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요리사와 단식가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경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영화의 주제로 사랑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것은 외로움, 욕망이다. 바로 그것들을 주제로 하여 아주 잘 만든 우리 영화가 있다. 몇년 지난 것 같지만 인상 깊게 본 영화로 <301 302>가 있다. 시인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라는 시를 각생한 이 영화는 마치 외국의 컬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섬뜩함과 전율을 주었다.

 
이 시에 나오는 내용을 더도 덜도 아니게 그린 영화는 그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숫자속으로 숨어버린 익며의 현대인들이 견디어내고 극한의 외로움을 극적으로 상반되는 두개의 상황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이싿. 사방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의 공간에서 어안 렌즈로 바깥 세상을 훔쳐볼 수 밖에 없는 도시의 현대인들.
현 대인의 외로움을 그린 영화는 너무 많다. 그러나 하나같이 그 표현 방법이 섹스나 폭력, 혹은 마약 등을 매개로 그려져 식상할 때가 많아싿. 그러나 <301 302>란 독특한 제목의 영화는 요리를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이 영화를 잘 들여다보면 그 음식이란 것이 아주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흥미롭다. 말하자면 이영화의 주제인 외로움이나 욕망이란 놈이 요리라는 가시적 형태를 통과하여 관객들에게 다양하게 보여 진다는 점이다. 301이란 익명성과 302란 익명성은 끊임없이 음식들을 먹어대고 토해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절대 고독을 표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외 로움이란 역설적으로 말하면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욕망의 기본적 형태의 음식이란 소도구를 끊임없이 집어넣고 밀어내는 행위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을까? '세상 외로움을 다 먹어치울 거야, 그러면 외롭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속에 한 오라기의 외로움도 남아 있지 않도록 다 토해낼꺼야, 그러면 외롭지 않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을까?
결 국 그것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외로움이나 사랑, 욕망 따위의 허공들은 근원적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마지막에 기꺼이 301의 요리 재료가 되어주는 302란 한 덩어리의 외로움, 욕망은 스스로 다른 것의 피와 살이 됨으로써 그 지긋지긋한 외로움이란 욕망에서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것을 먹은 301이 여전히 외로움으로 그 희망이 가당치 않은 욕망이었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301이란 외로움은 302라는 기상천외한 인육을 먹고도, 전에 그가 요리한 야채 샐러드를 먹고 난 뒤나, 애완견 쫑쫑일르 먹고 난 뒤에 찾아오던 더 큰 허기와 굶주림으로 부터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어쩜 그속에 토해내도, 토해내도 끝없이 남아 있던 302란 외로움이 더해져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란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302 를 위한 요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라고 중얼거리는 301의 외로움이나 '자, 나 아직 살아 있어요'하고 자신을 재료로 내놓는 302의 외로움은 현대인 누구나의 가슴속 대형 냉장고에 시뻘건 고깃덩어어리로 영원히 피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외로움과 욕망을 끓이고 익혀서 우적거리고 씹어 넘기며 탄수화물로 만들어 내는 공장인지도 모른다.
거 리에는 지금도 외로움이란 탄수화물의 공장들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육교를 오르며 지하도를 내려가며 밀고 부딪치는 저 301, 302들을 보라, 저기 302를 먹은 301이 전신주 아래 창백하게 서 있다. 감전된 듯 문득 가로등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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