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p22


"운명"이 아니라 화자의 서술이 거창하거나 거만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손쓸 수 없는", 그래서라고 말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이 단어 외에 뭘 쓸 수 있나.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뜻도, 그의 부모 뜻도 아닌 한 신부의 평범한 뜻에 따라 지어졌다. 소설에서 그는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라고 말했다. 한평생 같이 할, 죽고 나서도 나 대신 떠돌 이름보다 더 중요한 건 뭔가.
누군가는 "운명"이라 글을 썼고 누군가는 음악을 만들었고 모두 죽어갔다.
괜스레 서럽고 억울했는데 내 맘처럼 소낙비가 내렸고 잠이 쏟아졌고 새들이 웃었다.
뭐가 그리 중요한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정은은 늘 남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그들은 희망의 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는 한 도덕은 지켜질 것이다.”

김영하 오직 두 사람, 신의 장난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다면 도덕이 지켜질 거라는 건 당위이자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 말은 그저 믿음이자 약속이다. 희망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부패하지 않을 때 도덕도 지켜지지 않겠나.

 

사람들은 개츠비의 집에서 그가 부패한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는 우리 앞에 서서 부패할 수 없는 꿈을 숨기고 있었다.”

바즈 루어만 영화위대한 개츠비》대사

 

 

나는 거기 앉아 오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생각에 잠기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처음으로 녹색 불빛을 찾아냈을 때의 그의 경이에 대해상상했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그의 꿈은 너무 가까워 보인 나머지 그것을 붙잡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도시 저쪽의 광막하게 어두운 어떤 곳,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밑으로 끝없이 이어진 그런 곳으로 흘러가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들 앞에서 점점 멀어지는, 진탕 마시고 떠드는 주신제 같은 미래를 믿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 우리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버렸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된다ㅡ내일은 더 빨리 뛸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

그러므로 우리는 흐름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동서문화사 판)

 

 

개츠비의 녹색 불빛. 희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희망의 목표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면. 믿음이자 약속일뿐이라는 데 나는 오래 멈춰 서 있다. 사람은 아름다운 셔츠 같은 희망을 끝없이 좇아 나아간다. 얼마나 많은 걸 믿어야 가능한 일인지. 끝이 안 보이기에 계속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일까. 희망도 삶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던 김영하 작가는 1920년 대에 '녹색 불빛'을 보려 한 피츠제럴드와 다르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와 '견딘다'를 저울에 올려본다. 현실 속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볼 수 없다. 각자 예측만 할 뿐이다.

 

 

Gotye - Hearts A M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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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6-29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희망 고문‘....

AgalmA 2017-06-29 20:28   좋아요 1 | URL
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