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인어의 노래>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지은(어린이청소년문학평론가)

 

그 무렵 대륙의 서북쪽 폴란드의 오래된 도시, 조그만 아파트 안에서는 형제자매도 없이 자라던 한 소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어디서 처음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이 외로운 소녀에게 인생의 진실을 일러주었다.

 

수십 년이 지나 한 소녀는 글을 쓰고 다른 소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동쪽 나라의 황선미가 쓴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은 2012년 폴란드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서쪽 나라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린 그림책 ‘마음의 집’은 한국의 기획자와 출판사를 만나 출간돼 2011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작가가 된 두 소녀는 8000㎞가 넘는 거리를 가로질러온 물줄기처럼 함께 만나 ‘인어의 노래’라는 아름다운 민담동화집을 펴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신비로운 일이다.

 

이 책에는 ‘고사리꽃’ ‘왕이 된 농부’ 등 폴란드 옛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 글을 발굴해 책을 기획하고 고운 우리말로 다시 쓴 사람은 황선미 작가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세계의 옛이야기들이 매우 간략한 축약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황 작가는 훗날 원작을 찾아 읽으면서 그 이야기들의 본래 매력을 재발견했다. 죽지 않고 전해진 이야기에 깃들어 있는 깊은 의미 하나하나를 복원하는 마음으로 민담동화집의 원고를 썼다.

 

이 원고가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자랐던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만나 그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독자들의 행운이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이루어진 다시 소장하기 힘든 놀라운 예술작품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입과 눈에 부드럽게 어울리는 문장은 황 작가가 공들여 간직해 온 어린 시절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10편의 유럽 민담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이 시작할 때마다 페이지에 실려 있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는 행운은 인간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에게는 출신보다 중요한 게 있다오’와 같은 간결한 문장은 외우고 싶은 말들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 특유의 포토 몽타주 기법의 그림은 넓고 한가로운 마음의 여운을 준다. 결코 흔하지 않지만 익숙한 방식으로 풀려나가는 이야기들이 민담 읽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도 낯선 회상의 경험을 안겨준다.

 

동쪽의 문장, 서쪽에서 온 그림, 그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책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작가의 말에 쓰여 있듯이 이 책은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문화일보》 「북리뷰(2015년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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