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좋은 어린이 책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동화작가)


이 책의 제목은 얼핏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 동우가 저승에서 빌린 ‘노잣돈’을 갚기 위해서 이승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저승은 현실 세계에서 저지른 윤리적 잘잘못을 헤아리는 곳이다. 잘못은 원칙적으로 내 책임이며 돈으로 환산하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고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와 용서는 집 한 채 짓는 일과 달라서 시작과 끝을 정해 두고 프로젝트처럼 착착 진행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책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일까? 동우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책 속 주인공 동우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다. 친구 준희를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돈을 빼앗으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던 그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가 현실로 되돌아오면서 받은 명령은 저승에서 빌린 노잣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그 돈은 하필이면 준희의 저승 곳간에서 나왔다. 처음에 동우는 준희에게 ‘장난처럼’ 했던 일을 ‘돈으로’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찢겨진 친구의 마음도, 망가진 양심도, 끊어진 우정도 ‘프로젝트’처럼 가볍게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노자를 갚는 일은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고 준희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미안했다’는 말로 낫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양심에 진 빚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약한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잘못에 대해 정확한 용서를 빌고, 위험에 빠진 그를 도와주면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된다. 준희와 동우의 깨진 우정은 둘이 함께 다른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들면서 비로소 복원되기 시작한다.


“그거 얼마야?”는 알고 보면 무서운 질문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있고 개인의 이익을 뛰어넘어 근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도덕적 문제들이 있다. 물론 누구나 부당한 행동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자기 마음속 양심의 심판관에게 묻고 옳지 않다면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라고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내세우면서 시작되는 검은 손길은 의리, 명예 등 근사해 보이는 낱말을 들먹이면서 우리를 끌어당긴다.


어린 시절은 부당한 유혹에 솔깃하기 쉬운 때다. 판단의 경험이 적어서 그릇된 무리에 휩쓸리기도 한다. 어른들도 본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게 얼마짜리인데 안 하느냐?”라든가 “얼마면 살 수 있냐?”는 말을 내뱉으면서 어린이를 물질만능의 경쟁 속으로 몰아붙인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돈의 기준’을 따르면 ‘어린 녀석이 벌써 돈을 밝힌다.’고 비난하지만 어린이에 관련된 도덕적 문제가 생기면 또다시 돈으로 다 해결하려 든다. 이럴 때면 어린이는 어디를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이 책은 가해자가 주인공인 보기 드문 동화다. 그동안 폭력을 방관하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경우는 있었지만 스스로 가해의 경험을 털어놓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무엇이 왜 잘못인지조차 몰랐던 동우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양심의 실마리를 힘겹게 되찾아 한 가닥씩 살린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정을 발견하고 학교 폭력의 질긴 고리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동우를 일으키고 일깨워 주는 것은 준희를 비롯한 또래 집단의 우정과 길고양이로 상징되는 생명의 힘이다. 다친 길고양이를 살리고 친구에게 진심이 담긴 반성의 편지를 쓰면서 동우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험난한 실천이며 그 길은 멀다.


동우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 돌아왔어!”라는 대답은 동우가 있어야 할 곳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삶은 ‘프로젝트’ 따위가 아니며 장부로 계산을 종료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긴 여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지금 이 순간도 돈의 위력을 믿고 파괴의 길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거듭 절망한다. 그러나 절망의 말을 되풀이하는 동안 구출되지 못한 양심은 죽어 가고 아무 곳으로나 끌려가 버린다. ‘무엇이 잘못이었지?’를 되묻고 하나하나 바로잡으려는 처절한 노력만이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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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혀 2015-03-0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