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좋은 어린이책 <크다! 작다!>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최영민 《행복한 에너지》 저자


《장자》를 펴면 먼저 새가 나온다. 넓이가 ‘몇천 리’나 되는 붕새다. 인류가 만든 가장 큰 배인 항공모함도 따라갈 수 없는 거대한 크기다. 고대인들이 보여주는 상상력의 배포가 대단하다 싶은데, 장자가 첫 장에 붕새 얘기를 꺼낸 것은 매미나 비둘기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큰 것이 좋다는 뜻일까?


그런데 붕새는 큰가? 아니다. 붕새는 작다. 그가 날려면 거대한 날갯짓을 받아줄 공간이 있어야 한다. 붕새는 그가 휘젓고 다니는 하늘에 비해서는 작은 새에 불과하다. 항공모함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저를 띄워줄 바다보다 클 수는 없다. 장자 말대로 ‘물이 깊기에 큰 배가 뜰 수 있는 것’이다. 크다는 것은 작다는 것을 전제하며, 무엇에 비해 크다는 제한적 의미에서만 성립되는 진술이다.


분홍고래 출판사의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시리즈는 상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식을 깨트리는 책들이다. 그 세 번째 책인 《크다! 작다!》는 거대한 붕새가 참새처럼 작은 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열어주는 책이다. '크다/작다, 많다/적다'를 큰 주제로 하는 이 책은 현대인들이 빠져 있는 거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큰 것과 많은 것을 좇는 현대인들이 빠져 있는 편견, 놓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대한 빌딩, 거대 기업, 거대한 부, 거대 과학기술……. 모두 인류 문명의 발달과 위용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은 그 거대한 성과 속에서 역으로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 빌딩 속에 쓰러져간 노동자들, 거대 기업의 부품으로 소비되는 개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제일의 가치로 추구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낙오자로 밀려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편향된 주장이라 보기 어렵다. 오늘날의 환경 위기, 식량 위기가 거대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크고 많은 것에 매달리는 거대주의 문제는 큰 차, 넓은 아파트 같은 물질적인 것에 한정될 수 없는데, 책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는 생각은 다수의 방식과 다수의 생각을 정상으로 세움으로써 나타난다.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배척되는데 이 역시 거대주의 문제로 본다. 책은 이런 지적을 민주주의 논의로 이끌어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통속적 이해방식을 따르면서 사회의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이 억압되고 배제되는 현실을 거대주의와 연결해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책을 읽다 보면 거대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의식과 생활에 꽤 넓고 깊게 퍼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의 미덕이 거대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책은 큰 것, 많은 것을 모조리 비난하고 배격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크고 많을수록 좋은 것도 있음을 주장한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중시하는 ‘큰 정신과 마음’이 그것이다. 장자가 붕새를 통해서 강조하려 한 것이 외형적 크기가 아니라 '큰 지혜'인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크고 많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그 일면을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민주주의에서 찾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진정으로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서술에서 볼 수 있듯이 ‘크다/작다’의 관계를 잘 포착한 것이다. 책은 ‘크다/작다’가 왜 상대적 관계인지를 밝히는 데 집중하지 않지만, 그것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은 참여가 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진술이 특히 그렇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다. 《크다! 작다!》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거대주의를 추종해 온 우리의 의식을 깨는 한 자루의 도끼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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