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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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사라진 걸 알았다. 십 년 넘게 걸고 있던 피어싱이. 단편 <라요하네의 우산>에서 샌드리가 귀걸이 한 짝만 걸고 있는 지미를 견딜 수 없어하며 시메트리 증후군에 대해 말할 때였다. 한 짝 뿐인 내 피어싱은 파괴와 재건을 상징하는 시바 신이 세상의 독을 삼켜 파란 몸을 지녔듯 푸른 불꽃이 담겨 있었다. x-ray를 찍을 때 외에는 뺀 일이 없었다. 그것을 구입한 뭄바이의 허름한 거리를 아직 기억한다. 다시 찾아가도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완벽한 사라짐을 바라면서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걸 늘 목도하는 게 삶이다. 만약 내가 시메트리 증후군인 사람을 만난다면 오랜 시간 애정이 담긴 귀걸이 한 짝을 기꺼이 뺄 수 있을까. 자신은 좋은 여행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지미는 귀걸이를 빼 가방 안에 넣는다. 그의 귀걸이에 특별한 무게가 있었다면 귀걸이와 시메트리 증후군은 재밌는 갈등 구조를 만들었을 것이다. 김살로메의 소설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소시민적인 지미 같은 초점 화자를 자주 발견했다. 작법적이 아니라 현실이 반영된 거라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한 발 물러서 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인물들이기도 한데 그것은 성공적이었나.  
  
나는 소설가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인물 중심형, 이야기 중심형, 이미지 중심형, 실험형. 한국 소설의 전통적인 특징은 인물에 아주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기하게도 한국 문화계 전반의 특징이라고도 생각한다. 스타, 아이돌 중심으로 판이 돌아가는 것처럼.
이 소설집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을 보며 작가가 인물 중심형이란 생각을 했다. <라요하네의 우산>에서 언급되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알비노의 항아리>에서 언급되는 앙리 바르뷔스 지옥, <강 건너 데이지>에서 언급되는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왼손엔 달강꽃>에서 언급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등도 개성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들이다. 김살로메 소설에서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개성적인 인물을 찾는 노력이 많이 엿보였다. 알비노증 약사, 노년에도 밤살이에 집착하는 시어머니, 성욕과 식욕에서 각각 변태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영세기업 사장과 여직원, 독립영화 지망생, 시메트리 증후군 인물, 무기수의 딸, 한지 인형 제작자, 모성보다 연애에 집착하는 엄마, 매춘을 하는 텔레마케터, 촌철살인 같은 속담으로 말하길 즐기는 새터민 사람들, 시아버지를 살인한 누명을 쓰게 될 며느리, 삼류 시인 등. 이들은 몇몇만 빼면 대개 초점 화자가 관찰하는 대상들이다. 앞서 언급한 에밀 아자르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들은 개성적 인물들과 초점 화자의 콜라보가 성공한 작품들이다. 김살로메 작가의 이 소설집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점을 내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돋보이는 작품은 <피의 일요일><누가 빈지를 잠갔나> 였다. 도덕적이고 반성적 글보다 서늘한 긴장감과 추리적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의 지향을 읽을 수 있었다. <피의 일요일>은 시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임산부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고 용의자가 되지 않으려 머리를 굴리지만 용이치 않게 되는 서사이고, <누가 빈지를 잠갔나>는 오해하게 되는 사건들과 시간들 속에 진실 혹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만 남는 과정을 잘 포착했다. 한국에서 장르 소설이 점점 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능은 향후 발전을 더 기대하게 한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간호사들의 디테일한 이야기와 의학 용어들을 보며 정유정 작가 경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가장 마음에 든 대목은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 꽃잎이 삼백여 장이 넘는 라넌큘러스와 수많은 기억들이 꽃잎처럼 모여 만들어지는 현실을 연결한 대목이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분들이 많이 언급할 거 같아 구체적인 인용은 생략했다.
가장 재밌던 요소는 <아폴로를 씹었어>에서 새터민 사람들의 대화 특징였. “소 잡은 흔적은 없어도 밤 껍질 벗긴 자리는 있다고 했거든요”, “별 따려다가 발 아래 채송화 밟아 죽인다는 말도 있다”, “숲 속 열 도둑 잡기 쉽지 맘 속 한 명 도둑 못 잡잖아요.” 같은 것들. 경험과 취재를 잘 녹여내야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기에 작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하는 후장 사실주의 같은 실험형 소설들이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는 광경을 자주 본다. 김살로메 작가가 그보다는 안전하지만 만만찮은 장르 소설 쪽을 가는 걸 바라보며, 소설가의 의무보다 소설가의 재미를 더 많이 찾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다음엔 잃어버린 제 피어싱에 대한 걸 소재로 써 보심은^^?
  
   
   
  
김살로메 소설집에 대한 내 평점이 박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노파심에서 알리자면, 나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앙리 바르뷔스 지옥》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의 별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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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14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유저겸 작가분중에 소설가는 처음 뵙습니다.ㅎㅎㅎ

AgalmA 2017-01-14 10:35   좋아요 1 | URL
많이 계신 걸로 아는데 이렇게 직접 책을 받기는 여기서 처음이라 부담이 많이 되더군요. 리뷰 부담 때문에 일전에 yureka01님 시집 나눔하실 때 손 안들었어요. 혹여 섭섭치 마시길^^; 받고 싶은 분이 많아 너 줄 거 없어! 상황인 듯 해서 다행ㅎㅎ

yureka01 2017-01-14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책주고 받는 것에서 부담은 배제입니다. 리뷰나 페이퍼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라서요. 저도 책 많이 받았지만 리뷰도 몇개 안했습니다.흐.자유롭게 하시면 될거예요.부담가지라고 보내는게 아닐거니까요.^^.편하게..하셔도 되요.

2017-01-14 08: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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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14 08:15   좋아요 0 | URL
인심은 잃겠지만 작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이런 점 때문에 욕도 많이 들었지만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ㅎ;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게도 같은 별점을 줬다는 방어막을 굳이 넣었잖아요ㅜㅜ

2017-01-14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14 10:37   좋아요 0 | URL
후장사실주의 소설은 노이즈 마케팅이 된 사례가 되겠죠. 도대체 어떻길래 궁금해서 읽게 되는ㅎㅎ;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소설이 되긴 어렵죠. 많은 고전들도 환호와 질타의 검증 과정을 거쳤고요.

주례사 평이 지금 당장은 작가에게 힘이 될 지 모르지만 독자가 어떤 걸 좋아하고 아쉬워하는지 정확히 아는 게 작가에게 향후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취향이 섞일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한 제 진심과 응원을 작가가 알아봐주길 바랄 뿐^^;

2017-01-14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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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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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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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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