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좋은 어린이 책 <시작 다음 Before After>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박병철(물리학 교수)

 

감정과 논리, 두 가지를 모두 자극시키는 책

“인과율: 원인이 있는 곳에 결과가 있다.”

이것은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자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과율이 진행되는 배경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즉, 하나의 원인과 그 결과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에피소드는 크게 (1)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원인-결과와 (2)발생 장소가 각기 다른 원인-결과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나뭇가지 위를 기어가는 거미 → 그 거미가 만든 집”은 (1)에 속하고, “대포 → 구멍 뚫린 벽”은 (2)에 속한다.

 

이 책의 그림을 분류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a)자연현상에 의한 인과율과 (b)생명활동에 의한 인과율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열역학의 법칙에 의해 엔트로피(무질서도)를 증가시킨다. 즉, 이전보다 이후가 더 무질서하다. 그래서 “얼음이 녹아서 → 물이 되고”, “바람이 불어서 → 짚과 나무로 만든 집이 망가지는 것”은 (a)에 속한다. 그러나 생명활동이 진행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열역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생명활동은 무질서도를 감소시켜서 이전보다 질서정연한 상태가 된다. “하나의 도토리가 → 커다란 나무로 자라고”, “애벌레가 → 나비로 변신하고”, “새끼백조가 → 우아한 백조로 크는 것”은 (b)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b)에 속하는 그림들 중 무질서도가 가장 ‘격렬하게’ 줄어드는 것은 <인간의 활동이 개입된 경우>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적어도 지구에서는)무질서도를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건축자재를 쌓으면 → 건물이 되고”, “로켓을 쏘아 올리면 → 달에 착륙하고”, “밀가루, 계란, 우유, 딸기 등을 잘 섞어서 가공하면 → 먹음직한 케이크가 된다.” 즉, 이전과 이후의 무질서도 차이가 다른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크다.[인간의 활동이 개입된 경우를 따로 (c)로 분류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인 무질서도는 어떤 경우에도 증가한다는 것이 우주의 기본법칙이기에, 인간이 사는 곳 근처에는 무질서도가 다른 곳보다 엄청나게 많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케이크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상상해 보라.)

 

이런 식으로 각 인과관계를 분류하면서 이 책을 본다면(‘읽는 책’은 아니다. 글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현상과 생명활동, 그리고 인간활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인과율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는 식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하나의 인과율에서 연상되는 유사한 인과율을 연달아 배열하여 아이들의 체계적 이해를 돕고 있다. 여기에 추가하여 이 책의 모든 그림들을 ‘1-a, 1-b, 1-c, 2-a, 2-b, 2-c’와 같은 식으로 분류하는 훈련이 병행된다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자연의 순환, 인간의 생산활동과 엔트로피의 변화 등 다양한 인과관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의 원인이 주어졌을 때, 그로부터 본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감정’이고, 그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를 추론하는 것은 ‘논리’이다. 이 두 가지는 우열관계에 있지 않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대신할 수도 없다. 균형 잡힌 사고를 하려면 감정과 논리가 균형을 이뤄야한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아이들에게 두 가지 모두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된 후 → 고층빌딩이 잔뜩 들어섰는데”, “밀림 속에서 놀던 킹콩이 → 그 건물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비행기와 마주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유쾌한 반전인가!

 

Quiz: 이 책에서 무질서도가 가장 크게 감소한 그림은 무엇일까? Ans: 호박 덩굴이 마차로 변한 그림이다. 그래서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하고, 마술은 사람보다 우월하다. 무엇이건 무질서도를 많이 줄일수록 우월한 존재가 된다. 저자가 이 점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책의 키워드를 ‘엔트로피(entropy)’로 꼽고 싶다. 직업병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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