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눈이 내 얼굴을 - 제3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28
안태운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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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근본적인 모순으로 존재한다. 결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면서 내 얼굴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표상에 기대어 말하고 있다. 태운 감은 눈이 내 얼굴을시집은 제목부터 그걸 말하고 있다. 증명사진처럼 내 얼굴이 나를 설명할 수 있다면 감은 내 눈이 내 얼굴을 설명하는 것이 이상할 게 무언가. ‘뒷모습과 뒤를 돌아보는 모습 사이에서 걷고있다 말하는 그의 자서(自序)가 이상할 게 무언가. 그래서 그의 시집엔 얼굴들이 새처럼 떠다니고 물처럼 흘러 다닌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만을 설명하는 독립체도 복속체도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설명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 모든 언어는 모든 언어에 속하며 서로를 표현하기 때문에애석하게도 기다리는 것은 가능이다. 그런데 그게 참 멋지게 도착해 있다.

<자재로>를 살펴보자.

운반은 반복되고 있다”, “필요는 망각되지 않는다”, “노동력이 이동하고 있다. 강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자재로 자재의 원천을 깨뜨린다. 묘사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표현을 만나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가 될 것이다. 상태가 상태를 설명하는 이상한 증식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묘사하면서도 더 이상 묘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꿈 얘기를 하고 꿈 속에서 현실처럼 살 듯, 있는 것들이 없는 것들을 설명하고 없는 것들이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이분법적 도식이 아니라 설명이 설명을 전복하는 사태가 이 시집에는 가득하다.

어딘지 분실한 적이 있던 거리”, “꿈 속에서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안 건 나뿐이었다”(<미열>), “감지되는 나와 지향하는 나는 한 몸에서 서로를 시늉하고 있습니다”(<동공>),

불러도 오지 않는 개가 있다. 개는 물 위에 엎드려 있었지. 엎드려서 흐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기르는 얼굴>),

그사이 그림자 안으로 밝은 새가 어두운 새를 떨어뜨린다”(<그림자의 사람처럼>),

"그리고 하나를 골랐다. 눕고 있다. 어떤 것들은 변질된다. 어떤 것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떤 순간은 서서히 침윤되어 갑니다. 그늘은 두터워지고 있다."<<모습의 흐름>

 

꿈과 현실을 나누는 우리의 체계를 이렇게 허문다면, 나와 너라는 경계는 종횡무진 시점과 시제 전환으로 허물고 있다. 서술어들을 주시해 볼 것.

우리의 귀는 기둥의 양쪽 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기둥이 우리를 듣는다. 우리는 들리고 있다. 서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지닌다”(<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가자, 그러면 그는 곧 그녀를 볼 수 있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과 문의 중간쯤에 있었다. 거기서 소를 치고 있다, 여러 마리의 소를. 이 소는 참 예쁩니다. 그는 그녀의 소를 가리킨다. 웃는다. 한담을 주고받으면서 그것의 귀를 만진다. 만지고 있다. 제가 이 소를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 (<예식>)

그녀는 좋다고 했다. 네게 했다. 너는 말을 한다.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웃어 보인다. 거울은 깨져 가고 있습니다. 너는 깨져 가는 것들을 보지 않는다.” (<모색하는 사람>)

무사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원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책을 덮는다. 나는 쓰던 공책을 덮고 있다. 그는 낙엽을 도로 줍는다.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다른 곳에 풀어 놓을 겁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낙엽을 밟고 있었다.”(<원어>)

우리는 이제 정상에 다다르고 있다.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니 기념으로 불러보자. 그러자 우리는 불렀다. 계속 부르는 것 같았다. 부르고 나니 메아리가 울린다. 그러고 나니 고요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짐승들이 자고 있을 것이다. 더 올라갈 겁니까. 나는 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동면>)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 1인칭에서 3인칭 시점, 가정법·평서법·의문법·청유법, 반말과 존댓말 등 모든 어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언어 과학자처럼. 실험이 어떤 사실의 지위를 획득하는 순간을 향해.

바야흐로 다른 시 세계가 오고 있다. 일기가 책이 된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이 읽거나 읽지 않는 사이 이 독특한 계절들은 계속 오고 가고 있다고 나는 말할 수밖에 없겠다.

   

가을은 점점 공고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안개 속에서 너는 너를 더 잘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있었고 얼마 후 너는 사라진다. 그러나 언제부터 너는 사라졌나. 너는 사라진다. 사라짐으로써 유명해진다 (중략)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쓴다. 여름을 적지 않는다.”(<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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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0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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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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