 수 있으나 분노 표출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연령이 높은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선택하며, 범행 대상은 누군가를 상징할 가능성이 크다. 이 유형은 피해자의 옷을 찢거나 복부를 가격함으로써 쌓여 있던 분노를 해소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기회주의형은 충동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가택 침입이나 절도 등 다른 범죄를 저지르다가 기회가 생기면 강간을 저지르며, 피해자의 저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분노를 느끼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이들은 특별한 성일탈적 경향을 지니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강렬한 성적 환상으로 인한 강간과는 거리가 멀다."(p93~94)

 

성격장애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성격이란 개인의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특징의 집합체이다. 유전적 소양에 근간을 둔 성격은 흔히 아동기에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다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가 되면 완성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인을 괴롭히면 성격장애로 판정나게 된다. 특히 개인의 행동 및 내부 경험이 자신이 속한 문화적 규범에 대한 기대에 벗어난 것으로 판단될 때 성격장애라고 부른다.”(p135)

"성격장애는 인지, 정서, 대인 관계, 충동 조절 등에서 장기간 지속적인 문제를 보인다.

학계에서는 성격 장애를 주요 특징에 따라 총 3개 군(A·B·C), 10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A군은 특이한 혹은 괴짜 행동이 특징이다. 타인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유형(편집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정서적 표현을 제한적으로 하는 유형(분열성), 가까운 관계를 수용하지 못하고 왜곡된 인식을 갖거나 별난 행동을 하는 유형(분열형)이 여기에 포함된다.

B군은 연극적이고 감정적이거나 변덕스러운 행동이 특징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무시하는 유형(반사회성), 자기 이미지에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불완전하며 충동적인 유형(경계선), 정서를 과도하게 표현하는 유형(히스테리성 또는 연극성),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유형(자기애성) 등이 포함된다.

C군은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의존적이고 회피적인 행동이 특징이다. 부정적 평가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유형(회피성), 이별에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돌봄을 갈구하는 유형(의존성), 완벽한 규율과 통제에 열중하는 유형(강박성) 등이 C군에 해당된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사실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제외한 다른 유형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p136)

반사회적 성격장애 다음으로 범죄 관련이 높은 유형은 경계선적 성격장애이다.

핵심적 특징은 사람과의 관계가 감정적으로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충동적이며, 자해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자해로 그칠 뿐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며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요구하며, 만성적 우울감과 공허함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공허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그래서 물질이나 알코올에 중독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또한 끊임없이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류로 경계선적 성격장애를 앓는 사람이 의지하는 누군가는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결국 이러한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고 문제를 발생하게 된다.”(p137~138)

여성 살인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바로 경계선적 성격장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어릴 때 동성 부모와의 안정적 애착 관계에 실패하여 성장해서도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은 의존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자아 정체감이 낮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서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여 상대방과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로 인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그 사이에 발생하는 심리적 상처가 살인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p155)

 

충돌조절장애병적 도벽(절도광), 병적 방화(방화광), 병적 도박, 인터넷 중독, 섹스 중독사례가 소개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시작했으나 반복하면서 범죄에 이르고 그 쾌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내 리뷰 중독은 아무도 안 죽여서 다행이지만 나를....

 

저자들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과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을 거론하며 살인-자살 형태의 범죄, 대량 살인범의 심리와 유형을 이렇게 말한다.

대량 살인범이 공통적으로 하는 세상 살기 싫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프로이트 학파의 개념으로 해석해보자. 이들은 죽고 싶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살하기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다. 하지만 억압하기에는 너무 큰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성을 타인에게 표출해버리는 것이다. 이들의 범행 동기는 자신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분노나 불만을 표출하고 죽어버리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이 누구든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오히려 공공장소처럼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p146)

"조지 팔레르모(Goerge Palermo)는 살인-자살 형태의 범죄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유형은 분노나 피해 의식을 분출하는 자기파괴적 살인 후에 자살하는 형태, 두 번째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 체포되거나 범행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행하는 자살 형태, 세 번째는 가미가제와 같이 살인을 한 후에 자살하는 테러리스트 유형이다.”(p151)

 

저자들이 말하는 한국형 범죄특징은 대다수 공감할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 가정폭력, 주취폭력 등 한국형 범죄는 대부분 가족이 연루된 경우가 많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족끼리 죽이고 죽는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다 큰 자식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오랫동안 살면서 가족 내에서 병리적으로 사랑과 증오가 한데 엉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한국의 문화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의 사생활을 인정해주지 않고 서로 간섭하는 것이 심해지면서 극단적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가정폭력을 키우는 주범이다.”(p9)

 

부록에는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국내외 여러 검사’, ‘성범죄자를 위한 5단계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조현병’, ‘성격장애’와 충동조절장애보충설명이 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늘 그렇지만 기분이 착찹하고, 그들을 알아보고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듯이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운이 좋아서이지 않을까. 어두운 창 너머를 바라보며 날씨 때문만이 아닌 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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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10-20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론부 말씀처럼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그런지 범죄와 범죄자 심리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책도 위시리스트에 저장해 놔야겠네요. 특히 유형 분류와 설명을 잘해놓은 듯 합니다. 서평 마지막 말씀 ˝날씨 때문만이 아닌 한기가 느껴진다˝에 정말 공감이 갑니다. 진짜 오컬트 호러소설보다 범죄기사나 범죄학 책들이 더 무서워요....

AgalmA 2017-10-20 15:39   좋아요 1 | URL
예전부터 범죄 심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자세하게 서술한 책은 제 능력 탓인지 찾기 어렵더라고요. 범죄에 악용되는 걸 피하기 위해 기술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요. 이 책은 한국 범죄를 주로 다뤄서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목적도 있었는지 부록은 다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더군요. 이 분야에서 점검해 볼 걸 짚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10-20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20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할 경우 문을 닫고 가급적이면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그나미 상책이지만, 사회가 불안할 때는 사회와 단절하며 지내는 것이 좋은 답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드네요...

AgalmA 2017-10-20 23:21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이 <금요일에 돌아오렴>에서 인용하신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삼풍백화점 유가족의 위로를 받고 ˝아, 나는 그 당시 뭐했나˝ 생각하셨듯이 문닫고 귀닫고 내 안전과 행복만 살핀다고 될 일이 아니죠....도움을 주고 받는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죠...살림살이 어려우니 맘이 그리 잘 안 되는게 서글프고.

겨울호랑이 2017-10-20 23:31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글 서두에 많은 사람들이 ‘정부 책임론‘을 들고 있는데, 글쎄요.. 저는 우리와 우리 가정, 사회 모두의 책임이라 생각이 됩니다. 정부 탓을 하기 전에 ‘나는 다른 가족의 목소리를 막지 않았나?‘, ‘내 주변에 고립된 사람은 없는가?‘를 자문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 생각됩니다..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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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이 말은 인상 깊다. “저널리즘에서는 기사가 가짜라는 한 가지 사실만이 기사 전체에 편견을 갖게 만듭니다. 대조적으로 소설에서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한 가지 사실이 작품 전체를 정당화해줍니다. 그것이 저널리즘과 소설의 유일한 차이이며, 그것은 작가가 얼마나 몰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1, p359) 이 문장에 담긴 그의 태도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1928년 콜롬비아에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FC)’가 바나나 농장 파업 노동자들을 대학살한 사건에 대해 증언과 기록에 근거하여 글을 쓰며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에는 문학적 수법을 썼다. 이를테면 참담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사망자가 3000명이었다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썼다. 마르케스는 목수와 문학이 나무처럼 딱딱한 재료인 현실을 이용해 일하는 것이라 모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10퍼센트의 영감과 90퍼센트의 노력이 필요한 일을 기꺼이 받아들여 마르케스가 강조한 저널리즘을 뛰어나게 보여준 또 하나의 기록이 우리에게 왔다. 취재부터 집필까지 10년이 걸린 데이브 컬런 콜럼바인이다.

 

이 책은 사건의 순차적 과정과 에릭과 딜런이 사건 모의부터 실현해가는 과정을 이중 교차로 보여준다. 사건은 어지럽게 꼬여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범인들이 사건으로 점점 다가가는 과정을 속수무책 바라봐야 하는 이 구성 때문에 독자는 내내 불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책을 따라가야 한다.

 

아수라장이 벌어진 지 4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수백 명이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조용히 수업을 받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도 다들 위험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성가셔 할 뿐이었다. 불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대혼란, 한쪽은 정숙이었다.”(콜럼바인, p93)

 

교내 총기사건은 콜롬바인 이전부터 문제로 드러나고 있었다. 콜롬바인 사건 2년 전 1997년에는 알래스카 주의 베델이라는 외딴 동네에서 16세 소년이 교장과 학생을 죽인 사건이 있었고, 10월에도 또다른 소년이 미시시피 주의 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12월에는 켄터키 주 웨스트퍼듀카와 아칸소 주 스탬프스에서도 총기 사고가 있었다. 이듬해에는 다섯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 열 명의 사망자와 35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사건의 규모와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고는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항상 백인 10대 소년이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동네에서 저지른 일이었다.”(p35) 대개 이런 사건의 범인들은 자살해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죄를 물을 대상이 없어져 재판도 열 수 없어 방향 잃은 분노와 공포가 오래 지속되었다. 콜롬바인 사건에는 주목되는 특이점이 있다. 범인들이 2인조였다는 점, 그들이 범죄 기록을 자세히 남겼다는 점, 세월호 사건처럼 휴대전화, 언론매체를 통해 사건이 삽시간에 알려지고 실시간으로 관찰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동종 사건의 진화 과정, 사태가 왜곡되고 확장되어가는 것을 면밀히 볼 수 있어 전범(典範)으로 자주 회자된다.

 

경찰은 화가 많이 났다. 기자들은 수백 병의 아이들이 지금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몰랐고, 반향실 효과(닫힌 공간에서 같은 정보나 아이디어가 돌고 돌며 강화되는 현상)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형사들이 지금 생존자들과 접촉하려고 팀을 꾸리고 있었고, 그들은 안에 있는 수백 명의 최고의 목격자들이 시시각각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휴대전화 시대에 처음으로 일어난 대규모 인질극 상황이어서 이런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순간에도 많은 정보가 총격자들에게 흘러가고 있을까봐 걱정이었다. 때로는 아이들이 알려주는 사실에 기자들이 놀라는 일도 있었다. 생방송 중에 한 남자애가 총잡이가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뭔가를 바닥에 던지는 소리가 났어요. 지금 의자 밑에 숨어 있는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까요? 여기는 2층인데 그들이 내가……

앵커가 급히 말을 중단시켰다. “위치를 말하지 말아요!”

아이는 소동을 자세히 전했다. “밖에서 몇 명이 울고 있어요.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예요.” 그때 뭔가 쿵하는 소리가 났다. “워어어!”

앵커가 놀랐다. “방금 그게 뭐죠?”

모르겠어요.”

앵커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옆에 있던 진행자가 학생에게 전화를 끊고 조용히 911에 연락하라고 했다. “계속 그들에게 연락해요. 알았죠?”

경찰은 방송을 제발 그만하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언론매체에 전화하지 말라고 해요, 경찰이 말했다. 텔레비전을 끄라고 해주세요.

(중략)

미국 전역이 인질극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전에는 학교 총기 사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적이 없었다. 다른 비극적 사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콜럼바인의 상황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서서히 진행되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카메라는 우리가 사건을 지켜보는 목격자라는 착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카메라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에릭과 딜런은 사건 시작 5분 만에 건물 안으로 숨어버렸고 카메라는 밖에서 벌어진 살인을 담지 못했다. 에릭과 딜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 사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자기가 대량학살을 사실상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황 상태와 좌절감, 바로 앞에서 공포가 곧 밀어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우리는 콜럼바인에 대한 진실을 결국 알게 되겠지만 이날은 아니었다.”(p119~121)

 

 

바로 얼마 전 201710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또 미국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스티븐 패독의 범행 동기를 우리는 이러저러 짐작만 할 뿐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한 재력가였던 그가 은행강도범 아버지가 있었다는 게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우생학적이고 단순 편리한 접근이다.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 에릭의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강압적인 훈육을 했다는 게 그의 무차별적 살인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공범인 딜런 경우 부모 모두 그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인 편이라 가정 문제라고 보기 더 어렵다. 그러나 범인의 가족들은 사회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사건에서 우리는 곧장 ?를 묻게 된다. 원인을 찾으려는 조급함 탓에 온갖 살을 붙여 상상의 왜를 만들어 실재로 규정하는 건 사상누각일 수 있다.보통 콜럼바인 사태를 떠올리면, 트렌치코트 마피아 출신의 부적응자 고스족 두 명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반목 때문에 고등학교에 난입하여 운동선수를 공격한 사건으로 기억”(p252)하는데, 나도 떠도는 기사를 보고 관련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콜롬바인 범인들의 정체를 설명하려 한 모든 설명외톨이, 사회 부적응자, 트렌치코트 마피아(TCM), 고스족, 게이, 거리 깡패, 교내 괴롭힘, 네오 나치, 인종 차별은 다 과장된 오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목격자 2000명의 진술이 엇갈린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게 더 문제였다. 배후가 있다는 둥 제3의 공범이 있다는 둥 오해가 부풀려지고 퍼져 사태를 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씨름했고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데 10년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왜'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가까웠다.  

 

““부적응자라는 판단은 사실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에릭과 딜런은 그런 꼬리표를 부친 아이들은 이들이 단정한 옷차림을 거부했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학교에는 그런 애들이 수백 명이나 더 있었다. 에릭과 딜런은 아이들과 무척 적극적으로 어울렸고 평균적인 사춘기 소년보다 친구가 훨씬 많았다. 어떻게 보면 당시 번성하던 또래문화에 딱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같은 성향의 친구끼리 존중했고 자기들을 깔보는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을 놀렸다. 운동하는 녀석들을 흉내낼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보다 더 따분한 일은 없다고 여겼다.

딜런에게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에릭에게는 다르다는 것이 좋은 일이었다.”(p250)

 

언론매체는 교내 괴롭힘과 부적응자에 계속 집착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딜런은 신입생과 호모를 못살게 괴롭히며 즐거워했다. 둘 다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애들을 괴롭혔다며 자랑했다.“(p431)

 

콜럼바인 대학살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언급된 대중문화 작품은 올리버 스톤의 풍자적인 영화 <내츄럴 본 킬러>였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에릭과 딜런은 자신들의 거사를 줄여서 ”NBK"라고 부르곤 했고, 실제로도 영화와 상당한 유사성을 띠었다. 자기중심적이었고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릭의 성향과도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딜런의 성격과는 무관했다. 그는 적어도 마지막 몇 달 전까지도 자신의 인생이 이런 방향으로 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지를 쓰기 시작한 지 18개월 내지 20개월이 지날 무렵까지 딜런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앨범 <내리막 소용돌이>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에 나오는 두 주인공을 자신의 고통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여기고 공감했다.

학살극이 끝나자 폭력적인 영화와 음악, 비디오게임의 유해성을 둘러싸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몇몇 칼럼니스트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은 안일하게 인과관계를 단정했다. 고전을 탐독했고 비판적으로 사고했던 에릭을 설명하기에는 순진한 생각이었고, 그의 파트너 딜런에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딜런은 자살까지 생각한 우울증 환자였다. 그는 자신과 같이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허구의 캐릭터에게 공감한 것뿐이었다.”(p332~333)

 

 

이런 사건이 터지면 폭력적인 영화와 음악, 비디오게임의 유해성문제가 항상 터져 나오는데 그 문화를 즐기는 누군가는 살인자가 되는데 왜 대다수는 정상 생활자인지부터 명확히 규명해야 되는 거 아닌가. 사건 이후 발표된 FBI와 비밀경호국 보고서에 따르면 공격자들에 대한 정확하거나 유용한 프로파일은 존재하지 않는다.”(p537), 총기 사건을 저지른 아이들은 인종, 경제력, 사회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부류에서 다 나타나며, 양부모 모두 살아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고, 대부분 전과나 폭력 기록이 없었다.’ 대중문화가 미치는 영향력도 미미했는데, ‘겨우 4분의 1이 폭력을 다룬 영화에, 2분의 1이 비디오게임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 정도는 10대 남자애들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에릭은 상황을 고려해서 고등학교를 골랐지만 아무렇게나 고른 것은 아니었다. 운동선수가 그의 목표대상이었다면 그저 체육관만 날리지 않았을 것이다. 콜롬바인 미식축구장 외야석을 꽉 메운 수천 명도 함께 죽였을 것이다. 그가 사회지도층을 목표로 했다면 사흘 전에 열렸던 댄스파티를 노렸을 것이다. 에릭은 자신이 받은 학대의 상징을 공격했다. 로봇을 양성하는 공장이자 사춘기 존재의 거처였던 곳을.

에릭에게 콜럼바인 학살은 공연이었다. 일종의 살인의 예술. 일지에서 그는 실제로 청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청중의 대다수는 내 동기를 이해조차 못하겠지.” 그는 콜럼바인을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살인 무대로 기획했는데, 그가 가장 우려한 점은 우리가 너무 멍청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이야말로 에릭의 궁극적인 무기였다. 그는 극한의 공표를 안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스포츠 경기나 댄스 같은 일회성 사건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평생 두려움을 갖고 살기를 원했다. 이는 결국 들어맞았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두려워했으니까 말이다.

에릭은 테러리스트와 같은 정치적 의제를 갖진 않았지만 그들의 전략을 채택했다. 사회학자 마크 위르겐스마이어는 테러리즘의 핵심적 특징으로 폭력의 상연을 꼽았다. 테러리스트는 사건이 눈부실 정도로 악의적이고 대단한 파괴력을 드러내도록계획한다. “그처럼 과장된 폭력의 시연은 계획적으로 꾸며낸 사건이다. 아연실색게 하는 매혹적인 극장이다.”(p463~464)

 

 

는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언제나 우리 뒤통수를 치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범죄든 갱신하는 누군가 반드시 등장한다. 점점 증폭되는 총기사건의 이 무수한 행렬처럼. “콜럼바인 이후 10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학교 총기 사건은 80건이 넘었다.”(p509) “에릭은 열여섯 살 때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고, 열일곱 살 때 계획의 대부분을 다 세웠으며, 열여덟 살이 거의 되어갈 때 총을 쏘았지만(p413) 그가 교활하고 어려서 사이코패스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지는 모르겠다. 알아차릴 수 없다면 가 무슨 소용인가. 콜럼바인 범인들이 환상과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갈 때 그걸 파악하고 제대로 막으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자 데이브 컬런은 어떻게에 더 집중했다. 그들의 극단을 막을 수도 있었을 순간들과 비극적 사건의 생존자들이 극복해가는 과정을 꼼꼼히 펼쳐 보인다.

FBI와 비밀경호국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사건의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결정적인 경험이 있다. 98퍼센트가 자기가 느끼기에 아주 심각한 상실이나 실패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이런 트라우마가 분노를 작동시키는 계기가 된다. “딜런은 자신의 삶 전체가 실패작이라고 여겼고 에릭은 체포로 분노가 폭발했다.” (p538) 총격자의 81퍼센트가 자신의 의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데 이걸 잘 감지해야 한다. 이들은 죽음, 폭력, 파괴에 계속해서 집착을 보이는데 이런 여러 경고 신호를 파악할 교사가 한 학교당 한 명만 있어도 많은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에릭과 딜런의 친구들은 그들이 파이프폭탄을 만들고 총을 입수한 것을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릭이 브룩스 브라운에게 강한 적개심을 느끼고 위협을 가할 때 브라운의 부모들은 에릭의 위험성을 사건 발생 전에 1년 반 넘게 보안관서에 열다섯 차례 넘게 신고했지만 무시되었다. 대학살 13개월 전에 보안관서의 조사관 존 힉스와 마이크 게라가 브라운 부부의 고발사항 가운데 하나를 조사해 에릭이 파이프폭탄을 만들고 있다는 물질적 증거를 찾아냈음에도 제퍼슨 카운티 당국은 수색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뒤 제퍼슨 카운티 당국은 브라운 부부의 신청서 존재, 에릭의 범죄적인 망상과 증오가 가득 담긴 웹사이트 조사 상황 등 자신들이 알고 있던 내용도 숨기고 거짓말했다. 딜런의 창작수업 교사 켈리는 그의 사악한 습작을 읽고 문제의 심각성을 학교 상담사와 가족에게 알렸지만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크 메인스가 미성년자인 범인들에게 총을 팔고 18년형 감옥살이를 한 것과 달리 정부측은 어떤 사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 경찰은 2003년 총격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발표했을 뿐 정부는 법제화된 전국적 총기규제 법안은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으로 다시 총기규제 법안 논의가 술렁이는 것 같지만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 제대로 논의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다.

2007년 소송으로 콜럼바인 사건 기록은 국가자료보관소에 20년간 봉인 조치되었다. “진실은 대학살이 일어나고 28년이 지난 2027년에야 밝혀질 것이다.”(p532) 희생자 가족들이 고통의 판도라 상자 속을 다시 봐야 하는 형벌 같다. 이런 상황이 극복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사건 추적만큼이나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최대한 충실히 담고 있다. 총구 앞에서 신앙고백을 한 것으로 알려진 캐시 버넬의 이야기는 잘못된 목격담으로 왜곡되었다는 게 나중에 알려졌지만 종교적인 순교로 이용하는 이들 때문에 바로잡히지 못했다. 사건 장소에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딜런과 대화를 나눈 이는 생존자 발린이었다. 콜로바인 희생자 가족에 대한 비난은전례 없는 고통 속에서 콜럼바인 희생자들은 아직도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손을 벌리고 있다”, “우리 모두 계속되는 푸념에 질렸습니다”(p502)세월호 사건 때와 많이 겹쳤다. SAFE(총기에서 벗어난 건전한 삶) 집회 때마다 사망한 아들 대니얼의 신발을 높이 들어 군중에게 보여주는 톰 마우저, 아들 대니가 죽은 자리에 있던 보도블록을 가져와 집안 정원 중심에 갖다 둔 수 페트론,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다 출혈과다로 사망한 교사 데이브의 머리가 놓여 있었던 카펫 한 자락과 떨어져나간 이빨 조각까지 챙겨 집으로 가져간 아내 린다 샌더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다른 학교에 자신이 배운 교훈을 알리러 다니는 콜롬바인의 프랭크 교장 등 모두 필사적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뇌 손상을 크게 입고도 재활과 치료에 애썼던 패트릭 아일랜드 이야기는 특히 감동인데 그를 치료했던 의사조차 몰라봤을 정도로 인간 의지를 보여줬다. “총기사건은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저의 모습을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총격자들 때문에 남은 제 인생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p597, 20079월 콜럼바인 추모비 제막식에서 패트릭 아일랜드) 고통을 이겨내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에릭과 딜런이 너무도 쉽게 악의 구렁텅이로 향한 것과 정반대다.

이 책은 자신과 타인이 칼날과 총탄이 되어 세상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좋은 지침서라고 생각한.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정말 잘 보여준 저작이다.  

 


ps)

저자는 로키마운틴뉴스가콜럼바인 기사가 "정확한 저널리즘의 걸작"이었다고 말하며, 공격의 본질을 꿰뚫어본 최초의 보도이자 마지막 보도였다고 말했다.(p253 참조)

로키마운틴뉴스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나머지 보도 사진은 이곳에 ☞ http://www.pulitzer.org/winners/photo-staf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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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0-15 00:40   좋아요 4 | URL
타인을 죽이는 것과 스스로를 죽이는 것 한끝 차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인을 죽이고 제대로 된 나로 살아가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목숨의 한은 누구도 보상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안타까워요. 정말.

cyrus 2017-10-14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해자의 친필 일기는 처음 봅니다. 저 자료만 봐도 <콜럼바인>의 저자가 공들여 자료를 수집한 노력이 느껴집니다. 에릭의 일기에 적힌 ‘킬 맨카인드’가 눈에 띕니다.

AgalmA 2017-10-24 12:12   좋아요 2 | URL
이 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투입된 네고시에이터이자 프로파일러가 콜럼바인 사건 학부모여서 협조를 얻기가 더 쉬웠던 거 같아요. 제퍼슨 카운티가 잘못을 숨기려 은폐를 많이 해서 사건을 더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요. 에릭의 메모는 다 섬뜩합니다.
죽기 전 비디오 영상으로 유언을 남길 정도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게 사건 분석에 도움이 많이 됐죠.

레삭매냐 2017-10-14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히 논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저도 <콜럼바인> 사서 읽기는 시작했는데
이시구로 선생 때문에 결국 다 못 읽었네요.

지금은 마틴 에미이스와 존 맥그리거 컬렉션
에 들어가는 바람에 한참 뒤에나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더라는.

AgalmA 2017-10-15 00:41   좋아요 2 | URL
책이요? 리뷰요? 책은 당연히 그 수준을 넘기 때문에 제 리뷰평이라 생각하고ㅎ;;; 10년 걸려 썼다는데 후루룩 넘어가기 그렇더라고요. 저널리즘 강조하는 책인데 툭툭 맥락만 던지면 잘못된 정보를 줄 수도 있어 신경 참 많이 쓰이더라고요.
레삭매냐님도 은근히 기분파 독서이신 듯ㅎㅎ 저도 상당히 그런 편이지만 레삭매냐님은 전작탐독까지 해가며 열혈리뷰도 쓰시잖아요. 엄지 척👍🏻

나와같다면 2017-10-15 14: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AgalmA님의 콜럼바인 리뷰 기다렸습니다..
이 책 읽기 많이 힘드셨죠..? 저도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어요

이 냉정하고 침착하고 이성적이며 감성적인 리뷰가 <콜럼바인> 리뷰 대회에서 상을 받으실 것을 저는 미리 압니다♡

AgalmA 2017-10-17 07:28   좋아요 3 | URL
부족한 것도 있을텐데 애정 잔뜩 주셔서 감사드려요. 나와같다면 님^^ 날이 많이 쌀쌀한데 건강 잘 챙기시와요~

나와같다면 2017-10-24 17:06   좋아요 2 | URL
와! 무슨 내가 예지자도 아니구 ㅋ
제가 그랬죠? 이 리뷰가 상을 받을 것을 저는 미리 안다고..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17-10-24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리뷰 대회 1등 축하드려요~~~~~
전에 읽으면서 1등으로 강력 예감했었는데,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네요^^

AgalmA 2017-10-24 11:24   좋아요 2 | URL
앗! 이렇게 일찍 발표가! 기쁜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요. 단발머리님^--^)/

캐모마일 2017-10-24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 1등 축하드립니다.

AgalmA 2017-10-24 11:39   좋아요 3 | URL
일부러 찾아와 주셔서 축하인사 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7-10-24 1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축하드립니다.
역시 대단하신 아갈마님!!!

AgalmA 2017-10-24 11:39   좋아요 3 | URL
문학동네 세계전집 중 톨스토이 3권짜리 <전쟁과 평화> 갖고 싶었는데 드디어 맘편하게 사게 됐어요ㅜㅋㅜ);;;
감사드려요, 북프리쿠키님.
저는 책 내용을 잘 정리한 것일 뿐 책이 좋았죠^^a

[그장소] 2017-10-2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ㅡ를 읽다보니 , 우리나라에서도 그럴테지만 더 많은 나라가 애초에 기본적으로 성격이나 성향이랄까 ㅡ 개인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게 문제 같았어요. 학생때는 자라는 시점이라 변화가 다분해 그렇다고들 하지만 그렇기에 유년기를 중요하게 보는거잖아요. 근데도 그 시절의 잘못이나 문제점을 지나치게 관대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넘 좋은 소식 ㅡ 다시한번 축하해요!^^

AgalmA 2017-10-24 12:28   좋아요 1 | URL
저도 자주 들었는데 ˝애들 때는 다 그러면서 크는거야˝가 있잖아요. 에릭과 딜런도 보호 관찰을 받았지만 어른들이 참 나이브했죠. 또 아이들이 사고를 일으킬 때 가정교육 운운하면서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하죠. 그러니 딜런 어머니가 책까지 쓰며 더 고민했던 거 같고요. 한국은 더 심하죠. 강력한 반발에 그런 책조차 내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학교보안관을 두고 있지만 이런 걸 세심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성폭력 감시 정도이지 않나요. 오히려 학교보안관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이 왕왕 터지잖습니까. 너무 행정적으로만 처리하려고 해서 답답해요. 이 많은 인구에서 그렇게 인재가 없나 속상하고요. 전반적으로 모두의 인식이 세심해져야 해요. 촛불운동 이후 좀 달라진 듯도 한데 입시 위주, 경쟁 위주로 이렇게 계속 치닫는 이상 근본을 바꾸지도 긍정적인 방향도 못 나올 거 같아요...휴.....

[그장소] 2017-10-24 12:31   좋아요 1 | URL
문제가 되는걸 알아도 , 자신들 치부가 되면 가리기에 급급하단 것도 마찬가지 .. 문제의 뿌리를 가리고요 . 그건 특히 ( 오해살수도있는 발언이지만) 남성 권위사회에서 더 심한 것 같아요 .

서니데이 2017-10-24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